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the Love
7년 전
23.12.02 빵준온 무료배포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앰뷸런스 한 대가 본부로 들어온다. 소란에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으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 둥그렇게 앰뷸런스를 에워쌌다. 운전사가 사이렌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가이드! 치유 센티넬 들어가 주세요! 폭주 직전입니다! 시끄럽다는 듯 그가 있던 운전석이 뭉텅 사라져 버렸다. 운전사가 뒷걸음질 치다 주저앉는다. 흔적이 없는 능력인데도, 공간이 뒤틀려 사라져 버릴 듯 피부가 아팠다.
“시발, 센티넬 신경줄 터트릴 일 있어요? 사이렌 끄고 오라니까!”
물러나는 인파를 밀치며 성준수가 달려왔다. 언제나처럼 욕을 주워섬기며 앰뷸런스를 열어젖힌다. 헬기에 태웠다가 능력이 잘못 튀기라도 하면 그대로 추락사할 수도 있는 녀석이라 도로를 달려오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베드도 아니고 차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전영중의 얼굴을 잡아 제 쪽으로 돌린다.
“전영중. 입 벌려.”
“싫어.”
“이 씹……, 지랄 말고 입 벌려.”
“너랑은 안 해. 가이딩 거부할 거야.”
눈을 굳게 감은 녀석이 어금니를 씹으며 말하는 재주에 혀를 찬다. 우리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해 안저출혈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여전히 눈을 감고 키스할 수 없도록 얼굴을 이리저리 돌린다. 아무 사이도 아니기는 시발, 내가 니 담당인데. 성준수가 초조하게 전영중의 몸을 훑는다. 그런다고 내가 못 할 줄 알아? 성준수가 제 손끝을 씹어 으깬다.
“전영중 센티넬 담당 가이드 성준수, 점막접촉 가이딩 실행합니다.”
“싫……!”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넣는다. “아악! 미친 새끼야!” 전영중의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성준수가 가이딩을 진행한다. 점막접촉 가이딩의 요지는 피부 안쪽을 맞대 손실되는 가이딩의 최소화다. 약이라고 치면 복약 대신 혈관에 링거를 꽂는 것과 유사하다. 형태가 비슷하면 효율도 비슷하겠지. 상처가 헤집어지며 버석하게 말라비틀어져 있던 능력이 점점 차오른다. 성준수는 가이딩이 물길을 내어 깊은 구멍에 물을 채워 넣는 감각과 비슷하다 느꼈다. 거대한 싱크홀을 다 채우고 흘러넘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부분은? 몸 구석구석을 살피던 성준수의 몸이 거칠게 밀쳐진다.
“꺼져!”
전영중의 노성에 갈무리하지 못한 능력이 튀어 나가 차체 일부를 잘라낸다. 성준수의 옆으로 커다랗게 난 구멍에 전영중이 더 놀란 표정이었다. 지켜보던 이들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물론 성준수는 그 정도로 겁먹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낸다면 모를까.
“이 새끼가, 살려놨더니 적반하장이네?”
손끝이 피에 젖은 주먹이 가차 없이 얼굴을 후려친다. 그다음은 뭐, 혈기 넘치는 스물두 살끼리의 주먹다짐이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지만, 상처를 헤집고 가이딩하면 안 돼요. 가이딩 결핍으로 감각이 극대화된 센티넬이 쇼크사할 수도 있습니다.”
“네.”
“정당한 사유 없이 가이딩 거부해도 안 되고요.”
“저 가이드 교체 신청할게요.”
“지랄 마.”
“지금 가이드는 너무 폭력적이라 가이딩 못 받겠어요.”
“이 시발이?”
면전에서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고 매칭팀장이 한숨 쉰다. 각인까지 했던 페어인데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그렇다고 다른 가이드를 매칭해주자니 전영중도 성준수를 진심으로 꺼리는 기색은 아니었다. 현재 성준수가 담당하는 센티넬이 넷이다. 다른 센티넬을 가이딩할 때마다 뒤에서 형형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아직도 제 전담이던 시절처럼 독점하고 싶어 안달 나 있으면서.
이 어린 것들을 어쩌지. 이제는 멱살까지 틀어쥔 모양새에 매칭팀장이 다시 길게 한숨을 뱉는다. 볼펜 끝으로 책상을 두드려 두 사람의 시선을 모은다.
“가이드 교체는 못 합니다. 전영중 센티넬을 담당하겠다는 지원자가 없어요.”
“신입도 괜찮습니다.”
“S급 센티넬 가이딩을 초짜한테 맡기겠냐? 말이 되는 소릴 해.”
“너한테 말한 거 아냐.”
“두 사람은 대화로 원만하게 관계 회복하려는 시도 좀 해봐요. 내가 할 말은 끝. 이제 둘 다 나가.”
깔끔한 축객령으로 쫓겨나고 매정하게 문이 닫힌다. “좆같네.” “아, 시발.” 동시에 욕을 내뱉은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힌다.
“준수, 네가 좆같을 게 뭐 있어? 네가 폭주할뻔했어, 아니면 생살을 후벼 파였어? 진짜 좆같은 건 난데 왜 네가 좆같다는 소리를 하지?”
“지금 니가 좆같이 굴잖아. 야, 영중아. 찢어 죽이고 싶으니까 돌아버릴 거 같으면 진짜 돌기 전에 상담이라도 받아. 본부에 심리상담소 있는데 왜 안 받고 나한테 지랄이야?”
“내가 왜 받아? 나 완전 멀쩡한데? 찢어 죽일 수는 있어? 가이드 나부랭이가?”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됐다. 먼저 멱살을 잡은 전영중이 센티넬의 지나치게 좋은 신체능력을 의식해 멈칫한 사이 빠르게 어퍼, 훅, 스트레이트가 날아온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기도 전에 세 방 모두 신속하게 꽂히는 클린 펀치. 센티넬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 뇌만 흔들어 놓으면 보통 사람이랑 다를 게 없다. 턱을 맞고 넘어진 시점에서 전영중의 패배였다. 으직. 콧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전영중이 생각한다. 이, 시발 새끼, 작정했네…….
한 달 전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매칭팀장의 바람대로 아주 원만했다. 전담 가이드가 생기면서 전영중의 능력은 안정화됐고, 성준수가 꼼꼼하게 능력 사용 페이스를 체크하며 가이딩했다. 가이딩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붙어있고, 싸워서 눈도 안 마주치는 날조차 손은 잡고 다녔으니 덕분에 전영중의 컨디션은 늘 최상이었다.
다만 한국 사회는 어디에서나 정신적 충격에 둔감했다. 전영중은 이전의 각인한 S급 센티넬이 그리하였듯 자신의 폭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제 계획을 들었다. 말이 구제지……. 자료화면을 보는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꽉 쥔 주먹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성준수가 그의 손을 감쌌다.
“현재 사용방식과 이전 능력 제어가 안 됐던 케이스를 바탕으로 예측한 폭주 시 능력 사용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인식형과, 비 인식형 능력 사용. 인식형은 현재 주력으로 사용 중인 시야 범위 내 소멸시키는 형태로…….”
화면이 바뀐다. 3년 전, 센티넬로 처음 개화했던 현장을 보존한 사진이다. 기하학적 형태로 잘려 나간 사물들과 주인 잃은 신체 일부가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새하얀 눈발 위에 흩뿌려진 핏자국이 선명하다. 후우. 길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자리에는 성준수도 있었다.
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일찍부터 교육을 통해 안정적으로 다루게 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극소수였다. 아직도 대부분의 센티넬은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본능으로 능력을 개화했다.
지옥 같던 입시를 마치고 해가 넘어가 합법적으로 어른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어 잔뜩 풀어져 있던 시기였다. 오늘은 어느 술집을 갈까,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앞에 지옥이 현현했다.
그 이후로는 뭐, 흔히 회자되는 센티넬이라는 영웅이 탄생하던 순간이다. 사람들이 죽고, 학살하던 악몽이 뜯어져 나가고, 제어하지 못하는 능력이 끊임없이 주변과 센티넬 자신을 파괴한다. 그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라지는 세상을 본다. 그만하고 싶어. 과부하 된 능력이 몸을 태우기 시작한다. 모세혈관이 터지며 연한 점막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전영중. 영중아, 그만해. 커다란 손이 눈을 가린다. 뜨끈한 피가 튀자 전영중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성준수가 뒤통수를 감싸 제 어깨에 누른다. 곧 죽을 것처럼 가쁘게 몰아쉬던 숨과 터질 듯이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그제야 잦아들었다. 그게 가이딩이라는 건 그때의 전영중도, 성준수도 몰랐다.
사고 당시 성준수의 오른손은 한 번 사라졌다.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던 능력이니 제 눈을 가리던 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태여 전영중이 그 사실을 아는지 묻지는 않았다. 치유 센티넬의 도움으로 없던 일인 양 복구됐으니 전영중의 상처를 괜스레 헤집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제 오른손을 깍지 껴 잡는 떨리는 손에 짐작만 할 뿐이다.
“폭주 후 가이드의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 매뉴얼대로 사살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는 전영중 센티넬의 능력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가이딩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동일한 대응법입니다. 시야에 의존도가 높은 특성에 따라 광범위한 연막으로 시야를 차단하고 킬존을 특정합니다. 이후 지점에서 육해공군 중 가장 가까운 3개 부대의 협조를 받아 해당 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진행합니다…….”
육군은, 공군은, 해군은…… 이어지는 설명에서 폭주하는 전영중이 갖은 방법으로 무참하게 찢겨 나간다. 미사일에 터져서, 핵에 휘말려, 독가스를 마셔서. 가이드가 되기로 결심한 날, 어머니가 제 어깨를 잡고 비장하게 속삭이던 말을 떠올린다. ‘준수야. 이제 민증도 나왔고 나랏밥 먹으니 네가 다 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너 아직 한참 애다. 뭣도 모르는 너랑 영중이 이용하려는 능구렁이들이 한 트럭일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엄마처럼 행동해.’
어떻게요?
“그럼 가이드는 전영중 잘 죽였다고 박수나 치고 있음 됩니까?”
‘엎어.’ 그래서 엎어버렸다. 그의 어머니라면 조금 더 세련되게 엎었을지 모르겠으나 아직 풋내기인 성준수는 그런 방법 따위 몰랐다. 언제나처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면으로 박살 낼 뿐이다. 그러다 저놈이 깨지든, 제 주먹이 깨지든.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
“야, 영중아. 축하한다. 지금까지 너 죽일 방법이 다섯 개는 나왔는데 터미네이터 한 편은 뚝딱이겠다. 아니, 제가 센티넬 죽일 방법이나 들으려고 가이딩하러 다니는 줄 아십니까?”
“S급 센티넬은 동반되는 위험이 큰 만큼 폭주 이후 자신이 처할 상황에 대해 알 권리가 있습니다.”
“무슨 미친놈의 알 권리에 자기를 죽이려는 계획이 들어가요! 다 포기해도 본부에서는 센티넬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 왜 죽일 생각부터 하는데!”
더 끔찍한 건 저 망할 놈의 자료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는 거다. 전영중. 일어나. 시발아, 눈 뜨고 일어나라고. 자리에 앉아 숨만 내쉬는 멍청이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방을 박차고 나갔다. 고작 스물둘이었다. 스물둘이 아니라 예순둘이어도 자신을 완벽하게 죽이기 위한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니, 최소한 본인에겐 비밀로 해하는 거 아냐? 죽일 계획이 아니라 살릴 계획부터 짜야지! 머리끝까지 오른 열이 빠지지 않았다.
“너는 나 안 버릴 거지?”
“야, 영중아, 미친 소리…….”
쏘아붙이려던 목소리가 멎었다. 전영중은 제 손에 잡혀 오는 내내 눈을 꽉 감고 있던 모양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능력이 제 뜻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싶으면 전영중은 눈을 뜨지 않았다. 행여나 제어하지 못한 능력으로 제가 본 것을 소멸시킬까 봐.
“전영중. 눈 떠.”
“잠시만. 나 아직 진정이 안 돼서…….”
눈가를 꾹꾹 만지자 전영중은 도리어 눈이 구겨지도록 감는다. 미련한 새끼. 성준수가 동그란 머리통을 어깨에 눌러 감싼다.
“그러게 왜 그 개소리를 다 듣고 있냐고. 아예 방을 날려버리지. 능력도 되는 새끼가.”
“각인한 S급들은 다 듣는다잖아.”
“아, 지랄. 내가 윤리위원회에 찔러버릴 거야. 방송국에도 제보하고, 8시 뉴스에 생방송으로 나가서 저 미친 새끼들이 한 말 고스란히 읊어줄 거라고.”
흐, 하하, 너답다. 전영중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바람 빠지듯 웃었다. 어깨가 축축하게 젖는다. 이 새끼는 나한테 하는 반만큼만 다른 사람한테 지랄해도 잇속 다 챙기며 살 텐데 왜 이렇게 보면 한없이 등신같이 굴지? 내가 너무 풀어주나? 그런 생각을 하며 우는지 웃는지 모를 녀석의 등을 두드려준다.
“……내가 만약 폭주해도, 그래도 넌 가이딩 해줄 거야?”
“당연한 거 묻지 마라. 너랑 각인했을 때부터 그 정도 리스크는 감안했으니까.”
“나는…….”
그게 싫어. 소리가 되지 못한 말이 묻힌다. 네가 위험을 무릅쓰는 게 싫어. 닥치는 대로 지워버리는 망할 능력도, 3년이 지나도록 완벽하게 제어 못 하는 등신 같은 나도 싫어. 날 죽이겠다 자랑스레 알려주는 저 새끼들도 싫고, 나 대신 화내주는 널 보고 기쁜 게 싫어. 내가 폭주해도 너만은 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좋아서 싫어.
내가 이 능력으로 다음에는 네 손이 아닌 다른 걸 날릴까 봐 무서워. 내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아. 끔찍하고 무능하고 혐오감만 들어, 준수야.
한참 숨을 고른 전영중이 마침내 눈을 뜨고 성준수를 마주 본다.
“각인 풀자. 너한테 가이딩 받기 싫어.”
“갑자기 뭔…. 야, 헛소리 마라. 각인이 풀고 싶다고 니 마음대로 풀리는 줄 아냐?”
“조건은 알지.”
여러 가지로 알려진 각인해지 방법 중 일방적이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다. 센티넬 혹은 가이드가 각인한 상대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 아마도 생존본능이리라.
울어서 발갛게 부은 눈이 목덜미를 향했다. 소리 없이 살점 일부가 잘렸다. 외부 공기와 접촉한 안쪽 살에서 뒤늦게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움켜쥐자 손을 흠뻑 적시도록 피가 뿜어져 나왔다.
“미친, 너…….”
“……전영중 센티넬입니다. 4층 세미나실 앞으로 치유 센티넬 보내주세요. 긴급이요. 능력 제어 실패로 가이드를 공격했습니다. 출혈량이 너무 많아요.”
센티넬에게 살인이란 어떻게 이다지도 쉬운지. 원초적인 공포 앞에 각인은 맥없이 풀려버린다. 전영중을 휘감고 있던 가이딩 능력이 중심을 잃은 것처럼 허물어지며 오감이 마비된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하고, 제가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도 느낄 수 없어 무작정 손을 움켜쥐었다. 무엇이 잡히기는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물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본능적이고 필사적인 손짓이었다.
다리가 풀려 뒤로 넘어가는 몸을 안는다. 일방적으로 각인을 끊은 반동으로 온몸이 축 늘어진 와중에 왼손이 허공을 꽉 쥔다. 풀린 동공이 제가 누구에게 안겨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뜯어진 목덜미를 손을 겹쳐 눌러 막는다. 그럼에도 흘러나오는 피가 성준수의 손을 타고 전영중의 소매까지 적셨다. 복도에 뿌려진 피를 보고 치유 센티넬이 급하게 뛰어왔다. 성준수 가이드! 서둘러 능력을 사용하는 그에게 늘어진 몸을 넘기고 자리를 피했다.
생존본능에 의한 일방적 각인 해지 패널티는 일시적이라 들었다. 그럼 준수도 금방 괜찮아지겠지. 피가 묻지 않은 소매로 눈가만 문질러 닦는다.
만약에, 방금의 능력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성준수는 도움을 받을 새도 없이 죽었다. 제가 한 짓이 폭주의 예행연습 같아 혐오스러웠다. 행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차 안의 분위기가 더없이 냉랭하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탑승한 이래로 한 마디조차 나누지 않았다. 500미터 전방에서 우측 방향입니다. 잠시 후, 우측 방향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속도 모르고 명랑한 목소리로 지껄인다.
“오늘 수업 몇 시에 끝난다고?”
“저는 세시요.”
“그래.”
그래가 아니라 형들은 몇 시에 끝나는데요. 바들바들 떨던 기상호가 불현듯 눈을 감았다 뜬다. 어디도 바라보지 않던 시선이 천천히 주변을 인식하고 꿈꾸듯이 말한다.
“여기서 꺾지 말고 직진하세요.”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바꾸려던 전영중이 그대로 직진한다. 진입하려던 골목에 거대한 화물차가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게 보였다. 기상호, 손. 성준수가 뒤로 뻗은 손 위에 기상호가 제 것을 얹는다.
“능력이 멋대로 써지는 거,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자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컨디션 안 좋음 바로 연락해. 가이드는 수업 도중에 나와도 괜찮으니까.”
“네에…….”
손끝만 잡았는데도 미묘하게 좋지 않았던 속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센티넬이 된 지 얼마 안 된 기상호는 아직 가이딩 받는 감각이 낯설었다. 불현듯 제 신세가 서러워져 허엉, 하고 우는 소리를 낸다.
“아니, 지상고에 마가 낀 것도 아니고, 농구하자고 대학 왔는데 우째 대학 오자마자 각성해 버린 졸업생이 둘이나 된대요.”
“준수는 가이드라 농구 계속 해도 되는데 가망 없는 실력이라 그냥 핑계 삼아 때려친 거지.”
“어. 계속 좆같이 말해봐.”
“맞잖아. 해달란 적도 없는데 휴학까지 해가며 가이딩 배우고, 지금도 담당 바꾸겠다는데 굳이 들러붙은 게 누구더라?”
“이 씨바거는 가이딩 부족해서 정신이 나갔나, 왜 헛소리를 하지?”
“건들지 마. 너한테 가이딩 안 받는댔다.”
“냬햰턘 걔이덍 얜 벁뉸덌댸.”
와, 준수형 저런 유치한 짓도 할 줄 알았구나. 제게 다가오는 손을 몇 번이고 쳐내자 성준수가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악, 미친놈아! 나 운전 중이라고! 어, 알어. 마침 옆자리거든. 이 새끼 가이딩 부족한 거 맞았네. 처음 보는 머리채 가이딩에 기상호가 조용히 생각한다. 준수 형, 멋있다. 센티넬을 휘어잡고 사시네.
머리를 쥐어뜯긴 전영중이 두 사람을 인문대에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갔다. 준향대생인 성준수도 서교대에서 강의를 듣는다. 막 입학하고 성준수를 만났을 땐 반갑긴 했다만, 왜 준향대생이 서교대에? 나중에 물으니 학점교류제로 졸업 때까지 계속 서교대에 있을 예정이라는데, 덧붙이지 않아도 제가 전담하는 센티넬 때문이라는 건 짐작했다(아직 각인 중이던 시절이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센티넬은 컨디션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경우가 있기에 도와줄 가이드가 가까이 있는 게 좋으니까.
각인을 푼 날, 성준수가 말했다. 덕분에 너도 같이 봐줄 수 있으니 잘됐지.
형. 솔직히 제가 개손해라고 봅니다. 숨 막혀 죽을 거 같다고요.
매일 새롭게 악화 일로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 기상호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미약했다. 차 얻어타기. 숨쉬기. 형들 싸우지 마세요…… 를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하기.
서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각인만 하면 해결될 일인데 그걸 안 한다. 그걸…….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기상호가 눈을 감는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형지금어딨어요? 눈을 뜨자마자 다급하게 문자를 보낸다. 형. 형. 영중형. 급해요. 빨리. 야. 전영중. 형. 제발. 폰좀. 시발, 이 형은 왜 이렇게 핸드폰을 안 봐? 이번에는 성준수에게 문자한다. 영중형 지금 강의 어디서 듣는지 알아요? 10초도 되지 않아 날아온 답장을 보고 기상호가 강의실을 박차고 나간다.
“영중이 형!”
나른한 햇살에 반쯤 졸고 있던 전영중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교수님을 한 번 보고, 저에게 꽂힌 시선들을 지나 뒷문을 열고 난입한 기상호를 본다. 쟤가 왜 여기에?
그야 기상호는 예지능력이 있으니까.
무언가 봤구나. 전영중이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책상 틈을 비집고 나가는 전영중이 센티넬인걸 모르는 학생들만 의아했다.
강의실을 나와 달려간 곳은 미대 건물 옥상이다. 학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제일 높은 곳에서 숨도 못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기상호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형 저거! 떨어지게 두면 안 돼요!”
새카맣고 진득한 덩어리가 하늘에서 낙하한다. 능력을 써서 지우기 무섭게 하나 더.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점차 수를 불린다. 대피할 생각은 않고 하늘에서 사라지는 검은 덩어리들이 신기한 듯 사람들이 저마다 핸드폰으로 찍기 바빴다. 10분 후면 강의가 끝난다. 그러면 사람들이 전부 쏟아져나오고, 저게…….
“맞으면 녹아요!”
사람들을 녹이겠지. 예지로 사람이 녹는 모습을 봐버린 기상호의 안색이 새파랗다. 전영중은 부피를 줄이고 수를 늘려가는 검은 덩어리들을 눈으로 좇기 바빴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며 떨어지는 것들이 꼭 조롱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고. 고작해야 사람 주제에.
기상호가 옥상 난간을 짚고 고개를 숙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다. 기상호의 예지는 시뮬레이션이 가능했다. 변수를 상정하고 미래를 엿본다.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뜬다. 그사이 전영중이 인파들 사이에서 이쪽으로 똑바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너 준수도 불렀어?”
“네.”
“미쳤어? 센티넬도 아닌데 뭐 하러 불러!”
“형. 이거 우리들만으로 못 막아요.”
옥상의 두 사람을 본 성준수가 미대 외부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올라온다. 가방은 어디다 버려둔 건지 맨몸이었다.
“할 수 있어.”
“가이딩 받아도 힘들어요. 가이딩이 소비량 못 쫓아가고 형 폭주한다고요.”
검은 덩어리가 떨어지는 면적이 조금씩 넓어진다. 진득하던 것이 이젠 자갈처럼 쪼개졌다. 조급함에 능력이 제어를 벗어나 산등성이 일부가 도려진다. 여기서 더 넓어지면 하나씩 지우는 건 무리다. 훈련하던 대로 면적을 덧씌우듯 능력의 형태를 바꾼다. 허공에 넓은 종이를 얹듯이…… 서투른 사용방법과 소진된 능력만큼 흐트러진 집중력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능력이든 악몽이든 지정범위를 벗어나면 바로 대형 사고다.
기상호가 다시 눈을 감았다 뜬다. 옥상 바닥에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시뮬레이션 된 미래가 눈앞에서 팽팽히 돌아간다.
“……내가 가이딩 안 받으면?”
“폭주, 자살, 준수 형의 사회적 매장 중에 골라봐요.”
“씹…… 가이딩 받으면?”
“폭주, 자살, 준수 형의 사회적 매장 중에 골라봐요.”
“기상호, 망가졌어?”
가이딩을 받든 안 받든 전영중의 능력은 완전히 소모된다. 폭주해서 다같이 죽든가, 폭주하기 전에 자살하든가, 저 악몽을 모른척하고 세 사람의 안위만 지켜서 성준수가 서교대 대규모 인명피해의 책임을 뒤집어 쓰든가.
“아니면 각인하든가. 준수 형 오기 전까지 선택해요.”
시뮬레이션을 마친 기상호가 코피를 문질러 닦았다. 이 정도로 능력을 써본 건 처음이다. 능력을 써서 본 것이 현재인지 미래인지 헷갈린다. 센티넬들은 능력 많이 쓰면 제정신 유지하기 힘들다던데, 이래선가? 혼곤해지는 정신에 기상호가 제 뺨을 짝 때린다.
“폭주가 무서운 거 알겠는데, 준수 형이 폭주하게 놔둘 사람 아닌 거 알잖아요.”
“지원 능력은…….”
“폭주해도 피해 안 주니까 좋기는 무슨. 저 비전투원이라고 괄시해요?”
“……미안한데 그 말 이제 하려뎐 참이야.”
“그래요? 아, 헷갈려. 데자뷔 미치네.”
변수 조금 바꿔서 비슷한 미래를 여러 번 봤더니……. 머리를 털어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몸과 정신의 통제감을 잃은 게 꼭 소주 댓 병은 마신 느낌? 센티넬이 왜 가이드에게 목매는지는 확실히 체감한다.
“네가 본 미래 중 최선이 각인이야?”
“형이 그렇게 물어봐서 제가 대답해 봤거든요?”
그 새 시뮬레이션 많이도 돌려봤네. 더욱 잘게 쪼개진 검은 덩어리들이 범위를 넓히며 점점 다가온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노려보며 끊임없이 이미지화한다. 능력을 면적의 형태로… 종이를… 조금씩 늘려서…….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힘에 부친다. 미처 덮지 못한 지역으로 낙하한 악몽의 잔재가 건물에 떨어지자 부글부글 끓으며 부식을 일으켰다.
“근데 형이 납득했을까요?”
“……아니겠지.”
“형 스스로 선택해야 해요. 그 뒤는 저도 모르는 미래에요.”
그리고, 해답지 보고 풀면 오답 처리라고요. 너스레에도 전영중은 웃지 못했다.
선택. 그거 진짜 못하는데 어떡하지. 미련하게 끝까지 남아서 버티는 거나 잘하지, 나는 준수처럼 과감하게 선택 못 한단 말이야. 가장 확률 높은 게 어떤 건지 어떻게 알고? 기름칠 되지 않은 철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린다. 허억, 후. 거친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넌 상태가 왜 이래? 야, 입 벌려.”
“네?”
성준수가 엄지를 씹어 터트리고는 기상호의 입에 밀어 넣는다. 어업! 가차 없이 밀고 들어온 긴 손가락이 꼬집듯 볼살 안팎을 꽉 누른다.
“머 하은 거에여?”
“야매 점막접촉 가이딩. 너랑 키스할 수는 없잖냐.”
“저호 시흔데요.”
“알았으니까 말하지 마. 혀 꿈틀댈 때마다 기분 좆같다. 전영중, 넌?”
넓은 지역을 덮느라 눈도 못 돌리는 녀석의 손을 잡는다. 엉망이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인 능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얘도 피부 접촉으로 안 되겠는데.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물어뜯으려는 걸 전영중이 감싸 막는다. 뿌리치려 해도 놔주지 않는 힘에 왈칵 얼굴을 구겼다.
“이 상황에 가이딩 안 받는다고 지랄할 생각 마라.”
“넌 내가 폭주할 거 알아도 겁 안 나?”
“아 씹, 너 아직도 폭주 생각하냐? 그 좆 같은 새끼들 아주 엎어버렸어야 했는데…….”
“내가 너 죽일 수도 있는데 겁 안 나냐고.”
각인의 끊던 날처럼 순식간에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얼마 되지도 않은 그날, 제가 성준수의 목을 몇 센티 잘랐는지까지 말할 수 있다. 아, 준수를 보면 울 것 같다. 능력을 쓰느라 시선을 못 둘려서 차라리 다행…….
빡! 엄청난 타격음과 동시에 시야가 흔들린다. 반사적으로 감싼 뒤통수에 뒤늦게 쪼개질 것 같은 통증이 따라온다. 미친, 뭐야? 성준수 센티넬 아니야? 존나 아픈데? 그러나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던 성준수가 한 대로 그치지 않고 머리를 덮은 손을 피해 연달아 후려친다. 뻑! 빡! 이어 머리카락이 뽑히도록 세게 쥐고 마구잡이로 흔든다.
“아! 아악! 나 능력! 능력 쓰고 있잖아!”
“이, 시발! 나도 나! 나도 시발 겁난다고! 아무렴, 시발아! 근데 알고도 니 가이딩 해주겠다잖아! 그러니까 너도 이 동그란 거 폭주니 뭐니 영양가 대가리도 없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비벼서 살 궁리를 해야 할 거 아냐!”
“혀, 허어! 저 아프, 어억!”
“망설이지 좀, 말라고, 멍청한 새끼야! 못 정하겠으면 그냥 하던 대로 존나 버티기라도 하라고! 그럼 내가 가이딩하든 숨을 붙이든 어떻게 해줄 테니까!”
성준수가 온몸으로 전영중의 머리채를 쥐어흔드는 통에 볼을 붙잡힌 기상호가 같이 고통받는다. 이제 가이딩 안 받아도 되니까 그냥 놔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완전 꼬집고 있는데요! 전직 고교 농구선수의 악력에 뺨이 으깨질 것만 같다.
머리채를 붙잡고 흔드는 와중에도 가이딩이 느껴져 전영중이 웃고 만다.
우리 준수. 거칠고, 참을성 없고, 입버릇 나쁘고, 손버릇은 더 나쁘고.
그럼에도 상냥한 준수.
“알았으니까 기상호나 빨리 가이딩해.”
“너 시발 아직도…….”
“이제 못 해줄 테니까.”
내가 졌어. 전영중은 패배를 선언하며 웃는다.
내가 널 죽일 걸 알더라도 네가 있으면 좋겠어. 모두 내가 폭주할 거라 말해도 너만은 아니라고 계속 믿어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한심한 나라도 네가 믿으면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꾸 기대에 응하게 돼.
그래서 나만 봐주면 좋겠어. 다른 사람 말고 나만 가이딩해 주면 좋겠어.
“나랑 각인해 줘.”
검은 비구름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종말의 카운트다운 같았다. 그럼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예지 능력은 없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던 능력을 이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저, 자리 비켜드릴까요?”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기상호가 묻는다. 뭔 이상한 상상을 했길래. 성준수는 한번 흘겨보고는 전영중의 턱을 잡는다.
“됐고. 고개만 돌려.”
각인에는 성교가 필요하다느니, 온갖 추문이 돌지만 한 번 각인해 봤으니 확실히 안다. 각인은 상호 확실한 의사와 외부 접촉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성준수는 이제야 기특한 소리를 하는 제 센티넬에게 각인과 함께 포상을 주기로 한다. 턱을 당겨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얽어 넣는다.
엉망이었던 센티넬의 거대한 싱크홀을 단단한 덩굴이 뒤덮고 맑은 물이 차오른다. 성준수의 바람대로 깨끗하게 정리된 능력이 전영중의 의사를 따라 흐른다.
세계 종말을 막는 힘은 사랑이랬던가. 어쩐지 삼류영화의 엔딩 키스씬 같다고 생각하며 능력을 넓게 펼친다. 머리 위까지 드리워진 검은 비가 허공에서 사라진다. 비스듬히 맞닿은 얼굴 너머 펼친 능력이 포위하듯 도사리고, 이내 하늘에 위치한 악몽을 맹수처럼 단번에 잡아먹는다. 구름으로 위장했던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 치: 서교대 서울캠퍼스
위험등급: 미측정
임무시작: 14:32 (00시간 19분 소요)
참가인원: 전영중(센티넬), 기상호(센티넬), 성준수(가이드)
가 이 딩: 점막접촉(야매)
인명피해: 0명
재산피해: 서교대 일부 건물 부식 / 보수 필요(보상여부 추후 협의)
특이사항: 기상호 센티넬, 가이드 매칭 요청
의 견: [M.S.Mgr] 야매는 무슨 의미?
[JSSeong] 손가락 뜯어서 진행했습니다.
[M.S.Mgr] 그거 하지 말라니까!
[JSSeong] 어차피 각인해서 이제 안 합니다.
컴퓨터를 두드리던 매칭팀장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게, 하지 말라는 거 여럿한테 퍼트려 놓고 자기만 안 한다면 다냐고! 성준수 잡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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