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y

[뱅상] 2월의 세레나데 사건

괴도는 사건을 훔친다

Idyll Garden by 목가
3
0
0

※괴도 병찬 & 탐정 役 플라워 아티스트 상호

서울 갑일콘서트홀 위로 경찰 헬리콥터 수 대의 조명이 내리쬐었다. 무언가를 쫓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조명들은 사건의 냄새를 쫓아온 기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보다도 더욱 존재감을 과시했다.

“녀석은 아직 이 안에 있다!”

“놓치지 마!”

홀 내부에서는 서울특별시경찰청에서 나온 경찰들이 분주히 뛰어다녔다. 때아닌 정전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손전등과 동료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들의 목청만큼 찬사를 받아야 했던 공연은 중지되고 포스터와 굿즈들은 쓸쓸하게 묻혔다.

“오예~, 스탠드업 마술 대성공.”

사건의 시작은 괴도 P.

사각으로 숨어든 그는 얄미울 정도로 상쾌한 목소리로 자신의 실력을 자찬하며,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인질―사실 그를 잡기 위해 특별 고용된 수사관detective과 눈을 맞췄다. 수사관은 평소 운동을 하는지 몸이 탄탄하고 키도 평균보다 훨씬 컸지만, 저 경찰들과 비교하면 여리다고 할 만했다. 물론 그런 몸을 번쩍 들어올리는 나, 괴도 P야말로 대단하지.

“어때, 탐정 씨. 멋지지 않아?”

“저, 저 탐정 아닌데요.”

“어, 포인트가 그쪽?”

괴도 P는 인질을 탐정detective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사자가 부정하니 정정했다.

“그럼 다시 물을게, 기상호.”

기상호. 나이 29세. 직업 플라워 아티스트.

특이사항 부산광역시 소재 지상고등학교 명탐정이자 對 괴도 P 전용 신규 병기.

“멋지지 않아?”

기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망했다.

[뱅상] 2월의 세레나데 사건

괴도는 사건을 훔친다

2월 16일 PM 12:00.

[오늘 괴도 P가 예고장을 보내왔다는 소식입니다.]

“점마 또 저러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다가오자 겨울 추위도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상호의 꽃집의 매출도 다시금 상승세를 보였다. 겨울에도 조화를 팔아서 매출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보통 꽃집에 오는 사람들은 조화보다는 생화를 기대하고 오고는 했다.

“상호!”

“희찬이, 어쩐 일이고?”

“친구가 친구 보러 오는 것도 안 되나?”

“니 경찰 아이가.”

기상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 정희찬을 장난 섞인 애정으로 맞이했다. 정희찬은 서울특별시경찰청 형사과 강력계 소속으로, 기상호와는 중학생 때 친구가 되었다. KTX로 가는 데 2시반 반 조금 넘게 걸리는 부산에서 만난 인연은 서울에 자리잡은 지금도 10년 넘게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에헤이, 엄연히 수사하러 온 거다.”

“수사?”

“기상호. 28세. 190cm. 85kg. 가족 부, 모, 형, 누나. 김해 태생.”

정희찬은 기상호와 손님 간 1 대 1 대화가 필요할 때 쓰는 테이블에 털석 앉고는 마치 용의자 취조하듯 기상호의 신상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기상호는 팔짱을 끼고 어디 더 말해보라는 자세를 취했다.

"―특이사항 지상고 명탐정."

"꺼지래이."

"아, 상호! 목 조인다! 악!"

정희찬의 말을 마치자마자 기상호는 친구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대로 끌어내기 위해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현직 형사를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기상호는 포기하지 않았고 정희찬이 열심히 사과하자 겨우 풀어주었다.

"니 추리 덕분에 해결한 사건 많다 아이가. 그 까다로운 팀장님도 네 추리를 듣고 납득하셨고."

"니랑 준수햄이 들어줬으니까 들어준 거제."

"내랑 준수햄 봐서라도 들어주면 안 되겠나?"

세간에는 당연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상호는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의 해결에 관여했다. 첫 사건을 목격한 뒤, 사건을 수사하러 온 경찰들 중 고등학생 시절 지인 정희찬과 성준수에게 귀띔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수사한 결과 범인이 잡혔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추리 잘 들었어.'

'그런데 너, 기분 나빠. 불쾌해.'

기상호는 한숨을 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뭐고."

발화는 A. J. 래플스, 만개는 아르센 뤼팽.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괴도'가 현실에 구현된 듯한 이가 한국에 있었으니, '괴도 P' 되시겠다.

그의 타깃은 각종 예술품. 미술과 음악을 가리지 않았다. 또 반드시 예고장을 보내 경찰들을 모았다. 첫 행적은 인천 소재의 부연그룹 소유 갤러리에서 명화를 훔쳐간 것이었는데, 그 명화가 얼마 안 지나 돌아오더니 위조품이라는 것이 까발려져 부연그룹은 세간의 비웃음을 받았다.

그 뒤로도 그는 수많은 절도를 저질렀지만, 빼앗은 물건을 절대 소유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정당한 소유주에게 돌아갔고, 사람들은 그를 의적이라고 칭송했다.

"괴도 P가 예고장을 보내왔다."

정희찬은 지문 등 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 포장으로 밀봉된 카드를 테이블에 올렸다. 기상호는 고개를 숙여 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

「오늘 저녁 7시, 갑일콘서트홀의 저주 서린 콘서트를 끝내러 가겠다.
「7시 1분의 세레나데」가 더렵혀지지 않도록.

PS. 피아노 조율을 확인해주길.

P」

P 자를 써서 괴도 P였구나. 글씨 상태로 보아 인쇄기로 뽑은 것 같으니 필적 감정은 안 될 것 같았다. 애초에 기상호에게는 감정鑑定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7시 1분의 세레나데」가 뭐고?"
"니 모르나?! 1년 전 사망한 천재 피아니스트 권혁의 유작이다."

정희찬은 「7시 1분의 세레나데」와 그 작곡가인 권혁에 대해 설명했다.

권혁은 1년 전 일본에서 콘서트를 끝낸 날 밤 숙소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한국 경찰과 일본 경찰의 합동 조사 결과 유서가 발견되었고 자살로 결론났는데, 유족들은 유서의 내용이 거짓이라고, 자살했을 리 없다고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행적 중 특기할 만한 것은 해외 우편을 이용한 것으로, 이날 스승에게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면서 우편을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 이 우편에 동봉된 피아노곡이 바로 「7시 1분의 세레나데」. 그 전날에도 가족들에게 한 권을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

"한 권은 가족들, 또 한 권은 스승에게 있었지만 그 원본이 되는 자필 악보는 행방불명 상태였거든."

권혁은 작곡을 할 때 손으로 쓰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원본이 되는 자필 곡이 존재해야 했다. 누군가는 '세레나데'라는 제목으로 보아 그의 연인에게 보냈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정작 그 연인이 누구인지 밝혀진 적이 없어 추측의 영역으로 남았다.

"그게 이번에 귀국하는 피아니스트 장서윤의 손에 있다는 게 확인됐다."
"그 사람은 누고."
"상호, 니 뉴스 좀 보고 살아라."
"뉴스도 뉴스 나름이제."

기상호는 친구의 탄식을 듣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사회면에 「피아니스트 장서윤… 이번 달 말 귀국, 전국 순회 콘서트 예정」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전국 순회 콘서트의 첫 공연이 서울 갑일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서윤은 권혁과 친한 사이였다고 하대. 이번 콘서트에서 그 「7시 1분의 세레나데」를 공개한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안 돌려주고?"
"콘서트 끝나고 이야기하겠댄다."

기상호는 몇 가지 정보를 더 찾다가 스마트폰을 껐다. 오늘은 꽃집을 일찍 닫아야 할 듯했다.

PM 2:00, 범행 예고 시간 5시간 전.

정희찬이 돌아간 뒤, 기상호의 꽃집은 다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병찬햄."
"안녕, 상호."

가장 먼저 들어온 손님은 단골인 박병찬이었다. 직업은 예술가. 어떤 예술가인지 물어봤지만 예술에는 비밀이 있는 법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매일 온다던가 매주 온다던가 등 규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꽃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은데 얼굴을 익힐 정도였으니 자주 오는 인물, 즉 단골이라고 할 만했다.

"조화 하나 줘. 붉은 국화로."
"붉은 국화. 이번에도 선물로 주는 건가요?"
"그렇지."

기상호는 얼마 전 주문한 조화 중 붉은 국화를 꺼냈다. 박병찬은 늘 선물로 주기 위해 꽃을 샀다. 희한하게 생화는 취급하지 않고 조화만을 골랐다. 생화는 그 자체로 예술적이지만 조화는 사람의 손을 타야 예술적으로 변한다는 이유였다. 플라워 아티스트인 상호는 조화가 예술품이고 생화야말로 사람의 손을 타야 예술적이지 않게 되냐고 생각했다.

"맞다, 괴도 P가 이번에 나타난다던데."
"그렇다대요."
"지난 번 실패의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박병찬의 카드를 받은 기상호의 손이 잠시 멈췄다.

괴도 P는 지난 번 목표였던 보석을 훔치지 못했다. 경찰 내부의 아이디어로 잡지 못했으니 외부의 아이디어를 빌려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외부의 아이디어 제공자가 기상호였다. 하지만 다음 날 그 보석이 부정한 방법으로 입수된 것이 알려졌고 시민들은 괴도 P의 편을 들었다.

"저야 모르죠."
"그렇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기상호는 괴도 P를 다시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박병찬은 미소를 짓고 국화를 받아들었다.

PM 5:00, 범행 예고 시간 2시간 전.

"안녕하세요, 준수햄."
"어서 와라."
"팀장님은요?"
"저기."

장서윤의 첫 콘서트가 예정된 갑일콘서트홀에는 괴도 P를 상대하기 위해 특별 편성된 수사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팀원 중에는 정희찬과 성준수도 있었다. 기상호는 정희찬을 따라 들어왔고 성준수에게 인사한 뒤 까다로운 팀장 최종수와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잠깐, 저 사람 일반인 아닙니까?"
"저 사람이 그?"
"피아니스트 장서윤."

장서윤은 잠을 못 잤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고 많이 예민해 보였다.

"수사 관계자니까 협조 바랍니다."

"젠장, 그 괴도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데…"

"금마 저 사람에게도 예고장 보냈나?"

"협박장이었다던데."

최종수는 양해가 아닌 협조를 구하며 장서윤의 불만을 잠재웠고, 정희찬은 기상호에게 장서윤이 받은 예고장, 아니, 협박장을 보여주었다.

찾아내서죽일거다찾아내서죽일거다찾아내서죽일거다찾아내서죽일거다찾아내서죽일거다찾아내서죽일거다

"왐마야."

피로 쓴 듯 새빨간 색으로 인쇄된 글씨.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구조. 이 정도면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와 복수할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랬는데도 콘서트를 한다고?"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해 못할 사정이 있는 거 아이겠나."

팀장님이 얼마나 짜증냈는지 모른다고 정희찬은 몸서리쳤다.

"사실 잘 안 알려졌는데, 장서윤, 유력한 용의자였다."

"진짜가?"

"권혁과 관계 있는 피아니스트들 대다수가 그랬지만…"

기상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를 시기한 범재들.

"참, 피아노 조율은 확인했나? 금마가 괜히 확인하라고 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저기 전속 조율사분이 확인했다고 했다. 이상 없다던데."

"글나."

장서윤 옆에 한 여성이 다가와 쩔쩔매며 그의 기분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저 여성이 조율사인 모양이었다.

"落ち着いてください、チャンさん。"

일본인인가. 기상호는 애니메이션 OST로 익힌 청해 능력으로 의미를 이해했다.

"희차이, 「7시 1분의 세레나데」 악보 볼 수 있나?"

"장갑 껴라."

"안다."

색 바랜 오선지에 크기도 굵기도 불규칙한 음표, 쉼표를 비롯한 문자들이 춤추고 있었다. 자필로 썼다는 것을 증명하듯 새카만 지우개 자국들도 남아 있었다. 또 무선제본 형태가 아니고 스테이플러를 여러 번 박아 고정한 형태였는데, 한 번 잘못 박았었는지 오른쪽 부분에도 자국들이 있었다.

"인터뷰 보면 권혁은 신중한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기상호는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겼다. 둘째 장의 오른쪽 모서리에, 뭔가 붙었다 떨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멋지지 않아?"

괴도 P는 자신의 예고를 그대로 실현했다.

7시에 무대에 오른 장서윤이 바로 괴도 P였다. 그는 권혁을 자살로 위장해 살해했다고 선언하고는 연막탄을 터뜨려 자취를 감췄다. 경찰들이 서둘러 달려갔지만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그는 보이지 않았고, 이어서 콘서트홀이 정전되자 관객들은 혼란에 빠져 밖으로 밀려나갔다.

물론 「7시 1분의 세레나데」 악보는 괴도 P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그, 멋지다는 게 뭘 말씀하시는 건지."

"너, 눈치챘잖아."

그 와중, 관객들 사이에 있었던 기상호는 괴도 P에게 붙잡혔다. 원래는 경찰들과 아이디어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남았다.

"그 악보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읽으라고 만든 거였다는 거요?"

"오, 정답."

악보의 제본 방향.

스테이플러가 오른쪽에 박혀 있었다면, 그것은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이 한국과 반대였다는 뜻. 일본은 세로쓰기를 하던 관습이 남아 페이지를 한국과 반대로 넘겼다. 스테이플러로도 부족해 단단한 목공풀까지 칠했었으니, 본래 의도는 그랬을 것이다.

"원래 그 악보, 조율사분 거였나요?"

"양가의 반대가 심했대. 슬픈 이야기지."

「7시 1분의 세레나데」를 가졌어야 하는 사람은 장서윤의 전속 조율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권혁의 연인이었다. 괴도 P는 안타깝다는 듯 탄식했다.

"하지만 괜찮아. 이 괴도 P가 사랑을 전해주러 왔으니까 말이야. 멋지지?"

"예에, 뭐…"

권혁의 사랑이 담긴 자필 악보는 조율사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아, 권혁과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니야."

"?" 

"지상고 명탐정의 사랑. 추리."

기상호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넣었다.

"탐정, 아니라고요."

한때 기상호는 추리를 좋아했다. 이야기 속 명탐정이 된 것 같다는 기분에 들떴다.

하지만 그의 관찰과 추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쁘고 불쾌한 행위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명탐정과 명추리에 대한 동경은 갈갈이 찢어졌다. 정희찬이나 선배 성준수는 아니라고 말해줬지만, 우정의 렌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마술은 관객이 있어야 예술이 돼. 그래, 조화처럼."

"… 네?"

"나를 그 정도로 막았던 건 너밖에 없어, 상호."

쪽, 따뜻한 무언가가 상호의 볼에 닿았다.

"괴도와 탐정은 라이벌, 라이벌은 연인과도 같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

"괴도 P―!!"

"이런, 쇼를 끝내야겠네. 그럼."

펑!

괴도 P는 다시 연기와 함께 모습을 감췄고, 기상호의 발이 땅바닥에 닿았다.

"상호, 괘안나?!"

"희차이."

"니 등에 그건 뭐고?"

"등?"

정희찬의 목소리에 기상호는 등을 만지작거렸다. 얇은 무언가 같았는데, 정희찬이 떼 주었다.

파란 바탕에 하얀 하트 무늬가 들어간 포장지로 무언가 싸여 있었다. 붉은 국화 장식도 붙어 있었다. 

"바보 아이가. 예술은 예술이지. 사람이 뭔 상관이고."

"어?"

"아무것도 아이다."

기상호는 정희찬과 함께 경찰들에게 돌아갔다. 탐정이 괴도를 믿고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