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上
종뱅/서툰 두 남자의 어설픈 신경전.
최종수와 박병찬은 서로가 처음이었고, 그 둘은 모든 면에서 서툴었다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의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흘렀다. 최종수의 여태까지 자신의 뒤를 지독하게 쫒던 이 좆같은 소리들은 졸업하면 더 심해지겠지, 라는 잡다한 생각이 무색하게도. 몸이 바쁘고 지치니 오히려 그의 머리는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기까진 그의 일생에 좋은 일이었고, 무난했다. 하지만 중요한 하나, 이질적인 하나. 그건, 그 빠른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최종수의 시간 그 사이에 박병찬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사귀었냐고? 그럴 리가, 최종수에겐 그 부분이 가장 짜증나는 부분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당일, 그러고도 세 달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최종수는 박병찬에게 고백을 했다. …했다고, 고백.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최종수는 처음 느낀 좋아한다는 감정이 박병찬이었으니까. 그 둘은 졸업 후에도 은근히 같이 지낸 시간이 많았다. 거리가 멀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박병찬은 시간이 될 때마다 몸이 굳는다며 최종수를 원온원에 끌어들이기 일수였다. 최종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한 마음을 이제와서 좀 읊으라고 한다면 오히려 좋았다 말할 것이다. 말 그대로 몸이 굳지 않아서 좋았고, 바쁘고 비어있는 시간에는 혼자서 보내기 일상인데 어떻게든 밖에 나와 바람도 맞고, 사람이랑도 대화를 하니 꽤 상쾌했다. -그 사람이 박병찬이지만- 근데 여기서 끝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지. 그 둘은 원온원 뿐만 아니라 같이 카페도 가고, 사진도 찍고, 영화도 봤다. 솔직히 남이 보기엔 데이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안 가본 곳이 없다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종수야, 넌 친구 없냐?”
“…뭐?”
영화감상을 다 끝내고 나오는 길에 풀리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박병찬은 자신의 칙칙한 회색 후드티 모자를 쓰며 물었다. 고개가 저절로, 미간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입고 나온 코트와 안 어울리는… 어쨌든 그런 불쾌함이 최종수의 얼굴에 그대로 나왔다. 하긴, 거의 끌려서 나온 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의 박병찬의 일방적인 계획에 이끌린 것은 자신이었으나, 그래도 좋을 리 없겠지.
“아니~ 그냥, 불러도 매번 나오길래.”
그 말에 최종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안 바쁜 것은 아니다. 따지자면 오히려 바쁘다면 바쁜 편에 속하겠지. 근데도 최종수는 시간이 될 때면 무조건 박병찬의 부름에 응했다. 난 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다시피 있는 거지? 왜? 순간 잠깐 머리에 든 의문이었다. 최종수는 그게 나중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밤을 샐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니가 나오라며.”
“아이고? 너가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잘 들었다고?”
“…그럼 부르지 말던가, 나왔더니 지랄이야. 그러는 너는, 왜 날 부르는데? 친구 없냐?”
“엉.”
최종수는 순간 말을 계속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이 이어나오기도 전에 들리는 재빠른 대답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자신에게 그렇게 물은 게, 자신에게 되물어달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짓말하지 마, 너 친구 많잖아.”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봤는데?”
누가 믿겠냐고. 처음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상처라면 상처인 말까지 내뱉는 새끼-박병찬은 애새끼 말이다 하고 넘어가 이후에 따로 따지지도 않았다-도 이렇게 부르면서. 하지만 *그 사건*을 대놓고 말할 정도로 예의가 없던 건 고등학교 3학년으로 족했다. 그리 생각하자 최종수의 많은 말들은 목구멍을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됐어.”
“뭐야? 싱겁긴… 아! 우리 저거 먹자, 붕어빵.”
박병찬은 활짝 입꼬리를 올린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최종수의 코드 자락을 쭈욱 당기며 붕어빵 트럭이 있는 곳으로 재촉했다. 거의 끌고오다시피 하여 온 트럭에 다다르자, 트럭에 앉아있으셨던 아주머니는 놀란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 굴다가 넉살 좋게 말을 붙였다.
“하이고, 안 보이네 안 보여. 트럭이 좁아서 어째? 허리 안 아프게 우리 청년들 얼른 줘야지, 뭐로 줄까.”
“최종수, 뭐 먹을래. 난 팥으로.”
입에 들어가는 거면 그렇게 가리는 것이 없는 박병찬은, 이런 부분에서는 꼭 아저씨같은 입맛을 고집하였다. 그렇다고 슈를 안 먹는다, 그런 건 아니다. 입에 들어가면 다 좋아하는 대신, 미숫가루나 팥같은 것을 더 좋아하는 것 뿐이지. …적어도, 최종수가 이때까지 지켜봐온 바로는 그런 것 같았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대답이 없자, 박병찬은 결국 팥 6개 슈크림 3개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봉투에 들어간 것을 총 12개였지만.
“옛다, 이건 써비쓰. 많이 먹어요~”
“와~ 너무 많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안 주셔도 되는데.”
“곧 드갈 거였어~ 다 가져가면 나야 좋지!”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아주머니는 이어 대답은 하지 않으셨고, 붕어빵을 든 봉지를 들고 가는 둘을 보곤 손자 보는 것마냥 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럴 때마다 최종수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었다고. 박병찬을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지지 않으려는 성격하며,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말겠다는 집념, 그러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지키려고 든다. 당연히 그건 자신을 건들지 않는 사람의 선에서겠지. 이런 성격의 소유자를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하기야, 주변에서 좋다좋다 하는 사람에게 척을 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다. 물론, 최종수는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 같아서 되돌릴 시도조차 못 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최종수는 결국 끝에 ‘그땐 나도 예민했다고.‘ 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게 된다. 본인이 생각해도 유치할 정도로.
붕어빵이 든 봉투를 소중하게 안아든 박병찬은 근처 공원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표정만 봐도 기대를 한다는 것을 지나가는 개도 알 정도였지. 최종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그랬다, 그때 최종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박병찬의 주위를 맴돌았고. 본인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그 넓은 유한한 공간에 어쩐지 모든 것이 빙빙 돌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땐 그냥 그게 배가 고파서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벤치에 앉아서 둘이서 그 입가심 정도만 되는 붕어빵을 빠르게 나누어 먹었고, 그 와중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우, 진짜 맛있다. 역시 다음에도 가야겠어.”
“다음에 언제.”
“음~ 뭐, 시간 생기면? 어떻게 그걸 딱 정하냐.”
“….”
최종수는 순간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야… 자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으니까. 자신이 자연스레 박병찬과의 다음 만남을 약속하려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대답에서 애써 정정하려는 것도 이상했다. 왜인지 최종수는 그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에서 부르는 박병찬을 뒤로 하고는 빠르게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최종수 이 매정한놈아]
{그렇게 버리고 가냐?]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도 모를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최종수는 도착도 전에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리던 폰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역시나일까, 화면에는 박병찬이 보낸 새로운 메세지가 있었다. 솔직히, 최종수는 그 화면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미쳐서 너랑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하잖아.’ ‘다음에 또 보고 싶다니 이상하잖아.’ ‘그냥 다음에도 보고 싶….’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는 영 도움이 안 되는 선택지들 뿐이다. 둘의 사이에서 가장 납득이 될만한, 그런 이유를 보내곤 핸드폰을 침대에 던지고 씻을 준비를 했다.
[속 울렁거려서}
그래서 최종수는 그 후에 박병찬을 안 만났나? 그건 또 아니다. 이제 22살인 박병찬은 꽤 주변인을 챙긴다, 어쩌다 보니까 그 주변인에 이미 최종수는 들어간 상태였다. 그렇게, 어색하게-최종수 혼자- 헤어진 후에도 박병찬이 부르면 최종수는 나가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보니까 그 터무니 없는 고백을 한 거겠지. 그때 그 고백은 정말이지, 최종수의 인생에서 듣고 보았던 고백 중 가장 최악의 고백이었다. 여전히 그는 그때 자신이 미쳤었다고 믿고 있다.
그 날은 연속되는 무난한 날씨에 언제 피어날지 의문만 남겼던 벚꽃이 언제 없었냐는 둥, 꽃잎을 활짝 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벚꽃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거의 자신의 짝이 있는 커플들이었고 말 그대로 핑크빛이 난무하던 날이었다. 적어도 그런 날이 이런 멀대같은 남자 둘에게 어울리는 날이 아니라는 것은, 둘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무슨 벚꽃이야….”
“그래, 나도 안다.”
평소에 그러려니 하던 박병찬도 이게 아닌 것은 느꼈는지 착잡한 표정을 숨기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처음에나 그는 밝은 얼굴로 최종수의 어깨 부근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보니 주변에는 진짜 너무나 커플들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여자친구의 반강요로 sns에 올릴 사진을 찍으러 끌려갈 법한 카페에 온 남고딩 둘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냄새에 끌려 닭꼬치와 타코야끼를 먹고, 호수 근처를 걸으며 앞으로 자신들의 선수생활에 관한 얘기를 하고, 옛날의 추억도 조금 늘어놓으니 날이 조금 저물었다. 그때 즈음 되니, 축제의 주된 목적이 벚꽃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아까의 그 이상한 상황과 바를 바 없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은 늦은 시간이 되어가니 슬슬 자리를 떠나가자, 하나 둘 사라지는 웃음소리에 주변에는 들떠있던 기운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최종수는 마냥 나쁘지 않았다. 이것이 아까 들떠있던 분위기가 싫었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저 자신의 성격상 이런 분위기가 더 편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 나른한 기분좋음을 느끼고 있는 최종수의 옆엔 박병찬이 있다. 호수 근처 잔디에 앉아 둥둥 떠다니는 등불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두근, 두근, 두근… 이상하리만큼 최종수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어가는 듯 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야속하게도 평소에 그리 말이 많던 박병찬은 아까 닭꼬치와 함께 샀었던 맥주만을 손에 들고 멍하니 시선으로 등불을 따라갔다.
꼴깍….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소리. 이 소리가 주변이 너무나 고요해서 들리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모든 신경이 박병찬을 향하여 들리는 소리인지 최종수는 분간하지 못 했다. 몇 번이나 입을 우물거렸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전해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자신만 그렇다면? 이 감정이 만약 일방적인 거라면, 지금까지 같이 걸어왔던 3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이탈을 하게 된다. 최종수는 결국 이 시점에서 인정하게 된 자신의 감정을 본인도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박병찬에게 전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이때쯤 되어서야 인정을 하게 된 자신이 야속했고, 자신이 자길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한 박병찬이 너무했다. 그냥, 뭐든 탓이라도 하고 싶었다.
“…야.”
“엉? 왜.”
“….”
“아이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들여?”
그 한 마디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고 아무도 최종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심장이 목에 있는 것마냥 쿵쿵, 울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고. 속으로는 좋아진 사람이 하필 왜 박병찬인 거냐고 최종수는 자신을 탓했다.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리는 것또한 쉬운 것이 아닌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건 한 번도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뜸들인 적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 그 모양새가 박병찬에게도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는지, 평온했던 그 얼굴에는 약간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종수야, 최종수. 어디 아프….”
“좋아해.”
“…어?”
걱정에서 당황스러움으로 바뀌는 박병찬의 표정이 최종수의 눈에 비추어졌다. 아팠다. 그 표정이 자신과 다름을 말하는 것 같아서, 3개월의 답이 이런 것일 줄 몰랐던 것 같아서. 그 표정을 보고만 있자니 최종수는 작게 웃음을 내뱉었다. 그게 허탈의 의미인지, 진짜 표정이 우스워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웃음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후에 나온 박병찬이 덧붙인 말 때문이었다.
“아무리 취해도 그렇지, 할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는 거다.”
“…뭐?”
자기 자신도 아닌, 남에게 자신의 마음을 부정당하는 것이 이리 아픈 것인지 또한 오늘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따지지 못 했다. 늦게라도 사실 장난이었다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는 죽어도 싫었다. 이미 한 번 부정을 확인한 마음을 자신의 입으로까지 부정한다면 정말 미칠지도 몰랐다. 그렇게나 차가운 얼굴의 박병찬은 처음 보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결국 내뱉지 못한 말은 제 입을 맴돌며 아픈 상처를 남기며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최종수는 그 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많은 것을 뼈 아프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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