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ard Day to Die

A Hard Day to Die 5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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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수는 출근하자마자 차장실로 향한다. 이미 열려있는 문에 노크만 하자 분주히 움직이던 이현성이 돌아본다. 그가 새파랗게 멍이 든 눈을 보고 아이고, 하는 탄식만 내뱉는다. 성준수는 민망한 듯 묵례하고 테이블에 앉는다. 이현성이 문을 닫고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앞에 놓았다.

"주말에 박병찬이랑 한바탕 했다면서."

"네, 뭐. 일이 좀 있었습니다."

"내가 몸 성치 않아 퇴역한다는 애 데려다 괜한 고생 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눈은 괜찮고?"

"출혈 없고 시력도 멀쩡합니다. 그러잖아도 집에 걱정하는 애가 있어서 병원 다녀왔어요."

이현성은 대충 알겠다는 눈치다. 성준수를 유리처럼 조심스레 다루지 못해 안달 난 녀석이라면 한 명뿐이지.

"재유한테 대강 얘기는 들었다. 박병찬이랑 거래하기로 했다며."

"미리 보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러시아 주요 인원은 확보했지만 중국 라인은 넘겨야 말이 통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됐다. 탓하려고 부른 것도 아니고. 너희가 어련히 잘 처리했을까."

최소 영사급이랑 엮인 놈이면 차라리 박병찬 통해서 처리하는 게 낫다. 함부로 구속해서 처리했다간 외교 문제로 번질 위험도 있고, 외압을 넣을 수 있는 위치의 정치인이 엮여있다면 얼마 못 가서 풀어줘야 할 테니. 그럼 차라리 무법자 손에 넘기는 게 깔끔하지. 가지고 있는 정보야 박병찬이 캐낸 것과 이쪽에서 러시아인을 통해 캐낸 것을 크로스체크하며 사실 여부만 판단해도 충분하다.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까짓 러시아인이든 중국인이든 박병찬 다 줘도 돼. 우리한테 무기는 정보니까. 알지?"

"네."

지금 상황에서 성준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정보뿐이다. 군사위원회와 국내 정치인을 압박할 근거가 명확한 정보. 이현성은 그의 팀에게 포기하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박살 낼 준비를 시킬뿐.

성준수를 보던 그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간 고생 많이 했지? 해외 떨거지 팀 소리도 듣고, 출신도 불명확한 애들 데려다 교육시키고, 충원도 안 돼서."

"아닙니다."

"아니긴. 나도 부장님도 듣는 귀가 있는데."

부상으로 퇴역한 군인 하나. 줄 떨어져 낙동강 오리알 된 놈 하나. 특전사 낙오자와 상부와의 마찰로 퇴출당한 경찰특공대 출신. 뒤늦게 들어온 두 놈은 브로커 따까리 짓이나 하던 놈들이다. 장기적으로 맡는 일도 없고, 처치 곤란인 업무만 넘겨받는 해외부의 애물단지.

"그런데 나와 부장님, 6팀 만들 때 떨거지 팀으로 계획한 적 없다."

"네?"

"너희는 처음부터 우리 부서 식스맨이었으니까. 해결사 역을 위해 만들어진 스트라이커 팀이라고."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와 모 의원이 엮였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일부러 6팀에 일을 맡겼는데, 의원의 지역구인 항구를 통해 마약이 유입된 이력에 엮여 정보부와 합동팀 형태로 가게 됐다. 입김 센 정보부장이 합동팀을 직접 지휘하겠다고 나서서 그동안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손을 털고 나간 지금이 기회다.

"정보부 놈들 떨어져 나갔으니까 이번에 제대로 실적 가져오고 공표하자고. 할 수 있지?"

이현성은 업무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 꼴통들로 만들어진 팀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인선이다. 곧 죽어도 굽힐 줄 모르는 성준수, 라인을 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력이 있음에도 버려진 진재유, 고문 훈련을 거부하고 낙오한 공태성, 처우에 대해 항의하다 잘린 김다은. 혹자는 유연하지 못해 세상 살아가기 어려운 놈들이라 칭할지 모르지만, 이현성은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곧 죽어도 일을 올바르게 마무리할 녀석들이기에. 그들에게 부족한 유연성은 깨끗하고 안전한 신분을 제공하는 대가로 기상호와 정희찬을 팀에 포섭하여 채워 넣었다.

이현성이 어깨를 두드린다. 성준수는 팀장이 된 이래로 시달리던 실체 없는 불안함이 달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를 이 자리로 이끌었던 이현성 차장과 이규후 부장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버린 적 없었다.

"네."

"그래. 이제 마지막 스퍼트니 힘내보자."

네. 고개를 끄덕인 성준수가 커피를 들고 일어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방을 나가려는데 이현성이 깜빡했다는 듯 불러세운다.

"이번엔 다 같이 나가기로 했다며? 일정은 정해졌고?"

"박병찬이 먼저 출국하고, 저희는 3일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합니다."

"어이구, 전영중이가 또 난리 치겠네."

아마도...... 분명히 그러겠죠.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전영중이 극성인 건 어디까지 소문이 난 건지.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에 뺨을 문지른 성준수가 나가려다 말고 문을 도로 닫았다.

"그래서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데......."

"박병찬이랑 연락은 된 거지?"

"넵. 숙소도 예약했고, 공항으로 마중 나올 사람 보낸다고 합니다."

"숙소?"

"자기 에어비앤비 예약해서 평점이나 올려달라던데요. 싸게 해준다고."

"뭔, 별, 진짜 미친놈......."

기상호가 보여주는 예약 확인 메일에는 5만 원짜리 방 3개의 확약과 호스트 O-YEAH에게서 온 '나중에 봐 상호야♡' 라는 멘트가 적혀있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좋은 후기만 남기라던데요."

"리뷰도 쓰래?"

"그 조건으로 싸게 빌렸습니다."

숙소 제공 아니었...... 하, 됐다. 박병찬에게 괜한 빚을 지는 것보다 숙소비 조금이라도 내는 게 낫지. 성준수가 이마를 짚는다. 얼마 전까지 죽네 사네 하던 놈이 숙박비와 리뷰를 구걸하는 꼴이 같잖았다. 물론 다른 숙소 잡았다가 꼬리 밟히는 것보다 차라리 박병찬의 구역에서 지내는 게 낫다지만, 언제 변덕을 부려 제게 총구를 겨눌 줄 알고.

"괜찮다. 박병찬이 저 손해 볼 일은 안 할 놈이니 당장에 수작 부리진 않을 거다."

"일단은 괜찮다는 거지?"

"최소한 작전 시작까지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전적으로 진재유를 신뢰하는 말에 기상호만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형, 제가 말할 땐 미덥지 않다는 표정이었으면서. 성준수는 대답하지 않고 티켓이 끼워진 여권을 건넸다. 티켓에는 영문으로 이름이 찍혀있었다. JO MYUNGWOO.

"오옷, 이게 바로 그 위장......!"

"희찬아, 입."

합. 입을 다물고도 처음 받은 위장신분증에 정희찬과 기상호가 신기한 듯 티켓과 여권을 뒤적인다. 마, 쫌. 목덜미를 콱 잡는 커다란 손에 두 사람이 몸을 움츠렸다. 저것들을 믿는 게 잘하는 짓인지, 이런 꼴을 보면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현성이 믿는다는데 그럼 성준수도 믿어야지.

"공태성은 얘네 군용 수신호 가르쳐 놓고. 김다은 너도 큰 차이는 없지만 SOU랑 헷갈릴 수 있으니 옆에서 복습해."

"네."

"흩어지고......."

"성준수!"

익숙한 목소리에 일제히 돌아본다. 이럴까봐 몰래 나왔는데. 한숨을 삼키며 성준수가 제 팀원들에게 손을 젓는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지정장소에서 보자." 들어가라는 손짓에 진재유가 먼저 걸음을 떼고 그 뒤로 주춤거리며 하나둘씩 뒤따른다. 제 팀원들이 입국심사장 안쪽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성준수가 돌아본다.

"어떻게 알고 왔냐?"

"그게 할 말이야? 나한테 말도 없이 출장을 간다고?"

"네가 내 상사도 아니고 어디 갈 때마다 보고하고 가야 해?"

"우리가 남이야? 그냥 옆 부서 동료냐고. 애인한테 출장 가면 간다 당연히 말해줘야지!"

"말하면?"

걱정하기밖에 더 할까. 무슨 일로 나가는지 뻔히 아는데, 우울해할 녀석 달래줄 생각까지 하면......

"나도 지쳐, 영중아."

에너지가 무한정 솟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을 밤새도 멀쩡하던 20대는 훌쩍 지났다. 일에 치여 피곤한 와중에 제 애인까지 챙겨줄 여력이 없다.

"나도 힘들다고. 너 달래주고 이해시켜 줄 체력이 없다."

근데, 무작정 믿어달라고 하면 믿어줄 것도 아니잖아. 평균을 훌쩍 넘는 몸인데도 무슨 유리공예품처럼 깨질까봐 안달 나서 버릇처럼 그따위 몸이라고 깎아내리는 녀석이 무작정 믿어달라면 믿어주겠냐고.

"그래서, 도와달라 말 한마디 없이 두고 가?"

"도와줄 수는 있고?"

천하의 전영중이 상부의 명령을 씹고 날 돕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전영중은 룰브레이커가 아니다. 짜인 판에서 최대한 효율을 뽑아내는 건 잘하지만 판도 자체를 비틀어 새로운 확률을 만들어 내는 쪽으로는 재주가 없다. 그 우직함이 전영중의 장점이지만 적어도 지금 성준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준수가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반지가 걸린 목줄을 꺼낸다. 반지를 단단히 잡은 손에 전영중이 입매를 굳힌다.

"하지마."

나지막한 애원에도 뚝, 금속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목에 걸려 있던 사슬이 흘러내린다. 군번줄 끊어지는 소리 같아서 싫어. 언젠가 전영중이 몸서리치며 했던 말이다.

"갖고 있어."

"성준수."

"헤어지자는 거 아냐. 돌아올 테니 목걸이 고쳐놓고 기다려. 이렇게라도 약속해놔야 내 마음이 편해."

준수야. 주먹 쥔 손을 벌려 기어코 반지를 얹는다. 끊어진 화이트골드의 줄이 길게 늘어졌다. 몸에 닿아있던 얇은 체인은 아직 미지근했다.

손가락을 감아 다시 오므린 성준수가 두 팔을 벌렸다.

"안아줘."

"......넌, 진짜, 나쁜 새끼야."

"멀쩡히 다녀올게."

"그건 당연하고."

가두듯이 몸을 끌어안는다. 아무리 벌크업해도 저보다 작은 몸이다. 이렇게 가녀려서 어떡하지. 특전사까지 나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기겁할 게 분명하지만 전영중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대로 안 놔줘서 비행기를 놓쳐버리면....... 그러나 5초가 지나자마자 저를 밀어내는 절대적인 척력에 맥없이 떨어진다.

성준수를 붙잡을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였다.

"기상호?"

대뜸 창문을 열고 묻는 말에 얼굴을 와락 구긴다. 기상호는 전데요. 손을 들자 남자가 아! 하더니 덧붙인다.

"그럼 그쪽이 성준수구나?"

"뭘 알고 나온 거야, 아니면 모르고 나온 거야?"

"병찬 형이랑 같이 일하는 이초원이다. 형이 잘생긴 애가 기상호, 성질 더럽게 생긴 애가 대가리라길래."

푸흡. 지금 웃는 새끼는 안 봐도 공태성이다. 성준수는 대답하지 않고 미니밴에 올랐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래. 숙소 가서 얘기해. 키는 객실 냉장고 위에 있고, 수건은 하루 한 번씩 바꿔줄 거야. 다 쓴 건 화장실 앞 바구니에 내놓고."

"같이 일한다는 게 에어비앤비야?"

"그건 아닌데 겸사겸사 관리 중. 집 지하는 내려가지 말고, 억지로 열려고도 하지 마."

무슨 소리인지 알지? 이초원이 덧붙이는 말에 불법적인 무언가가 거기 있구나 짐작한다. '나중에 함 털어봐야겠네.' 물론 곱게 말을 들을 사람들도 아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내내 이초원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관광 가이드처럼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니 주요 관광지니 하는 말들에 성준수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왜 이렇게 말이 많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얘 진짜 우리가 관광하러 온 걸로 알고있나?

"......모레 저녁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이동 예정이고, 장비는 현지 조달이지만 일부는 들고 갈 거야. 듣고 있어?"

"......뭐?"

"듣고 있다. 계속 말해라."

지나친 수다에 성준수가 정신을 놓친 사이 진재유가 대답했다. 진재유는 눈을 감고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낸다.

"병찬 형이 대략 계획을 잡아놨으니까 저녁에 만나서 작전 확인하고 정보 공유하자고."

"알았다."

"저기 보이는 게 숙소. 정면으로 가면 해안공원이고, 이 길 따라 쭉 내려가면 혁명광장. 광장 지나쳐서 더 가면 횡단열차 탈 역도 나와."

이 새끼는 브로커가 아니라 진짜 관광 가이드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걸어서 얼마 안 걸리니까 심심하면....... 볼 사람이 성준수밖에 없는데도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며 설명하던 녀석이 숙소 바로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손이 날렵하게 기어를 후진으로 바꾼다. "숙여!" 이초원이 악셀을 밟는 것과 동시에 성준수가 외친다. 엔진이 굉음을 내고, 쾅! 주택 단지 입구에서 불꽃이 솟구쳤다. 방금까지 차가 있던 곳에 건물 잔해가 포탄처럼 튕겨져나왔다.

후진하던 차가 뒤차를 들이박고 멈췄다. 서로 다른 자동차 경보음이 엇박자로 울린다. 정희찬과 기상호의 머리를 눌러 보호한 진재유가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내보냈다. 맨 뒷자리에 앉은 공태성과 김다은이 무사히 걸어 나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에어백을 치우고 나오는 성준수를 본다.

"다친 덴 없나?"

"멀쩡해. 맨 뒷자리는? 다리 안 구겨졌어?"

"저희도 괜찮습니다."

이초원은? 저쪽도 멀쩡한 모습으로 내려서서 이마를 짚는다. 시발. 충격에 경련하는 손으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어딘가 전화를 건다. 들이박힌 차에서 덩치 큰 남성이 큰소리치며 내리고 이초원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거들떠보지도 않고 담배를 빨갛게 태우던 녀석이 퉤 뱉기 무섭게 폴더폰을 쥔 그대로 얼굴을 때려 덩치를 한 방에 쓰러트렸다.

"нахрен заткнуться!"

뭐라는 거야? 몰라요. 러시아어 아냐? 아무튼 욕일 듯. 그 사이 팀장과 부팀장이 눈빛을 주고받는다.

재유, 이거 네가 짠 거 아니지?

내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아니면 브라츠크 놈들이지. 그렇게 결론 낸 두 사람이 몰래 피스트범프를 한다. 이 일로 박병찬이 바짝 약이 오를 테니 아무튼 잘된 일이다. 그 와중에 기상호는 리뷰로 남길 말을 생각한다. 주인아저씨가 캠프파이어를 화끈하게 해줘요. 개추.

집도 잃고 차도 잃은 일곱 명은 8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해는 일찌감치 저물고 한밤처럼 어두웠다. 새로운 숙소에서 만난 박병찬은 아니나 다를까 빡쳐있다. 별말 없이 방을 내주는 걸 보면 8시까지 뺑이 돌리면서 테러가 브라츠크 놈들의 짓인지, 성준수들의 짓인지 뒷조사를 하고 있던 게 틀림없다.

그의 소굴에서 지낸다는 불안한 상황에 박병찬의 분노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면서 오히려 성준수는 안전해졌다. 브라츠크 놈들의 멍청한 짓에 고마움마저 느끼고 있으니.

물론 성준수와 박병찬의 공적이 생긴 것과 일을 하는 것은 별개다. 성준수는 여전히 박병찬과 더럽게 안 맞았고, 작전의 세세한 부분마다 다퉜다. 준수 전역해서 다행이다. 남아서 영관급 임관했으면 작전 조져놓고 남의 인생 꼴박았겠는데? 이미 인생 꼴박은 새끼한테 그딴 말 듣고 싶지 않은데요? 중재는 진재유와 이초원의 몫이었다. 두 사람은 직접 의견 내는 거 금지. 이초원이 엄숙하게 선언한다.

밤늦게부터 새벽까지 회의하고, 잠깐 눈 붙이고 다시 회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바로 회의. 휴식은 기차에서나 하자는 생각으로 릴레이 회의를 하다 피곤함에 절어 예민해진 박병찬과 성준수가 또 핏대를 세우며 싸우는 통에 강제로 1시간 휴식이 주어졌다. 이초원에게서 담배 한 대를 빌려온 성준수가 카페에 앉아 필터만 질겅질겅 씹었다.

박병찬은 존나, 말이 안 통한다. 고집은 더럽게 세고 굽힐 줄을 모른다. 제가 필드를 뛰었으면 얼마나 뛰었다고 전역한 지 한참 된 범죄자 새끼가 작전 운운이지? 그러는 본인도 작전 참여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은 고집불통이라는 소릴 듣기에 에이, 하고 애먼 머리만 턴다.

지긋지긋한 회의자료를 테이블 위로 아무렇게나 던진다. 성준수와 박병찬이 싸우는 부분은 결국 어느 쪽이 더 리스크를 감당하느냐다. 당연히 제게 딸린 새끼들을 더 안전하게 두고 싶지.

이럴 때는 꼭 한국에 두고 온 애인이 고팠다. 해달란 적도 없는데 '에구, 힘들었겠당' 하고 어울리지 않게 어미를 둥글게 말며 저를 꼭 끌어안던 녀석이. 벌써 기울어지는 해를 보며 뭐 어떡하냐 싶다. 매정하게 군 건 자신이니 보고 싶다고 먼저 전화할 수도 없는데.

서버가 쟁반을 들고 와 제 앞에 내려놓으며 입에 물린 담배를 가져간다. 뭐야? 불도 안 붙였는데. 불만스럽게 쳐다봐도 불친절한 러시아인은 돌아보지 않고 주방으로 돌아간다. 까만 플라스틱 쟁반 위에는 성준수가 주문한 따듯한 아메리카노와, 주문한 적 없는 핫 치킨샌드위치가 놓여있었다. 진짜 뭐야? 추파야?

찡그리며 샌드위치 아래 놓인 메시지 카드를 읽은 성준수가 피식 웃고는 종이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천천히 샌드위치를 다 먹고 서류 봉투 위에 팁을 올리고 맨손으로 자리를 떠난다. 짧게 친 단발을 머리띠로 넘긴 손님이 가게를 나서며 팁을 쟁반 위에 올리고 서류 봉투를 가지고 나간다.

Bon Appétit

- Gim Dong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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