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덕타임

기상호가출사건

병찬상호

by 레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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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은 생선이 그렇게 기름이 잘 튀는 음식인지 미처 몰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얼굴에 튄 기름을 닦다 자신이 방금전까지 청양고추를 실컷 썰고 있단 걸 뒤늦에 알아차렸고 그때는 이미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여름이었다.

박병찬은 한참이나 눈물을 닦았고 휴지로 눈물샘을 거의 틀어막듯이 굴어도 여전히 눈이 아렸다. 그러다가 정말 터무니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 기상호였다.

박병찬과 기상호는 퍽이나 죽이 잘 맞아서 대학에 가고도 꾸준히 연락했는데 아마 그게 아니었어도 같은 대학에 다니던 성준수덕에 알게 모르게 자주 재잘거렸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차차하고 기상호를 떠올린 결정적인 이유는 청양고추 때문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박병찬이 중간고사에 씨름할 때 기상호도 입시때문에 속이 꽤나 썩었을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한다더니 기상호는 잘도 제 1학년때를 기억했다. 처음에는 성준수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었나 본데 그는 제 친동생 투정도 잘 못 받아줬다. 그래서 애저녁에 기상호가 뭐라 할라치면 성준수는 자연스럽게 박병찬에게 기상호를 떠넘기는 것이었다.

“상호야, 너도 그렇게 에임 좋은 편 아니었잖아.”

“아니 햄…그것도 맞는 말인데…”

박병찬은 꿀강의라고 주워넣은 성과 사랑의 영원의 피피티자료를 보며 웃었다. 꼴에 주장이 됐다고 한탄하는 모습에서 박병찬은 시간의 흐름도 느꼈고 어디 애벌레가 번데기앞에서 주름잡냐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제 고등학교때가 떠오르기도 했고. 초원이도 많이 힘들었겠다. ㅎ. 박병찬은 그래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심심하면 우리학교 한번 놀러와. 형이 구경시켜줄게.”

자신도 입시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어느정도 힘이 되주고자 한 것이다. 적어도 자신은 대학생이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갈 때 다르다고 박병찬은 그정도 여유는 부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기상호는 대강 알겠다고 대답했고 박병찬은 그 빈말 아닌 빈말따위 금방 까먹었다. 저도 연습이니 뭐니 바빴으니까.

기상호가 눈이 벌겋게 부어서 제 앞에 나타날 때까지는.

“상호야?”

박병찬은 준향대 정문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과장 좀 보태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너가 왜 여깄어? 그런 진부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기상호의 얼굴이 가관이었으므로. 무슨 일 있었냐고 묻기 보다는 박병찬은 기상호를 재빨리 자취방으로 옮기는게 급했다. 파란색 저지를 입고 눈가가 시뻘건 남자는 알게 모르게 주의를 끄니까. 기상호는 말없이 박병찬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박병찬은 분위기를 풀 요량으로 몇번 말을 붙였지만 기상호는 대꾸없이 뚱했다. 애같다, 박병찬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기상호는 애가 맞으니까.

자취방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나서야 기상호는 반응을 좀 했는데 제가 준 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서는 또 울었다. 정확히는 울분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상호야, 여기 벽이 얇은데…. 박병찬은 말려지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기상호의 한탄을 들어줬다. 걔들이요 뒤에서 저보고… 요는 그랬다. 농구부 1학년들이 지지리 말을 안들었고 심지어는 주장인 저를 그렇게 욕하더라 하는. 자신이 지적했던 걸 전부 무시하고 있다며 소리지를 때 박병찬은 퉁퉁 분 눈때문에 웃는 걸 참아야 했다. 너 절대로 이런 얼굴 누구한테 보이지 마. 박병찬은 속으로만 웃었다. 성년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 어린애같은지 이쯤되면 기상호도 대단했다.

전화로, 메신저로 연락할 때는 그렇게 철 든 것 같더니. 아니다. 그때도 비슷한 것 같아. 박병찬은 한참 울어서 코 푸는 소리와 꼬르륵 소리를 동시에 내는 고등학생을 위해 냄비에 물을 받았다.

“라면 괜찮지, 상호야?”

“…예. 큼, 흠.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뭘, 너 혼자 떠들었는데.”

기상호는 금방 제 근처로 돌아와서 뭐 묻은 개처럼 도와줄 것 없냐 기웃거렸다. 상호야, 내 자취방 개 좁으니까 그냥 앉아있어. 네…. 라면은 맛있게 됐다. 피시방에서 알바하던 동기가 나눠준 팁을 박병찬이 요긴하게 써먹은 덕이었다. 둘이서 10봉지를 비우고 나니까 나른함이 몰려왔다. 기상호는 울었던 탓에 더 그래보였다. 눈은 이제 앞이 보일까 싶을정도로 부었고 누워있는 자세를 봐서는 배도 꽤 불렀나 싶다. 박병찬은 그때까지도 기상호를 제 자취방에 재울 생각이었으므로 기꺼이 베개를 던져줬다.

얼굴에 안착한 베개에 악 하고 짧은 소리를 내고 이내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는 것이-사실 잘 몰랐다. 워낙 눈이 부어서… 뜬거랑 감은거랑 어떻게 구분하겠는가-편해보였다. 박병찬은 선물로 받아놓고 처박아둔 쿠션을 꺼내 머리를 댔다. 아까의 소란스러움은 금방 가셨고 고른 숨소리에 박병찬은 킬킬거렸다. 상호는 뭐하는 거야. 그는 자연스럽게 오늘 있던 술자리를 파토낼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부재중 전화 8통

준수

?

성준수는 웬만하면 부재중을 2통이상 만들지 않았다. 그가 딱 한번 그런 법칙을 어긴 것은 박병찬이 수강신청날 늦잠을 잤을 때? 지금은 학기 중이었고 제가 생각해도 뭔가 실수한 것은 없었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은 제 자취방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지상고 농구부 주장일까.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건지 다이얼음이 1초만에 끊어졌다.

“아, 받으셨네. 형 혹시 기상호 연락돼요?”

“음… 상호는 왜?”

“…거기있어요?”

“어… 비슷한데 왜?”

박병찬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기상호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는 조용히 수동으로 도어락을 열었다. 제가 말한 것처럼 자취방 벽은 얇았고 복도에서 조금만 크게 떠들어도 같은 층 사람이 함께 대화할 수 있었다. 박병찬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준수야 잠깐만.

그래. 저도 바쁘고 생각해보자면 이 시기에 농구부는 일이 많았다. 당장 고3은 실적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홀연히 올 수 있는게 이상했다. 만났을 때 너무 꼴이 당황스러워서 그런 생각을 못한게 실수였다. 성준수는 한편 욕을 했고 또 한편 걱정했다. 박병찬은 그 점이 성준수가 결국 동생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결론 내렸다. 준수야, 넌 참 정이 많다. 뭔소리에요 형. 있어…. 쨌든 내가 상호 돌려보낼게. 넵. 부탁드려요.

박병찬은 제가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지도 않은지 미동도 없는 기상호의 코를 가볍게 잡았다. 상호야, 너 부산 가야 돼. 으으으 앓는 소리만 나왔다. 제 생각보다 기상호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충동적이고… 박병찬은 성준수와 한 약속이 있으므로 반드시 기상호를 깨워야 했다. 어차피…막차 태워도 되는 거 아닌가? 박병찬은 기차와 버스를 전부 확인하고 제일 늦은 시간을 골랐다. 준수야, 상호가 안 일어나. 핑계용으로 널부러진 상호 사진을 한번 찍고 박병찬은 저녁을 고민했다. 고심 끝에 그는 삼겹살을 먹기로 했고 기상호를 깨웠다.

기상호는 얼떨떨한 얼굴로 옷을 꿰입고 박병찬을 따라나섰다. 져지에 냄새 배잖아.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말에 신발을 신던 기상호를 박병찬이 불러 세웠다. 이거 입어. 원래도 넉넉한 사이즈로 입으니 기상호한테 옷이 작을리 없었다. 박병찬은 스타일리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저것 대주면서 웃었다. 기상호도 어색하게 웃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는 차분하게 생각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곧 혼이 날 것처럼 기다렸는데 박병찬은 그 조마조마해하는 표정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애같아. 기상호가 들으면 발끈한 말을 그는 쉽게도 생각했다. 삼겹살집은 시끄러웠다. 대학생들은 심심하면 소주에 삼겹살을 걸쳤고 박병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동행이 동행인만큼 점잖은 척 고기만 불판에 올렸다.

박병찬은 무심하지만 점잖고 배려심있는 어른인 척 하려고 했는데 기상호는 속이 타는지 결국 제 입으로 실토했다.

“햄 죄송해요…!”

“뭐가? 상호야 고기 탄다.”

기상호는 쌈을 한입 먹을 때마다 우물우물 변명과 사죄를 번갈아 말했다. 박병찬은 모르는 척 듣다가 기상호가 너무 풀이 죽어보여 성준수와의 대화를 보여주는 수 밖에 없었다. 성준수의 이름이 거론되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더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 고기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기차니 뭐니 떠드는 것에 이번에야 말로 박병찬은 어른스럽게 제가 예매한 기차표를 보여줬다. 햄!!…햄? 기차시간을 보더니 기상호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고깃집에 걸린 개업기념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3시간이나 남았는데요? 어, 맞아. 상호야 학교 구경가자.

고기는 몇인분 못 먹었다. 박병찬은 캠퍼스에 소개해줄 곳이 많다며 기상호를 재촉했고 기상호는 그 바람에 휩쓸렸다. 어디 어른이 말하는데 못하겠다 하냐. 박병찬은 장난처럼 준향대의 정문부터 보여줬다.

“상호야 네가 울던 곳이 여기야. 오늘 너 커뮤에 올라왔을 수도 있겠다.”

“커뮤요?”

“학교마다 있는데 그게 뭐냐면…”

박병찬은 학교홍보대사처럼 하나씩 알려줬고 기상호는 신입생처럼 얌전히 들었다. 가끔은 박병찬의 말을 곱씹듯 따라하기도 했고. 캠퍼스 투어는 정말 구석구석 이루어졌고 너무 꼼꼼해서 기상호는 박병찬이 진짜 체대생이 맞나 의심했다. 체대생이 왜 사회과학 건물을 알아요? 상호야. 친구를 체대에서만 사귀면 재미없다.

때늦은 캠퍼스 투어가 끝나고 박병찬은 여기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기꺼이 아메리카노 한잔에 5,000원이나 하는 카페에 기상호를 데리고 갔다. 기상호는 박병찬의 추천대로 디카페인 아메키라노를 마셨고 박병찬은 추천해준 것과 달리 피치에이드나 마셨다. 두사람은 가벼운 이야기를 했고 박병찬이 웃는만큼 기상호도 웃었다. 나중에 또 보자. 네. 가출은 하지말고. 아 햄! 이거 가출 아니에요!! 가출이지 뭐…

박병찬은 기상호가 딴 길로 샐라 기어코 기차에 오르는 모습까지 봤다. 일부러 창가자리를 잡아서 그는 기상호가 머뭇거리며 손인사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입모양이 움직이는데 복순술을 할 줄 모르는 박병찬은 그냥 휴대폰을 들었다. 톡으로 말해, 모르겠다! 기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톡으로 하라니까. 박병찬이 못하는 걸 기상호도 못했다.

“햄, 저 담에 또 와도 되는거 맞죠?”

“어. 그때는 그냥 여기 신입생으로 와. 준수랑 같이 놀자.”

“…어… 네!”

마지막까지 박병찬은 웃었다. 열차가 출발하오니 노란색 선 뒤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들려왔고 기상호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박병찬은 선선히 손을 흔들어줬다. 기차가 저멀리 가고 나서야 그는 성준수에게 연락했다. 사진을 보내고 잠수를 탔음에도 톡이 쌓이지는 않았다. 성준수는 박병찬 성격을 알았으니 굳이 안될 일에 힘을 쓰지 않은 것이다. 준수야, 방금 상호 갔다. 네 감사해요. 응, 내일 시험칠 때 보자. 넵.

기상호의 가출은 그렇게 24시간도 안되서 끝났다. 애당초 부모님한테는 연락하고 농구부를 뛰쳐나간거라나 뭐라나. 박병찬은 드디어 말끔한 눈으로 생선을 뒤집었다. 새까맣게 탄 면이 어이가 없었다. 그 사이에 다 타냐… 집밥 먹으려던 생각은 접는게 좋을까. 시간도 얼마 안남았고… 박병찬은 그동안 제가 고등어 구이를 먹고 싶다고 투정부려도 들어주던 부모님께 늦게나마 감사인사를 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부재중 통화 2통

상호

다이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산 사람들은 원래 다 그런가? 아니지, 준수는 원래 서울애인데…

“햄 뭔일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 상호야 지금 불날뻔 했어. 그냥 생선은 바깥에서 사먹자.”

“아니 진짜 굽고 있었어요?? 저 지금 포장해가는데!!”

“…나 눈물날라 그러는데 상호야. 빨리 와.”

“…네!”

박병찬은 생각난 김에 갤러리를 열었다. 때는 기상호가 고3이던 그 날. …한참을 뒤지고 나서야 사진이 없을 깨달은 박병찬은 도마를 내려다 봤다. 상호야, 실수야. 절대 고의가 아니고 너가 너무 반가워서 만졌는데 방금까지 청양고추를 만졌던 거지. 아까 형도 실수로 그랬거든? 진짜야. 어허, 형보고 애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때는 진짜 여름이었다.

고등어 구이는 사먹는게 신상에 이로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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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하는 아르마딜로

    진짜 최고의 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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