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의 육아일기 下
현관의 센서 등이 켜졌다. 어둑한 집안에 스포트라이트처럼 켜진 불빛이 종수를 비추었다.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방으로 향했다. 있어 봐, 밥 줄게. 송을 침대에 두고 인형을 안긴 후, 집 곳곳의 등을 환히 켜며 주방으로 가 분유를 준비했다. 아기의 먹을 걸 준비하는 데에는 익숙해지려면 아직 멀었는지 잘하는 듯싶다가도 물과 분유의 비율을 맞출 때는 다소 버벅댔다. 그래도 전보다 나으니 되었다며 입술을 삐죽이기도 했다. 누가 나만큼 해. 손목에 분유를 조금 짜 혀로 핥았다. 아까랑 맛이 다른데. 아닌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기울였다. 방에서 홀로 놀던 송을 안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젖병을 입에 대주니 두 손으로 젖병을 잡고 잘 먹는다. 조금 더 해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을 내리깔았다. 꼴깍꼴깍 소리를 내며 먹는 데에만 한껏 집중한 눈이 꼭 알사탕 같았다.
“다 먹었어?”
젖병을 식탁에 올려두고 송을 세워 등을 두드렸다. 아까보다 덜 지저분하게 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이 입을 벌렸다. 하품하고 눈을 반쯤 감은 송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하루를 돌아봐도 별 게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시간이 이렇게 빨랐나, 생각하며 종수가 눈을 비볐다. 밥 먹고 바로 자면 안 좋아. 조금만 참아봐. 송의 등 뒤에 달린 꿀벌 더듬이가 눈에 띄었다. 옷도 갈아입어야겠네. 낮에 벗긴 옷이 소파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입던 옷 다시 입히는 건 더러운가…. 사 온 게 두 개인데. 그걸 입힐까. 젖병에 물을 담아 싱크대에 두었다. 물이 넘쳐 젖병을 잡고 있던 손에 흘렀다. 아. 물로 씻어냈는데도 단내가 났다. 금방 빠지겠거니 주방을 나섰다.
어수선한 거실에서 고양이 옷을 찾았다. 이거 입고 자. 종수는 꿀벌 옷이 아쉬운지 몇 분을 멍하니 송을 보는 데에 소모했다. 단추를 풀고 천천히 팔을 빼냈다. 물렁물렁한 살이 따뜻했다. 벗은 옷은 낮에 입은 옷과 함께 의자 등받이에 걸쳐두었다. 고양이 옷은 여름에 입기 딱 좋은 두께였다.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정도. 상·하의가 나누어진 고양이 옷은 꿀벌 옷보다 입히기 수월했다. 송은 종수를 보며 까르륵 웃어댔다. 작게 미소 지은 종수가 송을 안아 들었다. 내일도 보려면 자야 해. 자신의 침대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송이 혼자 남아 우는 모습과 자신의 몸에 깔려 괴로워하는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 엄마와 아빠는 2인용에 특별주문한 침대에서 자는데.
“안방에서 같이 자.”
거실과 주방의 불을 모두 끄고, 안방 문턱을 넘었다. 눈을 반쯤 감은 송이 품속에서 작게 코를 골았다. 종수가 코를 손끝으로 톡 두드리니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에 다가갔다. 벽 쪽에 송을 눕힌 후, 거리를 벌려 저의 몸을 뉘고 몸을 돌렸다. 무게에 침대가 눌려 경사가 생겼다. 그새 잠들어 새근거리는 송을 보며 그래도 조금은 편안한 밤이지 않냐고 물었다.
“너도 그래…?”
종수가 속삭였다. 말끝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느리게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잠을 쫓았다. 세상모르고 자는 송이 다음 날 텅 빈 침대에 저를 혼자 두고 떠날 것 같다고. 그래도 보내기 전에 깨워주지 않을까 옅은 기대를 그렸지만, 아침의 노란 쪽지가 생각나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보내줄래. 점차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다. 건물에서 보내는 빛이 창문을 넘어 침대 위로 쏟아졌다. 이렇게 밝았나. 커튼을 쳤다. 바람이 산들거리며 커튼을 흔들었다. 밤에 추울까. 마땅히 덮을 게 없다. 종수는 드레스룸으로 가, 저가 입기에 조금 큰 옷을 꺼냈다.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좋은 향이 났다. 송의 몸 위에 옷을 덮었다. 나비잠을 자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내일 보자, 최송.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종수의 눈가에 빛이 내렸다. 찡그린 눈을 팔로 가리고 몸을 돌렸다. 뭐야. 빛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지막이.
“…엄마?”
팔을 내리고 눈을 가느다랗게 떠 고개를 들었다. 빛을 등지고 저를 내려보는 덕에 한결 편해져 구겨진 미간을 펼 수 있었다.
“조금 더 자, 종수야.”
고개를 저었다. 얘 데리러 온 거죠…. 물음에 천천히 끄덕인 엄마가 속삭였다. 종수도 같이 가자. 배웅해줘야지. 종수는 송에게 시선을 뒀다. 지금 가야 해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보다 길게 숨을 토했다. 덮인 옷으로 송을 감싸 안았다. 가요….
주차장은 조용했다. 가끔 바닥과 신발 밑창이 미끄러져 듣기 싫은 소리가 났지만, 송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새근거렸다. 종수는 꽤 먼 곳에 있는데도 유난히 우뚝 솟은 저의 아버지, 세종을 보았다. 걸음을 빨리했다. 인기척을 느낀 세종이 뒤를 돌아 팔을 흔들었다. 아기 데려왔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세종은 입꼬리를 길게 늘였다. 차에 타려 뒷문을 여니 카시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종은 종수를 태우고 송을 카시트에 앉혔다. 송의 옆자리를 빠르게 차지한 종수에 작게 실소하며 차 문을 닫았다. 이제는 달아나버린 잠이 그립지도 않은 건지 송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출발할게.”
차에 세 사람이 모두 탑승한 걸 확인한 세종이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로 나가는 동안 앞좌석의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밖에 불 꺼진 건물이 빠르게 지나갔다. 차도, 인도 가릴 것 없이 텅 빈 배경이 종수에게 잠을 채웠다. 머리가 차가운 창문에 닿았다. 눈만 붙여야지. 잠시만.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떴다. 낮은 신음을 흘리고 손을 더듬어 몸을 감싼 벨트를 풀었다. 카시트 쪽 문이 열리고 세종이 송을 안아 올렸다. 도착한 건가. 종수도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작은 주택. 묻지 않아도 알겠다. 여기가 최송의 집이구나.
“아기 내가 안을래.”
그럴래? 되묻는 세종에게 고개를 끄덕인 종수가 송을 넘겨 받았다. 익숙한 뜨끈함이 느껴졌다. 대문을 통과해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종수는 내부를 살폈다. 낯선 높이 탓에 여기저기 정수리를 박았고, 고통이 누적되어 결국은 손으로 정수리를 감싸기에 이르렀다. 작은 손이 어깨를 토닥였다. 하얀 인테리어가 조명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종수가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었지만 큰 소용이 없어 얼굴을 덮어버렸다. 물론 숨을 쉴 공간은 남겨두었다. 2층 맨 끝에 자리한 방의 문을 열었다. 설마 방까지 눈이 부실까. 걱정과 다르게 방 내부는 목재로 꾸며져 있었다.
“왔어?”
오느라 고생 많았어. 침대에 앉은 사람은 저를 송의 친모라고 소개했다. 세종과 종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송의 친모를 보자 당연하지만 송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송을 친모의 품으로 넘긴 종수가 한발 물러섰다.
“종수야, 어른들끼리 얘기 좀 하게 아래층에서 기다릴래? 간식 사둔 거 있으니까 그거 먹으면서.”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조그맣게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송 내가 데리고 있어도 되는데. 시끄럽다고 깨면 어쩌지. 엄마한테 갔으니까 울지 않겠지.
1층 주방에는 온갖 간식이 큰 상자에 담겨있었다. 저를 애 취급하는 부모 아래서 웬만한 간식은 다 먹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외국 과자가 있었다. …아기용 과자.
과자를 입에 넣고 소파에 앉았다. 작게 부스러지는 식감이 꽤 나쁘지 않았다. 맛은 그냥저냥.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4시네. 얼마나 멀리 온 거지. 졸려. 혀 위에 눅눅해진 과자를 입천장에 문대 삼켰다. 종수의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일어나, 종수야. 집에 가야지.”
어깨가 흔들리고, 젖혀진 고개가 제자리를 찾았다. 종수는 눈을 비볐다. 몇 시야…? 새벽 5시야. 집에 가서 편하게 자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니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안 부서졌겠지. 어기적거리며 발을 뗐다. 걸으면서 정신을 차렸는데, 불쑥 송이 떠올랐다. 아기는…? 엄마랑 같이 밖에 있어. 대답 후에 속도가 붙은 움직임을 보고 세종이 가늘게 웃었다.
집 밖은 그리 쌀쌀하지도 후끈하지도 않았다. 가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정도. 세종이 차에 시동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다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 송의 어머니 품 안에 송이 있었다. 쭈뼛거리다 아기랑 인사하고 싶다고 청했다. 순순히 허락을 받은 종수가 송을 안았다.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나 송의 이마에 볼을 비볐다. 최송. 작게 속삭였다. 어땠어. 내가 돌봐줬잖아. 즐거웠지. 들리지도 않을 텐데. 이렇게 묻는 거 의미 없을 텐데. 입술을 꾹 눌렀다.
“종수야, 준비 다 됐어. 인사 다 했으면 타자.”
종수가 저를 부르는 방향을 한번 돌아보고는 눈을 깔았다.
“다음에 또 놀아줄게. 나 잊어버리지 마.”
알았지? 당부를 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요. 종수에게서 아기를 데려간 송의 어머니는 종수네 가족이 모두 차에 타는 걸 확인하자 집으로 들어갔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을 보고 잠시 나중에 만나게 될 송을 떠올렸다.
“종수야, 아기 잘 보고 있었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왜 아무것도 없이 아기만 달랑 두고 집을 비웠는지, 노란 쪽지 외에 연락은 하지 않았는지. 카시트가 사라진 옆좌석을 응시했다. 도착하면 깨울 테니 한숨 자라던 부모님의 말씀에 입술을 달싹이다 불현듯 든 생각에 몸을 앞좌석으로 기울였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이름? 음….”
입술 아래 검지를 대고 고민하던 종수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
“송이, 이송이.”
종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벼운 미소를 걸치고 창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제법 좋은 꿈을 꾸겠다고 생각했다.
단잠이 소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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