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뱅] 박제 새장 03
하지만 내가 그렇게 죽으면 최종수 그 애는 어떡하지?
11,327 자
박제 새장 03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졌으나, 둘은 서로가 영역 동물임을 존중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뒤 쓸데없는 참견하지 않았다. 애매하게 벌어진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이 년이 지나도, 종수가 학교로 돌아가도 된다는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병찬은 초조해했고, 종수는 초조해하는 병찬이 자신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었다. 속에서 울렁거리는 감정들이 불편하다. 그래서 종수는 이 영문 모를 것들의 이유를 모두 병찬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병찬이 공을 던지는 종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렇게 이 년 정도 흐를 동안, 종수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건 손에 꼽았다. 고심하여 고르고 고른 코치가 종수의 연습을 봐주고 있었다. 힘이 들어간 코치의 목소리와 공을 튕기는 소리가 반질반질한 실내 농구장에 울려 퍼졌다. 팔짱을 낀 병찬이 눈을 감았다.
사람이 대거 팀에서 빠진 게 문제였다. 눈엣가시이던 무리의 덩치가 작아졌으니 얕보는 거다. 병찬이 처한 환경은 그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센터 쪽으로 붙은 그 빌어먹을 모순자 새끼들 때문에 타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은 높으신 분들에게 닿지도 못했다.
종수에 관한 안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받아온 검사 수치도 폭주의 위험성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기에 기실, 종수는 학교로 복귀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병찬이 느리게 숨을 골랐다. 객관적이고 법적으로 학교로 복귀하는 게 무리가 아닌 상황에서 여전히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종수가 여전히 센터에 있어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으니. ……아예 센터에서 빼돌릴까? 병찬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비쭉, 떠올랐다. 이대로 씨름을 계속해도 종수의 시간만 무참하게 버려질 뿐이잖아.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너무 과격했다. 센터에서 종수를 몰래 빼내기 진행되기 위해서는 종수의 신분이 말소되어야 하고, 그 이후로도 종수는 종수로 살지 못한다. 그건 곧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세상에서 ‘최종수’를 지우는 선택에 불과했다.
그럴 바에야 아예 다른 근거를 만들어서 센터의 감시망을 빠져나가게 하면….
“뭐하냐?”
“끝났어?”
큰 그림자가 드리운다. 병찬이 제 앞에 우뚝 선 종수를 병찬이 올려다봤다. 햇수로 이년. 애들은 빨리 자란다더니 시간이 지난 만큼 키도 많이 컸다. 그래도 동그란 얼굴에는 여전히 어린 애 같은 면이 여전하다.
맞다. 종수는 아직 어린애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눈앞의 최종수는 여전히 어린애일 것만 같았다. 그게 병찬에게 있어 미묘한 안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에 가자.”
“……어.”
종수의 시선이 조금 길게 병찬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못마땅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병찬이 뺨을 긁적였다. 최근 들어 종수는 사춘기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병찬은 그 예민함의 이유가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바뀌지 않은 상황. 최종수에게 있어 임시로 지어진 우리는 갑갑한 감옥에 불과하다. 농구의 경우도 그러하다. 아무리 좋은 코치를 붙이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실질적인 경기의 경험이 없으면 센스를 쌓는 건 물론, 팀과의 플레이도 떨어질 것이다. 그건 종수에게 있어 농구선수라는 기회를 서서히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종수가 이곳에 묶여있는 한,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니 병찬에게 주어진 것은 조금 더 무리해서 뛰어다니는 방법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했던 생각처럼, 종수의 시간은 점점 더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를수록 바로잡을 기회는 사라진다. 병찬은 종수가 귀한 시간을 무력하게 흘려보내 기회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병찬이 대충 벗어두었던 재킷을 옆구리에 끼웠다. 이리저리 뒤엉키는 생각과 별개로 어린애들은 여전히 어려웠다. 다양한 방면으로 종수를 생각해 보려고 해도 병찬은 종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했다.
아마 막 센터에 수용된 과거의 자신 또한 그랬을 테다. 병찬은 본인 스스로 꼭꼭 뭉쳐놓은 원망을 잊지 않았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분다. 한탄스럽게도 시야에 비치는 최종수는 자신을 너무 닮아 있었다. 병찬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종수를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야. 빨리 안 와?”
“간다. 가.”
머리를 벅벅 섞었다. 복잡하다. 날카로운 종수의 상태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에 차는 답답함에 병찬이 길게 한숨을 내뱉는다.
* * *
종수는 여전히 불이 싫었다.
그에게 있어 불과 폭발은 제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원흉이었다. 느리게 숨을 내뱉는다. 흩어지는 숨을 따라 손바닥에서 타닥거리며 타오르던 불길은 점점 더 크게 번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작아지게 해봐.”
무미건조한 목소리의 주인은 센터의 교육관이다. 남자의 말을 무시한 종수가 유리창 바깥에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병찬을 시선의 끄트머리로 힐끗 응시했다. 시야에 비치는 박병찬의 얼굴에는 피곤이 우글댄다. 종수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그 감정에 동화라도 되는 것처럼 손바닥의 불티는 더욱 거대해져 가고 있었다.
“최종수.”
젠장. 짜증 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종수는 모순적이게도 이 짜증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고 있었다. 종수가 일그러진 눈으로 저를 지켜보는 교육관을 노려보더니 손바닥에서 키워진 불티를 서서히 줄여놓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타오르던 것은 종수의 컨트롤에 따라 서서히 작아지다가 소멸한다. 방금까지 뜨거운 것이 타올랐던 손바닥이 조금 홧홧했다. 화상의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더운 파스가 손바닥 전체를 덮은 것만 같은 아릿함이다. 그래 종수는 이 감각조차 싫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저 새끼는 더 싫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종수의 눈에 놈이 걸린다. 기본적으로 얕보는 듯한 태도. 그 안에 서린 불만. 남자의 불만은 박병찬을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종수가 미간을 꾹 구겼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짜증 나. 머릿속에 욱여넣어진 듯한 한 가지의 감정이 마구잡이로 끓는다. 모든 게 싫었다. 저를 원숭이 취급이라도 하는 듯한 투명한 방이 그러했고, 그 안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천이 그러했다.
최종수는 저 천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구금되었을 때 저를 감싸고 있던 그 천이다. 일그러진 눈이 하얗게 붙은 천을 노려보았다. 군데군데 기워진 천들이 우글우글거리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의 사념이 모인 것처럼. 불쾌하다. 미간에 더 힘이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새카맣던 눈동자가 노란빛으로 번쩍였다.
똑똑.
“종수. 끝났어? 갈까?”
그런 종수의 상념을 깨운 것은 병찬의 목소리와 가벼운 노크소리였다. 병찬이 문에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병찬의 얼굴은 피로해 보였다. 방에 무언가가 우글거리는 듯한 감각과 짜증이 뱃속에서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집에 가.”
“그래그래. 점심은 뭐 먹을래?”
날카로운 반응에도 병찬은 별 반응이 없었다. 종수는 그것마저 못마땅함을 느꼈다. 손을 꾸욱 말아쥔다. 속에서 울렁거리는 건 일종의 불안임에도, 종수는 이 감정을 그저 ‘못마땅함’으로 포장했다.
그 외의 방법은 알지 못했다. 바보 등신 같은 박병찬. 성질머리 더러운 거 진작에 알고 있는데, 왜 화를 내지 않는 거지? 내가 이미 심술이란 심술은 전부 부렸잖아. 병찬을 가만히 노려보던 종수가 먼저 바깥으로 발을 옮긴다. 여전히 병찬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몰라.”
“저번에 먹은 거 먹을까? 너 그거 좋아하는 거 같던데.”
종수가 차갑게 대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병찬의 반응은 일괄적이었다. 한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병찬이 저를 종종 쫓아온다. 벽에서 우글거리는 것 같았던 흰 가죽의 감각 때문이었을까? 날카롭게 벼려지고 벼려진 감정은 더욱더 난폭해지고 있었다.
“안 먹어.”
“으음.”
난감한 듯한 목소리. 그때가 되어서야 앞장서던 종수의 시선이 병찬에게로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얼굴에 쌓인 피로감 위에 곤란함이 스민다. 결과적으로 종수는 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술을 꾹꾹 짓씹던 종수가 결국 먹겠다는 답을 하려던 때였다.
휴대용 단말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종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출동이다. 병찬이 여전히 단말기를 들었다. 어느 순간,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종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안 가면 안 돼?”
순진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다. 병찬이 뒷목을 주물렀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쓰고 있던 탓인지 매사 날카롭기만 하던 종수가 투정 비슷한 것을 부려주는 게 기쁘기만 하다. 단말기에 쓰여 있는 건 한 문장이었다.
긴급. 출동 요함.
“나도 그러고 싶은데, 가봐야겠다. 센터에서 조금 기다릴 수 있겠어?”
센터에는 온갖 위험이 득시글거린다. 종수에게 갑자기 센터의 수작질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종수가 그 말에 휘둘릴 수도 있었다. 병찬이 살풋 미간을 구겼다.
역시 종수만을 두고 가는 게 꺼림칙하다. 하지만 그를 자택에 데려다준 뒤 출동하기에는 상황이 영 좋지 않다. 한 번 울려댔던 단말기는 계속해서 긴급이라는 붉은 글씨를 토해내고 있었다. 꽤 급박한 모양인데. 늦어졌다가는 얼마나 귀찮아질지. 병찬이 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선배에게 손을 흔들었다.
“야, 박병…….”
“선배. 저 돌아올 때까지만 얘 좀 맡아줄 수 있어요?”
“차라리 같이 가!”
종수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멈칫하던 병찬이 눈을 끔벅인다. 피로로 둔해진 시선이 겨우 종수의 날카로움 사이에 스며 있던 불안을 눈치챈다.
센터에 홀로 있는 게 무서운 건가? 그렇다고 그와 함께 출동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출동이 늦어지면 종수의 위치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니 병찬은 지금의 상황에 관해 조금 안일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정도의 피로감이야 잠깐 가이딩을 받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까, 금방 갔다 오자. 그러면 괜찮겠지. 병찬이 씨익 웃으면서 종수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결 좋은 곱슬머리가 손에 엉긴다.
“금방 갔다 올게. 저 아저씨 알지? 아무도 너 못 건들어.”
자신이 못 건들지 못하게 만들 것이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 않은가. 단말기는 더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과 달리 종수의 표정은 여전히 초조하다.
나중에 맛있는 거나 사줘야겠다. 아무리 키가 컸어도 종수는 여전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손을 떨어트린 병찬이 선배에게 가볍게 부탁한다.
“잘 부탁할게요, 선배.”
이미 몇 번이고 울린 단말기가 다시금 글자를 토해낸다. 병찬이 결국 종수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종수의 눈이 병찬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불만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 애새끼 그 자체다. 당연하게 최종수를 떠맡게 된 선배가 한숨을 내뱉었다.
“야. 꼬맹아. 넌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애초에 최종수를 병찬에게 떠넘긴 것은 자신이니, 제가 할 말은 없긴 했다. 얼떨떨하게 종수를 떠맡게 되었으면서도 병찬은 불만하나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살게 된 종수 덕분에 병찬의 고질병은 괜찮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말이다.
남자가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최종수를 응시한다. 최종수. 2년 전 폭발 사건으로 인해 사회와 격리. 사회 복귀 일자는 미정. 능력은 불꽃의 응용인 폭발. 등급 책정 또한 미정이지만 A급 혹은 그보다 상위의 등급으로 추정. 미성년자라는 애매한 위치.
그리고 센터와 정부의 좋은 먹잇감.
“됐다. 가자.”
2년 동안 박병찬의 과보호를 받아온 꼬마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었다.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걸음을 옮겼다. 남자의 걸음을 따라 종수가 발을 옮겼다. 남자가 슬쩍 종수를 응시했다. 최종수는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꼬마는 건방지기는 해도 똘똘한 면이 있었다. 박병찬, 그 녀석이 괜히 그렇게 자랑질을 해댄 게 아니었나 보네? 잡념은 됐다. 지금 해야 할 건 갑작스러운 상념을 잇는 게 아니라 저 꼬마를 휴게실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긴 복도에는 침묵과 발소리만 이어졌다. 최종수가 남자에게 말을 건 건 임시 휴게실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병찬의 앞에서 내내 불만스럽던 표정이 애교로 보일 만큼 종수의 얼굴은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박병찬. 어디 간 거야.”
능력은 화기 계열이면서 화를 내는 모습은 북풍한설이다. 저것 또한 박병찬을 닮은 건가? 완전히 빼닮았잖아? 남자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어딜 간 거냐고?
“당연히 임무 아니냐. 요즘 일손이 조금 딸린다.”
“……원래 그렇게 자주 안 가잖아.”
“꼬마야.”
젖힌 문의 안으로 아무도 들어서지 않는다. 남자는 병찬이 그렇게 똘똘하다고 자랑한 종수가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눈썹의 한쪽이 치켜 올라간다. 오래 구른 경력이 어디 가지 않는 건지 남자의 눈에는 병찬이 보지 못할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마냥 똘똘한 줄만 알았더니.
새끼 저거. 병찬이 놈 앞에서는 내숭 부리는 거였구나.
“살다 보면 가끔은 몰라도 되는 게 있는 거다.”
장황한 말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이유를 발설하는 순간, 저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를 끔찍이 아끼는 박병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남자는 자신이 그의 담당 선임이었기에 병찬이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놈이 한참 어렸을 때부터 봐왔는데, 이제 와 새삼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겁을 먹었다면 진즉 집어 먹어서 도망갔겠지. 그것과 별개로 남자는 병찬을 존중했다. 놈은 이미 다 큰 성인이고, 최선을 다해 최종수를 아끼고 있었다. 그는 그 신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알면 입 좀 다물어라.”
종수는 그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지금.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분하다. 종수가 입술을 강하게 짓씹었다. 창백하게 질린 입술이 분노로 떨리면서도, 지금, 종수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자신의 힘이 터지지 않게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 * *
병찬이 비틀거리던 걸음을 다잡았다. 이놈의 몸뚱어리, 그래도 조금은 버티는 것 같더니 또 지랄이다. 눈가를 끔벅였다. 충분히 가이딩을 받고 돌아가는 길임에도, 머리가 무거웠다.
점점 가이딩의 역치가 낮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이드와의 매칭률은 결국 정신적인 것에도 문제가 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이딩이 듣지 않는 건 결국 자신의 탓이었다. 될 수 있으면 접촉 가이딩으로 끝내고 싶건만, 이대로 가다가는 몸이 견뎌주지 못할 게 뻔했다.
욱신거리는 눈가를 짓눌렀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길은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늦어졌기에 종수는 이미 선배에 의해 귀가한 상태일 것이었다. 괜히 배짱부리지 말고 집까지 데려놓으라고 센터에 떼를 쓸걸 그랬나? 힘이 들어간 미간이 구겨진다. 됐다. 그래봤자 자존심만 상한다. 어차피 집까지 거의 다 왔으니까. 병찬이 심호흡을 한 뒤,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박병찬이라는 책정 등급이 높은 능력자가 센터의 케어 바깥에 있는 이유는 뻔했다. 병찬의 생사에는 센터의 안중에 없는 것이다. 높은 등급을 아까워하기엔 아직 그들에게는 길들일 수 있는 최종수라는 미지의 패가 남아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패는 박병찬의 손아귀에 들어있다는 것이었고, 그러니 차라리 박병찬이 죽어버린다면 그 패를 쉽게 가져갈 수 있을 터였다.
즉, 센터는 병찬을 그냥 죽거나 포기하라고 방치하고 있었다.
병찬이 계속해서 숨을 골랐다. 센터든 어디에서든 자신의 위치는 서늘한 체크판에 있어 무너진 패에 불과했다. 사실 모든 능력자의 취급이 그랬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버려지는 김에 덤으로 머리에 구멍도 몇 개 나고, 다른 동료들처럼 눈도 감지 못한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고작 대체품일 뿐인 패.
병찬이 문득 옮기던 걸음을 멈췄다. 여태 센터에 소속된 이후 박병찬에게 있어 고삐라는 건 없었다. 죽더라도 현실이 변하는 게 있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게 박병찬이다.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든, 아니면 잔인하게 난도질당하든, 병찬에게는 최후에 있어 웃을 자신이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죽으면 최종수 그 애는 어떡하지?
홀로 달려왔던 시간이 무색하게 최종수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고작 2년을 같이 살았으면서 과거의 자신과 미치도록 닮은 그 앳된 얼굴이. 병찬이 느리게 숨을 내뱉었다. 손에 붙든 단말기를 움켜쥐었다.
“박병찬.”
그런 이유에서, 병찬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 수 없었다.
* * *
이 새끼는 또 왜 안 와. 종수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째깍거리며 넘어가는 초침의 소리가 요란하다.
자긴 해야 할 텐데. 눈을 감으면 소리가 들렸다. 환호는 순식간에 비명으로 변하고, 천장에서 쏟아지던 경기장의 빛은 죄인을 위한 단상으로 변한다. 골대 대신 드리워진 올가미. 그 가운데에 최종수가 있었다. 뒤이어서 터지는 소리가 뒤엉킨다. 넘쳐나는 폭발음을 종수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가 날 저지했더라?
강렬하던 기억의 이면은 흐릿하다. 지워져 버린 기억의 앞에서 선명하게 불타던 죄악과는 다르다. 종수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천장에서 눈을 돌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병찬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가? 능력자들이 교전 중 종종 죽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능력자들이 싸우는 대상은 가지각색이었다. 센터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테러 능력자 조직, 드물게 발견되는 일종의 괴물, 범죄자 등. 자세한 소식은 민간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능력자와 가이드라는 존재가 세간에 익숙해졌음에도 그들의 존재는 일종의 수수께끼와 다름이 없었다.
종수의 머릿속이 생각으로 서서히 뒤얽힌다. 잠들지 못해 모자란 수면으로 인해 그 생각은 점점 극대화되고 있었다. 여전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납게 벼려진 생각의 끄트머리는 병찬을 향하고 있었다.
시발. 박병찬은 언제 오는 거야. 느릿하게 숨을 골랐다. 아무리 생각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순식간에 고개를 든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손끝이 저릿거렸다. 좋지 않은 징조다. 종수가 결국 눕혔던 상체를 일으켰다.
손이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로 향한다. 평소 간단한 용건을 전하는 것 외에 잘 사용하지 않는 전화였다. 입술을 잘게 깨물다가, 손을 움직여 진작 외운 번호를 눌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모님 번호는 잊어버리게 생겼는데, 이 새끼 번호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었다.
단조로운 연결음이 이어진다. 종수는 여전히 무언가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옴을 느꼈다. 연결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본 통화 연결음이 몇 분까지 지속되더라?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확실한 건, 유독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강박적으로 움직이며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길게 늘어졌다. 동시에 훈련실을 뒤덮던 희멀건 것들이 떠올랐다. 하얀 것들이 구더기처럼 득실거린다. 속이 갑갑하다. 크게 뜨인 눈은 여전히 휴대전화의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눈알이 건조하고 뻑뻑했다. 여전히 박병찬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전화는 안 받고 지랄이야. 무슨 일이 있다면 센터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이 상황에서 종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또. 할 수 있는 게 없다.
머리를 냉정하게 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손은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재다이얼을 누르고, 또 누른다. 단조롭기 짝이 없던 연결음이 길게 늘어졌다. 그것마저 종수의 몸을 타고 우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소리가 들렸다. 굳게 닫힌 문으로 휴대전화를 향하고 있던 고개가 황급히 돌아갔다. 문 바깥에서 진동이 들리고 있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이어지던 연결음이 다시 끊어지더니, 문이 열린다.
“어. 뭐야, 종수. 안 잤어?”
들어온 건 태연한 얼굴의 박병찬이었다. 종수가 치밀어오른 욕지기를 삼켰다. 제 표정이 얼마나 엉망일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넘실거리던 불안이 순식간에 분노로 변질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악문 종수가 침대에 누운 채 이불을 휙, 덮었다.
저딴 새끼, 꼴도 보기 싫어.
“형아 안 볼 거야?”
병찬이 태연하게 종수의 침대 아래 털썩, 주저앉은 채 고개를 침대에 기댄다. 샛노란 오리 깃털색의 이불은 어린 종수와 잘 어울렸다. 고개를 누이자 뒤늦게 피로가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다.
“종수야.”
“부르지 마.”
“부르지 마? 그러면 애기라고 부르면 되나?”
반응을 보니 저를 걱정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까칠해도 애가 참 착해. 자신은 정작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서도. 긴장이 풀리기라도 한 건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씻기야 센터에서 씻고 나왔으니, 옷만 갈아입으면 잠들 수 있을 텐데. 무거워 꾸벅꾸벅거리는 고개를 무기력하게 노랗고 푹신한 이불에 기댄 채 병찬이 이불로 덮인 머리께를 손바닥으로 토닥거렸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나지막한 목소리는 느릿하게 늘어졌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분명히, 이 자세로 잠들어 버릴 게 분명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결국 늘어지는 몸을 일으킨다. 병찬이 몸을 일으키자 노란 이불 덩어리가 슬쩍 들렸다.
“……어디 가는데.”
“으응? 옷 갈아입으러.”
종수의 얼굴에 피곤한 병찬의 얼굴이 들어왔다. 평소의 그 씨익, 거리며 입꼬리를 당겨 웃는 모양새가 아닌 피로와 졸음을 머금어 한층 흐릿해진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서 눈을 떼어내지 못한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종수가 고개를 휙 돌렸다.
“불 꺼줄까?”
“……그러던가.”
크고 거친 손이 종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떨어진다. 고개를 튼 종수의 시선은 병찬이 등을 돌려 방을 나갈 때가 되어서야 긴 궤적을 그리며 병찬에게로 향한다. 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최악이다. 오늘 잠들기는 절대로 무리였다. 그래도 눈을 감아 잠들기 위해 애를 썼다. 어린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방금 지독하게 밀려들었던 무기력증, 낮에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쿡쿡 찔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알면 입 다물어. 종수에게는 어떤 힘도 없었다. 종수에게는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생각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제게 더 힘이 있었다면 이럴 일이 없었을까? 박병찬이 저렇게 흐린 웃음을 짓지 않고, 무리도 하지 않았을까? 저 새끼를 위해 무언가라도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무력하게 누워있는 게 아닌, 돌아오지 않는 박병찬을 찾기 위해 뛰쳐나가기라도 할 수 있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종수가 눈을 감았다. 현실은 가혹하다. 최종수는 이동 반경이 정해진 짐승과 다름없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의 울렁임 가운데에서 익숙한 향이 훅 끼쳤다.
“종수야. 오늘만 형이랑 같이 잘까?”
태연한 목소리가 들린다. 꾹 다물린 눈꺼풀이 꿈틀거린다. 아마 병찬 또한 자신이 잠들지 않았음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이불을 걷고 들어온 병찬의 몸이 찹찹하다. 그 팔이 종수를 가볍게 끌어안은 채 토닥거렸다.
“괜찮을 거야. 형이 어떻게든 해줄게.”
종수는 박병찬의 이런 점이 싫었다. 무엇이든 알고 있고, 무엇이든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저 말과 태도가. 불쑥 치미는 울분을 삼킨다. 종수가 답 대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같은 샴푸와 바디워시를 사용하고 있을 것임에도 병찬에게는 더 청량한 바람의 향이 났다.
“잘자.”
종수는 문득. 정말 문득. 생각했다.
자신이 모든 걸 파괴하는 이딴 능력이 아니라, 능력자를 구원할 수 있다는 가이드였다면. 그랬다면.
자신이 박병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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