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상] 종수 형에게.
종상 판타지 합작 제출작
종수 형에게.
마음 정했어요.
기상호가.
*
텔레포트 좌표가 적혀있는 마법서와 지도가 동봉되어있다. 판형에 찍은 뒤 물감으로 연하게 색칠된 엽서 뒤에는 짧은 편지가 적혀있다. 엽서는 마을의 전경을 나타낸 듯 돌로 지어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바닷가 마을인지 한쪽에는 짙푸른 바다가 그려져 있다. 도시는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
종수 형에게.
마을 이름은 팔러웨이래요. 왕국 최남단에 위치했다고 그렇게 지었다던데요. 제가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듯ㅎ. 마을 사람들 다 착하고 외지인도 잘 반겨줘요. 왜 이렇게 잘 대해주시냐고 물어봤는데 마법사 이주자는 처음이라카대요? 하기야 도시랑 거리도 되고 이짝은 항구도시가 아니라 어촌마을이니까 마법사가 신기할 수도 있겠네요. 몇 주쯤 지내니까 촌장님이 왕국 관청에다 요청해서 거주지 배정받을 수 있게 해놨대요. 이제 마을 회관 캠핑 안 해도 됨! 마을 회관에서 지내는 건 편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수선해가 편하게 쉴 수는 없더라고요. 종수 형은 방랑기사니까 발붙일 곳 없는 자들의 설움 따윈 모르겠죠. 도시수준은 바라지 않았는데 의외로 마을에 있을 건 다 있어서 편해요. 포목점도 있고 서점도 있고. 마을 어귀에는 포도밭도 있더래요. 촌장님한테 찔러보니까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그걸로 잼이랑 와인 만든대요. 저도 이제 이 마을 주민이 되었으니까 올해 수확 때 저도 가서 돕고 얻어갈 수 있음요. 종수형 오면 맛보라고 남겨둘게요. 형 언제 와요?
기상호가.
*
상호가 직접 그린 듯 보라색으로 칠해진 동그란 덩어리와 필기체로 마을 이름을 쓴 엽서가 동봉되어있다. 구석에는 ‘못 그린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마법사가 그림 못 그릴 수도 있지.’라고 적혀있다. 상호가 그린 것은 포도였나보다.
*
종수 형에게.
바닷가 마을이라 그런지 파도 소리가 듣기 좋더라고요. 쏴아, 쏴아, 거리는 게 자장가 같아요. 짐이 별로 없어가 대충 모포 덮고 잤는데 설치지도 않고 잘 잤어요. 근데 바닷바람은 짜고 습한 건 실환가.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카락에 소금 결정 맺어있고 모포는 짠 비린내가 났어요. 자고 일어나서 손바닥 까끌까끌한 거 보고 엄청 놀랐어요. 바닷바람 짠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이야. 마을 관청에서 왜 이런 집을 줬는지 알겠어요. 바닷바람을 아주 직통으로 처맞는 집이라 하도 안 나가서 던져준 거였어. 어쩐지 겁나 싸더라. 그치만 이 Magic The Specialist 기상호, 바닷바람을 막는 생활 마법이라면 식은 죽 먹기죠?
*
엽서의 절반이 불에 타고 그슬렸다. 다른 엽서도 비슷하게 숯검댕이 묻어있지만 적어도 불에 타진 않았다.
*
크윽, 생활 마법이란 대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고급스킬이었어요. 바닷바람 막으려다가 온 집안을 불태울 뻔했어요. 형 이거 읽고 비웃지 마세요. 저 머리카락도 태워서 뒤통수에 땜빵도 생겼어요. 집 창문에서 불이 튀어나오니까 마을 촌장님이랑 근처에서 물질하는 여사님들이 놀라서 오시더라고요. 마법 실패해서 그랬다카니까 막 측은한 눈빛으로 보는 거 있죠. 마치 종수 형이 텔레포트 좌표설정 실수해서 나뭇가지에 걸린 저를 보는 눈빛이었어요.
청소하고 나서 다시 수식 살펴보니까 글자 하나를 잘못 적어서 그런 거였어요. 다시 써보니까 잘 되더라고요. 이제 집에서 소금결정도 안 자라고 공기도 안 찝찝해요. 종수형도 우리 집 오면 털 뽀송뽀송하게 유지될 듯. 형 올 생각 없어요? 제가 다 준비했다니깐요. 형은 몸만 오세요.
*
묘하게 미끄러운 종이에는 집 사진이 새겨져 있다. 그림이 아닌 마법 도구로 찍은 것인지 집 뒤에 보이는 바다가 그림처럼 파도친다. 흰색 벽돌로 지어진 단층집은 동화 같다. 집 한쪽에 난 작은 밭은 막 갈았는지 갈색 흙이 포슬했다. 마법의 범위를 설정한 것인지 엉성한 나무 울타리가 밭과 집을 둘러서 쳐져 있다. 상호는 편한 셔츠차림으로 집 앞 빨간 우체통에 기대서서 웃고 있다.
*
종수 형에게.
밭일 쉽게 볼 게 아니에요. 근육통 때문에 펜 들 힘도 없었음. 종수 형 그동안 제 편지가 오지 않았다고 걱정했죠? 안 했다고 하기만 해봐요. 형한테 저주 걸 테니까. 밭에 뭐 심을까 했는데 종수 형 생각나서 오이 심었어요. 형 오이 싫어하잖아요. 나중에 오이 줄기 싹둑 베지 마세요. 쟤는 이제 제 아들내미니까요. 친한 동생 아들내미를 목 베어버리는 비정한 기사가 되고 싶으면 그러시던가요. 진짜로 그러면 형은 하루종일 오이만 먹어야 함.
밭이 넓어서 오이 말고도 캐모마일하고 고추, 후추, 민트도 심었어요. 종수 형 아직도 캐모마일 들어간 물 좋아하던가? 싫음 됐고요. 어차피 형한테 선택권은 없음.
하루종일 밭일하고 낚시하고 마을 장에 갔다 오니까 저. 과거에 큰 전공을 세우고 말년에 느지막한 일상을 즐기는 영웅이 된 거 같아요! 이건 짱일수밖에 없는 부분임. 형이랑 저는 실제로도 마왕을 해치운 영웅이니까요. 캬 기상호, 전설 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 형도 빨리 와서 그 전설 같은 삶에 마지막 조각이 되어주시죠. 형 없으니까 시골 생활이 점점 재미없어질라캐요. 평화가 왜 평화인 줄 아세요? 인생에 굴곡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어서 똑같은 하루를 보내서요. 모험 다닐 때는 그래도 도파민이 막 발산되고 피와 흥분이 난자하고 아무튼 3일에 한 번씩은 광란이 가득했잖아요.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심심한 건 어쩔 수 없어요. 형 우리 한창 여행 다닐 때 했던 약속 있잖아요. 나중에 같이 살아보자고. 형은 그 약속 지킬 생각은 있죠? 저만 오해하는 거 아니죠?
*
말린 향신료가 유리병에 가득 담겨있다. 알싸한 냄새를 보니 말린 고춧가루와 후추다. 헝겊으로 싼 주머니 안에는 흰 캐모마일 꽃이 곱게 말려서는 봉우리째 들어있다. 꽤 많이 챙긴 듯 주머니가 두툼하다. 주머니의 입구를 묶은 끝에는 종이 태그가 달려있다. ‘향이 좋아서 만들어봤어요. 딱히 종수 형 좋으라고 만든 거 아님!’
*
저주 풀기는 잘 되어가요? 형은 내색하는 편이 아니니까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안 해주지만요. 모험대에 있을 때도 ‘저주받아서 이렇게 됐다.’ 한 마디로 띡 설명하고 끝이었잖아요. 내는 그때 형이 기사가 아니라 흉악범이나 지명수배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무서워요? 시커멓고 집채만 한 호랑이가 사람을 눈빛으로 죽여버리더만. 저 그때 살해당하는 줄 알았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오해가 다 풀려서 다행이에요. 마왕 잡고 나서도 형 저 싫어했으면 제가 많이 울 뻔. 그리고 형 지갑에 불도 붙일 뻔.
안 그래서 다행이죠?
지금은 형이 저한테 왜 그랬는지 알아요. 종수형 술 진짜 약하드만 ㅋㅋㅋㅋ. 송별회 때 전갈폭탄주 한 잔 마시고 나가떨어진 거 다 봤어요. 술 마신 종수 형 많이 솔직하더래요? 그러고 나서 형이 잊으라고 저를 쥐 잡듯이 죽이려고 했지만 이 나이트 스토퍼 기상호. 형의 손에 쉽게 잡혀주지 않았답니다? 형 술 마시고 나서 저한테 싫지 않다고 이실직고한 마법 녹음기 지금도 갖고 있어요. 종수 형 목소리 듣고 싶을 때마다 들으려고요. 종수형은 싫어하겠지만 어쩌겠어요. 모험대 해체하기 전에 기념 영상이라도 만들어두자고 했었는데 혼자만 쏠랑 빠져버리고. 저한테 남은 종수형의 흔적이란 술 취한 종수형의 기상호가 괜찮은 이유 10가지 말하기 녹음기뿐이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러웨이로 오시던가요.
그리고 마법사의 저주 문제라면 저랑 같이 살아요. 종수형. 형 편하게 습기 차단 마법도 걸었고 여기 사람들도 순박해서 형한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요. 그리고 형 저주를 풀어줄지도 모르는 마법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종수 형은 마음을 더 터놓는 법 좀 배워봐요. 형네 친한 동생이 이렇게 구애하고 있는데.
기상호가.
*
종수의 얼굴을 그린 듯한 검은 덩어리 그림이 동봉되어있다. 괴발새발이라 그림인지 검은색 곰팡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
종수 형에게.
오늘따라 날이 아닌지 물고기는 못 잡았어요. 대신에 해변에서 종수형 닮은 소라고둥 발견해서 보내줄게요. 부수면 저 화낼거임.
기상호가.
*
삐죽거리는 소라고둥이 상자에 들어있다. 상자 겉면에는 ‘P.S-주둥이에 귀를 대면 파도 소리가 들린대요. 마을 애들이 가르쳐줬어요.’라고 적혀있다.
*
종수 형에게.
마을에 몬스터 습격이 있어서 한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했어요. 우리 종수 형 제 편지 그리웠죠? 위험한 놈은 아니었고 그냥 잘 보이는 고블린이었어요. 그래도 고블린은 무리 지어 다니는 놈이니까 혹시 몰라서 소탕하고 다녔어요. 혼자라 그런지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모험대 소속이었을 때보단 낫죠? 이제 이런 놈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잡을 수 있어요.
저 모험대 소속 초보 마법사였을 땐 비위도 약해가지고 종수 형이랑 버밀리온 누나가 사냥한 사슴 피 빼는 거 보고 토했었잖아요. 피비린내도 역하고 죽은 사슴 눈깔이랑 눈도 마주쳐서 겁나고. 종수 형이 저 토하는 거 보고 놀라서 달려왔던 건 의외였어요. 그때 종수형 얼굴만 보면 누가 다친 줄ㅋㅋㅋㅋ. 형은 수인이라 뭐 묻으면 닦아내는 것도 번거로워하잖아요. 형 달려와 준 건 스윗했어요. 아, 한바탕 토하고 나서 사슴 요리 잘 먹는 거 보고 저 또라이로 쳐다봤던 거 아직도 기억나네.
마법사가 무슨 비위가 약하냐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곱게 자랐거든요. 그리고 지상학파는 동물 피를 쓰는 마법은 연구하지 않았고. 저는 마법 하나 쓰겠다고 동물들 희생시키는 거 좋아하지도 않고.
아무튼!
종수 형 처음 만났을 때 저 극혐하는 거 보고 죽어도 이 사람이랑은 친구가 못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신기해요. 답도 없는 편지 계속 보내고 있잖아요. 모험대에 있을 때는 종수 형 골탕 먹이겠다고 털에 뭐 묻혀버리고 주머니에 귀뚜라미 넣고. 형은 몰랐겠죠. 그거 다 제가 한 거였어요. 형 틱틱댈 때마다 괜히 서러워서 형 괴롭혔어요. 아, 솔직히 형도 잘한 거 없잖아요. 맨날 나보고 야, 너, 개털. 이런 식으로만 부르고. 더러운 마법사. 너 따위는 안 믿어. 라고 상처 주고. 형이 사과 안 했으면 저주 날리고 튀었을 거에요.
겨울 바다가 추워요. 혼자 있으니까 형 생각이 나요. 편지 보면 답이라도 주던가요. 흥.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이 편지는 팔러웨이로부터 시작되어….
*
아래로는 의미 없는 미신과 주문으로 가득하다. 10장이 넘어간다. 한 자 한 자 꾹꾹 손으로 눌러 쓰여있다.
*
나 참, 이래도 답장 안 할 거죠?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내 감기 걸렸어요. 중간에 덥다고 이불 차고 자버려서. 종수 형은 수인이니까 감기 걸려본 적 없죠? 그래도 마을에서 사귀었던 친구가 조심하라고 스프랑 빵 갖다 줘서 그거 먹고 약 먹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착해요. 변방의 마법사 아프다고 이리 챙겨주고.
*
쓰다가 머뭇거렸는지 편지에 고인 잉크 웅덩이가 크다. 그 옆에는 확연히 작은 글씨가 적혀있다.
‘보고 싶어요.’
기상호가.
*
기상호.
멍청이.
.
*
종수 형에게.
형 양심 있어요? 몇 개월 만에 보내는 편지가 멍청이 이거뿐이에요? 그리고 밑에 온점은 편지 끝났다고 대충 찍어놓은 거예요? 와, 형 성의 봐라. 형 실망이에요.
기상호가.
*
상호는 급하게 편지를 보냈는지 글자가 날림이다.
*
기상호.
던전에 오래 있었던 거 가지고 유난이 심하잖아. 우리 모험대에 있었을 땐 1년 정도는 던전 탐사하고 나오지 않았나? 그리고 반년이면 평균이던데. 너만 모험가 관두고 요양 중인 거잖아. 나는 현역이라서 네 편지에 시시콜콜 답해줄 여유 없어. 천천히 보내던가 재촉하지 말던가. 아니 그냥 한 달에 한 번씩만 보내. 무슨 편지가 3시간 단위로 오냐.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네 편지로 오해하잖아. 애인한테 빨리 돌아가라고 동행했던 용병대한테 한 소리 들었어. 너 설마 일부러 이런 소리 듣게 하려고 이따위로 보낸 거야? 죽는다. 기상호.
.
*
종수 형에게.
그 반년 중에 절반은 다친 거 치료하느라고 그렇죠? 편지에 피 냄새가 나는데! 종수형 코는 속여도 제 코는 못 속여요. 던전 탐사 1년은 거기가 마왕성이라서 그런 거고요. 원래는 한 달에서 석 달이 정상이거든요? 그보다 더 오래 있으면 던전 마력 중독 걸려요. 종수 형 몸 튼튼하다고 던전에 살다시피 하면 큰일 나는 거 알죠? 이 기상호가 요양하고 있는 것도 던전 마력 중독 때문이잖아요. 형은 옆에서 다 봤으면서 왜 그런담? 편지 받았으면 빨리 집들이 와요. 그리고 3시간 단위는 무슨. 매일 매일 보낸 건데 종수 형이 던전 가느라고 우편 마법이 좌표 추적을 못 한 거잖아요. 우편 마법은 좌표 추적이 안 되면 추적이 될 때까지 대기하는 마법이거든요? 던전에 오래 있다 나오니까 뒤늦게 추적된 마법이 이동한 거고요. 결론은 종수 형 잘못이죠. 나는 잘못 없어요!
기상호가.
*
기상호.
그건 너니까 그런거고. 똥멍청아. 그리고 조금 베이기만 했지 크게 다치지도 않았어. 뭘 그리 오바하고 그래. 이게 무슨 내 잘못이란 거야. 모험가 한 두 번 해봐? 던전 들어가 있는 시간 다 계산해서 편지 보내는 건 상식이잖아. 인간적으로 상식에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라. 좀.
집들이는…. 시간 나면 갈게. 단서가 잡혔으니까.
.
*
“저래놓고 몇 년 동안 깜깜무소식인 거 아이가.”
상호는 지독하리만치 짧은 편지를 곱게 접었다. 종수가 보낸 편지는 상호가 보낸 것보다 현저히 짧았다. 상호는 그 적은 양이라도 곱게 보관할 심산인지 노란 벨벳 천으로 마감된 상자에 종이를 넣고 잠갔다.
마왕을 토벌하고 왕국의 치하를 받은 지 약 1년. 상호는 모험가로서 더 이상의 여정에는 의미가 없음을 직감하고 마왕 토벌 모험대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빨리 은퇴했다. 상호의 은퇴를 말린 사람들은 많았지만 상호의 의지는 굳었다. 세상을 더 돌아다니는 일은 즐겁지만 상호 스스로가 느끼기에 정착과 안정이 더 필요할 때라고 느꼈다. 상호와 같이 모험을 했던 팀원들은 그런 상호를 존중했다. 그러니까, 최종수만 빼고.
종수는 상호의 은퇴가 달갑지 않았다. 종수가 보기에 상호는 앞날이 창창한 마법사고 젊었으니까. 또 크게 장해를 가진 것도 없어서 모험에 애로사항도 없었다. 던전 마력 중독이야 며칠 마법 안 쓰고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낫는 잡병이다. 상호가 던전 마력 중독을 핑계로 댄 건 모험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피력인 거겠지. 종수는 안정을 추구하는 상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와 별개로 종수는 상호의 연락을 거절하지 않았다. 친한 동생이기도 하고 마법사는 다재다능해서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에도 편했으니까. 상호는 종수의 부탁이라면 대게 제일 먼저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상호가 종수의 부탁을 먼저 들어준 이유는 빤했다. ‘그러고 싶어서.’ 상호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다. 종수형 부탁이라면 와따 해줘야지. 암. 그런데 모험대 대원들은 상호의 태도에서 뭔가를 보았는지 상호가 종수의 부탁을 먼저 들어줄 때마다 속 다 보인다며 놀려댔다. 상호는 새침하게 대원들의 말을 무시했지만 내심 그도 알고있었다. 상호는 종수에게 인간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연애적인 매력도 느끼고 있었다.
상호의 생각을 들여다본 사람들 대부분은 상호의 취향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다니 제정신인가? 심지어 키도 덩치도 크고 털 색도 검어서 보기만 해도 기가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상호는 굳이 드러내고 다니지 않았지만 외면에 그리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다. 거죽이 사람 거죽이던 검은 호랑이 거죽이던 기상호의 관심은 겉면이 아닌 내면에 있었다. 성격적인 면에서 종수는 인기가 많다거나 하지 않지만 종수의 까끌한 성향이 상호에게 어떠한 자극을 주었다. 고약한 취향이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편지에서는 사기당했다고 우는 소리를 냈지만 바다가 가까운 만큼 집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흐릿하게 흰 하늘과 짙은 푸른빛의 바다는 자처럼 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환기가 끝났음에도 상호는 굳이 창을 닫지 않았다. 삭막한 집 안에서 유일한 색이 담긴 그림이었다. 이사 온 지는 몇 개월이 지났지만 정작 집 안은 사람이 며칠 묵은 것 같지도 않아 을씨년스러웠다. 상호는 집 안을 잘 꾸미는 편이 아니었다. 마법사답게 필요한 것만 집 안에 두기에 거실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장식해볼까?”
상호는 종수가 올 때 집 같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도 뭐든 사서 걸어놓기로 결심했다. 현관에 걸린 겨울 망토를 궤어입은 상호는 집 밖으로 나갔다. 마을 시장과 집의 거리는 멀기에 발을 빠르게 놀려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상호에게 호의적이다. 상호가 선한 마법사인 걸 사유로 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건 상호가 이들에게 솔직하게 대했고 근근히 이들의 부탁을 스스럼없이 들어주었다는 데에 있다. 마법사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 크든 작든 대가를 받아가는 족속이었다. 상호도 대가를 받아가긴 하나 통상적인 마법사들보단 양심적인 편이었다. 상호는 시장에서 아이들의 화관에 꽃을 피워주던가 하면 마차의 부러진 바큇살을 고쳐주었다. 시장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상호의 품은 대가로 얻어낸 음식과 감사의 의미로 준 생필품으로 가득했다. 상호는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며 입술을 쓱 혀로 핥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길은 무척 어두웠다. 상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다가 앞이 안 보이는 채로 가기를 포기하고 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고 나니 반딧불이 같은 빛덩어리가 상호의 주변을 비추었다. 상호는 그 빛을 따라갔다. 언덕배기 너머로 보이는 밤바다는 고요했고 그 위에 떠 있는 밤하늘은 별빛이 밝게 빛나 밤바다와 대비를 일으켰다. 상호는 그 온전한 자연을 보면서 자신이 은퇴했음을 실감했다.
집에 가까워지자 상호는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인영을 발견했다. 저만한 덩치의 인간은 마을 주민 중에 없었기에 상호는 누구인가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반딧불이 같은 빛덩어리는 순식간에 집 앞으로 날아갔다. 빛덩어리가 거대한 인영을 비추었다. 종수였다. 종수의 검은 털은 빛을 작게 반사했고 사슬갑옷은 작게 반짝거렸다. 상호는 종수인 걸 한눈에 알아보고는 짐을 내려두고 그에게 달려갔다.
“종수햄!!”
종수는 재빨리 달려오는 기상호를 발견하고는 노란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상호가 온 힘을 다해 종수에게 안기자 종수는 익숙하게 기상호를 받아냈다. 종수는 눈썹을 찡그렸다. 눈썹에 난 흰 털이 안테나처럼 움직였다. 상호는 종수의 표정이 어떻든 종수의 목털에 얼굴을 묻었다. 보고싶었으요. 상호가 종알거리자 종수는 상호의 등을 토닥였다. 종수도 편지로는 아닌 척했지만 상호가 보고 싶었다.
“편지 작작 보내. 니가 보내는 편지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잖아.”
“종수햄이 제대로 답장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거든요?”
“모험대도 나온 놈이 내 사정을 왜 몰라주냐? 탈리스만으로 생사만 확인하면 되었지.”
상호는 종수와 헤어지기 전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 탈리스만을 나눠 가졌다. 지금은 협탁에 처박혀있지만 상호는 무시하기로 했다. 상호는 종수에게 징징거렸다. 그거 가지고 되겠냐고요. 그리고 이거 봐요! 상호는 종수의 가죽 갑옷의 잠금을 풀고 들춰내었다. 들춰진 종수의 팔에는 붕대가 두껍게 감겨있었다. 제법 큰 상처였는지 약초의 쓴 냄새와 피 냄새가 났다. 종수는 상호의 손을 떼어내곤 다시 팔 갑옷의 잠금을 채웠다. 종수는 상호가 멋대로 열어본 게 짜증이 났는지 꼬리를 휙휙 휘둘렀다. 휘둘러진 꼬리는 문을 때렸다. 종수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짜증을 부렸지만 상호는 야무지게 말했다.
“내는 종수햄이 건강한지도 확인해봐야겠거든요. 근데 햄은 다른 추적 마법을 극혐하니까 탈리스만으로 합의 본 거고요.”
“내가 네 앞에서 옷이라도 갈아입어 준다. 그거 보고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마. 귀찮게.”
오솔길로 가서 다시 짐을 들고 온 상호는 종수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차가웠지만 상호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지팡이를 휘두르자 훈기가 점차 차올랐다. 종수는 상호가 알려준 대로 거실 한 켠에 갑옷을 벗고 한결 편한 차림으로 바꾸었다. 종수는 상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상호가 들고 온 것을 구경했다. 상호가 바구니에서 물건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때마다 종수는 이거는 왜 사 왔느냐, 저거는 왜 필요하냐 참견을 했다. 상호는 그게 또 싫지는 않은지 언제 다 썼다, 필요할 때가 생기지 않겠냐며 둥글게 대꾸했다. 상호는 수인의 부드러운 털이 뒷목을 간지럽히자 어깨춤을 췄다. 종수햄 간지러워요. 참아. 에이씨, 재채기도 나올 것 같은데. 그것도 참던가.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있음에도 굳이 몸을 떼어놓지 않았다.
달이 해안선에 걸쳐질 정도로 밤이 늦어지자 상호는 종수에게 침대를 권했다. 혼자 사는 집이라 침실에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상호는 저가 거실 소파에서 자면 된다며 담요를 챙겼지만 종수는 눈을 반만 뜨더니 상호의 팔을 잡았다. 같이 자. 보니까 침대도 넓던데 뭐하러 혼자서 자. 너 잘 때 추위 잘 타잖아. 상호는 낯이 간지러워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고개를 끄덕었다. 알았으요. 침대는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서 자기에는 좁았지만 한 몸처럼 붙어있으니 못 잘 것도 없었다. 종수는 털이 이불에 들러붙는 느낌이 싫은지 상호를 이불로 돌돌 말아서는 인형 껴안듯이 제 팔에 가두었다. 상호는 갑갑하다며 꿈지럭거렸지만 종수는 무시했다.
“종수햄 자요?”
“....”
“자는구나. 잘 자요.”
“...너도.”
종수는 긴 여행길이 피곤했는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충 대답하고는 꿈나라로 빠졌다. 상호는 눈을 말똥거리며 종수의 자는 얼굴을 구경했다. 시커먼 호랑이의 겉가죽을 쓴 종수는 자는 것도 꽤 무시무시했지만 들숨 날숨에 맞추어 수염이 쫑긋거려서 은근한 인간미를 보였다. 상호는 종수의 팔을 베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
금방 떠날 거라고 으름장을 냈던 최종수는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달리 며칠을 더 상호의 집에 머물렀다. 상호는 종수의 뜻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종수가 더 머물다 가기를 바랬다. 종수는 상호의 집에 머무는 내내 갑옷을 벗어 던진 셔츠 차림으로 다녔다. 상호가 밭일할 때는 테라스 의자에 앉아 구경하고 상호가 요리할 때는 옆에서 간을 보았다. 가사노동에는 손끝도 대지 않는 최종수에게 상호는 불만을 터뜨렸다. 종수햄은 안 도와요? 네 집인데 내가 왜? 종수햄 인성 보소. 상호는 그러면서도 종수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뭔가를 부탁하기에는 종수의 몸에서 나는 약초의 씁쓰름한 냄새가 거슬리도록 진했다. 상호는 집안일이 너무 고되면 종수의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종수는 제 꼬리를 누군가가 만지는 게 불쾌했지만 잡은 이가 상호이기에 별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종수햄. 낚시하러 가요.”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데.”
“거참 남의 집 안에서 하루종일 있으면 안 지루해요? 가자니까요~”
“알겠으니까 수염 잡아당기지 마!”
상호는 예전부터 편지로 떼 써왔던 낚시하러 가기 위해 종수의 볼을 잡았다. 종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상호는 낄낄거리며 의자와 낚싯대를 챙겼다. 두 사람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상호의 집은 마을보다는 바다가 더욱 가까웠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창을 가득 채우고 귀를 기울이면 파도 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풀이 죽어 생긴 오솔길을 걸어가면 해변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또 긴 해변이 펼쳐져 있다. 해변은 모래보단 조약돌이 더 많았다. 가까이서 본 바다는 아름답다기보단 초라했다. 조약돌 사이로 말라죽은 미역이 널려있는가 하면 한구석에는 낚싯배를 버렸는지 다 삭은 나뭇조각과 그물 덩어리가 한곳에 모여있었다. 조약돌 부딪치는 소리 가닥 거리면서 바다로 가면 흰 모래사장이 두 걸음 폭에 띠처럼 있었다. 바다는 거칠었고 누군가 빠져 죽을까 봐 나무 팻말로 ‘위험. 수영금지’가 그림으로 그려져 꽂혀있었다. 상호는 주변 동네 주민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서 인사했다. 주민들은 상호에게 인사해주다가도 종수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듯 가까이 가지 않았다. 종수가 상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자신은 괜찮으니 갔다 오라는 뜻이었다. 상호는 너스레를 떨며 그럴 필요 없다며 장담했다. 담에 또 인사하면 되죠. 종수와 상호는 가져온 나무 의자 위에 앉았다.
“종수햄 낚시 해본 적 없어요?”
“아니. 있어. 강에서 했는데.”
“그럼 이 강태공 기상호, 바다낚시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겠심다.”
상호는 신나서 종수에게 바다에서 낚싯대를 어떻게 드리우고 입질을 느끼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종수는 그 모습을 꼴 보기 싫어하기보단 무심하게 상호가 하는 걸 구경했다. 낚시는 조용한 사냥이었다. 종수는 의자 위에서 습기 차고 짠 바닷바람을 얼굴을 맞으며 제 옆에 앉은 상호의 얼굴을 구경했다. 몇 개월 만에 본 상호는 모험대에 있을 때 보다 훨 건강해 보였다. 긴 이동이나 밤샘 사냥으로 인한 피로감이 빠진 마법사 기상호는 딱 제 나이대의 남성으로 보이게 했다. 종수는 상호가 보여주려던 것이 안정으로 이루어진 평화인가 가늠했다. 종수가 떠올리기로 상호는 늘 평온을 원했다. 혼자는 외롭다고, 가능하면 누군가와 살 부대끼면서 서로의 존재로 지지받는 그런 인생이 좋다고. 종수는 상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 알면서 그것에 호응해주지 못했다. 종수도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기에 그리고 상호의 곁에 있어 주기엔 자신이 너무 부족해서였다.
바닷가를 뛰노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목도리와 외투를 껴입은 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서로 술래잡기를 하던가 하면 바닷가에 간간히 널려있는 조개나 반질거리는 조약돌을 주웠다. 아이들은 한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놀다 종수를 발견하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수인을 보는 게 처음인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종수의 꼬리와 귀를 구경했다. 종수는 구경거리가 된 자신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아이들을 무시했다.
“아저씨, 아저씨.”
“...왜.”
“아저씨는 원래부터 고양이 같았어요?”
“풉!”
호랑이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종수의 줄무늬를 보고 고양이로 오해했다. 상호는 아이들의 편견 없는 말에 숨을 터뜨렸다. 종수는 말없이 기상호를 응시했다. 상호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아이들의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종수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답해주었다. 아니. 아이들은 고개를 기울인다. 궁금한 건 그것뿐이었는지 이번에는 종수의 머리통을 가리킨다. 아저씨 귀 만져봐도 돼요? 종수는 거절했다. 애들은 편견이 없어서 다 좋지만 힘 조절할 줄은 몰라 귀나 꼬리를 내어주면 굉장히 아프게 잡아당길 때가 많았다. 애들은 아쉬워했지만 종수는 단호했다. 상호는 여전히 웃음이 가라앉지 않는지 종수의 뒤에서 고양이, 큭. 인간 고양이 최종수. 라고 중얼거리며 어깨춤을 들썩였다.
“린다! 아슬롯!”
아이들의 보호자로 보이는 마을 주민이 달려왔다. 종수의 외형을 보고 겁을 먹은 듯 보호자의 얼굴을 매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보호자를 보더니 이모! 라고 외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의 이모는 종수의 뒤에서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상호를 발견하고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종수를 힐끔 보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모는 아이들의 팔을 붙들며 혼내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함부로 다가가면 안 된다고 했잖니! 파도가 매섭게 치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이모가 하는 말은 선명하게 들렸다. 종수는 이방인이자 위험분자로 취급받는 것에 익숙했다. 수인은 그 수가 희귀했고 대부분 저주로 인해 생겨나는 족속이었으니 사람들의 경계를 받는 것도 당연했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마을 주민들이 종수를 보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종수는 자리를 피할까 싶어 낚싯대를 들었다. 그러자 상호가 종수의 손을 덮었다.
“햄 그러지 마요.”
“왜, 여기 사람들도 나 무서워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자리를 피해 주는 편이 좋잖아.”
“햄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걸요. 내가 한마디 따끔하게 할게요. 울 종수햄 안 위험하다. 착하다!”
“됐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종수는 말을 그렇게 했음에도 상호의 위로에 힘을 받는 걸 느꼈다. 종수는 배척당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상호가 해주는 배려가 은근히 고마웠다. 상호는 그 관찰력만큼이나 눈치도 빨라서는 종수도 알아채지 못한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해주기도 했다. 다시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은 입질을 기다리며 겨울 바다를 응시했다. 상호는 겨울바람이 춥다는 핑계로 종수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종수는 손톱을 숨기고 육구로 상호의 손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물건 찾는 건 잘 되어가요?”
종수는 어린 시절 ‘작은 사고’로 인간이 아닌 수인이 되었다. 종수가 나고 자란 도시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무역 요충지였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 들락날락하기도 쉬웠다. 종수의 부모님은 오래된 것을 사고파는 만물상이었다. 어린 종수에게는 위험한 가게라 부모님은 종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조심에 조심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부모님의 가게 근처에서 종이로 만든 칼을 가지고 놀던 종수에게 어떤 마법사가 다가온 날이었다. 마법사는 만물상점네 아들인 종수를 알아보고 그에게 물건을 하나 봐주겠냐고 부탁했다. 어린 종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흔쾌히 마법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종수는 마법이 걸린 상자를 의심 없이 열었고 상자의 안에 들어있던 저주는 종수를 덮쳤다.
한 바퀴 세상이 돌고 종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마법사는 상자를 들고 도망친 후였고 종수는 저주를 받아 수인이 된 뒤였다. 종수의 부모님은 그 사고를 자신들 탓이라 여겼지만 종수는 그 마법사가 잘못했음을 알고있었다. 그 뒤로 종수는 마법사를 믿은 적이 없었다. 자신이 끔찍한 저주를 대신 받도록 했으니까. 그것이 종수의 시야를 좁히게 만드는 짓이었지만 종수는 그 뒤로 받아온 배척과 가혹하게 짓누르는 허들 탓에 잘못된 편견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한 차례 상념에서 벗어난 종수는 상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던전에 있대. 그걸 부수면 난 사람이 되겠지.”
“미리 축하파티 해야 하는 거 아이가!”
상호는 제 일이 아닌데도 뛸 듯이 기뻐했다. 종수도 목을 가르릉거렸다.
*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야.”
“갑자기요?”
식탁에서 초를 켜놓고 조용히 저녁 식사를 하던 종수가 말을 꺼냈다. 상호는 종수가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종수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왜 그렇게 놀라? 금방 떠날 거라고 했잖아. 상호는 눈을 끔뻑거리며 떨떠름해 했다. 상호로서는 종수가 이렇게 일찍 떠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종수는 상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상호의 눈을 응시했다. 상호는 종수가 왜 갑자기 자신에게 왔는지 감히 잡혔다. 눈썹을 찡그린 상호는 종수의 소매를 잡았다.
“종수 햄. 아니죠?”
“....”
종수는 상호의 말에 정정해주지 않았다. 종수가 온 것은 상호가 보고 싶어서인 것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마지막을 최근의 것으로 기억해두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던전은 그 종류에 따라 위험도가 달랐다. 종수가 가고자 하는 곳은 마왕성 만큼이나 위험한 던전이었다. 생사를 보장하는 것조차 어려운 곳에 가는데 기약 없는 편지만 영영 보내고 미련하게 기다릴 기상호를 위해 온 것이었다.
“햄, 다시. 다시 생각해봐요. 목숨이 더 중해요.”
“나한테는 목숨보다 더 중요해.”
상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는 싫은 소리를 내다가 뒤로 넘어갔다. 조용한 집 안이 쿵쿵거리는 소음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상호는 다급하게 종수를 설득했다.
“겉가죽이 왜요. 그럼 제가 뭐라도 해서 종수햄 저주를 풀어드릴게요. 저랑 같이 있어요.”
“왕궁 마법사도 풀지 못한 저주를 네가?”
상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마왕을 토벌하고 그 상으로 왕국이 소원을 들어줄 때 종수는 해주를 원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했다. 왕정 마법사 여럿이 붙어서 종수의 저주를 풀어주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어째선지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나마 들었던 해답은 저주를 건 물건이 부서져야 풀리는 것이라고 했던가. 종수는 오랫동안 배척당했고 사람들 사이로 섞이지 못했다. 종수는 군중 사이가 그리웠고 또 아들 관리를 못 했다고 손가락질받는 부모님이 안타까웠다. 저주가 풀리고 인간으로 돌아가는 게 종수의 오랜 숙원이다.
상호도 이런 의중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영영 보지 못하는 게 더 괴로웠다. 종수는 상호의 팔을 잡고 매섭게 쏘아붙였다. 야, 착각하지 마 기상호. 나는 죽어서 인간이 된다고 하면 죽을 거고 너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돼서 인간이 된다고 하면 영원히 보지 않을 거야. 상호는 종수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고는 눈을 치켜떴다.
“그런 사람이 저한테는 왜 찾아왔는데요. 결국 다 지멋대로 할 거면서.”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종수의 인생에서 상호는 특이하고 특별했다. 마법사는 모두 적이었는데 상호만은 종수에게 적이 아니었고. 못 믿을 놈, 이상한 놈, 웃긴 놈, 동료를 거친 깊은 관계였다. 상호가 아니었다면 종수는 여전히 마법사를 신뢰하지 못했을 테고 모험대 안에서도 겉돌았을 테다. 종수에게 상호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방랑기사인 종수는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인연에 깊은 뜻을 지니지 않았지만 상호에게만은 깊은 마음을 품었다.
상호가 고개를 숙였다. 종수는 상호를 끌어안았다. 상호는 종수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상호도 종수가 어떤 마음으로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알아서 차마 더 말리지 못했다. 상호는 종수의 옆구리를 꼬집듯이 잡았다. 아파. 종수햄 같은 나쁜 남자는 더 아파야하는디. 내일 떠난다고 하니까 봐 드리께요. 종수는 굳이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일주일 전과 똑같이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상호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얼굴로 맞아가면서 종수의 품에 파고들었다. 상호가 곯아떨어지고 나서야 슬그머니 눈을 뜬 종수는 상호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넘겼다. 종수는 소리 없이 짐을 챙기고 상호의 집을 나갔다. 상호의 집이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질 때까지 종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종수 형에게.
형은 나쁜 놈이에요.
기상호가.
*
기상호.
미안.
.
*
종수 형에게.
오늘은 마을 축제가 있어서 애들이랑 같이 준비했어요. 마법 안 쓰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려니까 어렵대요. 애들이 만든 것보다 이상하고 허접해서 놀림받았어요. 종수 형이 보기에도 이거 이상해요? 저는 나름 호랑이 떠올리면서 만든건디.
*
괴발새발로 오려진 검은색 종이가 동봉되어있다.
*
이렇게 만든 종이는 줄에 달아서 길거리 장식하는 데 쓰여요. 밤에 등불이랑 같이 달아서 보면 예쁘더라고요. 종수 형 일주일만 더 있다 갔으면 봤을 텐데. 형은 운도 지지리 없네요.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마법사로 살면서 실험도 해봐야 할 거 같아서 작업실도 새로 꾸렸어요. 창고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역이었는데 마을 이장님이랑 친구들이 도와줘서 나름 괜찮게 지었어요. 아 이런 집 원래 마법사 말고는 아무도 들여보내 주면 안 되는데. 종수 형이라면 제가 허락할게요. 안에는 종수 형 좋아하는 캐모마일 방향제도 달아서 꽤 아늑해요. 실험 주제는 꽤 빨리 정했어요. 이 마법사 기상호. 시간 마법도 한 번 도전해봐야죠. 종수 형은 제 실험 보고 위험하다고 기함하겠지만 저도 나름 실력 있는 마법사예요. 걱정 마요.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편지가 좀 늦었죠? 제가 밤샘을 하느라고. ㅎㅎ….
실험은 잘 되어가는 것 같아요. 나름 목표치도 잡았고 표본 오차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종수 형 맨날 저보고 멍청하다 뭐라 하시는데 저 의외로 대단한 마법사거든요! 시간 마법이야 난해한 부분도 많고 연구하는데 품도 많이 들고 있지만 왕국에서 보상으로 받은 건 300년을 사치 부려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니까요. 종수 형은 방랑하면서 재미없게 사느라고 사치도 안 부리겠지만 이 기상호가 이해해줘야죠. 흥.
종수형은 어디에요? 던전에는 도착했어요? 아니면 아직 헤매고 있으려나. 던전 위치는 매번 바뀌니까 좌표 특정하는 것부터가 오래 걸리잖아요. 영 못 찾겠다 싶으면 그냥 돌아와요. 제발.
기상호가.
*
기상호.
못 찾긴 뭘 못 찾아. 지금 던전 위치 특정해서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넌 건강 생각하면서 연구해. 편지 보내는 간격이 뒤죽박죽이잖아. 건강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아?
.
*
종수 형에게.
오, 이번에는 빠른 답장. 내용은 안 착한 답장.
저번에는 편지 보내는 간격이 너무 짧다고 욕하시더니 지금은 편지 보내는 간격이 길다고 하시다니. 어느 장단에 제가 춤춰줘야 하나요. 형 던전 들어가기 전에는 편지 꼭 해줘요. 편지 보내는 마법은 반송이 안 되더라고요. 마법 유효시간이 될 때까지 형을 못 찾으면 편지는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이고. 내는 형이 받았나 못 받았나 전전긍긍하게 되어버리고. 형도 저랑 있었던 뜨거운 날들이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는 거 싫잖아요. 아니. 형은 독점욕 심하니까 딴 사람 귀에 들어가는 걸 더 좋아하려나?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시간 마법 하니까 우리 저번에 던전 함정 잘못 건드려서 한동안 어린애가 되었던 거 기억나요? 제가 그렇게 건들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했는데 종수 형이 막 건드려서 결국은 함정에 빠졌었잖아요. 진짜. 제가 순발력 발휘해서 함정 수식을 바꿨기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저희 꼬부랑 할아버지 돼서 던전 나왔어요. 종수형은 꼬부랑 할아버지 호랑이가 되어도 똑같이 거대하고 방랑기사 인간 태풍이었을 거 같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였다고요.
종수 형은 함정 해체할 때 제 말은 꼭 마음에 새기고 해체하세요. 그때 다시 떠올려도 살 떨리는 경험이었으니까요.
기상호가.
*
기상호.
그건 니가 막 만져대서 그런 거 아냐. 수식만 제대로 건드렸으면 우리 둘 다 함정에 걸릴 일은 없었어. 자기 잘못은 빼놓고 투덜거리는 것 봐.
.
*
종수 형에게.
그 함정은 수식만 건드린다고 해체가 되는 함정이 아니었다니깐요. 나 참.
오늘은 보부상이 와서 과소비 좀 했어요. 괜찮은 마법 도구를 많이 팔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마을에 있던 꼬맹이 하나가 마법에 재능을 보이길래 조금씩 가르쳐주고 있어요. 애 가르쳐주다 보니까 이현성 스승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오랜만에 스승님한테도 편지를 보내봤는데 곧 죽을 때 됐냐는 답장받았어요. 내가 그렇게 편지를 안 했나?
형도 나중에 돌아오면 여기서 검술 같은 걸 가르쳐줄 수도 있겠죠? 방랑기사래도 정식 기사단 출신이니까 형은 잘 가르칠 것 같아요. 그 전에 말부터 예쁘게 해야겠지만요.
기상호가.
*
종수 형에게.
편지가 많이 늦었죠? 실험하다가 작은 소란이 있었거든요. 그거 수습하느라고 편지 쓸 정신도 없었어요. 다음에는 더 빨리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마법 실험은 다 좋은데 한 번 사고가 나면 그거 수습하는 데 시간을 다 쓰게 된다니깐요. 마법 실험은 마법으로 수습하지 못한다니. 이게 무슨 궤변이람.
오늘 편지는 이만 줄일게요. 지금도 겨우 짬 낸 거라.
기상호가.
*
기상호.
너 다쳤냐? 종이에서 피 냄새가 나는데.
.
*
종수 형에게.
조금 배였어요. 금방 나아요. 저 답장하는 데 오래 걸릴 거 같아요. 형은 제 편지 기다리지 마세요.
기상호가.
*
편지의 글씨체가 뒤로 갈수록 개발새발이다.
최종수는 상호의 마지막 편지를 들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뒤로 상호의 편지는 열흘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종수는 처음으로 상호의 편지가 오지 않자 불안감을 느꼈다. 기상호도 최종수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뜻하지 않은 역지사지에 종수는 편지를 품 안에 쑤셔 넣고 기상호의 생사를 알려주는 탈리스만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탈리스만이 반짝이는 걸 보아하니 상호는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이봐, 종수. 네가 찾던 던전은 저기야.”
“잠깐만.”
종수는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구간을 목전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불현듯 몸 구석구석을 스미는 불안감이 종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방랑기사로서 오랫동안 세상을 떠돈 종수의 직감은 제법이 아니라 아주 좋은 축에 속했다. 이규와 동행하면서 찾은 던전은 무작위로 출현 좌표가 바뀌는 종류라서 지금 돌입하지 않으면 언제 또 발견하고 진입할 수 있을지 몰랐다. 장도 모험대의 단원들은 고민에 빠진 종수를 기다렸다.
종수는 던전의 입구를 보고 상호의 탈리스만을 보았다. 그냥 상호가 다른 추적 마법도 걸자고 했을 때 그러자고 할 걸 그랬나. 종수는 생사만 보여주는 쇠 장신구를 한 손으로 꾹 쥐었다. 지금 들어가면 또 얼마 뒤에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종수는 헤어지는 날 상호에게 상처를 주었던 게 뭇내 마음에 걸렸다.
‘보고 싶어요.’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한 기상호의 마음이 글로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종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난 여기서 빠질게.”
“정말로? 우리야 상관없지만. 반드시 가야 한다며.”
이규가 의아한 듯 종수에게 물었다. 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택은 얼마나 시간이 흐르던 되돌리지도 수습하지도 못할 것이다. 종수는 그 앞에서 자신의 숙원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두고 내색하지 않았고, 얄팍한 숨김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 거라 자부했건만 종수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다른 선택을 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상대가 차마 사랑을 입에 담지도 못한 사람이라니. 상호가 들었다고 최악의 연애 상대라 욕했을 것이다. 종수는 언젠가 돌아오고 싶다고 부수라고 건넸던 유리 막대를 들었다.
“기껏 몇 년 동안 같이 찾아줬는데 앞에서 취소해버렸군. 미안하다.”
“오랜 친구의 부탁이었는데 미안할 것까지야 있겠어. 작별이지?”
“작별이야.”
“잘 가.”
규는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종수를 배웅해주었다. 장도 모험대 대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종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규는 종수의 손에 들린 텔레포트 막대를 보고 방랑기사로서 더 이상 모험을 떠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오랜 친구인 두 사람은 긴말을 하지 않았더래도 서로를 귀신같이 알았다. 종수는 텔레포트 막대를 깨뜨렸다. 깨진 유리 막대의 단면에서 파도 같은 연기가 넘실댔다. 연기는 종수를 완전히 감쌌다. 종수는 연기와 같이 흩어졌다.
눈 앞을 가리던 연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종수는 바뀐 풍경을 통해 자신이 기상호의 집 앞으로 텔레포트 했음을 체감했다. 언덕배기의 돌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종수는 빠르게 달려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기상호!
상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리에는 붉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실험 실패로 인한 부상이었다. 종수는 상호를 안아 들고 침실로 데려갔다. 치료를 위해서였다. 침대에 눕힌 종수는 온갖 치료약을 뒤져 상호의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입에는 포션을 물려주었다. 창백했던 상호의 얼굴색이 천천히 돌아오자 종수는 상호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상호의 머리에 제 얼굴을 비볐다. 상호는 강한 압박감에 에구구, 거리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상호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놀란 얼굴로 종수의 얼굴을 더듬었다. 절대로 올 리가 없던 사람이 돌아와서 많이 얼떨떨했다. 상호는 숨을 헐떡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종수햄. 왜, 왜 온 거예요?”
“등신아. 편지를 그딴 식으로 보내니까 올 수밖에 없었잖아.”
“아니,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자주 놀러와서 괜찮았을 텐데.”
“바보냐. 미쳤어? 너 과다출혈로 골로 가기 직전이었어.”
종수는 상호가 실험하던 흔적을 보고서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 분에 겨운 짓을 하다가 재수 없게 휘말린 거겠지. 종수는 상호의 행동방식을 알았기에 제법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냈다. 종수는 상호의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놓지 않았다. 상호는 그게 어색한지 몸을 꼼지락거리다가도 종수의 목덜미에 귀를 대어 맥박을 느꼈다.
“햄 저주는 어떡해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면서요.”
“몰라. 근데, 니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전부 다 의미 없어졌어.”
“후회할 텐데.”
“상관없어. 전부 다…. 상관없어. 네가 있으면 그걸로 됐어.”
다른 제출작도 무척 재밌으니 한 번 들어가보쉐이~
당초 기력이슈로 달리 후기를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2달만에 한 번 써보려 합니다.
초반에는 여장공 요소를 넣어 공주종수X수인기사상호로 하려고 했으나 스토리 진행이 전혀 안되어 갈아엎고..
수인기사는 어떻게든 넣고 싶어서 뒤적거리다보니 수인 방랑 기사 최종수가 튀어나왔네요. 아쉬움 따윈 없습니다 재밌었으니까요.
무언가 사고로 모습이 바뀌게 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더라도 선택의 순간에서 염원보다 사랑을 택하는 게 아름답지 않나요.
돌이킬 수 없음에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