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but the candy

종뱅. 종수병찬. 프로종수x대딩병찬. 화이트데이 기념 조각글.

3월도 중순에 들어섰지만, 올해는 좀처럼 기온이 오르지 않는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금방 싸늘해지고 만다.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내내 비어 있던 원룸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아침나절에 잠깐만 햇빛이 들고 마는 방이니 건물벽조차 데워질 틈이 없었을 것이다.

종수는 사 온 물건을 냉장고에 넣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벽 한쪽 이단 행거에 걸린 옷들을 보니 엉망이다. 무거운 겨울옷들만 가득히 나와 있다. 주말 경기를 마친 후에는 짬을 내서 겨울옷 일부를 정리해 치우고 봄옷들을 좀 꺼내야 할 것 같다.

좁은 원룸의 침대에 앉아 있으니 찬 공기에 어깨가 금방 식었다. 종수는 일어나 보일러를 틀고 벽장에서 검은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무릎 담요를 꺼내 어깨에 둘렀다. 다시 침대에 올라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금방 눈이 무거워졌다. 경기를 뛰고 온 피로에 지쳐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벽에 기대어 깜빡 졸았다.

현관 쪽에서 전자음이 울리자 잠은 순식간에 물러났다. 독특한 리듬으로 누르는 도어락 비밀번호 해제 음이다. 고개를 들자 찬 밤공기에 어깨를 움츠린 병찬이 현관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병찬이 환하게 웃었다.

“오 쫑수. 오늘 올 줄 몰랐는데. 너희팀 경기 이겼더라.”

“응. 좀 고전했지만. 너 왜 그렇게 얇게 입고 다녀?”

“아침에 햇빛이 좋길래 오늘은 별로 안 추울 줄 알았지.”

대학 농구팀에서 늦게까지 훈련을 한 후에 샤워하고 돌아온 병찬의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취방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층 더 춥게 느껴졌을 것이다. 병찬이 옷을 갈아입고 손발을 씻고 돌아오자, 종수는 어깨를 덮고 있던 무릎 담요를 그에게 걸쳐주었다. 담요를 바짝 여며주는 손끝에 아직 싸늘한 기운이 남은 머리카락이 감겼다. 괜스레 그 머리칼을 꼭 쥐었다 놓는다. 병찬이 킥킥 웃었다.

“네가 집주인 같다. 남의 자취방에서 내 옷 입고 내 침대에 앉아있다가 담요까지 내주고.”

“그게 뭐. 그럼 안 돼?”

“아니, 어쩐지 그냥 웃겨서. 좋은데. 담요도 따뜻하게 덥혀 놓고 좋다.”

병찬은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담요를 여미고 아이고 소리를 내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U리그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대학팀 훈련이 꽤 고된 모양이다. 종수가 그 곁에 앉자 병찬이 발로 종수의 다리를 집적였다.

“너도 경기 뛰고 와서 피곤하겠다. 경기 없는 날 오지 그랬어?”

“오늘 경기 끝나고 포토타임 때 들었는데, 화이트데이라길래.”

“그렇긴 하지.”

“알고 있었어?”

“며칠 전부터 학교 여자애들이 얘기하길래 알았지. 그래서 형아한테 사탕 받고 싶어서 왔어?”

“주려고.”

“흠.”

병찬은 미묘하게 눈썹을 비틀며 웃었다. 종수는 말을 이었다.

“냉장고에 넣어 놨어. 냉동실에.”

“냉동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병찬이 곧장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음틀 외에는 비어 있던 냉동실에서 투게더와 호두마루 아이스크림 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 병찬을 바라보며 종수가 말했다.

“너 사탕 잘 먹지도 않잖아. 그래서 대신에….”

돌아보는 병찬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히 개화해 있었다. 무심코 따라 웃고 싶어질 만큼 환하다. 호두마루 통을 꺼내든 병찬이 냉장고를 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지금 바로 먹어야지. 종수 너도 먹을래?”

“난 됐어.”

밥숟가락을 입에 물고 돌아온 병찬이 다시 침대에 앉았다. 아이스크림 통을 열고 봉해진 비닐 필름을 뜯으며 말한다. 숟가락을 물고 있어 불분명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종수 너, 예전에는 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하면 서울을 횡단해서 무슨 유명한 젤라토 전문점에서 사 오더니.”

“너 그런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잖아.”

“맞아. 이젠 잘 아네.”

병찬이 또 웃었다. 웃음의 박자에 맞춰 입에 물린 숟가락이 흔들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평이 좋은 최고의 것들을 찾고 선물하는 일은 즐거웠었다. 노력과 시간을 들인 자신이 꽤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실망할 때도 있었다.

이제 최종수는 박병찬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이나마 안다.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알게 되는 만큼, 더 커질 수 없다고 생각한 박병찬을 위한 마음속 자리가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 것이 즐겁다. 더 많이 알고 더 자주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고 싶다.

호두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떠 넣은 병찬이 입을 우물거리며 종수를 돌아보았다.

“종수야. 너도 냉장고 가 봐.”

“왜?”

“냉장실 열어봐.”

그 말만 남기고 병찬은 다시 아이스크림에 숟가락을 꽂아 넣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종수는 느릿느릿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반찬통 사이에서 비닐봉지로 감싼 하얀 종이 박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투명한 비닐을 통해 상자에 새겨진 로고가 비쳐 보인다. 비닐을 벗기기도 전에 무언지 알 수 있었다.

“박병찬. 이거 휘낭시에야?”

숟가락을 입에 문 병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전에 그거 어머님이 주셨다며 들고 왔었잖아. 먹을 때 보니 진짜 좋아하는 것 같길래 어제 짬 내서 백화점 가서 사다 놨지. 오늘 올 줄 몰라서 내일에나 주게 될 줄 알았지만.”

이번에는 냉장고 앞에 선 종수가 환하게 웃을 차례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아하는 것을 선물 받는다는 것. 좋아하는 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는, 딱 그만큼의 기쁨이 되돌아온다.

종수는 휘낭시에 세트가 담긴 상자를 가져와 병찬이 앉은 침대 곁에 앉았다. 상자를 열고 황금빛 갈색 과자를 꺼내 끄트머리를 살짝 베어 물었다. 캐러멜 맛과 함께 아몬드의 고소한 풍미가 입 안 가득 번졌다.

“며칠 전에 학교 여자애들이랑 새로 생긴 카페에 갔었는데 말야. 거기도 휘낭시에 팔길래 종수 네 생각이 나더라. 근데 나는 거기서 먹은… 뭐더라. 마들렌? 그 과자 맛있더라고.”

병찬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학교에서 나눈 대화며, 농구부에서 있었던 소동, 학교 근처에 새로 가본 식당이며 카페 따위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종수는 휘낭시에를 조금씩 베어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박병찬을 기분 좋게 만든 일들, 박병찬이 좋아하는 것들이 버터와 아몬드 향에 섞여 최종수의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렇게 최종수의 세계는 오늘 또 한층 확장되어 간다. 그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소중한 것들로. 넓어진 세상은 휘낭시에의 달콤함만큼 행복으로 차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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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Everything but the girl의 그룹명에서 따왔습니다. 딱히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투게더, 호두마루, 휘낭시에는 그냥 제가 지금 먹고 싶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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