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쫑] 배포본 이후 240107

! 이거 뒷얘기 https://penxle.com/the_finalnumber/886601599

치킨텐더샐러드 드레싱을 만드는 건 언제나 제 역할이었다. 최세종 선수와 통화한 이래 줄곧 그랬다. 재료를 모두 섞어 휘젓는 동안 에어프라이기에 치킨텐더를 넣어두고 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최종수가 묘하게 뚱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다.

“왜.”

“물어본다던 거 뭐야?“

머스타드만 사는 게 좀 그래서 맥주 번들 하나를 같이 샀다. 밖에선 일절 술을 입에 대지 않지만, 주량이 썩 나쁘지 않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둘이서 종종 맥주를 마시곤 했다. 샐러드라는 안주도 있으니 맛은 보장된 셈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잔을 꺼내 맥주를 따른다. 타이밍 좋게 굽기가 끝났다는 신호음이 들려서 최종수에게 집게와 가위를 줬다. 야채는 커다란 보울에 먹기 좋은 사이즈로 대충 찢어 넣었고, 잘게 잘린 치킨텐더를 올린 뒤 드레싱을 붓고 섞기만 하면 된다. 부먹이냐고 묻자 주변 사람들이 먹는 방식을 따른다고 대답하던 최종수는 이것에 한해 부먹을 고집했다. 그래야 하는 음식이라나. 어쨌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았으므로 제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부먹도 맞추려고 물어봤던 거다.

세팅을 끝내고 거실로 돌아갔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안 나가고 싶다는 최종수의 취향이 반영된 홈시어터다. 성준수는 이 장비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아. 그거.”

“까먹었어?”

“잠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응시하던 최종수가 곧 영화를 재생했다. 제목은 ‘우리’. 엄마와 딸에 관련된 내용인 듯하다. 섬네일에 정수인과 딸 역할로 보이는 이름 모를 여자가 나와있었다.

“예전에 나랑 공태성 결혼식 갔던 거 기억 나?”

“어.”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그랬지.“

“왜 따라왔냐?“

원래는 영화에 집중하고자 설치한 장비라서 대화 소리는 안 들리는 게 맞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전화로 던지지 말걸 그랬나. 곧 장모님 되실 분의 작품인데 집중해서 보기는 글렀다. 최종수가 치킨텐더를 씹으며 심각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아마 최종수가 여자였더라면 저 나이에는 저런 얼굴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얼굴의 여자가 어머니 역할이라는 게 신기했다. 아무리 봐도 최세종의 유전자가 물려준 건 농구 실력과 곱슬머리 정도밖에 없어 보인다.

“네가 가자고 했잖아.”

“내 후배 결혼식을?“

”어. 그건 갑자기 왜 물어봐?“

“네 성격에 애인 후배 결혼식을 그냥 갔다는 게 말이 안 돼서.“

”그걸 지금 물어본다고?“

“어.”

최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도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이건 말하기 싫다는 뜻이다. 적어도 제 추측이 맞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 영원히 못 들을 것이다. 그건 아쉽겠지만 말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 바로 물어봤으면 억지로라도 답을 들었겠지만 지금에 와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남자 배우가 나오는 영화처럼 정수인 얼굴 보러 가는 영화라는 평으로 나름 유명했다. 각본가가 애초에 정수인을 생각하고 썼으며 캐스팅 과정에서 직접 데려오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다는 후일담이 있다. 시도때도없이 클로즈업을 한다며 몇몇 평론가에게는 혹평이었으나 모녀의 관계를 다각도로 다룬 만큼 여성들에게서 섬세한 평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고는 싶었는데 시간도 없고, 관객의 대다수가 여성인 상영관에 머리 두 개는 더 클지도 모르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 자리하긴 좀 그랬다. 마침 최종수가 타이밍을 잘 맞춰준 덕에 보는 거지, 아니었으면 그마저도 한참 뒤에 봤을 것이다. 혼자서는 정수인 주연의 영화를 보기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좀…… 아무튼 그랬다.

“결혼식인데 꼭 이유가 있어야만 가나…….”

“너는 그럴 놈이잖아.“

포크를 움직이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다. 하여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여전히 저렇게 티를 낸다는 게 웃겼다. 모르는 건 아닌 듯한데 고칠 마음이 없는 건가. 웃겨서 내버려두고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도 저랬다간 놀림거리나 생산할 뿐인데. 

시선이 보울에 고정된 최종수를 대신해 화면을 본다. 정수인이 아련한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최세종 세금 많이 내냐? 그럼 존나 많이 내지 너 어디 아프냐? 그런 류의 댓글을 본 기억이 난다.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나이가 드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여전히 그 표현에 걸맞은 애티튜드를 보고 있노라면 곱게 늙는다는 말은 정수인에게 쓰려고 만든 표현이겠거니 싶다.

곧 장모님 되실 분의 외견을 이렇게까지 감상해도 되는지 의문이다만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문제가 있다면 감독에게 따지는 게 옳다.

갑자기 어깨 위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정수인이 남편 역의 배우에게 기대는 장면이 나옴과 거의 동시라서 여기가 영화관이었다면 4D를 보러 온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본다. 귀여운 가마가 오늘따라 동그래 보였다.

“너도 아무 결혼식이나 다 가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지?”

“그때는 그냥…….”

성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최종수 대신 정수인이 말한다. 내가…… 내가 그냥 정연이 친구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어. 정연이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 여보.

최종수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화면과 저를 번갈아 봤다. 왜? 아, 아니……. 엄마가 내 대신 말하는 줄 알았어. 뭘? 방금 못 들었어? 어. 그럼 됐어……. 

다시 구겨진 최종수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네가 그때 그랬잖아. 지상고 농구부 다 온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너 우리 애들한테 관심 있었냐? 아니거든. ……. 기상호한테는 조금 있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 ……. 아, 씨. 꼭 들어야겠어?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근데 궁금하긴 해. 그게 꼭 들어야겠다는 말이잖아. 아니지. 맞다고. 아니라니까. 맞아. 하……. 어, 맞다. 맞아. 꼭 들어야겠으니까 그냥 말해. 말하기 싫어도? 너 지금 싫은 게 아니잖아. ……. 너 왜 그렇게 나를 잘 알아? 가끔 무서워. 지가 알려줘 놓고 왜 또 지랄이지? 내가 언제 알려줬어? 알아달라고 그 지랄 염병을 떠는데 모르게 생겼냐? 말을 왜 꼭 그렇게 해? 좀 좋게 말해 주면 안 돼? 좋게 나가게 생겼냐고. ……. 넌 진짜 나라서 받아주는 거야. 알아? 나한테 고마워 해. 미쳤냐? 아, 빨리! 고마워 하라고. 네, 네. 감사합니다, 최종수 님. 그래서 뭔데. 아, 씨…….

반응을 보니 화제를 돌리려고 했나 본데 어림도 없다. 종용하는 의미로 깍지 껴서 손을 잡자 마주잡는 게 아무래도 민망해서 이러는 것 같았다. 초장부터 알았으니까 뭐가 그렇게 민망한지나 알려줬으면 한다. 

“너한테 지상고 농구부 사람들은 좀 특별한 것 같았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뭔 소리야?“

”아니……. 그냥 너한테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잘 보이고 싶었다고.“

결혼식은 원래 꾸미고 가는 데잖아.

속삭이듯 말하는 최종수의 뒷목이 벌겠다. 성준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꾸미긴 했다. 누가 말하지 않으면 화보라도 촬영하러 가는 모델 같았다. 연예인이라기엔 당당함이 살짝 부족했으나 제게 명함을 주던 자들의 안목을 고려했을 때 최종수도 제 나이에 이런 식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면 분명 한 장 정도는 받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애인이라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축의금을 내고 나서 합류한 정희찬이 일 분 가까이 최종수 얘기만 했고, 기상호는 옆에 있으면 기가 죽는다며 가까이 가지도 않으려 했다.

거기에 이유가 있었다니.

“네가 부케 받을 줄 알았으면 더 꾸밀 걸 그랬어.“

”뭔…… 아서라. 그랬으면 신랑을 너라고 생각했을걸.”

예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라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미 몇 년은 된 얘기라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 게 억울할 지경이다. 그날의 최종수는 눈치를 보면서도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한 막내 듀오에 의해 사진으로 남았고, 지금도 뒤져보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게 저를 위한 짓이었다니.

”내가 너랑 뭐라도 할 것 같았대.“

”누가?“

”제수씨가.”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선은 여전히 애매한 자세로 구겨진 최종수에게 고정된 채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도 않은데 고작 저 하나 때문에 성에 차는 준비 하나 제대로 못한 채 따라 나섰을 그의 심경을 유추하기 어렵다. 하루라도 준비할 시간이 있었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하다가 관두었다. 확신하긴 어렵지만 공태성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제게도 화를 냈기 때문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성준수는 마구잡으로 떠오르는 말들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했다. 좀처럼 하지 않지만 아마도 네가 가장 좋아할 바로 그 말을.

”종수야.”

구겨진 몸이 천천히 움직인다. 각도가 바뀌고 눈이 마주쳤다. 그때 바로 알았다면 별일 아니라며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날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최종수에게는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진짜 뭐 하는 새끼지. 어이가 없는데도 웃음이 샌다.

“……. 야. 너 지금 좀 무서우니까 그냥 말로 하면 안 돼?”

최종수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 얼굴로 눈치를 본다 한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냥 귀여울 뿐이다.

“하여간 귀여운 새끼…….”

“뭔 소리야?”

영문도 모르고 눈만 깜빡이는 놈을 끌어안는다. 여전히 단단하고 두툼한 선수의 몸인데 제 품에서만 부드러워진다는 게 좋았다.

이제 애인만으로는 성에 안 찬다. 성준수는 또 다짐했다. 역시 결혼을 해야겠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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