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선
빵준/대학 입학 후 1년의 연애.
“너한테 난 대체 뭔데, 준수야.”
아… 괜히 물었다. 전영중의 시선이 한 번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금 그 앞에 있는 성준수에게 향했지만 아까의 물음에 대한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사실은 물음이라고 하기도 뭣했다, 의문이 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저 지금 상황에 억울함 불안함 이기심이 그 말로 나온 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줄 빌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고, 그 한 말에 모든 것을 전하기엔 성준수는 공감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날카롭게 그려진 눈 사이에 깊게 새겨진 주름, 그 정도가 준수의 빡침의 정도를 내보여 영중은 그저 방금 자신의 말에 후회라도 하는 듯 주먹을 쥐었다.
“…야, 영중아.”
“응, 준수야.”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대답, 영중은 침을 한 번 꿀꺽 삼겼다. 혹시나 이 소리가 준수에게도 들릴까 싶어 눈치도 보고. 전영중은 그 모습이 퍽이나 눈치를 보는 애와 다를 바 없었다고 후에 성준수에게 들었다.
영중아. 그 이름 한 번 듣기도 어려웠는데 준수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밥솥도 아니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속으로만 몇 번을 물었다. 아까와 같은 통보도 아닌 확실한 물음이었지만 정말 얼굴을 맞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전영중은 속마음은 속에서만 하기로 했다.
“너가 나한테 뭐여야만 하냐?”
“…뭐?”
억울함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컥함을 억누르려 숨을 한 번 참아내는 전영중을 본다면 그 잠깐 사이에도 이 둘은 갈라짐이 분명했다. 전영중을 전영중, 그 자체로 자신의 곁에 두는 성준수와는 달리 전영중은 성준수의 한 부분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성준수가 전영중을 덜 좋아한다던가 전영중이 성준수를 더 좋아한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겠지.
이런 상황에 준수는 숨을 한번 깊게 골라냈다. 그 한 번의 숨에도 짜증과 답답함이 섞여 있겠지. 전영중 저 새끼가 땅 파는 거야 많이 봐… 많이 본 게 문젠가? 그것조차 의문이 드는 중이었다.
“야, 야. 전영중. 니가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그거 아니다.”
일단은 생각하는 바를 입으로 내뱉어 냈다, 그게 아니라면 제 앞에서 금방이라도 울듯 고개를 아래로 약간 내리고 있는 전영중 저 새끼를 보자니 제 속이 뒤집어지는 것은 물론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어졌으니까. 아주 지만 존나 억울하지.
“그럼 뭔데 준수야. 넌, …없는 말 안 하잖아.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것도 아닐 거고.”
“뜻이 다르다곤 생각 안 하지, 넌 존나… 하….”
전영중은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저 한숨이 겨우 끝을 달리나 싶어서, 성준수가 자신에 대한 생각과 정을 저 숨에 담고 내뱉은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불안함만 점점 쌓일 뿐이었다.
이렇게도 둘을 모른다, 서로를 모른다. 대학교에 서로 대학에 입학을 한 뒤 축하랍시고 술을 마시고 부었고, 그 뒤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혼자 삽질만 하는 전영중을 끌어내 사귄 성준수였다. 그렇게 둘은 이어진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서툴고 일그러진 시선으로 서로를 본다. 가끔은 이게 사랑인가 싶고, 옳은 것임을 의심함에도 성준수는 전영중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에 귀엽다고 느낀 것에, 전영중은 무언가를 먹을 때 성준수 생각을 한다는 것에 사랑임을 인지했다.
매 순간을 사랑받고 그걸 말로 해주길 바라는 전영중을, 말보단 행동으로 표현하는 성준수가 이해하긴 힘들 수 있다.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입 맞춰 주고… 다른… 어쨌든 시발, 다 먼저 해주는데 뭐가 저렇게 불만이야 저 새끼는? 성준수는 자기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영중과의 생각보다 훨씬, 아주, 많이.
준수야, 준수는 나 좋아하는 거 맞아? 내가 매번 먼저 말하잖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도? 뒤에 더 붙일 말도 없어? 이게 무슨 금지어 유도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사리는 건데? 맨날 손만, 몸만. 준수는 나 몸 때문에 만나? 전영중은 점점 이 사랑이 자신의 몸을 향하는 건가 싶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성준수는 생각도 못 한? 어쩌면 해봤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겠지.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성준수는 자신의 겉옷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넣었다. 지금 이 상황을, 제 앞에서 저기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고 가는 제 애인이란 놈을 붙잡긴 해야겠으니까. 저 멍청한 너구리새끼랑 사귄 내 1년이 존나 억울해서라도 못 놓지.
“전영중, 고개 들어.”
“….”
말은 없었다, 그러나 전영중의 고개는 곧게 성준수를 향했고 이내 둘의 시선이 맞물린 순간이었다. 아, 시발… 애인 눈 한 번 보기 존나게 힘드네. 성준수의 그 생각이 뻔히 보이는 표정에 전영중은 다시금 울컥했지만 자신도 억울하다는 듯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왜, 준수야.”
“들어나 보자, 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성준수의 시선에 담긴 전영중은 입을 한 번 달싹였다.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물론 그 모습도 성준수의 눈에는 가소로워 보였겠지만.
“…준수 너는, 나 몸 보고 만나?”
“뭐? 허…”
성준수는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가 생각은 하고 내뱉는 건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일단 생각 안 하고 저 새끼를 딱 한 대만… 아오 씹, 됐다 내가 뭐라냐. 굳이 따지자면 아닌 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그 부분은 자신이 조금 억울했다. 처음부터 몸 보고 좋아했으면 억울하지도 않고 그냥 대답도 그렇다고 했을 거다. 근데 그런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친구 새끼가 이렇게 좋은 몸으로 클지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좋아했더니 그랬다, 그렇다고 그걸 노리고 좋아한 것도 아닌 제 잘못이 되는 거냐는 거다. …그렇게 억울하면 지가 몸을 적당히 키우던가.
“전영중, 그게 뭔 개소리야. 똑바로 말해.”
“그거 알아? 준수 너는 나한테 좋아한다고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거.”
“…야, 너 설마 겨우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냐?”
“겨우 그거?”
전영중은 제 감정선을 무참히 짓밟는 성준수를 한 번 째려봤다. 그러자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약간 돌려 딴 곳을 보는 듯했던 성준수는 제 목 뒤를 손으로 한 번 쓸어내며 미안, 겨우 그거는 빼. 라며 작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전영중은 그제서야 좀 풀린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그걸 본 성준수는 다시금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전영중 니 말은… 좋아한다는 소리를 내가 안 한다는 거잖아.”
“…응.”
“그러는 넌 왜 나한테 먼저 안 오는데.”
“그거야 준수가 밖에서 붙어있지 말자고….”
“아니 이 씨바거, 그렇다고 근처도 안 와 새끼야? 다른 새끼들이 너랑 서열 싸움에서 이겼냐고 지랄하잖아.”
서열 싸움…? 뭔가 단어 선택이 익숙한 사람을 연상케 했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기로 한 전영중이었다. 성준수의 말을 곱씹다 그런가… 싶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미안해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뒤로 성준수의 음성이 이어졌다. 나도 좋아해.
“뭐….”
“좋아한다고, 니 새끼가 듣고 싶다며.”
“…억지로 하는 거면 필요 없어.”
“아오 씨발, 겠냐고.”
전영중은 그 뒤로도 재차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성준수의 답변을 듣고는 알았다며 순순히 듣기로 했다. 대화는 끝났겠다… 성준수는 이 뭣 같은 정적을 어쩌면 좋을까 머리를 약간 굴렸다. 그 사이에 전영중은 또 자신이 한 삽질을 성준수가 열심히도 메꿨다는 것에 창피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두근거림과 사랑을 느낀다. 이 둘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미래에도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에는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잠깐 붙었다 떨어질 길이 아닌, 결국 끝에는 함께 있을 조금은 더욱 느리고 견고해질 일직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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