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과실이백퍼센트

종상

FOUND THE LOVE by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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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호는 두 달 전 최종수와의 3년 연애를 끝냈다. 차단할게요. 따라오지마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신 볼 일 없을거라고 도장까지 박았다. 쉽게 내린 결정도 아니었고, 그만큼 아파했다. 3년의 연애, 그 사랑을 전부 덜어내려면 지내왔던 3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될 것 같았고, 그걸 또 각오하고 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사람이란게 어떻게든 살더라. 이 주 내내 울고 퉁퉁 부은 눈으로 후드 뒤집어 쓰고 다녔어도, 갤러리 전부 비우고 오직 서로만이 팔로우 되어 있는 럽스타 계정을 계폭하면서 손이 발발 떨렸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더라. 

 연애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살 텐데 고작 묶인 3년에 발발 길 순 없는 노릇이니까. 기상호는 2달 동안 헤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 살았다. 길 가다 종수햄이랑 자주 갔던 카페 보고 옛날 생각나서 울기, 닮은 인형 보고 아련한 눈빛 짓기, 술 마시고 동네방네 "최종수 존나 사랑했다!!!!" 외치기, 보다 못한 태성이 이럴거면 연락하라고 성질냈을 때 기상호는 솔깃했지만 연락하려고 본 최종수 카톡 프로필에 내려간 디데이보고 술이 확 깨서... 그냥 그대로 핸드폰 전원을 껐다. 이대로 구질구질하기만 할 것 같아서, 원래 이정도의 후폭풍은 누구나 겪는거고 어쨌든 털어놔야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하는 거니까. 

 그렇게 두 달간 온갖 이별의 후폭풍은 혼자 다 맞은 덕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기상호는 지금 이 상황이 존나 엥 스러웠다.. 

"누군데 제 앞길을 막고 그러세요?"

"기상호, 얘기 좀 해."

"아니 누구시냐니까요 별 이상한 사람을 다보겠네 저 여러모로 바쁜 사람이거던요 좀 비켜주세요"

"너 어차피 안 바쁜 거 다 알아"

"참나 그걸 햄이 어케 아는데요? 누가 제 일정이라도 불었어요?"

 "정희찬이, 물어보니까 알려주던데. 너 오늘 훈련도 끝났고 강의도 없다고."

 "아 씨.. 금마는 와 또 말하란다고 술술 부노" 

 "아무튼, 할 얘기 있어서 부른거니까 얘기 좀 해." 

  무슨 얘길 하겠다고. 다 끝난 마당에 또 뭔 얘길 더 얹고 탓하려고 불러대는건지. 기상호는 무시하고 지나치고 싶었다. 헤어진 지 2달, 3년 사귄 애인의 습관, 식성, 취향, 취미를 잊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간. 그렇지만 충분히 그리워했고, 또 털어낼 정도로는 앓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꽤 긴 시간. 그 시간 동안 접점 하나 없던 헤어진 애인과 대화하는 건 기력이 빨리는 걸 넘어 생명력이 빨리는 정도의 고단함이었다. 

 "15분, 그 이상은 안 돼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상호는 단 한 번도 최종수의 고집을 이겨먹어본 적이 없었다.

 남 앞 길 가로막으면서까지 얻어낸 15분의 유예, 상호는 카페 테이블에 올라간 핫 초코라떼가 미지근해지기 전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벌써 5분 지났는데요. 할 말 있다던 거 맞아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렇게 내내 앉아서 손만 모으고 있을거면 대체 왜 그 난리를 친 건지, 상호는 솔직히 조금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옛날엔 이런 무뚝뚝한 면이 나름 귀엽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하여튼 사랑에 미쳐있던 시절이었다. 

 "어, 있어."

 꾸역꾸역 대답 해놓고 또 1분의 침묵, 상호는 슬슬 최종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그 머릿속을 좀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일수가? 나는 이 사람이랑 연애를 대체 어떻게 했지? 아, 생각해보면 헤어질 때도 이랬던가. 우리는 그 날 이별을 동시에 직감했고, 최종수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고, 끝끝내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건 나였다. 영화를 크레딧까지 전부 보고도 시트에서 일어나지 않던 최종수에게, 상호도 그 따라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이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뱉었다. 그만하죠, 라고. 한 번도 장난으로라도 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날 우리는 진짜로 헤어졌다. 상호는 먼저 일어나 차단할게요. 라고 하며 영화관 바깥으로 나왔으며, 가는 길 내내 생각보다 별 게 아니라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열했다. 

 처음엔 마냥 좋았는데, 연애 초기에 귀엽다, 의외라 오히려 좋다. 하던 점들이 시간이 점점 지나 눈에 띄는 모난 부분이 되는 게 싫었다. 눈에 띄게 다정하진 않아도 자상하긴 했는데, 분명 사랑하긴 했는데 날이 갈수록 사랑보단 현실을 입에 담는 내가 싫었다. 서로에게 상처주는 연애를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생각한 연애는 분명 이런 게 아니었는데. 분명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혼란스러워서 그래서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할 말 없으면 가볼게요 그냥"

그런데 그 와중에 최종수는 참 평화로워보여서, 나처럼 후회하고 질질짜고 그랬단 소리가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가 않아서, 그때 좀 만 더 잘해줄 걸 사랑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사랑할 걸 지나 온 흔적들 보며 후회하고 그리워하지 않아서. 그래서 참, 이러나 저러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12분. 최종수는 그동안 기상호만 쭉 쳐다보기만 했지, 있다는 그 말 외에는 한 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기상호는 핫초코라떼를 홀짝였다. 어느덧 미지근해져있었다. 기상호가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하고 의자가 속절없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찰나에, 뒤돌던 상호를 최종수가 붙잡았다. <3분, 남았잖아. 15분 준다며.> 그걸 또 다 세고 있었네. 시간 개념 모르는 사람처럼 남 앞에 두고 멍때리더니. 

 "..하, 알았어요. 3분 다 되면 붙잡히지도 않을거고 바로 나갈겁니다?"

 "..그렇게 해." 

  또 소강상태. 기상호는 이 무의미한 시간에 대해 짜증이라도 와락 내고싶었다! 학교도 다른 주제에 굳이굳이 찾아와서 지하철 타고 몇십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고작 나 하나 엿먹이려고 찾아왔나 싶었다. 왜 그렇게 귀찮을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상호는 이미 다 식은 핫초코라떼만 대어번 홀짝였다. 혀가 아릴듯한 단 맛도 끓는 속을 완벽히 진정시켜주진 못했다.

겨우 1분을 남겨놓고 최종수의 입이 움직였다. 그제서야 이 억겁처럼 느껴지던 15분의 감옥에서 탈출하나 싶었는데,

 "미안, 까먹었다." 

 "미쳤나 진짜???" 

 "내일 할 말 다시 기억나면 찾아올게." 

상호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종수는 의자에서 제 짐을 챙겨 나갔다. 지멋대로도 저런 지멋대로가 없다. 상호는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그 뒷모습만 시선으로 쫓았다.  심지어 시켜둔 아인슈페너는 줄지도 않았다, 옆면에 물방울이 조금 달렸다 뿐이지 방금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럴거면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시키던가, 꾸역꾸역 삼 천원이나 더 비싼 걸 시키고, 입에도 안 대고. 사람이 돈 아까운 줄을 몰라.. 상호는 중얼거리면서 몰래 한 입 마셨다.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써서 맛은 있었다. 

*

 "님, 어제 뭔 일 있었음?" 

 "별 일 없었는데요.." 

 "근데 얼굴이 왜 지ㄹ" 

 "아이고고 상호!! 내가 진짜진짜 미안하다 내가 그때 잠깐 미쳤는갑다 어떻게 니랑 종수햄이랑 헤어진 걸 까먹고 " 

 "됐다 잘못 있으면 그 햄 잘못이지 네가 뭔 잘못이 있겠노.."

 "아 그래도.."

 기상호는 지금 누굴 탓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 들어오고 처음 살인적인 단련 스케줄 뛰고 난 후에, 숨도 못쉬어서 헐떡거렸을 때 까지도 이만큼씩 기운 빠지진 않았다. 차라리 육체적으로 힘들게 해줘.. 자타공인 두뇌파 기상호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원색적인 요구였다. 

 차라리 최종수가 둘도 없는 쓰레기였으면 좋겠다. 맘껏 미워하고 헤어지길 잘했단 생각이 들만큼 쓰레기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만큼 헌신적인 사람도 없었다. 말이야 무뚝뚝하고 입에 욕을 달고 살긴 하지만, 그 예민함이 제 앞에선 자뭇 풀어지고 결국 제가 하면 하자는대로 이끌려주는 모습이 분명 좋아서, 좋아해서 3년하고도 몇 달을 반지 한 번 안 빼고 살았는데. 

상호가 종수와의 관계에서 균열을 느끼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6개월 전, 그러니까 사이가 손 쓸 수도 없이 틀어져버리기 약 4개월 전이었다.

 '최종수' 그 이름이 가진 유명세는 고교리그를 이어 대학리그에 그대로 넘어왔었다. 이미 잔뜩 촉망 받던 재능은 그가 성인이 된 후에 완벽히 꽃 피웠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최종수는 거의 코트 위에서 날개돋힌 듯 뻗어나갔다. 각 프로팀의 스카우터들이 그를 노렸고, 상호는 그런 제 애인을 동경했다. 20살, 나쁘지 않은 대회 성적으로 인서울을 하고 나서 우연한 기회로 그와의 연애를 시작한 후에 상호는 마냥 좋았다. 농구판은 무척이나 좁으니까, 어찌보면 경쟁상대일 수도 있고 또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져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는건데, 아쉽게도 상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기엔 대가리가 꽃밭인 편이었다. 

 그런 상호가 단 한 번, 스쳐지나가듯 한 말이 있었다. <햄은 젊은데 체격도 좋고, 농구도 잘하니까.. 프로팀에서 이래저래 연락 마이 오죠? 멋있다, 내는 대학 다니면서 농구 끝까지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교체 출전했다가 슛 못 넣고 개같이 망쳐서 싱숭생숭한 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한 말이었던 것 같긴한데, 금방 지나가고 다시 여기 와플 맛있다- 하는 얘기로 넘어갔던 거를 최종수는 쓸데없이 다 기억을 해서. 

 최종수는 다음 달 2일에 상호의 대학과 제 대학이 붙는 리그 경기 날 돌연 발목이 아프다며 병원에 간다 하고 빠져버렸다. 경기는 2점차로 겨우 승리, 게임 막판에 기막히게 코너 3점 슛이 들어갔는데, 상호는 애초에 그 전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진짜 다친거라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경기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간 병원에서, 멀쩡해도 너무 멀쩡해보이는 모습으로 병원 옥상에서 졸고 있던 최종수를 발견한 순간. 애인 이전에 농구를 하는 한 선수로써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부상은 거짓말이었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경기에 빠진 거, 그게 나를 배려한거라면 그건 진짜 최악이다. 무시당한 나의 실력은 고사하고 그게 그 때 내 고민의 답이 되어줄거라고 생각했던 그 기만이 최악이다. 상호는 종수를 애인으로써 사랑했고, 또 하나의 농구선수로써 존경했는데... 

그 마음이 참다 못해 터졌다. 그 날 둘은 처음으로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진심을 다해 싸웠다. 아니, 거의 상호만 언성 높여 화냈고 종수는 몇 번 들어주다가 한숨 쉬고, 그게 아니라고 대꾸하는 역이었다. 

 "왜 거짓말 했어요? 왜 부상당했다고 뻥치고 여기 앉아있어요?"

 "발목은 저번 경기때 한 번 무리하게 돌파하다가 삐끗해서 병원 가봐야 하는 거 맞았고, 사실 경기 빠질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어차피 어느 날이든 빠졌어야 했다면 그게 오늘인 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던거야."

 "결국 요약하면 안 빠져도 됐는데 나 때문에 빠진거 맞다. 그 말 인정하는거네요? 와 진짜... 햄, 설마 그게 진짜 나를 배려한거라고 생각한 건 아이죠? 진짜 그따구로 생각한거면 햄은 거짓말을 한 것만으로도 모자라 내 자존심을 박살낸거에요. 햄이 있으면 내가 활약을 못 했을거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씨.. 온갖 일 참아가면서 몇 년동안 농구한 게 햄한텐 그냥 소꿉놀이처럼 보였냐구요."

 "아니 나는, 씨발.. 야, 네가 저번에 농구 끝까지 할 수 있을 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며."

 "..그게 언젯적인데, 그리고 그게 햄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기상호 너 농구 좋아하잖아. 더럽게 못해도 포기 못 할 만큼 좋아하잖아, 난 네가 농구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씨발 뭐 그럼 발목 삐끗한 거 가만히 놔 두고 한 게임 더 하다가 몸 조지냐? 말했잖아, 어차피 어느 날이든 한 번은 빠졌어야 했다고."

 "...씨이, 햄 여론 큰일난 건 알아요? 플레이오프 눈앞에 두니 스스로 몸 관리도 안 하고 기강이 다 빠졌다고 악바리로 코트 뛰던 옛날의 간절함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막 그래요."

 "지들이 떠들어 대면 뭐 할 거야, 나보다 농구도 못하는 것들이. 예선 하나 빠졌다고 지랄들은."

 "....하... 진짜 햄은 개바보멍청이말미잘이에요..." 

 "너만 하겠냐 " 

 어영부영, 결국엔 최종수가 기상호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로 치부하고 그 날 일은 묻어두나 싶었지만, 상호는 최종수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배려'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나타날 지 문득 두려워졌다. 저 인간은 왜 이렇게 생긴거랑 따로 놀지, 곱상하고, 성격 더럽게 생겼으면 그냥 얼굴값하고 살아도 될 것을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희생이나, 양보같은 걸 하고 심지어는 경기를, 하. 진짜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그후 몇 달 간은 풀리지 않는 감정을 다룰 자신이 없어서 될 수 있으면 그냥 그대로 가만히 두고 싶었다. 와, 코트 위의 괴물, 농구 천재, 무려 인간 태풍이신 최종수님의 사랑과 헌신을 한 몸에 받다니 기상호 넌 진짜 배부른 새끼야, 아니 근데 그 날은 좀 심하지 않았나? 버겁다, 왜 이렇게 버겁지? 나는 그냥 종수햄이랑 꽁냥거리고 싶었을 뿐인데. 저 햄은 왜이렇게 무겁게 구느냐고, 내가 별 따다 달라고 하면 진짜 따줄 것 처럼 구느냐고. 나는, 나는 그만큼 못해줄 텐데...

 스스로의 쪼잔함과 제 농구인생을 연장 시켜주기 위해 제 경기까지 포기하고 나선 마치 성자와도 같은 최종수의 관대함과 헌신(몇 십번이나 곱씹다보니 기억속에서 조작되어버렸다)...을 비교분석하다가 상호는 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현타가 와버렸다. 지쳤다는거다. 4개월 전, 받아서는 안 될 배려를 받고 기상호는 사실 그 무게에 짓눌려서 질식할 것 같았다. 언어적인 표현 10, 비언어적 표현 90이 최종수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 쯤이야 3년 사귀며 당연히 꿰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받은 만큼은 되돌려줘야 한다는 게 모토였던 상호는, 막막했다. 막막해서..

 막상 눈 앞의 사람을 못 챙겼다. 그 사람이 제게 가진 사랑의 크기만 생각하다가 현재에 건네오는 사소한 표현들을 전부 쳐냈다. 뭘, 어떻게 갚아야하지? 애초에 내가 갚을 수 있는 크기나 되는건가? 

 "너 요즘 상태가 왜 이러냐?" 

 "예? 저요?" 

 "그래 너, ..아 설마, 야. 그때는 씨,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아니, 그게 언젯적일인데 제가 아직 마음에 담고 있을까봐요??"

 "...하, 됐다 말을 말자. 야, 기상호. 너는 되도록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마, 다 티나니까."

 "진짜 그거 때문아인데.."

 "그럼 뭔데, 너 요즘 내 앞에서 존나 죽상이잖아. 왜, 내 얼굴이 이제 못 봐주겠어? 오래오래 뜯어먹을 수 있는 얼굴 유지하래서, 네 말 듣고 별 귀찮은 거 다 처바르고 다닌지도 3년이 넘어가는데.."

 "햄."

 "...왜."

 "햄은 대체 왜 그렇게 까지 해요?" 

 "또 시비를 거네."

 "아니 진짜요, sns하지도 않으면서 럽스타계정 만들자고 했을 때 꾸역꾸역 만들고, 선물해준 로션 다 쓸 때까지 바르고, 것도 모자라 새로 사서 바르기까지 하고, 붕어빵 먹고 싶다고 하니까 한밤중에 5천원치 사오고, 운동복 그만 입고 사복 좀 입고 다니라니까 트레이닝복 버린 거 인증샷 찍어 보내주고.. 경기 포기하고, 대체 왜 그렇게 까지 해요?"

 "...야, 당연히... 하, 넌 눈치가 없는거냐?"

 "...진짜 이상하네..."

*

 결국 스스로 삼라만상에 빠져 메말라 가던 기상호가 GG를 선언했다. 이별을 고했다는 얘기다. 지나쳐보니 그 사람만큼 유니콘도 없었어서 과거의 기상호 대체 배부른 줄도 모르고 뭘 한거냐.. 고 왕창 후회하긴 했는데 또 그만큼의 사랑을 받으라고 하면 차라리 바닥에 박혀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쉽게 말해, 기상호는 그때.. 쫄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 달에 몇 번 겨우 듣는데 몇 번씩 다가오는 커다란 행동들이, 빠져 죽을 수도 있을만큼 커다란 사랑이었다. 쫌쫌따리 모으지도 않고 표현할 거 생기면 바로바로 내뱉고 보는 기상호 스타일과는 완전 딴 판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 모든 게 사랑한다는 호들갑 몇 번, 애정 어린 스킨쉽 몇 번, 포옹 두어번, 애교 서너번이면 갚을 수 있는 것들 같았는데, 농구는, 농구는 도저히 아니었다. 최종수가 농구를 포기해? 아니, 물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 부상 빌미로 경기 하나 빠진 것 뿐이지만, 기상호가 느끼기엔 그거나 그거나였다. 그 인간은 농구에 목숨도 거는 걸 다 아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사랑을 쏟아낼 만큼 쏟아낸 사람은 헤어진 후에도 별 미련이 없다는 얘길 언뜻 들었었다. 그때 표현할 만큼 다 표현해서, 더 남은 게 없을거라는 이야기. 당연히 최종수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헤어지면 후련할 쪽은 분명 종수햄이겠지, 그 사람, 진짜 날 많이 사랑해줬으니까... 근데 나는 뭐야, 감당 못할 거 같으니까 지레 겁먹고, 막판엔 차갑게 대하기나 하고.. 

 훌쩍. 이별 두 달 째, 기상호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일어나 보니 눈이 또 퉁퉁 부어있더라, 암만 농구로 벌어먹고 살겠다 다짐했어도 강의는 들으러 가야지. 기상호는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지루하디 지루한 수업을 눈 깜빡이며 겨우 다 듣고 나오면, 학교 정문 앞엔 어김없이, 최종수다. 

 "할 말 생각났으니까.. 15분 줘."

 "10분요."

 "왜 5분 줄었는데?"

 "제 맘인데요."

 "진짜 어이가.. 야, 너 눈이 또 왜 그래? 울었냐?"

 "아 신경쓰지 마시라구요 좀"

 "말 해, 누가 이랬는데." 

 "아 씨.. 자꾸 이러면 지금부터 10분 셉니다?"

 "그러든가, 누가 그랬는지 말하기나 해." 

 "누군지 말하면 뭐, 햄이 그 사람도 울리려구요?"

 "그래야지."

 "...그 말 지켜요" 

 "알았다니까." 

 긴 속눈썹 팔락이면서, 그 밤하늘을 닮은 눈동자로 종수는 하염없이 상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손이 움찔거렸다. 눈가를 손으로 꾹 누르거나, 뺨을 감싸서 자세히 보고 싶은 걸 참는 거였다. 사귀는 내내 가뜩이나 눈물 많은 애인 안 울리려고, 내가 어떤 지랄을 해가면서 연애했는데. 그걸 누가, 대체 누가. 

 "...햄이요, 햄 때문에 울었어요." 

 씨발 그게 나구나... 

*

 기상호, 기상호.. 처음 본 그 날 부터 쭉, 최종수는 그런 애를 처음 봤다 겁을 주면 쉽게 겁에 질리는 것 같으면서도, 잔뜩 쫄은 채로도 절대 안 꿀리고 할 말은 또 다 하는 놈, 웃긴 놈, 가끔 뭔 얘길 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지켜보는 재미는 있는 놈. 서울에 올라왔단 소식 듣고 3년만에 연락했는데. 그 날 최종수는 상호가 카페에서 한 시간 내내 혼자 자기만 아는 애니메이션 얘길하는 걸 들어줘야 했다. 그 동안 그 이름 하나 안 잊고 살아왔던 이유가, 사실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깨달았던 건 그 상황에서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거. 누가 자기 혼자 자기만 아는 얘기만 한 시간 내내 하면서 앞에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대화를 구사하고 있으면 그게 누구든 짜증을 내거나 다른 얘길 좀 해보라거나 돌릴 수 있었던 건데, 그 얘기 하면서 잔뜩 신나보이는 게 좀, 한 몇 분은 더 가만히 둬도 괜찮을 것 같아서. 혼자 심취해 얘기하다가 중간중간 눈 마주치면 멋쩍게 웃으면서 빨대로 커피 한 모금 빨아들이는 게 귀여워서. 혼자 벅차올라 북치고 장구치는 게 좀.. 웃겨서. 

 그래서 그 다음 날에도 보자 그랬다. 

 그랬더니 기상호가 다음 날엔 아예 노트북에 피피티를 준비해오더라. 어제 들려줬던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던 거라고 착각 한 게 분명했다. 심취하면 주위를 잘 못 보는 편인가? 누가봐도 난 네 그 지루하고 이상한 얘기 한 귀로 흘리고 너만 보고 있었는데.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옆에 바짝 붙어서 설명해주겠다 하길래 턱 막히던 숨 겨우 다스리면서 그러라 했다. 스페이스바 일일이 눌러가며 설명하던 거, 제목 기억 하나도 안 나는 거, 끔찍하게 재미없었는데 노트북 덮으면 다시 맞은 편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근데 결국 중간부터는 보는 척도 안 하고 턱 괴고 기상호만 쳐다봤다. 그제서야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던 건지. 피피티 마지막장까지 후다닥 넘겨버리고 맞은 편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걸 최종수가 붙잡았다. 머리 굴리는 모습이 전부 티가 나서, 장난 좀 쳐봤다 하고 금방 놔주긴 했는데. 

 '햄, 혹시. 저 좋아하세요?'

 아, 얘가 바보 같긴 해도 눈치 없진 않았지.. 뒤늦게 부정이라도 해야하나? ..아니, 이미 다 들켰는데 뭐, 종수는 쉽게 고개 끄덕였고, 상호는 한참 혼란해하는 게 보였다. 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서 굳어있더라. 종수가 대충 거절로 받아들이고 짐 챙겨 떠나려고 한 걸 상호가 붙잡았다. 저는 애초에 연애가 처음이고, 게다가 남자는 더 처음이고.. 뭐 하여튼 많이 주절거렸는 데 그 말이 다 기억나진 않았다. 애초에 최종수는 붙잡힌 후에 심장이 너무 뛰어서 걔 목소리가 안 들렸으니까. 그건 거의 본능같은 거였다. 진짜 남자가 고백한 거에 충격받고 그런거면 혼자 나가는 거 붙잡진 않았을테니까. <노력해볼테니까, 시간을 쪼매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에 뇌를 거치지도 않고 나온 대답이 <그래.>였다. 사겨요, 저도 좋아해요, 그런 얘기도 아니었고, 시간을 더 달라는 얘기였는데도 최종수는 그걸 덥석 물었다. 관계에서 철저한 을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라는 연애 선배들 이야기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농구 외에 다른 걸로 시간 낭비하는 걸 최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예외가 들이닥친 순간. 시간 준다고 사귀어준다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공들이는 데 시간만 날리고 혼자 상처받을 수도 있는 건데. 딱히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귀고 나서 한참 뒤에 3년 만에 본 타학교 선배가 만남 2번 만에 고백한 걸, 왜 노력해보겠다고 했냐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면서 혼자 1시간 동안 애니 얘기 하는데 도중에 말 안 끊은 건 자기가 처음이라고 하더라, 최종수는 그 날 기상호가 존나 쉬운 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하루 종일 다른 사람한테 애니 얘기 하지 말라고 중얼댔다. 

 그러니까 기상호는, 자기한테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마음 한구석을 덥석 내주는 답 없는 놈이었다. 남자랑 처음 사귄다고 우물쭈물 댈 땐 언제고 그 새 익숙해져서 항상 먼저 뒤돌아 제 이름 부르며 해맑게 웃기나 했다. 허구한 날 사랑한다 하며 안겼다. 최종수는 그 사실에 종종 불안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자기가 쏟은 노력보다 돌아오는 마음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야, 너 나랑 사귄 거 후회하지. 먼저 꼬신 주제에 입에 발린 말 하나 못하고 매번 네가 먼저 걸은 길 한 발 늦게 따라가기나 하잖아. 네가, 그거 좀 이해해줘라. 난 한 평생 농구 말곤 뭘 좋아해본 적이 없다고. 근데 농구는 그냥 내가 힘낸 만큼 뛰고, 골 넣고, 끝인데다 그 모든 과정에 변칙도 거의 없는데 넌 아니잖아. 20만원짜리 코스 레스토랑을 예약했을 때보다 한 밤중에 오천원 짜리 붕어빵 사들고 갔을 때 더 좋아했잖아. 

 나는 너 처럼 뭘 먼저 표현하고 그게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할 수 있는 게 그거 뿐이라고. 

네 말 잘 듣는 거. 그거 하나 밖에 없었는데.

 3년 동안 그게 패턴이 되어버린 탓이다. 이별의 순간에도 네가 따라오지 말랬다고 텅 빈 영화관에서 혼자 남아있던 건. 

*

 "..씨발, 야, 기상호, 너 빨리 내 눈 찔러" 

 "미쳤어요?"

 "그럼 뭐 양파라도 사와서 눈에 비빌까?"

 "내가 햄 우는 거 봐서 뭐 해요, 됐거든요."

 "네가 그러면 내가 대체.. 뭐가 되냐."

 "전애인이요, 아, 4분 지났다. 6분 남았어요"

 

 전애인, 씨발, 그놈의 전애인... 이별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 꼬박 2달이 걸렸다. 매일 믿기지가 않아서, 잘잤냐고 묻는 이모티콘 가득한 카톡이 없어서, 아이디랑 비밀번호 아는 유일한 계정이 없어져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와 과자에 만화에 거실을 잔뜩 어지럽히던 누가 없어서, 그게 끝인지도 몰랐는데 진짜 끝이란 걸 받아들이기까지 2달이 걸렸다. 헤어졌다. 관계가 끝났다. 그 사실 하나 받아들이고 네가 없어졌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꼬박 2달이 걸렸다고. 아니 애초에, 3년동안 나를 말 잘 듣는 개새끼로 만들어놓고 버리고 가는 게 쉬웠냐? 마지막엔 여러감정이 섞여서 미웠는데, 아직도 그만큼 사랑해서 그냥 보고 싶었다. 15분 동안, 사실 할 말도 없었는데 가만히 얼굴만 보는 게, 이런거에 만족하는 내가 한심했는데.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여튼, 오늘은 할 말 까먹었다고 해도 안 봐줄... 햄, 왜, 왜 울어요?"

 "왜, 겨우 전애인 사이가 되는데 우리가."

 "아니, 그거야.."

 "왜 헤어져야 했냐고."

 3년 사귀면서 우는 걸 보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지금 제 눈 앞에서 최종수는 너무 쉽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제가, 

   받은만큼 돌려줄 자신이 없어서요. 나는 햄을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연애하게 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햄이 날 너무 좋아해서, 그게 무거워서 좀 무서웠어요."

 "하, 씨발 겨우 그딴 게ㅡ"

 "겨우 그딴 거 정도가 아니에요, 저는 저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구요."

 "네가, 돌려주긴, 뭘 돌려줘. 너는 걍 내 앞에서 숨만 쉬고 있으면 돼, 그거면 됐다고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못해 차고도 넘쳐. 뭘 더 해주고 갚을 생각하지 마, 바보 주제에 왜 이렇게 생각이 많냐? 너는 씨발, 진짜 까다롭고 피곤해.." 

 "..까다롭고 피곤하면 왜 3년 동안 사겨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요, 역시 헤어지길 잘했다, 잘 헤어졌다 그 생각 드는거죠? 나 같은 거, 애인으로도 안 두니까 아주 인생이 폈죠?" 

 "넌 내 말을 귓등으로 쳐 들었냐? 내가 씨발 왜 3년 동안 나서서 개새끼 노릇했는데? 왜 네가 부르면 한밤중에도 나가고, 별 재미도 없는 개쓰레기 일본만화영화 같이 봐줬는데? 내가, 씨발 니 말 마따나 너를 존나 좋아하니까 해준 거 아냐. 너 하나 보고 염병떨던 새끼 버리는 게 넌 그렇게 쉬웠냐? 너한텐 아무것도 아니였냐고, 하. 그래 내가 좋은 연애 상대가 아니란 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씨발,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책임을 져, 책임을 지라고.." 

 네가 날 평생 사랑할 것처럼 굴었잖아. 애새끼마냥 투정부리는 꼴인 거 아는데, 내가 시작한 관계 네가 끝까지 이어가줄 것처럼, 그렇게 웃고, 사랑한다 하고, 씨발 그러질 말던가....

 "..와, 평소에 그런 생각했어요?"

 "...씹 또, 뭔 생각."

 "내가 햄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생각요."

 "...너 만나기 전엔 내가 이렇게 염병떠는 새끼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 책임이 다 나한테 있다? 본인이 먼저 맘대로 나 좋아해놓고?"

 "...야."

 "그렇게 안 봤는데, 웃긴 사람이었네."

 진짜 웃긴 사람이었네.. 비꼬는 것 처럼 말은 했지만, 기상호는 그 폭포처럼 쏟아진 마음들을 들으면서, 전처럼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았다. 책임을 지라는 건 그러니까 결국.. 갚으라는 소리같은데, 진짜 앞에서 숨만 쉬어도 그게 갚아지는 거라고? 와, 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거야. 그 마음들이 여전히 무겁긴 했는데, 2달 동안 펑펑 울면서 한 게 그 사랑들 그리워 하며 동시에 그리워 하지 않으려고 과대 포장 오지게 해놓기라 그런지, 막상 닿아오는 감정들이 그리 막연히 무섭고 버겁지가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기뻤다. 3년 연애면 짧은 시간도 아닌데 그 시간 동안 계속 나를 사랑했으면서 아직도, 아니 어쩌면 평생갈 지도 모른다며 그 감정의 책임을 나한테 돌리기 까지 하다니.

 내가 보내지 않는 이상 이 형은 절대 날 먼저 보내지 않겠구나, 내가 본인이 해준 거의 몇 할 밖에 못해준다, 결국 크기가 차이나서 상처 받을 수 있다고 털어놔도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와서 손이나 잡으라고 할 사람이었는데, 서로 왜 그 말을 못해서 여기까지 빙 돌아왔지. 이래나 저래나, 시간이라는 거 진짜 신기한 거구나. 미안하지만.. 헤어지길 잘했다. 아마 그 때 헤어지지 않았으면 더 크게 곪아서 터졌겠지. 한 발 자국 뒤에서 바라보니까 그냥 염병들이고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인데. 

 "그래도 나는 헤어진 거 후회 안 해요."

 "...결국 그게 네 대답이야? ...지랄 마, 난 너 포기 못"

 "나한테는 시간이 필요 했던 것 같거든요. 햄 떠나보내고,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고, 깨닫고, 더 사랑해볼 걸 후회하고, 그 모든 무겁고 버거운 사랑마저도 결국 내 복이었다는 걸 인정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거든요." 

 "..."

 "결론은 그래서, 내가 운이 존나 좋다는 거에요. 세상 어디서 이런 애인을 찾아요? 완전 유니콘, 누가 포기 한대요? 나 부터 이 유니콘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데. 한 5년은 계속 후회했을 걸요?" 

 "...네가 5년 후회하면, 나는 10년 했을거야."

 "허, 그럼 전 15년 후회했을 듯?" 

 "20년."

 "아 진짜, 한 마디를 안 지네." 

 "...."

 "햄 그거 알아요? 지금 우리 얘기 한 지 12분 넘었는데."

 "..뭐 그럼, 10분 지났으니까 꺼지라고?"

 "아뇨, 이제부턴 전애인 사이 아니니까 그 말 취소라구요." 

  그말을 끝으로, 기상호는 제 팔을 활짝 벌렸다. 그가 스스로 개새끼를 자처할 정도로 사랑해 마지않던 웃음을 지으며, 3년 동안 질리게 봐왔지만 하나도 질리지가 않은 그 품으로, 최종수는 관성처럼 다가가 그 몸을 꽉 끌어안았다. 기어코 맞물린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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