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찬양은 운명이니 인연이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염세적인 인간이라면 비약이라 받아칠 수 있겠으나, 그래서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더라 하는 말은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막 걸음마를 떼었을 무렵부터 지금껏 그를 따라다니는 평가 중 하나였다. 콕 집어 애늙은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래에 비해 차분하다, 남자애치고 얌전하다, 조숙하다
그 길로 교문을 나섰다. 농구부의 대부분은 체육관에 있었기 때문에 종수의 뒤로는 더 인사할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졸업식에서 2학년이 해야 할 일은 별것이 없었다. 졸업생과 사진 찍기, 축하한다고 인사 건네기…. 강물에 뜬 나뭇잎이라도 되는 양 유유히 흘러가던 사고가 정지한다. 얼빠진 탄식이 샜다.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1. 찬 바람이 뺨을 쓸고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이불 끄트머리를 더듬어 쥔다. 얇은 잠옷을 파고드는 한기에 진저리가 쳐졌다. 겨드랑이 아래 깔려있던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자 이불 밖으로 발목이 드러났다. 식어가는 발끝을 꿈지럭거리다 무릎을 접는다. 착화 신장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뚱이가 어찌어찌 이불 아래 수납된다. 감은 눈꺼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