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뱅

클리셰

상호병찬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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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클래식 네버다이. 아니면 뭐 클래식 이즈 베스트. 무슨 의미냐? 고루먹은 옛날 방식도 통하려면 통한다는 뜻이다. 연애 고자 기상호. 로맨스 만화는 물론 유명한 로맨스 영화는 싹 다 접수했다. 왜? 사랑하는 병찬햄에게 어떻게든 비벼볼라고...

모솔까진 아니었는데 연애를 시작해본 적도, 이끌어본 적도, 끝내본 적도 없었다. 기상호의 연애는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이 한 번만 사귀어달라고 부탁해서 알겠다고 받아주고 자기 좋다고 해주는 거 받으면 그대로 돌려주고, 그러다가 지친 상대방이 헤어짐을 선고하면 얌전히 받고. 기상호의 연애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연애? 라고 해도 되는지는 둘째치고서 말이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진 어쩌면 나는 남을 그런 쪽으로 좋아할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 걸? 고등학교 올라오자마자 입학식 시작한 지 반년도 안 지났는데 자기보다 5살은 많은 남자에게 반했다. 한 눈에 까지는 아니었는데 진짜 가랑비 젖듯이 반했다. 처음엔 날카롭고 좀 어두운 사람이었는데 웃으면서 다가가니까 웃으면서 받아주는 거 보고 홀랑 넘어갔다. 솔직히 이 점은 기상호도 당황스러웠다. 이제까지 자기한테 잘 해준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까. 근데 농구에선 희찬이 말곤 처음이었고 공허한 위로가 아니라 담담한 인정을 받으니까 와... 사람이 한 번에 반하더라.

다행히 연애 고자긴 하지만 다짜고짜 좋아하니 사귀어달라는 고백 공격을 갈길만큼 뇌가 빠지지 않은 기상호는 방법을 강구했다. 희찬과 다은햄, 태성햄에겐 안 물어봤다. 희찬이라면 열심히 도와주겠지만 걔도 연애는 안 해봤고 다은햄이랑 태성햄은 별로 기대가 안 되어서... 그래서 그냥 로맨스 영화나 로맨스 만화, 로맨스 애니 같은 걸 찾아봤다. 물론 씹타쿠 감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일반인들도 좋아하는 느낌으로 고르고 골라서.

비오는 날에 우산 같이 쓰기. 이어폰으로 음악 같이 듣기. 밤에 한적한 곳에서 같이 걷기. 그리고 처음이지만 키스를 잘 하는 남친! 이런저런 클래식들을 확인하며 기상호는 꿈에 부풀었단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로맨스 장르에서 기차 타고 3시간 걸리는 연인들은 보통 장기연애 혹은 깨지기 직전으로 나온다. 보통 그랬다. 그래서 기상호의 작업 시작은 아주 느리게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냐면... 졸업 후. 준향대에 가고 싶었는데 1학년 우승이라는 성적과 2, 3학년에도 주전으로 우승을 여러 번 따내다 보니 더 급 높은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가기 싫어서 슬쩍 뻗대봤더니 감독님이 전화를 한 건지 준수햄한테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사자후 담긴 전화가 와서 얌전히 다른 대학 갔다. 다행히 준향대랑 엄청 멀지도 않아서 그게 그나마 안심이었다.

숙소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빌고 빌어서 자취방을 얻어냈다. 가장 큰 이유는... 원래 로맨스 장르에선 이렇게 자취방 같은 데서 살아야 썸 같은 거라도 타는 거다. 집에 초대한다거나 아니면 병찬햄이 술 마시면 재워준다거나! 나름 치밀한 수작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보통 로맨스 장르의 주인공은 운동부가 아니거나 한 쪽만 운동부다. 당연하지... 운동하는 두 사람이 썸 탈 시간이 어딨어. 1학년이 되고 나서 기상호는 거진 2개월 동안은 병찬에게 안부 인사랑 굿나잇 인사만 꼬박꼬박 보내며 끝장날 만치 바쁘게 살았다. 기상호가 공부를 챙기는 편이라 더 그랬다. 고등학교랑 비교도 안되게 빡센 훈련은 가끔 기상호를 눈물 짜게 만들었다. 솔직히 몇 일 정도는 너무 바빠서 병찬의 생각이 안 나기도 했다. 병찬햄은 대체 이런 훈련을 거치면서 어떻게 나한테 연락한 거지?? 형은 진짜 힘이 넘쳐나는구나... 이쯤 되면 원래 있던 존경심이 배가 된다.

어쨌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구르고 구르다 보면 적응하고 요령이 생기고 더 강해진다. 기어코 상호는 대학생 신입생이 된 지 3개월 만에 여유시간을 냈고 병찬의 휴대폰을 울렸다. 햄! 이때 시간 되세요? 1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두근거리며 화면만 쳐다보는 기상호의 눈에 곧 박병찬의 답이 보였다.

 

[미안! 나 그 때 다같이 술 먹기로 했어.]

 

기상호의 머리 속에 로맨스 장르의 클리셰 하나가 지나간다. 첫 번째. 쉽게 만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초반엔 잘 풀리지 않는다. 이딴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기상호는 그래... 이것도 클래식이지... 하고 중얼거리며 외로운 자취방 침대 위에서 훌쩍였다. 기껏 낸 여유시간이지만 만날 사람이 없으니 그냥 훈련이나 해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네?"

"상호 씨 맞으세요?"

"네네... 햄... 아니 형한테 무슨 일 있나요?"

"아 그게. 얘가 지금 술 먹고 뻗었는데 연락처 제일 앞에 전화번호가 있길래 전화드렸습니다."

"아, 진짜요. 제가 지금 데리러 갈게요. 어디예요?“

 

자율 훈련을 끝내고 막 집에 가려는데 그런 연락을 받았다. 술 먹기로 했다더니 병찬햄, 술에 약한가? 기상호는 말해주는 주소를 잘 기억해뒀다가 택시를 불러서 급하게 그 쪽으로 갔다. 가보니까 진짜 테이블에 머리 박고 있는 박병찬이 보였다. 근데 그 앞에 여자들도 머리 박고 있었고 박병찬 옆에도 머리 박은 남자들이 몇 있었다. 주변에 뻗지 않은 남녀들이 전화를 걸고 흔들어 깨우는 꼴이 보인다. ...설마.

 

"저기... 상호인데요."

"아! 드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애 소지품은 다 챙겨놨어요."

"감사합니다...“

 

5:5의 남녀비율... 보아하니 가장 먼저 데리러 온 것은 저인 것 같았다. 상호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거... 소개팅이네. 소개팅... 아마 친구나 동기일 사람의 도움을 받아 병찬을 등에 업고 나서는데 어쩐지 코가 좀 시렸다. 하긴. 다들 대학 가면 CC 같은 거 한다고 했었지. 박병찬이라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서달라고 옆에서 성화였을 것이 뻔하다. 병찬이 나오고 싶다고 했을까? 아니면 별수 없이 나왔을까. 후자면 좋겠는데. 병찬햄 은근히 아무하고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 스타일 아니지 않나...

혼자 음울한 생각을 하며 등에 있는 병찬을 살살 흔들어본다. 작게 앓는 소리를 내기에 근처 공원 의자에 내려놓고 얼굴을 살폈다. 홍당무같이 빨간 얼굴이 좀 웃기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지기도 해서 휴대폰을 꺼내어 슬쩍 사진을 찍어본다. 그 순간 병찬이 눈을 번쩍 뜨는 것에 기상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우씨. 이건 무슨 클리셰더라. 안 좋은 거 아닌가?

 

"상호야?"

"네, 네? 아. 저 알아볼 수 있어요?"

"우리 상호를 어떻게 못 알아봐~“

 

헤- 풀어진 얼굴로 기분 좋게 웃는 걸 보니 상호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얼마나 안 나빴냐면 제 짝남이 아무리 봐도 소개팅 나가서 술 거하게 먹은 상태로 뻗은 것이란 걸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기분이 안 나빴으니 말 다했지. 병찬은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서 상호 쪽으로 기울었고 상호는 순간 그런 병찬을 받아들었다. 상호의 배에 얼굴을 기댄 채로, 정신을 차리려는 건지 머리를 부벼대는 꼴을 가만히 내려본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그 행동에 맞추어 조금씩 흔들렸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상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병찬에게 손도 못 대고 병찬은 그러다 정신이 좀 드는 건지 얼굴을 위로 해 상호를 올려다봤다.

 

"상호~ 너 왜 요즘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네? 그야 저 신입생이니까... 엄청 바빴어요. 훈련 따라가기도 급급해서..."

"나는 신입생 때도 상호한테 연락 자주 했는데."

"그쵸. 병찬햄이니까 그마이나 하지. 그래도 꼬박꼬박 인사는 했잖아요, 봐주세요."

"으으음~ 아직 화 안 풀렸는데. 나 데리러 온 거니까 봐주는 줄 알아."

"알았어요. 병찬햄 숙소 살죠?"

"응... 근데 숙소 늦게 들어가면 혼나는데. 상호 집에서 재워주면 안 돼?“

 

어우. 상호는 눈을 질끈 감을 뻔한 것을 몇 번 빠르게 깜박이는 걸로 대체했다. 아니, 아니. 진짜 큰일 날 연상이네. 자기의 뭘 믿고 집에서 재워달라고 해? 자기가 뭘 할 줄 알고... 여기까지 생각한 상호는 금방 답을 제출한다. 그야 나는 햄한테 그냥 귀여운 동생이니까 그렇겠지 인마... 입 안이 금세 씁쓸해진다. 솔직히 속에서 그냥 숙소 가시라고 툴툴거리고 싶은데 다음 날 아침에 병찬햄 보면서 기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뭐 이런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살아야 좀 덜 억울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냥 병찬햄 부축하면서 자취방으로 왔다. 꽤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었다. 하. 밤에 이렇게 걷는 것도 나름 로망이 있었는데 첫 밤 산책이 취한 취객 부축하면서 술집 거리를 걷는 거라니. 착잡한 마음 꾸겨 넣고 곧 도착한 자취방 공동현관 열고 들어갔다. 자취방 가자마자 병찬이 훌렁훌렁 옷을 벗길래 내적으로 비명 지르며 갈아입을 옷과 수건 챙겨서 씻으시라고 화장실 안에 넣어드렸다. 병찬의 거죽들은 잘 개어서 내버려 두고 제발 병찬이 옷을 다 벗고 나오는 행동만 하지 않길 바라며 한참을 기다리니 다행히도 챙겨준 옷을 입고 나왔길래 안도하며 침대를 안내해드렸다.

자 이제 개수작 타임... 기상호는 일부러 침대를 좀 큰 걸로 샀다. 이것까지만 말해도 기상호의 큰 그림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같이 자고 싶은 것 뿐이니까? 딱 그거니까? 기상호는 내면의 사심을 꾹꾹 누르며 술 좀 깬 것 같은 병찬에게 말했다.

 

"바닥이 아직 찹기도 하고 침대가 좀 크거든요. 같이 잘래요?“

 

좋아. 연기점수 100점 만점에 100점. 목소리도 안 떨렸고 표정도 담담했다. 그래서 그런지 병찬은 그래. 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걸 보면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어쩌고 저쩌고들... 상호는 천천히 옆에 누웠다. 좀 큰 걸 사도 약간 좁은 감이 있었지만 못 잘 정도는 아니다. 그때 병찬이 상호를 향해 돌아눕더니

 

"좀 좁다. 그치?“

 

라면서 거의 끝에 누워있던 상호를 끌어당겨서 자기 품에 넣었다. 자기, 품에, 넣었다!!! 오늘 두 번째 내적 비명을 지른 상호는 꼼짝도 못 하고 굳어버렸는데 이 취객은 잘자~ 한 마디 하고선 금세 새근새근 소리를 낸다. 아니 내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저렇게 한 번에 잔다고? 이렇게 불합리하고 잔인한 행위가 용납될 리 없어, 고소하겠어! 물론 진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상호는 지금 짝남의 품에 갇혔으니까. 아 이것도 그 뭐냐 클래식 아닌가? 그런 헛생각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병찬의 사과를 듣고 해장할만한 곳에 데려가서 밥 먹인 뒤 헤어지며 상호는 생각했다. 서로한테 마음이 이미 있는 로맨스 물 말고 한 쪽은 전혀 관심 없는 로맨스 물을 봐야 했다는... 뭐 그런 생각. 같은 침대에서 일어났건만 어제 무슨 일 없었지? 라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병찬은 없었다. 듣기로는 필름 끊겨도 다음 날 다 기억 난다지. 솔직히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뭘 하려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괜찮지도 않아서... 기상호는 그냥 터덜터덜 강의나 들으러 갔다.

또 다시 바쁜 나날, 훈련, 연습경기 따위를 지내다 보면 종강이 다가온다. 그 동안 병찬을 못 만났다는 뜻이다. 이제는 병찬이 바쁘다고 연락을 잘 안 했다. 실제로 상호도 그랬기 때문에 그냥 둘이서 아침에 잘주무셨어요? 응, 상호는? 저도요. 좋은 하루 보내~ 하고 저녁에 좋은 밤 되세요. 상호 너도~ 같은 거나 줄기차게 주고받았다. 사람들이라 종강하면 시간이 남겠지만 운동부들은 아직 숨 가쁘게 바쁘다.

그래도 상호는 자기 직전에 매일 로맨스 작품 하나씩 봤다. 한 쪽만 좋아하는 류로... 근데 보통 그러면 다들 사랑하는 쪽이 지극정성으로 다가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하면 상대방이 좋아하던데. 그럼 나도 포기해야 하나? 근데 포기가 됐으면 진작 했겠지. 상호는 몇 편 보다 때려치웠다. 클래식 네버다이는 무슨. 포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다.

 

그 날은 준향대와의 연습 경기였다. 끝나고 숙소 사는 애들은 타고 온 버스 타고 갔고 알아서 돌아갈 놈들은 안 탔다. 상호는 가까워서 안 탔다. 정확히는 병찬이랑 대화 좀 더 해보고자... 입구 쪽에서 기다리니 저 멀리서 준향대 농구부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언제 아는 척을 할까 전전긍긍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저를 발견한 병찬이 반가운 얼굴을 하더니 뛰어온다. 그 모습에 입술 꾹 물고 두근거리고 있으니 다가온 병찬이 어깨동무를 했다.

 

"상호~ 오늘 형 멋졌지?"

"네. 엄청요."

"상호는 언제 주전 될래? 형은 상호랑 붙는 거 계속 기대 중인데."

"저도요...“

 

그냥 별 말 아닐 텐데 이런 거에 하나하나 기뻐하는 짓도 정말 그만해야 했다. 아니, 사실은 전혀 그만둘 생각 없었다. 그런 뜻 아닌 거 알면서 괜히 자기랑 만나길 기대한다며 멋대로 의미를 덧붙이고 혼자 기분 좋아진다. 슬쩍 애교를 부리듯 병찬에게 기대면 병찬이 어이쿠. 소리를 내며 웃는다.

 

"이제 바빠요?"

"아니? 이제 숙소 가야지."

"데려다 드려도 돼요?"

"뭘 데려다주기까지 해. 형 세다."

"그냥 같이 걷고 싶어서요.“

 

그 말에 병찬이 빤히 쳐다본다. 눈 깜빡이며 마주 보고 있으니 병찬이 슬 웃으면서 그럴까? 라고 말한다. 병찬이 뒤를 돌아 다른 부원들에게 인사 전하는 거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곧 둘이다. 바로 숙소에 들어가기는 아쉬우니까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말에 상호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사주는 거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병찬은 택시타고 나갔다. 적당히 맛있는 한식집이라 둘이서 메뉴 서너개 박살 내고 나와서는 비가 오고 있었다. 상호의 머리가 빙빙 돌아간다. 택시를 타면 되는 거긴 한데, 병찬이 하늘 올려다보니 어쩐지 걷고 싶은 날씨라고 해서... 상호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우산 있어요.“

 

휴대용 우산이고 딱 하나였지만 이렇게 우산이 있으면... 같이 쓰게 되지 않나? 상호는 꿈에 부풀었고.

 

"응? 그거 쓰면 둘 다 젖겠다. 저기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만 사다 주라~“

 

하고자 마음 먹은 건 어쩐지 하나도 되는 게 없었다... 거따대고 같이 쓰자고 조르기도 뭐해서 상호는 얌전히 우산을 사 왔다. 그래도 비 오는 날에 같이 걸어가는 건 좋으니까... 상호는 그냥 옆에서 같이 걸었다. 병찬이 웃으면서 이런저런 말 하는 것을 듣고, 가끔 제게 물으면 가만히 대답하면서. 수술이 잘 되었다더니 비 오는 날에도 덜 아픈 건지 얼굴에 그늘이 없었다. 이걸로도 괜찮지 않나? 가끔 저를 마주해주는 병찬을 향해 웃으며 상호는 그냥 걸었다.

목적이 없이 걸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상호네 자취방 근처였다.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졸지에 데려다달라고 꼬신 꼴이다. 상호는 머쓱하게 제 목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말했다.

 

"오신 김에 집에서 술이나 마실래요?"

"상호 아직 미자잖아."

"음. 어..."

"술은 됐고... 나랑 넷플볼래? 나 마침 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온 김에 놀고 갈래."

"그럴까요? 간식 사 들고 들어가요.“

 

근처 편의점에서 과자나 음료수 주섬주섬 사서 올라간다. 상호도 OTT 서비스를 아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서 생각 없이 노트북을 열었는데... 젠장. 병찬이 보는 앞에서 온갖 로맨스 애니를 전시해버렸다. 추천 탭에 당당히 뜨는 것들을 보고 병찬이 오. 상호 이런 거 보는 구나. 라고 말 할 때 상호는 이를 깍 깨물었다...

하하하...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검색창 눌러드리니까 병찬햄이 웃으면서 보려고 했던 걸 띄운다. 외국에서 출시한 드라마인 것 같은데 넷플에만 올라왔단다. 과자 세팅하고 음료수 잔 들면서 가만히 본다. 보아하니 초능력 같은 거 쓰는데 그 중 개로 변하는 남자를 가리키며 병찬이 상호 같다고 웃었다. 상호는 그냥 웃었다. 계속 보다 보니 약간 병찬같은 남자가 나왔다. 다친 것도 그렇고, 강한 초능력자인 것도 그렇고. 머리가 길지는 않았지만 검은 색이기도 했다. 얘는 형 닮았는데요. 하니 나 이렇게 멋져? 라고 묻는 거에 형은 언제나 멋지죠. 라고 대답하고 마저 집중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사람도 죽고 이것저것 다 죽고 난리가 나는데. 외국 드라마들이 보통 그렇듯이 갑작스러운 로맨스가 나왔다. 근데 열린사회라 그런지 서로 본인 같다고 말했던 둘이 키스를 하는 것 아닌가. 어우; 상호는 개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병찬을 바라봤는데 병찬도 당황한 얼굴로 저를 봤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차라리 마주친 순간 시선을 다시 돌렸어야 했는데 하필 둘 다 굳어버려서 이제 와서 모른 척도 할 수 없었다.

망했네... 상호는 이 조져버린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젠장. 화면 속에는 질펀하게 키스를 하는 탓에 쪽쪽 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제발 그만해... 근데 멈추면 멈추는 대로 또 이상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병찬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장면은 빨리 끝났는데 둘은 이제 드라마를 못 봤다. 병찬이 먼저 시선을 내렸고 상호도 시선을 내렸다. 내 인생은 진짜 클래식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상호야."

"...네?"

"아까 그거 해볼래?"

"네???"

갑자기 이런 급전개? 상호가 고개를 퍼뜩 들었을 때 병찬은 이미 마음먹은 얼굴로 제게 상체를 기울인 상태였다. 대체 어디에 이런 빌미가 있었지? 왜? 어째서? 점점 다가오는 얼굴에 상호는 눈을 꾹 감았다. 병찬의 입이 닿는다. 아. 상호는 오늘 이날을 위해서 첫 키스지만 엄청 잘하는 남친에 대해 연구했구나... 흡수한 온갖 정보를 토대로 병찬에게 입을 맞췄다. 혀를 맞대고 코로 느릿하게 숨을 쉬면서 가끔 병찬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입을 떼고, 입 안을 훑고, 문지르고...

나 이 정도면 잘했는데? 조금 뿌듯함까지 느끼며 상호가 감은 눈을 떴다. 병찬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왜...? 나, 나 꽤 하지 않았나. 엄청 못했나? 클래식 네버다이라며... 어째서...


 

연애고자는 아니지만 그렇게 많이 해보지 않은 병찬은 나름 작전을 세웠다. 남자끼리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와의 연애는 처음이라 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게이만화나 영화를 찾아본 것이다. 사회의 시선 때문에 이어지지 못하는 건 과감히 뺐다. 상호와 자신이 그런 새드엔딩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나름 해피엔딩이고 잘 풀리는 것 위주로 봤다. 근데 게이 만화는 19금이 많더라. 원래 그런 건가? 싶었으나 그냥 적당히 넘겼다. 일반인의 미묘한 감각은 그걸 가능케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본 결과 병찬은 여러 가지를 습득했다. 연락은 꾸준히! 어른스러운 티도 많이 내고 가끔은 약한 모습을 보이자! 물론 생각 없이 받아들인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조언 정도로 받아들인 상태로 병찬은 수작을 부리기로 했다.

 

보통 장거리 연애는 꾸준한 연락이 승부수라는 걸 알아서 병찬은 수술을 한 뒤에도, 다음 연도에 신입생이 되었을 때도 꾸준히 연락을 했다. 물론 막 재활을 시작하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널널한 훈련 강도였던 덕도 있었다. 그래도 힘들었지만 병찬은 그럼에도 꾸역꾸역 상호한테 연락을 했다.

근데 이 앙큼한 녀석은 대학생이 되니 연락이 거의 안 됐다. 좀 괘씸했지만 자기도 억지로 연락을 했으니까... 얜 아직 어리니까... 근데 와중에 자기 얼굴 괜찮으니까 소개팅에 나와만 달라고 매달리는 동기에게 알았다고 적당히 넘겼더니 딱 그날에 상호가 시간 되냐고 묻는 거 아닌가. 그냥 된다고 하고 싶었는데 이제 와서 빠지면 동기가 놔줄 것 같지 않아서 병찬은 눈물을 삼키고 오케이 했다.

그래놓고 술자리에 나갔는데. 병찬에겐 필살기가 있었다. 술을 먹으면 얼굴이 엄청 쉽게 빨개진다. 병찬은 몇 잔 술술 넘기고 시뻘게진 상태로 냅다 얼굴 박았다. 정신 멀쩡한데 그냥 박았다. 그러고 있으면 얘 술에 꼴았다고 멀쩡한 애들이 주머니 뒤진다. 누구한테 전화하려나...

 

"여보세요? ...상호 씨 맞으세요?“

 

?

 

"아 그게. 얘가 지금 술 먹고 뻗었는데 연락처 제일 앞에 전화번호가 있길래 전화드렸습니다.“

 

?? 아, 아!!!!! 생각해보니 기상호를 앞에 두려고 ㄱ.기상호 로 저장해놨었다. 악. 하지만 기씨니까 뭐 내가 강 씨 친구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치? 물론 있지만 그건 상호가 모를 테니까 상관없다. 병찬은 들썩였던 머리를 다시 얌전히 박았다. 주소 말해주는 걸 보니 데리러 온다고 하는 것 같아서 병찬은 얌전히 기다리다가 곧 상호 목소리가 들려서 긴장을 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끌어당기길래 못 이기는 척 일어났더니 상호 등이 보였다. 오예~ 아직 정신 못 차린 척 일부러 힘 풀고 있으니까 읏차, 소리 내고 일어난다. 다리 후들거리는 거 없이 걸어가는 게 느껴진다. 언제 이렇게 컸지 우리 상호...

한참 걷는 것 같더니 저를 내려놓는 게 느껴진다. 슬쩍 실눈을 뜨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길래 택시라도 부르나 싶었다. 근데 찰칵 소리가 들리길래 저도 모르게 눈을 뜨니 당혹스러운 얼굴이 보인다. 아이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상호야?"

"네, 네? 아. 저 알아볼 수 있어요?"

"우리 상호를 어떻게 못 알아봐~“

 

그러니까 말이지. 이럴 땐 어른스러운 면모가 아니라 좀 애 같은 면모를 보여줘야 하는 거다. 만화에선 그랬다. 술 취한 연상이 술주정 귀엽게 부리면 100%라고. 그래서 병찬은 자리에서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세우곤 넘어질 것 같이 몸을 기울였다. 그러니까 대번 상호가 다가와서 저를 안아 든다. 탄탄한 배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조금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향수, 뿌렸던가? 괜스레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귀엽게, 귀엽게... 여기서 더 귀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장면 몇 개 떠올려보다가 슬쩍 올려다보는 걸로 한다.

 

"상호~ 너 왜 요즘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네? 그야 저 신입생이니까... 엄청 바빴어요. 훈련 따라가기도 급급해서..."

"나는 신입생 때도 상호한테 연락 자주 했는데."

"그쵸. 병찬햄이니까 그마이나 하지. 그래도 꼬박꼬박 인사는 했잖아요, 봐주세요."

"으으음~ 아직 화 안 풀렸는데. 나 데리러 온 거니까 봐주는 줄 알아."

"알았어요. 병찬햄 숙소 살죠?“

 

이럴 때는 보통 집 데려가 주는 거 아니었나? 막, 자기 집 데려가서... 엄청 분위기 잡고 그러지 않아? 얜... 뭐 그럴 생각은 없는 건가? 나 좋아하면서... 병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특별히, 상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응... 근데 숙소 늦게 들어가면 혼나는데. 상호 집에서 재워주면 안 돼?“

 

대번에 상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나타난다. 이거지~ 티 나게 기뻐하는 얼굴을 숨기려고 경련하는 입을 상호의 배에 묻는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 걸을 수 있냐 묻는 것에 슬 일어나서 너무 무겁지 않게 기대는 시늉만 했다. 솔직히 좀 불편했는데... 걷는 내내 옆에서 쿵쿵 심장 소리가 들리니까 아무래도 좋아져서... 그래도 들어와서 옷을 벗는 것은 나름 서비스였는데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서 집어넣길래 하긴 진도가 너무 빠른가... 싶어서 얌전히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고나서 침대에 가려니까 이 앙큼한 연하가

 

"바닥이 아직 찹기도 하고 침대가 좀 크거든요. 같이 잘래요?“

 

하는 게 아닌가. 병찬은 다시 한번 경련하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 냅다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니까 상호가 옆에 눕는다. 와중에 배려한다고 거의 끝에 누운 거 보고 먼저 누우라고 할 걸 그랬나 생각했지만 뭐, 병찬도 수작 부릴 생각 만만이다.

 

"좀 좁다. 그치?“

 

그리곤 냅다 품에 끌어안았다. 몸이 굳는 것이 느껴진다. 슬쩍 내려다보면 동그랗게 뜨여진 눈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튄다. 그 모습에 안 웃으려고 입술 꾹 깨물었다. 괜히 아직 술 덜 깬 척 머리에 얼굴도 부비고 다리도 올리고 그러니까 품 안에서 움찔거리는데, 술 마신 저보다 더 뜨끈해진다. 우리 상호... 이렇게 귀여워서 어쩌지? 근데 술을 먹긴 먹어서 그런가 졸리긴 졸렸다. 그래서 눈 몇 번 끔벅이고 그냥 상호 머리에 얼굴 묻고 잤다. 내일 아침엔 상호 볼 거니까!

 


 

근데 사랑이 노력만으로 되진 않더라고. 리그 준비로 바빠서 한동안 상호를 못 만났다. 그래도 며칠 뒤면 상호네 대학교랑 연습 경기가 있대서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보아하니 주전은 아닌 것 같아서 그건 좀 아쉬웠지만 워낙 저쪽 대학교랑 이쪽 대학교가 가깝다 보니 숙소 아닌 애들은 버스를 안 타기도 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다. 그렇다는 말은? 상호가 저를 기다릴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래서 병찬은 느긋하게 나갔고 예상대로 체육관 입구 쪽에 서서 기다리는 상호를 보곤 급하게 뛰어나갔다.

그대로 어깨동무하고 데려다준다는 말에 한 번 튕기기도 했는데

 

"그냥 같이 걷고 싶어서요.“

 

이건 병찬한테도 타격이 컸다. 어우.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만 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3점 슛을 넣다니. 기상호 진짜 다 컸네. 너무 이뻐 보여서 박병찬 회심의 맛집도 소개해줬다. 택시까지 타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주고, 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우산 있다고 내미는데 너무 작아 보이길래 그냥 우산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상호 집은 저번에 알아둬서, 딱히 목적지도 안 정해둔 상태로 슬쩍 상호네 집 쪽으로 걸었다. 이런저런 말 하면서 혼을 쏙 빼놔서 그런지 상호는 의심 없이 걷다가 자취방 골목 앞까지 오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제 목 만지작거리며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 병찬은 깨닫는다. 어어 이거 봤어. 이제 나 초대해서 막 분위기 타고 그러는 거지?

 

"오신 김에 집에서 술이나 마실래요?“

 

유레카! 근데 잠깐.

 

"상호 아직 미자잖아."

"음. 어...“

 

아직 미자인 애 부여잡고 술을 먹는 건 안 된다... 거기까진 양심이 닿지 않았다. 애초에 술 같은 건 안 먹는 게 낫고. 근데 자기도 모르게 거절을 해버려서 좀 애매해졌다. 병찬이라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라서 괜히 머리를 핑핑 돌리다가 말했다.

 

"술은 됐고... 나랑 넷플볼래? 나 마침 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온 김에 놀고 갈래."

"그럴까요? 간식 사 들고 들어가요.“

 

여기까진 정말 좋았는데 말이야.

그 후에 적당히 친구가 재밌다고 추천해준 넷플릭스 드라마를 키고, 거기서 강아지로 변신하는 능력자를 보면서 상호 닮았다 하고. 상호도 좀 멋있는 능력자보고 저를 닮았다고 하고? 여기까진 분위기 좋았다. 이제 이거 다 보고 나면 계속 비 내릴 거고 그러다가 눈 마주치면 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근데 거기서 하필 서로 닮았다고 한 녀석들끼리 키스할 건 뭐냐고. 병찬도 당황해서 상호를 봤는데 하필 상호도 저를 보고 있었다. 눈을 피했어야 했는데 상호의 시선이 제 입술에 가 있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으악...

이 와중에 노트북 안에선 쪽쪽 소리가 적나라하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도 들렸다. ...어. 잠깐. 이것도 알아. 만화에서 봤어. 이제 분위기 이상해지고 어쩔 줄 모르다가 누구 하나가 해볼래? 하면 되는 그런 클리셰인 거지? 병찬은 시선을 내리고 곰곰이 생각했고 그 타이밍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페이스바를 눌러 드라마를 멈추고 병찬은 상호를 쳐다본다.

 

"상호야."

"...네?"

"아까 그거 해볼래?"

"네???“

 

병찬은 일단 얼굴부터 들이밀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이 보인다. 바르구나. 병찬이 씩 웃으면서 상호에게 입을 맞춘다. 상호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 병찬도 입을 벌리고... ... ... 응?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상호는 키스를 꽤 잘했다. 서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숨을 고를 줄도 알았고 입 안을 문질러주는 것도 잘했다. 정말 잘했는데.

 

왜 잘하는데?

너 나 처음 아니었어? 키스 같은 거 아무랑도 안 해봤다며. 너 엄청 바빠서 연락도 못 했잖아. 누구랑 키스해봤어?? 원래 여기서는 내가 널 리드해야 하는데. 어? 여기선 연상이 연하를 리드해서 혼을 쏙 빼놓고 내가 너한테 어땠어? 라고 물으면 네가 한 번 더 해보면 알 것 같아요. 이런 대사 쳐야 하는 상황이잖아.

병찬은 상호가 떨어지자마자 상호를 노려보았다.

 

"...병찬햄?"

"너 누구랑 키스해봤어?"

"네? 병찬햄이랑 처음이죠..."

"근데 왜 잘해?"

"연습을 많이 해봐서...“

 

병찬은 이것을... 다른 사람은 연습이고 실전은 자신이라는. 별 되지도 않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병찬이 차곡차곡 쌓아온 클리셰가 다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 말이었다. 병찬이 이제까지 봤던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연하에게 연상의 맛을 보여주는 만화였는데 다 망했어... 병찬은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병찬햄. 저 혼자 연습 한 건데... 그냥... 상상으로..."

"...그것도 별로다... 안 귀여워..."

"그런가요...“

 

참담해진 사람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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