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유료

종수의 육아일기 上

잘 부탁해. 퍽 그럴싸해 보이는 감사 인사를 전해 받은 종수는 멍하니 손에 들린 작은 쪽지를 내려다봤다. 까치집이 된 뒷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와 그 아래 깔린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 카톡 거리는 메시지 알림음, 옆집에서 걸었을 인터폰 벨 소리에 뺨을 얻어맞고 있었다. 비몽사몽 한 정신 상태에 눈을 비벼도 이성이 돌아오지 않자 기어코 제 이마를 키보다 작은 냉장고 모서리에 부딪히며 고통을 감내했다. 씨발.

종수는 몰아치는 일들에 당장 어제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본 가장 먼저 할 일’ 같은 심리테스트를 떠올렸다. 고른 순서에 따라 인생의 우선순위 달라진댔나. 그때 뭐 먼저 골랐지.

아기를 달래러 작은 방에 들어갔다. 아기 냄새가 현실 감각을 깨우고 울음소리는 귀를 찔렀다. 침대 속에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려 필사적으로 못생김을 자아내는 작은 무언가에 종수도 지지 않겠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이런 씨. 종수는 곧 성인으로서 잃을 거 없고 얻을 건 있는 아기에게 하얀 깃발을 들어줄 염치는 있었다. 미간을 펴고 고운 얼굴을 아래로 내밀며 착하지, 같은 어울리지 않는 말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퍽 다정한 음성에 잠시 울음을 멈추고 눈을 뜬 아기가 눈이 마주치자 이내 포효하듯 괴성을 질렀고 그에 나가떨어진 종수는 뒤를 돌아 끊이지 않는 인터폰을 향해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팔자에도 없는 사과를 하고, 아기 좀 잘 돌보라며 크게 야단을 맞고는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가 아기를 들어 올렸다. 두 손에 담긴 아기를 어떡해야 하나. 딱딱하게 굳어서 언젠가 가족 행사 때 엄마가 했던 것처럼 아기를 세워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된 건가.

“으아아아아아앙!”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울음에 두 손으로 아이를 잡아 팔을 쭉 뻗어 곧바로 거리를 확보했다. 뭐 때문에 우는 거야. 입술을 짓이겼다. 종수는 다시 아기를 고쳐 안고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의 큰 창으로 햇살이 내려 눈 아래 속눈썹 한 가닥마다의 그림자를 내렸다. 어둑한 방 안에서 아직 빛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 눈이 어깨에 묻히고 작고 뜨거운 몸이 가슴팍에 눌어붙었다. 그런 아기를 힐끗거리다 냉장고 앞에 다다른 종수는 그 안에 이유식이나 분유 같은 아기 음식이 있기를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상체를 훑고 손끝에 스몄다. 반찬 통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다 삑삑 울리는 알림 소리에 천천히 냉장고 문을 닫고 그 앞에 등을 기댔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넋을 놓고 천장을 응시했다. 천장에 이런 무늬가 있던가. 괜스레 잡생각이나 하며 정신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엄마는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애를 두고 간 거야. 얘는 누군데 우리 집에 있는 거지. …동생인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배가 부른 건 본적 없어. 아빠가 나한테 말을 안 했을 리도 없고. 몰래 주워온 아기인가. …아들 하나만 더 낳아보자. 망상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돌고 돌아 결국 엉켜 머리 위로 흩뿌려졌다. 그러나 그런 종수를 다시 현실로 패대기친 건.

“으아아아아앙!!”

참. 가슴에 붙어 꼬물거리는 따뜻한 것이 멱살을 잡고 쥐어뜯는다. 고개를 저어 간신히 붙잡은 이성에 스마트폰을 쥐었다. 연락 남긴 게 없나. 얼마 내려가지 않아 막힌 스크롤에 괜히 죄 없는 입술만 뜯었다. 하나도 없을 리가. 속이 막혀오는 걸 느끼다 무언가 깨달은 듯 시선을 바닥으로 처박았다. 쪽지. 어디에 버렸더라. 매달린 것에 완전히 숙일 수도 없어 눈알만 굴리며 바닥을 훑었다. 식탁 아래 구겨진 채 나뒹굴고 있는 노란 종이 쪼가리. 찾았다. 엄지와 검지 발가락을 사용해 쪽지를 집어 손에 쥐었다.

엄마 친구 아기야. 아빠는 없고, 엄마는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이래. 베이비시터를 아직 못 구해서 잠시 우리 집에서 돌봐주기로 했어. 엄마는 아빠랑 잠깐 나갔다 새벽 늦게 올 테니까 종수한테 아기 좀 부탁할게.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헛웃음만 꺼내며 거절할 수도 없는 난감한 이 부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쪽지와 아기를 번갈아보다 시계를 확인한 종수는 밥을 중얼거리며 찬장을 모두 열었지만 차가운 그릇이 전부였다. 정말 아기만 두고 간 거야? …나 얼마나 가지고 있었지. 교복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만원. 만오천원. 이만사천원. …팔만육천원. 분윳값은 나오겠네. 그리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가릴 모자, 검은 티셔츠 한 장에, 험하게 다루어 밑단이 닳아버린 바지를 입고, 한 팔에 아기를 다른 팔에 장바구니를 들어 준비를 마쳤다. 신발 앞코를 바닥과 부딪히고 현관문을 열어 뜨거운 낮 공기를 마셨다. 더워 뒤지겠네.

집을 나서자 떠오른 건 간간이 집에 들르며 본 대형마트였다. 스마트폰을 뒤적거려 아기가 먹을 분유를 검색하는데 그 아래 알고리즘으로 뜬 ‘아기 키울 때 꼭 필요한 것’이 시선을 끌었다. 한 번에 사두는 게 편하겠지. 망설임 없이 글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기 키울 때 꼭 필요한 것을 알아볼 텐데요. (엄지척). 저도 아기를 처음 키울 때는 이리저리 헤매며 곤란해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주변 어른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잘 이겨낸 것 같아요! (하트).

서론 존나 길어. 종수는 뒤로가기를 누르려는 엄지에 힘을 주며 얼마 남지 않은 스크롤을 확인했다. 요약을 잘해둔 건가 싶어 인내를 가지고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때는 아기 우유 타는 법도 몰라서 굉장히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나요. 얼마나 힘들었던지. (한숨). 그래도 요즘은 초보 엄마, 초보 아빠를 위한 육아 비법서가 많이 나와서 참 다행이에요. 혹시 아기 키울 때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기시면 꼭 육아 비법서를 참고해 보세요! 지금까지 아기 키울 때 꼭 필요한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추천하는 글을 띄우면서 화면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이게 뭐야, 씨발. 댓글 개수 16개. 종수는 댓글 창을 열었다.

비밀 댓글입니다.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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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입 안 살을 깨물고 장바구니 안에 스마트폰을 던져넣은 종수는 어느새 도착한 마트에 큰 보폭으로 걸어 들어갔다. 됐어, 내가 해.

마트 내부는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했다. 아기 분유는 어디에 있지. 가장 유력한 후보인 우유 진열대로 향했다. 그냥 우유를 먹이면 안 되나. 왜 분유를 따로 먹이지. 잡생각을 가득 안고 도착한 유제품 판매대에는 우유, 우유, 우유. 우유 옆의 치즈, 버터, 휘핑크림, 요플레가 늘어졌다. 그중 분유는 없었다. 분유는 유제품이 아니던가. 그럴 리가. 품 안에서 작게 꼬물거리는 아기를 보다 사람들의 쇼핑카트에 담긴 물건을 관찰했다. 카트에는 밀키트와 커피, 그리고 식자재뿐이었다. 종종 옷과 애견용품, 어린이 장난감을 담아가던 사람이 있었으나 종수의 상황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더 돌아다녀야 하나. 동공이 흔들리고 장바구니를 걸친 팔에 힘이 들어갔다. 씨발. 어떡하지.

“님, 여기서 뭐 함.”하고 말을 거는 소리에 종수가 고개를 돌렸다. 농구 코드 밖에서는 저와 눈높이가 별다르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여기던 종수에게 눈앞의 익숙한 얼굴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지상 고등학교 7번, 이름이 뭐더라. 나 쟤 아는데. 대답 없이 보내는 시선에 질린 듯 몸을 돌린 다은이 카트를 밀어 종수를 지나쳤다. “난 이만 감.”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떠나는 다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종수가 “야. 기다려.”하고 다은을 불러세웠다.

“뭐임?”

“야, 도와줘.”

눈이 있으면 저가 안고 있는 걸 보라며 작게 턱짓한 종수에게 다은이 눈을 비볐다.

“이게 뭐임. 최종수에 아기라니 진심 안 어울림.”

한껏 줄어든 음성에 병신아, 내가 원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이를 물고 대답한 종수가 다은의 장바구니를 살피다 손가락질했다. 저거 어디서 샀어. 분유 맞지. 종수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 저거.

“맞음. 혹시 지금 분유 못 찾아서 이러고 있던 거임?”

다은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종수를 바라봤다. 언젠가 상호가 그랬던 것처럼 비열하게 웃는 모습이 아니꼬워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비웃지 마. 애 돌본 적도 없으면서. 다은은 종수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눈을 감고 슬며시 웃었다. 그에 맞춰 얼굴을 찡그린 종수가 머리를 뒤로 뺐다. 님은 나를 너무 얕봤음. 뭔 소리야, 시발.

“따라오셈. 분유 추천해드림.”

눈을 가늘게 뜬 종수가 그 뒤를 따랐다. 아, 그리고 애 듣는 곳에서 욕은 하지 마셈. 짧은 경고에 아기를 힐끗거린 종수가 입술을 달싹였다. 다은은 카트를 끌고 분유가 있는 진열대로 향했다. 좁은 보폭으로 카트를 끄는 다은에게 쉽게 걸음을 맞출 수 있게 된 종수가 볼일도 없는 과자나 양념 진열대를 구경하며 조용히 따라갔다. 진열대는 처음 보는 브랜드들의 비슷한 식재료들로 가득했다. 다 똑같은 게 아닌가. 이미 있는 걸 계속 만들지. 제일 맛있는 것도 아니면서, 팔리지도 못하고 버려질 게 뻔한데.

“거의 다 왔음.”

아기용품이 즐비한 곳에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아기 인형, 아기 기저귀, 아기 쪽쪽이. …이거 다 쓰는 거야? 팔만육천원으로 다 살 수 있을까. 종수는 다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은은 아기의 뒷머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뭘 봐. 어깨를 틀어 시선을 차단했다.

“뭐임. 내가 좀 본다고 아기가 닳진 않음.”

항의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종수에 혀를 찼다. 눈 그렇게 뜨지 마. 분유 추천해준다며. 빨리 해. 종수의 재촉에 분유 진열대에 정리된 분유를 가리켰다.

“이건 맛없음.”

그래?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딴지를 거는 입을 틀어막기라도 하듯 다른 분유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건 비싸고, 이건 그럭저럭. 저건 나도 맛있게 먹었음. 이건 양이 많아서 좋음. 그러다 파란 통에 담긴 분유가 종수의 눈에 들었다. 야, 이건 어때. 그쪽 아니야, 멍청이야. 장바구니를 다은의 카트에 던져넣고 남은 손으로 분유통을 들어 다은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렇게 안 해도 다 보임. 고개를 뒤로 뺀 다은이 분유를 살폈다. 돈 있으면 이게 제일 좋긴 함. 다은이 살 거면 빨리 담으라며 장바구니를 꺼내 입구를 벌렸다. 종수는 들고 있던 분유를 넣고 장바구니를 건네받았다.

“근데 님. 아기 계속 들고 있으면 안 불편함? 카트 쓰셈.”

다은이 저가 미는 카트의 의자를 접었다 폈다. 편해 보이냐고 놀리는 것만 같은 행동에 약이 오르던 종수가 작게 물었다. 그거 어디서 났어? 오면서 못 봤음? 내가 한가해 보여? 갑자기 왜 주제가 거기로 튐? 못 봤으면 못 봤다고 하셈.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사람 여기 아무도 없음. 꽤 길게 이어진 물음을 다은이 마무리했다. 들려오는 말에 카트 어디 있는데, 묻자 뒷머리를 긁적인 다은이 카트 안의 짐들을 모아 장바구니에 넣었다. 종수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카트를 두는 다은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뭐 하는 거야.

“애 안고 그렇게 움직이면 안 좋음. 이거 쓰셈.”

다은은 분유가 든 장바구니를 가져가 카트 안에 놓아뒀다. 호의를 거절하는 거냐며 묻는 것 같은 태도에 아기를 카트 의자에 앉히고 안전띠를 채웠다. 고꾸라지면 어떡해. 그럴 일 없으니까 괜찮음. 그래도 자주 신경 써야 함. 종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응. 그건 알아서 해. 응. 이것저것 조언한 다은은 제 볼일이 끝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이지 않은 다은에게 퍼뜩 놀라 탄식했다. 나 아직 모르는 거 많은데. 머리를 숙여 어느샌가 울지도 않고 올망졸망 저를 올려다보는 아기를 보며 당황해 벌어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쟤 없어도 할 수 있어.

“내 말 맞지.”

대답이라도 해주듯 옹알이하는 아기에 종수는 넌지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턱 끝에 흐르는 침을 발견하고 손날을 사용해 조심스레 닦아냈다. 잘못 맞을까 천천히 손을 거두면서도 신경이 곤두섰다. 카트 손잡이에 팔을 올리고 처치 곤란한 침 묻은 손을 살짝 띄웠다. 어쩌지. 낮게 신음하던 종수는 카트를 밀고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서 있던 직원 너머로 화장실 표지가 보였다.

“카트는 두고 가셔야 해요.”

갑작스러운 저지에 한껏 구겨진 미간이 사나웠다. 놀란 직원이 찰나에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옆이 아무래도 승강기가 있어서 도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종수는 그제야 화장실 가는 길 맞은편에 승강기를 발견했다. …어디에 두고 갈까요. 카트에서 꺼낸 아기를 안은 종수를 확인한 직원이 카트를 옆 빈 곳에 두고 눈짓했다. 여기 둘 테니 다녀오세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전했다.

묵직한 발소리가 내부를 채웠다. 혼자뿐인가 싶던 차에 화장실 가까이 들어서니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인기척을 냈다. 종수는 입구 옆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사람을 지나 맨 끝으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굵은 물줄기를 만들고, 그에 손을 넣어 침을 닦아냈다. 어느 정도 닦였을까 종수가 제 코에 손을 가져다 냄새를 맡았다. 닦였네. 아이를 고쳐 안고 수압을 낮추고 검지를 물에 적셨다. 아기는 동그란 눈으로 종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가만히 있어. 금방 닦을 거니까. 보드라운 살갗을 천천히 문질러 마른침을 슬었다. 찬 물방울이 팔뚝을 타고 내려가다 팔꿈치에 고여 떨어졌다. 아기는 종종 흐르지 못하고 남은 물이 턱을 지나, 옷 안으로 들어가면 옹알대며 불만을 표했다. 종수는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고 우물거렸다. 울지 마. 나 달래는 거 못한단 말이야. 입구 근처에 걸린 화장지를 뜯고 둥글게 말아 입가를 잘게 두드리며 물기를 흡수했다. 젖은 휴지를 버리고 새 휴지를 뜯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갈까.

직원에게 카트를 받고 다시 아기용품 진열대로 향했다. 다리를 흔들던 아기가 간혹 배를 차면 카트를 멈추고 작은 발을 주물럭거렸다. 눈을 마주치면 방끗 웃는 아기에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얼른 사고 집이나 가자.

분유와 기저귀, 젖병과 아기 인형 몇 개.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연달았다. 팔만삼천오백원. 아슬아슬했다. 현금으로 하세요? 네. 현금 영수증 드릴까요? 주세요. 바구니에 물건을 담으며 영수증을 받았다. 팔이 모자라 더딘 움직임에 마음이 급해져 허둥거리는 종수에게 계산을 기다리던 사람이 말을 붙였다.

“아기는 제가 안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하세요.”

잠시 머뭇거린 종수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옷깃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아기를 보다 입을 뗐다.

“감사합니다.”

짧고 통통한 팔을 감싸 쥔 손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갔다. 잠깐이면 돼. 옷 늘어나. 아기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실이 뜯기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늘어나 쇄골 아래까지 흘러내린 옷깃에 놀란 건 비단 종수뿐만이 아니었다. 쥐어뜯은 당사자마저도 눈을 크게 뜨고 손에 힘을 뺐다. 종수는 늘어난 옷깃을 보다 아기에게 눈을 돌렸다. 낯선 이에게 안겨 등을 돌린 아기가 눈에 담겼다. 털이 보송한 둥근 뒤통수에 하려던 말을 잊은 종수가 물건을 집어 들어 장바구니에 쑤셔 넣었다. 아기 주세요. 건네진 아기를 제 품에 안고 다른 팔에는 장바구니를 걸쳤다. 아기에게서 향수 냄새가 묻어났다. 향의 주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애를 안고 크게 움직이면 좋지 않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 조금 빨리 한 걸음일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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