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 2월의 하이라이트 사건
탐정은 사건을 꺼린다
※탐정 役 방송부원 종수 & 괴도 상호
탐정, 다른 말로 사설 형사 혹은 사립 형사.
영미권에서는 19세기에 〈셜록 홈즈 시리즈〉가 등장했을 정도로 탐정의 수사 권한이 인정되어 왔으나, 국내에서 탐정을 자칭하거나 사설 탐정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예를 들어 현실에 괴도가 있다면, 법적으로는 그냥 도둑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괴도가 흥미로운 예고장을 보내고 마법 수준의 마술로 부정부패로 얼룩진 재벌을 털어간다면, 재미있는 컨텐츠로 인식될 것이다. 즉 현실의 탐정이 불법이어도, 그 탐정이 일반 경찰을 뛰어넘는 능력을 선보인다면―
「고등학생 탐정 최종수 다시 사건 해결..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
언론에서 최선을 다해 다룰 것이다.
상대가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말이다.
"얘 우리 학교 다니지 않아?"
"맞아, 최세종 아들."
"얘 초등학생 때도 사건을 해결했다잖아."
"진짜?"
유수고등학교 2학년 교실들은 학교 신문이 아닌 국내 언론사에서 내보낸 뉴스로 소란스러웠다. 얼마 전 일어난 살인 사건을 고등학생 탐정 최종수가 해결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 제목을 보면 사람들은 최종수가 범인을 잡고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일갈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종수야, 아빠가 해결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알았지?]
"……."
[괜찮을 거야. 응?]
그 화제의 인물, 최종수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학교 뒤편의 숲에 숨어 있었다. 담임 선생이 그의 아버지 최세종에게 연락이 왔다고 호출했고, 선생의 허락 아래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알아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우리 아들, 사랑한다.]
"저도요."
최종수, 그는 범인을 잡을 정도로 총명했지만, 그 눈에는 총기聰氣는커녕 생기도 없었다.
[종상] 2월의 하이라이트 사건
탐정은 사건을 꺼린다
"우리 종수는 꿈이 뭐예요?"
"경찰대학에 가서 경찰이 되고 싶어요."
최종수의 꿈은 훌륭한 경찰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최세종은 경찰대학 출신으로, 서울특별시경찰청장으로서 언론에도 몇 번 얼굴을 비춘 바 있었다. 미스코리아의 남편이라는 것이 조금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도덕이 아닌 바른 생활을 공부했던 시절, 최종수는 첫 사건을 해결했다. 지금의 그는 사건이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아니, 아예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겠지만, 같은 반 여자애의 실내화 가방이 없어진 일이었다. 그 범인은 다른 반 여자애. 친구가 자신처럼 방과후 교실에 남아줬으면 해 숨겼다고 했다.
"종수 대단하다…."
"멋있어!"
그 나이대 아이들은 멋있는 것을 동경했고, 최종수는 자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아빠처럼 멋있어졌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자랑했더니 엄마도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침 그때는 소년 탐정이 등장하는 만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탐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신용정보법 제40조 제5항…"
그러나 사회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을 때, 경찰의 꿈에 다가서기 위해 미리 법 공부를 하면서 탐정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탐정에 가까운 직업인 민간조사사도 불법의 영역에 걸쳐 있었다.
[무능한 경찰은 꺼져라]
[고딩만도 못한 XX]
아버지가 욕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당장 이번 뉴스 기사로 뜬 살인 사건만 해도, 분명 아버지 후배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누가 유출했는지 그가 해결했다고 퍼져 버렸다.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말도 한 적이 없었다. 기사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면 고등학생에게 사건 해결을 맡기는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내용이었지만 제목부터 오해하기 좋게 써 놓았다.
"종수,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시사 프로그램 PD."
현재 최종수는 유수고의 방송부원으로 최대한 사건으로부터 멀어졌다.
차라리 사건을 추적하는 시사 프로그램 PD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언론의 작태부터 파헤치겠다고 결심했다.
"부장, 큰일났어요!"
"무슨 일인데?"
2월, 머지않아 있을 졸업식과 종업식 준비로 방송부가 바쁜 날이었다.
"3학년 사진들이 없어졌다고?"
"네!"
졸업식에서 상영하기로 예정된 축하 영상을 위해 만든 사진 파일이 사라졌다. 백업해놓은 USB마저 도둑맞았다.
"이 종이쪼가리는 또 뭐야."
"USB가 있던 서랍에 들어 있었어요."
현장을 처음 발견한 1학년 부원 조재석은 그곳에 있었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파일은 잠깐만 가져가겠습니다.
'장난'만 조금 치고 돌려줄 생각이니 걱정하지 마시길.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는 없잖아요?
물론 괴도의 라이벌, 탐정이 나서신다면 즐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괴도 스토퍼」
"지금 누구 엿멕이노!"
"와악, 참아! 수진, 반대쪽!"
1학년 공태성은 탁자를 내리치며 화를 냈다. 조재석과 다른 1학년 우수진이 그를 말렸지만 방송부가 사진을 모으기 위해 들인 노고를 감안하면 그들도 속으로는 분노했을 것이다. 체육대회와 학예회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녀야 했던 노고를 같은 방송부가 아니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1학년들, 앉아."
부장, 최종수의 선언에 싸늘하게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 상황에서 제일 분노한 사람은 부장일 것이 뻔했다.
"어쩌지, 카메라 파일 전부 옮긴 거였잖아."
"선생한테 말하면 깨질 텐데."
"성격이 그따위니까 차인 걸 왜 우리한테 화풀이하고 X랄인지."
다른 2학년들, 강인석, 지국민, 성준수도 이 희대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했다.
최종수는 조용히,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방송부원들이 이런 장난을 쳤을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저 공태성. 2학년들도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방송부에서 허투루 일하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졸업하는 3학년들은 방송부 일에서 손을 뗐다. 그렇다면, 범인은 외부인일까. 외부인이라면 유수고 학생과 교사 전원이 용의자가 되는 셈이었다.
"탐정…."
탐정은 그 표현이건 존재건 다 거슬렸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USB를 되찾는 일이었다.
어떤 장난을 칠 것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잡아내겠다. 최종수는 카드를 구기고 머릿속으로 동기를 부여했다.
유수고 방송실은 방송부원 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방송실 열쇠는 최종수가 관리했고, 여벌 열쇠는 방송부 담당 교사에게 있었다.
"최근 방송실을 개방한 일이라면…"
사흘 전 태초중에서 교류 차원으로 방문한 방송부 대상인가. 최종수는 그날 방문했던 태초중 방송부 명단을 훑었다. 그들을 인솔한 태초중 방송부 담당 교사도 용의선상에 넣을까 했지만 그는 유수고 방송부 담당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것 같았으니 배제했다.
"부장 정희찬, 기상호, 김은수, 민승호, 이주성, 진유석…"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3학년들이 제일 많이 돌아다녔으니 유력한 용의자들이었다.
"아, 기상호 이 녀석."
그중 최종수의 기억에 많이 남은 사람은 기상호.
기상호는 방송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부장을 포함한 다른 부원들은 유수고의 우수한 방송 시설을 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이댔는데 말이다. 활발한 조재석은 정희찬에게 연락처를 주면서 나중에 유수고 입학하면 꼭 공개채용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특채는 안 된다고.
'신영규라는 선배 있지 않았어요?'
기상호가 물어본 것은 방송부에 있었던 3학년들.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 전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 물어봤었다.
"이 녀석이 제일 수상한데."
3학년을 콕 집은 것도 그렇고. 최종수는 태초중에 합법적으로 방문할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혼자 해도 괘안겠나?"
"괘안타."
태초중 방송부도 종업식과 졸업식 준비로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상호는 그가 맡은 영상 제작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며 다른 부원들을 내보냈다. 엔지니어 기상호의 손재주는 방송부 3학년 전체가 인정하는 실력이었다. 장비를 다루는 능력, 고치는 능력.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들리던 곳에 몇 분 뒤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야. 네가 USB 가져갔냐?"
최종수.
"서울청장 아드님이 이렇게 막 들어와도 돼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날 방송부 열쇠를 만진 거 너밖에 없다고 했거든."
"오, 그걸 다 기억하셨네."
기상호는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장난만 치고 돌려준다고 했잖아요. 그걸 못 참으셨네."
"그걸 어떻게 믿냐?"
"뭐, 좋아요. 어차피 손은 다 봤거든요."
휙, USB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최종수의 손에 안착했다.
"왜 이런 짓을 했냐?"
"말씀드렸잖아요? 장난이라고요."
기상호는 정말, 아무 의도도 없었다는 듯 양손을 들어 손바닥이 최종수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지만 장담해요.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예요."
"무슨 헛소리를―"
"형사를 꿈꾸는 당신께 드리는 선물!"
순간 창문 바깥에서 강하게 불어온 바람에 최종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기상호가 없어졌다.
[3년 전 태초중 추락 사고 진상 밝혀져.. 범인은 학교 폭력]
[유수고 방송부 양심고백? 졸업식 대 폭탄]
"와, 부장, 봤어요?"
"봤어."
새 학년이 시작되고, 2학년들은 3학년으로 올라갔다.
3학년은 입시 대비를 위해 학업 외 활동을 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었다. 방송부는 업무가 워낙 많은 만큼 1학기 한정으로 활동을 허용했지만, 방송부 3학년들도 학업을 챙겨야 하는 만큼 1학기 초반에 싹 후배들에게 인계해주고 도와주는 정도에 그쳤다.
"이번에 면접 참가하는 학생들이지?"
"자리에 앉아."
3학년들은 공개 채용에 참여하는 1학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면접 순서는 PD, 아나운서, 작가, 엔지니어. 최종수는 부장 겸 PD로서 PD 희망 부원들 면접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기상호입니다."
최종수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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