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시작

준탯 전력 주제 [첫눈, 목소리]

뜨거웠던 쌍용기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학교 측과 농구부 내의 변화도 맞지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입시 악귀에서 벗어난 성준수였다.

그리고 12월.

대학 수시 발표가 나온 준수와 재유는 이제 농구부 훈련을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게 되나. 같이 합숙 생활하는데. 전날 밤에는 오전 훈련 열심히 해라, 하면서도 막상 아침이 되면 같이 일어나 오전 훈련을 같이하고 있다. 이뿐이면 다행이려나. 본 훈련에도 참여해 같이 몸을 부대끼며 농구한다. 감독님이 안 해도 된다고 말해도 너무 쉬어도 안 좋다나 뭐라나.

그러나 태성이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쌍용기 이후 성준수랑 같이 있을 때면 너무 달라진 행동에 도망치기 일쑤였다. 입이 거친 것과 행동은 비슷하다. 근데 눈빛, 자신을 빤히 보는 눈빛! 그게 재유와 다른 동생들을 보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게다가 단둘이 있을 땐 늘상 보던 티비도 뭐 보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보고, 갑자기 옷 입으라고 하고 근처 카페 가서 커피를 사주지 않나, 또 맛있는 건 꼭 자신을 먼저 줬다. 그 행동에 소름 끼쳐서 한 번은 팔을 문지르며 물은 적이 있다.

'혹시 미치셨소, 저하? 와 그러는데. 평소처럼 해라, 평소처럼.'

'하..., 이 씨바거... 잘해줘도 지랄이네. 먹기 싫으면 버리던가, 빙시야.'

묻고 욕은 배로 처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준수는 자신을 몇 번이고 데리고 나와 맛있는 거 사주곤 했다. 빤히 보는 시선은 언제 어디서든 똑같았다. 이게 지금 12월까지 이어진 거다. 육하원칙에 따라 바뀐 것들을 찾아보려 했으나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서 막히고 만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태성은 낙서로 가득한 노트를 펼쳐 다시 한번 이유를 찾아본다.

- 누가: 성준수가

- 언제: 쌍용기 이후에

- 어디서: 같이 있는 모든 공간에서

- 무엇을: 나를

- 어떻게: 와 맹랑꼴리한 눈빛으로 보는데

- 왜: ...

이번에도 '왜'라는 물음에 그 어떤 글씨도 적지 못한 태성은 머리를 거칠게 털어낸다. 심지어 몇 번은 성준수한테 묻기도 했다.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그러나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잘 생각해 보라는 말. 사람 속 터져 죽이려는 건가.

'서울 아들은 말을 이래 빙빙 돌리나. 속 시원하게 말하면 뭐, 문제되는 기가. 아, 씨바. 이 햄은 존나 나랑 뭘 하고 싶은 건데!'

거칠게 노트를 덮고는 대충 책상 서랍에 쑤셔 넣었다. 때마침 수업 종료종이 울리고 태성은 복잡한 마음을 한 채로 농구화만 달랑 든 채 체육관으로 향한다. 아직은 아무도 없을 체육관에서 자유투 연습하면서 생각을 좀 비워낼 예정이었다.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 12월 24일이 되었다. 준수와 태성이의 생일날이었다.

태성이의 생일날은 평소와 비슷했다. 조금 다른 것이라면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한테서 생일 축하 문자를 받은 것과 농구부원들에게 선물 받은 게 다였다. 하지만 성준수는 달랐다.

'얼굴값 하는 기지, 곱상해가.' 태성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며 선물과 편지를 받는 성준수를 보았다. 다른 건 다 까내려도 얼굴만큼을 까낼 수 없는 성준수를. 괜히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깔끔하게 거절하는 성준수를 보고 있자면 슬 미간이 풀리는 게 참 이상하지.

농구부 훈련이 끝나고 감독님은 생일 축하 겸 크리스마스 축하를 위해 다 같이 회식을 제안했다. 고기 사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는 당연히 환호했다.

집게는 자연스럽게 태성과 감독님이 잡게 되었다. 준수와 재유는 감독님과 같이 자리에 앉아 대학 이야기와 자신이 보강해야 하는 것들을 위주로 이야기하고, 태성이 있는 쪽은 먹고 죽자, 분위기였다. 고기 굽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면 고기 굽는 사람은 죽어라 고기 구워줄 수밖에 없다. 아들부터 열심히 먹이고 있는 태성은 성준수의 목소리에 놀라 움찔 튀어 올랐다.

"야, 그만 굽고 먹어. 쟤들이 너가 안 구워주면 못 먹는 새끼들로 보여?"

툭, 태성의 팔뚝을 건드리고는 준수는 집게를 빼어 다은이에게 넘긴다. '이제 니들이 구워서 처먹어. 공태성이 니들 엄마냐?' 성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내려보니 아무것도 없던 앞접시에 잘 구워진 고기들이 놓여있었다. 누가 준 거지, 생각하기도 전에 재유 목소리가 들린다.

"그거 준수가 니 먹으라고 옮겨둔 기다. 태성이, 니도 이제 좀 묵어야지."

"아, 그걸 왜 말해."

"와, 말 안 하면 누가 알아주노. 챙겨준 게 부끄럽나?"

태성은 고개를 돌려 준수를 보았다. 귓바퀴가 약간 붉어진 채 투덜거리며 젓가락질하는 게 보인다. 그 순간 준수가 계속 생각해 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게 이 말이었던가. 괜히 머쓱해 목덜미를 매만진다.

"잘 먹을게요, 즌하."

휙, 태성을 보던 준수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도 다물었다. 어서 먹으라는 듯 가볍게 턱짓할 뿐이었지. 그렇게 알 수 없는 몽글함을 가진 채 회식이 끝났다. 감독님이 결제하는 걸 기다리는데 상호와 희찬이가 소리친다.

"어! 눈이다, 첫눈!"

"햄들아, 눈 온다!"

눈 볼 일이 거의 없는 부산에서 함박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상호와 희찬이는 냅다 달려 나가고 그 뒤를 재유와 다은이 쫓아간다. 태성은 준수의 손길에 따라가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준수는 감독님에게 먼저 간다고 말하고는 태성을 데리고 체육관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카페 들렀다 가자. 나온 김에 사줄게."

그 모습을 느린 걸음을 뒤쫓으며 듣던 태성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준수를 부른다. 누가 불러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준수는 태성의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시선을 맞춰온다. 저에게만 달랐던 시선, 행동. 누가 긁지만 않으면 대체로 무던한 성격임은 알게 되었지만, 오늘 재유가 말했듯 태성을 챙기는 준수의 행동은 그런 것과 결이 달랐다.

"햄. 나 좋아해요?"

가끔 한 번씩 불쑥 생각난 것이지만 아닐 거라고 부정했던, 그 말을 꺼낸다. 말을 꺼내고도 믿어지지 않아 외투 주머니 속에 넣은 손가락을 괜히 괴롭힌다. '저, 천하의 성준수가 나를 좋아한다꼬?' 너무 말이 되지 않아서.

"와요? 내를 좋아할 이유가 없는데..."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태성만 보던 준수가 움직인 건 이때였다. 매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화난 성준수의 모습으로.

딱 한 걸음을 앞두고 선 준수는 저보다 시선이 약간 높은 태성을 본다. 이리저리 피하는 시선을 보니 그냥 믿기 싫은가 보지? 좋게 대해준다고 해도 본질이 예민하고 사납다 보니 곱게 말한 적은 별로 없는 건 준수 본인도 잘 안다. 그렇다고 한들 헷갈리게 한 적은 없는데.

"태성아. 공태성."

준수의 목소리에 태성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본래 듣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무심한 어투지만 꼭... 꼭, 귀하게 들리는 제 이름에 본능적으로 귀를 감싼다.

"하, 씨바거. 그래도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건 생각했네. 이제 내가 말해야 믿겠어?"

귀를 감싸는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린 준수는 팔을 뻗어 태성의 목을 감싸 제 품으로 끌어온다. 외투 지퍼를 잠그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그리 두껍지 않은 맨투맨 하나가 제 심장 소리를 못 듣게 하진 않을 테니까. 태성에게 배운 다정이 다시 태성에게 가는 이 길목, 이 다정이 부디 너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태성아, 지금 첫눈도 오고 네 생일인데. 내가 고백하면 선물로 널 받을 수 있나?"

부드러운 태성의 머리칼 위로 얼굴을 묻으면서 자신도 있을 줄 몰랐던 애정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인다.

"좋아해, 그러니까 나랑 사귀어 주라."


처음 써본 2차 연성이네요.

별 볼일 없는 글솜씨로 써봤습니다. 이걸 발행하는 게 맞나 여러번 고민했지만... 발행해봅니다.

읽으신 분 모두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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