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뱅] 박제 새장

[종뱅] 박제 새장 02

최종수는 모든 게 폐허가 되었던 때를 기억한다.

俗世 by 麻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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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 새장 02

최종수는 모든 게 폐허가 되었던 때를 기억한다.

쏟아지던 불빛은 온통 부스러져 불티가 되었고 내지르던 함성은 비명이 되어 흐트러진다. 공포로 변질된 흥분이 앞다투어 공간을 빠져나간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는 최종수에게 찍히는 거대한 낙인이라.

미등록 능력자가 폭주했다.

날카로운 비명에 목소리가 섞여 든다. 들리는 단어라고는 온통 미등록, 능력자, 학살. 그리고 폭주. 열기로 가득하던 경기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풍경.

최종수는 그것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 *

 

 

분주한 병찬을 종수가 뚱하게 바라봤다. 박병찬은 지금 막 종수의 부모에게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임시 보호자 권한을 받아온 길이었다. 그놈의 ‘임시 보호자 권한’을 얻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만 소요됐으랴. 최종수 본인의 일이기 때문에 병찬이 다니는 곳을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녀야 했다. 그깟 서류 하나를 받아내는데 정신이 없었다. 종수가 불만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절차 없이 그냥 들여 앉혀 놓으면 되는 걸….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그런 종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병찬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합법’을 중요시했다. 그래야 훗날 자신의 계획이 모두 잘못되어도 종수를 보호할 길이 생길 터였기 때문이었다. 센터가 아무리 고이고 썩었다고 하더라도, 센터와 정부는 명백히 별개의 세력이다. 그리고 두 세력은 불법적인 면에서는 서로의 이득을 위해 협력하고자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의 권력을 노리는 하이에나들과 다름이 없었다.

공존의 의지는 없다. 선의를 위해 세워졌던 센터가 결국 이렇게 부패해 버린 것처럼. 서로를 향한 추잡한 욕망이 그나마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로 인해 관계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합법’적인 선의 안에서 센터는 최종수를 멋대로 휘두를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

“응? 별로 안 신났는데?”

“그러면 뭔데.”

신나지 않았기는. 얼굴에 ‘오예~’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데. 종수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하든 병찬은 종수네 부모가 챙겨준 마지막 짐을 집 안으로 옮겼다. 단단한 이사 박스의 겉면에는 정성과 기도가 꾹꾹 눌러 쓰여 있었다.

“있어. 아기는 몰라도 돼.”

“아, 애 취급 좀 그만하라고.”

팍 구겨진 얼굴을 응시하던 병찬이 다시금 실실 웃으며 종수가 사용하게 될 방문 앞에 마지막 상자를 놓았다. 그렇게 꾹꾹 눌러 담긴 상자가 서넛 쌓여 있었다.

“정말로 혼자 정리 할 수 있어?”

“애 아니라고 했다.”

한참 사납게 구겨지는 미간을 바라보며 병찬이 웃음을 흘린다. 짐을 옮기느라 걷어 올리고 있던 셔츠 소매를 다시 단정하게 내린 뒤, 걸쳐두었던 재킷에 팔을 끼워 넣는다. 한참 웃는 얼굴에 종수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잠시 지부에 갔다 올게. 점심 전에는 돌아올 거야.”

“애인이라도 만나러 가냐?”

“그렇게 신나 보여?”

병찬이 괜히 더 방긋 웃는다. 종수가 미심쩍은 눈을 한다. 며칠간 지켜본 결과 박병찬은 애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없을 것이다. 늘 센터, 자택, 센터, 자택만 옮겨 다녔으니 있었다면 진작 헤어졌을 테고.

아니면 그 ‘가이드’라는 걸 만나러 가는 건가? 종수가 머릿속으로 ‘가이드’의 개념을 더듬는다. 학교에서 의무 교육으로 배운 적이 있었다.

능력자와 가이드.

박병찬이 능력자라고 했으니, 그 또한 센터에서 배정된 가이드가 있을 것이었다. 종수가 반듯한 미간에 팍, 힘을 주어 찌푸렸다. 여하튼 저 속 모를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수의 생각을 전혀 모를 병찬이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애인? 기실, 따지자면 자신이 향하는 곳은 애인과의 밀회 장소가 아닌,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다. 병찬이 종수의 생각을 몰라서 다행이다. 표가 나서 알아차린다면 병찬은 웃음을 터트렸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종수가 묘하게 뚱한 얼굴로 병찬을 응시했다. 영문 모를 얼굴에도 병찬은 접어두었던 소매를 마저 빳빳하게 폈다.

“그것보다 더한 거 만나러.”

암. 더한 거기는 하지. 게임에서는 보스, 장기에서는 왕과 한판 하러 가는 것이니까. 머리에 똥만 찬 것들이 생각은 없어서 이미 결정 난 지시 사항에 관해 한 번 더 오라 가라 지랄이다.

아무리 그렇게 발바닥에 불나도록 불러대도 그들에게는 자신에게서 종수를 빼낼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것을 대비하여 매우, 매우, ‘합법적’인 절차로 종수의 임시 보호자를 맡지 않았는가. 병찬이 실실거리는 웃음을 더 노골적으로 흘린다.

병찬의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종수의 얼굴이 더 부루퉁해졌다. 그것이 자신을 더 어리게 보이도록 하는 것도 모르는 채.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티를 내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병찬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종수의 머리를 헤집었다. 종수의 눈매가 점점 더 날카롭게 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며칠 함께 지났다고 요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겠다. 병찬이 결국 푸하하 웃어버리면서 손을 내렸다. 빈틈없이 긴장을 세워야 하는 적군의 머리를 썰러 가기 전, 그래도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조금 있다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병찬이 보이는 반응치고는 드문 말이었다. 그는 평생 누군가에게 안전히 돌아오겠다는 따위의 맹세를 한 적이 없으니까. 이건 그냥 어린애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다. 속이 텅 빈말이라고 하더라도 최종수와 같은 어린애에게는 그만한 안심이 없을 테니까. 여전히 부루퉁한 종수의 얼굴이 눈에 잡힌다.

“그딴 거 걱정 안 한다고.”

“맛있는 거 사 올게.”

“애 아니라고 했지.”

발끈하는 종수의 머리를 일부러 꾹꾹 누른 병찬이 타이밍 좋게 울리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찬의 손에 눌린 탓에 잔뜩 움츠린 종수는 그 목소리가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병찬이 힐끗,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여전히 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종수가 눈에 들어왔다. 얜 표정이 왜 이래. 결국 푸핫, 또다시 웃어버린 병찬이 종수의 머리에서 손을 떨어트렸다.

“조금만 기다려. 갔다 올게.”

종수가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부루퉁한 얼굴이다. 저 어린 머리로 정확히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되었든 사실과 다를 것이었다. 병찬이 다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렇지 않게 종수에게 씨익 웃어준 병찬이 전화를 손에 든 채 걸음을 옮겼다.

“예예. 나갑니다. 재촉하지 마세요.”

 

 

* * *

 

 

“재촉하지 말라고 하던 놈치고는 꽤 생각이 많아 보인다?”

턱을 괸 채 창밖이나 바라보던 병찬이 선임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전쟁에 뛰어드는 놈은 생각이 필요 없다. 그냥 지시대로 날뛰기만 하면 되는 노릇 아닌가. 그저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별할 최소한의 이성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 후방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이들은 다르다.

기실, 병찬은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병찬이 하는 일이라고는 말 그대로 지휘관의 말에 따라 미친개처럼 날뛰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번 최종수 사태로 팀의 인원이 대거 이탈한 뒤 센터의 측에 붙은 탓에 미성년자 능력자들을 위해 의무 학력제를 의견으로 내놓은 병찬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휘관이 되어버렸다.

“아. 너무한다니까요? 그거. 누구든 그냥 낼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닌가? 왜 나한테만 그런대.”

“야. 생각을 해봐라. 여태 동안 아무도 생각 못 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냐. 충분히 대단하지.”

병찬이 못마땅하게 입술을 내민다. 대단하기는 그냥 다른 놈들이 생각이 없던 거면서. 자기들 머리가 텅텅 비어있던 거면서! 어쨌든 머리가 아팠다. 정확히는 골치가 아팠다. 순조롭게 느껴지던 순풍이 이제는 거대한 대륙에 작은 배를 꼬라박는 폭풍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다. 그래. 이건 그냥 조금 골치 아플 뿐이야. 미간을 문지르던 병찬이 한숨을 내뱉었다. 한숨이나 푹푹 쉬는 건 성정에 맞지도 않는데. 이놈의 한숨은 자꾸만 나왔다.

“한숨 쉬지 마. 회의 끝나면 맛난 거 사줄게.”

“오예~ 진짜죠?”

그래 한숨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비식거리며 웃은 병찬이 조수석에 뒤통수를 기댔다. 흔들리는 차를 따라 머리가 여전히 울렁거렸다. 바뀐 것이라고는 푹푹 새어 나오던 한숨을 그냥 집어넣은 것뿐이었다.

“센터 도착할 때까지 좀 자라. 너 며칠 잠도 못 잤잖냐.”

“티 나요? 안 되는데.”

무릇 적장의 목을 베어내려면 기백이 있어야 한다. 피로에 찌든 채 걸어 들어갈 수는 없지. 냉큼 눈을 감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건 위압감이나 중압감 같은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저 자신이 일을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대거 이탈한 이들을 향한 미약한 원망.

자신의 선택에 최종수가 달려있었다. 최종수의 꿈이 달려있었고, 최종수의 처우가 달려있었으며, 최종수의 목숨이 달려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잡념을 치우려 애를 쓰며 병찬이 느리게 숨을 내뱉었다. 모자랐던 잠만큼이나 무거운 졸음이 순식간에 요람의 안을 덮친다.

 

 

* * *

 

 

애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종수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자신은 전혀 애가 아니다. 운동을 하기에 키도 그렇고, 팀에서도 그렇고. 종수가 생각했을 때 자신은 자기 한몫은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농구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자신만이 바라본다. 부모님의 후광에 기대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종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발현한 능력은 거추장스럽다 못해 방해물과 다름이 없는 존재였다.

능력자와 가이드라는 개념이 보편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종수 또한 그 두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다행히 종수가 타고난 능력은 신체강화능력이 아니었다. 만약 신체강화계열의 능력이었다면 종수는 아주 불합리하게도 ‘공정성’을 핑계로 다시는 코트 위에 서지 못했을 것이었다.

폭발일지 화염일지 모르는 능력이 갑작스럽게 폭발한 이후, 부모님은 박병찬의 말을 따라 새로 실행되기 시작한 미성년 능력자 보호제도를 선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능력의 개화를 부러워한다. 그건 '능력' 가치가 재화적으로 어마했기 때문이었다.

개화 후 센터에 능력을 등록하면 임무에 따라 수당이 지급된다. 그리고 보통 그 수당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금액이다. 그러니 일반인들 사이에서 개화는 일종의 로또 당첨 취급을 받았다.

상자를 방 안으로 옮긴 종수가 힐끗, 문 바깥에 시선을 두었다. 넓은 가정집. 넓은 만큼 휑한 공기. 능력이 개화되는 게 그렇게 좋은 거라고? 자신이 보기에는 단 하나도 좋은 점이 없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능력이 폭주한 이후, 종수는 자신이 모르던 세계를 강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온통 하얀 방. 그리고 나타난 박병찬. 침잠한 채 들끓던 그 시선. 당장 박병찬의 상태만 보아도 일반인들이 그다지도 추앙하는 ‘능력자’란 그다지 좋지 못한 직업임이 확실해 보였다.

아니. 나는 또 왜 당연하다는 듯이 그 새끼 생각을 하는 거야. 종수가 짜증 가득한 손길로 포장을 뜯었다. 평범한 일상과 격리된 자신의 물품들이 그곳에 있었다.

박병찬은 자신에게 제 일상을 보장해 주겠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농구도. 하지만 종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폭발로 인해 경기장 하나가 날아갔다. 멋모르는 애새끼라도 하더라도 이번 사건에 의해 심상치 않은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일 것임을 알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종수는 자신이 지금 이러고 있을 수 있다는 게 병찬의 덕분임을 알고 있었다. 녀석이 뭔가 손을 썼을 것이었다. 자신이 방에서 꺼내어지던 때처럼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 새끼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 거지? 부지런하게 물건을 정리하는 몸과 달리 머리는 생각이 마구잡이로 충돌하고 있었다. 눈앞에 박병찬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화를 내고 있던 건지, 경악하고 있던 건지 모를 얼굴. 서슬 퍼렇게 버려진 눈은 단단하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눈이다. 그러면서도 감색으로 침잠한 채 일렁거리고 있었다. 종수는 문득 그 눈에 무언가의 투영이 드리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짜증 나 뒤지겠네.”

깍 다물린 잇새로 험악한 말이 새어 나왔다. 하여간 그 멍청한 남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도록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겹쳐본 건가? 그게 아니면? 새끼는 내게서 뭘 본거지? 옳든 그르든 종수에게 있어서는 기분 더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제3 자에게 타인을 투영하는 행위는 결국 동정과 다름없다. 모순적이고 기만적이다. 종수는 타인의 그런 시선을 감당할 생각이 없었다.

분노를 꾹꾹 억누른 손으로 나머지 물건을 정리한다. 참아야 했다. 참지 않으면 마구 날뛰는 능력 탓에 박병찬의 집을 전부 태워버릴지도 몰랐다.

내던져진 현실은 종수에게 농구 경기장처럼 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혹하고, 냉정하다. 여기서 사고를 더 친다면 자신은 또 그 격리실로 끌려가게 될 것이었다. 종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살갗의 위를 둘둘 감는 그 빌어먹을 정도로 기분이 더러운 천을 떠올린다. 그건 천이 아니었다. 천과 닮은 무언가가 끊임없이 살갗을 기어오르는 듯한, 섬찟함.

어쩔 수 없는 불안으로 손끝이 잘게 떨린다. 종수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안하다고? 자신이 왜 불안함을 느껴야 하지? 결국 상자를 정리하는 것을 포기한 종수가 침대 위에 몸을 털썩 눕혔다.

“박병찬. 언제 오는 건데.”

침구는 푹신했다. 직접 세탁이라도 한 건지 침구에서는 종종 병찬에게서 맡을 수 있는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났다. 종수는 지금, 자신이 병찬을 찾고 있다는 것도 불만스러웠다. 그냥, 모든 게 짜증스럽게 엉켜있는 것만 같았다.

고집스럽게 눈을 감는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공이나 튀기고 싶었다. 종수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바라는 것을 기도했다.

 

 

* * *

 

 

뭐야.

병찬이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집 안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얘가 어디 나갔나?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종수는 지금 미성년 능력자 보호법으로 인해 능력자로 전산상 등록이 되지 않았지만, 문서 내로는 ‘폭주 가능 위험 능력자’로 분류되어 법적 임시 보호자인 자신과의 동행이 아닌, 독단적인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손에 종이가방을 든 채 병찬이 갑갑한 넥타이를 끌어 내렸다. 자나? 아니면? 종사하는 업종이 업종이라 그런 것인지, 병찬의 머릿속은 최악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최종수는 사용에 미숙하지만,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능력자다. 게다가 어리기 때문에 여러 실험을 거쳐 그가 가진 능력을 더 강력하게 개화할 수도 있었다. 가능성이 많은 순진해 빠진 어린애. 그만큼 썩어빠진 어른들에게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병찬이 손톱을 틱틱거렸다. 조용한 집의 안에 단단한 손톱이 일정하게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 집은 보안마저 철저하다.

타인이 허락 없이 침입하면 자신에게 알림이 올 것이었다. 그것이 능력자라면 더. 괜히 생명 수당으로 받은 돈을 왕창 들여 능력자용 보안 장치를 설치한 게 아니란 말이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최종수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최종수는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 많은 걸…….

됐다. 그만 생각하자. 심호흡을 내뱉은 병찬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쌓여있는 짐 상자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빨리 회의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짐을 전부 정리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나?

머리가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병찬이 괜히 그저 상대의 머리통을 물어뜯는 파수견의 역할을 고집했던 게 아니었다. 머리를 쓰는 자리는 너무 복잡하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으며, 책임감도 막중했다. 병찬은 제 목숨의 무게로도 이미 무거워 수몰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힘이 들어가 일그러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그래도 머릿속 묵중하게 가라앉은 생각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손을 뻗어 조용히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긴장한 게 역력한 모양새였다. 종이백을 낀 손에 휴대전화가 들린다. 보고용으로 설정해 둔 단축번호에 손가락을 올려둔 상태다. 문이 소음 하나 없이 깔끔하게 열린다. 방에는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허. 뭐야.”

그리고 시선에 들어온 침대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병찬을 뒤흔들던 걱정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빛에 의해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우글거리던 것들이 한순간에 휩쓸려 사라진다. 헛웃음을 내뱉은 병찬이 얼굴을 쓸어올렸다.

병아리처럼 노란 이불의 위에 최종수가 잠들어 있었다. 물끄러미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침대 근처에 털썩 주저앉는다. 짜증과 무신경함이 스미지 않은 종수의 얼굴은 의젓하던 게 거짓말인 듯이 꼭 제 나이대처럼 앳되었다.

“푸하핫, 그래. 이렇게 보니까 역시 어린애 맞네.”

종수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속삭인 병찬이 침대에 고개를 기댄다. 보송하게 빨아놓은 이불에 뺨이 눌렸다. 눈앞에 잠든 종수의 얼굴이 놓였다.

고놈 참 예쁘게도 생겼어. 게다가 운동까지 했다고 했으니, 여자애들을 얼마나 울렸을까. 그따위의 쓸모없는 생각이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이는 안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색색거리며 숨을 내뱉는 앳된 얼굴은 근심 따위 없이 평온하다.

옳다. 병찬은 어린 능력자들의 저런 얼굴을 지키고 싶었다. 피바다의 위에서 괴물 취급을 받는 게 아닌, 마냥 어린애처럼 천진한 얼굴.

능력자들의 인권은 여전히 바닥을 기어다닌다. 그나마 겨우 만들어 둔 미성년 능력자 미등록법도 위태로운 위치다. 종수가 졸업하면 어떻게든 이 피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센터는 어느 곳이든 있으니까. 종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병찬이 결국 눈을 감았다. 고요한 가운데, 살아있는 생명의 숨소리가 들린다. 어렴풋하던 책임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병찬은 직감한다.

시간과 현실로 인해 뭉툭하고 모호하게 풍화되었던 신념이 뚜렷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저 작은 숨소리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은 다른 어른과 같이 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무언가 바꿔도 바꿔야 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닌, 이다음 세대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이기에 병찬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은 자신을 영웅의 위치로 올려놓는다.

이다지도 지대한 영웅의 위치를 가지고 싶었던 건 아닌데.

종수의 숨소리가 흐트러진 건 그때였다. 병찬이 느리게 눈을 떴다. 잠결에 끙끙거리던 종수가 느릿하게 눈을 뜬다. 잠기운으로 멍한 눈에 병찬이 비쳤다.

“야호. 잘 잤어?”

“뭐야.”

부스스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잠시 뒤에서야 상황을 파악한 종수가 번뜩 몸을 일으켰다. 박병찬? 그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나?

“많이 피곤 했나 봐?”

종수가 여태 잘 잠들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이라도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병찬이 실실 웃음을 흘린다. 부스스하게 눌린 머리하며, 당황스러운 얼굴하며, 무방비한 종수는 제 나이대 같다던 병찬의 감상을 연장했다.

“기분 나쁘게….”

“선물 사 왔으니까 용서해 주라.”

태연하게 말을 끊은 병찬이 옆에 끼워두었던 종이백을 종수에게 건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에는 경계심이 잔뜩 담겨 있었다. 크래프트지로 밋밋하게 만들어진 종이백에는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얼른 받아. 팔 떨어지겠다.”

병찬의 재촉에 종수가 결국 종이백을 받아들었다. 종이백은 그다지 묵직하지 않았다. 묘하게 익숙한 무게감. 의심 가득한 눈이 종이백을 향한다.

“농구공?”

“실내 농구장 알아봤는데, 갈래?”

뭉툭한 공을 만지작거린다. 새것이었다. 늘 만져 익숙한 자신의 공은 아니지만, 제작 규격에 맞춰 만들어진 농구공이 맞았다. 종수가 병찬을 빤히 응시한다.

“할 줄은 알아?”

“당연한 거 아냐? 나도 왕년에 좀 했다고.”

이 꼬마야. 너만 최고인 게 아니야.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종수의 호승심이 달칵, 눌린다. 아무리 잘해도 자신보다 잘하겠어? 얕보는 게 다분한 종수의 표정에 병찬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내기할래?”

“져도 울지 마.”

병찬이 웃음을 꾹꾹 삼켰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이라니. 이제 중3이었나? 한참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제일 귀여울 때고만. 읏차,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안 울어. 너야말로 지고 나서 씩씩대지 말아라.”

“흥.”

“도도하기는~ 내기 조건은 어떻게 할래?”

종수가 고민한다. 박병찬에게서 뭘 뜯어낼까. 병찬이 결국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슬그머니 가렸다.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좋다. 결국 돌아갈 길이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만큼 긍정적인 신호는 없었다.

자신처럼 일상의 모든 걸 포기하여 맹렬하게 사는 게 아닌, 지켜야 할 일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능력자의 생존율은 올라간다. 괜히 사람에게 있어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중에 정해.”

종수가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난다. 짐 정리야 내일 해도 될 테니까. 뭐가 됐든 박병찬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줘야겠다. 종수의 눈이 투지로 이글거렸다.

“그래. 나도 뭐 생각나는 게 딱히 없으니까 나중에 정하자.”

병찬이 방긋 웃었다. 그것도 아주 방긋. 종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자신을 얕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먹을 꽉 쥐었다. 꼭 이기겠어.

이겨서.

 

 

* * *

 

 

찍소리도 못하게 눌러 버려야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수는 참패했다.

며칠 만에 뛰어다닌 코트는 넓게 느껴졌다. 찹찹한 바닥에 드러누운 종수가 눈을 끔벅였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

박병찬이 능력자이면서도 몸을 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었다. 종수가 힐끗 병찬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박병찬은 넥타이와 재킷을 벗어 던지고, 흰 셔츠의 소매만 걷어 올린 상태였다.

“농구했었어?”

패배감에 허우적거리기도 잠시.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는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방금, 경기에서 본 병찬의 모습은 농구에 익숙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 꽤 옛날의 것이었다. 마치 시스템 업데이트가 그때쯤 멈춰있던 것과 같이. 종수가 물끄러미 병찬을 응시한다. 농구. 박병찬. 능력자. 센터.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있었다.

능력자로 발현하니 농구를 강제로 그만둔 것이다. 자신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미성년자 능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시되었다. 그 전까지의 미성년자들은 발현하는 즉시 센터에 고립되어 교육을 받았다.

박병찬 또한 법의 수호를 받지 못한 이들 중 하나일 것이었다. 빌어먹게도 시기가 너무 빠르게 태어난 죄 하나로. 종수는 딱히 그것이 안타깝거나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신경 쓸 사안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눈치채네?”

“모를 수가 없잖아.”

박병찬의 일은 박병찬의 일이다. 종수는 그렇게 선을 그었다. 저 녀석은 말 그대로 ‘임시’ 보호자일 뿐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처리되기 전까지 자신을 맡는. 그 이상의 정을 쌓을 생각은 없다. 종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박병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니 종수는 박병찬이 한 단언만을 믿으면 되었다. 자신의 일상과, 농구를 되찾아 주겠다는 그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말을.

“종수야. 불안해하지 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병찬이 씨익 웃었다. 또 그 눈이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눈. 그 앞에서 최종수의 불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종수가 팔로 눈가를 가렸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너무 따가웠다. 머리 근처에 병찬이 다가와 웅크려 앉는 게 느껴졌다.

“어른들이 다 해결할 거니까. 괜찮을 거야.”

앞서 맞춰진 퍼즐 조각이 또 다른 한 가지의 결론을 만들어 냈다. 저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주 옛날, 강제로 농구를 상실하게 된 박병찬, 자신에게 하는 말일 테다.

웃기시네.

“배고파.”

그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짜증났다. 짜증의 이유는 알지 못했다. 드러누워 있던 종수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자신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적어도 박병찬이 자신에게 투영하는 그의 과거처럼 나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치기 어린 생각과 함께 종수가 병찬을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뒤를 따라오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박병찬의 소리였다. 하지만 종수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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