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ard Day to Die

A Hard Day to Die 6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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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단단한 군화가 소리를 죽여 흙길을 밟는다. 담 그림자에 숨어 철문 바로 옆에 다가가 숨을 죽이면 이내 짧은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정지. 보초 둘. 조재석, 왼쪽 맡아. 셋, 둘, 하나.

조용히 날아온 총알이 적중한다. 위에서 단단한 것이 연달아 터지는 소리가 나고, 비명조차 내지 못한 이 중 하나가 난간으로 기울어지더니 이쪽으로 떨어졌다. 쿵. 머리부터 떨어진 남자의 몸을 끌어 그림자에 숨긴다.

-진입해.

담 안은 아무도 없는 거 맞아? 되물으면 조금 짜증스럽게 답했다.

-여기서는 안 보여. 있으면 알아서 처리하든가.

우리 준수, 되게 무책임하네. 가벼운 도발에도 성준수는 한결같이 욕설로 화답해 줬다. 대강 대답하며 이휘성의 손깍지 위에 발을 얹는다. 도약과 동시에 밀어 올리는 힘으로 3미터가량 되는 철문을 단번에 넘었다. 이어 넘어온 지국민과 등을 돌려 주변을 살핀다.

-클리어. 절단기 있는 사람?

지국민의 무전에 문 위로 절단기가 던져진다. 떨어지기 전에 낚아채 사슬을 자르자 참을성 없는 놈들은 들어오라는 지시도 떨어지기 전에 문을 민다. 두꺼운 사슬이 자르륵 풀렸다. 상완에 늑대 엠블렘을 단 군인 여섯이 4층 건물을 살피며 들어온다.

-조재석,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 난 여기서 잠시 주시한다.

-썰. 조재석 이동합니다.

안돼. 거기 있지 마. 성준수가 있는 남쪽을 본다. 일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폐건물의 어둠에 그가 숨어있었다. 당장 나와. 작전대로 지금 이동해. 그러나 애원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무리가 건물 외벽을 돌아 반대편에서 동시에 진입한다. 알고 있다. 성준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기습을 두 번은 막을 수 있었다.

-2층 안쪽, 히잡 쓴 여자 총기 소지.

무해하게 웅크려 떨던 여자가 손을 뒤로 돌려 권총을 쥐기 무섭게 피가 터진다. 외부에서 날아온 탄환이 깔끔하게 폐부를 꿰뚫었다. 총구를 내려 고통스러워하는 테러리스트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준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이라도 해 볼 수는 있는 거잖아. 제발 거기서 나오라고.

멍청한 뇌는 그저 기억을 재생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3층 계단 위에서 수류탄을 던지려던 놈을 쓰러트린 것을 보고 늘 했던 것처럼 준수 오늘 감 좋네? 따위의 말만 지껄인다.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면 벌벌 떨던 어린아이들 사이로 창문을 타넘어 도망치는 녀석도 보였다. 안돼, 잡아! 그러나 몸은 느긋하게 아이들에게 해치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하며 방구석으로 보낸다. 창문을 보라고, 멍청한 새끼야! 다다닥, 외부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에 위화감을 느끼고 그제야 창문을 내다본다.

제발 도망쳐, 성준수! 건물 밖으로 나가! 굳게 닫힌 입은 정작 필요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아이가 제 몸만한 무반동포를 어깨에 이고 남쪽 건물을 겨눈다. "아." 그제야 총을 들어 작은 등에 겨눈다. 대기가 찢기는 소리.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화염.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방아쇠를 당긴다.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같은 소음에 아이의 비명이 묻혔다. 무전기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들린다. -씨발. 그리고 뭉개지는 전자음. "준수야."

총을 내던지며 건물 밖으로 달린다. 등 뒤로 동료들이 달라붙었다. 놔. 놔, 제발! 꿈이면 한 번쯤은 가게 해줘! 저기에 준수가 어떤 꼴로 묻혀있는데! "성준수." 꿈이면 네가 알아서 도망치기라도 해. 기적처럼 내 눈앞에 멀쩡한 꼴로 나타나 줄 수 있잖아! 딱 한 번만, 다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돼?

필사적인 발버둥에 겨우 벗어난 몸이 그대로 앞으로 기운다. 그리고 새카만 계단 밑으로.......

덜컹!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에 경련하듯 눈을 뜬 전영중 옆에서 지국민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뭐야?"

"야이... 아... 심장 떨어지는 줄....... 요란하게도 깬다."

악몽 꾸는 것 같아서 깨워주려 했더니. 중얼거리는 말에 얼굴을 마른 손으로 쓸었다. 알면 좀 일찍 깨우든가. 기왕이면 무반동포 터지기 전에. 남의 꿈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타이밍 좋게 깨우겠냐마는 괜히 남 탓을 해본다.

"또 풀리쿰리* 꿈이냐?"

"어떻게 알았어?"

"준수 찾더라."

아 씨....... 의자에 몸을 길게 기댔다가 벌떡 일어난다. 쪽팔리게 잠꼬대까지 하냐. 서랍을 뒤져 세면도구를 챙기는 모습에 지국민이 혀를 찼다.

"너도 징하다. 그래도 잠은 집에 가서 자지."

"집이나 여기나......."

못 자는 건 마찬가진데. 아침 8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본다. 30분 뛰고 샤워하면 딱 업무 시간에 맞출 수 있다. 수면 부족에 운동은 쥐약이랬나? 심장마비 확률 증가? 기억 속 누군가 잔소리하는 것 같지만 무시한다. 아침 루틴인데 어쩌라고. 꼬우면 직접 와서 혼내든가. 요새는 차라리 콱 죽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거 우울증인가?

그러다 지국민을 본다.

"네가 8시부터 출근을?"

"나는 일찍 오면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닌데......."

5분 일찍 도착하는 것도 싫어서 시간 뜨면 카페라도 들렀다 오는 녀석이? 덧붙이지 않은 말을 짐작한 지국민이 눈썹만 구기고 만다. 틀린 말은 아니지.

"윤 차장님 호출. 급하게 출장 건 잡혔는데 네가 다녀와라."

"다른 애 시켜. 다들 잘하잖아"

"이 자식이 팀장이 가라면 냉큼 갈 것이지. 내용이나 보고 말해."

요새 피곤한데. 전영중이 한숨을 쉬며 성의 없이 던져진 결재판을 펼쳤다. 출장신청서. 출장명. 마가단주 갱단 동향 파악과 마약 유입 경로 확인. 인원. 성준수 외 1인. 장소. 러시아 마가단.

"......뭐야, 이거."

"다른 애들 시켜?"

얼빠진 표정에 지국민이 씨익 웃는다. 새끼,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좋은 일 시켜줄까 봐. 빼기는 왜 빼?

"합동팀 마지막 회의 전에 진재유가 올렸더라. 그때까진 우리 관할이었으니까 차장님 앞으로 계류돼 있던 거 방금 승인 내려왔어."

"부장님이 손 떼라고 지시하셨잖아."

"부장님이 손 떼라고 하신 건 브라츠크 레드마피아 건이지. 원래 마약 추적은 우리 담당이고."

궤변이다. 마가단 출장도 이르쿠츠크와 엮여서 결정된 거였는데 여기서 레드마피아만 쏙 뺀다고?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둔했다. 지국민의 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뺏어 쭉 마신다. 아이씨, 간접키스....... 도로 뺏어오려던 지국민이 손을 까딱이다 주먹만 꽉 쥐고 만다.

"......윤경택 차장님이 확신 없이 움직이실 분은 아니지."

줄타기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딸을 납치당한 장관과, 그 딸을 납치하라 사주한 쪽의 알력 다툼. 윤경택이 선택한 더 확률 높은 쪽,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어디인지는 명확했다.

"원래 2인 출장이니까 한 명 더 데려가도 되지?"

"마음대로 해."

"안녕하십니까."

타이밍 좋게 우수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의 1짱과 2짱이 저를 물끄러미 보는 시선에 불길한 예감이 든 우수진이 갈등한다. 이대로 닫고 카페에서 죽치다 9시에 다시 올까?

"수진이 특기가 뭐였지?"

"저, 교란입니다."

"필드 경험 있던가?"

"거의 없습니다."

"그럼 이참에 해보자."

예? 뭘요? 사무실 1짱에게 도움을 구하듯 바라보자 자국민은 손만 설레설레 흔든다.

"여권은 만들어 둔 거 가져가고, 티켓은 핸드폰으로 보내놓을게. 10시까지 인천공항에 가 있어."

"네?"

"일주일만 고생해라.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예? 저 어디 가는데요? 팀장님? 부팀장님? 자세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전영중의 긴 팔에 묶여 사무실에서 강제로 퇴실당한다.

일찍 일어난 새가 봉변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첫 해외 출장에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마친 우수진이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카페 뒷문에 앉아 담배를 질겅거리던 그가 봉투를 받더니 씨익 웃었다. 저거 성 팀장님이 씹던 담배 아닌가? 물어봤자 '맞아'라는 듣느니만 못한 대답만 돌아올 거 같아 못 본 척하고 머리띠를 벗어 넘겼던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자료를 살펴본 전영중이 앞치마로 얼굴을 대강 문질러 닦고 가발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보드카를 붓고, 성냥을 떨어트리자 양철 쓰레기통 안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던져넣은 그가 우수진을 돌아보았다.

"이동하자."

성준수가 준 자료에는 브라츠크와 이르쿠츠크 두 장소에서의 작전이 대강 쓰여있었다. 문제는, 박병찬과 성준수가 어느 쪽을 담당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한 팀이지만 성준수와 박병찬의 목적이 다르니 분명 갈라질 것이다―둘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한 팀이어서는 안 되고.

성준수는 납치 사주 커넥션의 증거가 첫 번째 목표일 테고, 박병찬은 중국공산당 쪽 라인 그 자체가 목적이다. 서로 견제하느라 온건히 제 인원만으로 팀을 꾸리게 둘 리 없다. 일단 기상호는 박병찬이랑 보내면 쥐고 안 놔줄 게 뻔하니 성준수가 데려갈 테고.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갈라지려나. 전영중이 고민하는데 우수진이 손을 뻗어 이름을 쓱쓱 움직인다.

"진 부팀장님은 전술 전문에 신뢰도가 높으니 분명 같이 움직이실 겁니다. 성 팀장님이 직접 뛰고, 진 부팀장님이 지휘하시겠죠. 그럼 기상호까지 셋. 동일하게 여섯씩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팀의 리드는 잡아야 하니 3:3이 아닌 4:2 구성으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상대 팀에 보낼 인원은 유연성이 높고 일이 틀어질 때를 대비해 탈출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보낼 겁니다."

박병찬의 이름 아래로 정희찬, 김다은이 이동한다. 공태성은 성준수에게로.

"잘 안다?"

"업무 비면 인트라넷에서 직원들 특기 살펴봤습니다."

"그래. 괜찮은 추측이네."

우수진이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음침하게 개인 특기나 하루 종일 들여다보냐는 핀잔도 들었는데, 제 분석이 인정받아 기분 좋았다.

"너무 뻔하지는 않습니까?"

"일부러 뻔하게 짤 거야. 작전 공유가 다 안 된 상황에서 우리가 합류해야 하니까 예측할 수 있게 가겠지."

"그러면, 어디로 가실 겁니까?"

"이르쿠츠크."

그 문제로 한참 고민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답은 바로 나왔다. 왜 그쪽으로? 의아하게 쳐다보자 전영중이 눈을 접어 웃었다.

"준수와 나의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

"......아, 네."

우수진은 때때로 돌아버리는 부팀장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다는 걸 오늘도 배운다.

괜히 물었어, 진짜.

"야간투시경도 없어?"

-존나 따지네. 그럼 한국에서 챙겨오든가.

"시발, 없는 줄 알았으면 챙겨왔지."

아까부터 무전이 이따위다. 이초원이 시비 털고 성준수가 씹는다. 성준수가 투덜거리면 이초원이 욕한다. 무전으로 오가는 정이 넘치는 대화에 기상호가 슬그머니 묻는다.

"팀장님, 그거 진짜 필요해요?"

"아니. 그냥 시비 거는 거지. 기 싸움."

바쁜 팀장 대신 공태성이 대답하자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영화처럼 쓰고서 돌입하는 줄 알았는데. 완전 멋있게.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에 공태성이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그게 왜 필요하겠냐. 전력 다운시키고 진입하는 것도 아닌데.

-태성이 말이 맞다. 우린 저놈들 컴퓨터 써야 하니까 전력 다운되면 오히려 큰일이지.

"어휴......."

이초원과는 다른 채널로 진재유의 목소리가 타고 넘어온다.

-USB는 하나씩 챙겼지? 누구 하나라도 그쪽 컴퓨터에 꽂고 실행시켜야 한다.

세 사람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USB를 다시 확인한다. 들어간 파일을 실행시키면 연결된 인터넷을 따라 진재유 쪽으로 파일이 흘러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만약 인터넷이 죽어있으면 데이터파일을 전부 복사하게 되어있는데, 이 경우는 일이 커지니 인터넷이 살아있길 기도하는 편이 좋았다.

-전영중은, 오는 거 맞나?

진재유의 물음에 성준수가 몸을 굳혔다. 올까? 서류를 넘겨주긴 했지만 확정된 작전이 아니었다. 전영중이 여기가 아닌 브라츠크로 갈 수도 있고.

-걔 들으라고 이리부대에서 사용하던 주파수 쓰는거잖아.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처음부터 전영중 상정 안 한 작전이잖아. 계획대로 잘 마무리하면 돼."

이런 일에 끼어들어서 뭐 한다고. 그땐 마라톤회의에 지쳐서 마음 약해졌던 거지. 다 짜놓은 판에 전영중이 끼어들어 들면 뭐 달라지나. 작전서류도 섣불리 준 것 같아 후회 중인데.

물론 있으면 든든하긴 하지....... 슬그머니 고개를 든 본심은 못 본 척한다.

"시간 됐다. 이초원 무전은 재유가 중계하고, 우리 라인으로 돌려."

8시에 가까워지자 성준수가 몸을 일으켰다. 곧 예정된 시간이다. 박병찬과 시간을 맞춘 이초원이 외부에서 시선을 모으면 그 틈을 타 침투하는 작전이었다. 이르쿠츠크와 브라츠크에서 동시에 테러를 일으킨다. 브라츠크에서 시선을 돌리는 역할은 분명 김다은과 정희찬 몫이다. 재빠른 녀석들이니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무장하긴 했어도 우린 어디까지나 데이터가 목적이다. 여기서 총소리 하나라도 내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조심해. 공태성, 일 잘못될 경우 넌 상호 확보가 일 순위인 거 명심하고."

"옙."

브라츠크 레드마피아들의 본거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병찬의 홈그라운드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와서 박병찬이 기상호를 욕심내지 않을 리 없다. 공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다은 쪽은 연락 없고?"

-별 연락 없다. 운송수단은 몇 개 확보했다데.

"가장 가능성 높은 건?"

-보트나 헬기.

쾅! 멀리서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세 블록 너머의 3층 건물 외벽에 소형트럭 한 대가 박혀있었다.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을 열고 내다본다. 그들 앞의 4층 건물에서도 창문을 열고 남자 몇이 몸을 내밀더니 무어라 소리치며 들어간다. 온 도시에 차량 경보음을 울리던 트럭이 잠시 후 화려하게 폭발했다. 펑! 건물 절반을 뒤덮는 엄청난 화염이었다.

-이초원 무전이다. 시작.

"선시작 후 통보하고 지랄이네. 3분 후 돌입한다."

공태성이 시계를 확인하고 로프총을 집어 든다. 저들이 관리하는 건물이 공격받은 것을 보고 무장한 이들이 뛰쳐나간다. 타타탕! 인적 드문 거리에 총성이 메아리친다. Долбанные утечки!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언어로 무어라 하는 게 들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원한을 신나게 갚아주는 모양이다.

"이초원 신났구만?"

-점마 박병찬이랑 어울리는 이유가 있다.

굴뚝 그림자에서 난장판이 된 도로를 세 사람이 내려다본다. 건물에서는 스물 남짓한 인원이 저마다 총을 들고 뛰쳐나갔다. 총소리에 누군가는 창문을 굳게 닫고, 누구는 술병을 집어던진다. 욕설과 폭발음. 도시는 일순 혼돈에 휩싸였다.

"180초. 진입합니다."

난간으로 다가간 공태성이 로프총을 쏜다. 단단히 걸린 것을 확인하고, 굴뚝에 묶어 손을 동그랗게 표시하자 곧장 성준수가 뛰어내린다. 새카만 인영 셋이 건물을 가로지른다. 흐어억. 뒤이어 따라온 기상호를 받아주고 마지막으로 공태성이 도착했다.

"형, 이거 완전 무서워요. 짚와이어랑 차원이 다른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문이나 따."

옥상 문손잡이를 돌려본 성준수가 가차 없이 기상호의 뒷덜미를 잡아다 대령했다. 감상 좀 남길 수 있지, 그걸 안 받아주시네. 기상호가 툴툴거리며 손잡이에 락픽을 쑤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총을 앞으로 쥔 세 사람이 시선을 맞춘다. 공태성이 옥상에 남고, 남은 둘이 진입한다.

발소리를 죽여 진입한 건물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전 조사대로라면 서버 컴퓨터가 있는 방은 옥상 바로 아래 4층이다. 빠르게 방을 뒤지고, 세 번째에 컴퓨터가 켜진 방을 찾았다. 성준수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고 기상호가 문을 잠근다.

"재유, 연결한다."

-보자......

"여기 도로 반대편 방이야. 로프 내려."

-붙었다. 파일 들어오는 거 확인했다.

-끝났으면 빨리 올라오십쇼.

철썩. 굵은 로프가 창문을 때렸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상호가 창문을 열었다. 멀리서 터질듯한 엔진소리가 들린다.

-이초원 이탈이 너무 빠릅니다. 벌써 빠진다고? ―씨발, RPG!

뭐야? 성준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쾅! 머리 바로 위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태성?"

-......괜찮습니다! 기상호! 로프에 붙어!

"예?"

"뭐해? 붙어!"

공태성의 무전에 얼빠진 소리를 낸 기상호가 창문 밖의 로프에 매달렸다. 길쭉한 몸이 중력을 거스르듯 끌어올려지고, 순식간에 빈 로프가 돌아왔다.

-먼저 이탈합니다. A 포인트로 이동!

빈 로프에 매달리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방을 살펴보다 창밖에 매달린 자신에게 시선이 꽂힌다. 시발. 올라가려고 잔뜩 힘을 주었던 손을 풀었다. 주르륵 미끄러지기 무섭게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왔다. 다시 로프를 붙잡자 마찰에 장갑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2층 높이에서 끝난 로프에서 뛰어내린다. 관절이 뜨끈해지는 충격에 욕을 주워 삼키고 바로 뛴다.

어디로? 이 일대에 마피아 녀석들 소유 건물만 다섯 채다. 바로 옆 블록에도 하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도 하나. 머릿속에서 최대한 안전한 루트를 그리는데, 건물을 벗어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

"이, 씹.......!"

튀어나가는 주먹이 붙잡혀 뒤로 꺾였다.

미친, 안돼. 전영중!

철문에 머리를 박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놀랍게도 전영중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전영중을 혼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깨 관절이 빠져도 상관없다는 듯 몸을 비틀자 이제는 뒤에서 안아온다. 씨발, 무슨 힘이! 저를 옭아매는 단단한 팔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우리 준수, 나 없으면 어쩌려고 이러지?"

그리고 맥이 풀린다. 미친 새끼. 몸에서 힘을 풀자 뒤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들렸다. 그제야 팔을 풀어낸 전영중이 뒷문을 열었다.

철문이 조용히 열렸다 닫힌다. 조금 늦게 무장한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며 그들이 있던 곳에 모여들었다.

* 풀리쿰리: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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