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의자

종뱅. 종수병찬. 동거종뱅. 프로종수x대딩병찬.

그리 넓지 않은 거실 구석에 시커멓게 버티고 있는 것은 큼직한 구형 안마의자다. 종수네 부모님이 신형 안마의자를 구독 서비스로 들이면서 처치 곤란해진 이전의 구형 안마의자가 종수와 병찬이 함께 지내는 아파트로 옮겨진 것이다.

프로구단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종수는 구단에서 고용한 스포츠 마사지사로부터 마사지를 받을 수 있지만, 대학 농구팀에서 뛰고 있어 그런 혜택 따위는 누릴 수 없는 병찬은 안마의자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거의 매일 한 번씩 안마의자에 올라앉아 마사지를 즐기고, 그대로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 저녁 안마의자를 차지하는 병찬 때문에 종수가 안마의자에 앉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러니 U리그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병찬이 길어진 훈련으로 늦게 들어오게 된 일주일은 종수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딱히 안마의자의 마사지가 아쉬운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전문 스포츠 마사지사가 해주는 것보다 못할 것이고. 그냥 매일 거기 누워 행복한 얼굴로 나른하게 졸아버리는 병찬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했다는 쪽이 정확할 것이다.

처음 이삼 일 동안 종수는 짧은 코스로 마사지를 받은 후 병찬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시치미를 떼고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확실히 전문 스포츠 마사지사의 것보다 못하지만 안마의자의 움직임은 제법 기분 좋기는 했다. 그래서 점점 경계심이 낮아졌던 탓일 것이다. 안마의자에 앉아 거치대에 끼운 핸드폰으로 유튜브 경기를 보다 깜빡 졸고 말았다. 어렴풋이, 박병찬이 이런 기분으로 잠들었던 거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마사지가 끝났다는 신호음이 울리자 잠결에 리모컨을 들어 같은 코스 반복을 눌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짧은 코스다. 오늘도 박병찬은 늦게 들어올 테니 시간은 충분하다. 나른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는 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종아리와 팔을 잡아둔 마사지판에 걸려 실패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허리께에 두었던 리모컨마저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아파트로 들어선 병찬은 당황해서 새빨개진 얼굴로 누워있는 종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안마 받는 중이야? 그거 좋더라. 너희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인사는 이미 했어.”

“한 번 더 해드려. 내 인사도 전해드리고.”

병찬의 말이 태평해서 종수의 달아오른 얼굴은 차츰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더구나 제 부모님이 넘겨준 물건인데 좀 쓸 수도 있지.

안마를 받는 병찬이 아이고 소리를 반복하고 있을 때 노인네라고 타박한 적은 있다. 안마가 끝나도 알아채지 못한 채 졸고 있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혀를 찬 적도 있다. 그래서 역습이 있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병찬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씻으러 욕실로 가버렸다. 종수는 안심하고 어긋난 등 부분을 고치며 안마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잠기운이 남아 다시 감기는 눈을 번쩍 뜬 것은, 코트에서 기른 감 때문일 것이다. 등 뒤로 지나가는 볼의 궤적도 예측할 수 있도록 단련한 감각.

어느새 병찬이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다가왔던 모양이다. 얼굴에는 한껏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져 있다. 가슴 앞으로 치켜든 두 손은 지금부터 장난을 치겠습니다 하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야, 박병찬! 뭐 하려고? 저리 꺼져!”

“뭘 할 것 같은데?”

병찬이 키들거리며 웃었다. 강렬한 위기감이 느껴진다. 저 손은 간지럼을 태우려는 걸까. 박병찬은 같은 집에서 살게 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종수가 간지럼에 약하다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한 침대를 쓰게 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종수의 약점을 모두 발견해냈었다. 이건 너무하다.

“아이 씨발, 박병찬! 하지 마! 뒤진다 너!”

병찬은 종수의 티셔츠를 홱 걷어 올렸다. 종수가 뭐라 비명을 지르고 위협하건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바짝 다가서는 병찬에게 너무 신경이 집중된 나머지, 억지로 뿌리치면 팔다리를 묶은 마사지판 따위는 떨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첫 공격은 옆구리일까. 아니면 겨드랑이? 이 각도에서 발을 노리진 않을 거고. 종수의 머리속으로 바쁘게 전술 예측이 이어졌다. 병찬의 손이 드러난 배에 닿는다. 몸이 바짝 긴장했다.

종수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드러난 그의 몸에서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은 것은 명치였다. 그것도 간지럽히는 큰 손이 아니라 부드러운 입술로. 연신 입맞추는 입술이 피부를 문지르며 아래로 이동한다. 이따금 뜨겁고 촉촉한 것이 피부 위를 간지럽히기도 한다. 불쾌한 간지럼과는 아주 다른 감각으로.

병찬의 입술이 트레이닝 팬츠 허리 밴드까지 내려갔을 때 종수의 얼굴은 다시 한번 폭발할 듯 붉어져 있었다. 허리 아래로 몰린 피가 트레이닝 팬츠 안에서 이너웨어를 밀어대기 시작했다.

“박, 박병찬. 너 미쳤어…?”

“아니, 제정신인데?”

고개를 든 병찬은 조금 전까지 하던 짓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담백하게 웃고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병찬이 종수를 향해 다시 몸을 굽혔다. 새빨개진 종수의 입술에 제 것을 가볍게 붙이고는 일어선다.

“안마 잘 받아라, 종수. 안마 받다 자버리면 형 실망할 거야.”

웃음 소리만 남긴 채 병찬은 침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직 안마 코스는 한참이나 더 남았다. 안마가 먼저 끝날지 바짝 힘이 들어간 하반신이 먼저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문득 종수는 서늘하게 닿아오는 공기를 깨달았다.

“야! 박병찬! 티셔츠는 내려주고 가!”

빽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열린 침실 문에서 나오는 건 박병찬의 즐거운 웃음소리 뿐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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