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성준수가 작아졌다.
성준수 × 진재유
※ 이 연성은 농구누나님(@nongununa)의 연성을 보고 ‘정말로 성준수가 작아진다면?’에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습니다. (URL: https://x.com/nongununa/status/1666065171377451018)
※ 문제 시 삭제합니다.
세상엔 그 어떤 과학적인 원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가령 페루의 나스카 평원의 자상화라던가, 아니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던가. …정확히 말하자면 과학적인 원리보단 학설에 따른 이야기라 말에 연관성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어느 날 성준수가 작아졌다.
진재유가 그 요상하고 해괴망측한 일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학교에서 얼굴만 데면데면 봤던 전영중과 시시덕거리면서 장난도 일삼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건 같은 대학의 같은 과여서 그랬을까. 그날도 한창 다른 동기들과 함께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친분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중에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삼년을 부대끼며 동고동락했던 전우, 성준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와, 재유야. 너 준수랑 연락해? 얘는 왜 나한텐 연락 안 하지?”
그건 니가 더 잘 알지 않겠나. 어깨를 으쓱이면서 전화를 받은 진재유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카톡은 몇 번 해봤지만 그래도 대학을 올라와서 그런지 학교생활을 하다가 연락이 자연스럽게 잦아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등학교 친구의 연락에 진재유는 덥석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준수. 잘 지냈나?
“…재유? 너 방학 했어 안 했어?”
“방학? 내 오늘 시험 끝나서 종강이다. 와?”
“너 안 바쁘면 우리 좀 볼래?”
성준수가 아무리 저를 편하게 여긴다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안부인사도 생략하고 제 종강 여부를 묻는 게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뭐, 저와 준수 사이가 그 정도로 각박한 건 아니었으니 진재유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그래, 어서 볼래?
“…그럼 내 자취방 어때?”
“으잉?”
갑자기? 이렇게? 진재유는 성준수가 이렇게 물어오는 거에 이상함을 느꼈다. 털털하긴 해도 가끔 되게 까탈스런 애가 지 자취방에 부른다고? 이거 보이스피싱 아이가. 그러고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려깔며 되물었다.
“준수, 내 생일이 언제고.”
“뭐? 그건 갑자기 왜?”
“잔말 말고 대답해라.”
“…12월 23일.”
“내가 자주 듣는 노래 장르는?”
“락 자주 들었지? 아마.”
“우리 고등학교 때 니 전에 있던 주장이 누군지 기억하나?”
“박기철? 아니 이거 왜 물어보는데?”
“아, 맞는데?”
혹시 몰라 자신과 관련되거나 농구부 관련해서 질문했는데도 잘 맞춘다. 그럼 틀림 없이 준수라는 건데…. 성준수도 질문의 저의를 알았는지 발끈했다. 아, 보이스피싱 아니라고! 나 진짜 성준수라고! 음, 알따. 믿을게. 그제서야 믿은 진재유가 성준수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와? 니 자취방 내가 덥석 가긴 좀 그렇지 않나.”
“아니, 잔말 말고 와. 아니 와줘.”
“니 다칬나? 병원은?”
“…병원은 못 가.”
겨우 내뱉은 말에 진재유가 놀라며 큰 소리를 냈다.
“니 진짜 다칬나? 다쳤는데 지금 오도가도 못 하는기가?”
“비슷해.”
“119는 불렀나?”
“아니, 아픈 건 아니야.”
“이게 뭔 소리고?”
다친 건 비슷한데 아픈 건 아니래. 꾀병이건가? 하지만 꾀병을 자기한테 부리는 이유가 없지 않나.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더 큰 의문을 자아냈다. 반 년만에 전화하는데 그냥 보자는 것도 아니고 자취방으로 와달라는 데 다친 거나 비슷하면서 그렇다고 119는 안 부른. 이게 뭔 소린데? 더 생각할수록 앞뒤 말이 맞지 않는 탓에 진재유는 정확히 물어보기로 했다.
“성준수, 니 정확하게 말을 해야 내도 알지. 혹시 뭐 협박 받고 그런기가?”
“…그건 아닌데, 나도 지금 이걸 설명하기가 좀 그래.”
“대체 뭔데?”
“나도 안 믿기는데 너라고 믿겠냐? 그냥 와서 봐. 그리고 나서 판단해. 지금 배터리도 없어서 급하니까, 우리 집 주소가….”
뚝─
“와~ 타이밍 봐.”
옆에서 엿듣고 있던 전영중이 킥킥 웃으면서 성준수의 불행에 감탄하고 있었다. 약간 너무 몰아붙였나, 그제서야 불안감이 조금 든 진재유는 전영중에게 물었다. 니 준수네 자취방 주소 아나?
“아니, 나도 모르는데? 준수 원래 그런 거 잘 안 알려주잖아.”
“그건 맞제……. 그래도 가족 중에서는 알지 않을까?”
“아, 나 지수 연락처 있어.”
“그럼 좀만 도와도. 내 빨리 가서 확인 한 번 해봐야 쓰겄다.”
“우리 뒷풀이는?”
손쉽게 성지수의 연락처를 찾으며 전화를 건 전영중이 물었다. 진재유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쉽게 대답했다.
“얼굴만 보고 갈게. 걱정마라.”
***
♪♬♬♪♬~
뚝─
띠롱─!
[재유ㅇㅑ, 왜 안 왓어ㅇ/ 지금 너 업서어 다 ㄷ지고잇ㄷㄱㅗ]
[너 어떳게 나ㄹ ㅂㅓ리ㄹㄹ 수 잇어,,/‘]
[ㅅㅏㄹㄹ려 주ㅓㅓ]
무서울 정도로 오던 전화가 끊기더니 카톡 알림이 연쇄적으로 올라오면서 곡을 하나 만들었다. 진재유는 지금 성준수의 자취방에 있었다. 자취방에는 오로지 둘 뿐. 만나자마자 지난 날의 회포를 풀거나 왜 다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법 했지만 준수의 꼴을 본 진재유는 말을 잃었다. 어색한 정적을 먼저 깬 영중이의 카톡을 빌미로 입을 열었다.
“니 꼴이 이게 뭐고…?”
드물게 마지막 말꼬리에 올라가는 의문형 말투에 성준수는 두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뒤로 넘어졌다.
“나도 몰라 씨발…….”
폭신한 이불 위에 넘어진 그가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한탄했다. 하기사, 이건 뭐…… 119를 못 부르는 게 맞겠제…. 진재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수와 연락을 주고받아 알게 된 주소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 준수네 자취방에서는 준수의 흔적이 남아있긴 했으나 단숨에 준수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사람의 형태를 찾기까지는 꽤 걸렸다는 뜻이었다. 진재유는 성준수의 자취방에서 준수를 찾고 나서야 경악했다.
키 188cm를 자랑하던 성준수가 아니라 18cm의 성준수가 그를 맞이했다. 그 광경을 처음 맞딱트린 진재유는 큰 생각에 빠졌다. 애초에 사람이 줄어들 수가 없지 않나. 물론 코난에서는 줄어드기야 했지만, 그건 어려진 거지 정신도 말짱하고 신체도 엇비슷한데 크기만 작아진 게 현재 과학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제가 이과는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진재유는 침대 근처에 앉아서 누워있는 성준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니 언제부터 이랬노?”
“한… 이틀? 사흘? 잘 기억 안 나.”
“니 진짜 괘않나?”
“아니……. 배고파 뒤질 것 같아….”
그렇게 진재유는 죽어가던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성준수는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이 아니라, 작아진 것을 알아차렸다…….
“아, 대학 글쓰기 교양 때문에 잠깐…, 큼.”
“…그나.”
성준수는 밥을 먹다 말고 이야기하다가 멋쩍게 뒷통수를 갈무리했다. 다 흘린다. 어, 고마워. 간장 종지에 밥 반푼이랑 김치 조각 중 가장 작은 당근 조각과 배춧잎을 작게 잘라 담아준 것만으로도 성준수는 아주 맛있게 밥을 먹었다. 사람이 굶으면 뭐든 맛있다면서 열심히 집어먹은 성준수의 손을 진재유가 물티슈로 닦아주면서 물었다.
“니 진짜로 뭐 짐작 가는 거 없나? 내 사실 그런 거 안 믿는데 저주 같은 거나…, 아니면 뭐 살 받았나?”
“나도 모른다니까? 그냥 …꿈 좀 꾸고 나서 일어나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니 요새도 악몽 꾸나?”
“악몽은 아니고…….”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나 찾아야겠는데. 그렇게 말한 성준수의 말에 진재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제. 이래선 농구도 못 하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종강을 했고 거진 세 달에 가까운 방학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훈련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일단 몸 상태가 이러는데 가능하겠냐고. 잠깐 신경 쓴 원래 계획에 성준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다시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디.”
“몸도 작아졌는데 소로 변하면 좀 어때.”
“말을 못 하네.”
푸념을 담은 간장 종지를 들고 싱크대로 가서 후딱 씻어버린 뒤 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후 잠깐 주변을 살펴봤다. 준수한테는 싱크대가 높긴 하네…. 냉장고도 못 열 것이고. 천천히 몸을 돌려서 집 전체를 가볍게 훑었다. 그러더니 눈에 들어온 자취방의 풍경은 작아진 준수에겐 무척이나 위험하거나 불안한 곳이 많았다. 싱크대도 준수 키에 거의 여섯 배고, 침대 단도 세 배는 기본으로 넘었다. 준수 폰은 침대 옆 작은 서랍형 협탁 위에 있었는데 거긴 붙어 있어서 그런가 자주 넘어 다녔으나 충전기가 아래에 있어 충전을 할 수 없었던 듯 했다. 침대는 이불보를 잡아 끌다시피 등반하여 올랐는지 작게 쥐었다 핀 자국이 즐비했다. 이러니 뭘 주워서 등반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되질 않았다.
이런 열악한 환경… 에서 버티다니. 조금 준수가 존경스러워졌다. 재유는 다시 돌아와서 준수에게 말을 걸었다. 니 그럼 사흘동안 아무도 안 부른기가? 부모님은? 가족에게라도 말했어야 하는 거 아이가?
“걱정하시게 뭘 그래. 그리고 난 좀 꿈인 줄 알았지.”
“꿈 참 오래 꾼다. 니 볼도 안 꼬집어봤나.”
“그건 좀 뒤에 해봤어. 처음에는 시험 보느라 날 새서 정신이 이상해진 줄 알아가지고. 더 잤지.”
“자고 났는데도 똑같았다?”
“어. 그래가지고 잠깐 상황 파악 좀 했다가 그 다음날 되서 너한테 연락한 거야.”
“그라믄 하루는 잠으로 보내고, 하루는 꿈인지 생신지 확인했다가 내한테 전화했다?”
“맞아.”
병원에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거 아이가? 병원 가서 연구 재료 되고 싶지 않다. ······맞나, 고생 마이 했겠네. 맞는 말에 별 다른 반박 없이 수긍하며 약간의 측은지심이 든 재유는 충전기를 바로 옆 콘센트에 꼽고 선을 협탁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또 떨어질세라 책상 위를 뒤적거렸다.
“재유, 뭐해?”
책상 이곳저곳을 헤집다가 물건을 뒤적거리는 소리에 준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뭐 좀 찾으려고. 니 테이프 없나?”
“없는데?”
“하긴…, 우리는 굳이 필요 없지.”
“뭐 하는데?”
“니 충전기 또 떨가서 폰 방전될까봐 그런다.”
사와야 하나. 작게 중얼거린 재유가 이번에는 책상에 있던 전공책 몇 권을 꺼냈다. 책은 이게 다가? 아니, 가방 안에도 좀 있어. 책가방을 뒤지던 재유는 거기서도 책을 꺼내더니 다시 침대 앞으로 와서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뭐해?”
“계단. 좀 위험해보여서. 니 잘못해서 떨지면 다시 올라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좀 편하게 왔다갔다 해야하지 않겠나.”
열심히 책을 일정한 간격을 맞추고 다른 상자로 덧대며 계단을 쌓는 재유의 모습을 보던 준수는 약간 어물쩍거리면서 운을 뗐다. 재유, 있잖아. 나는 네가─
“뭐라고?”
의외의 말을 들은 것처럼 재유는 동그란 눈으로 준수를 다시 돌아보았다.
“아니, 나는…… 네가 있으면 좀 괜찮을 것 같아서.”
“니 불편하지 않겠나?”
“아니야, 안 불편해. 너야말로 괜찮으면 난 다 좋아.”
“그래도 내보단 가족이 더 낫지 않겠나.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아니! 난 네가 좋아!”
빽 소리를 지른 준수가 자기도 당황했는지 잠깐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다가 고개를 한껏 돌리곤 팔짱을 꼈다. 왕삐짐의 단계였다. 원래 준수였으면 화났을낀데, 이리 보니까 그냥 짜증만 내는 것 같다. 속마음을 꾹꾹 숨겨놓고 바라본 재유는 준수가 말을 이어하기를 기다렸다.
“이런 말은 좀 그렇긴 한데, 나 좀 돌봐줘.”
이상한 말을 해놓고 부끄러운지 베짱부리며 이젠 대놓고 해달라고 요구하는 꼴이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게 했다. 가끔 뽈 안 준다고 토라지던 게 생각나기도 하고 괜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한소리했다.
“당당하다, 니.”
“친구 실족사로 죽은 소식 듣고 싶지 않으면 협조 좀 해줘.”
“허, 참.”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기사, 솔직히 크게 위협될만한 게 없는 원룸이지만 지금 준수에겐 그 무엇이든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져서 죽으면 어떡하나. 원래라면 조금 아프고 말지 이건 추락사가 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진재유는 얼른 침대 주변에 이불을 가볍게 말아 주위를 둘러쌓았다. 그게 성준수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성준수의 표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던 것 같았다.
“…너 정말 나 두고 갈거야?”
“뭐라노? 이렇게라도 대비를 해둬야지.”
진재유는 또 다른 게 없을까 하다가 아까 찾다 만 테이프가 생각나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물게 당황한 성준수가 진재유를 불러세웠다.
“어디 가?”
“몸 작아진 거 빼곤 아픈 덴 하나 없나보다. 니 목청 억수로 크네.”
“아, 어디 가냐고. 나 데려가.”
칭얼대며 부르는 준수의 말에 살짝 귀찮아진 재유가 대거리했다.
“니 충전기 붙여둘려고 테이프 사러 간다! 와?”
“아니……, …잘 다녀오라고…….”
“얌전히 있으라. 실족사한 소식 듣고 싶지 않으니까.”
“응…….”
띠로-리↗
“어우, 머스마.”
굳이 괜찮다는데도 앞에까지 와서 배웅하는 준수를 생각하며 재유는 살짝 시름했다. 그래도 준수가 저러는 건 이해가 되었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데서 가족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나뿐이라는데. 실족사는 둘째치고 밥도 챙겨주지 못하면 못 먹는 상태다. 아픈 거 하나 없지만 이 황당한 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 모든 제약이 걸렸으니 답답한 건 준수가 더 답답할 지경일 터였다. 그리 문에 기대서 준수를 생각하다 재유는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어락 소리에 얼른 현관으로 마중나간 준수가 재유가 산 테이프와 함께 가지고 온 캐리어를 보고 환호성을 지른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한 달.
아마도 대략적으로 그만큼 지났던 것 같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재유도 종강을 했으니 본가로 내려왔어야 했지만 준수의 권유로 준수네 자취방에서 함께하기로 했다. 본가에는 준수가 같이 운동하자면서 방학 동안 함께 지내자고 했다고 말해둔 것으로 끝냈다. 부모님의 걱정이 살짝 묻어났지만 오히려 준수가 그 옆에서 이제는 자기 몸만한 재유 휴대폰을 붙잡고 괜찮다고 이야기 하면서 일단락 났다. 그럼 우리 재유 좀 잘 부탁할게~ 네 걱정 마세요. 허락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네네.
자기생존권이 걸린 문제라서 그런가. 고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말도 야무지게 하면서 허락을 받아낸 성준수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방금 코트라도 뛴 것처럼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웃는 게 꼭 삼 점 슛을 넣은 직후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고등학생 때 숙소에서 지냈던 것처럼(인원은 두 명이 되었지만) 옛 추억여행을 하는 듯 했다. 서로의 패턴을 아니 크게 싸우는 것도 없었고, 더 붙어다니게 되었다. 준수가 자던 침대는 재유 차지가 되었다. 사실 재유는 아래에서 자겠다고는 했으나 준수가 ‘니가 아직도 손님같아? 넌 날 돌봐야 하니까 편하게 자야해!’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한 침대에서 둘이서 함께 자기 어려울 것 같아, 처음엔 재유가 자신의 머리 맡에 수건과 손수건을 둥지처럼 말아 두었다. 어쩌다가 잘못 쳐가지고 큰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하루이틀 자고 나더니 촉감이 불편하다면서 자기도 옆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너 숙소에서 살 때도 잠버릇 없었잖아, 그냥 같이 자.”
본인의 염려와는 다르게 재유는 정말 한 번 누우면 그 자세 그대로 잤고, 잠깐 뒤척이더라도 절대 준수가 있는 곳은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건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또 지내다 어느덧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게 익숙해진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좀 지내다보니 준수의 자취방에는 어린이 장난감이 많이 생겼다. 가장 기본적인 수저저분부터 콩순이 목욕세트 등등… 특이한 게 많이 생겼다.
이런 게 생긴 이유를 꼽자면, 처음에는 맨손으로 먹는 준수에게 매번 먹고 닦아줄 수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숟가락 젓가락이 필요할 것 같아 재유가 한땀한땀 칼로 나무젓가락을 깎아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무젓가락이 원래 한 번 쓰고 마는 것이었고 단면도 은근 날카로워서 베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번 사포에 갈자니 그 작은 나무젓가락을 만들다가 제 살을 민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공평하게 손을 다친 둘은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동시에 마주 보고는 바보같이 한참을 웃었다.(아주 좋은 도구로 이쑤시개가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다음날 준수는 재유 남방 주머니에 쏙 들어가서 같이 어린이 코너에서 쇼핑을 했다. 죄다 자기 키의 반절이나 되는 숟가락들만 있어서 그 옆에 있는 미니어쳐 가챠에 포함된 숟가락 젓가락을 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운이 노력으로 해결되는가 싶긴 하지마는, 식기도구를 구하기 위해 한 상자에 만 이천원이나 되는 랜덤 박스를 여섯 개 정도 까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포크랑 수저를 얻고 나서야 그만 두었다.(젓가락을 구하기엔, 더 하다간 파산의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꽤 퀄리티 좋은 미니어쳐깡을 하며 공원 벤치나 카페 테이블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좆도 필요 없는 음식 모형은 항상 포함이었기에 협탁 위는 실속없는 진수성찬이 항상 늘어 있었다.
또 다른 일화로는 한 번 재유가 지나가다가 그 두껍고 하드커버로 쌓인 전공 서적에 발가락을 찧은 후로 준수가 불같이 화를 내며 책을 다 치워버리라고 했다. 니 여기 어떻게 올라오게? 하자 준수는 이참에 근력을 키우겠다면서 단을 세 개만 놓고 파쿠르를 하고 돌아다녔다. 그 좁은 방안에서도 파쿠르가 가능하다는 걸 직접 보고 있자니 웃기면서도 안쓰러워서 결국 어린이용품 코너에서 레고를 구입해서 조금 더 바닥 면적을 덜 잡아먹는 계단을 만들어주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계단 형식을 좀 더 덧붙여서 만드니 크게 품이 들지 않아도 그럴싸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같이 생활하다보니 평생 안주거리가 될 일도 많이 생겼다. 이를 테면 예전에는 숙소에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공태성이나 재유 아니면 제가 잡았었지만 오랜만에 자취방에서 마주한 바퀴벌레는 끔찍하게도 거대했다. 마치 과시라도 하듯 날개를 치켜 세우며 기지개로 위협적인 풍채를 뽐내던 바퀴벌레를 보며, 성준수는 그레고르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다시 생각했다. 아니면 제가 처음 변신의 명대사를 읊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식은 땀이 났지만 물러서기는 더더욱 싫었던 성준수는 미니어쳐에서 뽑았던 와인 병 모형을 거꾸로 잡고 그대로 두 시간을 그레고르와 대치했다. 벌레니 딱히 특수폭행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것은 숨막히는 결전이었다. 그리고 그건 막 돌아온 재유 덕분에 그레고르가 죽음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기나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뿐만 아니라, 콩순이 목욕세트에 들어 있는 욕조만 떼와서 재유가 씻을 때 옆에서 같이 씻는다던가(요즘은 장난감이 좋아서 물도 충전하면 나온다), 아니면 다이소에서 인형을 하나 사서 인형이 입고 있는 옷을 해체해서 대신 입는다던가. 가끔 밖에 나가서 인형 소품집에서 괜찮아 보이는 오…미즈? 오사쯔? 과자이름 아닌가? 암튼 그런 이름을 가진 인형 옷은 꽤 사람이 입을 수 있을 법한 옷이길래 몇 벌 재유를 조종해서 샀다. 기장이 좀 짧고 까슬거리기도 있긴 했으나 그래도 이만한 것도 없었다. ······아무튼 재유가 많은 수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배달음식을 시키면 재유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공생관계 덕분에(대부분 준수가 도움을 받는 편이었지만.) 준수는 그래도 생활의 전반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재유도 나름 심심찮게 꽤 재밌는 일상을 보냈다. 씻는 것과 밥을 빼면은 대충 다 할 수 있었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으나, 진재유에게도 사생활이 있었다. 준수네 집에서 사는 대신 그래도 방값은 내겠다며 알바를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시간을 준수와 함께 있을 순 없었다. 그게 좀 아쉬웠지만 준수는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잘 갔다오라고 매번 배웅을 해주었다. 그래서 재유는 제가 없어도 밥 때는 놓치지 않게 여럿 차려두고 나갔다. 그래도 여름인지라 쉽게 상할 것 같아 중고 장터에서 화장품 냉장고까지 구입해왔다.
성준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굴었지만 그래도 보통 밀폐용기 화장품만 보관하는 터라 화장품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냉장고 안에 간장 종지에 밥이나 반찬을 각각 담아 놓았고 소주잔에는 보리차를 가득 담아 넣어두었다. 냉장고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문은 투명했으나 문고리가 딱히 없었다. 여는 방법은 옆을 잡고 당기는 것 뿐이었는데 좋은 제품을 어떻게 잘 구했는지 작아진 힘으론 열 수 없어서 나무 막대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야만 열 수 있었다.
그날은 재유가 조금 이르게 알바를 갔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얼른 가야한다면서도 꼬박꼬박 밥을 챙겨놓곤 잘 챙겨먹으라면서 후딱 사라졌다. 준수는 그런 재유에게 사랑을 느꼈다. 사랑 뭐 별건가, 친구 간에 있는 것도 사랑이고… 이러니까 꼭 신혼 같고……. …뭔 생각을 다 한다냐. 성준수는 진재유를 짝사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진 삼 년 내내 보던 얼굴을 당분간 보지 않게 되었으니 그 어색함은 이뤄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익숙함 때문이겠지, 싶었다. 학교 생활은 늘 바빴고, 과제 때문에 재유를 생각하는 시간은 빠듯하며 종강할 때 즈음에는 지쳤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재유가 나오는 꿈을. 되게 반가웠다. 보고 싶었다고, 만나고 싶었다고 그렇게 외치며 꿈 속에서 재유에게 달려가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마디가 지나갔다.
가까이 가지 마.
뭐래. 오랜만에 친구 만나는 게 뭐 어때서. 꿈은 현실과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져서 이게 꿈인 줄도 모르고 달려간 성준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재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몰려오는 검은 안개와 함께 재유의 손을 놓치며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번뜩 눈을 뜬 성준수는 눈두덩이를 짓누르며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아, 씹… 무슨 꿈이……. 아직도 성장판이 열려있나, 떨어지는 꿈을 다 꾸고. 보통 꾸는 꿈은 제가 버저비터를 넣는 꿈이 대부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재유가 나왔다는 게 아마 제 심리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제가 아마도 재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꿈에도 나오는 거 아닐까? 보통 보고 싶은 사람이 꿈에 나온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성준수는 제 감정에 대한 진실보다 더 큰 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자고 났을 때 주변의 광경이 사뭇 커진 기분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성준수는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으나 발을 걸쳐 놓았음에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저 아래서부터 느껴지는 높이에 성준수는 다리를 거둬 일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그것이 제 몸에 일어난 이상함을 안 첫 날의 일이었다.
벌써 한 달은 더 된 일을 생각하자니 남은 날이 걱정되었다. 이대로 이렇게 평생 살면 어떡하지. 그럼 농구도 못 하고, 재유한테 고백도 못 하는데. 이런 엄지 신랑이랑 어떻게 같이 사냔 말이다. 물론 제 크기가 엄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준수는 제 밥값은 하고 살고 싶었다. 최근 들어 이런 걱정이 더 쌓여만 갔다. 왜냐하면 방학도 거의 한 달하고도 조금 더 남았고, 한 삼 주 뒤면 수강신청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개강할 시기도 다가오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원래 몸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런 공상과학에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의 성준수에겐 그게 최대의 난관이었다.
“하, 머리 싸매봤자 나오는 답도 없고.”
진척도 없는 문제 해결 방안에 머리에 열이 몰렸다. 혼자 있는데 에어컨 틀기도 뭐해서 푹푹 찌는 여름날 창문도 열어두지도 못하고 선풍기만 달달 쐬고 있었다. 저번에 만난 그레고르처럼 다른 벌레 씨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또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열지 않았다. 성준수는 미니어쳐 컵을 들고 냉장고 문 앞에 섰다. 컵을 한쪽에 잘 놔두고 나무 막대를 들어 냉장고 고무패킹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그리곤 힘껏 밀어 문을 열었다. 물 한 잔 먹자고 이 짓을 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미지근한 물을 먹는 것보단 나았다.
온도 조절이 가능한 냉장고라 덕분에 일반 냉장고와 비슷하게 온도를 설정할 수 있었다. 나무 막대를 내려두곤 옆에 놓았던 컵을 들었다. 시원함이 감도는 냉장고 안이 천국이었다. 이래서 다들 냉장고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일이지만 일단 지금의 저는 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냥 냉장고 안에 조금만 있다 나갈까? 하는 생각과 함께 소주잔에 담긴 물을 가득 퍼 마시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를 게 시원한 물맛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톡.
한창 더운 여름날이여서 창문을 닫아놓았어도 매미 우는 소리가 잘 들렸는데 이상하게 웅웅거리면서 마치 차단벽이라도 닫은 것처럼 소리가 멍멍해졌다. 갑자기 오싹해지는 등골에 오한이 슬라이드를 타며 성준수는 냅다 뒤를 돌았다. 냉장고 문이 닫힌 것이다! 시발, 조금만 있고 싶다고 했지 갇히고 싶다고 한 적은 없다고! 성준수는 있는 힘껏 문을 발로 박찼다. 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접지력이 너무 좋은 거 아니냐고! 성준수는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간장 종지도 던져보고 소주잔도 던져봤지만 너무 낮은 높이에서 던져서 그런건지 절대 깨지지 않았다. 아예 잡아서 냉장고 벽면을 때렸을 때 금이 가고 겨우 부술 수 있었지만 도자기로 만들어진 간장 종지 파편은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튄 파편에 얼굴이 긁히고 그 안에서 괜찮은 파편을 찾으려 뒤적거리다가 손과 발, 그리고 무릎까지 상처를 얻기는 쉬웠다. 하지만 그런 수고에도 냉장고 문에는 그냥 기스만 날 뿐 도저히 뚫리거나 열리지도 않았다.
성준수는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고 안 되니 더 땀을 빼지 않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힘을 너무 뺐어…. 또라이새끼……. 저체온증 걸리기 쉬운 곳에서 땀 빼면 안 되는데……. 급격히 몰려오는 자책감에 성준수는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으면서도 더욱 문쪽으로 몸을 기댔다. 전원 꺼진 냉동창고에서도 사람이 죽어서 나오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자기 최면을 걸어봐도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자신의 현실은 전원 켜진 냉장고였으니까. 이대로 잘못해서 죽으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꼭 생각이 그리로 튀었다. 잠을 자야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잠이 안 온다는 것처럼 성준수는 계속해서 제가 얼어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래서 꿈에서 네가 나온 걸까.
그 생각까지 달하자 더 미칠 것 같았다. 고개를 저어봤지만 여전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생각이 난다는 것을. 성준수는 지금 당장 진재유가 보고 싶었다.
-
띠로-리↗
도어락을 열고 들어온 재유가 문을 열자마자 조용한 집 내부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상하네. 준수 자나? 자고 있다가도 일어나서 인사할 안데……. 드물게 대답 없는 성준수를 생각하며 진재유는 차분히 신발을 벗어 한쪽에 몰아두었다. 오후 여섯 시. 급하게 대타를 맡으면서 오후 알바까지 스트레이트로 달린 재유가 겨우 퇴근하고 돌아왔건만 이상하게 집안이 조용했다. 혹시나 화장실에 있나 싶어서 잠깐 둘러봤지만 화장실에도 없었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나 새가 잡아갔나 싶어 창문도 다시 살펴봤지만 잘 잠겨져 있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디 있을까 싶어 한 바퀴 둘러보아도 전혀 찾을 수 없기에 혼자 나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준수! 내 왔디!”
“진짜로 없나…? 숨어있는기가?”
“장난치지 마래이, 내 이런 장난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여기저기 시선을 옮기면서 찾던 재유의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제가 사다 놓은 화장품 냉장고 안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진재유는 그것이 성준수라는 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진재유는 얼른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문에 기대고 있었는지 밖으로 쓰러진 성준수는 쓰러진 충격에도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진재유가 그를 두 손으로 감쌌다. 찬 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진재유는 그의 이름을 애원하듯 불렀다. 준수, 준수야…. 성준수…! 제발 눈 좀 떠 봐라!!
이럴 때가 아니었다. 체온을 올려야 하는데 병원은 갈 수가 없다. 게다가 심폐소생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잘도 하겠다. 체온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상태여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고, 그렇다고 병원도 못 가고. 진재유는 일단 혼자 돌아가던 선풍기도 껐다. 더 이상 춥게 할 수 없었다. 혼자서 그 추운 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준수를 더 외롭게 할 수 없었다. 준수를 잘 눕혀놓고 주변을 둘러보자 준수가 자주 덮고 자는 손수건이 눈에 띄었다. 얼른 그것을 잡아 싱크대에서 가장 뜨거운 쪽으로 수도를 열었다. 여름이라 물은 이미 미지근했고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운 물은 금세 나왔다. 진재유는 뜨거운지도 모를 정도로 그 손수건을 적시고 잘 짜고 나서 얼른 준수에게 덮어주었다.
얇은 게 여러 개 덮는 게 좋다고 했지. 필수적으로 듣는 응급처치학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공부를 아주 안 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 준수를 살리려고 그랬나 보다. 얼른 여러 손수건을 집어들곤 또 다시 뜨거운 물에 담고, 다시 짜고. 여러 번 반복해서 준수 몸을 잘 감쌌다. 아직 모른다.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직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 니를 혼자두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진짜 미안하다… 제발 좀 정신 좀 차리면 안 되겠나. 진재유가 그렇게 고개를 이불에 처박고 기도했다. 믿지도 않던 온갖 종교를 들먹이며 아무나 제발 도와달라고 빌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제발 어떤 짭신 아니, 귀신이라도 제 소원을 들어줬으면 했다. 준수야… 준수야아……. 그렇게 한참을 부여잡고 성준수의 이름만 나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미약한 신음소리에 진재유는 얼른 준수를 살펴보았다.
“준수야, 성준수. 니 괘않나? 정신이 좀 드나?”
“······유….”
“어, 내다. 진재유. 니 어쩌자고 거기 들어가서… 아니, 니 좀 어떤데, 정신이 좀 드나?”
“…재유…….”
“어, 내 여깄다. 준수야, 준수야. 덥나? 그래도 덮고 있어야 한다. 아, 기다려봐라 니 좋아하는 초콜릿 좀 먹게…….”
“재유…….”
“그래, 계속 내 이름 불러라. 니 여기서 정신 잃으면 안 된다. 내 어디 도망 안 가고 있을테니까 제발…….”
나, 욕심 부려서…… 그러면 안 됐는데…… 미…안. 알 수 없는 말을 거의 쥐죽은 듯이 중얼거리는 성준수의 말을 진재유는 제대로 듣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이윽고 그의 말이 끊어지자 진재유는 의식을 계속해서 깨우려 크게 외쳤다. 뭐가 미안한데! 절규를 담아 외치며 그가 눈을 제대로 뜨길 빌었다. …내가 미안하다, 니를 두고 가면 안 됐는데……. 다시금 눈을 작게 끔뻑거리며 성준수는 진재유의 손을 붙잡았다. 꼭 해야할 말이 있다는 듯이 성준수는 꼬옥 붙잡았다.
“내가… 그동안 말…… 안, 했… 꿈…….”
“그래, 계속 말해라. 니 지금 자면 안 된다.”
“…재유…. 내가, 너…… 좋아해서, 그랬나 봐······.”
재유는 일부러 대꾸하지 않고 오히려 준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뜩이나 작은 소리에다, 준수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준수는 천천히, 아니면 느리게 제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 꿈부터, 한 달을 넘게 함께 산 이야기까지. 그 사이사이에서 진재유 제 이야기가 빠지질 않았다. 진재유는 제 손가락을 붙잡은 성준수의 손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금방이라도 성준수가 다섯 손가락으로 잡은 제 검지를 놓아버릴까봐 두려웠다. 끝까지 잡아만 준다면 뭐든 못할 게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친구라는 틀로 정의하기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 무수히 많은 시간 속에서 함께한 날이 얼마인데. 그 사이의 감정이 거짓이라 할 지라도 분명 지금만큼은 절대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너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진재유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
가슴 철렁하게 만든 그날 이후로 진재유는 알바를 죄다 빼버리고 성준수를 돌보는데 전념했다. 파편 조각으로 다친 곳도 저번에 나무젓가락 만들면서 다쳤을 때 산 의약품으로 응급처치 했다. 병원을 못 가니 병원이 되어야 했던 재유는 성심성의껏 그를 돌봤다. 성준수도 그런 진재유의 마음을 아는지 얼마 안 가서 깨어났다. 세 시간 정도 갇힌 거 치곤 그래도 평소에 운동을 했던 운동인인지라 회복도 빨랐나? 어쨌든 깨어났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싶었다. 저체온증도 저체온증이지만, 그보다도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었던 터라 얼른 창문 열고 더운 열기를 받아내며 간호한 재유는 성준수가 깨어나자마자 울지 않으려고 코를 엄청 먹어댔다. 생사를 오가는 길로에서 다시 살아난 준수는 어쩔 수 없이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를 얻었다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오히려 재유를 위로해주었지만 재유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오히려 더 슬퍼보였기에 그 뒤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화장품 냉장고는 어느 순간 코드가 빠진 채로 현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유가 옮긴 것이다. 성준수는 자긴 괜찮다면서 이거 아니면 자기는 어디서 찬물 먹냐고 빨간 손수건을 찢어 머리에 두르며 농성을 해봤지만 진재유는 꼼짝도 안 하면서 자기가 떠다주겠다고 말했다. 완강한 태도에 성준수는 그대로 K.O.했다. 과보호하는 재유의 반응이 너무 생소한지라 오히려 더 당황한 준수는 결국 힘으로 이길 수 없어 재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또 지나갔다…….
휴학은 아직도 결정하지 못 해서 일단 수강신청을 하긴 했다. 물론 이것도 재유가 도와줬다. 다행히도 둘의 수강신청 날짜가 달라서 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꿀교양을 하나 버리게 됐다…. 그래도 수강신청을 해준 게 어딘가, 준수는 그 이후로도 돌아오지 않을 제 몸을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개강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 학기 중 휴학 신청서를 내자고 결심하면서도 마음 한 편은 그리 편치는 않았다. 걱정은 성준수뿐만이 아니었다. 진재유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달이 바뀌고 요일이 바뀌었다. 개강하는 9월이 가까워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것이 바뀌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건은 사건대로 넘어가면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루는 알바를 더는 쉴 수 없었던 지라 재유가 진지하게 준수한테 물었다.
“우리 웹캠 설치하자.”
“…진짜 이러기야?”
성준수는 감시 당하는 것 같다면서 두 팔로 크게 X자를 보였지만 진재유는 건성으로 넘겨 들었다. 저번 화장품 냉장고처럼 어디선가 뚝딱 구해왔더니 그걸 본 성준수는 짜증을 내며 침대 밑으로 숨어버렸다.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성준수의 반응에 진재유는 잠깐 아쉬움과 그렇게 싫었나, 하면서 반성하고 있자 얼마 안 가서 성준수가 침대 밑에서 다시 뛰쳐나왔다. 뭔가 싶어 아래를 보자 집거미 한 마리가 돌진하듯 튀어나왔다.
“그래도 집거미라 다행이네.”
“…바퀴는 좀 힘들었나.”
“어, 니가 니 몸 반만한 그레고르를 한 번 봐야해.”
“애착이 있었나 보네. 이름까지 지어주고.”
이상한 태클에 더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듯 돌아서는 성준수 때문에 결국 둘은 서로 협상하여 위험해 보이는 곳에만 설치하기로 했다. 협상한 내용을 토대로 냉장고를 설치하고 그 앞에 웹캠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성준수는 다시 냉장고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투쟁의 결과였다. 그 후로는 딱히 갇힌 적이 없어서 웹캠도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성준수는 냉장고를 열 때마다 은근히 긴장하게 되었다. 혀 끝엔 늘 긴장과 씁쓸함이 맴도는 것 같았다.
그래도 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둘은 이전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많은 걸 공유한 사이가 되었고 많은 걸 보여준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관계를 이렇다고 확실하게 정의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둘은 어떠한 선을 넘었다는 걸 알면서도 구태여 그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가라앉기를 선택한 것처럼 그들은 하루 종일을 붙어있으면서도 그것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같이 영화를 보았다. 성준수의 저주 비스무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말에는 비슷한 컨텐츠들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항상 과제를 할 때 쓰던 노트북이 성준수에게는 대형 스크린만 했고, 진재유는 그런 성준수에게 맞추다시피 하여 소리 볼륨도 적당히 줄였다. 오늘 고른 영화는 ‘공주와 개구리’였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구시대적인 중세 배경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기했다. 흔하게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어린이용 영화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악역도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성준수는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악역들의 헛짓거리를 궁시렁대면서도 곧잘 보았다.
“저렇게 풀로 드레스 입은 거 보니까 니가 내 옷 사온 거 생각나네.”
“아, 내가 열심히 고심해서 사왔는데도 니가 엄청 지랄했잖나.”
“야,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바지 하나 없는 게 말이 돼?”
“아니 없는 걸 내가 어쩔까, 큽, 크흠……, 낸 웃겼는데?”
진재유가 얄밉게 웃음소리를 줄이면서 귀에 입이 걸리도록 입가를 올렸다. 그런 진재유가 아주 못마땅한 성준수는 계속 궁시렁댔다.
“그렇겠지! 갑자기 날 불러가지곤, ‘준수…. 미안타…… 옷이… 치마밖에 없다이가.’ 하는데 내가 환장해, 안 해?”
“언제 이런 거 입어보노, 니도 좋은 경험 했다 치라.”
“어이가 없네, 진재유? 너도 한 번 입어 봐!”
“낸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악! 짜증나!”
악을 쓰며 땡깡을 부리는 성준수의 태도에 진재유는 진정하라면서 편의점에서 산 팝콘을 한 개 쥐어주었다. 팝콘을 양손으로 쥐어 뜯어버린 성준수가 한 입 베어물자 진재유가 화 좀 풀라며 자기도 고생하지 않았냐며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내가 다 수선해주지 않았나.”
“분명 긴 치마도 반바지가 되어버리는 마법을 부렸지.”
“아, 그래도 요즘은 잘 하지 않나? 니 그거 괘안체?”
성준수는 지금 부들부들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조금 두꺼워서 여름에 맞지 않는 옷감이지만 인형 옷을 벗겨서 열심히 수선한 재유의 작품이었다. 성준수에겐 바늘은 검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때문에 결국 수선도 재유의 몫이었다. 바느질은 익숙치 않아서 여러 번 바늘에 찔려 피도 났지만 그래도 수 많은 재유의 노력 덕분에 성준수는 나름 까슬거리지도 않고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흥……. 잠깐 소매에 눈길을 주다가 할 말이 없어졌는지 성준수는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진재유도 다시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어린이 영화답게 영화의 끝은 저주에 걸려 개구리가 된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고, 맹세의 키스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경쾌한 클래식한 OST를 배경으로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며 성준수는 대뜸 말을 꺼냈다.
“있잖아, 나는…. 요즘은 그냥…….”
“…….”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 수 없는 말을 한 성준수를 돌아보며 진재유는 계속해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지금,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실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번에 내가 꿈 이야기 한 번 해준 적 있잖아. 내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
“그래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고. 그냥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성준수는 그동안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말을 화두에 올렸다.
“사실 모든 걸 너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거든. 당연하잖아. 나는 멀쩡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아.”
“…….”
“세상에서 나만 멍청이가 된 것 같잖아…….”
누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멍청이. 그게 자신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싫었던 거다. 부정했던 것이고, 받아들이기 싫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농구도 못 할 거고,”
꿈도 포기해야 하며,
“…널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제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난 나이기 이전에, 이런 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봐.”
언젠가 돌아오겠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겠지. 그렇게 지내다보면 원래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를 잃지 않겠지. 오히려 다시 나를 탐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나는 그냥, 말하고 싶었어.”
“…….”
“그렇잖아, 알면서도 말 안 한 거.”
“…그제.”
성준수가 팔을 뻗었다. 그러자 진재유가 두 손바닥을 뻗었다. 성준수는 그 손 위에 올라타곤 진재유의 손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손을 뻗었다. 그 턱에 작게 온기가 퍼진다.
“재유야, 사랑해.”
“…….”
“이런 나지만, 사랑해줄 수 있겠니.”
계단이 없으면 침대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밥도 혼자서 차려 먹을 수도 없고, 벌레랑은 투혼을 벌어야 하며, 오히려 더 걱정시키면서 네가 없으면 안 되는 날. 그런 날 사랑해줄 수 있겠니.
준수는 제 손에 닿은 물방울을 슬쩍 소매로 훔쳤다.
“왜 울고 그래.”
“…….”
“울지마, 재유야.”
소리 없이 눈물 방울만 또르륵 굴려대는 재유를 보며 준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 정말 멋없는 고백이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는데… 이해 좀 해줘. 네가 날 가장 잘 알잖아.”
“…….”
“아, 내가 내려와야 네가 세수라도 좀 하겠다. 나 내려줘. 빨리.”
준수는 몸을 돌려 노트북을 가리켰다. 저쪽에 내려줘. 그것까지만 부탁하자. 응?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재유를 달래려 한 준수의 옆 얼굴에 가볍게 무언가 닿았다가 떼며 마찰소리가 났다. 옆 얼굴에 사랑을 한가득 받은 준수는 손으로 제 뺨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채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다. 하지만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다.
“…누가 거절한다고?”
“…진재유?”
펑─!
이질적인 폭발음에 깜짝 놀란 진재유 앞에 흐뿌연한 연기가 잠깐 배회했다 사라졌다. 원래의 제 크기로 돌아온 성준수가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성준수도 놀라며 잠깐 넋을 잃은 듯 보였으나 이내 손으로 여러 차례 제 몸을 더듬으며 확인했다. 재유, 나 지금 어떻게 보여?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아니,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비록 제가 수선해준 옷이 갈기갈기 찢겨져 맨 몸이긴 해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재유! 이거 봐, 나 진짜 원래대로 돌아……!”
성준수의 목에 팔이 휘감기며 그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깊게 들어오는 이의 입술의 받아내면서 그의 작은 머리를 받쳤다. 두 손으로 그의 양 볼을 감싸안으면 그도 똑같이 감싸온다. 그의 숨결을 받아내면서 그간의 모든 사랑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그제서야 이 빌어먹을 저주 아니, 이 요상한 마법이 걸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작은 나는 너의 사랑을 다 받아낼 수 없었나 보다.
- ..+ 6
댓글 2
행복한 청설모
사랑스러운 글 잘 봤습니다...🥹🥹👍👍👍 가지말라고 재유 붙잡는 준수가 너무 귀여워요... 마지막은 해피엔딩... 최고에요 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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