나홀로 전력 2천 자

[준쫑] 단문

감금 0일차

최종수와 연을 오래 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새끼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이 헛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최종수가 헛소리를 들어줄 사람을 고르느라 안 해서 모르고, 다른 한 가지는 헛소리를 잘 포장해서 헛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하느라 모르는 거다. 어느 쪽이든 그 안에 제가 없음이 자명한 이유는 지금 들리는 말조차 헛소리이기 때문이다. 비난이 아니라 사실적시다. 성준수는 살면서 최종수처럼 헛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진심?”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헛소리 하는 건 봤다. 지금도 보고 있다. 성준수는 황당한 발언을 무시하지 못하고 이마만 짚었다.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인데 그게 안 되는 건 발언자가 최종수라서 그럴 것이다.

문득 왼손 약지에 끼워둔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 누가 자기 남편한테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성준수는 일단 부정하고 싶어서 다시 물었다.

“나를 감금하고 싶다고?”

“응.”

“일주일을?”

“응.”

‘어’도 아니고 ‘응’이라는 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성준수는 또 이마만 짚었다. 이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라고 대답하는 것 말고 달리 없음을 아는데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쉴 때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나 산책하러 나가지 않는 이상 나갈 일도 딱히 없다. 어차피 감금 당할 거라면 지금 당하는 게 수지에 맞다. 아마 최종수도 거기까지 계산한 뒤에 제안했으리라.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그랬다가 뒷목 잡은 경험이 너무 많아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봤자 저만 골탕 먹는 엔딩이 불보듯 뻔했다.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 수칙을 정렬한다. 여기서 심기를 거슬렀다간 감금도 당해야 하고 기간도 늘어날 것이다.

“일단 들어나 보자. 뭐 할 건데.”

“안 알려 줄 건데?”

대답하는 얼굴에 사뭇 기대감이 어려있다. 성준수는 적어도 세 가지 정도를 추려낼 수 있었다. 하나는 전연령 포스트에선 말할 수 없는 거고, 하나는 기상천외한 곳에 놀러 가는 거고, 남은 하나는 기상천외한 곳에 먹으러 가는 거다. 그건 이제 감금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겠으나 최종수가 말하는 ‘감금’이란 단순히 집에 갇혀있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단둘이 붙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어디가 됐든, 누가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비시즌 때마다 한 달 정도는 붙어 다녔는데 무슨 영문인지 그걸로는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최종수가 하는 말은 다 헛소리 같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 원인이 있었고 대부분의 원인은 저였다. 당사자 입장에선 그저 황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그의 주장은 그랬다. 지금 이 사태도 그의 주장에 의하면 제가 만들었다는 소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대체 왜?

“최종수.”

“왜?”

“이거 내 허락이 필요하긴 하냐?”

“아니?”

그럼 그렇지……. 성준수는 한숨만 내뱉었다. 최종수를 겉핥기 정도로만 아는 놈들은 이 새끼가 이런 놈이라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가면 갈수록 기어오르려고 애쓰는데 문제는 그게 그닥 싫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이따위로 구는 게 익숙해진 건지, 면역이 생긴 건지 구분이 안 되지만 어쨌든 보고 있으면 어지간히 한다 싶은 마음뿐이다. 거기에 귀엽다는 소소한 감상이 더해지긴 하지만.

“적당히 해라…….”

“응.”

듣고 싶은 대답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최종수가 제 옆에 붙어 앉아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일주일간 뭘 할지가 빼곡히 적혀있는 메모장이다. 일주일 중 사흘은 집에 있고 나흘은 밖에 나간다. 집에선 뭘 하고 밖에선 뭘 할지를 가만히 읽어나가던 성준수는 황당한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굉장히 좋은 처사’라고 쓰여있는 얼굴이 저를 보고 있었다. 그냥 지 하고 싶은 것밖에 안 적혀있는데 어디가 굉장히 좋은 처사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구상한 이 계획을 실행할 마음에 들떠있는 애인을 보는 건 제법 유쾌한 일이다.

항상 이런 식으로 백기를 드는 것도 익숙해졌다. 성준수는 배부른 고양이 같은 애인에게 키스하며 스마트폰을 덮었다. 너는 진짜…… 남편이 나라서 다행인 줄 알아. 네가 다행인 줄 알아야지. 이런 계획 짜 주는 남편이 또 있는 줄 알아? 없어도 되지 않나? 아니야. 틀렸어. 다시 말해. 없어도 되지 않나? 성준수 진짜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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