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뱅] 박제 새장

[종뱅] 박제 새장 01

S-14 동을 표현하는 말은 많았지만, 병찬은 무수한 악명들 사이에서도 오직 단 하나만의 별명을 최악으로 뽑았다.

俗世 by 麻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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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이드 버스

박제 새장 01

“예? 최종수요?”

병찬이 마시던 음료를 그대로 컵에 주르륵 흘려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최종수? 병찬에게 얘기를 꺼냈던 선임이 머쓱한 듯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마따나 최종수는 지금 기관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최종수의 폭주로 인해 미등록 능력자들의 인권을 위해 진행되었던 최저학력제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어. 그나마 네가 제일 믿을만하잖냐. 이번 일로 그…….”

“……알죠. 알아.”

하여간 줏대 없는 새끼들. 병찬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리저리 간을 보던 놈들이 결국 정부의 쪽으로 빠져버렸다. 그랬기에 능력자에 관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설립되었던 병찬의 팀은 꽤 위기를 겪고 있었다.

호언장담했기에 더욱 그랬다. 미성년자 능력자의 의무 학력을 위한 ‘미성년자 능력자 미등록제’는 연구에 연구를 걸쳐 낸 결론이었으며, 미성년자 능력자들에게는 당연히 필요한 제도였다.

몇 년을 걸쳐 추진했던 안전장치가 당장 눈앞에서 날아갈 위기다. 확실히 병찬과 그 팀은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께름직한 부분도 있잖아.”

“맞죠.”

병찬에게 부탁하는 선임의 표정은 굉장히 간절해 보였다. 그 시선을 별개로 두고서라도, 병찬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어린애를 떠맡다니.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야 할 게 많기는 했음에도 결국 머리는 자신이 최종수를 맡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을 도출해 낸다.

그날. 최종수의 폭주로 인해 경기장 하나가 무너졌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건물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불길에 휩싸였다. 다른 경우였다면 수백 명이고 죽었어야 했을 사고였음에도 다행인 건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폭발 한 번으로 무너졌다. 그만큼 최종수는 성장한다면 능력자 중에서 탑급에 오를 재능이 있었다. 골치가 아팠다. 병찬이 미간을 문질렀다.

탑급 재능이 있는 능력자. 게다가 미성년자다. 센터의 눈에 얼마나 주무르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였을까. 워낙 바빴던 탓에 기사는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지만, 최종수는 폭주를 일으킨 주범이니 지금 강제로 능력자 전용 감금실에 속박되어 있을 것이었다.

나이가 몇이었더라.

고작 중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미간을 문지르던 손길이 멈칫한다. 중학생. 피로에 찌들어 흐려져 있던 신념이 되새겨진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신념이었다. 자신이 지금 여기서 개 같이 구르는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최종수. 미등록 폭주. 농구 경기장.

농구.

게다가 농구라. 재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우연이다. 얼굴을 쓸어내린 병찬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들이켰다.

“야, 너 그거 뱉었던 거….”

“할게요. 최종수.”

빈 종이컵이 와그작 구겨졌다. 이제 자신은 중학생이었던 때가 까마득하다. 그만큼 선명하게 타오르던 꿈은 무엇보다 처절하게 무너지고, 그 빈자리를 추악할 정도로 잔혹한 전쟁터가 메웠다.

평범하노라 정의할 수 있던 일상이 멀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니, 되게 해야 한다. 박병찬은 이 썩어버린 센터가 돌아가는 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그토록 유명한 ‘최종수’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 병기의 이름이 되어버릴 것이었다. 병찬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컵을 던졌다. 볼품없이 구겨진 종이컵이 유려한 원을 그리며 한 번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어어, 그러냐?”

“오예~ 결정. 걔 어딨어요?”

우선 감금실에 있다고 하면 나중에 센터 본부부터 족치러 가야지. 미성년자에게 무슨 짓이냐고. 미성년자와 관련된 조약을 잊었냐고. 병찬이 빳빳한 입꼬리를 씨익 당겨 웃었다. 짓고 있는 건 분명히 웃음이었건만, 도저히 웃음 같지 않았다. 선임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어쩌냐……. 네가 생각하는 거기 맞는데.

“S-14 동.”

“실화냐고….”

한숨을 내뱉는다. 머리를 벅벅 문지른 병찬이 고개를 끄덕인다. 복잡한 생각은 다음이다. 우선 먼저는, 그 ‘최종수’를 빼내는 게 우선이었다.

“가죠.”

새하얗기만 할 격리실. 목이 바싹바싹 마른다.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띄운 병찬이 결국 차고 있던 넥타이를 끌어 내렸다. 아무리 갑갑한 목가를 풀어헤쳐도 숨통을 틀어막는 무언가는 사라지지 않는다.

 

 

* * *

 

 

S-14 동은 센터 기관 중 아주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당연하다. 가이드도 능력자 사이에서도 유명한 장소. 병찬이 울리는 머리를 따라 손끝으로 이마를 짓눌렀다. S-14 동. 기관과 정부의 아주 더러운 뒷돈이 오간다는 일종의 ‘연구소’.

또는 ‘폭주’를 빌미로 능력자에게 인간의 자격을 박탈시켜 만들어낸 ‘물건’의 가치를 결정짓기 위한 옥션 등. S-14 동을 표현하는 말은 많았지만, 병찬은 무수한 악명들 사이에서도 오직 단 하나만의 별명을 최악으로 뽑았다.

박제 새장.

희귀한 능력의 능력자들은 아무리 연구에 순종해도 마치 새장에 박제라도 된 것처럼 S-14 동을 벗어날 수 없다. 병찬이 손끝을 갈작거렸다. 능력자들이 그 빌어먹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악명이 자자한 S-14 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간단했다. 능력자들이 대항하기에 기관은 너무 무거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십하고도 삼 년 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능력자들의 각성으로 인하여 혼란하던 나라를 한데로 묶은 게 능력자들을 관리하는 센터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혼란을 몰아낸 것도 센터였으며 능력을 미숙하게 다루는 능력자들에게 어디서 난 건지 모를 가이드를 공급해 준 것도 센터였다.

십삼 년이 지나 능력자들의 존재가 익숙하지는 않아도 낯설지도 않게 된 지금. 수뇌부들의 부패로 줄어들긴 했으나, 센터의 위용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평범’이라는 현상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능력자들이 희생되었는가. 그놈의 ‘협정’을 내세우며 특이한 능력이 개화한 능력자들은 또 얼마나 많이 새장에 묶여 박제되었는가. 병찬은 그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눈앞에 놓인 장면에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야. 누가 묶어놨냐?”

시야에 들어차는 것은 온통 새하얗다. 새하얀 방. 새하얀 최소한의 가구. 새하얀 최종수. 능력표출 방지용 특수 천으로 꽁꽁 묶인 최종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온몸을 휘감은 붕대들 사이 빼꼼 드러난 새까만 정수리뿐이다.

“재 폭주의 위험성이….”

“우리가 지금 물로 보이냐? 너네. 이거 조약 위반인 거 몰라?”

종수를 가만히 바라보는 병찬의 기색이 서슬퍼랬다. 상주하고 있던 S-14 동의 직원이 마른침을 삼킨다. 서늘하게 벼려진 말은 날칼과 같았다.

병찬은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된 어른이라면 이런 장면을 목전에 두고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 리가 없잖는가. 단체로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병찬이 속에서 욕설을 짓씹었다. 시퍼런 분노가 들끓는 시선이 경비를 보고 있던 직원에게 향한다. 말이 직원이지 따지자면 연구자일 그 면상을 향해. 시선을 마주한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뒤로 물렸다.

퍼렇게 물든 눈동자에 일렁이는 건 명백한 살의다. 남자도 눈앞의 그 ‘박병찬’이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다. 세간에서 그는 아주 유명했다. 미친놈. 자신의 신념이 틀어지면 적에게도 아군에게도 칼날을 세우는 제대로 미쳐버린 새끼.

센터에 몸담은 지 어느 정도 짬밥이 찬 놈들은 능력자가 하는 일들이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독한 새끼들. 어떤 연구자가 능력자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독한 새끼. 그게 맞았다. 그것도 한창 다량으로 능력자가 배출된 초반의 발현자들이라면 더 들어맞는 말일 테다. 능력 발현 이후 그들에게 삶은 생존이었고, 지금 보통의 사람이 당연하게 누리는 평범함은 절대로 꿈꿀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들이 딛고 서 있는 곳이 바로 최전방인 샘이다. 입술을 꾹 다문 남자가 결국 최종수를 구속하고 있던 것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가죽처럼 두껍고,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천이 옭아매었던 몸뚱아리를 놓았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묵직한 게 풀리는 기색에도 최종수는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상태가 좋지 않다. 얼마나 갇혀있었던 거지? 병찬이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셈했다. 그 순간 숙여있던 고개가 들렸다. 등줄기가 섬찟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린 병찬이 자신을 응시하는 종수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런, 실수했네. 앳된 얼굴에 스민 건 체념일지, 분노일지 모를 것이었다. 어린애라는 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황폐한 얼굴. 병찬은 그 근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텅 빈 것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 그 중심은 본인이 있었고,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 속이 노골적으로 술렁이는 듯한 기분에 병찬이 조용히 종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내가 왜.”

적어도 며칠은 억류되어 있던 탓인지 잔뜩 쉰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병찬은 그저 종수를 가만히 응시만 하고 있었다. 농구한답시고 키만 커버린 어린애를.

“괜찮으니까. 가자.”

종수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그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서 벌어진 입술은 메마른 채 무언가를 달싹거리다가 다시금 닫히고 말았다. 새카만 눈동자의 안에 병찬의 모습이 깊숙이 새겨졌다. 그 새겨짐의 의미가 무엇이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 * *

 

 

일단 데려오기는 했는데.

병찬이 의자 위에 몸을 늘어트렸다. 시선이 굴러간다. 이내 병찬의 눈이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채 건네준 음료를 홀짝거리는 종수를 응시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따뜻한 머그잔을 붙잡은 손은 하얗고 젖살로 말랑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농구공을 쥔 태가 나듯 의외로 단단해 보이기도 했다.

최종수를 빼내는데 큰 반발은 없었다. 이보다 더 간섭한다면 위험해질 것임을 센터 또한 알기 때문일 것이었다. 겨우 유지 중인 평화를 깨트릴 방도가 센터에는 없다. 그러니 최종수를 박병찬이 ‘이양’ 받는 것에 다른 방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른 문제점이 존재했다. 다행히 병찬이 능력을 개화했을 때보다 ‘능력자’라는 개념이 보편화된 덕분인지 종수의 부모님은 종수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의지와 달리 센터의 의지 또한 명확하다. 그나마. 정말로. 다행이었던 점은 종수의 폭주에 공식적으로 조사할 법한 의문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병찬이 손톱을 틱틱거렸다. 몇몇은 그 희박한 증거가 자신들의 논리가 망가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최종수는 애매한 장기 말이 되어버렸다. 병찬이 제일 피하고 싶던 상황이었다. 위치가 붕 뜬 장기 말의 가치는 장기를 두는 사람이 다듬어 봐야 만이 알 수 있다. 지금의 병찬이 볼 수 있는 건 극히 드물다.

“최종수랬나.”

“뭐.”

병찬이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다시 물끄럼한 시선이 병찬을 향한다. 툴툴대는 게 참 제 나이대다운 반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까맣게 침잠한 눈동자가 병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병찬은 저 집요한 시선을 피하고 싶다고 느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서 그런 건가? 손톱의 끄트머리가 틱틱거린다. 어쨌든, 병찬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당분간은 나랑 지내게 됐는데, 괜찮아?”

최종수는 분명히 자신이 며칠간 구금당했던 게 부당함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똘똘한데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타인이랑 지내게 되는 것의 의미도, 편안하게 지내던 가정과 떨어지는 것에 거대한 강제성이 관여했다는 사실도 모를 수가 없을 것이었다.

“어.”

“그, 어…? 괜찮다고?”

병찬은 종수가 맹렬히 반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릇 어린애들이란 그러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니 종수의 답은 예상치 못한 답일 수밖에 없었다. 얼이라도 먹은 듯이 어버버거리는 듯한 병찬을 종수가 조금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내가 지금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위험해질 테니까.”

완전 의젓하잖아? 중학색 맞아? 원래 요즘 애들은 이렇게 어른스럽나? 믿을 수 없다는 병찬의 눈이 종수를 응시한다. 종수는 그 시선이 귀찮은 것 같았다. 반듯하던 미간이 팍 찌푸려지더니 병찬에게 말을 쪼아낸다.

“뭘 봐.”

“아니. 그냥 대견해서.”

“언제부터 날 알았다고.”

그렇지만. 병찬이 종수를 한참이나 빤히 응시하다가 결국 그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스스하던 머리가 다시 이리저리 뒤엉킨다. 서슴없는 손길에 종수가 티가 날 정도로 짜증을 냈다.

“하지 말라고.”

“그래그래. 하지 말라고.”

부러 장난스럽게 종수의 말을 따라한 병찬이 몸을 일으킨다. 얹힐 듯이 속을 괴롭히던 게 조금 옅어진 것도 같다. 끼익거리며 몸을 앉혔던 의자가 뒤로 끌렸다.

병찬이 나섬으로써 최종수에게는 ‘보호가 최우선인 미성년자 능력자’라는 감투를 씌워두었으니, 자신과의 생활에 적응할 동안은 다른 수작질이 들어오지 않을 테다.

병찬이 힐끗 시선의 끄트머리로 종수를 흘긴다. 최종수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병찬의 눈에 최종수는 그렇게 순진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랑 살 건데. 대신 약속이 하나 있어.”

대충 휴게실 의자에 걸쳐두었던 재킷을 걸친다. 온통 새까만 정장이 상복처럼 느껴졌다. 높은 놈들은 얼굴 꼬라지 하나 비추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예의를 차리라는 건지. 센터 놈들은 늘 새까만 정장을 유니폼처럼 입을 것을 종용했다. 그 시끄러운 잔소리들이 어깨며 숨통을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병찬이 느리게 목을 조이는 새까만 넥타이를 풀었다.

“나랑 지내는 동안은 내 말만 믿어. 그러면 네 안전과 네 사람들의 안전은 절대로 보장해 줄게.”

마냥 가벼워 보이는 얼굴과 달리 단단한 시선이다. 종수는 그때, 병찬이 보였던 시선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 단단한 눈은 자신처럼 어린애의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세월과 무수한 고난을 겪으며 단단해진 눈. 신념이 있는 눈이다. 종수는 농구하며 저런 눈을 한 놈들을 많이 보았다.

말마따나 고작 중학생이면서 농구가 자신의 길임을 의심치 않는 눈을. 알 수밖에 없다. 자신 또한 코트의 위에 서면 저런 눈을 했을 테니까. 까맣고 곱슬거리는 머리 위에 다시 병찬의 손이 올라갔다. 아까 그랬던 것과 달리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토닥거림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농구도.”

이다지도 단단한 선언 앞에서 종수는 다른 선택지를 붙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력을 바깥으로 표출한 이후 느껴지던 허망함은 적어도 지금 순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최종수는 병찬이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약속했어.”

어쩌면 종수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병찬의 눈에서 연민이 아닌 결심을 보았던 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미약한 믿음이 생겨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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