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뱅

헤르메스

상호병찬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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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노출 있는 옷을 입는다. 야한 쪽 말고. 긴 옷은 활동성을 해치는 경우가 적잖아 있다 보니 대부분 헐렁하고 길지 않은 것들을 입었다. 농구는 특히 그랬다. 이너 안 입으면 큰일 나기 좋다. 근데 몸 좋고 노출할 일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게 있다. 타투라고... 아직도 세간의 인식이 마냥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나쁘지도 않았다. 과하지 않은 타투는 다들 한 번쯤 생각하니까.

물론 박병찬은 그 흐름에 휩쓸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타투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데다가 그거 아프다는데, 아픈 거 참고 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컸다. 부모님 물려주신 신체 소중히 해야지... 그거 젊을 때 하면 나이 먹고 쳐져서 보기 안 좋다는데 꼭 해야 하나? 그래서 병찬은 타투엔 관심도 안 줬다. 아마 평생 할 일 없겠거니 싶었다.

 

근데 구단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 한 명이 타투를 해보고 싶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뭘 할까? 하며 도안을 보여주는데 박병찬은 얘가 진심인가 싶었다. 아픈 거 무서워하는 애가 무슨 타투야... 근데 진심인 거 같아서 뭐... 병찬도 나름 맞장구쳐줬다. 너라면 이거 어울리겠다. 어디 하면 예쁘겠다... 그러더니 덜컥 하러 갈 건데 무서우니까 같이 가달란다. 관심 전혀 없었지만 하고 싶다니까... 같이 가주기만 하는 거야 별일 아니다 싶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그래서 두 손 잡고(정말 잡진 않았다) 쫄랑쫄랑 따라가니까 분위기가... 끝내주더라. 도착하고 나서야 시술 받는데 같이 있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시술자만 괜찮으면 상관없다고 했다. 그래서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더니 괜찮대서 같이 들어갔다. 편하게 앉는 의자가 보였는데 그 안의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게... 수술실 같아서 병찬도 동료도 좀 쫄았다. 어우; 이거 맞아? 근데 이어 들어온 사람 인상이 대박이라 더 쫄았다. 마스크를 꼈는데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 와중에 반눈 뜨고 체격도 웬만한 농구선수랑 맞먹으니까 어디 가서 쪼는 일 없는 운동선수 둘이서 쫄았다.

 

"받을 사람은 여 와서 누우세요.“

 

근데 목소리는 생각보다 앳되고 사투리 억양 있고. 문득 마주한 눈이 생각보다 더 어려 보여서 박병찬은 좀 덜 쫄았다. 시술 받는 동료는 다가오는 고통의 시간에 더 쫄았지만. 어쨌든 약속대로 옆에 앉았다. 오른쪽 팔뚝에 한다고 해서 왼손 잡아주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꾹 잡아주니까 시술 들어가더라. 피부를 자꾸 쿡쿡 찌르는데 차마 못 보겠어서 병찬은 허공 보고 동료는 질질 짜기 시작했다. 어어 안 아프다~ 아픈 거 다 날아가라~ 이런 말 해봤자 의미는 없었다.

병찬은 입이라도 열심히 놀려주었다. 근데 웃기려던 건 동료인데 옆에 있는 시술자가 웃는 거 아닌가. 가끔 손 멈추고 웃음 참고, 얼굴 살살 달아오르고 눈 곱게 휘는 모습 보는데 그게 좀 귀여워 보였다.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 웃게 해주려고 입을 털었다. 동료는 그냥 잡은 손 꾹꾹 누르며 참느라 바빠서 맞장구도 못 쳐주니까 더 그랬다.

한참을 떠들고 난리를 치면 시간 금방 가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원체 손이 빠르다고도 했고. 도안에는 하트에 화살 박혀서 리본으로 꾸몄던데 시술 끝난 거 보니 퉁퉁 부어있어서 예쁜?지는? 잘 모르겠다. 처치 받고 나가면서 뒤돌아있는 갈색 뒷통수보고 번호 묻긴 좀 그렇지 싶어 얌전히 나왔는데, 결제하고 있으니까 옆에서 갈색 머리가 보인다. 마스크 내린 거 보니 진짜 앳되어 보이는데 어쩐지 헤실헤실 웃고 있어서... 첫인상 깔끔히 날려 먹고 얘 좀 귀엽게 생겼네... 같은 생각하는 박병찬에게 걔가 먼저 다가왔다.

 

"저... 박병찬 선수님..."

"아, 저 알아요?"

"네. 저, 개인적으로 팬이어가..."

"와~ 진짜요? 사인해줄까요?"

"싸인 좋아요. 근데 저... 혹시... 괜찮으면... 인스타 맞팔해주실 수 있어요?“

 

번호를 묻지는 않는구나. 하지만 뭐... 인스타 맞팔 정도야. 병찬은 고개를 끄덕였고 기뻐하는 기색 역력한 얼굴로 말해주는 아이디 듣고 계정 들어갔다. 아는 아이디였다. 그야, 옆에서 퉁퉁 부은 얼굴로 훌쩍이는 동료 놈이 도안 골라달라며 만날 보여줬던 그 계정이었으니까. 팔로우 신청 주고받고 나중에 또 보자는 말하면서 나왔다.

 


 

팬이라더니, 인스타 맞팔도 했으니까 먼저 연락해줄 줄 알았는데 한 달 동안 잠잠하길래 진짜 팬이기만 한가 봐 싶어서 병찬은 조금 머쓱해졌다. 보통... 막 이렇게 SNS 교환하면 디엠을 날린다던가... 댓글을 단다거나 하면서 아는 척 하지 않나? 얘는 그냥 줄기차게 자기 도안만 올려댔다. 아니면 실제로 작업한 작업물들. 알아서 대화 걸어줄 줄 알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는데 말을 안 걸어주니까 그냥 병찬이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뭐해요?]

[헉! 선수님 먼저 말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저 지금 좀 있으면 손님 예약시간이라 준비하고 있어요.]
[선수님은 뭐하고 계세요?]

[저는 지금 훈련 끝나서]
[쉬고 있어요.]
[저 상호씨가]
[먼저 말 걸어줄줄 알고]
[계속 기다렸는데]

[정말요? 저는 선수님 피곤하실까봐... 팬 많으시잖아요.]
[괜찮으신거면 앞으로 먼저 말 걸어도 될까요?]

[그럼요~]
[근데]
[계속 선수님이라고 부르실 거예요?]

[앝]

[제가]
[상호씨보다]
[형이던데~~?]

[병찬 형...?]

[오예~]
[그래 상호야~]

 


팬이라는 말은 개구라였다. 당연하지... 그림 그리다가 타투이스트로 전직해서 남 살 푹찍푹찍하고 맨날 새로운 도안 구상하는 삶에서 농구가 끼어들 일은 없다. 어쨌든 사람 살 꿰뚫는 일이라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만큼 체력도 필요해서 운동을 하긴 하지만 딱 그 쯤이다. 그냥 기상호는, 박병찬이 좋았다. 개연성이라곤 흔적도 없었다. 그냥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 웃는 소리는 기깔나게 간드러지고 그러다가 자기가 웃으니까 좋다고 더 환히 웃고.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한테 말을 걸어주는데 원래라면 부담스러울 것이 간드러진 웃음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훤칠한 얼굴 때문인지 좋기만 했다. 원래라면 타투하는데에 집중해서 들리지도 않았을 건데 목소리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그래서 시술 끝나자마자 후다닥 뛰어나와서 제 손님 이름 석 자 쳐봤다. 농구선수길래 이어서 병찬. 하고 두 글자 쳐보니까 유명인 프로필 세 번째 즘에 농구선수 박병찬 있었다. 혹시나 갔을까 부리나케 나가보니까 결제하고 있길래 맘 크게 먹고 다가가서 팬이라면서 인스타 맞팔 해줄 수 있냐 물었더니 된단다. 근데 아차. 생각해보니까 인스타 계정이라곤 도안 올리는 허허벌판 계정 뿐이다. 그때 허겁지겁 만들기도 뭐해서 그냥 그걸로 주고받았다.

주고 받고 나니까 난관이 있었다. 비루먹은 기상호의 사회성 되시겠다. 그래도 얼굴 마주하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상태를 짐작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텍스트로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게다가 그에 대해 찾아보니 농구계에선 거의 아이돌이던데. 그럼 인스타 디엠도 많이 주고받겠지? 상호는 어쩐지 그를 귀찮게 하는 숱한 연락 1이 되는 건 싫어서 그냥 얌전히 있었다. 아, 병찬 형은 타투 안 하나? 아님 그 선수님은 또 안 오나? 오는 김에 데려와 주면 안 되나... 상호는 신에게 우연이라는 선물을 간절히 바랐다.

 

뭐, 신은 없겠지만 그 선수님은 잘 된 타투에 맛을 들였고 그래서 병찬을 또 끌고 왔다. 이번엔 병찬이 타투 또 하고 싶다는 말에 가줄까? 했다. 그래서 또 둘이 손 잡고 가게에 갔다. 이번엔 병찬도 걔가 보여주는 도안을 심도 있게 골랐다. 야 너는 순둥하게 생겼으니까 너무 어두운 건 하지 말자. 귀여운 건 안 어울리니까 하트는 빼자. 꽃은 좀 안 어울리는데, 이건 어때? 이런 식으로. 그래서 이번에 고른 건 해와 달, 그리고 별 컨셉이었다. 그냥 무난하게 예쁜. 전에는 오른 팔뚝에 박았으니 이번엔 왼쪽 옆구리에 하기로 해서.

병찬은 전처럼 실컷 떠들었다. 근데 옆구리가 특히나 아픈 부위란다. 질질 짜는 거 하나하나 닦아주고 놀리고 달래주고 웃겨주고 난리가 났다. 와중에 같이 듣던 기상호가 웃어버려서 중간에 푹 찌른 뒤엔 적당히 웃기라는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박병찬은 이제 그냥 신변잡기 했다. 상호는 뭐 좋아해. 상호는 일 끝나면 뭐해. 상호는 이상형 뭐야. 상호 얼마 벌어. 상호 언제 쉬어. 중간중간에 동료 안 섭섭하게 달래주면서 열심히 물었다. 그러면 기상호 집중하면서도 중얼중얼 다 대답한다.

그 꼴 구경하다가 병찬이 속삭이듯 말했다.

 

"상호는 형 어떻게 생각해?"

"어... 잘생기고... 성격 좋고... 멋지고... ... ...네?“

 

뒤늦게 질문을 깨달은 상호가 고개를 들면서 또 옆구리를 푹 찌른다. 아악!!! 비명이 터지는데 병찬은 웃겨서 이를 악물었다. 개자식아! 결국 동료가 참다못해 병찬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에 상호가 당황해서 움직이시면 안 돼요!! 한다. 그 상황이 다 웃겨서 결국 병찬은 크게 웃었다. 상호는? 그냥 으아악이다. 으악!!! 진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손님!!!

우여곡절 끝에 눈 퉁퉁 부은 동료 데리고 술 사주기로 약속했더니 다 아물 때까지 술은 자제하라고 해서 별수 없이 고기나 사줬다. 다음 날 부은 게 가라앉은 거 보니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 이거 보고 나니 살살 마음이 든다. 타투를 할 마음인 건지 타투를 빌미로 단 둘이 만나고 싶은 마음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든 게 문제다. 결국 병찬은 손님 맞이하러 가겠다며 끊긴 디엠 방에 또 줄줄 메시지 남긴다.

 

[상호야.]
[친구하는 거 보니까]
[나도 타투 하나 할까?]
[상호가 예쁜 거 잘 하던데.]
[추천해주고 싶은 거 있어?]

 

보내놓고 상호가 올린 도안 좀 구경했다. 상호의 도안은 주로 심볼 몇 개 예쁘게 배치해놓고 꾸미는 게 많았는데 미술 쪽에 재능 없는 병찬이 보기에는 그냥 다 예쁘고 괜찮은 것 같아서 고르기가 힘들었다. 근데 또 농구선수니까 너무 커다란 건 좀 그런 것 같았고 작은 건 오래 대화 못 할 것 같고. 한참 뒤적이다 보면 디엠 왔다고 해서 들어가 봤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사실 형이 하면 딱 어울리겠다 싶은 도안들이 있었는데 추천드려도 될까요?]

[오예~ 뭔데?]

 

디엠방에 이미지 여러 개 올라온다. 뭘 추천했을까 하나하나 보고 있으니 죄다 날개나 바람, 빛과 관련된 거길래 무슨 생각한 건지 짐작이 됐다. 팬이라더니 내 평가나 이미지 같은 것도 잘 아나 보네. 입꼬리 씰룩거리는데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들어서 보여준 도안 다시 찬찬히 살폈다. 이거 도끼병 아니지? 혹시 몰라서 게시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입술 꾹꾹 물면서 메시지 보냈다.

 

[못 보던 도안인데 아직 안 올린 도안이야?]

 

그 말에 폰 들여다보던 상호가 좀 고민한다. 너무 티 내면 부담스러운가? 근데 햄도 나 꽤 귀여워하는 것 같던데. 한참 고민하던 상호가 몇 번이고 말을 다듬고 다듬어서 한 문장 보낸다.

 

[안 올릴 생각이었어요.]

[예쁜데]
[아깝게?]

[그야 형을 떠올리면서 짠 거니까 남에게 추천해주기 그렇잖아요.]

 

둘 다 비명 지른다. 한 명은 기어코 보낸 메시지가 너무 과했나 싶어 질렀고 한 명은 미쳤다 싶어서 질렀다.

 


만남이 쌓일 때마다 타투가 쌓였다. 그냥 만나자고 해도 될 법한데 둘 다 쓸데없이 부끄럼 탄다고 그랬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만나자고 하면 다 들킬까 봐. 이미 서로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짐작하면서도 그랬다. 원래 썸탈 때 인간은 좀 꼴값을 떠니까. 만날 때마다 하니까 크기 있는 건 좀 하기가 그래서 작은 것들 이곳저곳에 했다. 슬리브로 가리면 된다고 해서 팔뚝에 두어개. 엉덩이골 바로 위나 배, 쇄골 께 같은 곳도.

하루는 상호가 새 타투를 허벅지 바깥쪽에 새겨주다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말한다.

 

"병찬햄. 있잖아요. 저 햄만 괜찮으면 꼭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

 

병찬은 따끔함을 참는다고 베개 꾹 끌어안고 눈물 찔끔하고 있던 상태라서 후다닥 고인 눈물 닦아냈다. 그러고 올려다보니 부끄러워하길래 뭘 하려고...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니 말 꺼내놓고 또 우물거린다고 피부 쿡쿡 찌른다. 속으로 신음 삼키면서 병찬이 눈 질끈 감고 있으니 라텍스 장갑 낀 커다란 손이 덥석, 병찬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살살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더니 말한다.

 

"발목 쯤에 하나 새겨보실래요?"

"발목에?"

"네. 타투라는 기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기원하려고 새기기도 하잖아요? 제가 기원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가...“

 

보통 병찬이 하고 싶다고 해야 의견을 내는데 먼저 말을 꺼내니 병찬이 싫을 리가 없다. 대번에 고개 끄덕이며 네가 해주는 건 좋다며 허락하니 히죽 웃는 얼굴이 귀엽기만 하다. 어쨌든 하던 건 마저 해야 해서 허벅지 몇 번 더 쑤셔서 원하던 대로 모던한 별 모양 하나 마저 새겼다.

 

괜히 무리해서 새겨봤자 예쁘게 안 나오고 몸 컨디션만 망칠 수 있다고 해서 그다음 주에 약속 잡고 만났다. 발목에 새길 거라 들었으니 깨끗이 씻고 왔다. 바깥쪽에 새긴다고 해서 옆으로 기대어 앉았다. 일단 상호 쪽으로 돌아누워서 보니까 라인 잡는 거 가만히 쳐다봤다. 이번에는 좀 덜 아픈 부위라 그런지 전처럼 베개 끌어안고 훌쩍이는 짓 안 해도 되는 건 좋았다.

이미 무엇을 새길지는 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제 몸에 새겨지는 과정은 언제나 신기했다. 타투 의자가 어느 정도 등받이가 세워져 있다 보니 보기도 편했다. 언제나처럼 집중한다고 내리 뜨여진 눈을 찬찬히 살핀다. 평소라면 우스갯소리라도 내뱉으면서 분위기를 풀 텐데 오늘은 엄청 집중하는 것 같아서 병찬도 가만히 구경이나 했다.

시간이 지나면 상호가 새겨주고자 하는 것이 끝난다. 복사뼈에서부터 나와 종아리의 반 정도 덮는 날개가 보였다. 이 정도 크기면 웬만한 양말로는 안 가려지겠고, 아예 다리를 가려야지 눈에 안 띌 것이다. 한 쪽이 끝나면 반대쪽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면 상호도 자리를 옮겨서 여전히 병찬의 맞은 편에 위치했다.

 

"상호야. 나 이 타투 새긴다니까 같이 왔던 걔 알지? 유치하다고 웃더라."

"유치하긴 하죠... 근데 병찬햄은 엄청 멋지니까 다른 사람들은 멋지다고 할 깁니다.“

 

그 말에 병찬은 기분 좋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양다리에 날개 타투 하나씩이 완성된다. 너무 사실적이면 징그러울 수 있다며 간단한 모양새에, 또 어두운 건 안 어울린다며 밝은 하늘색으로 채워둔 날개는 묘하게 화려하진 않았다. 멋대로 만지면 덧날 수 있으니까, 얌전히 내려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너무 커서 안 가려지겠다. 그치.“

 

그러면 상호는 입술을 비죽 내민다. 삐졌다기보단 할 말이 없는 표정으로. 부러 짚어내지 않았던 점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은 나름의 심술이자 장난이라. 상호는 끝내 괜찮은 변명거리를 생각해내지 못한 듯 웅얼거린다.

 

"...잘 보였으면 했는데..."

"왜?"

"다른 것도 그렇지만 이건 정말 햄만을 위한 도안이었으니까...요?"

"다른 거랑은 뭐가 다른데?"

"...“

 

그 말엔 입을 다문다. 대답을 어느 정도 짐작은 하는데... 이제까지 모른 척 해줬으니까 지금쯤은 제대로 들어도 되지 않을까. 병찬은 실실 웃었다. 그 웃음에 이미 병찬의 속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여전히 상호는 입을 다물었다. 빨리 말해주면 좋겠는데. 병찬은 킥킥 웃으며 다리를 움직여 발로 상호의 팔을 툭 쳤다. 그러고 늘어트리면 상호의 다리 위에 발을 얹는다. 자신이 새긴 그 타투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갈색 머리통을 본다.

머뭇거리는 손이, 아직 부어오른 부분을 만지지는 못하고 그 근처를 만지작거린다. 이제까지 상호가 만들어낸 도안 중에 가장 특색있는 것. 오롯이 병찬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 평소에야 보이지 않겠지만 경기 중에 병찬이 가리고자 애를 쓰지 않는다면 남들에게 쉬이 보일만한 크기. 그리고 아마, 병찬은 가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상호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남는 답은 하나.

 

"햄한테 온 마음을 담아 남긴 제 흔적이니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었으나 담긴 뜻은 충분하여 병찬은 킥킥 웃으며 손을 뻗어 칭찬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그 옅은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상호의 생각대로 병찬은 가리지 않을 것이다. 둘은 서로의 속을 숨기는 것엔 재주도 없었고, 내숭이나 좀 떨었지 제 마음을 진심으로 숨길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으니까.


 

"상호야. 나 네 덕분에 별명 하나 더 생겼다."

"뭔데요?"

"다리에 날개 달렸잖아. 전에 해설 들어보니까 날개신을 신은 것 같다고 그러더라."

"그쵸?"

"그래서 나 XX 구단 헤르메스 됐어."

"그렇구나..."

"안 놀라?"

"그야... 그거 생각하고 새겨준 거 맞으니까요."

"상호는 진짜 오타쿠구나."

"아!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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