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2차 창작

[재승] 파트너를 찾아서 03

가비지타임 재유승대 / 농없세

...이거 설마 꿈은 아니겠지? 볼이라도 꼬집어볼까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허리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생전 처음 겪어본 통증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현실이 맞다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게 꿈인지 생신지 되뇌는 건, 임승대가 지금 좀 현실감각이 없어서다. 고작 반나절 동안 그가 겪은 일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성 없는데 반해, 지금 그가 침대에 누워서 보고 있는 천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외출했다 들어와서 누워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꿈에서 깨어난 건지 분간이 잘 가질 않았다. 근데, 시발.... 똑바로 누우니까 엉덩이 졸라 아프네....

끙끙거리며 몸을 옆으로 굴리더니 베개를 끌어안으며 침대에 납작 엎드리고 나서야 임승대는 몸부림을 멈췄다. 아마도 그게, 통증을 최대한 줄여주는 가장 편안한 자세인 듯싶었다. 근데 원래 이런 건가? 처음이라 그런 거면 다행인데, 할 때마다 이렇게 아프면 앞으로 어떡하냐.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앞으로.... 앞으로 라니.... 어제 처음 만난 놈이랑 고작 한 번 잤을 뿐인데, 벌써 다음에 또 만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내가? 그 체크 남방 입고 나온 찐따랑?

순간, 눈앞에 체크남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단정하게 넘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동그란 눈, 그 밑에 자리한 주근깨 위로 담뱃불이 일렁이며 생긴 그림자가 지던 얼굴이. 임승대는 곧장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진짜 미쳤구나 싶었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사람인데...? 심지어 첫인상은 별로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랑 보낸 잠자리도 별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지금 좀 말하기 민망한 부위가 아프기는 한데, 막상 할 때는 좋기는 또 엄청나게 좋았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다리가 배배 꼬일 정도로.

임승대는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더니 긴 팔을 쭉 뻗어서 침대 끝자락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분주히 오가더니 바뀐 화면 앞에서 멈췄다. 지금으로부터 6시간 전에, 체크남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던 채팅창이었다. 임승대는 마지막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저 내렸어요. 5분 뒤 도착입니다.]

체크남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며 보내온 메시지였는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러니까, 이게 무려 6시간 전에 받은 마지막 대화라는 게 문제인 거다. 이 사람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면 여기서 대화를 더 끌어내야 한다. 저쪽에서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이니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해봐도 반짝이는 커서 앞으로 글자들이 나타났다 지워졌다만 반복할 뿐, 전송 버튼 한 번 누르지 못 했다. 임승대는 이런 기본적인 대화조차 이어가지 못 하는 자신이 진심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변명을 하자면, 이건 임승대의 계획엔 결코 없었던 일이다. 애초에 이런 데이팅 앱 따위로 만난 사람하고 진지하게 만날 거라곤 요만큼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하루 즐기고 땡칠 생각이었으니, 이후에 대화라고 해봤자 쿨하게 바이-하고 채팅방 나갈 줄 알았지. 어떻게든 애프터 기회 한 번 잡아 보겠다고 이리 전전긍긍하고 있을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 말을 거는 거니까.... 잘 들어갔냐고 물어보는 게 자연스럽나? 근데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는데.... 너무 늦은 거 아니야? 괜히 나 땜에 자다 깨면 기분 나쁠 수도..... 아! 집에 오는 길에 연락 좀 미리 할 걸! 택시 타자마자 보냈으면 시간도 늦지 않고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역시 내일 아침에 보내야..... 악! 깜짝이야!!

순간 화면이 번쩍하면서, 잠겨있던 화면 위로 새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자 임승대는 말 그대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휴대전화는 그대로 손에서 날아가 뒤집어진 채로 매트리스에 순식간에 처박혔다. 침대 한가운데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엎어진 휴대전화와 매트리스 사이로 또 한 번 불빛이 번쩍였다. 그게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란 걸 깨닫자마자 임승대는 번개같이 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채팅창을 열었다.

[잘 들어갔어요? 저도 이제 들어와서 연락 남겨요.]

[너무 늦었네요. 자고 있을 텐데.... 일어나서 보면 답장 주세요.]

내용을 다 확인한 임승대는 바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잡았다. 곧 손가락들이 분주히 자판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꼼짝 없이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초짜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저도 잘 들어왔어요.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전송 버튼을 누르는데 손끝이 덜덜 떨렸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해야 하지? 답장 기다려야 하나? 그새 잠들었으면 어떡하지?

[아직 안 주무셨네요. 오늘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걱정이 무색하게, 기다리던 답장은 빠르게 날아왔다. 순식간에 임승대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는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 하며, 다시 뒤로 발라당 누웠다. 그리고 휴대폰을 붙잡고 헤실헤실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한 번 물꼬를 트자, 대화는 막힘 없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의 나이가 동갑임을 알게 되었다. 임승대가 먼저 서로 말을 놓자고 했고, 체크남도 알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대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말을 놓지 못 했다. 하지만 동갑인 걸 알게 된 이상 전보다 훨씬 대하기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임승대는 또 궁금한 건 못 참아서, 이 기회에 다 알아내겠단 기세로 질문을 쏟아냈다. 그 결과, 체크남의 닉네임 중 '넘버 4'가 학창 시절 부활동으로 농구를 했을 때 등번호에서 유래했단 사실과 그가 김해에서 나고 자랐으며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단 사실도 알아냈다. 전자는 전혀 몰랐지만 후자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초면에 서로 예의를 차리며 말하느라 말투나 단어에서 사투리가 나오진 않았으나 억양에서 이미 티가 났다. 사실 체크남이 첫 마디를 떼자마자 임승대는 그가 경남권 출신일 거라고 속으로 판단을 마쳤을 정도였다. 돌이켜 보면, 그는 딱히 자신의 출신지를 숨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자신이 경상도 출신임을 가능하면 숨기고 싶어하는 임승대와는 반대로.

[사실 저도 경상도 출신이에요.]

동향 사람이라고 일부러 티를 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물론 이게 빠르게 벽을 허무는 좋은 수단인 건 맞고, 이용할 마음이 없다고도 말할 순 없지만. 평소 임승대가 대학에서 마주친 경상도 출신 지인들에게도 밝히길 꺼려했던 걸 생각하면, 이건 확실히 '임승대 답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선가? 왜 말했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와 진짜? 전혀 모르겠던데.... 완전 서울 사람 다 되셨네요.]

딱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임승대는 참지 못 하고 소리 내 웃었다. 눈은 계속 메시지창에 고정한 채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 이 사람을 놀래켜 주고 싶었구나, 하고. 장난이 치고 싶었던 거지. 무슨 초등학생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던 대화는 다음 만남을 잡고 나서야 끝이 났다. 어느새 창가에 햇빛이 들고 있었다. 임승대는 가만히 앉아서 두 눈만 깜빡였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이랑 같이 밤을 보내놓고, 또 그 사람이랑 날이 밝도록 채팅을 했다고? 이건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하루 만에 천지가 개벽할 수도 있는 건가. 근데 왜 이렇게 실실 웃음이 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배터리가 부족해서 빨간 불이 들어온 휴대전화를 대충 던져놓고, 임승대는 편하게 누웠다. 여태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웠으니 조금이라도 자야 할 것 같은데 잠이 올 리가 없다. 흰 천장에 자꾸만 아까 나눴던 대화창들이 둥둥 떠다녔다.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다시 말을 걸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와 끝까지 말을 놓지 못 했단 사실이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다. 나이 차이가 난다면 모를까, 동갑인 걸 안 이상 말을 놓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 임승대의 평소 성격상 백프로 먼저 말을 놓고도 남았다. 근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만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온라인 채팅을 대화를 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 그럴 지도 모른다. 몇 번 더 얼굴 보고 좀 더 얘기해 보면 자연스럽게 말도 놓고.... 편하게 부를 수도 있....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임승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을 놓기가 어려웠던 너무나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젠장, 생각해보니 이름을 모르잖아?!


두 번째 만남도 첫 번째와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게 귀찮기도 하고, 여기가 딱 둘이 사는 곳의 가운데 즈음이기도 했다. 게다가 번화가라 교통도 편하고 먹고 마실 데도 많고, 밤늦게 택시도 잘 잡히고.... 뭐 그렇다.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오르자 찬 공기가 확 느껴졌다. 임승대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구겨 넣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갔을 뿐인데 겨울이 가까워지긴 한 건지 기온이 훅 떨어진 모양이다.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걔는 이름이 뭘까?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내 이 생각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미친 듯이 궁금했다. 그렇게 동그랗고, 주근깨 투성이에 수더분하게 생긴 애는 대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김해 출신에 부산에서 학교를 나오고 사투리를 숨길 생각도 없고, 키는 180 센치도 안 되면서 농구는 쫌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등 번호가 4번이었던 사람의 이름은 뭘까.

물어보려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채팅을 하루에 한 두 번 정도는 했었으니까. 근데 이게 뭐라고 입이, 아니 손이 떨어지질 않더라. '이름이 뭐예요?'라고 딱 6글자만 쓰면 되는데 그게 안 됐다. 무슨 사춘기 남자애처럼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맞는데, 그것보단 좀 조심스러워서 피한 것도 맞았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만난 사이인데, 다른 건 다 밝히더라도 이름 세 글자는 너무 중요한 개인정보가 아닌가. 그걸 묻는다는 거 자체가 실례일 수도 있는 거고. 게다가 그들은 아직 서로 점수를 쌓아가고 있는 단계다. 이런 사소한 궁금증 하나 못 참아서 갑자기 훅 점수가 깎일 수도 있는 거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직접 듣고 싶기도 했다. 화면 속 글자로 알게 되는 건 너무 정이 없으니까. 생일초 대신 담뱃불을 내밀던 그 입에서 말해줬으면, 익숙한 억양에 다정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덧 횡단보도 앞이다. 이제 여기만 건너면 약속 장소라서 임승대는 원래도 긴 목을 더 쭉 빼고 건너편을 보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동그란 머리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오는 내내 생각했던 얼굴이었다. 임승대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도로 내려갔다.

시발. 옷장에 체크 남방 밖에 없나?!

저 칙칙한 색깔에 가로세로로 죽죽 그어진 줄무늬를 보고 있자니 임승대의 마음에도 검은 줄이 좍좍 그어지는 것만 같았다. 여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저 성의 없는 옷차림 때문에 죄다 와장창 무너져버렸다고! 아니, 보통은 관심 있으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나? 두 번 연속 체크 남방은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설마... 저 새끼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닉값 제대로 해버린 체크남의 차림새에 넋이 나간 나머지 임승대는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미 남들보다 머리 두 개는 높이 솟아있는 데다 움직이는 무리 속에서 홀로 서 있는 그는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그건 건너편에서 그를 기다리던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체크남은 멀리서 임승대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문제의 체크 남방을 펄럭이며 한 손을 위로 높이 흔들며 소리쳤다.

"윤대협씨!!"

그 순간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임승대는 생각했다. 차라리 지금 당장 누가 자길 한 대 쳐서 기절했으면 좋겠다고.


임승대. 22살. 키 204cm. 아래 절반은 투블럭에 나머지 위쪽은 왁스로 세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음.

...그리고 오늘 윤대협이라 불려서 본의 아니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삼.

임승대는 오늘 체크남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 달리기를 꽤나 잘한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시작 된 두 남자의 갑작스런 추격전은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골목에서 임승대가 체크남에게 붙잡히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자마자 일단 뛰어서 붙잡기는 했으나 애초에 횡단보도 하나 만큼 거리가 벌어진 채로 시작한 탓에 체크남도 지금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러면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올려다보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임승대는 아까 당했던 망신이 다시 떠올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임승대가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진짜 이름이 윤대협일 리가 없잖아요!!!"

"...그럼 윤대협씨가 아니에요?"

정적이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문이 막힌 탓이다. 특히 임승대는 지금 말문만 막힌 게 아니라 아주 기가 막혔다. 인마가 지금 장난하나 싶은데 저 순진무구한 동그란 눈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억울한 마음에 당장에 제 가슴을 퍽퍽 치고 싶었으나 애꿎은 주먹만 꽉 쥐고 소리쳤다.

"당연히 아니죠!!! 누가 그런 어플에 본명을 적어요!!!!"

"아니, 그래서 설마 하긴 했는데.... 그게 아니면 굳이 유명인도 아니고 모르는 이름을 넣을 것 같지 않아가...."

"...뭐야? 체크씨 슬램덩크 안 봤어요?? 아니, 당신 농구도 잘한다면서????"

"슬램덩크요? 안 봤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한 마디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진짜로 몰라서 그런 실수를 저지른 체크남은 말할 것도 없고, 임승대도 당연히 할 말은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슬램덩크 안 본 남자? 이거 흔치 않다. 심지어 슬램덩크는 안 봤어도 '윤대협' 정도는 알지 않나? 그러니까 이건 임승대 기준에서 봤을 때 충분히 상식 안에 드는 범주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몰랐다는데, 고의가 아니라는데....

체크남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뭔가 떠오른 듯 '아!' 하는 감탄사를 뱉었다. 그리고 민망한 듯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했다.

"윤대협이 거기 나오는 갑네요. 어쩐지....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캤는데....."

진짜 환장하겠네.....

너무 꼬여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아 임승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을 건넨다.

"그럼 진짜 이름이 뭐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임승대는 다시 또 억울해졌다. 이건 아까와는 다른 억울함이었다. 지금 이 남자가 한 말은 요 며칠 내내 임승대가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 한 말이었다.

"...남의 이름 묻기 전에 본인 이름부터 먼저 밝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네요."

본심과 다르게 툴툴대며 나간 말에도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응했다. 그러더니 허리를 쭉 펴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래봤자 임승대의 가슴께 밖에 안 오는데도, 그 꼿꼿함에 괜히 자신이 움츠러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 임승대에게 남자는 오른손을 악수하듯 내밀며 웃어보였다.

"반갑습니다. 진재유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다. 익숙한 억양에 다정한 목소리로. 그건 정말이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듣기 좋은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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