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든 평일이든 병찬은 종수를 알고 지낸 이래 마음 놓고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밤잠도 설쳐서 멍한 얼굴로 종수는 물컵을 들고 부엌에 서 있다. 가만히 있으려니 불안한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잘 모르는 눈치다. 종수는 병찬이 소파에 앉아 있는 거실을 서성이다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쏙 들어간다. 뭘 하러 가는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비시즌이지만 지난
종뱅절 축하 (2024.6.5) 외동이라면 으레 거쳐 가는 생각을 병찬도 어려서 거쳤다.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쌍둥이라면 특히 좋을 것 같았다. 반쪽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람. 아무 설명 없어도 통할 만큼 닮은 사람. 그런데 병찬이 무조건 형이어야 했다. 그 점은 타협 불가였다. 동생이 될 바에는 외동인 게 나았다. 조금이라도 윗사람은
아이는 병찬이 자주 기묘한 꿈을 꾸게 했다. 어느 밤에 병찬은 벽에 늘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것과 춤을 추고 싶어졌다. 어설픈 발레나 왈츠나, 뭐든지 괜찮았다. 춤을 청하려 손을 들어올리자 그림자도 병찬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자의 성질이 어째선지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주었다. 손을 높이 뻗으면 그림자는 덩달
1 (2024.6.15)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준향대 캠퍼스 한복판에 자리잡은 아름동산을 오른 게 병찬의 첫 번째 패착이다. 아름동산으로 말하자면 모든 학교 구성원의 애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교정을 가로질러 걷는 데 이십 분을 추가하는 원흉이자 캠퍼스 개발 계획의 가장 큰 장애물이므로 준향대 커뮤니티에는 ‘학교는 아름동산 안 밀고 어디다 헛돈 쓰냐’
*좌우는 마음대로 읽으셔도 됩니다. *주의: 종수가 죽고 싶어합니다. 쉬울 줄 알고 온 건 결단코 아니었다. 미국에서라고 허투루 하지는 않았다. NCAA 디비전 I에 진출했다고 해서 얼토당토않은 승리감에 젖은 적은 없었다. 종수는 이제야 또다시 출발선에 섰을 뿐이었다. 누가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종수는 대학 합격 통보 이메일을
Drink From Me (2024.2.22) 어떤 사건이든 오직 겪어본 사람들만이 환상을 갖지 않을 수 있다. 뭐든지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르는 일도, 추락하는 일도. 부상도. 휴식도. 입원도. 배신도. 연애도. 신비의 꺼풀을 벗기는 방법은 체험밖에 없다. 코트에서 들것에 실려나가는 선수의 머리꼭지를 관중은 애달프게 기억하곤 한다. 그에게 찾아왔을 쓰라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종수는 가만히 있었다. 나머지가 난장판으로 뒤섞였을 뿐이다. 숙소를 이탈했던 무리가 돌아와 몇 조각 남은 치킨을 허겁지겁 해치우는 동안 정희철, 김희찬이던가, 그런 이름의 지상고 애가 심심하다면서 시간 때우기용 토크를 제안한 게 시초였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진지하게 흘러가는 바람에 분위기가 간지러워졌다.
누가 후일담 물었는데 간단한 후일담만 올리긴 그러니 짜두긴 했지만 굳이 말 할 필요 없어서 + 능력 부족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자잘한 설정들도 함께 주절거려봅니다. 기상호는 진짜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에 딱히 특이점이 없습니다. 다만 센터에 입소했을 시 가족들 말고는 말을 하지 않아 다들 어디 유학이라도 다녀온 줄 알았다고 하네요. 그마저도 엄청 친한 친구들
"아이고, 종수야. 너 또 나 엿먹어보라고 작정했지?" "뭐래. 잘도 하면서." 공중에 떠있던 종수라고 불린 남성이, 그 옆의 밝은 색의 옷을 입은 남성의 옆으로 내려선다. 그들 앞에는 잔해만 남은 괴물의 찌꺼기들이 널려져있었다. 그 둘은 익숙한 듯 그것들에게서 눈을 억지로 피하는 낌새 없이 서로에게 눈길을 주었다. 둘 다 안색이 창백했고, 상태가 좋아보
"헤어질까." 삼 주 전부터 잡은 약속.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와중에 자율 훈련까지 외면하고서야 겨우 만들어낸 자유시간이었다. 최종수도 그랬고 박병찬도 그랬다.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둘이 그랬으니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는 주변 사람도 어림짐작이 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최종수는 박병찬을 마주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마 말한 당사자가 박병찬
고등학교 때의 만남 이후 박병찬과 최종수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프로 구단이었다. 최종수는 1라운드 1픽을 받았고 무릎 부상 때문에 미묘한 취급을 받던 박병찬은 그래도 1라운드 순서였는데 한 구단이 최종수와 박병찬을 모두 선택한 것이다. 그 덕에 박병찬과 최종수는 아주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었다. 박병찬은, 솔직히 최종수와 사이좋게 지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