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 Visage off
얼굴 주목하지 말아요
그림타임은 올해 데뷔 7주년을 맞는 5인조 보이그룹으로, 리더 겸 보컬 병찬, 보컬 신우, 래퍼 준수, 댄서 영중, 댄서 종수 구성이었다. 그룹명은 사람들에게 그림 같은 시간을 선사하겠다는 의미로 작명되었지만 세간에서는 그 파급력으로 ‘남돌계의 태풍’이라는 그림과 거리가 먼 느낌의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그런 그림타임도 레트로 열풍에 따른 현대적 아이돌의 열세화라는 흐름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소속사 24엔터테인먼트는 아예 멀티 엔터테이너 양성으로 주요 사업을 바꾸려고 했다. 소속사 최고의 인기 연예인들인 그들이 그 첫 타자로 발탁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영화 촬영이요?”
“어. 연자이 감독님 알지? 그분이 신작 낸대.”
이번에 준수에게 들어온 일도 피처링 제안 등 가요계 일이 아닌 영화 「크로스」의 주연이었다. 그에게 소식을 전달한 병찬도 출연하기로 한 영화였다.
“우리 아체대 나갔을 때 모습을 인상 깊게 보셨대.”
“근데 저도 캐스팅한대요?”
병찬의 말로는 올 봄 그림타임이 참가한 예능 프로그램 ‘아이돌 체육대회’, 일명 아체대에서 멤버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이 깊은 인상을 준 듯했다. 하지만 병찬은 아체대 중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축구를 좋아한다고 밝혔으니 그렇다 쳐도 준수는 테니스를 좋아한다고 밝혔기에, 준수 본인 생각에 좀 의아한 선정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병찬은 준수가 캐스팅된 이유를 숨기려는 것 같았다. 준수는 배우나 예능 섭외를 거절하지 말라는 소속사의 지침을 떠올렸고 더 묻지 않기로 하며 대본 초안을 펼쳤다. 그가 멀티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결국 회사에 소속된 입장이었다. 그것은 병찬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주인공 역이 누구냐…, 상호?”
“상호요?”
“기상호 배우님 말이야. 내가 얘기 안 했었나?”
기상호의 이름은 유명했다. 천상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5년 전 단역으로 데뷔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다가 드라마 「삼 형제 삼재」에서 주인공 중 한 명으로서 호평받는 열연을 펼친 성장형 배우. 그 드라마의 막내 스태프가 병찬의 친구여서 병찬이 잠깐 얼굴을 비췄는데, 촬영장에서 기상호와 친해진 모양이었다.
“상호가 나온다면 재미있겠어.”
“그분 사이코 연기 전문 아니에요? 안 맞을 것 같은데.”
“애가 연기만 그랬지 순한 애였어.”
「삼 형제 삼재」 전까지 기상호는 주로 악역 측 인물을 연기했다. 싸이코 기질이 다분한 두뇌파 혹은 참모로, 한 드라마에서 자기 주인인 메인 빌런의 귀에 생기 없는 눈으로 속삭이는 장면 때문에 ‘뱀상호’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삼 형제 삼재」에서도 ‘착한 녀석이기는 한데 똘끼 좀 있는 막내’로서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그러고 보니 준수는 좋아하는 배우 있었나?”
“글쎄요. 친한 배우라면 있겠지만, 좋아하는 배우는…”
“그래.”
병찬은 살짝 아쉽다는 듯 입을 다물고 대본에 다시 집중했다. 준수의 눈은 방금 전부터 대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림타임의 병찬입니다.”
“준수입니다.”
「크로스」 촬영장에서 준수는 병찬을 따라 부지런히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림타임은 멤버 전원이 독보적인 미인들로 유명했고 그들을 본 스태프들은 전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사를 나눌 때마다 사진과 영상이 실물보다 못하다는 흔해 빠진 멘트들이 따라왔다.
“상호 안녕~”
“병찬햄.”
이내 병찬은 기상호에게 향했다. 기상호는 의자에 앉은 채 대본을 읽어보고 있었다. 듣기로 기상호는 병찬보다 5살 연하, 즉 준수보다는 3살 연하일 터였으나 대본의 장을 넘기는 모습은 거친 물살에 깎인 계곡의 암석처럼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기에, 준수는 병찬이 말을 걸자 부드럽게 풀어지는 기상호의 얼굴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인사해, 우리 막내라인 클수.”
“네?”
“형.”
“준수.”
그림타임의 멤버 간 케미 중 하나는 막내라인, 12월생인 준수와 종수였다. 일명 수수조. 크리스마스이브 생일과 연말 생일이라서 클수, 말수라고 부르는 팬들이 있었다. 살짝 어리숙한 면이 있는 종수를 똑 부러지는 준수가 챙겨주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그것은 대외용 이미지였다.
“안녕하세요, 그림타임 래퍼 준수입니다.”
“와, 와, 진짜로…”
기상호는 준수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대본으로 입을 가렸다. 내켜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어서 준수는 불쑥 솟는 반감을 눌러야 했다. 배우 입장에서 연기하는 아이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일 확률보다 부정적일 확률이 높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크흠, 기상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내 기상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준수는 그 손을 거절하지 않았고 손에 힘을 주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배우의 영역을 침해했다는 것을 다시 머릿속에 새겼다.
“야, 기상호.”
“선배님?”
그때 기상호의 뒤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후배가 선배 있는데 인사도 안 오고 말이야.”
“선배님이 늦게 오셔서…”
“뭐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준수 기준으로 밟다 만 일반 쓰레기 뭉치처럼 생긴 남자는 일찍 와 있었던 기상호에게 군기를 부렸다. 기상호는 대본을 의자에 두고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한 번 대꾸한 건 넘어가주겠다는 듯 사과를 받자마자 휙 뒤돌아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는 남자의 꼴이 준수의 눈에 더 못나게 비쳤다.
“누구야?”
“소속사 선배님이에요. 양형주라고…”
“평소에도 저따위로 굽니까?”
“어, 좀… 까칠하신 편이죠.”
빼어난 예능감으로 여러 예능에 불려다니며 여러 연예인과 인맥을 쌓은 병찬이 모르는 것을 보면 유명한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준수는 팬들을 향한 사랑으로 봉인해두는 나쁜 말 스위치를 켰다.
“가시는 게 좋겠어요.”
“그래, 상호. 이따 보자.”
병찬은 준수를 데리고 다른 배우들에게로 인사를 하러 갔다. 원래 면식이 있는 상호를 만나고 인사하러 갈 생각이기는 했다.
“상호 안 좋은 일 있나?”
“왜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병찬이 의문스러워하자 준수는 기상호를 돌아보았다. 기상호는 자기가 주눅든 적 있냐는 듯 처음 봤을 때의 차가운 바위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준수는 저것이 기분이 안 좋아서 생긴 모습이라고 해도 자신을 껄끄러워하는 것 같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크로스」의 배경은 약소 고등학교 축구부의 전국 고등부 리그 우승 신화였다. 리그 규정상 최소 인원인 18명을 가까스로 채웠지만 기존 2, 3학년 간 팀워크는 엉망진창인 상태. 다행히 새로운 감독과 팀부장, 1학년들을 통해 2, 3학년들도 열정을 되찾으며 천천히 우승을 향해 나아간다는 스포츠계의 기적의 정석 같은 이야기.
병찬은 주장 겸 3학년 MF, 준수는 2학년 FW 역이었고 기상호가 맡은 주인공은 1학년 FW였다.
“형, 여기 말인데요…”
“어, 응.”
그런데 기상호와 영화, 드라마로 자주 본 몇몇 얼굴들을 빼면 출연진 중 전문 배우는 많지 않아 보였다. 외모로 인한 색안경을 빼고 봐도 음악 방송 무대에서 본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전에 그림타임과 시비가 붙었던 얼굴들도 있어 준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준수는 자신이 캐스팅된 이유와 그것을 병찬이 숨긴 이유를 알아챘다.
얼굴.
자존심.
“예상은 했지만 이따위일 줄은 몰랐네요.”
연자이 감독은 돈에 미친 새X로 소문이 자자했다. 상업성을 잡고 작품성을 포기하는 부류. 준수는 자신의 얼굴이 아이돌로서의 인기에 한몫한다는 것은 인정하나, 딱 그 정도까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문 역할을 하러 온 축구 관계자들 ― 바탕이 된 실화의 주역들도 있었다 ― 이 출연진을 보고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땀과 눈물이 밴 추억을 정성스럽게 스크린에 담아주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준수 생각에 그들이 실망감을 표하지 않는 것에 감사해도 모자랐다.
“저 양형주라는 인간도 주연이고.”
“대본 안 봤어? 팀부장이었나…, 중요해 보이던데.”
“봤으니까 하는 말이죠.”
그렇게 중요한 역할에 저 싸가지를 넣어도 되냐는 의미를 병찬이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병찬은 오늘 준수의 나쁜 말 스위치가 단단히 켜졌음을 알았다. 본래 준수는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성격으로, 팬들에게는 쿨 계열로 안티들에게는 적정선 파괴범으로 통했다.
“이거 괜찮은 거예요?”
준수는 연기를 비롯한 가수 외 활동 경험이 많지 않았다. 이번 영화의 평가에 따라서 그가 멀티 엔터테이너 문턱에 다가갈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당사자는 멀티 엔터테이너에 관심 없지만, 한 번 맡은 일을 합당한 이유 없이 내팽개치는 인간은 아니었다. 이미 발 들인 촬영장, 그는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연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상호가 있지만, 어려워 보이네.”
병찬은 기상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기상호는 계속 대본을 읽고 있었다. 준수는 그 프로 정신을 보고 살짝 측은함을 느꼈다. 맹세하건대 자신은 아이돌로서 했던 노력을 연기에 쏟아붓겠지만, 자신의 존재가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꺾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해졌다.
“저는 열심히 할 거예요.”
준수는 선언했다.
그 순간 흰 종이 때문에 눈이 피로해졌는지 잠깐 고개를 들었던 기상호와 준수의 눈이 마주쳤고, 기상호는 준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 시선은 준수를 강렬하게 꿰뚫었다.
기상호, 준수, 병찬을 비롯해 선수 역할로 출연하는 사람들은 축구 관계자들 중 선수들과 면담을 가졌다.
기상호 배역의 모티브인 울산 현세 FW 심동혁, 병찬 배역의 모티브인 인천 브라더후드 FC MF 장민철, 준수 배역의 모티브인 수원 삼영 블루나이츠 FW 민재우 등이 당시 선수들의 생활과 갈등 및 봉합에 대해 설명하고, 대본상 등장하기로 되어 있는 기술들의 시범도 보였다.
“심동혁 선수님.”
“네, 기상호 배우님.”
“이 기술이 카메라 워크에 담기기는…”
기상호는 면담자들 중 가장 많이 질문한 인물이었다. 심동혁 선수는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기상호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옆에서 그의 고등학생 시절 동료 겸 선배였던 인물들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출연진 중 몇 안 되는 전문 배우, 작품성을 책임져 줄 인물의 관심은 기꺼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상호의 실제 성격이 어떻든지, 프로다운 것은 맞다.
선수들이 짚어주는 내용들을 아이패드로 기록하던 준수의 머릿속에서 기상호의 두 눈이 기분 나빴다는 인상이 지워졌다. 흐린 먹구름 같았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하는 모습은 물 위에 여러 색의 유성 물감 방울이 떨어져 퍼지는 것만큼 인상적이었다. 병찬은 준수를 힐끔 보고 형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 혼자 배우라고 깐깐하게 구네.”
“우리는 뭐 어차피 엑스트라인데.”
“애초에 18명 플러스알파에 서사를 어떻게 다 줘. 미친 거지.”
진짜 먹구름 낀 인간들은 따로 있었다. 그림타임에게도 시비를 걸더니 영화에도 시비를 걸려는 작자들. 영화 등장인물 전체에게 카메라를 공평하게 줄 수는 없다는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영화 촬영의 핵심이 되는 배우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델이 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꺼낼 말은 절대 아니었다.
“너희―”
“준수 씨.”
어차피 그들이 후배이기도 하고 준수의 팩트 폭력은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 유명한 바, 준수는 한 마디 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지만 기상호가 끼어들었다.
“동선 관련으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와 주실래요?”
“… 네.”
“그리고 현승 씨, 가범 씨, 시몬 씨, 질문하라고 마련한 자리니까, 크게 말하시는 게 어때요.”
기상호의 눈을 본 다른 그룹 멤버들의 입이 다 다물렸다. 그의 빛나던 눈동자가 그새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싸늘하게 내뱉는 언어는 강아지가 아니고 사냥개, 아니, 목줄 없는 야생 늑대의 오라를 발산했다. 싸이코 연기의 달인인 건 비단 실력만이 아닌 얼굴의 영향도 조금이나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기세였다.
준수는 문득, 자신이 기상호의 얼굴 때문에 편견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촬영은 별도의 기술 없이도 연출 가능한 기숙사 생활 파트부터 시작했다.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준수의 배역은 후배인 기상호의 배역을 잘 챙겨주었다. 쿨뷰티의 정석으로 불리는 준수의 이미지와 안 어울리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여서, 준수는 본인 생각에 제일 밝게 보일 만한 사인회 전용 미소를 재현하기 위해 손거울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며 얼굴을 주물렀다.
“컷!”
물론 연기 한 번 해 보지 않은 초짜가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 있는데 단번에 OK 사인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연자이 감독이 작품성을 개나 줘 버린 사람이라고 하지만 배우는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준수는 최선을 다해 연기하기로 다짐했다.
“잠시 쉬었다 합시다!”
스태프의 외침에 병찬과 준수는 땀을 닦으며 적당히 자리를 골랐다. 다른 아이돌들 사이에 끼는 것은 준수가 싫다고 했고 ― 사실 병찬도 선수들과의 면담에서의 일 때문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 배우들 사이에 끼자니 눈치가 보였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상호! 당연히 되지.”
“준수 씨는요?”
“저도 괜찮습니다.”
그때 옆으로 상호가 다가왔다. 병찬은 그를 반겼고 준수도 허락했다.
“무대보다 촬영장이 더 힘들다.”
“제가 무대에 서면 무대가 더 힘들다고 하겠죠?”
“그러려나?”
병찬은 기상호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준수는 자신도 기상호에게 스몰토크를 시도해도 되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는 배역상 촬영장에서 상호와 제일 많이 얼굴을 마주 볼 인물이었다. 그의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기상호의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리테이크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병찬아, 잠깐 이리 와 봐.”
“네!”
“형?”
“둘이 잘 얘기하고 있어 봐!”
그때 병찬의 매니저가 그를 불렀고, 병찬의 MBTI E스러운 멘트와 함께 준수는 기상호와 함께 남겨졌다. 준수가 멍한 시선으로 병찬의 뒷모습을 좇고 있을 때, 기상호가 먼저 준수에게 말을 걸었다.
“준수 씨.”
“네?”
“준수 씨, 연기 잘 하시던데요.”
뜻밖의 칭찬이었다. 본인의 연기력에 만족하지 못하던 준수로서는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 말.
“상호 씨가 잘 맞춰주신 덕분이죠.”
“태도도 성실하시고, 역시 그림타임 성실준.”
“저희 그룹 잘 아시나 보네요.”
“네?”
성실준은 그림타임 팬덤 내에서 유명한 별명이었다. 그림타임 멤버 전원이 성실한 생활로 유명하지만 준수는 래퍼 겸 프로듀서로서 Vlog에 자주 작사, 작곡하는 모습이 비춰진 데다 본명이 ‘성’준수였기 때문에 성실준이라는 별명이 고정되었다.
“어……”
“상호 씨?”
“준수, 상호! 잘 있었어?”
그런데 기상호는 자신이 무슨 말을 꺼냈는지 인지 못한 것 같았다. 기상호의 표정이 이상해지며 말이 무너졌고 준수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병찬이 돌아왔다.
“네! 잘 있었죠!”
기상호는 국어책 읽기를 시전했다. 준수는 기상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촬영 때 봬요.”
낮부터 시작했던 촬영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병찬과 준수, 그들의 전담 매니저도 로드 매니저가 끌고 온 밴으로 이동했다.
“어, 저거 상호 아냐?”
“?”
“둘이 어디 가는 거지?”
그때 기상호와 양주형이 어디로인가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 형, 같이 와 주세요.”
준수는 안 좋은 예감을 느끼고 전담 매니저를 동반한 채 그 둘의 뒤를 밟았다.
“야, 너 내가 우습냐? 왜 니 멋대로 데려가서 깝치는데. 어?”
“아는 분께 도움 좀 드린 게 잘못입니까?”
과연 양형주가 기상호를 또 괴롭히고 있었다. 양형주는 병찬 역 MF와 양형주 역 팀부장이 진로 문제로 대화하는 중요한 장면 촬영 때 일이 아니꼬운 듯했다. 병찬의 연기가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기상호가 병찬을 불러냈는데,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병찬은 다음 촬영에서 바로 OK 사인을 받아냈다.
“쟤네가 니 뒤라도 빨아줬냐?”
준수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저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X랄하네.
“선배님. 말씀 조심하십쇼.”
“니가 걔네 추천했다며. 꼴에 아이돌이랍시고 배우로 설치겠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감독님이 좋아하는 아이돌 여쭤보셔서 그분들이라고 한 겁니다.”
기상호도 한 번 반항하고 말았던 때와 달리 양형주에게 밀리지 않고 대응했다. 준수는 기상호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신과 병찬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태도를 보니 빈말인 것 같지 않았다.
“그것 말고 더 할 말 없으시면 가겠습니다.”
“야!”
기상호가 돌아서고 양형주가 주먹으로 치려는 순간, 준수는 잽싸게 뛰쳐나가 주먹을 쳐냈다.
“준수 씨!”
“준수야!”
“이 X끼가!”
“제가 기상호 씨에게 볼일이 있어서, 실례하겠습니다.”
이어서 기상호의 손을 잡고 병찬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달렸다. 매니저가 같이 왔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였다. 뒤에서 양형주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준수 씨, 이제 놓아주셔도 돼요.”
준수가 숨을 골랐을 때, 준수와 기상호는 병찬이 먼저 탄 밴 앞에 있었다. 뒤에서 준수의 전담 매니저가 바쁘게 따라왔다.
“상호―”
“큰일날 뻔했잖아요! 아이돌이 얼굴에 상처 나면 어쩌려고!”
기상호는 준수의 전담 매니저보다도 먼저 호들갑을 떨며 준수의 손과 얼굴을 살폈다. 배우도 아이돌 못지않게 얼굴이 중요할 텐데, 자신은 생각 안 하고 상대를 생각하는 모습에 준수는 기상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깔끔하게 다 털어냈다.
“제가 안 나섰으면 상호 씨가 다쳤을 텐데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벼, 병찬햄.”
“양형주 그 인간이 상호 씨를 때리려 했어요.”
병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병찬은 24엔터테인먼트 입사 및 그림타임 데뷔 전 폭력 사건에 휘말려 아이돌 생활이 끝장날 뻔했기에 폭력에 매우 민감했다. 기상호는 오늘 첫 만남부터 보여줬던 얼음장 같은 모습은 던져버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병찬과 준수 사이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상호. 준수가 구해주고.”
“네?”
“그, 그건……”
병찬의 말투는 ‘구해준’ 것이 아니고, ‘준수’가 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었다. 의아해한 준수는 기상호가 감독에게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신과 병찬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도 최애가 다칠 뻔했는데요!!”
결국 기상호는 자폭 버튼을 강타했다.
“이게 뭐예요…, 두 분이 이런 영화에 나와서, 준수 씨 다칠 뻔하고…”
그제야 준수는 기상호와의 첫 만남에서 그가 보인 태도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기상호는 병찬과 준수를 내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자신의 추천 때문에 둘이 이런 영화에 정말로 나오게 된 것이냐고 미안해했던 것이었다. 병찬이 기상호에게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추측한 것도 맞았다.
“그래, 그래, 차애 형아는 무사하니까 괜찮아.”
“미치겠다 진짜…”
“허.”
준수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룹 큰형의 놀림과 기상호의 좌절 쇼를 지켜보았다. 그림타임에서 자신과 병찬이 캐스팅된 근본적인 원인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상호 씨.”
“네?”
“폰 좀 주세요.”
기상호는 홀린 듯 준수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준수는 기상호의 휴대전화에 11자리 숫자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준수의 휴대전화 화면에 처음 보는 11자리 숫자가 떠올랐다.
“연락하고 지내요. 연예계에서도 자주 마주칠 텐데요.”
“와, 왐마야…”
“호칭도 고칩시다.”
기상호는 첫 만남 때처럼 또 입을 가렸다. 그러나 준수의 편견은 진작 다 벗겨졌고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 준수 형.”
“햄.”
“해, 햄이라고요!”
“싫어요?”
준수가 장난스럽게 묻자 기상호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준수햄!”
이내 그의 얼굴에 촬영 중 어떤 테이크에도 담기지 않았을 미소가 떠올랐다.
「[익명] ㅈㅅ랑 ㄱㅅㅎ 뭐임?
너네 크로스 비하인드 봤냐
나 GT 팬이라서 병찬이랑 준수 보러 갔는데 발연기 떡칠한 거 보고 눈물 ㅈㄴ 났거든 아 물론 병찬씨 준수씨 연기는 그저 갓
이번에 뜬 비하인드도 애들 얼굴 1초라도 더 보려고 봤는데
준수가 기상호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아
기상호가 영화 나온 배우 중 제일 연기 잘해서 호감이긴 했어
근데 우리 성실준씨가 수수조에서 7일 연상 똑쟁이 포지션이고 오빠미를 뿜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누구 챙겨주는 캐릭터는 아니잖아
내 10년 묵은 남돌 레이더가 말하고 있음 저건 비게퍼 레벨임
↳네 다음 알페서
↳↳아니 진짜라니까 보고 얘기해
↳준수 아최쿨미로 유명한 거 모르냐 아이돌 최고 쿨 미남임 쿨한 얼굴과 그런 성격
↳↳나 GT 팬이라고 그 아최쿨미가 그랬으니까 뭐냐고 한 거잖아
↳이거 보고 영상 보고 왔는데 진짜 붙어다니네;; 나의 준수는 그러지 않아
↳↳언제적 드립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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