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뱅

해무

상호병찬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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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태어나면서 한 번쯤은 바다 안개를 맞이하곤 한다. 바다 안개는 너무 춥거나 더운 날 보다는 공기가 따뜻해질 때에 나타난다. 봄에서 여름이 넘어가는 그 사이. 그때엔 상호가 사는 작은 마을은 짙은 바다 안개에 뒤덮이곤 한다.

바다안개가 뒤덮고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이 남았다. 그 작은 마을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였다. 어른들이 말해주었다. 바다 안개를 따라 인어들이 놀러 온다고. 그렇게 놀러 온 인어들 중에 땅 위가 마음에 드는 인어들이 남는다고. 그렇게 남는 인어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다가, 더 이상 땅 위에 흥미가 사라지면 그대로 떠나간다고. 그것은 전설이 아니라 실존하는 이야기였다. 인어인지는 몰라도 바다 안개가 지나가고 나면 마을에 못 보던 사람들이 늘었으니까.

하지만 늘어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인간들 사이로 들어왔다. 항상 비워두는 작은 학교의 책상들이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아진다거나, 평소와 같이 밥을 준비 했는데 양이 모자라면 사람들은 인어가 왔구나. 했다. 그렇게 깨달아도 인어들이 누구인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연을 적당히 잘라 붙여 자신의 인연으로 삼아버렸기에.

 

상호는 그 작은 바다마을에서 고아로 자랐다. 어른들은 상호를 보고 인어의 아이라고 불렀다. 실상 말장난이다. 인어의 아이였다면 상호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인어는 남의 인연을 잘라먹으니까. 상호에겐 아무런 인연이 없었으니 그는 그저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바다 마을은 부모 없는 아이를 안타깝게 여길 정도로는 여유가 있어 상호를 거둬 길렀다. 그래서 상호는 그냥 마을 사람들의 아이가 되었다. 공평한 보살핌을 받았다. 상호는 어디에든 들러 몸을 뉘고 잠을 잤다.

대부분 어린 상호를 귀엽게 여겼다. 상호는 어른들만 만나면 고개를 숙였다. 쓰다듬 받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호는 인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인연을 베어 문 인어들은 그 인연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으나 소소한 인연까지 모두 가져가진 못했다. 그래서 인어들은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모두와 인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특별한 인연은 없는 상호이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인어들은 자신을 무서워하는 상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인어들이 왜 남의 인연을 잘라 제 것에 붙였겠는가? 그들은 인간들이 인어의 존재는 알아차리되 그것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예민한 그들은 상호가 자신들을 보는 눈에 미지의 것을 보는 공포가 담긴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상호는 아직 어렸고, 아이였고, 마을 사람들은 귀염성 있게 다가오는 아이에게 약했다.

그것을 방패 삼아 상호는 적응한다. 반응해서는 안 되는구나. 모르는 척 해야 하는구나. 상호가 눈치껏 굴자 뾰족하던 시선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상호는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을 보였다.

 


 

상호가 10살이 넘었을 때. 상호는 더 이상 쓰다듬 외에도 인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인어를 알아보기 시작한 뒤로 경험이 쌓인 덕이다. 그들은 대부분 미형이었으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신체 능력이 좋았다. 또한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 바다가 보였고 사투리를 쓰는 마을 사람들과 다르게 어조가 평탄했다. 게다가 물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뜨거운 것도 마찬가지로 무서워했다. 그래서 인간인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배를 탔는데 인어들은 마을에서 잡일을 맡았다. 그러다가도 대부분의 인어들은 도시로 나갔다. 다들 하나쯤 특출난 재주가 있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간간이 인어들이 잘 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호는 더 이상 인어와 인간을 나누지 않았다.

상호가 15살일 때. 여전하게도 바다 안개가 마을을 뒤덮었다.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인연들이 생긴다. 변수가 하나 생긴다. 모두가 인어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나 상호같은 고아가 한 명 생겼다. 상호는 그가 인어인 것을 알았다. 이제까지의 인어들은 모두 어딘가에 속했는데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그래. 그는 상호의 형이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고아로 길러진, 상호와 같이 부모가 없는. 상호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내 인연을 잡아먹었구나.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볼품없을 제 인연을.

제 인연을 잡아먹힌 것은 처음이라 상호는 처음에 당황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째서 인어를 못 알아보는 걸까, 궁금해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의 이름도, 그가 이제까지 상호를 어떻게 대했는지도, 또한 상호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또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설정되어있었다. 햇빛에 비친 그의 눈에 바다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상호는 빠르게 그가 인어인 것을 깨달았고 그는 상호가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눈을 휘어드리며 웃는다.

 

"상호야. 비밀로 해줄 거지.“

 

다정하게 불러오는 속삭임에 상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기억 속의 그는 상호에게 너무나도 다정했다. 인어를 알아본 상호가 받는 시선 사이에 서 그를 지켜주려고 했으며 항상 상호의 옆에서 손을 잡고 같이 잤고, 항상 어딘가에 갈 때 상호를 데려가 주었고 항상... 이미 정해져 버린 마음은 상호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상호는 제 앞의 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단 한 번도 깊은 다정함을 받아본 적 없는 상호에게 새겨진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여전히 받아보지 못했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미 제 영혼은 그것이 실존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어를 알아본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겠구나. 모두가 이미 제 마음에 들어차 버린 이들을 놓지 못해서였구나. 상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환히 웃었다.

병찬은 그렇게 상호의 형이 되었다. 하지만 둘 다 서로의 관계가 거짓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상호는 다정함에 목말라 있던 아이고 병찬은 기꺼이 그것을 주기로 하였다. 상호는 병찬이 주는 다정함에 기댄다.

 

병찬과 무언의 계약을 맺은 상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렇게 된 거 자신이 이제까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길이 없어 묻어두었던 궁금증을 푸는 것이었다. 병찬은 처음엔 상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으나 자신이 심어놓은 다정한 형을 연기하기 위함인지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친절히 답해주었다.

 

"인어들은 우예 우리한테 스며들어요?"

"간단해. 해무가 깔릴 때 여기는 바다 같은 곳이 되거든. 그때 올라오면 다리를 얻을 수 있어. 그 상태로 원하는 인연에 스며들면 되는 거야."

"인연이란 게 보여요?"

"사람의 체액을 얻으면 그 사람이 인연을 흡수할 수 있어.“

 

그 말에 상호는 눈을 껌벅였고 병찬은 상호가 온전히 이해할 때까지 기다렸다. 상호는 해무가 깔렸을 때를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길을 걷다 넘어졌었지. 손바닥이 까졌었고... 제 기억에선 그 때 병찬이 나타나 손을 끌고 물을 뿌린 뒤 반창고를 붙여주었었다. 아, 그때구나. 피를 먹었던 걸까.

 

"...햄은 왜 제 인연을 먹었어요?"

"그게 내 인연이라서."

"무슨 소리예요?"

"모든 인어들은 육지로 올라와서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의 인연을 흡수해. 그것도 인연이잖아.“

 

이 말에 상호는 자기도 모르게 삐죽거렸다. 혹시나 좀 더 대단한 이유가 있을까 봐 기대한 탓이 컸다. 그 마음을 짐작하는 듯 병찬은 웃으며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육지에 올라와서 가장 처음에 본 게 너야. 그런 걸론 안 돼?"

"...아니에요. 좋아요. 어쨌든 제 가족이 되어주신 거니까.“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미 예전의 기억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이제 제 기억의 시작에는 병찬이 있었으며 그것이 모두 거짓임을 짐작하면서도. 이미 상호는 병찬을 가족으로 여기게 되었으니까.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그 존재 자체로 채워주었으니까. 그래, 크게 욕심 내지 말고. 계속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인어는 인연을 흡수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지식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병찬은 꽤 똑똑했다. 병찬은 자신의 나이를 인간으로 치면 20살 정도라고 말했으나 인간의 인연을 받을 때 사소한 것은 바꿀 수 있는지라 병찬은 제 나이를 18살로 설정했다. 이유를 물으면 그게 나을 것 같아서, 정도로 말하기에 상호는 그러려니 했다.

상호는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다녔고 병찬 역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자리가 생겼다. 상호가 농구부에 들어간 덕인지 병찬 역시 농구부에 들어가 있었다. 상호가 구력이 짧은 초보자라 그런가 병찬 역시 그런 걸로 되어있었다. 실상은 아예 처음 하는 초보였지만. 잘 지낼런가, 걱정했는데 그런 상호를 비웃듯이 병찬은 잘했다. 그러고 보면 인어들은 신체 능력이 참 좋았지. 상호는 병찬의 문자를 한참 내려보다가 말았다.

기어코 병찬은 3학년에 주전으로 나섰다. 상호는 병찬이 속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그 모습을 보았다. 바람같이 달려 나가 림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을 보면서 상호는 그 모습에 넋이 나갔다. 그가 농구를 제대로 배운 것은 고작 1년일 텐데도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 모습이 정말로 멋지고... 강렬해서. 상호는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욕심이랄 것을 가졌다.

 

병찬은 여전히 상호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상호의 인연을 써서 그런가 등본을 떼면 둘이 서로가 형제로 나왔다. 그런 주제에 성이 달랐고 생긴 것도 완전 달랐으니 서로가 형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둘을 형제로 보지 않았다. 상관은 없었다. 상호도 알았기 때문이다. 병찬이 처음 만난 사람이 제가 아니었더라면 병찬에게 아무런 관심도 얻지 못했을 것을. 병찬은 마을에서도, 도시에 나와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일정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병찬이 특히나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은 오직 상호 뿐이었다. 제 인연을 받아 가서 그런 건지. 상호는 분간할 수 없었으나 그 점이 매우 기꺼웠다.

상호는 결국 농구를 그만두고 공부로 대학을 갔다. 상호가 대학을 갔을 때 병찬의 재능은 좀 더 개화했다. 다들 구력도 짧으면서 대학리그를 휘젓는 신성 루키를 찬양했다. 그의 재능을 칭송하고, 경배하고, 깎아내리려고 들고... 그 모든 것에서 병찬은 마치 초월한 무언가 같았다. 상호는 예전, 떠난 인어들의 소식을 떠올렸다. 다들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지. 인어는 그런 종족인 걸까? 상호는 조금 궁금했다.

병찬은 프로로 나갔고, 상호는 평범하게 졸업했다. 병찬은 돈을 벌자마자 알뜰히 아껴 바로 집을 구했다. 그래서 상호는 졸업하고도 예전의 그 바닷가의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꼭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둘이 굳이 돌아갈 이유는 없었으니까. 상호는 평범하게 회사원으로 취직하며 병찬과 함께 지냈다.

그렇게 같이 지내면서 상호는 어째서 그 많은 인어들이 밖으로 나갔는지를 알았다. 병찬은 이미 상호가 알아버린 비밀을 꺼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호야, 형이 재밌는 거 보여줄까?“

 

들뜬 목소리로 저를 부르고, 허리에 수건 한 장만 두른 채 같이 목욕을 하자고 말했을 때. 상호는 조금 당황했다. 왜냐하면 병찬은 어린 상호의 기억에서도, 가족이 되고 난 이후에도 한 번도 같이 목욕을 한 적이 없으니까. 탓에 남의 몸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상호는 매우 당황했고... 그 꼴을 본 병찬은 히죽거리며 상호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손에 이끌려 욕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상호는 저는 안 벗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쭈뼛대며 있으려니 병찬이 웃으면서 상호의 옷을 툭툭 건들인다. 벗어야 하는구나. 상호는 어색하게 옷을 벗고 병찬과 같이 허리에 수건을 둘렀다.

병찬이 나름 큰맘 먹고 산 집은 욕조가 넓었다. 얼마나 넓었냐면 사람 둘이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병찬이 먼저 욕조에 들어간다. 상호는 들어가기 위해 손을 담가보다가 생각보다 물 온도가 차가운 것에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보통은 따뜻한 물을 담아두지 않나?

 

"상호야. 형 다리 잘 봐봐.“

 

그 말에 상호는 매끈한 병찬의 다리를 본다. 맨 몸을 본 것은 거진 처음이라 상호는 아까의 부끄러움은 어디 가고 병찬의 몸을 찬찬히 살핀다. 딱히 면도를 하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병찬은 희한할 만치 몸이 깨끗했다. 인어라서 그런 걸까? 서서히 올라가는 시선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저를 보는 얼굴과 마주하면 기묘한 기분이 든다. 상호는 손을 뻗어 병찬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움켜쥔다. 병찬이 더욱 즐겁게 웃었다.

제 아래의 살이 맥동하는 것을 느끼며 기상호는 박병찬의 목을 느릿하게 더듬었다. 목 부분에 갈라진 살이 느껴진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면 이것을 못 알아보기 어려웠다. 물고기에게 흔히 있는 아가미. 잘못 봤을까 싶어 손가락을 눌러보면 갈라진 살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갔다.

기상호는 서서히 시선을 내렸다. 상체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욕조에 팔을 걸치고 나른히 고개를 기댄 병찬의 손가락에는 물갈퀴가 달려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내리면... 아가미를 만지던 손을 내린다. 매끄러운 파란색의 비늘.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은 두 개의 다리일 터인데 갈라진 틈은 어디 가고 하나의 꼬리만이 아름다운 색을 발하며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비현실이 다시 다가오니 기상호는 당장의 정보 값을 처리하지 못한다. 박병찬은 그런 기상호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기상호가 손을 뻗어 천천히 그것을 만져본다. 손안의 매끈함이 느껴졌다. 결의 반대로 손을 움직이면 쉽게 손이 긁힌다. 병찬이 그 모습을 보다가 웃음소리를 흘리며 허리에 매둔 수건을 풀었다. 그러자 더욱 잘 보였다. 매끄러운 인간의 피부, 그 밑에 서서히 드러나는 파란 비늘들... 상호는 그 모든 것을 찬찬히 살피고 고개를 든다. 들뜨다 못해 알 수 없는 희열에 가득 찬 병찬의 얼굴이 보였다.

 

"상호야. 어때?“

 

무엇을 묻는 건지 바로 와닿지 않는다. 상호는 그저 그런 병찬을 마주 보다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고 이내 습관처럼 웃어 보였다.

 

"아름다워요...“

 

병찬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아, 그렇구나. 이제서야 인어들이 물을 피한 이유를 알았다. 물에 닿으면 이렇게 되니까, 그럼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렇다면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병찬의 단순한 변덕? 아니면 비밀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와중에 손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나면 상호는 고개를 든다.

 

"목욕 같이 하자고 했잖아.“

 

들어와. 그리 말하며 잡아 당기는 것에 상호는 저항 없이 욕조 안으로 빠져든다. 넓은 욕조는 상호가 그리 빠져들어도 어디에 머리를 박지 않아도 됐다. 병찬의 손이 상호의 가슴을 꾹 눌러 계속해서 물 속에 잠기게 만든다. 병찬이 그대로 머리를 숙였고, 둘은 물 속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병찬의 목에서 아가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물갈퀴가 달린 손이 상호의 가슴 위에 얹어져 있었다. 매끄러운 꼬리가 상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다.

 

"상호야.“

 

인어라서 그런가, 물 속임에도 병찬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렸다. 어쩐지 저도 될 것 같아 소리 내 말을 하려 했으나 나오는 것은 공기 방울이다. 병찬은 여전히 웃는 낯이다. 병찬의 얼굴이 다가온다. ...형이랑, 이런 거 해도 되나? 상호는 눈을 감는다. 닿는 것에 온기는 없었다.

 


 

상호가 30살이 되었을 때, 병찬의 팀이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자마자 병찬은 짐을 쌌다. 그리고선 상호를 닦달해 기어이 회사를 그만두게 만들었다. 애초에 병찬이 번 돈이면 평생 둘이 안 벌어먹고도 살겠지만... 어쨌든 상호는 강제로 병찬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예전에 살던 집은 병찬이 돈을 들여 많이 고친 상태라 지내기엔 나쁘지 않았다. 병찬은 오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상호의 손을 잡고 바다로 갔다.

둘이 도착했을 때는 슬슬 바다 안개가 마을을 휩쓸 때였다. 아직은 그러지 않았으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저 멀리에서 안개가 보였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저 안개가 마을을 뒤덮을 것이다.

상호는 제 옆의 병찬이 무언가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병찬은 평소와 달리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대뜸 비밀을 내밀곤 했는데. 때가 오면 말해주려나 싶어 상호는 독촉하지 않았다. 대신 병찬은 상호의 손을 잡고 마을 근처의 산을 탔다. 산이라기엔 그리 높지 않았으나 숲이 우거지고 야생동물이 나올 수 있어 산나물이나 열매를 딸 목적이 아니면 웬만해선 가지 않는 곳이었다. 병찬은 익숙하게 산길을 올랐다. 이상한 일이지. 기억 속 병찬이 산을 올라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닌 길이 있어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병찬은 조곤조곤 이 길을 어떻게 찾는지 알려주었다. 이 표식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는 거야. 그리 말하는 것에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30살이나 되었는데도 병찬은 상호를 아이 대하듯 대했다.

한참을 가니 나오는 것은 절벽이었다. 병찬은 상호의 손을 놓아주고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다행히 내려갈 만한 적당한 턱이 있었다. 계단 같은 그 턱을 따라 내려가면 동굴이 나왔다.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만한 크기, 반은 매끄러운 돌이었고 반은 급격히 낮아져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병찬을 따라 한참 안으로 들어가면 동굴의 안쪽에 물이 고인 곳이 있었다. 병찬은 뒤를 돌아 상호를 쳐다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이는 얼굴에 상호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마주 웃었다.

 

그 다음날 바다 안개가 마을을 덮었다. 병찬은 상호의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바로 앞도 구분가지 않을 만큼 빽빽한 안개 속. 그 속에서 상호는 병찬을 바라본다. 병찬은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셔츠 하나와 얇은 바지 하나, 슬리퍼 따위를 신고 있었다. 그 마저도 거의 풀어헤쳐진 상태로 걷는 병찬의 뒤를 따른다.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익숙한 길은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병찬은 바닷가로 가고 있었다.

얌전히 그 뒤를 따르는 상호는 잡힌 손을 내려다본다. 딱딱한 것이 손목에 닿고 있었다. 병찬의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보였다. 급하게 고개를 들어 드러난 병찬의 목을 살피면 살이 갈라져 있었다. 다리를 내려보면... 아직 갈라진 두 다리가 보였으나 발에는 비늘이 돋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병찬에게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바다 안개가 마을을 덮을 때 이곳은 바다와 같아진다. 병찬은 물에 닿으면 인어가 되었다. 그리고 인어들은 육지에 올라와 다리를 얻는다. 그럼, 이때 바다로 돌아가는 인어는 어떻게 되는가? 상호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끌려갔다. 힘을 준 것도 아니지만 상호는 병찬을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기어코 병찬은 바다에 닿는다. 병찬이 옷을 벗었다. 이미 인간으로 보기엔 어려운 모습이었다. 병찬이 서서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상호의 손을 잡은 채 였다. 둘은 바다로 들어간다. 물이 상호의 턱 끝까지 차오르고서야 병찬은 걸음을 멈췄다. 아니, 글쎄. 이제 병찬은 인어였으니 걸음을 따지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병찬은 뒤를 돌아봤다. 상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한다. 왜? 어째서? 상호는 병찬을 바라보았고 여전히 병찬은 웃는 얼굴이었다.

 

"꼭 가야 해요?"

"응. 네 덕분에 행복했어.“

 

병찬이 다가와 상호를 꾹 안아주었다. 언제나처럼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인어가 된 병찬은 언제나 체온이 낮았다. 병찬이 상호를 놓아주었다. 상호는 고개를 내린다. 아까 인어가 되어가는 병찬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상호는 병찬을 똑바로 쳐다본다.

 

"다리를 다쳤었네요."

"응."

"하지만 멀쩡했잖아요?“

 

병찬은 상호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버릇처럼 웃고 있었으나 웃지 않는 것을 알았다. 병찬이 입을 열면 날카로운 치아가 보였다. 그것으로 병찬이 혀를 깨물자 피가 났다. 원래도 붉었던 병찬의 입 안이 더욱 붉어진다. 병찬은 상호의 뒷머리를 감싸 쥐어 하늘을 보게 만들고 벌려진 상호의 입 안에 제 피를 흘려 넣었다. 상호가 본능적으로 그 피를 삼킨다. 병찬이 고개를 좀 더 숙이면 혀가 맞닿는다. 상호는 상처 난 병찬의 혀를 핥아냈다. 병찬은 그런 상호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떨어졌고, 이내 그대로 물 속으로 사라진다.

해무가 점점 걷히고 있었다. 상호는 바다에 혼자 서 있었다. 새로운 인어들이 다시금 누군가의 인연을 잡아먹고 나타났으리라.

 

돌아온 상호를 반기는 것은, 웃기게도 팀원들이었다. 상호는 농구선수였다. 분명히 며칠 전만 해도 회사원으로 컴퓨터나 두들겨야 했는데 모두가 기상호를 알았다. 수비 스페셜리스트 따위의 별명도 있었다. 상호는 병찬을 대신한 선수가 되었다. 웃기게도 그들과의 기억 역시 상호의 머리 속에 있었다. 마치 처음 병찬이 그의 기억 속을 비집고 들어온 것처럼 그들 또한 당연하게 주변인이 되어있었다.

이 사람들이 인어일 리는 없다. 상호는 그날 병찬이 제게 먹인 것을 깨닫는다. 인어는 인연을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마치 병찬의 인연을 잘라먹은 것만 같았다. 이것을 준 것은 병찬의 미련인가, 아니면 마지막 선물인가? 상호는 병찬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쥐여준 것을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상호는 아주 오랫동안 뛰었다. 40이 가까운 나이에 은퇴를 했다. 물론 상호가 진정으로 뛰었던 기간은 고작해야 10년도 되지 않으니 웬만한 선수들보다 짧은 선수 생활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는 모든 게 괜찮았다. 아니,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지. 피곤한 회사원을 붙들고 어떻게든 운동시키려 했던 병찬을 떠올린다. 이러려고 그랬나...

은퇴를 한 뒤 기상호는 집 같은 모든 번거로운 문제를 처리하고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기상호가 신경을 써둔 탓에 이제 집은 마을에선 가장 신식이었다. 거기에서 기상호는 한 번을 해무를 맞이했다. 여전히 인어들은 육지에 올라왔다. 그 사이에 바다로 나가기도 했으나 기대했던 만남은 없었다.

그 다음은 필요한 것을 챙겨 산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헤맸으나 병찬이 말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해가 다 떨어질 때 쯤엔 눈에 익숙한 절벽을 볼 수 있었다. 여기 즘에 내려가는 턱이 있었는데... 손전등을 키고 찾으니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내일 오는 게 좋을까, 고민했으나 기상호는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급할 것 없이 아주 천천히. 돌다리를 두드리듯 안전에 최대한 신경 쓰며 내려왔다. 발을 헛딛는 이벤트는 없었다.

가장 밑으로 내려오면 동굴이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익숙한 물웅덩이가 보인다. 아무도 없었다. 상호는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다가 챙겨왔던 침낭과 돗자리를 꺼내어 물웅덩이 옆, 그나마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잠에 빠져있던 상호를 깨운 것은 찰팍거리는 소리다. 눈을 뜨면 제 앞의 인영이 보였다. 빛 하나 없는 탓에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도 구분이 어려웠으나 누군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상호는 몸을 일으켰고, 이어 휴대폰을 찾아 불을 켰다. 가져온 생수통을 휴대폰 손전등 위에 얹어놓으면 간이 조명이 된다. 기상호는 물웅덩이에 걸터앉은 병찬을 본다.

 

"상호야, 어땠어?"

"무엇이요?"

"농구 선수로 뛰는 거.“

 

병찬은 여전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상호는 병찬의 다리를 살핀다. 물웅덩이에 반쯤 잠겨있는 꼬리에 긴 자상이 보였다. 사람의 다리가 있었다면 저기는 딱 무릎이었을까. 상호의 시선을 알아차렸음에도 병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햄.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응."

"저는 처음에 햄이 저를 무척 아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그냥 처음 만난 사람이어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응."

"햄이 준 인연들로 살면서 느꼈는데, 이게 원래 제 것이었던 거죠?“

 

병찬이 웃는다. 상호는 침낭에서 벗어나 병찬에게로 다가갔다. 병찬은 그런 상호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왜 나 덕분에 행복해했는지 몇 번이고 생각했어요. 분명 제가 받는 게 더 많았으니까. 제가 좋아서 그랬던 걸까,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어요. 햄은 저랑 있을 때는 그저 다정했지 행복해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눈치챘어?“

 

상호는 가만히 병찬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상호는 그 지역에서 아주 오래 살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잔뜩 듣곤 했다. 말할 곳이 필요한 어른들은 말 잘 듣는 아이에게 말을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누가 오고 나갔는지 상호는 모두 알았다. 기이할 만치 인어들은 모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머리가 좋기도 했고 노래를 잘 부르기도 했으며 병찬처럼 운동을 잘하거나 하는 식으로. 그래서 대부분의 인어는 도시로 나갔다. 그렇게 꿈을 펼친 뒤, 아주 소수의 인어들은 마을로 돌아왔고 그 뒤 해무가 몰려올 때에 사라졌었다. 상호는 인어들의 실종을 기억한다.

그리고 인어가 실종되면, 그 인어와 어떻게든 관계가 있던 사람들이 다시 도시로 나갔다. 그들의 삶도 어른들은 말해주었다. 아주 잘 산다고. 걔는 예전부터 그것을 잘했다고. 그래, 상호는 언젠가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인어는 이제까지 그 사람이 가졌던 인연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이 가질 인생도 잘라먹는 거 였어요. 그것도 가장 달콤한 부분을.“

 

병찬이 히죽 웃는다. 여전히 병찬은 상호를 아이 대하듯 했다. 정답을 맞힌 아이를 칭찬하는 얼굴로 병찬은 상호에게 손을 뻗었다. 상호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병찬이 저를 안는 것을 허용한다. 병찬은 품 안에 상호를 가득 안았다. 여전히 병찬의 몸은 차가웠다. 인간이 아님을 명확히 하는 그 온도에 상호는 그저 가만히 순응한다. 병찬의 손이 상호의 등을 토닥였다.

 

"햄의 다정은 미안함 때문이었죠.“

 

도시로 나간 인어들은 언제나 제가 두고 간 인연들에 다정했다. 돈을 보내주는 건 물론이고 자주 찾아와 기분을 살폈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그들이 가족에게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했다. 마을에 돈을 기부하는 것도 자주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겠지. 그 와중에 병찬은 상호를 데리고 나갔다. 상호에게 빼앗은 인생을 상호가 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무엇의 발로였을까?

병찬은 상호를 놓아주는 것 같더니 손을 끌어당겨 제 앞에 주저앉혔다. 눈높이가 같아졌다. 병찬이 땅을 짚고 물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온다. 언제 나와 같은 안개 속이 아니어서 그런가, 병찬은 여전히 인어로서 존재했다.

 

"상호야. 내가 괴물 같아 보이지?"

"네."

"맞아.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더 농구를 잘했을거고, 대학도 잘 가고 프로도 갔을 거야. 내가 받은 건 다 네가 받아야 했을 성취였어. 너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 반짝임이 너무 부러워서, 내가 먹어버렸어."

"..."

"근데 상호야. 너는 정말 똑똑해서 그 모든 걸 혼자 짐작했지만 하나는 틀렸어."

"뭔데요?"

"나 너한테 미안해서 다정한 거 아니야."

"...그럼, 왜 다정하셨어요?"

"상호야. 인어가 왜 인간의 인생을, 그것도 가장 반짝이는 부분을 잘라먹는지 알아?"

"아니오."

"사랑받고 싶어서 그래. 인어는 태생이 외로운 괴물들이라 그렇게 남의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하거든.“

 

병찬이 조금 더 다가온다. 담담히 제가 누렸어야 했던 것들을 가져갔노라 말하는 병찬을 보고서도 상호는 화가 나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렇게 병찬이 돌려준 인생을 다시 살며 상호는 생각했다. 이 인생은 제 손에 있을 때보다 병찬의 손에 있을 때 더욱 더 찬란했다고. 농구를 그만두고서도 괜찮았던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반짝이는 이를 지켜보는 걸로도 행복했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기상호는 아득바득 살아냈다. 그 찬란함을 돌려받은 것이 무거워 버텨내기에 급급했다. 돌려받았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상호는, 그러니까.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금 병찬이 나타나 제 인생을 다시 가져가 주길 바랐다. 병찬이 다시 행복한 얼굴로 코트를 뛰어다녔으면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인 것만 같아서... 그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근데 그 모든 걸 알면서 날 끝까지 사랑해줄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어떻게 다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

 

병찬이 사르르 웃는다. 입을 열면, 여전히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기상호는 홀린 듯이 혀를 내민다. 병찬이 다가왔고, 혀를 살짝 깨물었다. 이어 동굴 속으로 해무가 몰려들어온다. 이제는 병찬이 턱을 치켜올려 입을 벌렸고 상호가 그 입 안에 제 피를 흘려 넣었다. 병찬은 상호가 흘려주는 피를 모두 받아먹고, 이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혀를 핥았다. 그 모든 일을 마치면 제 앞에 있는 것은 다시 두 다리가 생긴 병찬이라. 다리의 상처마저 사라져있다. 상호는 그제야 환히 웃을 수 있었다. 상호가 일어나면서 병찬을 끌어당긴다. 병찬도 저항 없이 일어났다.

혹시 몰라 챙겼던 여분의 옷을 입혀준다. 신발은 남는 것이 슬리퍼 밖에 없었으나 병찬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절벽은 조금 위험했지만 안전히 올라왔다. 해가 뜨는 탓에 주변이 밝았다. 상호는 제 옆의 병찬을 바라본다.

 

"이번엔 어떤 걸 먹었어요?"

"별거 안 먹었어. 네 인생의 반짝임은 모두 지나갔으니까.“

 

그렇다면 남는 것은 별거 아닌 인생만 남아있는 이와 그 별거 아닌 인생을 집어먹은 인어 밖에 남지 않는다. 로맨스 소설로 따지면 꽤 맥이 빠지는 엔딩일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상호는 웃었다. 제 것을 내어주고 아마 평생 옆에서 떠나지 않을 이를 얻었다. 상호는 어쩐지 이게 딱 맞는 거래라고 생각했다. 상호 역시 끝까지 사랑해줄 이를 갈망하는 인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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