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ard Day to Die

A Hard Day to Die 1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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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혜화동에는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하나 있다. 업력 7년의 G&T ENT. 30년 된 낡은 상가건물 3층에 자리 잡고, 소속 연예인은 무명 모델 이하율 하나다. 출근하지 않는 사장 한 명 아래로 영업 겸 대외업무 겸 총무 겸 회계 겸 겸 겸...... 맡은 업무가 과중한 다재다능 팔방미인 김동주가 그의 매니저를 맡고 있었다.

"그럼 씨발아, 청소는 왜 안 하는데?"

"업무 내용에 청소는 없어서요, 이하율 씨."

"야. 내가 과자를 처먹었냐, 맘모스 빵을 처먹었냐? 먹을 건 니가 다 처먹어 놓고 왜 내가 비질을 해?"

"우리 다이슨 살까?"

"지금 시발, 그게 문제 같아?"

G&T의 유일한 모델이자 매출인 이하율이 파란 플라스틱 빗자루를 내던진다. 세로로 회전하며 날아드는 빗자루를 피해 의자를 민 김동주가 보고 있던 잡지면을 이하율 쪽으로 펼쳐 보였다.

"이것 봐. 지난번 보낸 단체복 사진 들어간 카탈로그거든? 대충 찍어 보내도 알아서 쓴다더니 포토샵 진짜 잘했어. 하율 씨 표정 그때 완전 썩어있었는데 하나도 티 안 난다?"

"내 표정이 썩은 게 아니라 김 매니저가 사진을 좆같이 못 찍었잖아."

단체복 업체에서 옷을 보내면 적당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게 그들의 주 수입원이다. 때로는 바쁜 의류 업체를 대신해 저렴한 가격에 현지 공장에 찾아가 협의하거나 검수하는 일도 했다.

지나치게 밝은 피부 톤을 짙은 파운데이션으로 누르고, 얇은 얼굴선에 음영을 더해 남자다움을 부각한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모델 이하율은 미모를 죽이기 위한 화장을 했다. 열 벌 남짓 되는 옷 중에 하나를 입고 사무실 구석에 있는 흰색 크로마키에 선다. 그럼 영업 겸 대외업무 겸 총무 겸 사진사가 된 김 매니저가 핸드폰으로 그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엿같은 매니저가 얼마 전까지 있던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동반자를 잃은 삼각대는 매니저의 발에 채 날아간 후 쭉 구석에 처박혔다.

"매니저님. 그만 처 놀고 메일 회신이나 하세요."

"저는 다 했는데요? 모델님이나 다음 해외 출장 계획서 제출하세요."

"네가 좀 해라. 사장님한테 연락해서 너 자르라고 하기 전에."

"하율 씨, 놀 거면 월급은 왜 받지? 일도 나 주고 월급도 나 주지."

아, 씨바거. 이하율은 이를 갈며 자리에 앉았다. 작업표시줄의 한글 아이콘을 누르자 이미 열어놓았던 파일이 나타났다. 출장신청서. 출장명. 마가단주 갱단 동향 파악과 마약 유입 경로 확인. 인원. 성준수 외 1인. 장소. 러시아 마가단.

딩동. 현관벨이 울린다. 쿵쿵쿵. 철문을 내리치고 택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하율과 김동주의 시선이 마주친다.

"너 또 회사로 간식시켰냐?"

"아냐! 나 요새 뭐 주문한 거 없는데?"

이하율 씨 계십니까. 철문 너머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아하. 이하율이라는 이름에 김동주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도 아냐, 새끼야. 사장님이 택배 보낸다고 한 거 있어?"

그를 바라보며 인터폰을 들어 올린다. "문 앞에 놓고 가세요." "직접 수취하셔야 하는데요." "다리 부러져서 못 나가요. 두고 가세요." 김동주가 고개를 젓는다. "꼭 본인에게 전달해 주라고 했어요."

대한민국 어느 택배가 그렇게 배송되지?

10. 쾅! 문밖에서 소음이 울린다. 먹먹하게 들렸던 택배기사의 목소리와 달리 금방이라도 문짝이 날아갈 듯한 생생한 폭발음이다. 전영중과 성준수는 책상 밑 깊은 곳에 손을 넣어 버튼을 눌렀다. 파직! 컴퓨터 본체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9. 성준수가 스마트워치를 누른다. 2시 두 번, 7시 한 번, 5시 한 번. 전영중이 눈에 띄지 않는 하얀 레버를 잡아당기자 벽 한쪽이 무너지며 방부 처리된 더미바디 두 체가 튀어나왔다. 그중 작은 쪽을 성준수에게 던진다. 창문에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8. "미친 새끼들. 종로 한가운데서 뭘 갈기는 거야?" 성준수가 지갑을 더미바디 위에 던지며 외쳤다. 전영중이 책장 사이에 화약을 쑤셔 넣으며 문서보관함에 들어있던 체스트벨트를 꺼냈다.

7. 크로마키를 걷어 올리자 글록 두 정과 m16, m500, m24가 걸려있었다. 성준수는 글록 한 정을 건넨다. 사정없이 두드려지던 방탄유리가 이제는 일점사 당하고 있었다. 전영중은 체스트벨트에 글록을 끼우며 남은 화약을 문 앞으로 걷어찼다.

6. 남은 총기를 창고방으로 던진다. 금고에 쓰일법한 두꺼운 출입문에서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영중은 창고방의 옷걸이를 밀치고 육중한 바닥을 들어 올렸다.

"오!" 성준수가 글록을 쥐고 벽면의 버튼을 쳤다. 낮은 경고음이 울린다. 전영중은 총기의 잠금을 확인하고 하나씩 아래로 던진다. 방구석의 옷 무덤을 구멍으로 밀어 넣으려다 방 밖으로 달려간다.

"넷!" 성준수의 손을 잡아끈다. 방탄유리는 균열이 가기 무섭게 산산이 조각나 몰아쳤다. 제 머리를 눌러 감싼 전영중의 옆구리를 한 대 패고 옷 무덤을 밀어 넣는다.

"삼." 숫자를 훔친 전영중이 성준수의 입술에 제 것을 맞대었다. 혀까지 밀어 넣으려는 개수작에 기어코 그립으로 관자놀이를 얻어맞는다. "진짜 아프다, 준수야."

"둘." 눈으로 욕하며 새카맣게 뚫린 바닥을 가리킨다. 전영중은 하하 웃고 뛰어내렸다. 성준수는 벨트에 권총을 꽂아 넣고 벙커문 끝을 잡았다.

하나. 단단히 잠겨있던 출입문이 알아서 열렸다. 쾅. 성격 급한 이들이 곧장 문을 걷어차고 들이닥친다. 성준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뛰어내렸다. 철문은 닫힘과 동시에 자동으로 잠겼다. 큼지막한 손이 몸을 더듬다 어깨를 잡아당긴다.

건물이 진동하는 게 느껴진다. 후끈한 열기에 두 사람은 몸을 낮추었다. 전영중이 앉았고, 잡혀있던 성준수는 강제로 그 위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이러고 있으니 너무 좋다."

"지랄 말고 떨어져. 더워."

목덜미에 입술을 부비는 전영중을 밀어내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래봤자 1평남짓 공간에 화재 현장에서 바로 아래 3미터다. 평균 키 190cm인 남자 둘이 차지한 패닉룸은 금세 열기로 데워졌다.

성준수는 욕하기도 싫어 벽에 머리를 댔다. 그 와중에 제가 불편하지 않도록 다리를 잡아 펴는 손길을 걷어찼다. 귀찮게, 진짜. 충격 방지용으로 던져놓은 옷가지에 고인 열기마저 짜증 났다.

"하율 씨, 사장님한테 연락 까먹은 건 아니지?"

"좆같은 이름 그만 불러라."

"왜? 요즘 애들 같고 좋잖아."

"닥쳐. 다음 니 가명은 김똥개로 지어버릴 거야."

"내가 강아지처럼 귀여워?"

"그래, 개새끼야."

연락했어. 성준수는 나지막이 덧붙이고 자세를 바꿨다. 옷가지며 총을 구석으로 밀자 전영중이 핸드폰 액정을 켜 아래를 비췄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밀실에 흐릿한 빛이나마 비추는 게 나았다. 성준수는 머리를 전영중 쪽으로 두고 다리를 접어 맨바닥에 누웠다. 성인 남자 둘이 4시간까지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산소 소모를 줄여야 한다. 전영중은 핸드폰을 끄고 성준수의 얼굴이 있던 곳에 가만히 제 손등을 대었다. 축축한 손등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뺨이 닿는다. 작은 접촉도 성가셨지만 이 정도는 봐주기로 했다.

누구일까. 대낮에 총기를 난사하고 폭탄을 터트릴 정도의 과격파. 사무실 출입문이 벙커급 두께인 걸 알고 뚫을 준비를 해올 정보력. 최근 쑤신 곳은 이르쿠츠크의 인신매매단이었다. 장관의 자식 하나가 사라졌다기에 추적했더니 매음굴에 팔려가 마약에 절여져 있었다. 중국 유학 중이었다 납치당한 한인 몇과 아시아계를 같이 빼돌렸다. 밴디트인 줄 알았는데 브라트바 규모였나. 중국 쪽 공안으로 위장했는데 들켰나 보다. 그놈들이면 중국 고위층에도 다리가 놓여 있을 테니 작정하고 공안 명단을 뒤졌을 수도 있고. 씨발, 그러게 고려인으로 위장하자니까. 옆을 더듬어 위치를 확인하고 단단한 허벅지에 주먹을 꽂는다. 애무야? 간지러운데.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전영중은 나사가 하나 풀렸는지 돌아버렸다. 대꾸하지 않자 잠시 후 허벅지를 문지르는 소리가 났다.

시간이 제법 지난 거 같았다. 공기는 갈수록 습해져 기분 나빴다. 전영중 땀 냄새. 너랑 같이 있으니 흥분했나 봐. 처 돌아버린 새끼. 시계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등 밑이 퉁퉁 울리는 감각에 전영중을 두드린다. 전영중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 들이닥칠 광원에 대비한다. 무릎을 굽히고 글록을 손에 쥔다. 끼익 끼익 몇 차례 울리던 소음이 멎고, 몸이 푹 꺼진다. 세상이 밝아지고,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이 던져진다.

"상호입니다!"

총을 겨누기 무섭게 경찰 옷을 입은 후배가 두 손을 번쩍 든다. 주변을 살펴보고 두 사람은 다시 권총을 꽂아 넣었다.

"와, 하율이 형 걱정......."

"야."

"......준수 형,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기상호는 경찰이라 적힌 바람막이 두 개와 모자를 건넸다. 전영중 쪽을 보고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준다. 그건 왜? 전영중을 보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머리를 반대편으로 기울이고 털 때마다 물기가 튀었다. 성준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도 땀에 젖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넌 혼자 사우나 했냐?"

"같이 있어서 흥......."

"씨발아, 좀."

모자와 바람막이가 정확히 얼굴에 박힌다. 왐마야. 기상호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전영중은 손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닦고 주머니에 넣었다. 빨아서 줄게, 상호야. 그냥 형 가지세요.......

두 사람이 옷을 입는 사이 기상호는 날쌔게 매트리스에 구르는 총 세 정을 케이스에 담았다. 산탄 하나, 엠십육 하나, 저격 하나 맞죠? 어. 탄창이 박혀있는지까지 야무지게 확인하고 케이스를 닫는다. 모자를 눌러쓴 성준수가 포털사이트에 들어간다. 뉴스 통신사의 속보가 떠 있었다.

[1보] 종로 혜화동 상가 화재 발생...... 주민들 대피. [14:34]


[2보] 종로 혜화동 상가 화재 피해자 6명 추정 [15:12]

......해당 상가에는 3층 사무실 직원 두 명이 근무 중이었으며 급격하게 커진 불길에 대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화재 원인은 가스 배관 폭발로 추정 중이다. 인근 주민은 폭발음이 있기 전 총기 소음과 유사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으나 H업체에서 2층에 보관 중인 폭죽이 터지며 난 소음으로 확인됐다. H업체 직원 방문 중 담배꽁초 등의 이유로 불이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는 주민들의 신속한 신고로 20분 만에 진압되었으나.......

수습은 잘 됐고. 기상호가 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1층이다. 119 화재조사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경찰차 트렁크에 케이스를 싣고 차키를 준다.

"저는 마저 정리하고 돌아갈게요."

"그래. 고생해라."

일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조사하고 있는 감식반을 돌려보내는 것도 포함이었다. 불필요한 업무만큼 슬픈 일이 없다. 팀의 막내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또 다른 막내는 폴리스라인에서 기자와 시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정희찬이 고개를 꾸벅인다. 손을 휘휘 젓고 차에 올라탄다.

네비게이션을 내곡동으로 맞췄다. 반년만의 출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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