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상] 敍情
되돌아온 마음으로부터
글을 잘 읽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그걸 일찍 깨달아버린 김다은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문학에서 깨달음은 성장이지만 현실에서 깨달음은 좌절인지라, 생각이 봄처럼 번성한다는 사춘기에 휘몰아친 장래라는 태풍은 무섭다는 가을의 그것이었다. 중2병, 고2병은 우스갯소리라지만 김다은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은 건 정말로 마음의 병이었다.
다행히 김다은은 천성이 적당히 단단한 사람이었다.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지만 적당히 단단하면 눕혀졌다가 나중에라도 설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잘 못 쓴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신 글을 잘 읽는 것만큼은 확실하니 창작에서 언어문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남들에게 오타쿠라고 불려도 상관없을 정도로 깊게 사랑하는 문학, 결정은 빨랐다.
“비평이란 어떤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분석하고 설명할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모든 활동으로…”
김다은은 괜찮은 성적으로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국어학은 재미없었지만 국문학이 재미있으니 괜찮았다. 작품 속 온갖 요소를 끄집어내 상징이라든지 알레고리라든지 이름 지으며 연구하는 게 좋았다. 김다은이 좋아하는 근현대문학보다 그 이전의 문학의 비중이 높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배운 것으로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상의 작품 중 1가지를 골라 비평문을 써 오시면 됩니다. 분량은 A4 기준으로…”
하지만 종종 입안이 텁텁해졌다.
비평도 문학의 일종으로 서정, 서사, 극, 교술 갈래로 분류할 때 교술에 포함된다. 김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을 연구해 쓴 문학.
그 좋아하는 문학―남들이 좋아하게 될 문학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김다은의 유튜브 추천 영상들은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영상이었다.
문학 오타쿠가 볼 만한 영상과 일본 미디어 오타쿠가 볼 만한 영상 중 어느 쪽이 많을지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애초에 김다은은 문학 관련 영상보다 일본 미디어 영상을 더 많이 봤다.
“뭐고, 이거?”
평탄했던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군대에 다녀오고, 2학년을 기다리는 1월, 유튜브는 김다은에게 ‘〈Sissy Sky〉-宮川愛李 일렉 기타 ver.’라는 영상을 추천했다. 섬네일은 하얀 바탕 위 청록색 일렉트릭 기타 하나. 업로더는 C.Shark.
단순한 섬네일에 처음 보는 업로더였지만 그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 엔딩곡 연주라는 것만으로도 김다은의 호기심은 크게 움직였다.
영상은 안경을 쓰고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소년이 섬네일의 원형인 듯한 청록색 일렉트릭 기타를 조율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진짜 조율하는 것인지 미리 해 놓고 시늉만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손을 뗀 소년이 만족스러운 듯 씩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이어서 별다른 멘트 없이 시작된 연주는―
“대단하다.”
육성으로 나온 감탄은 대단하다.
심상으로 떠오른 감탄은 사람의 목소리를 일렉트릭 기타 소리로 전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
영상 속 소년은 현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는 내내 웃고 있었고, 그날 김다은의 구독 채널 리스트에는 새로운 이름이 떠올랐다.
C.Shark는 채널 설명에 따르면 기타리스트 지망생이었다.
영상 제목들을 보니 김다은에게 익숙한 곡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 곡들 말고 일본 애니메이션 곡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을 일렉트릭 기타 버전으로 연주하고, 유명 록밴드 곡들을 연주해보기도 한다. 동영상 재생 목록에도 ‘어레인지’, ‘일반 연주’가 있었다.
어레인지 영상들을 쭉 본 결과, 김다은이 처음 본 영상에서 안경과 나비넥타이를 착용한 건 『명탐정 코난』 주인공을 따라했기 때문인 듯했다. 영상마다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들고 나왔다.
[3주 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부터 대학교 1학년, B.Shark(Baby Shark)는 C.Shark(Coral Shark)로 진화했습니다 크큭
앞으로도 모쪼록 저를 즐겁게 해 주시길 :9 ]
[2주 전
오늘은 제 생일!
Happy Birthday, 나!
(사진) ]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했다. 올해 B.Shark에서 C.Shark로 채널명을 바꿨다는 사실과 김다은보다 1살 아니면 2살 ― 생일이 1월이면 빠른 생일일 수 있으니까 ― 어리다는 정보도 알 수 있었다.
김다은은 그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딱, 구독자와 크리에이터 간의 거리.
“nn학번 실용음악과 기상호입니다.”
그 거리가 좁혀질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김다은은 대학교 1학년이 되고 얼마 안 지나 중앙 동아리 중 농구 동아리의 스카우트를 받았다.
공부 말고 운동에 한눈 팔 수 있었던 시절 축구를 했고,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상설 동아리 중 농구부 하겠다는 친구의 제안으로 같이 들었기에 대학교에서도 동아리에 든다면 운동 동아리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교 농구 동아리도 비슷했다. 대회에 나가는 일도 별로 없다는 점에서 그냥 길거리 농구 같았다. 때로는 농구보다 경기 몇 판 뛰고 즐기는 회식의 비중이 높은 것 같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김다은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사이다 등 다른 음료로 대체했는데 다들 팀 최장신인 김다은이 취하면 누가 데리고 가냐고 납득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동아리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2학년이 된 올해에도 그들과의 연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안녕하세요, nn학번 실용음악과 기상호입니다.”
C.Shark가 눈앞에 나타났다. 같은 대학교 같은 동아리, 신입생.
기상호가 C.Shark임을 알아본 건 농구 동아리 사람들 중 김다은뿐인 듯했다. 김다은이 눈이 동그래진 동안 다른 사람들은 기상호 키가 크다느니 팔 길어서 좋겠다느니 했다. 사실 김다은도 영상 속에서 밝게 웃던 모습이 아닌 감정 없는 얼굴을 보고 C.Shark가 맞는지 잠시 헷갈렸으므로 못 알아봐도 이상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근데 실용음악이 농구?”
“대학은 체력이 생명이라 캐서…”
“그건 그래.”
“체력이 약이지.”
C.Shark의 입부 동기는 단순했지만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김다은, 덩치만큼 체력도 많아 농구 2쿼터쯤은 풀로 뛰어도 끄떡없는데 대학교 과제 러시 때문에 침대에 눕자마자 꿈나라로 갔었다. 국어국문학과는 외워야 할 게 아주 많았다. 고등학교 때 배운 3쌍 대립 체계, 조음 방식, 조음 위치를 따위를 또 복습할 때면 수능 직전의 플래시백마저 느껴졌다.
이유가 어쨌든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를 가까이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팬으로서는 기쁜 일.
“nn학번 국어국문 김다은. 편하게 불러도 됨.”
김다은은 먼저 내적 친밀감을 철판 삼아 손을 내밀었다.
김다은의 바람―기상호와 친해지기는 쉬웠다.
“이 정돈가.”
“하나같이 쓰레기들뿐이군.”
기상호는 영상에서도 드러났지만 오타쿠였다. 김다은과 몇 마디 나누더니 동지가 생겼다고 좋아했고 김다은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둘이 2차원 한정으로 글로벌한 드립을 치며 붙어다니는 걸 보고 동아리 멤버들은 농구부 패트와 매트라고 명명했다. 김다은은 ‘김다’보다 ‘김매트’라고 불리는 일이 많아졌고 기상호는 ‘기패트’가 별명이 됐다.
“네? 햄 알고 있었어요?”
“ㅇㅇ 처음부터 알아봄.”
그래서 김다은은 자신이 C.Shark―기상호의 팬이라는 것도 쉽게 밝힐 수 있었다.
“헐, 저 고1 때 영상도 보셨네요?”
“코스프레 과해서 몰라볼 뻔했음.”
“흑역사 적시는 제네바협약에 의해 전쟁범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거리감은 멀어지지 않았다. 기상호는 그 딱딱한 인상과 달리 사람을 좋아했다. 팬과 크리에이터가 아닌 친한 형과 동생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와서 멀리 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김다은이 종강 동안 쌓은 시청 기록―기상호의 3년간의 영상들을 보며 이건 어땠고 저건 어땠다고 떠들었다.
“Baby는 아-기상호였을 거고, Coral은 상호, 산호임?”
“햄처럼 눈치 빠른 사람은 정말 싫어요.”
“아아, 이건 국.어.학.이라고 하는 거임.”
사소한 이야기도 종종 섞으니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아, 맞다, 햄. 이러려고 온 게 아니죠?”
“맞음. 님이 연주 들려준다고 했잖슴.”
“후후, 기대하시길.”
뒤늦게 기상호와 김다은은 자신들이 만난 목적을 다시 기억해냈다. 그들은 지금 학생회관의 한 연습실에 있었다. 기상호가 김다은에게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기상호는 혀로 입술을 슥 핥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렉트릭 기타를 꺼냈다. 방음 설비는 미리 점검했고, 앰프의 상태도 좋았다. 기타의 현들도 제 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님, 그게 뭐임?”
“아, 햄을 위해 준비했달까요.”
“왜 마시는 거임?”
기상호는 김다은을 위해 준비했다고 보온병 속 음료를 들이켰다.
그 의미는 몇 분 뒤 기상호가 기타를 들고 김다은이 많이 들어본 전주를 연주하다가 입을 열면서 알 수 있었다.
ギリギリ 崖の上を 行くように
フラフラ したっていいじゃないかよ
それでも 前に 行くしかないんだから
大丈夫 僕の場合は
〈ギリギリchop〉, 『명탐정 코난』 오프닝.
기상호는 기타뿐만 아니라 본인까지 악기로 써 연주를 선보였다. 부른 밴드가 자신들의 노래 중 제일 어렵다고 공언한 만큼 그 높은 음정을 완벽하게 따라잡진 못했지만 김다은같은 비전공자가 듣기엔 괜찮게 들렸다. 성대에 구애받지 않는 기타 연주는 정말 훌륭했다.
자연히 김다은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님, 노래 안 넣은 이유가 있음?”
“가사가 안 써짐?”
“네…….”
기상호가 노래는 넣지 않는 이유.
언젠가 자작곡을 발표할 때 자기 목소리를 밝히고 싶은데, 가사가 안 써진다.
“선율은 잘 나오거든요. 아, 반주도요.”
편곡 실력은 기상호의 재편곡 영상들로 증명되었고 작곡 실력은 기상호가 간단한 멜로디를 만들어 들려주는 걸 보니 존재는 확실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햄.”
“ㅇㅇ”
“국문과 시 배워요?”
김다은은 기상호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하긴 그 머리 좋은 교수님들도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을 합쳐야 하는지 따로 둬야 하는지 입씨름한다고 했다. 어문대도 아니고 예대 다니는 상호는 오죽하겠는가. 시 전공자들 중 몇몇이 작사가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글쓰기를 독학하면서 접한 정보였다. 지금은 시를 쓰는 게 아니고 연구하는 입장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배우는데, 쓰는 법을 배우진 않음.”
“그렇구나…”
네가 가사로 쓸 수 있을 만한 시를 써 주기는 힘들 것 같다.
기상호는 눈치 있게 화제를 다음에 공개할 애니메이션 주제가 어레인지 이야기로 바꿨다. 그러나 김다은의 마음에 인 파문은 조금 많이 컸다. 수능을 치고, 대학을 지원하고, 합격 통보를 받는 내내 잔잔했던 수면 위로 황혼까지 맺혀 있던 이슬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그 작은 소리가 기상호가 기타의 현을 조율할 때 낸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기숙사로 돌아온 김다은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노트 한 권을 폈다. 고등학교 2학년 종업식 때 본가의 방 책상 선반 끄트머리로 밀려났다가 2년 좀 넘는 시간을 거쳐 다시 열린 그것에는 샤프펜슬로 끄적인 문장들이 빼곡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거나 지워서 생긴 흔적도 엷은 잿빛으로 존재했다.
“서정은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내는 문학이다.”
김다은은 그 서정―시詩를 좋아했다.
노트 속 문장 몇 개를 구절로 바꾸고 잘 배치한다면 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사시는 아니고 서정시Lyric. 어쩌면 기상호가 바라는 가사Lyrics.
하지만 그걸 주기엔 마음에 차지 않았다.
형이 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줘도 되고 팬이 아티스트를 위하는 마음으로 줘도 되는데,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무 가볍다.”
김다은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지막으로 나간 백일장을 떠올렸다. 주제가 뭐였는지 무슨 내용의 시를 썼는지는 까먹었지만 그때 받은 상장은 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대상, 차상, 차하, 입선 중 제일 낮은 입선. 시상식이 끝나고 그는 살짝 울었다. 이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게 될 상장이 반,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깨달음이 반.
그래도 문학이 좋았다. 내가 못 쓴다 해도 남들이 잘 쓰는 걸 잘 읽을 줄 아니까.
“님은 Baby에서 진화했댔는데, 나는 Baby가 된 것 같음.”
김다은은 유튜브 시청 기록을 쓱 내려 기상호의 〈Sissy Sky〉 영상을 눌렀다.
그 영상을 본 날 책상 선반을 정리하고 몇 페이지 쓰지 않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는 색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제가 품은 문장들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새 문장을 적자, 놓아줬던 봄날이 돌아와 기웃거렸다. 다른 사람 찾아가라고 쫓아내도 되돌아왔다.
“어떻게 전해야 함?”
몇 번을 고쳐 써도 가벼운 마음으로 전하지 못할 글들이었다.
김다은은 자신의 고민을 섣부르게 남에게 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상호와 평소처럼 지냈다. 농구 동아리에서 공을 주고받거나 뺏고, 점심으로 학식을 먹을지 식당가 음식을 먹을지 고민했다. 기상호가 교양 과제 때문에 잉잉거리면 교수에 대한 불만을 들어주거나 팁을 줬다. 기상호도 김다은의 과제에 대한 불만을 들어줬다.
“햄은 지금 학과 어떻게 골랐어요?”
과제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하다 보면 나올 만한 질문이었다.
“문학이 좋아서 골랐음.”
김다은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새내기인 기상호와 달리 헌내기인 그는 전공 과제를 한참 쓰고 있었다.
“님은 어떻게 고름?”
“저도 뭐, 기타리스트 되고 싶어서 골랐죠.”
기상호는 펜을 한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 없음?”
김다은은 한 박자 늦게 고2 시절의 자아가 스며 나온 걸 알아차리고 기상호와 시선을 맞췄다.
아직도 그는 기상호에게 그의 문장을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용량이 정해져 있어, 과하게 담아두면 결국 새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없어 글 읽는 것으로 갔던 게 사실 포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문自問.
“많죠.”
기상호의 펜이 멈췄다.
코드는 잘 외워지는데 템포를 따라가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론에는 강한데 실전에 약한 경우, 그게 기상호였다. 연습밖에는 답이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청까지 포기하고 학원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만이 그의 곁에 남아 공간을 채웠다.
“한 번은 어레인지고 연주고 싹 삭제한 적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실력이 쌓였을 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용기를 익혀보려고 얼굴을 맞댈 필요 없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최근 영상 속 모습보다 과했던 코스프레도 맨얼굴을 완전히 드러내기엔 용기가 모자라 위장용으로 했던 거였다. 구독자가 500명을 넘어가자 자작곡을 지어보려고 했는데―
“가사가 안 써져서요.”
가사나 나오지 않았다.
기타 바디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여러 가사를 따라 부른 게 무색하게 자신만의 것을 짓는 능력이 없다. 솔로 기타리스트로서는 실격 사유였다. 다른 사람이 작사해 줄 수 있는 밴드 기타리스트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가능성의 수가 줄어드는 건 절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영상 띄우는 거 있죠.”
컴퓨터의 원본들은 휴지통에 박았지만 유튜브 영상들에는 손대지 않았다.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찾아봤던 각종 영상들이 떠올랐고,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해 보기로 했죠. 지을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를 마친 기상호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그 밝은 표정은 꽃이 지더라도 햇살은 계속 내리쬔다는 사실을 김다은에게 상기시켰다.
“님.”
“네?”
“아직도 가사 못 쓰고 있음?”
김다은은 글을 전하겠다는 마음이 가벼운 마음이 아님을 확신했다.
일렉트릭 기타 소리와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가 좋아해줬으면 하는 문학을 쓰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연애시, 좋아함?”
포기했더라도, 기회는 생길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다.
그걸 잡는 게 중요하다.
“좋아해요. 억수로.”
다시 잡은 봄날을 암시하는 단어는 상어와 산호, ‘기상호’였다.
소장용 결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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