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준] 비상! 너구리를 되찾아라! (1)
양키 전영중 X 원작 성준수
양키 전영중이 원작 농놀에 뿅 등장합니다.
“요, 준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전영중이 비에 맞은 생쥐처럼 홀딱 젖은 꼴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대신 못이 박힌 각목을 든 채로.
“얼굴이 좋아 보이네. 대체 왜?”
검은 가쿠란이 티셔츠와 농구 유니폼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마찰음을 내는 운동화와 달리 명쾌한 구두 굽 소리가 체육관 가득 울렸다.
“준수는 납치범과 인질이 하하호호 농구를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애초에 농구엔 관심도 없었잖아. 납치당하고 나니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기라도 한 거야? 하하, 그런데 준수야. 농구 할 여유가 있었으면 연락이나 한 번 주지 그랬어. 응?”
화풀이라도 하듯 전영중을 피해 비켜서는 원중고 부원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손등에 뼈와 힘줄이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강하게 낚아채자 부원의 몸이 기울었다. 전영중의 몸에 닿기도 전에 바깥쪽으로 집어 던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일까.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던져진 부원은 몇 번 중심을 잡기 위해 뒤로 물러서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체육관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아니면 날 엿 먹이려고 이래? 제대로 낚여서 다 제쳐놓고 달려온 사람 보니까 기분이 좋아? 축하라도 해줄까? 그래, 준수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성공해보겠어.”
숨을 쉬긴 하는 걸까. 랩이라도 하듯 쉼 없이 쏟아내는 말과 달리 걸음은 평소보다도 느렸다. 음속어를 하고 행동만 본다면 상당히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의 걸음 속도가 이보단 빠를 것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얼굴을 눈에 담는다. 주위를 탐색하던 시선과 걸음은 성준수 앞에서 멈췄다.
“우리 준수, 내신 챙겨야 한다고 바쁜 척하더니 사실은 존나 한가했나봐?”
“시바꺼. 뭔 개소리야? 알아듣게 좀 말해.”
기성복이 아닌 맞춤 제작이라도 했는지 팔 길이에 맞게 딱 떨어지는 검은 가쿠란 속에 입은 새빨간 티셔츠는 얼룩덜룩한 자국이 묻었다. 얼굴에 방울방울 흩뿌려진 피가 빗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턱에 맺힌 물방울이 툭 털어졌을 때.
“다 됐고. 씨발. 일단 병원부터 가라. 새끼야.”
전영중은 웃었다. 오, 준수. 설마 내 걱정해? 하는 비꼬는 어투와 함께.
밖에 5분만 서 있어도 피부가 벌겋게 익을 정도로 찌는 듯한 날씨였다. 드문드문 떠 있는 뭉게구름이 해를 가리는 건 10여 초. 거리와 움직이는 속도를 본다면, 다음 구름이 해를 가리기까지는 한참이 걸릴 터였다. 그 덕에 훤히 드러나는 새파란 하늘은 청량하고 맑았다. 지상고 체육관은 공동묘지 위에 짓기라도 한 건지 겨울이나 여름이나 밖보다 서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원중고와 합숙 훈련으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체육관은 금세 열로 후끈 달아올랐다. 웅웅-. 농구공이 튕기는 소리에도 간간이 튀어나오는 에어컨 가동음. 중앙 제어로 온도 조절은 안 되는 에어컨이지만 체육관의 유일한 희망일 정도로 날은 후덥지근했다. 그러니까, 한여름에 겨울 가쿠란 교복을 입은 전영중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영중이 형!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가 조폭이랑 쌈이라도 났어요? 국민이 형은요? 버리고 왔어요?"
싸한 분위기를 뚫고 조재석의 명쾌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럼 이제 누가 주장이에요?’와 같은 태연한 소리를 뱉으며 거리낌 없이 거리를 좁혔다.
“그래, 영중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단 준수 말대로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
이휘성이 옆에서 거들었다. 지상고 부원들은 멀찍이 떨어져, 소란 사이로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영중햄 왜 저칸대요? 그걸 왜 내한테 물어보나? 옷은 언제 갈아입음? 설마 원중고가 서프라이즈로 몰카를 준비한 건 아니겠죠? 저 뺀질이가 그런 거에 동참할 사람이가? 준수햄 엿 맥이려고 동참했다거나…. 조잘조잘 떠드는 꼴이 팝콘이라도 쥐여주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걱정 이 씨바. 넌 진짜… 하, 됐다. 야야. 감독님 모셔와.”
와하하, 작위적인 웃음이 터졌다. 각목으로 애꿎은 체육관 바닥을 쿵쿵 찍더니 이내 각목에 몸을 실어 기대고는 비스듬히 섰다. 익숙한 얼굴과 처음 보는 인물. 거기에 준수까지. 단체로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하나같이 농구부원이 된 것마냥 농구공을 튕기고 있는 걸 보면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들아 큰일 났어! 영중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여깄네?”
뒤를 살짝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지국민이 요란스럽게 들어오던 자세 그대로 굳어 전영중을 응시하고 있었다. 양손에 가득 쥔 검은 봉투, 얇은 봉투 안에는 아이스크림이 고스란히 비쳤다. 오는 사이 하나를 먹었는지, 나무 막대를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영중아,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아냐?”
그런데 그 모습은 뭐야? 뒤이은 질문을 가볍게 씹으며 성준수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짜증날 정고로 새파란 유니폼에 정신을 뺏겨 조금의 어색함을 느꼈을 뿐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 하나.
“하하, 준수야. 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내 피 아니야.”
각목에 기댔던 몸을 바르게 세운다. 님 내 말 들림? 영중햄은 지금 양키 각성 모드라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 변신이 풀리는… 따위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익숙한 모습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건 단체로 미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영중 하나만 미친 걸까. 갑자기 살던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낀 건 저 새끼들이 약을 처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영중이 약을 처먹은 걸까. 질질 끌리는 각목 탓에 생기는 긴 물 자국은 기본이고, 못이 체육관 바닥에 얕게 파고들어 기스가 생기기도 했다.
코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안대가 필요하지 않은 눈가를 매만지며 유심히 눈동자를 살핀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찡그리며 뒤로 물러나는 몸짓. 어떠한 흉도 없는 매끈한 피부를 감상하던 차에 손이 쳐내 졌다.
“뭐…….”
“준수야, 왜 눈깔이 왜 두 개야? 뽑아줄까?”
아, 드디어 전영중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내가 정신병자인 게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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