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준]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이 올까요
성준수 짝사랑하는 전영중 X 성준수
2024. 12. 29 完
written by. 이스터
“오빠 괜찮아…?”
“어. 성지수, 엄마한테 말하지 마.”
“응…”
기내초 시절 6학년 형들과 싸워 빨갛게 부어오른 뺨과 주먹을 쥔 채, 울먹거리는 성지수에게 무심하게 말하던 성준수는
“오빠 괜찮아?”
“어. 괜찮다고. 성지수, 엄마든 전영중이든 말하지 마.”
“…….”
“야, 왜 대답 안 해.”
고열로 빨갛게 달뜬 얼굴을 하고도 병간호하러 와준 동생에게 투덜대며 말했다.
12월 24일 오후 2시. 예년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화창한 날씨까지 성탄전야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침대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민 준수와 그 앞선 지수는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서있었다.
“몰라, 갈게. 몸조리 잘해.”
지수는 저녁 약속이 있다며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도 한동안 침대 머리맡에서 제 오빠를 빤히 바라봤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더니 휙 돌아서며 방의 불을 꺼주고는 외풍이 들까 방문도 단단히 닫아주었다.
“쟨 갈수록 말을 안 들어…. 콜록콜록”
띠리릭. 지수가 닫은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기자 고요해진 집안엔 준수의 기침 소리만 울려 퍼졌다.
때늦은 독감으로 앓아누운 지 이틀. 기합으로 이겨낸답시고 집안 구석에 굴러다니던 감기약 하나 먹은 채로 버텼다. 다음날 고열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제 막 방학을 시작한 대학생인 지수에게 연락하니 죽과 약을 사 들고 왔다. 아르바이트도 빼고 와서는 하나뿐인 오빠라고 집도 치워주고 죽도 나눠놓고 간 착한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준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까칠하게 굴었다.
“으… 온몸이 아프네…”
지수가 돌아가고 이불 안에 머리까지 집어넣곤 꽁꽁 싸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금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준수가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뭐야 성지수…뭐 놓고 갔어…?”
현관과 마주 보고 있는 방문을 향해 곧장 다가오는 발소리. 준수는 안압이 높아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물거렸다.
“준수 성대를 어디 팔아먹었어? 말하지 마 듣는 사람이 더 불편하다.”
“하 시바 성지수 말 존나 안 들어 진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인영은, 근처에 사는 전영중이었다.
“어휴… 성지수가 전화했지.”
“어 준수 엄청나게 아프다고 좀 봐달라고 하던걸?”
“필요 없어 꺼져…콜록콜록”
기침이 얼마나 깊은지 할 때 면 준수가 몸을 들썩거렸다. 기관지를 부여잡고 금방이라도 죽을 듯 내뱉는 기침에 영중은 혀를 차며 손을 뻗어 준수의 이마를 짚었다.
“이마가 불덩이다 불덩이. 안 되겠다 병원 가자.”
“감기 가지고 무슨 병원이야. 유난 떨지 말고 나가.”
“준수 너 지금 목소리 칠판 손톱으로 긁는 거 같거든? 그리고 이렇게 기침 하면 옆집에서 소음공해로 신고해.”
“하 지랄 좀….”
준수가 뭐라고 하든 말든 영중은 몇 번 와본 준수의 집을 헤집으며 패딩과 목도리 등을 챙겼다. 옷방을 한 바퀴 헤집고 온 듯 양팔 가득 옷을 가지고 온 영중이 준수의 침대 위로 옷을 던졌다.
“뭐 갈아입혀 줘?”
“미친 어휴 시바꺼….”
비척비척 일어난 준수가 싸맸던 이불을 풀었다. 하얀 피부가 열에 달아 붉었다. 식은땀은 얼마나 흘렸는지 입고 있는 파자마가 축축했다.
파리한 손이 파자마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는데, 준수가 고개를 들었다.
“구경났냐? 뭘 쳐다보고 있어.”
“준수 옷 갈아입다가 쓰러질까 봐 걱정되어서 봐준 건데?”
“너 때문에 열받아서 쓰러질 것 같으니까 눈깔 돌려라.”
잠옷을 벗고 티셔츠에 맨투맨, 후드에 패딩까지 입히니 준수가 답답한 듯 목을 잡아 늘였다.
“남극 탐사 가냐? 뭘 이렇게 가져왔어.”
“그래서 준수는 남극 갔다 와서 독감 걸린 거야?”
목도리를 손에 든 영중이 준수의 눈만 빼놓고 목 주위를 칭칭 감았다. 투덜 대면서도 영중이 타고 온 차에 얌전히 올라타는 게 아프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근처 내과에서 처방전을 받았다.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대기인원이 많아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겨우 의사 얼굴만 보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따라 걷던 준수가 팔을 뻗는다.
“야 전영중. 나 존나 어지러운데….”
“약 내가 받아올 테니까 차에 가 있어. 히터 틀어놓고.”
“부탁 좀 한다… 콜록콜록.”
주차장까지 준수를 에스코트하듯 모셔 놓곤 영중이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열이 많이 나는데요….”
“해열제 포함되어 있으시고요. 콧물은 안 나시는 거죠? 기침약은 먹으면 졸리실 거예요.”
“아, 네네….”
무덤덤한 약사의 말에 영중이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조제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영중은 얼굴에 초조를 숨기지 않으며 약사가 ‘성준수 님-’ 하고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눈을 감고 있던 준수가 차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야… 너, 뭐 약국 차리게?”
“다 필요해서 산 거야. 좀 자. 깨워줄게.”
하얀 약국 봉투 두 개를 가득 채운 물건에 준수가 물었다. 준수의 무릎에 봉투를 올려놓은 영중이 차의 시동을 걸자 준수가 안전벨트를 맨다.
“준수 많이 아픈가보다. 오늘 진짜 얌전하네.”
“…목 아프니까 말 시키지 마….”
눈을 감고 기댄 준수의 앞머리가 젖어있었다. 영중은 액셀을 조금 더 세게 밟았다.
집으로 돌아와 해롱거리는 준수를 앉혀놓고 목도리와 옷을 벗겨냈다.
“나 씻어야겠다… 찝찝하네….”
“괜찮아?”
손을 휘이휘이 젓더니 새 잠옷과 속옷을 든 준수가 욕실로 들어갔다. 곧 물소리가 들리고 준수는 지수가 사놨던 죽을 데우고, 준수의 옷을 정리했다.
“죽 먹어.”
“목구멍 아픈데….”
“그래도 먹어야지.”
젖은 머리 위에 수건을 뒤집어쓴 준수가 욕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영중이 준수의 손목을 잡아끌어 식탁에 앉히자, 프랜차이즈 용기에 담긴 닭죽과 반찬이 보였다.
“먹고 약 먹고 좀 더 자. 크리스마스에 아프기나 하고….”
쨍알거리는 영중에게 뭐라 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리던 준수가 결국 목을 부여잡고는 눈을 흘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후후 죽을 불어가며 꾸역꾸역 집어넣고는 알약까지 물과 함께 삼키니 몸이 더욱 축 늘어진다.
“와줘서 고맙다. 이제 가.”
“어어- 너 자는 거 보고 갈게.”
“유난이네 진짜….”
기운이 없는지 꿍얼거린 준수가 순순히 제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침대 밑바닥에 영중이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내일 크리스마스인데 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냐-”
“사람 많아서 치이기나 하지…집에 있을 거였어….”
“내가 내일도 와줄까?”
“뭐 하러…. 옮는다.”
준수가 고개를 옆으로 틀어 눈을 뜬다. 약기운이 도는지 아까보단 편한 표정이었다.
“내가 준수처럼 약골인 줄 알아?”
“아휴, 네 맘대로 하세요….”
스르륵 감기는 눈과 고른 숨소리, 영중은 손을 뻗어 준수의 콧잔등을 쓸어내렸다.
“아프지 말지…. 걱정되게….”
열이 가라앉은 흰 피부가 눈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준수의 감긴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고, 뿌옇던 시야가 점점 돌아왔다.
‘몇 시간을 잔 거지…’
핸드폰을 찾으러 손을 뻗는데, 동그란 뒤통수의 촉감에 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왜 아직 안 갔어….”
제 침대에 엎드려 팔을 괴고 잠든 영중을 흔들자 퍼뜩 고개를 든다.
“아 잠들었다…”
“잘 거면 올라와서 자든가, 불편하게….”
준수는 목이 마른다며 부엌을 향했다. 물병과 물컵을 들고 오더니 침대 끄트머리에 눕는다.
“잘 거면 누워서 자. 내 침대 안 작아.”
“…어, 응….”
다시금 눈을 감는 준수 옆에 영중이 몸을 뉘었다. 운동부 시절에도 그렇고 같이 잔 적이 처음도 아니건만 괜히 심장이 콩닥거렸다.
“야, 전영중….”
“어?”
“생각해 보니까 너 밥도 안 먹었네…. 배 안 고프냐…?”
“아 괜찮아.”
눈을 감은 채 웅얼거리던 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긴 돼지 새끼잖아 너….”
“준수가 못 먹는 거겠지. 나는 덩치만큼 먹는 거거든?”
준수가 아예 몸을 영중쪽으로 돌려 모로 누웠다. 슬쩍 한 쪽눈만 뜨더니 영중을 바라본다.
“너 내일까지 있을 거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크리스마스여도 배달은 되겠지 뭐.”
“정말이지? 먹고 싶은 거 다 시킨다?”
“처먹을 수 있는 만큼만 시켜라.”
“그런 걱정 말고 준수는 낫기나 해.”
“자고 나면 낫지 이런거….”
준수가 뒤척거리나 싶더니 다시 실눈을 뜬다.
“전영중.”
“어. 준수야 좀 자.”
“잘거야, 졸려…아니, 나 자는데 뽀뽀하지 말라고 감기 옮으니까.”
“야 당연히 안…. 뭐?”
영중이 벌떡 몸을 세웠다. 준수가 가물거리는 눈으로 킥킥 낮게 웃었다.
“무, 무슨, 무슨….”
“일단 자자 머리 아프다- 콜록콜록.”
준수가 팔만뻗어 영중의 옷을 끌어당기자 영중이 꽁꽁 얼어붙어 눈만 꿈빡거린다. 조용해지니 금세 또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준수였다. 영중은 아직은 따뜻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알고있었던 거냐고….”
크리스마스의 하늘은 말랐지만, 전영중에게는 흰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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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저번 주에 이거 쓰다가 독감이 왔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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