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종수의 육아일기 中

현관 앞에 짐을 놓아두고 아기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종수는 욕조에 걸터앉아 아기를 허벅지 위에 올렸다. 바가지에 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길 기다리면서 저의 손가락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아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손이 작고 살 많은 닭발 같다. 종수는 머리카락도 없고, 치아도 없는. 오로지 악력만 센 존재에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입을 열었다 닫을 때마다 함께 움직이는 볼살을 살짝 눌러보기도 하고, 손끝으로 코를 약하게 두드려보기도 하니, 어느새 바가지에 물이 넘쳐흘렀다. 종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수온을 확인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손에 물을 묻혀 아기의 손을 살짝 잡고 반응을 살폈다. 이상 없이 웃기만 하는 아기를 보고 나서야 아이의 손을 물에 댈 수 있었다. 아기 비누 사 올걸.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아쉬워하다, 문득 화장실 선반 어딘가에 ‘아이 깨끗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아기 취급해. 그래도 아기 취급이 종종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기도 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얀 통을 꺼내 펌프를 눌러 거품을 만들었다. 아기는 팔을 버둥거리며 거품을 달라고 보챘다. 먹으면 안 돼. 거품이 담은 손을 아기의 손이 닿는 높이에 두었다. 거품이 아기의 손에 옮겨졌다. 만질 것도 없는 걸 쥐락펴락하며 노는 아기를 한참 지켜봤다. 그게 재밌어…? 아기를 따라 손을 쥐락펴락했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종수는 아기의 손을 비볐다. 집게손가락으로 씻기기 충분한 크기였다. 종수는 씻기는 내내 아쉬워하던 아기가 울면 어쩌나 진땀을 뺐다. 아기의 몸부림에 사방으로 물이 튀어 옷이 젖었지만, 울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다 됐으니까 조금만 참아. 깨끗한 물로 손을 헹구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흡수시켰다. 너무 많이 젖었는데. 종수는 마트에서 산 아기용 옷을 떠올렸다.

“옷 갈아입자. 새것 샀어.”

아기가 옹알거렸다. 대답한 거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한 게 맞는다며 제멋대로 확신해버린 종수에게는 오지 않은 대답마저도 긍정이 되었다. 금방 갈아입혀 줄게. 사진 찍어도 되지. 옷 내가 사준 거잖아. 찍을 거야. 종수는 아기를 안고 화장실을 나왔다. 물기 묻은 발을 러그에 문대고 곧바로 장바구니로 향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물건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분유와 기저귀, 장난감은 꺼내는 족족 다리로 밀어 치우고, 옷이 든 봉지를 발로 밟고 뜯어냈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꿀벌과 온통 검은색인 옷 위에 노란 눈 두 개가 박힌 고양이 옷이 종수의 앞에 놓였다. 뭐 입히지.

“뭐 입을래. 아무거나 골라.”

내가 사준 거니까, 여기 네가 뭐 고른다고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 종수는 아기의 몸을 돌려 눈이 옷으로 향하게 했다. 아기는 옷가지를 빤히 보다 몸을 기울여 팔을 쭉 뻗었다. 아기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두니 조금씩 기어갔다. 작은 손에 무언가 잡혔다. 꿀벌? 이게 좋아? 종수는 남은 옷을 다시 봉지에 넣고 다른 물건을 향해 밀어버렸다. 이건 나중에. 옷부터 벗자. 아기 멱부터 배까지 연이은 단추를 풀었다. 팔 벌려봐. 종수는 천천히 옷을 벗겨내려 했지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짧고 통통한 것에 막혀 진땀을 뺐다. 옷 찢어지겠어. 십오분 남짓을 씨름했지만 결국 좌절되었다. 깊은숨을 토했다.

“하…….”

종수는 스마트폰을 들어 ‘아기 옷 벗기는 법'을 검색했다. 또 뭐 같은 게 나오지는 않겠지. 상단에 가장 먼저 뜨는 아기 옷을 갈아입히는 법을 눌렀다. 팔꿈치를 쥐고… 아기 얼굴과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제 실수로 관절이 꺾여 해를 입히는 망상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오랜 망설임 끝에 종수가 눈을 번뜩였다. 옷은 좀 뒤집어져도 괜찮잖아. 종수는 옷의 밑단 둘레를 잡고 아기의 머리 쪽으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 과정에서 아기의 팔이 절로 들려 ‘만세'하는 자세가 됐다. 순탄히 바지까지 벗기자, 이윽고 아기의 뽀얀 피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종수가 꿀벌 옷을 들어 올렸다. 우선 다리부터. 등에 달린 단추를 열었다. 계속 꿈틀거리는 다리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난감해하던 종수가 아이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금방 끝난다니까.”

종수의 부탁에 엄살을 부리던 아기가 잠잠해진다. 그렇지. 종수는 재빠르게(라고 하지만 사실 무척 느렸다.) 옷 안으로 아기의 다리를 넣었다. 아기의 다리에 꼭 맞는 옷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잠시 끌어올렸다. 종수는 다시 아기를 마주 보게 앉혔다. 팔 넣을 테니까 잘 움직여야 해. 알았지. 아기에게 옷을 입히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두고 천천히 따라 했다. 아기가 칭얼거리면 손을 떼기도 했고, 옷을 벗으려고 팔을 휘두르면 다급히 붙잡기도 했다.

“아아…….”

종수가 앓는 소리를 육성으로 내기는 처음이었다. 드물던 낮은 미성이 길게 늘어지자 눈을 크게 뜬 아기가 종수를 빤히 바라봤다. 기회다. 실랑이 덕에 아기의 몸이 꽤 익숙해진 종수가 전보다 조금 능숙한 손길을 보였다. 마침내 양팔이 옷 안으로 들어가 자리했다. 부자연스러운 주름을 펴고 단추를 잠갔다. 드디어 끝났다며 짧게 숨을 토한 종수가 굽어진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켰다. 아기는 몸을 감싼 새로운 것에 정신이 팔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모자도 써봐. 꿀벌의 더듬이가 달린 모자를 씌웠다. …나쁘지 않네. 종수는 카메라를 켜 아기를 촬영했다. 각도가, 햇빛이, 위치가…. 인상을 구겼다 펴기를 반복하며 찍은 사진이 하나둘 사진첩에 쌓이고, 자세는 갈수록 낮아져 배가 땅에 닿았다. 종수는 고양이 옷을 연신 힐끔거렸지만 조금 전까지의 실랑이를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몸을 일으키고 아기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 사진첩을 옆으로 밀면서 흔들린 사진을 정리했다. 이건 흔들렸는데 지울 정도는 아니네. 이것도 빛이 이상한데 지울 정도는 아니야. 몸이 짧게 나온 것도 나쁘진 않아. 고심하며 사진을 삭제해갔다. 꼬르륵. 종수는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나인가…? 조식을 먹지 않았지만 이리 소리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종수는 허벅지에 앉아 손가락을 빠는 아기를 보다 눈을 크게 떴다. 얘 아침 먹이려고 마트에 간 건데. 아기를 안은 종수가 구석에 박아둔 분유통과 젖병을 들어 부엌으로 향했다.

젖병 소독, 끓인 물, 분유, 온도…. 그냥 뜨거운 물에다 타서 주는 게 아니구나. 젖병 소독은 어떻게 하지. 끓는 물에 담가두면 되나. 손바닥 너비의 냄비에 물을 받아 불 위에 올렸다. 물의 양이 부족할까 봐 컵으로 몇 번을 퍼 날랐다. 종수의 행동에 아기가 냄비와 컵을 번갈아보다 손을 뻗었다. 연약한 살이 냄비에 닿기 전에 몸을 뒤로 뺀 종수가 입을 작게 벌리고 아기의 손을 확인했다. 작은 진동이 아기에게 전해졌다. 여전히 하얗고 부드러운 살갗에 한숨을 쉬며 아기를 방으로 데려갔다.

“분유가 다 되면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종수는 거실의 인형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아기의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무서우면 이거 안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울지 말고. 종수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아기는 널브러진 인형을 두 손에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잠시 눈에 담다가 문이 닫히지 않게 아령으로 고정해두고 방을 나섰다.

물이 끓자 불을 끈 종수가 집게로 젖병을 꺼냈다. 종수는 물을 미리 넣어두고 분유를 넣으라는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간혹 물을 엎지르기도 하고, 분유를 쏟기도 했다. 동공이 수십번은 흔들렸다. 이게 맞나. 불확신에 검색창을 들락날락하면서 시간을 끌기도 했지만, 꽤 순탄히 일을 완료했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식히는 동안 어질러진 걸 치워야겠다며 청소를 시작했다. 휴지로 물을 흡수하고, 물티슈로 흩뿌려진 분유 가루를 모아 버렸다. 단내는 어떻게 못하나. 창문을 작게 열어두고 자리를 떴다.

“다 됐어.”

종수는 저를 향해 기어 오려는 아기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입에 젖병을 물려주자 손으로 붙잡고 먹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우유만 먹고 배가 부른가. 맛은 있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먹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려 지루해진 종수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구나. 아까 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소리였다. 밥 뭐 먹지.

“다 먹은 거야…?”

종수는 아기의 가슴을 어깨에 가져다 댔다. 트림을 시켜주랬는데. 등을 두어번 토닥였다.

“끅.”

어휴 씨. 몸을 떼고 아기를 침대에 내렸다. 종수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 아기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눈이 완전히 감겼음을 확인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잘 자.

요리하면 시끄럽겠지. 고개를 저었다. 있는 거 먹어야겠다. 찬장 위에 아빠가 숨겨둔 빵을 꺼냈다. 종수는 소보로빵이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다. 빵이 하나둘 종수의 입으로 들어갔다. 세 개째 먹으면서 턱도 없다고 우유에 치즈까지 꺼냈다. …당분간 경기가 없으니까. 그리고 임승대가 이규 몰래 먹는 것도 봤는데. 종수는 한 손에 빵을 한 손에 우유를 쥐고 생각했다. 근데 아까 걔는 왜 분유를 산 거지. 걔도 아기 키우나. 맛있는 건 어떻게 알고? 설마…. 불쾌해진 결론에 빵을 내려두었다. 입맛 떨어져. 종수는 음식을 차례로 정리한 후 소파에 앉았다. 알림창에 가득한 문자를 확인하니 이규와 주찬양, 임승대, 노수민이 보였다. 이규랑 노수민은 그렇다 치고 주찬양이랑 임승대까지? 내용 대부분은 잘 쉬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못 쉬었는데. 그대로 단체 채팅방에 보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종수야, 괜찮아? 뭔 일? 무슨 일 있어? 아기가 생겼어.

짧은 답장에 물음표가 연달아 올라왔다. 종수는 무섭게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에 멈칫했다. 이규.

“왜…….”

종수야, 아기가 생겼다니? 너 우리한테 그런 말 없었잖아.

이규가 종수의 말을 끊고 질문을 퍼부었다. 나도 처음인데. 종수는 채팅방에 아기 사진을 전송했다. 채팅방 속 1이 모두 사라지고 찾아온 정적이 끝나지 않자 이규를 불러 물었다. 어때, 내가 고른 옷인데. …이미 낳은 거야?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흐름에 짜증스럽게 대꾸하자 이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종수 네가 아빠가 되었냐고…. 이규, 아빠 같은 소리 집어치워. 내 아기 아니야. 뒤늦게 자신이 무슨 오해를 불러왔는지 깨달은 종수가 채팅방에 수습 문자를 보냈다.

시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엄마 친구 아기야. 내가 대신 보고 있어.

종수는 이규의 전화를 끊고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안도하는 부원들의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재차 물었다. 옷 어때. 귀여워요. 되게 귀엽다, 잘 골랐네. 귀여움. 색도 예뻐. 종수가 토끼가 기분 좋게 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기를 보러가도 되냐는 물음이 뒤를 이었고, 너희를 보면 겁을 먹는다며 거절한 종수에게 승대가 신경질을 부렸다. 종수가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흥.”

고개를 뒤로 젖혀 시야를 천장에 고정했다. 햇빛이 종수에게 내렸다. 얼굴의 입체감 덕에 생긴 그림자가 종수의 얼굴을 가렸다. 감은 눈에 햇빛은 들어와 온통 붉은색이었지만, 이내 붉은색마저도 짙게 변했다. 피곤해.

뻑뻑한 눈을 꾹 눌렀다.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세 시다. 나른한 몸이 소파에 눌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지 십 분이 넘어갈 때, 벽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니 무게에 눌린 소파가 제 형태를 찾았다. 비척비척 방으로 가 나지막이 아기를 불렀다.

“야….”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아기를 품에 안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 등을 토닥여도 그치지 않는 울음에 입 안 살을 깨물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둥그런 뒤통수를 쓰다듬기도 하고, 머리카락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짧은 털이 자란 머리에 볼을 비비기도 했지만.

“울지 마.”

내리 깐 눈에 당혹이 서렸다. 아침에도 엄청나게 울던데 그때는 어떻게 그친 거지. 침대에 널브러진 유니콘 인형을 아기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울지 마. 이거 다 너 줄게. 마른침을 삼키고 효과가 있기를 바라길 기다렸다. 아기가 유니콘에게 잠시 시선을 두다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다른 인형을 바꿔서 보여줘야 하나. 인형을 던지고 새 인형을 뒤적이는 중에 아기가 더 이상 울지 않음을 깨달았다.

“잘했어.”

부를 이름이 없다. 아기와 눈을 마주했다. 어차피 나만 부를 건데 그냥 지어버릴까. 볼을 주물럭거리면 ‘말랑’하고 효과음이 날 것 같았다. 최종수, 종수, 종…, 송. 아. 종수가 눈을 빛냈다. 너는 이제부터 최송.

“최송. 알았어?”

아기가 혀를 내밀었다.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최송이라고 부를 사람은 종수뿐이었다. 종수는 최송을 중얼거렸다.

“우웅.”

왜? 얼굴을 만지던 손이 돌연 입술을 꽉 쥐었다. 맑은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왜 또 그래. 고인 눈물이 볼록한 볼을 타고 흐르다 이내.

“으으으응….”

종수가 한쪽 눈을 찡그리고 송의 등을 토닥였다. 등부터 엉덩이까지 쓸어주며 송을 불렀다. 뚝 그치자고. 팔이 저려 송을 안은 팔을 바꾸려 엉덩이를 받쳤다. 엉덩이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만져졌다. 이게…. 잠시 멈칫하다 천천히 코를 가져다 댔다. 읍. 이마를 한 대 맞은 듯 머리를 뒤로 뺐다. 저도 모르게 멈춘 숨은 손등으로 코를 가리고 나서야 트였다.

“……기다려. 금방 갈아줄 테니까.”

송의 궁둥이가 닿은 팔에 온 신경이 닿아 조금씩 힘줄이 돋았다. 걸음을 빨리해 기저귀와 수건을 준비했다. 수건을 바닥에 깔고 송을 바닥에 눕혔다. 옷을 벗기고 손을 쥐락펴락하다 기저귀를 열었다. 씨발, 씨발. 종수는 눈을 감고 싶었다. 자꾸만 버둥거리는 다리를 한 손으로 잡아 고정했다. 미친, 휴지 어떡하지. 다시 기저귀를 입힐 수도 없다. 입술만 잘근 씹어댔다. 규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때. 장난해?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건데. 여러 가지 의견이 던져지면 걱정이 받아쳤다. 빨리 달려서 물티슈 가져오면 되잖아. 미쳤다고 이걸 두고 그냥 가? 저가 없는 사이 생길 불상사를 떠올리며 속으로 욕을 읊었다. 송은 그 와중에도 목이 터지게 울고 있었다. 옆집까지 들릴까. 들리겠지. 이를 악물었다. 수건 많잖아……. 종수는 송의 엉덩이에 깔린 기저귀를 뺐다. 송의 아래 깔린 수건의 남는 부분으로 닦아내고 새 기저귀를 입혔다. 됐어. 이따 다시 닦을 생각이었다. 기저귀를 말았다. 읽은 대로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자꾸 울렁거리는 속이 문제다. 잘 말린 기저귀를 봉지에 넣고 밀봉해 쓰레기통 깊은 곳에 두었다. 서랍 속에 처박아두고 방치한 지 넉 달은 된 물티슈로 꺼내 뽑았다. 촉촉하다. 기저귀를 다시 벗기고, 물티슈에 그게 묻어나오는 족족 봉지에 넣어 처리했다. 수건도, 나름 새 기저귀도. 버린 수건을 대신할 하얀 새 수건을 두었다. 물티슈는 눈에 잘 보이는 진열장 옆에 놓아뒀다. 겨우 한숨을 돌린 종수는 한 번에 이렇게 손을 많이 씻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하루에 여러 번 누는 걸 알게 되는 건 좀 나중의 일이었다.

해가 뉘엿하다. 종수는 송을 안고 테라스로 갔다. 해 지는 거 처음 볼 거 아니야. 난간에서 멀리 떨어져 통유리에 기대였지만, 높은 위치 덕에 송의 시야를 가릴 게 없었다. 송의 눈가에 손 그늘을 만들어주던 종수가 입을 열었다.

“위험해서 더 가까이 못 가.”

저의 얼굴을 톡톡 두드리는 송을 내려다봤다. 춥지 않고, 어둡지도 않다. 나도 있고. 이것저것 따진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신었다. 원래는 안 가려고 했는데, 네가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특별히 가주는 거야. 현관문이 열렸다. 더위는 낮보다 가셨지만, 조금 더 짙고 눅눅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시야에 실눈을 뜨고 걸음을 옮겼다.

바람 괜찮네. 공원 가장자리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흙 알갱이가 밟혀 운동화 안으로 들어갔다. 거슬려. 주변에 벤치가 눈에 띄었지만,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에 가로막혀 몸 둘 곳이 없었다. 어차피 오래 나와있을 것도 아닌데. 모르는 척했다. 공원에는 송을 안전하게 내려둘 곳도 없으니. 벤치를 지나치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얕은 바람에 나뭇잎끼리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공원 호수의 울타리를 이리저리 넘나들기도, 무릎 높이의 아이들이 맞은 편에서 달려와 종수를 지나치기도 했다. 하품했다. 적당히 따뜻한 노을에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몸의 긴장을 풀었다. 이제 조금 더 자연스레 안을 수 있게 된 송도 나쁘지 않았다.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갈까. 어깨에 볼을 대고 눈을 붙인 송을 가만 보다 생각했다. 열심히 울기밖에 더 한 게 있나. 송의 머리에 얼굴을 비볐다. 내가 제일 피곤한데. 종수는 호수를 따라 걸었다. 아기라 봐주는 거야. 산책로는 둘로 갈라져 하나는 저 앞으로 이어졌고, 하나는 띠처럼 호수를 감쌌다. 흙도 밟히지 않고, 운동화 안의 알갱이들은 익숙해 무감해졌다. 해가 모습을 숨기기 시작해 하늘을 보면 반은 까맣고 반은 노랬다. 이제 좀 시원한 바람이 부나 했는데 서울의 열대야는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기는 덥고 습했으니까.

“최송, 깼어?”

송이 꼬물거렸다. 침이 굳어 얼룩이 진 얼굴로 종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 엄지로 침 자국을 살살 쓸었다. 밤에 어떡하려고 이렇게 자. 오 분을 더 걸으니 공원 밖이 보였다. 벤치에 모여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리를 지르며 뛰놀던 아이들도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낮은 소리. 발소리 사이의 간격이 길어졌다. 얕게 깔린 벌레 우는 소리가 문득 저를 붙잡는다고 느꼈다. 아.

“조금 빨리 움직일 거야. 놀라지 마.”

종수는 송의 턱이 어깨에 부딪히지 않도록 팔에 눕혀 안았다. 얼굴로 좀 더 시원하고, 좀 더 거친 바람이 불었다. 송이 방긋 웃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가속에 신이 난 것 같다고 종수는 생각했다. 재밌어? 그럼 즐겨. 내일부터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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