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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삼즈] 일엽지추(一葉知秋)

무협 au / 지삼즈 쁘띠존 Time Is Running Out 협력 원고

한동안 조용하던 지상파의 오전이 오랜만에 바삐 돌아다니는 소리로 분주했다.

“상호 니 어제 마당 쓴다 안 캤나? 하낫~도 안되어이꾸마.”

“아이다, 쫌 했다. 바람이 불어가 다 떨어진기다.”

“지랄. 바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어제 엄청시리 조용했는데.”

“헤헷.”

“공태성, 님은 가만히 서서 떠드는 대신 은행이나 마저 줍는 게 좋을 것임. 그렇지 않으면 니 다리를 걸거나 뒤통수를 쳐버릴건데 자빠지다가 코로 은행을 으깨버릴지도 모름.”

“줍고 있다! 니나 잘해라! 느려터진 게.”

오늘도 쥐꼬리만한 인원으로 허구헌날 유치한 말싸움을 해대는 지상파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어찌보면 한결같은 이 분위기에 평화를 느끼는 자신의 모순점을 외면하며 희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땐 평화를 즐기며 조용히 맡은 일을 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터득한지는 오래다.

하지만 마당을 거의 다 쓸어가는 상황에서도 유치한 말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아직도 저러고들 앉았나. 징하다 징해.’

결국 분위기 환기는 늘 그렇듯 희찬의 몫이 되었고, 그는 능숙하게 티격대는 태성과 다은의 사이를 지나 상호에게 다가겄다.

“마, 상호.”

“와.”

“사형들 언제 도착하신다캤지?”

과연 ‘사형들’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서로를 어떻게 하면 더 하찮은 말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태성과 다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호는 기억을 더듬느라 바빴지만.

“글쎄, 어느 길로 오실랑가에 따라 다르겠다만 지금쯤 아마…….”

***

“점심쯤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무리야. 나 너만큼 경공이 안 되니까 천천히 좀 가.”

“아 맞나. 미안타. 근데…….”

“?”

“니 내보다 못한게 경공뿐이 없지는 않을낀데?”

“……진재유. 열받게 하네?”

“하하, 농담도 몬하나.”

오늘은 지상파 삼대제자 중 가장 맏이인 준수와 재유가 몇개월 간의 협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떠날 땐 봄철이라 여기저기 꽃이 피어 알록달록했는데 이젠 벌써 쌀쌀한 바람과 함께 산길에도 단풍물이 들어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물론 준수와 재유 둘 다 이런 풍류나 낭만에 감흥을 크게 느끼는 유형도, 그렇다 해도 입밖으로 꺼내는 성격은 아닌지라 단풍 구경과 쏜살같은 시간에 대한 감회는 각자 속으로 느껴야 했지만. 그렇게 단풍 구경을 하다가 준수와 속도를 맞춰 경공을 펼치던 재유가 갑자기 의아해하며 물었다.

“근데 올때랑 길이 좀 달라진거 같은데, 맞나.”

두 사람은 나무가 우거진 가파른 산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협행을 위해 산문을 나서던 때에는 완만한 언덕이나 숲, 꽃이 핀 들판 정도면 모를까, 이 정도의 산길을 온 적은 없었다. 길을 안내한 장본인인 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여기가 지름길이야.”

“맞나.”

“어.”

재유가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준수의 한쪽 입꼬리도 소리없이 씰룩거렸다. 엷은 미소를 지은 둘의 시선은 여전히 길의 끝자락, 산꼭대기를 향해 있었지만 시야는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위에서 까만 형상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들이 시커먼 무리를 이룬채 위협적으로 버티고 선 것을 확인했듬에도, 여전한 속도로 산을 넘는 둘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준수 니……. 일부러 일로 왔구마.”

산의 주인이 등장했음에도 산을 넘는 속도를 줄일 기세가 전혀 없자, 채주로 보이는 거대한 철퇴를 든 거구와 그 옆에 눈이 찢어진 칼잡이가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칼잡이는 어울리지 않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기를 내려놓으라며 사자후를 내질렀지만, 두 사람은 마치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대화와 걸음을 이어갔다.

“왜, 쫄려?”

“하.”

속이 빤히 보이는 도발에 재유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준수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다. 한편 산채의 도적들은 그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자 욕설을 내뱉으며 도끼와 갈퀴를 비롯해 각양각색의 무기를 꺼내어 쥐기 시작했다. 재유와 준수도 이제는 검을 완전히 뽑아들었다.

“내 싸돌아다니고, 비무하고, 오는길에 수로채까지 박살내뿐걸로 부족했나?”

“너 같으면 안 부족하겠냐? 그래놓고.”

“뭐를 그래놨는데.”

이새끼들이! 죽여버려! 명령이 떨어지고, 놈들이 산아래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한 손에 검을 쥐고 있던 준수는 재빠르게 반대쪽 손으로 제 허리춤을 더듬는가 싶더니 지체없이 암기를 날렸다. 억!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놈들 두셋이 쓰러지고, 바로 뒤따르던 놈들은 쓰러진 그들에게 걸려넘어져 볼썽사나운 덩어리가 된채 비탈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것들을 가볍게 뛰어넘어 피한 준수가 숨소리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이어서 항변했다.

“매번 니가 더 많이 잡았잖아.”

“하이고마… 그거 가지고 여태 꽁해있나. 니도 참 어지간하다. 근데…….”

재유가 진각을 밟고는 화살처럼 산적들 사이로 신형을 쏘았다. 대형이란게 없는 놈들답게 갑자기 자신들의 한가운데로 파고 드니 몰려오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목표를 잃은 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재유의 푸른 도복은 언뜻언뜻 보일때마다 산적들을 돌절구마냥 썰어버리고 있었다. 가공할 속도로 사라졌다 나타나며 적들을 픽픽 쓰러뜨리는 그 모습을 보며 준수가 미간을 팍 구겼다.

“하, 시발 저게 무슨 인간이냐…….”

혀를 내두른 준수는 이내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한 놈씩 베어나가며 재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난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야겠다.”

“마음대로 해라.”

“그러니까 재유, 저건 건드리지마.”

“알긋다.”

준수가 턱짓한 곳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한 채주가 육중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겉에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철퇴는 몹시도 무시무시해보였지만, 그것을 앞에 둔 준수와 재유의 어조는 꼭 장터에서 먼저 온 손님이 물건을 선점하는 것만 같았다. 새파랗게 어린 정파 놈들이 자신을 두고 나누는 대화에 채주는 잔뜩 노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소리를 쳤다.

“웬놈들이 남의 구역에서 통행세를 내라는데 겁도 없이 칼을 들고 설치는 게냐!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재유. 나 말한다.”

“언제는 내 허락받고 말했었나. 하던대로 해라.”

“이놈들이 그래도!”

또다시 무시를 당한 채주가 준수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씩 웃은 준수는 철퇴를 피해 몸을 빼고 검을 고쳐쥐더니 그를 향해 겨누며 여상하게 말했다.

“지상파 삼대제자 성준수, 저쪽은 진재유.”

제멋대로 무기를 휘두르는 산적들이 별안간 멈칫하더니 이내 술렁였다. 거봐 내말이 맞다고 했잖아! 아니, 하지만 진재유는 9척장신이라고 했는데……. 따위의 웅성거림이 들려오자 재유의 낯빛이 일순 스산해졌다.

“마, 니들. 점마 말이 무슨 뜻인지 아나.”

“? 뭐라는거야?”

“검 뽑아들고 다 죽여버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이랑 문파를 알려준다, 이거는…….”

철퍽, 윽. 말하는 도중에 뒤에서 기습하려고 드는 놈의 목에 보지도 않은 채 칼을 쑤셨다 뽑아내며 재유가 말을 이어나갔다.

“따악, 한놈만 살려준다는기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재유가 말을 맺었다. 볼에는 방금 전 절명한 기습자의 피를 묻힌 채 웃는 얼굴이었다. 준수 역시 악귀처럼 웃었다.

“그럼 어디 마지막 한 놈이 될 수 있게 노력들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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