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뱅]과일향 로션과 하트 눈

종뱅 조각글

※ 공백포함 1,300자

※ 더 안 쓸 것 같아서


“내가 너 안 미워하고 좋아하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최종수와 나란히 누운 박병찬은 그런 말을 협박처럼 했다. 박병찬의 손가락이 최종수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최종수는 박병찬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서 헛웃었다. 어차피 박병찬의 검은 눈동자는 최종수를 보면 옅은 하트로 변했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하트였다. 벗겨지지 않은 콩깍지다. 최종수가 잘못 본 게 아니라 정말로. 최종수는 박병찬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박병찬은 최종수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다행씩이나? 뭐 얼마나 미워할 건데, 나를?”

“글쎄다. 생각을 안 해봐서. 지금 생각 좀 해볼게.”

“생각 다 하고 미워하게?”

“어.”

너 원래 싸가지 없어서 내가 예전에 쪼금 미워해본 적 있거든. 박병찬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최종수는 어깨만 으쓱하고 말 뿐이다. 박병찬의 말대로 예전의 일이다. 최근 박병찬의 눈에 최종수는 예쁜 구석 밖에 없다. 최종수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박병찬 쪽으로 몸을 말았다.

박병찬은 최종수가 한뼘 더 다가오는 게 좋았다. 박병찬의 눈에 최종수는 예쁘고 귀엽다. 운동 빡세게 하는 시커먼 남고생이 귀여워 보이면 이제 박병찬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최종수에게서는 방금 바른 바디로션의 은은한 과일향이 난다. 박병찬이 자취집 근처 마트에서 2+1으로 사둔 바디로션인데, 몸에 뭘 바르는 데에 관심이 덜한 박병찬보다 집에 놀러오는 최종수가 더 많이 쓰는 로션이다. 박병찬은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냄새에 최종수의 어깨를 덥썩 깨물고 싶다. 이로 깨물면 아파할 테니 그 대신에 다른 장난을 친다.

“종수야.”

“왜.”

“입 좀 벌려 봐.”

최종수의 얇게 벌린 입안으로 박병찬의 긴 손가락이 들어온다. 가운데 손가락이 최종수의 입천장의 오돌토돌한 부분을 천천히 문질렀다. 박병찬의 단단한 손끝에 최종수는 어깨에 소름이 돋았다. 비밀스러운 공간에 침범한 손가락이다. 간지러웠다. 최종수는 손길 닿으면 이파리를 접는 식물처럼 어깨를 조금씩 움츠린다.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박병찬은 눈이 둥글게 휘어져 웃는다. 콧노래를 부른다. 최종수도 아는 노래였다. 박병찬이 틀어놓고 샤워하는 그 노래. 벌어진 입안으로 서서히 침이 고인다. 흐르기 전에 삼키고 싶어진다. 최종수는 습, 숨을 마시고 말을 웅얼댄다. 그망 망혀. 박병찬은 킬킬 웃었다. 다시 봐도 박병찬의 눈동자는 하트다. 박병찬이 거울을 봐도 스스로는 못 보고 나란히 누운 최종수만 볼 수 있는 눈이다. 최종수는 입안에 들어와 입천장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박병찬은 또 답지 않게 엄살을 피웠다. 입천장을 살살 긁던 손가락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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