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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꿈의 이야기 - 귀향歸鄕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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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제9회 대운동회 발행

오컬트물 트윈지

첫 번째 이야기: 연緣(링크) | 김수박

두 번째 이야기: 귀향歸鄕 | 22

내가 예전에 땅을 하나 샀는데 말이야.

남자의 의뢰는 그런 말로 시작됐다. 그게 문중 땅이었거든? 문중도 아니긴 해. 원래는 어디 좋은 양반가였다는데, 거기 엮인 사람들이 옛날에 싹 죽고 제정신 아닌 노인 하나만 남아서 그 사람한테 오케이 받고 사 왔어. 하여튼, 거기 터가 좋아. 그래서 우리 부모님 모시고, 조부도 모시고, 당숙네도 모시고, 그거, 유골 아파트? 그런 걸 하려 했단 말이야. 그래, 봉안 그거, 이렇게 가족묘로. 대리석으로 어? 번듯하게 지어서 대대손손 복도 받고. 근데 막상 가보니까 뭔가 쎄하더라 이 말이야. 으스스한 게 닭살이 막 올라오는데, 귀신 알지? 왜, 그쪽이 그런 거 잘 아는 양반들이잖아. 오싹했다고.

“그래서, 터 정리해달라는 거예요?”

녹음파일을 듣던 성준수가 일시 정지를 누르고 물었다. 그런 이들이 원하는 거야 뻔했다. 자리에 뭔가 있는 거 같다―그 뭔가는 대개 귀신이었고, 해결해 달라―퇴마하든 성불을 시키든 알아서 치워달라는 거다.

“그렇지.”

“땅 산 지는 얼마나 됐대요?”

“와. 영 별로가?”

“네. 앞뒤가 안 맞는데요.”

찝찝함이 발목을 잡았다. 건달 같은 말본새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납골당이 아니라 땅을 사서 따로 가족묘를 만들만큼 신경을 쓴다는 것치고 묘하게 대충이다. 땅을 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지만 한동안 놀리다 이제 와서? 묫자리를 샀으면 바로 정비하고 이장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터가 좋아 샀는데 막상 가보니 으스스해? 터가 좋은지는 어떻게 알고 샀단 말인가. 으스스했다면 처음 땅을 보러 갔을 때부터 느꼈겠지. 위성지도만 보고 샀다던가, 남의 말만 믿어 가보지도 않고 샀다던가. 그렇게 남의 말을 너무 믿어 사기당했다손 쳐도 일반인이 무언가 느낄 정도의 흉지를 굳이 정화해 묫자리 삼겠다는 것도 이상하고. 왜, 뭔가 고인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인다지 않나. 대개는 처분하고 다른 땅을 사려 하지.

“우리가 언제는 사정 봐가며 일했나.”

“그렇긴 한데요.”

“일에 감정 실음 안 된다. 깡패든 사기꾼이든 우리야 일만 하면 되지. 그놈아가 진짜 나쁜 놈이면 업보는 알아서 돌려받을 기고.”

이현성이 대답하며 깜빡이를 켰다. 자연스레 시선이 표지판에 박힌다. 노고면. 어쩐지 눈에 익은 지명이었다. 온 적 있던가?

이현성이 모는 스타렉스가 표지판을 따라 샛길로 빠진다. 칠이 벗겨진 가드레일을 따라 내려가자 난잡하게 보수되어 울퉁불퉁해진 도로로 곧장 이어진다.

창틀에 걸친 팔이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튀었다. 성준수가 혀를 차며 팔짱을 끼고 색이 바랜 간판이 걸린 가게들을 보았다.

“선금 1억. 잔금 2억에 상황에 따라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실패해도 위약금은 없고, 터라도 일단 보고 오라드라.”

“돈 때문에 받은 건 아니죠?”

“아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는데.”

“선금 받아놓고 손 뗐다 해코지하면요?”

“몬 한다. 그만치 나쁜 놈들은 켕기는 게 많아가 살이라도 맞을까 오히려 설설 기면 기었지.”

“살 날리는 거 되게 쉽게 생각하네요.”

“그런 놈들이 뭘 아나. 지가 남들 쉽게 해코지하니까 남들도 그리 한다 생각하는 기지.”

그러니까 귀신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온 거겠지. 악귀가 따로 있는데도 악귀 같다는 말을 갖다 붙일 만큼 지독한 사람이 있는 거다. 그러다 문득, 저를 악귀라 칭하던 뒤차의 녀석들이 떠올라 인상을 구겼다. 그 새끼들, 내가 무슨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에휴, 됐다. 성준수는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대고 밖을 봤다. 유리에 붙은 랩핑지의 색이 다 바래 파란색이 되어버린 소머리국밥. 철문이 내려가고 먼지가 앉은 문방구. 촌스러운 이름의 구멍가게. 자연스레 쇠퇴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으리라.

쓸쓸하지만 을씨년스럽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성준수는 쇠락해 가는 소도시의 풍경을 좋아했다. 그가 어릴 적 지낸 시골집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했으니까.

작금의 행적에 계기가 된 날들이었다. 시작은 분명 그해 여름 초입에 꾼 꿈이었으리라.

기이하리만치 선명한 꿈이었다. 어린 제가 두 팔 벌려 안아서 네 번은 돌아야 할 것 같은 커다란 나무의 녹음이 어느 집 마당에 드리워져 있었다. 흙이 하나도 없도록 시멘트를 바른 마당에는 커다란 솥이 올라간 화덕이 있었고, 누렇고 빨간 기와를 얹어 지은 집 옆에는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볏단이 얹힌 초가집이 있었다.

그곳에 할머니가 서 계셨다.

그때까지 성준수에게 할머니는 한 사람이었다. 동부이촌동에 사는 아빠의 엄마. 그러나 꿈에서 본 이가 저의 또 다른 할머니라는 걸 자연스레 이해했다. 양옥으로 지어진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도.

저를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성준수는 현관문을 잡았다. 당연한 것처럼 몸이 절로 움직였다. 알루미늄으로 된 차가운 현관문을 잡자 심장이 두근거렸으나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린이날이나 생일 전날 밤 같은…… 분명 이 너머에…….

문을 연 순간 눈을 떴다. 성준수는 뺨을 문지르며 자신을 깨우는 엄마에게 말했다.

저 할머니 댁에 가야 해요.

성준수는 그날 처음으로 제게 외할머니가 있다는 걸 들었다. 자식들을 낳은 후 무속인이 되고, 집안에서 연을 끊어 모친조차 몇 번 찾아가 보지 못 했다던가.

정확하게 시골집을 묘사하는 어린 아들을 보며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 연락처를 뒤적여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여덟 살, 첫 여름 방학을 시골에서 보내게 된다.

심심하지는 않았다. 성준수는 원래도 컴퓨터 게임보다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했으니.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축구공을 차며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비가 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광으로 쓰는 초가집에 숨어들었다. 흙으로 된 벽이 무너지고 창호지가 다 찢어진 을씨년스러운 외관도 무섭지 않았다. 원체 겁이 없었으니. 그리고 애들은 좁고 지저분한 데서 놀기 좋아하지 않던가. 그의 외할머니는 혀를 차면서도 말리는 대신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가 손주가 놀 수 있도록 닦고 알사탕 두어 개가 담긴 통을 구석에 두었더랬다.

불만이 없던 건 아니다. 매미가 우는 무더운 여름에 집에 설치된 에어컨이라고는 거실에 한 대였다. 그나마도 할머니는 더위를 타지 않아 거의 틀지 않았고, 성준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야에 찬 물을 담아 발을 담그고 평상에 누워있었다.

그러면 그는 빠끔히 열린 대문 틈으로 손을 까닥였다. 살금거리며 할머니 몰래 빠져나가면 털털거리는 작은 화물차에 태워 읍내 구멍가게에 데려갔다. 소다 맛의 파란 쭈쭈바를 고르고, 먹기에는 아직 단단해서 가만히 들고 녹기만 기다리면 커다란 덩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아이스크림을 양손으로 쥐고 말랑해지도록 주물러주었다. 차가운 쭈쭈바를 입에 물고 다시 화물차에 올라 돌아오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 길을 지나는 동안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하여간 천방지축이었다. 시골 마을은 그런 어린아이를 포용했고. 그러니 시골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쇠락하는 모습마저도 애틋하다면 분명 그렇겠지.

추억여행이나 하자고 온 게 아니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숨이 나왔다. 여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조차 소름 끼칠 만큼 동티난 곳이 있다고. 잘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산골 깊은 곳은 굽이쳐 들어가면 으레 세가 바뀌니 그럴 수도 있다.

차가 느릿하게 마을로 접어들었다. 반쯤 누워 창밖을 보던 성준수가 몸을 일으켰다. 마을 바깥쪽을 돌면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때 밭이었던 곳은 돌볼 사람이 떠나 잡초가 무성했고, 축사는 방치한 지 오래된 것처럼 뼈대만 남아있었다.

그래도 익숙한 곳이었다. 그 앞을 지나가면 송아지가 제가 든 강아지풀을 빤히 쳐다보던 게 기억났다. 손을 내밀면 송아지는 코를 문지르다 저 주려고 갖고 온 걸 아는 듯 덥석 강아지풀을 베어 물었다. 순한 눈과 마주하고 있으면 녀석의 어미가 바로 옆에 서서 저를 보았다. 그게 꼭 푸근하게 웃는 것 같다고 느낀 적 있었다.

여덟 살의 시골 생활이 떠오른 건 어린 시절 갔던 시골과 비슷해서가 아니었다. 저 사는 집 주소 하나 겨우 외우던 어린아이가 지명도 모르고 그저 시골이라 말하던 곳.

분명 어린 자신이 여름을 보낸 장소다.

“선생님, 저 여기서 내릴게요.”

“여서?”

“어차피 오늘은 살펴보기만 하실 거잖아요. 제가 할 일도 없을 텐데.”

“와, 무슨 일 있나?”

“아뇨, 그냥…….”

기억대로라면 마을 외곽 길 끝에 사유지라 적힌 울타리가 나오고, 거기서 더 들어가면 오래된 성당이 나온다. 또 이어지는 길이 있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적어도 성당까지는 안전했다. 어린 제가 밥 먹듯 들락거려도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저 어릴 때 잠깐 살았던 곳이라 둘러보고 싶어서요.”

“맞나.”

“보시고 마을로 오세요. 거기서 기다릴게요.”

“그럼 오데서 만날래?”

이현성의 물음에 성준수가 기억을 되짚었다. 마을에 있던 커다란 우물 옆에는 정자가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외지인도 알만한……. 마을을 훑는 시선이 끝에서 멈췄다.

“당산나무 쪽으로 오세요. 바로 옆이 외할머니댁이거든요.”

산 쪽은 아마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덧붙이면 성준수를 내려놓고 차 두 대가 다시 나란히 길을 떠났다. 햄, 뭔 일 있어요? 소식을 모르는 뒤차에서 창문을 내리고 물었으나 귀찮다는 듯 손만 내젓고 말았다. 작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는 모습을 보다 걸음을 옮겼다.

제 기억보다는 정돈되었지만 몇 번이고 오간 길이기에 성준수는 금세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을 짚어냈다. 이제는 물이 흐르지 않는 수로로 무너져 내린 길 대신 잡초가 바삭하게 마른 밭 위를 걸었다. 늦게까지 봄비가 오지 않아 땅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밭을 가로지르고 가파른 둔덕을 오르자 금세 마을 안이었다. 마을엔 아직 사람이 사는지 길이 깨끗하게 깔려있었다.

사람만 지나가면 개가 사납게 짖어대 항상 잠겨있던 집의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정자 옆에 있던 우물은 메웠는지 평평해진 땅 위로 자갈이 깔렸고, 정자는 이전에 기억하는 것보다 낮게 바뀌어있었다. 제가 커서 그렇게 느끼나 싶었는데, 각져있던 기둥이 둥글고 윤이 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다시 지은 모양이었다. 우물을 약속 장소로 잡지 않아 다행이네. 성준수는 추억을 건져 올리며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성준수의 외할머니가 살던 집은 시골의 여느 오래된 집처럼 대문을 그냥 떼어 둔 채였다. 이런 구석까지 들어와 훔쳐 갈 거라 해봐야 우거지나 깨 정도라 망가진 문을 고쳐봤자 돈만 더 든다 생각해서겠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게 사 년 전이었던가. 집안에서 없는 사람 취급당하셨던지라 부고도 뒤늦게 들었다. 성준수는 여행 중이라 발인 날에야 어머니만 겨우 화장터로 가셨다. 성준수는 그게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손주라고 보살피고 아껴주셨는데―죄송한 마음도 들었고.

창고로 쓰이던 초가집은 기억보다 흙벽이 더 무너져 뼈대가 드러났지만 버리지 못한 물건이 여전히 쌓여있었다. 시멘트가 덮인 마당에는 넓게 차광망이 쳐져 그늘이 드리웠고, 화덕과 무쇠솥이 기억하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었다. 낙엽 하나 없이 닦인 마당. 수도와 연결된 낡았지만 삭지는 않은 비닐 호스. 반들거리는 평상과 화덕 앞에 까맣게 남아있는 재 따위의 것들. 외할머니가 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노인만 몇 남은 이런 시골에 굳이 집을 사서 들어올 사람은 드물다.

애초에 외할머니가 집을 팔 리 없었다. 어린 저와 한 약속이 있으니.

성준수가 알루미늄으로 된 현관문에 손을 얹었다. 익숙한 촉감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어렸을 때와 같은 적막이 집안에 내려앉았다. 기억보다 가구가 빠진 집은 휑했으나 꼭 할머니의 체온이 녹아든 것 같은 아늑함이 남아있었다. 성준수는 어린 시절처럼 막무가내로 집안을 헤집지 않았다. 차분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 법당이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불도 켜지 않은 방 가운데에 그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준수?”

기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순식간에 제 앞에 접이식 상이 펼쳐지고 과일이 쏟아져나왔다. 뽀득하게 씻은 자두 몇 알을 접시에 담아 내놓은 그는 사과와 골드키위가 담긴 소쿠리를 옆에 내려놓고 부지런히 깎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이네?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지? 살갑게 안부를 물으며 그는 큼지막한 손에 아담하기 짝이 없는 과도를 쥐고 사과를 야무지게 깎아냈다.

“많이 먹어. 자두 별로 안 좋아해?”

“저 한 개 다 먹었는데요.”

“하나 먹고 양이 차? 사과도 좀 먹고. 골고루 먹어야지.”

그러더니 과도를 내려놓고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를 포크로 쿡 찍어 내밀기까지 했다. 아니, 알아서 먹을 수 있는데. 멀뚱히 보고만 있자 벌어진 잇새에 쑥 밀어 넣는다.

“밥은 먹었어? 여기 오는 길에 제대로 된 식당도 없었을 텐데. 아직도 불고기 좋아해?”

“밥…… 먹었어요. 그러니까 과일 좀 그만 깎으세요.”

안 먹었다. 안 먹었는데 사실대로 대답하면 이번엔 밥을 고봉으로 쌓고 상다리 부러지도록 반찬을 내올 기세라 거짓말했다. 반쯤 들어 올린 엉덩이를 보면 분명 그랬다. 그는 비쩍 곯은 손주를 보는 할머니처럼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자꾸 무언가 먹이고 싶어 했다. 먹일 게 없으면 신발이라도 튀겨올 것 같아 성준수는 베어 문 사과를 부지런히 씹어 넘기고 화제를 돌렸다.

“신부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빈말이 아니라 신부는 제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늘 입고 있던 로만칼라 셔츠와 나무로 된 묵주팔찌는 당연하고 고개를 한껏 꺾어 올려다봐야 했던 큰 키나 다부진 체격, 짙은 인상과 차분하게 내려앉은 머리가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십 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그는 꼭 제 또래로 여겨질 만큼 젊어 보였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라면 신부가 더 어리다고 여길지도. 차분한 분위기를 떼놓으면 신부의 얼굴은 정말 앳돼 보였다.

신부는 그제야 편하게 앉았다. 뭘 더 내오진 않겠구나 싶어 겨우 안심했다.

“그런 얘기 자주 들어. 준수는 많이 컸네.”

“그렇죠. 저 이제 스물다섯인데. 신부님은 왜 여기 계세요?”

“너희 할머니가 이 집 쓰라고 하셔서.”

“여길요?”

“성당이 너무 낡아서 생활관에서 도저히 지낼 수가 없었거든. 돌아가시기 전부터 신세 졌어. 거기 물도 끊겼다?”

아, 그 낡은 성당. 거기서 미사를 드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건물이긴 했다. 무슨 소요에 휘말리고 군데군데 무너진 걸 신부가 서툰 손으로나마 직접 보수했다.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도운 게 자신이었으니까.

돌을 주워다 시멘트를 발라 얹고, 채 마르기도 전에 뛰어다녔더니 계단을 오를 때마다 덜컥였다. 그럴 때면 신부는 다친다며 이미 계단을 다 뛰어오른 제게 달려왔다.

“그 성당 아직도 있어요?”

“응. 매일 미사도 드리는데.”

“누가 오긴 해요?”

“이젠 안 오지. 그래도 올려야 하니까.”

젊은 사람이 없는 시골 마을이라는 게 그랬다. 종교활동 하러 주에 한 번 성당이며 교회로 가는 사람의 수는 매해 줄어든다. 누군가는 몸이 불편해 뒷바라지 받으러 자식들이 사는 도시로 갔고, 또 누군가는 어느 날 급하게 병원으로 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마을을 몇십 년째 지키고 있는 신부라. 푹 익은 골드키위를 입에 넣자 혀 위에서 뭉그러졌다. 냉장고에 오래 있었는지 단단함이 거의 없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일 때문에요. 누가 묫자리 봐달라길래.”

“그런 쪽에서 일해?”

“그런 쪽이라기보다…….”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 외할머니는 만신이라 불리던 사람이었으니까. 남자가 신줄을 물려받는 건 드물다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니 제게 왔다 짐작할 수도 있지.

묻는 신부의 얼굴에 떠오른 근심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왤까. 성준수는 그게 거북했다.

역시 종교인이니 무속과 엮이는 건 껄끄러운가? 제가 기억하기로 신부는 제 할머니와 꽤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지금만 해도 돌아가신 할머니 댁에 들어와 살고 있지 않나.

“준수 햄! 안에 있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말을 고르는데 밖에서 익숙한 사투리가 들렸다. 성준수가 일어나기도 전에 전영중이 현관을 열고 나갔다. 문 너머로 중형차 두 대와 옹기종기 모여 선 사람들이 보였다.

“준수 친구들?”

“……예, 그런데요.”

성준수 대신 나타난 이를 보고 눈만 굴리다 이현성이 뒤늦게 대답했다. 외할머니댁이라고 들었는데, 마중 나온 사람은 성준수도, 할머니도 아닌 덩치가 문짝만 한 남자다. 이 사람 누고? 묻는 듯한 시선에 성준수가 미간을 구겼다. 그러게요. 이 마을 신부님이긴 한데, 지금은 이 집에 살고, 그렇다고 집주인은 아니고, 어렸을 때 놀아주던…… 진짜 뭐지? 친구? 아니면 외할머니 친구?

“밥 먹었어요?”

“안……!”

“아뇨, 아직 안 먹었는데요. 형은 누구세요?”

말리기도 전에 정희찬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이런 씨발. 성준수는 낭패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부님, 괜찮으니까…….”

“그럼 밥부터 먹어요. 먼 길 와서 배고프겠다.”

전영중이 마당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말릴 새도 없이 구석에 쌓아둔 장작부터 옮기는 모습에 이마를 짚었다. 늦었다. 성준수는 어떤 예지처럼 끊임없이 리필되는 밥과 반찬의 환영을 본 것 같았다.

“……갑자기 뭐예요? 밥? 저 사람 누군데요?”

신부에게 붙잡혀 하나하나 집안으로 밀어 넣어지는 와중에 기상호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어휴, 덩치들 좀 봐. 양 많이 해야겠네. 얼핏 푸념처럼 들리는 말에는 들뜬 기색이 선명했다. 꼭 이러고 싶어서 안달 났던 것처럼.

말릴 타이밍을 완전히 놓친 성준수가 체념한 투로 소개했다.

“니들 배 터트릴 할머니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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