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쫑/태은] 성준수가 공태성한테 결혼 상담하는 무료배포본

2023년 10월 대운동회에서 실물 배포했습니다

! 성준수/최종수/공태성 프로, 서은재 의사 (분류는 아직 못 했음)

! 태성은재가 결혼했고 준수종수는 아직입니다.

! 작성자가 서울 토박이라서 지역 특색을 서울밖에 모르는 바람에... 태은 대사는 진짜로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만 어라? 싶어도 그냥 눈 감아주세요...

“결혼하면 어떠냐고요?”

공태성이 막 구운 삼겹살을 상추 위에 얹으면서 물었다. 제대로 들어놓고도 되묻는 싸가지를 지적하고 싶었으나 오늘은 이 새끼 비위를 맞춰 주기로 했다. 지내온 세월도 있고 나이도 먹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빡치면 일단 멱살부터 잡고 보는 일은 없어졌지만 사람 성질이 어디 가진 않는 법이다. 성준수는 다 떨어진 소주병을 옆으로 치우고 새 병을 땄다. 잔을 받는 건 오직 공태성 몫이다. 드래프트 지명을 마치고 무사히 프로 데뷔에 성공한 뒤부터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저를 보고 그가 가볍게 곁눈질만 했다.

“햄은 왜 그걸 지금 와서 물어본답니까. 남사시럽구로…….”

“결혼하면 어떠냐는 질문이 민망하면 결혼은 왜 했냐?”

“이거 햄 아니었음 내한테 한 대 맞았다.”

고기가 두 점, 양파절임이나 파채 같은 것들이 우르르 쌈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성준수는 아까 놓았던 고기를 뒤집었다. 제대로 익었으니 타이밍을 봤다가 자르기만 하면 된다. 그 큰 걸 입에 욱여넣으면서도 공태성은 집게를 쥔 손과 제 얼굴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이 햄이 안 어울리게 와 이라노. 대충 그런 대사를 써 붙인 듯한 얼굴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얻어가야 할 정보들이 있다. 성준수는 마음을 굳게 고쳐먹었다.

“너 내가 최종수랑 만나는 거 알지.”

공태성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커밍아웃이랄 것도 없었다. 최종수와 처음 키스했을 때 비슷한 경험이 있을 듯한 사람 목록 최상단에 있는 게 공태성뿐이라 상담을 했을 뿐이다. 그는 제가 게이인 것보다 상대가 최종수라는 사실을 더 놀라워했다. 어째 이상하리만치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니 이런 식으로 얼굴 보는 티를 낸다며 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걔랑 결혼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야 한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머리는 좋은 놈이니 일련의 흐름으로 미루어 볼 때 제가 왜 밥이나 먹자고 불렀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햄요.”

“뭐.”

“내 이런 질문 안 할라 캤는데…… 가가 그래 좋나.”

공태성에게 최종수란 여전히 최종수 선수다. 최세종 아들, 장도고 에이스, NBA 코트를 누비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한국인, 국가대표 농구 선수, 뭐 그런 수식어들 사이에 최종수라는 이름을 두고 있다. 그 안에 ‘성준수 애인’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만 한평생 남자를 그런 대상으로 본 적도 없는 놈에게 그런 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이제 그 수식어를 달아 줄 마음이 드나 보다.

저 질문은 공태성이 서은재와의 결혼을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했던 말이다. 공태성은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은 맨정신으로 너무 좋은데 이 고민이 제 아집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그때 저는 다른 미사여구를 전부 치우고 단순하게 말해보라고 반문했다. 공태성은 좋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서은재도 알고 있고, 볼 때마다 말하고 있고, 할 수 있다면 이 말을 잊어버릴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뭐, 아무리 날고 기는 운동 선수라도 치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수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성준수는 이왕이면 밥이 잘 나오는 결혼식장을 골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때는 반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 좋아.”

“왐마야…….”

종업원이 두고 간 김치말이국수 그릇을 들고 국물부터 마시는 공태성을 보면서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생각이 든다. 이 새끼 지금 김칫국 마시는 중이라고 꼽주는 건가? 지는 결혼했다고 유세 떠는 건가? 짜증은 났으나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존나 유난 떠는 것 같았다.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작년부터 했다.

작년 시즌이 한창일 때 상대 팀 파울로 인해 인대 파열 진단을 받은 최종수가 거진 한 달 반을 결장하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당일 경기가 끝난 뒤 물리치료사에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준수 씨가 최종수 선수랑 친하지 않나요?”

제가 아무리 조심해 봤자 경기 중에 다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이미 다쳤는데 뭘 어쩌기보다는 재활이 잘 끝나기를 바라는 게 주구장창 걱정하는 것보다야 백 배 낫다는 걸 아는데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날고 기는 농구 선수 이름에 반드시 이름이 올라오는 애인이 다치는 건 선수라서 어쩔 수 없기도 하거니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관리에 철저한 놈이니 후유증 없이 코트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별걱정은 안 됐다. 아예 안 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선수 목록에서 최종수를 내려야 하는 감독이 저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할 테니 그건 괜찮았다. 하물며 이 얘기를 남의 입으로 듣는 것조차 상관없었다. 저도 시즌 중에는 제 경기, 제 관리에 더 힘을 쏟는 주의라 나중에 듣고 연락하는 경우가 더 많았건만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기분이 안 좋았는지.

최종수는 구단 병원이 본가에서 더 가깝다는 이유로 사람을 불러 청결만 유지하는 방식을 차용해 자가를 방치했다.

“야. 나 인대 파열이래. 최소 3주. 오늘 깁스하고 왔어. 차라리 아예 찢어져서 수술하는 게 회복은 더 빨랐을 거래.”

그야 그렇겠지. 원래 어중간하게 다치는 게 제일 귀찮은 법이다.

최종수는 담담하게 그동안 어디서 뭘 할지, 집은 어떻게 할 건지 등등을 털어놓았다. 부상으로 쉬어야 할 때면 늘상 본가에 가는 이유가 최세종 때문임을 안다. 그동안은 선택이었으나 이번에는 필수였다. 하필 최세종이 해설위원으로 나온 자리에서 다쳤기 때문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당시 눈에 띄게 놀랐음에도 곧 평정을 찾았다는 말이 많던데 그와 함께 떠도는 두 가지 의견을 최종수가 못 보길 바랐다. 인대 파열은 깁스 상태에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게 빠른 회복의 지름길이므로 어쨌든 보긴 했겠지만……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있어. 그래야 빨리 낫지.”

이상하리만치 뜻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보고 싶다느니, 출근 전에라도 잠깐 들르겠다느니,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통화가 끝날 때까지도 못했다. 최종수도 그런 말을 바라고 전화한 게 아니었는지 잘 자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한다. 대체 이 기분은 뭐지.

다음 날 3쿼터 시작 전에 투입되어 4쿼터 마지막까지 27점을 쑤셔 넣고 인터뷰를 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아, 나 지금 빡친 거구나.

평소 같았으면 열다섯 번 던졌는데 그중 아홉 번이 들어갔으면 오늘 경기 찢었다고 입이 귀에 걸려도 모자랐을 텐데 그럴 기분이 안 들었다. 아마 카메라도 제가 좋아할 거라 상정하고 인터뷰를 잡은 것 같은데 원하는 그림이 안 나와서 당황한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할 말 제대로 못 하고 단답이나 갈겼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으나 그래도 뚝딱거리기는 했다. 늘어난 건 표정 관리를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이겨서 기쁘고, 내 실적이 있어서 기쁘고, 근데 마냥 기뻐하긴 그렇고, 대충 그 정도. 그 뒤에 모여서 간단하게 피드백을 받고, 마사지를 받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퇴근하면서 다짐한 것이다.

최종수랑 결혼해야겠다고.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야 할 순번이 밀렸다는 게 빡쳤다. 0순위는 병원, 1순위는 본가, 2순위는 자가. 같이 사는 중이니 제 순번도 2순위라는 뜻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도 성에 차지 않지 않았다. 최세종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건 알지만, 어쨌든 나도 현역 농구 선수고 부상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안다. 내가 다친 배우자 수발 하나 못 들어줄 것 같은가? (물론 이 질문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확률이 현저하게 적어서 남에게는 하지 않았다.)

“너 제수씨 다쳤다고 연락 받아 본 적 없지.”

“없죠. 있음 큰일 아이가.”

“제수씨는 있을 거 아냐.”

“그야…… 뭐…….”

공태성도 결혼했던 해에 손목 부상으로 정밀 검사를 위해 며칠 입원했던 적이 있다. 입원은 대체로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편인데, 이미 결혼한 상태라 1순위 보호자가 배우자로 되어있어서 서은재에게 연락이 갔었다고 한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집에는 씻거나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정도로만 들르고 시간만 나면 병실에 와서 퇴원할 때까지 살뜰히 보살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종수와 전화를 끊은 직후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사흘이나 골몰히 생각에 잠겼던 걸 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시큰둥하게 넘겼는지 모르겠다. 그때 자각했으면 결혼이 좀 더 빨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햄요.”

“뭐.”

“그…… 쨌든 여서는 안 되는 거 아이가.”

“하…….”

그래. 문제는 그거다.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

“입양이 제일 빠른데 한 살이라도 나이 차가 있어야 가능하대.”

“…… 내는 가능하다캐도 싫을 것 같은데요. 가족이랑 부부가 같나.”

내 말이!

제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리쳤을 것이다. 가족이랑 부부가 같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같지 않다. 알아보니 합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있는 경로는 존나 간단하던데 왜 가족은 되면서 부부는 안 되냐는 거지. 내가 남자를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 하는 건 맞는데 아무튼 말이 안 되지 않냐? 부부 한다니까? 하겠다고, 씨발!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애꿎은 가위질로 화풀이를 대신하고 있자니 그릇에 고기가 떨어진 걸 보자마자 갈매기살 4인분을 추가 주문한 공태성이 실실 웃었다.

“솔직히 그때 내한테 장난치는 줄 알았다이가. 뭐…… 남자를 좋아할 수는 있죠. 근데 햄이랑 최종수가 뭔 접점이 있어가 사귀네 마네 하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는 하다. 저마저도 최종수와 그런 식의 점점이 생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래놓고 인제 와서 죽이네 마네 했던 놈 앉혀놓고 결혼?”

이건 공태성한테 처음 커밍아웃 했던 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주변 기혼자 중에 가장 말하기 편한 사람이 공태성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특혜일 수도 있고, 어떻게 생각하면 얕잡아 보였다는 건데 공태성은 다행히도 전자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뭐, 사실 많이 편해지긴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놀릴 심산으로 기상호처럼 쪼개는 놈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햄요.”

“왜.”

“솔직하게 말하면 내 다 도와 준다.”

“뭘.”

“내 부럽나.”

최종수를 존나 오래 만나다 보니 간혹 직감이 들 때가 있었다. 뭔 소리냐면, 정해진 대답이 있고 반드시 그것만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그걸 가끔 좆같이 구는 후배놈한테서 느낄 줄이야. 옛날 같았으면 못 했을 것이다. 그냥 집어치우라며 술병을 거꾸로 들었을지도 모르고 가위를 내던질 수도 있었다. 그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새끼를 혼자 두고 가버리면 농구 선수의 체면이 있을 테니 지가 계산하겠지. 그 뒤로 불티나게 떨리는 스마트폰은 꺼버리면 그만이다.

“어.”

아마 직감 따위가 아니었어도, 이 새끼가 이딴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짜로 세월이 많이 지났고, 저는 이제 10대가 아니며 누군가를 책임지고자 할 때는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순전히 놀릴 마음뿐이었던 공태성이 생각지도 못한 즉답을 듣고 놀랐는지 마시던 술을 뱉는다. 성준수는 꼽 대신 휴지를 뽑아 줬다.

“내 알던 성준수가 아인데?”

“반말.”

“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는 후배를 보면서 성준수는 그냥 웃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때 심하게 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들이 똑바로 하기만 했어도 그렇게까지 지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들 되도 않는 일로 화를 내고 싶을까. 어쨌든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됐고, 그로 인해 그들이 저를 씹새끼라고 생각해도 부정할 마음이 없었다. 그냥 씹새끼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지? 공태성도 제 그런 성격을 어느 정도 감안했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무디게 만든다. 그게 저희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좋게 반영되었을 뿐이다.

“내 결혼식 때 햄이 부케 받았다 아이가.”

“어.”

“그거 은재가 하자 했다.”

잘 익은 고기를 바깥쪽으로 밀어놓자 공태성이 또 야무지게 쌈을 쌌다.

“제수씨가 알아?”

“내는 말 안 했는데 기양 아는 거 같던데요. 부케 누구한테 줄지 식장에서 계속 물어봤는데 당일날 말해 준다 하고 계속 말 안 했댑니다.”

“나한텐 왜 줬는데.”

“은재가 말해도 될 거 같으면 그때 하라 했거든요. 그게 오늘인갑다.”

“왜 줬냐고.”

잔이 비어있길래 채워 줬더니 그걸 또 비운 놈이 머쓱하게 웃는다.

“햄이 가랑 뭐라도 할 것 같다던데요. 그게 결혼이면 더 좋고.”

그날 우리 둘 다 억수로 힘들었는데 기분은 째졌다이가. 햄도 그 기분을 알 때가 올 거 같았대는데 거따 대고 뭐라카노.

그 뒤엔 그냥 먹고 마시면서 결혼식 후일담을 들었다. 공태성이 말하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어서 재수 없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부럽기도 했다. 아마 제 성격상 죽었다 깨어나도 최종수를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끝도 없을 테니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왜 하는지만큼은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걸 누군가가 들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 좋은 기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제수씨. 전데요. 공태성 지금 택시 태워 보냈습니다.”

결국 그 좋은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술을 퍼마신 공태성이 자빠져서 택시를 불러야만 했다. 이 무거운 놈을 여자 혼자서 어떻게 데리고 들어가나 싶지만 제가 참견할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귀가 보고만 대신해 줬다. 서은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익숙하게 들었다.

「가는 준수 씨만 만나러 가면 술을 마시대요.」

“뭐…… 오늘은 제가 먹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해해 주십쇼.”

무거운데,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제 우려와 비슷하여 잠깐 웃었다.

“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

“제가 최종수랑 뭐라도 할 것 같아 보였나요.”

수화기 너머가 잠시 침묵이었다. 본인이 했던 말이니 제가 공태성에게 무슨 말을 들었을지는 알 것이다. 차를 댔던 공영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내내 침묵이었던 서은재가 머쓱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최종수 선수는 제가 잘 몰라가 뭐라 말은 몬하겠는데요.」

“네.”

「성준수 씨는 가가 말해 줘가 쪼매 안다 아입니까.」

“뭐…… 네.”

공태성이 말을 안 했다는 거 보면 서은재는 제가 최종수와 사귄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사귄 뒤에도 공태성에게 종종 얘기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서은재가 들을 수 있는 최종수 소식은 공태성이 최종수와 붙을 때가 아니면 거의 없는 게 맞다.

「제가 들은 성준수 씨는 그냥 고닥교 후배 결혼식 온다꼬 누굴 데려올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보통 그런 자리엔 중요한 사람만 온다 아인교.」

그런가, 하고 생각한다. 듣고 보니 왜 거기에 최종수를 데려갔는지 모르겠다. 그냥 공태성 결혼식이라 축의금 좀 갈길 생각으로 준비하다가 마침 최종수도 쉬는 날이길래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던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따라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 물어본다 한들 기억이나 할지 의문이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최종수니까 물어봤을 것이다. 다른 놈이랑 살고 있었으면, 그날 다른 집에서 일어났었으면 그냥 후배 결혼식이라 대충 설명하고 혼자 갔을 것이다. 왜 물어봤을까. 쉬는 날 애인을 혼자 두는 게 별로라서 물어봤던 건가. 제 일인데도 도무지 모르겠다.

남의 배우자랑 길게 통화하는 것도 실례고, 이 정도면 들을 건 다 들었다 싶어서 적당히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밤공기는 차고, 오늘 운동 가는 거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던 최종수는 시간이 늦었으니 자거나 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전화해서 자지 말라고 할까. 잘 것 같으면 팔굽혀펴기라도 해서 정신 좀 깨라고 할까.

별 쓸모없는 고민을 하면서 정산하고 나가는 도중에 호랑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언제 와?」

졸음이 묻어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웬걸. 일어난 지 한 시간은 된 사람처럼 쌩쌩하다.

나 지금 차 빼는 중. 지금 가. 왜? 올 때 마트 가서 머스타드 좀 사 와. 다 떨어졌어. 안 자냐? 엄마 영화 찍은 거 OTT에 올라와서 그거 보려고. 그럼 좀 기다렸다가 같이 봐. 자지 말고 기다려라. 물어볼 거 있어. 뭔데? 가서. 아, 뭐냐고. 궁금하면 자지 말고 기다려. 운전해야 되니까 끊는다. ……성준수 진짜 짜증 나.

불만과 함께 뚝 끊어지는 전화마저 최종수답다고 하면 이제 콩깍지 같은가. 그렇게 보인다면 딱히 부정할 마음은 없다.

공태성은 서은재가 필요하다는 걸 모두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정확히는 쟤 입에 들어가는 밥을 직접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도 한상 가득 밥을 차려준다고 들었다.

성준수는 최종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걸 챙겨주고픈 마음은 없다. 애초에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문장이라 빈말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걔가 곤란해할 때, 해결책이 필요할 때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해지면 가감없이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최종수가 무드를 중요시하는 놈이니까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액셀을 밟았다. 어디에서 출발하든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아도 찾아갈 수 있는 집에 가면, 지금은 비록 2순위일지언정 같이 있어 줄 애인이 저를 기다린다. 이걸 어떻게든 1순위로 만드는 게 새로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니 나쁘지 않다.

성준수는 또 다짐했다. 역시 최종수랑 결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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