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전력 2천 자

[준쫑] 단문

이능력물

성준수는 어렸을 때부터 감이 좋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서 몇 개월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히기도 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해 입을 닫은 게 기억상 마지막 공부였다. 항상 머리를 쓰기보단 몸이 먼저 움직였으므로 성준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행동파라고 설명했다.

센티넬로서는 좋은 능력이라고 평가 받았다.

성준수가 센티넬로 처음 발현하던 날, 그는 아주 미세해서 기관에서도 관측하지 못한 지진을 감지하고 건물 1층에 있던 가족들을 바깥으로 대피시켰다.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일단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른 게 첫 번째 구원이다. 성준수는 곧장 경비실로 뛰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죽기 싫으면 나가세요. 지금 당장! 그로부터 3분 뒤에 지진과 함께 건물 일부가 무너졌으나 사상자는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웅성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성준수는 이게 우연이 아님을 알고 양친에게 고했다. 엄마, 아빠. 저 검사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이걸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성준수는 구원에 담긴 의미가 점점 퇴색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너무 값싸고, 누군가에겐 너무 값지며, 누군가에겐 값어치조차 되지 않는 행위를 구원이라 일컫기엔 너무 거창하다는 뜻이다. 하물며 누가 처음 명명했는지 알 수 없는 이 단어 하나로 인해 센티넬이라 불리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를 훌쩍 넘었다.

그들은 누가 구원해 주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를테면 최종수 같은 놈 말이다.

성준수가 폭주와 함께 사라진 서울 지부장의 아들을 찾은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폭주할 때 입었던 피해는 이제사 겨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지부장은 사살 명령이 내려진 지 1년이 지났을 때 행방불명으로 끝을 냈다. 불명예 제대 처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원래 폭주한 센티넬을 감당할 만한 가이드가 없으면 즉시 사살이 원칙이었고, 최종수는 불안정한 능력치 때문에 가이드가 몇이나 달라붙어도 수치를 정상화 시키기가 불가능했으니 원칙상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지부장이 임무 중 사망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처럼, 성준수도 그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밖으로 나도는 행동대원이 불안했는지 이현성 팀장이 몇 번이고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준수. 니 진짜 와 이라노.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그 말만 했다.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최종수 안 죽었습니다. 그걸 와 니가 찾고 앉았노. 인자 그만 할 때 됐다이가. 저도 아직 안 죽었어요. 죽어야 그만 둘 끼가. 네. 이현성이 이마를 짚으며 돌아 나갔다. 원수도 그래 안 찾겄다. 성준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차라리 원수인 게 더 나았을걸요.

잊었던 감이 돌아온 건 그 무렵이다.

이제 몇 번째인지 세지도 않은 임무에 투입되었을 때다. 지형이 너무 나빠서 애를 먹다가 원중에 지원 요청을 한 것까진 좋았다. 마침 가까이에 있어서 늦지 않게 합류한 것도,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그 누구도 농담을 하지 않는 분위기마저 괜찮았다. 마지막 한 방을 날리기 전에 몬스터가 자폭만 하지 않았더라도 말끔하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자폭하기 전에 죽여버리면 됐는데 아쉽게도 끝발이 모자랐다. 전부 숙여! 서 있으면 죽는다! 1초만 늦게 말했어도 누군가는 죽었을 것이다. 목은 달려있어도 시력은 날아갔으리라.

섬광과 함께 몸이 밀려나는 게 느껴진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겨우 눈을 떴을 때 성준수는 미지의 지역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실소했다. 팀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 지부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목숨이 붙어있으니 정신만 차리면 어떻게든 산다. 몸을 털고 일어나 주변을 살피자 깊은 숲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코끝을 맴도는 공기가 그럴 듯한 확신을 줬다. 숲이라면 어딘가 출구와 연결된 곳이 있어야 한다. 성준수는 일단 나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성준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정확히는 뒤가 아니라 비스듬한 옆에서 나는 소리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새가 없을 테니 어떤 생물일 테고, 제 지식상 음율이 느껴지는 소리를 내는 것은 사람뿐이다. 위치를 파악하고 그쪽으로 걷자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휘파람인지 흥얼거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소리는 어느새 제가 아는 노래로 바뀌어있었다. 노래를 거의 듣지 않는 성준수가 귀에 박히도록 들었으며 명령만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노래였다.

군가.

이윽고 소리가 끊기고 등불 같은 것을 든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준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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