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Love

Kill the Love

센티넬가이드AU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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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 묘사, 신체 훼손, 자살 표현 등 주의

23.12.02 빵준온 무료배포

 

 

 

센티넬의 능력에도 상성은 존재한다. 거목을 일으키는 능력이 불 앞에 무력하고, 거센 칼바람이 산사태를 막지 못하듯. 때문에 센티넬의 등급은 능력의 크기뿐만 아니라 상성을 얼마나 타느냐로도 등급이 정해진다. 하여간 줄 세우기 좋아하는 나라다. 능력이 생기면 감사합니다, 하고 활용할 궁리나 할 것이지. 등급 딱지를 붙이고 누구는 쓸모있네, 누구는 쓸모없네 평가질하며 사람을 도구마냥 다루는 게 성준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도질 된 도시를 내려다보다 혀를 한 번 찬다. 출발한지 십 분이 조금 지났으니 전영중의 걸음걸이면 지금쯤 목표지점에 도착할 때가 됐다.

 

“전영중. 어디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알파 팀 교신 마지막 지점이 근방…….

 

사람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두둑. 철이 우그러지는 소리와 살점이 짓이기는 끔찍한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렸다.

 

-알파 팀, 전원 사망 간주합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몸을 일으킨 것들이 땅을 헤집고 건물을 부순다. 성준수는 급하게 쌍안경을 꺼냈다. 20층 건물 꼭대기까지 머리를 든 그것의 끝에 국방색으로 칠해진 아파치헬기가 구겨져 있었다.

위태롭게 매달린 달린 프로펠러가 비명을 지른다. 끼익 끼익. 좌우로 요동치던 그것이 기어코 부러져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의 센티넬이 있는 곳에.

 

“전영중! 피해!”

-우리 준수, 나 걱정하는 거야?

 

다급한 외침이 무색하게 전영중의 목소리는 느긋하기 그지없다. 쾅! 육중한 철의 낙하음이 지척이다. 성준수는 신파의 한 장면처럼 절규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한 자신을 탓한다면 모를까.

아니나 다를까, 속없는 목소리는 이제 웃고 있었다.

 

“일단 후퇴하고 동행해. 혼자 상대하기엔 너무 커.”

-됐어. 얼른 처리하고 갈게 가이딩이나 준비해. 준수 같은 물몸이랑 오면 지키느라 더 힘드니까.

“지키기는 시발, 당초 브리핑보다 훨씬 크잖아! 감 안 좋으니까 일단 나오라고! 체력 분배 생각해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헬기를 물고 있는 그것이 통째로 사라졌다. 누군가 세상이라는 종이에서 그 부분만 도려낸 듯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이윽고 그것이 고통에 몸부림치듯 솟구쳐 올랐다. 하나둘 땅속에서 악몽처럼 솟구치는 검은 것들이 반경 500미터는 족히 덮었다. 작전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건물이 지진 난 듯 흔들려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대체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길래?

 

“야! 내가 존나 크댔잖아!”

 

그리고 불시에 한 곳으로 덮쳐든다. 사냥하듯 무수한 발을 우그리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반구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남은 부분마저 포식당한다. 물리력이라면 터져나가는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전영중의 능력은 그것조차 없었다.

소멸. 상성도 범위 제한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 한계치도 높은 S급 능력. 조절만 잘하면 민간 피해도 없다. 덕분에 전영중은 가이딩을 마치기 무섭게 호출당하는 대 악몽 병기 취급이었다. 영중아, 너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까. 영중아, 너라면 다칠 걱정 없으니까. 영중아, 는 씨발. 이름 닳겠다고 지랄하며 하루 한 번만 가이딩하겠다는 성준수의 선언이 없었으면 전영중은 잠잘 시간도 없이 불려 나갔을 게 뻔했다. 일찌감치 각인해서 다행이라고 여긴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성준수는 인이어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계단으로 달렸다. 당초 보고보다 너무 컸다. 압도적인 괴물의 크기에 넋을 놓고 있던 백업팀이 뒤늦게 성준수를 붙잡았다. 아니, 씨발, 놔봐. 아랑곳 앉고 벗어나려는 장신의 남자는 장정 셋이 달려들어서야 겨우 붙잡혔다.

 

“저 새끼 몸이 못 버틴다고! 센티넬이 폭주까지 가면 다 죽는 거 몰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가 악에 받쳐 일어났다. 상성도 안 타고 공격 딜레이도 없는 S급 센티넬의 약점? 명백하게 효율이다. 남들 한 번 겨우 쓸 걸 무식하게 큰 범위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먼 거리에 연사하면 제아무리 가진 능력치가 크다 한들 바닥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의 한계치를 가장 잘 아는 건 당연하게도 전담 가이드 성준수다. 방금의 연사는 명백하게 무리였고.

전담 가이드의 외침에 비상구를 막고 선 몸뚱이가 움찔했다. D등급 센티넬이 폭주해도 일대가 날아가는데 하물며 시야가 닿는 범위라면 존재 자체를 날려버린다는 S급 소멸 능력 센티넬이다. 그의 폭주가 뭘 의미하는지 명백했다. 어떠한 접근이나 저격도 허용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은 물론, 하남 일대가 깔끔한 평야가 되어버릴 수 있다.

 

-아냐, 준수야. 괜찮아. 나 괜찮으니까 안 와도 돼. 내가 갈게.

 

인이어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작게 기침하는 소리도. 전영중의 오버페이스는 흔한 일이었기에 이제 숨소리만으로 상태가 짐작 갔다. 뿌득, 이를 간 성준수가 건물을 뛰쳐나왔다.

 

“지랄 말고 거기 있어. 헬기 대기했다가 신호하면 바로 뜨고.”

 

신체 민감도가 세 배는 올라갔을 테니 일부러 작게 말한다. 의도를 눈치챈 백업팀이 대답 대신 인이어를 두드렸다. 제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고함치는 것처럼 들리고 기도를 넘어가는 바람이 칼날처럼 느껴질 것이다. 가이딩으로 진정시킨 후에야 헬기를 띄워야 감각에 무리가 안 간다.

주민들이 대피한 거리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악몽의 난동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진 4차선을 내달리다 주저앉았다. 땅이 울린다. 또, 또, 씨발.

 

-아, 취소. 못 가겠네.

 

무슨 취소를 하고 지랄. 그냥 능력 두르고 나와.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혀끝에 맺힌 말을 씹어 삼킨다. 전영중은 도망치는 놈이 아니다. 악몽이 다시금 깊은 곳에서부터 주둥이를 벌리고 그의 반쪽을 노린다.

전영중은 자신의 끝을 상상해 본 적 있었다. 센티넬 관리팀의 시나리오대로 이성을 잃고서 능력을 몸에 두르고 닥치는 대로 소멸시킬 수도 있다. 죽는 마당에 마지막 깽판이라면 그것도 괜찮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어느 상상에서도 결국 폭주하는 자신은 떠올리지 못했다. 사랑하는 그의 가이드라면 폭주로 이성을 잃은 센티넬에게 사라질 것을 알아도 일말의 가능성만 믿고 몸을 던질 것이기에.

 

-준수야, 사랑해.

 

그리하여 전영중은 오래전 다짐대로 스스로 사라지기를 택했다.

능력의 중심을 심장에 두고 최대 크기로 폭발시킨다. 땅속 깊이 자리한 악몽까지 남김없이 삼켜버리도록. 소리 없이 찾아오는 종말이었다. 일대를 먹어버린 크레이터는 원래 그곳에 있던 양 굳건했다. 인이어가 조용하다.

“전영중?” 주변에서 맴돌던 울음도, 파열음도 사라졌다. 성준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크레이터에 다가갔다.

씨발. 어떻게 이래. 개같이 몸을 던져 일한 새끼가 이렇게 조각 하나 안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게 말이 되냐고. 수직에 가까운 크레이터 입구를 단번에 뛰어내려 기어코 구르고야 만다. 전영중 씨발 새끼야. 나 열받게 하는 건 언제나 일등이었지. 이번에도 꼭지까지 돌게 하려고 이런 같잖은 장난을. 착지를 잘못한 오른발이 욱신거렸다. 매끈하게 잘려 나간 단면엔 붙잡고 일어날 만한 것도 없다. 근데 어쩌라고. 뼈가 튀어나오고 피가 나든 말든 성준수는 폭발 중심지로 기었다. 이렇게 추잡하게 만드는 것도 전영중이 유일했다. 천하의 성준수가 바지에 흙물을 들여가며 바닥을 쓸었다. 전영중은 기어코 이런 꼴을 보이게 만들었다.

 

“성준수. 다리 부러졌어.”

 

그리고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것도 제일이지. 옆구리 아래로 쑥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린다. 멀끔한 얼굴이 엉망이 된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다. 센티넬이 된 후로 그는 80킬로그램이 넘는 소꿉친구도 어린아이처럼 쉽게 들어 올렸다.

 

“씨발 새끼.”

 

성준수가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똑같이 그를 위아래로 훑고, 반대 손으로 다시 후려쳤다. 변태 새끼. 나신인 전영중이 웃는다.

전영중이 S급 센티넬에서 유일무이한 SS급이 된 날이었다.

 


 

성준수는 회복 능력 센티넬의 도움을 거절했다. S급 센티넬의 전담 가이드라면 회복 센티넬의 도움을 받을 특권이 있지만, 현대의학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처에 인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성준수의 철학이자 너네도 쓸데없이 전영중을 불러제끼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하여 성준수는 마취약에 취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복합골절이지만 다행히 부서진 뼛조각이 많지는 않아 수술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웠단다. 잠에 취해 한 귀로 흘리는 환자 대신 그의 센티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하면 여기 무통 주사 버튼 누르시고요, 힘들어해도 운동 꼭 시키셔야 하고, 입맛 없어도 식사하셔야 회복이 빨라요. 이 역시 센티넬의 머리속에 빠짐없이 입력되었다.

전영중은 종일 성준수와 붙어있었다. 일어나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아침 식사가 오면 입맛 없다고 세 숟가락도 안 뜨는 성준수에게 흰죽을 비행기 태워 입에 넣어주었다. 애새끼 취급하지 말라고 얻어맞아도 밥을 잘 먹어야 회복도 잘 된댔다며 뻔뻔하게 한 숟가락을 더 먹인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고 일어나면 또 점심. 억지로 일으켜 세워져 전영중을 붙잡고 병실을 한 바퀴 돌았다. 제 발로 걷는 건지, 안겨 끌려가는 건지 모를 운동이 끝나면 또 지쳐 잠든다. 눈을 뜨면 간혹 전영중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대개 밤늦게라도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일을 봤거나 식사라도 했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전영중이 온전히 제게만 시간을 썼다면 성준수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거슬리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전영중이 옆에 있는데, 제 병간호를 해주는데, 너무…… 담백했다.

 

“무슨 일 있냐?”

“나?”

 

성준수가 아는 한 전영중은 곱게 병간호해 줄 인사가 아니었다. 준수야, 그 별 볼 일 없는 몸뚱아리로 센티넬 도움도 안 받으면 언제 나으려고? 혹은, 이참에 아예 쉬기로 한 거야? 그런 부류의 빈정거림. 많이 아프냐고 손을 붙잡고 울거나 필요도 없는 가이딩을 해달라며 상처 부위를 피해 매달리지 않던가.

 

“하다못해 키스라도 해달라고 징징거렸잖아.”

“날 아픈 사람 괴롭히는 쓰레기로 만드는 거야?”

 

그럼 이전까지의 너는 쓰레기였네. 과감하게 과거의 자신을 분리한 전영중이 씩 웃었다.

 

“나 SS급 됐어.”

“그게 뭔……. 그딴 등급이 어딨어?”

“너 수술 받는 사이에 만들었어. 능력 하나 더 생겼거든.”

“뭐?”

 

손목에 손을 올리자 전영중이 팔을 빼냈다. 멀쩡해도 가이딩 못 받아 난리던 게 왜 피하고 지랄이지. 억지로 잡아 침대에 누르고 눈을 감는다. 가이딩이 센티넬의 능력을 타고 전신을 훑었다. 요 며칠 가이딩 안 받은 것 치고 상태가 지나치게 좋은 것 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다른 가이드한테 가이딩 받았나? 각인했으면 다른 가이드와는 효율 떨어져서 쉽지 않았을 텐데. 본부에서 S급 지원해줬을지도.

 

“몸은 이전이랑 똑같은데? 검사는 해봤어?”

“거기서도 결과는 전이랑 같게 나왔어. 그래도 능력이 하나 늘어난 건 맞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초자연적인 힘이니 검사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이드조차 읽을 수 없는 변화라니? 다시 그의 능력을 꼼꼼하게 되짚어 본다. 이 상태, 최근에 읽어 본 것과 비슷했다. 언제였지.

 

“새로 생긴 건 무슨 능력인데?”

“부활.”

 

아, 부활. 찢어졌던 다리가 불에 꿰인 것처럼 아팠다. 무통 주사를 눌렀는데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는다. 시발, 망가졌나. 한 번 누르면 일정 시간 동안 안 들어간다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언제 눌렀지. 아, 전영중이 운동하자고 지랄해서 방을 세 바퀴나 돌고 침대에 눕자마자.

그때 전영중 대가리를 쳤지. 뼈가 살을 뚫고 나온 줄도 몰랐는데, 다리가 그로테스크하다—는 말에 그제야 단단히 잘못된 걸 알았다. 그래도 죽다 살아난 새끼 뭐 잘못될까 봐 비명을 지르면서도 가이딩하긴 했다. 딱 그때 상태와 똑같다.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된 깊은 호수가 눈앞에 그려진다.

 

“너 점심 먹고 어디 다녀왔냐?”

“본부에?”

“더 구체적으로.”

 

섬뜩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전영중은 대답 대신 성준수를 끌어안았다. 참으려고 했는데 안으니까 너무 좋다. 대놓고 대답하기 싫다 티 내지만 성준수가 언제 그런 투정을 봐준 적 있던가.

 

“내 커플링 어딨어?”

“음, 잃어버렸나?”

 

그걸 왜 잃어버려. 불가리 이백오십만 원짜리를. 돌았냐. 잃어버리면 죽어버리겠다며. 전영중의 머리통을 퉁퉁퉁퉁 치다 한숨을 내쉬고는 쓰다듬는다.

 

“왜 끼고 나갔어.”

“너랑 같이 있는 기분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병실 서랍에 넣어둔 커플링을 도둑처럼 훔쳐 맞지도 앉는 손가락에 끼고 나갔다고. 전영중 손가락 사이즈야 잘 안다. 성준수의 네 번째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는 전영중의 네 번째 손가락엔 조금 작고 새끼손가락에는 컸다. 헐렁한 반지를 소지에 끼워 넣고 안 잃어버리려 내내 주먹을 쥐고 있다 폭주 직전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부활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다. 부활한 전영중에게 온전히 남는 건 제 몸 하나였으니까. 나체로 있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마도.

 

“몇 번째였냐?”

“두 번째.”

“이 시발, 잃어버린 거 오늘 아니지.”

 

확 밀치자 육중한 몸이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변명이라도 나불거릴 것이지 웃고만 있다.

 

“준수야, 사랑해.”

“넌 당분간 사랑한다는 말 금지야.”

“왜?”

 

너 죽었던 날 떠올라서. 성준수는 속내를 드러내는 대신 퉁명스레 대답한다. “몰라, 이 새끼야.” 아직도 그날이 생생했다. 전영중을 가이딩할 때의 감각도.

센티넬의 신체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빠진다. 때문에 수시로 가이딩을 해줘야 하는데 전영중은 최근 가이딩해준 적도 없는데도 몸 상태가 그날과 똑같이 좋았다. 어디서 따끈하게 죽고 왔단 소리다. 자신이 입원한 동안, 오늘을 포함해서 최소 세 번.

 

“커플링 다시 맞추러 가자.”

 

그딴 임무 나가지 말래도 들을 리 없기에 성준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 망할 놈에게는 아무래도 목줄이 필요했다.

 

 

 

급하게 퇴원 수속을 밟고 백화점부터 찾았다. 이전에 주문했던 것과 동일한 뱀 비늘 모양 반지로 한 쌍을 주문한다. 결제는 성준수의 카드였다. 준수야, 별 볼 일 없는 가이드 연봉 살살 녹는다. 제 카드를 내미는 전영중의 손을 탁 친다. 어, 별 볼 일 없는 네 가이드 거지꼴 되는 거 보고 싶으면 계속 나가서 뒈지든가. 오백만 원이 순식간에 결제됐다.

퀵까지 불러 반지를 수령하고, 다음 목적지는 센티넬 본부였다. 다리가 불편한 성준수를 안고 가겠다는 걸 꼴값 떨지 말라고 한참 싸운 후에야 목발을 짚을 수 있었다. 본부 앞에서 내려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짧은 거리도 힘들었다. 지하 1층 기록실로 간 성준수가 거의 몸을 내던지듯 의자에 앉았다. 상처가 찌릿 울린다.

 

“전영중 센티넬 최근 2주간 임무 기록 열람 요청합니다.”

 

전산화에 미친 대한민국에서 센티넬 임무 기록 따위가 인터넷으로 열람 안 될 리 없지만 전영중의 기록은 하남 임무를 포함해 이후로 올라온 내용이 없었다.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거나, 1급 기밀이라 제외 대상이거나. 그럼 직접 기록실까지 내려와 오프라인 자료를 열람해야 한다. 본부에서 근무하던 평소라면 별일 아니지만 다리가 부러져 치료 중인 환자에겐 매우 번거로웠다.

전산을 두드리던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전영중 센티넬 전담 가이드 성준수입니다. ID 다시 확인해 보세요.”

“전담 가이드 권한으로도 열람 불가 항목입니다.”

“아니 뭔…… 전담 가이드가 열람 못 하는 임무일지가 말이 됩니까?”

“그러게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오류인가…….”

 

직원은 당황하면서 키보드를 다시 쳤다. 열람 자격에 ID를 스캔해 봤다가, 직접 쳤다가. 욕이 튀어 나가려는 걸 겨우 참으며 성준수는 이마를 짚었다. 직원은 아무 죄가 없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거다. 근데 씨발 환자를 앉혀놓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욱신거리는 다리에 인내심이 금방 바닥났다. 약지에 감긴 뱀 모양의 반지가 이마에 닿았다. 그래. 역시 이런 건 대가리랑 말을 해야지.

 

“본부장님한테 가자.”

“하하, 준수 화끈하네. 근데 바쁘신 본부장님이 아무나 막 만나주시겠어?”

“내가 왜 아무나야?”

 

전영중에게 손짓하자 조심스레 일으켜 세워준다. 목발을 짚지 않고 여전히 팔뚝을 움켜쥔 손에 눈매가 휜다. 이제 힘들어서 못 걷겠으니까. 대충 알아들은 전영중이 그를 한 팔로 안고 목발을 반대 손에 들었다.

 

“유일한 SS급 센티넬의 가이드지.”

 

대충 2미터 40은 될법한 시야가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조금 쪽팔리지만 참기로 한다. 원래 협상을 하려면 기선제압부터 해야 하거든.

 

 

 

그렇게 두 사람은 꼭대기의 본부장실에 쳐들어간다. 가는 길이 마냥 수월했던 건 아니다. 기록실을 나가며 머리 깨질뻔한 위험이 한 번,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 번. 전영중의 머리를 감싸듯 바짝 웅크린 자세로 본부장실까지 가는 건 생각보다 더 창피했다.

물리적 위협과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고 본부장실까지 갔더니 비서팀이 당황했다. 188cm의 남자가 192cm의 남자에게 안겨 등장하면 누구라도 놀랄 테니 이해하려 했는데,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일단 본부장님이 안 계시고, 이렇게 경우 없이 찾아와도 안 된단다. 경우 없는 게 누군데, 지금. 성준수는 본부장실 문고리를 가리켰다.

 

“없애.”

“영중영중!”

 

역할에 심취한 전영중이 포켓몬처럼 외치자 문고리가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진다. 성준수 포함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가, 그의 뺨만 톡톡 쳤다. 기상호한테 뭔 이상한 걸 배웠나 씹타쿠처럼 말하네. 어쨌든 잘했다. 기상호랑 못 놀게 해야지. 그사이 가이딩도 한다. 미미한 사용치였지만 따스한 가이딩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전영중은 닿은 손에 뺨을 부볐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본부장실로 들어갔지만 아무도 두 사람을 막지 못했다.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 물체를 지워내는 센티넬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잠금장치가 사라진 문은 닫히다 말고 도로 열렸다. 문 너머에서 다급히 전화하는 소리에 성준수는 만족하며 손님용 소파에 앉았다. 부러진 다리는 테이블에 올린 건방진 자세였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앉은 잠깐 사이 까무룩 잠들었다. 눈만 감고 있으려 했는데 시계를 보니 본부장실에 쳐들어온 후로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본부장은 위엄 가득한 얼굴로 똑바로 성준수를 보고 있었다. 깨우지 그랬냐. 전영중을 툭 치자 웃고 만다. 깨우라고 하는 걸 이 새끼가 못하게 했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불편한 몸으로 직접 올 줄은 몰랐네.”

“저도 오기 싫었는데 가이드로써의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이드가 하는 일이 센티넬 관리 말고 또 있나?”

“본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네요.”

 

내일모레면 계란 한 판이 되는 나이다. 본부장에 비하면 아들뻘인 성준수는 비록 성질이 더럽지만 상명하복 철저하고 군신유의를 알며 장유유서를 깍듯하게 지킬 줄 아는 유교맨이었다.

스물다섯까지는.

갓 성인이 되자마자 가이드 능력이 발현한 덕에 좋아하던 농구도 그만두고 소꿉친구인 전영중과 가이딩을 하네 마네, 각인을 하네 마네 싸우길 삼 년, 전담 가이드로 이 년을 굴렀던 연차에 깨달았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하면 전영중이 죽겠구나.

그렇게 성준수는 각도기가 된다. S급 센티넬의 전담 가이드가 된 김에 배짱 튕길 땐 튕기고, 무리하더라도 이득이 될 만한 건 주우며 또 5년을 보냈다. 각도기의 감이 지금은 배짱을 부릴 때라고 속삭였다.

 

“센티넬 컨디션 관리뿐만 아니라 행정 처리, 보고서 작성, 임무 조율이 기본이고 수시로 있는 출장이나 팀 단위 작전, 잔업무도 있는데 전부 말씀드릴까요?”

“가이드 업무가 과중하다는 걸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아닙니다. 월권행위에 대해 항의하러 왔습니다.”

“월권행위?”

 

소파에 엉덩이를 깊게 밀어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쯤에서 멋있게 테이블을 탕 쳐야 하는데 반쯤 누운 자세로는 무슨 말을 해도 폼이 나지 않았다. 푹신한 소파를 양손으로 짚고 꿈질거리는 성준수를 전영중이 제 옆으로 당겨 허리를 받쳐주었다. 카페에서 붙어먹는 연인 같은 자세였다. 장소만 틀렸지 연인은 맞으니까 밀어내지는 않기로 했다. 그편이 본부장을 열받게 하기 더 좋을 것 같았고.

 

“본부장님이 아니라 대통령이 온다 해도 월권행위입니다. 센티넬의 임무 조율은 가이드 관할이니까요.”

“전담 가이드의 부상으로 조율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건너뛰고 진행하라 지시했네.”

“저 코마 상태 아니었습니다. 의식도 명확하고, 그 정도 의사결정은 할 수 있었어요.”

“고작 가이드 의견 묻자고 병원까지 찾아가 보고해야 하나?

“이 좋은 세상에 왜 대면보고를 합니까? 인터넷으로 자료 보내고 화상회의 하면 되는데.”

“그사이 죽을 사람들은 생각 안 하고?”

“그래서 영중이를 죽였습니까?”

 

화가 치밀어올랐다. 차근차근 협상할 생각이었는데, 그런 건 애초에 성준수의 성미가 아니었다. 등 떠밀려 헬기에 오르고 피 토할 때까지 혹사당하다 폭주 직전 스스로에게 능력을 썼을 전영중이 선했다. 무슨 생각으로 자살을 택했을까. 소멸에 당하면 고통도 없다지만 대체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능력에 당한 자는 말을 못 하는데. 무릎 위로 말아쥔 주먹이 바르르 떨린다.

 

“가이드는 병원에 처박아 놓고, 센티넬은 검증도 안 된 능력으로 알아서 살아 돌아오라고 사지로 내모는 게 옳은 결정입니까?”

“나라고 좋아서 귀중한 재원 함부로 굴린 줄 아나? 요 몇 년 S급 센티넬 전담 가이드들의 돌연사로 가용인원이 10퍼센트는 줄었어. S급만 10퍼센트. 사망한 S급까지 세면 더 많아. 그 자리 하나 메꾸려면 A급 이하 센티넬들을 부대 단위로 투입해야 해.”

“그렇게 떳떳하시면 왜 지난 2주간 임무를 블라인드 처리하셨습니까.”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네.”

“전영중 센티넬 몇 번 죽이셨어요.”

“나는 센티넬을 죽으라고 임무에 배치한 적 없어.”

 

엎어버릴까. 눈앞의 상대가 본부장이 아니었다면 짧은 인내심에 진작 엎었을지 모르겠다. 새하얗게 질린 손가락 위로 커다란 손이 덮인다. 미지근한 금속 링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쥐고 있던 주먹이 조금 풀어졌다.

본부장도 센티넬로 현장 근무를 했던 사람이다. 권위적인 면이 있지만 꽉 막히진 않았고, 아직도 제 능력이 필요하면 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따르지. 성준수는 심호흡했다.

 

“가이드로써의 의견을 말씀드리면, 전영중의 부활 능력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가이드조차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능력에 재사용 시간도 파악할 수 없고, 사용 패널티가 없다는 게 이상합니다. 말이 되지 않아요.”

 

일반적인 능력 사용이라면 사용할수록 몸에 부하가 걸려야 한다. 그런데 사용하면 몸 상태가 리셋되는 능력? 말이 안 된다. 악몽과 센티넬의 등장을 많은 이들은 균형이라 불렀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으나 괴물과 그것들을 제거하는 센티넬,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힘과 가이드만이 치유할 수 있는 부작용. 세계를 지탱하는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다고.

그렇다면 전영중의 부활은 가이드가 없어도 되는 명백히 균형을 벗어난 힘이다.

 

“이미 몇 번이나 실용성을 검증한 능력을 사용 못 하겠다?”

“못하는 게 아니라 해서는 안 됩니다.”

“명령이어도?”

“그럼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습니다.”

 

제1조. 센티넬은 병기가 아닌 인간으로 보편적 기본권을 보장받는다. 센티넬본부 윤리위원회 규정의 첫 문장이다. 물리적으로 목숨이 갈리는 센티넬? 가진 능력이 얼마나 출중하든 당연히 뒤집어질 거다.

 

“그깟 윤리위원회 하나 못 누를 것 같나? 그쪽으로 가면 극소수만 알고 있던 부활 능력이 대대적으로 알려질텐데?”

“저 진흙탕 싸움 좋아합니다. 하는 김에 기자회견도 할까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어차피 죽여도 안 죽는데 몸 막 굴리는 게 대수냐, 센티넬도 사람인데 어떻게 죽으란 말을 쉽게 하냐. 뉴스 댓글란이 뒤집어지고 철마다 ‘센티넬 한 명 갈아서 천 명 구하기vs센티넬 인권 지키고 백 명 죽기’ 따위로 싸워댈 게 눈에 선했다. 전영중이라면 위에 구멍이 나 앓아누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가이드는 아니었다. 성준수는 언제든 쌍뻐큐와 고소장을 날릴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절충안은?”

“없습니다. 전영중 센티넬의 임무 열람과 조율 권한, 이전과 동일하게 요구합니다.”

 

허. 본부장은 기가 찬다는 반응이다. 어린놈이 건방지다고 생각할까. ‘가이딩 능력은 떨어지면서 센티넬 하나 잘 잡아 각인한 주제에.’ 성준수는 쉽게 자신을 깎아내리던 말을 떠올린다. 본부장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타인의 험담에 흔들리던 것도 스물 중반으로 끝이었다.

 

“알았으니 나가봐.”

 

바짝 긴장했던 몸이 풀어졌다. 다 들어주겠다는 항복이다. 원하는 바를 얻어낸 성준수가 전영중을 보았다. 아까부터 말 한마디 없던 놈은 눈을 마주치자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이제야 제가 아는 전영중의 얼굴이었다. 어디 하나 나사 빠진 얼굴.

축객령에 전영중이 들어올 때처럼 엉덩이를 받쳐 안았다. 본부장님 앞에서 이래도 되나 잠깐 고민했지만 오늘은 그런 컨셉이었으니까. 환장의 커플처럼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안겨 가다 문에서 잠깐 숙인다. 그래도 머리는 박으면 안 되니까.

집으로 가는 택시에 타고 나서야 전영중은 어깨를 들썩였다. 뭐야, 왜 이래? 툭 건들자 신호라도 된 듯 와하학 웃음을 터트렸다.

 

“준수 욕 안 하고 길게 말하는 거 너무 웃기다!”

“이 씹, 그럼 본부장님 앞에서 이새끼 저새끼 해야겠냐?”

“이것 봐, 나한테는 바로 욕하면서!”

“야, 야 이 새끼가 진짜! 기껏 너 좋은 일 해줬더니 뭐가 어째?”

 

주먹으로 어깨를 후려치는데도 전영중은 아픈 티조차 내지 않았다. 앞자리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웃던 놈이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와 도망치지도 못하게 허리를 붙잡는다. 얘 진짜 왜이래? 웃음기가 잔뜩 배인 눈에 눈물이 달려있었다.

 

“그래서 너무 좋다고. 키스해도 돼?”

“여기 택시야.”

“해도 돼?”

 

미친 새끼. 제게 거의 올라탄 놈을 보다 대각선 앞의 운전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룸미러에는 택시 기사님의 이마만 비쳤다. 시발 진짜. 부러 몸을 더 미끄러트리며 제게 기울어지는 동그란 뒤통수를 당겼다. 기사님,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오늘의 처음이자 마지막 진상 손님이길 바랍니다. 살포시 닿은 입술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전영중이 급하게 고개를 기울여 밀착한다. 최대한 조용히 키스하려던 노력도 소용 없이 이내 살덩이가 질척하게 얽히는 소리가 샜다.

 


 

믿은 내가 병신이지. 성준수는 헬기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안전벨트를 채웠으니 떨어질 리 없는데도 뒤에서 잡아당긴다. 전영중은 진작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금 뛰어내린 새끼는 안전벨트도 낙하산도 안 한 맨몸이었다. 잡을 거면 그 새끼나 잡지 그랬어. 헤드셋을 벗어 던진다. 프로펠러 소리에 귀가 멀 것 같다. 백업팀이 주워 건넸지만 성준수는 받지 않았다. 고막이라도 자해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번 달만 전영중이 두 번 죽었다.

 

 

 

겨우 열린 권한으로 남이 작성한 전영중의 일지를 확인했다. 입원 2주간 여섯 번의 출동, 네 번의 부활 사용. 예상보다 한 번 많았다. 뭔 위기 탈출 넘버원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뒈질 일이 그리 많은지.

출장지 파주. 단독 파견. 자성으로 물체를 조종하는 악몽 등장. 임무 등급 S. 위치가 좋지 않았다. 인근 부대 자원과 한국전쟁 시절 유실물로 공격. 총탄에서 탱크까지 예상해 본다. 한국전쟁 유실물이면 아마 지뢰랑 포탄. 점이 아닌 면으로 능력을 펼쳐 대응했을 거다. 능력 소모량은 빨랐을 테고, 악몽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일대를 지워버리고 리타이어. 전영중이 서 있던 곳은 9제곱미터의 도로유실 피해만 있었다.

두 번째 서해. 아산만에 국지적 쓰나미 발생. 임무 등급 S. 시발, 여기에 굳이 소멸 능력인 애를 데려다 썼다고? 악몽은 처리했으나 서해대교 위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행방불명. 작전시간 한 시간 후 문방리에서 발견. 복장 소실로 부활 사용 추정. 이날 반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영중이가 물을 무서워하던가.

양심이 있는지 그 이후 임무는 쉬웠다. 설악산. 등급 A. 임시 담당 가이드 동행. 임무 종료까지 00시간 34분 소요. 가이딩(점막접촉) 진행하였으나 컨디션 난조.

복귀하지 않고 삼척으로 이동하여 지원. 등급 B. 소요 시간 29분. 부활 사용.

4일 후, 인천. 등급 A. 소요 시간 37분. 가이딩 거부. 컨디션 난조.

같은 날, 과천. 등급 C. 소요 시간 16분. 부활 사용.

기록을 읽을수록 성준수의 표정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나는 센티넬을 죽으라고 임무에 배치한 적 없어.’ 본부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초반 임무의 미스매치를 제외하면 전영중은 스스로 목숨을 내다 버리고 있었다. 이 좆같은 새끼, 한 번만 더 뒈지면 죽여버린다는 말에 그는 화답했다.

 

-준수야, 사랑해.

 

날 헬기 구석에 던져넣고 맨몸으로 뛰어내릴 때도 그런 같잖은 사랑 고백을 했다. 준수야, 사랑해. 헬기가 크레이터 위에서 호버링한다. 천천히 강하하는 성준수를 알몸의 남자가 올려다본다.

지상 1미터를 남겨두고 멈춘 로프 위에서 시선이 맞닿았다. 아직 깁스가 단단한 다리로 점프는 당연히 무리였다. 점프는 무슨, 헬기에서 내동댕이쳐질 때 아파 죽을 뻔했는데. 도와달란 말도 못 하고 입술만 짓씹는 성준수를 전영중이 곱게 안아 내려놓았다. 개새끼. 진작 이럴 것이지. 성준수가 자켓을 벗어 건네자 허리춤에 묶는다.

 

“성준수, 이거 너무 작아.”

“뭐라도 둘러주면 고마운 줄 알아, 새끼야.”

“헬기에 담요 없어?”

“너같이 아무 데서나 깨벗는 새끼 덮을 담요 사라고 세금 걷는 줄 알아?”

“나도 세금 많이 내는데.”

 

하여간 한 마디도 안 지지. 개 같은 입술을 막아버리려는데 움켜쥔 목덜미가 꿈쩍도 안 한다.

 

“뭐야? 키스하게 이리 와.”

“지금 가이딩 안 해도 되는 거 알잖아.”

“네가 언제부터 가이딩 때문에 키스했다고.”

“하기 싫어.”

 

하기 싫어? 개가 똥을 끊지 전영중이 키스를 마다해? 진심이냐는 듯 쳐다보자 웃지도 않고 으쓱이고 만다. 재수 없는 제스쳐. 안 하면 네 손해지 내 손해냐. 그럼 말라는 듯 대신 팔을 전영중의 목에 감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손이 성준수를 받쳐 안고 로프에 발을 걸었다.

 

“그러게 뭐 하러 다친 다리로 내려와. 덮을 거나 던지고 말지.”

“이 새끼가, 네가 와달래 놓고 까먹었냐?”

“안 그래도 돼.”

“아, 한참 안 그러더니 요새 왜 이리 좆같이 굴지?”

 

헬기에 가까워질수록 프로펠러 소리에 목소리가 묻힌다. 전영중이 입 모양만으로 대답한다. 안. 들. 려.

 

“시발, 들리는 거 다 알거든?”

 

푸하하. 전영중이 그제야 웃음을 터트린다. 높게 안은 성준수의 어깨에 이마를 댄다. 어쩌지 성준수. 역시 네가 너무 좋나봐. 이번에야말로 아무 소리도 안 들렸을 텐데 성준수가 답한다. “나도 알아, 새끼야.”

 

 

 

성준수의 통장에서 한 달에만 500만 원이 또 증발했다. 1회 250만 원짜리 전영중 목숨값이 두 번이다. 다시 안 사도 된다는 머리통을 한번 치고 약지에 커플링을 끼워준다. 나 거지꼴로 노숙하는 거 보고 싶으면 또 죽든가. 덤덤하게 말했지만 월급쟁이 신세에 카드값이 빠져나가는 날이면 손이 떨렸다. 이 새끼, SS급 센티넬이 되더니 금전 감각도 증발해 버린 게 틀림없다. 250만 원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요즘에는 차라리 돈을 쓰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차라리’. 본부에 들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매칭팀에 불려 가서.

 

“전영중 센티넬과 각인 끊는 건 생각해 보셨나요?”

 

이딴 질문을 받으니까.

 

“아니……. 안 끊는다구요.”

“최근 가이딩 횟수가 현저히 줄었어요. 이럴 바에는 전영중 센티넬과 각인을 끊고 담당으로 돌리는 게 인력관리에 효율적이에요. 그러면 성준수 가이드도 여러 명을 케어할 수 있고.”

“이거 매칭팀장님도 동의한 건입니까? 저 아픈 동안 일반 가이드와 매칭했을 때 효율 떨어진 건 봤어요?”

“그건 각인한 가이드가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씹…… 전영중한테는 물어봤고요?”

“성준수 가이드 의견을 따르겠다던데요.”

 

그중에서 가장 화나는 건 이 부분이다. 전영중은 성준수에게 자꾸 선택을 미뤘다. 이 관계의 주도권이 제가 아니라 성준수에게 있다는 듯 책임을 넘기며 마음을 떠보는 수작이다. 아직도 날 사랑하냐고. 각인을 하네 마네 매일 싸웠던 연애 초기처럼.

 

“안 끊어요. 담당 전환 안 합니다. 다음엔 화낼 거니까 더 묻지 마세요.”

 

안 그래도 바빠 뒤지겠는데. 다친 다리 때문에 몸의 피로도는 빨리 쌓이고 가이드 업무에 재활까지 병행하니 쉴 시간이 부족했다. 원래라면 병가 감인데 누가 국내 유일 등급인 탓에 그러지도 못한다. 임무 조율이라도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으면 제일 좆같은 미션만 골라대서 맡길 수도 없었다.

 

“너 요새 왜 그러냐?”

“내가 뭐?”

“서운한 게 있으면 말을 하든가. 왜 배배 꼬인 거 티 못 내서 안달이냐고.”

“서운한 거 없는데.”

“그럼 각인 끊으라는 말 왜 거절 안 해?”

“네가 끊고 싶을까 봐. 가이딩도 그다지 필요 없는데 다친 다리로 나 쫓아다니기 힘들잖아.”

 

전영중이 제 얼굴만한 보울에 시리얼과 우유를 쏟았다. 저 좆같은, 배려하듯 떠보는 개수작. 몇 년에 걸쳐 겨우 고쳐놨더니 도루묵이다. 죽다 보니 대가리가 맛이 갔나.

 

“전영중. 나 너 사랑해.”

“그래? 기쁘당.”

 

전영중이 시리얼을 씹으며 말했다.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그딴 말을 한다. 평소라면 준수야, 나 뭐 잘못했어? 혹시 어디 아파? 온갖 호들갑을 떨었을 놈이.

 

“섹스할까?”

“……너는 무슨, 그런 말을 시리얼 먹는데 하니.”

“하자.”

“준수, 다리 부러진 자각은 있는 거야?”

“네가 움직이면 되잖아.”

“하기 싫어.”

“대딸해줘?”

“하기 싫다니까.”

“이 씨발, 왜 이렇게 빼지? 이쯤 되면 감사합니다가 나와야 맞지 않아?”

“성준수.”

 

하아. 길게 한숨을 쉬면서도 시리얼을 밀어 넣는다. 대딸보다 시리얼이 좋나 보다? 음담패설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에 한숨이 더 깊어진다. 숟가락만 놀리는 모습에 언제까지 처먹나 보자며 맞은편에 앉았다. 보울을 반쯤 비우고서야 고개를 든다.

 

“내가……. 예전처럼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떡할래?”

“권태긴가 보지.”

“아니…….”

 

기어코 전영중이 숟가락을 놓고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준수야. 왜 그렇게 모든 게 쉬워. 예전 같지 않다는데 어떻게 권태기구나 하고 말아. 내가, 내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는데.

 

“야. 너 정상아냐. 지금 존나 이상하다고. 근데 씨발 그게 당연하지.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만 죽어야 하는데 몇 번씩 죽는 경험을 하고도 멘탈이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내가 살아 돌아온 게 아쉬워? 왜 말을 그렇게…….”

“내가 언제 안 뒈져서 안타깝다 그랬어? 힘든 게 당연하니까 상담이라도…….”

 

아니다. 전영중이 바라는 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개같이 힘들었던 연애 초기에도 차라리 부부클리닉을 가자, 그런 말을 하면 전영중은 화를 냈다. 어떻게 했더라. 속마음을 꼭꼭 숨긴 이 고슴도치를.

전영중은 문제가 있으면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해결하고 싶어 했다. 본인의 문제도 그렇고, 연애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상담받자는 둥의 말을 싫어했지.

 

“영중아.”

 

그럼 정면 돌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시를 세우면 고슴도치든 제 애인이든 일단 가시를 다 뽑고 속을 헤집어서라도 마주해 해결을 봐야 했다. 전영중이 언제부터 이상해졌더라.

 

“부활, 네 능력 아니지.”

 

답은 명확했다. 처음으로 부활을 사용했을 때부터. 아프면 많이 아프냐고 엉겨 붙고, 안 아프면 안 아프니까 안아달라던 애교 많은 남친이 그때부터 데면데면 굴기 시작했다. 준수야 하고 살갑게 부르던 녀석이 성을 꼬박꼬박 붙여가며 선을 긋듯 제 이름을 읊었다. 둔한 제가 놓칠 수 없도록. 흐린 정신으로도 그 위화감만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게 구조신호일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지는 모른다. 직접 묻는다 한들 전영중은 답해주지 않을 테고. 답해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배배 꼬아 표현하지도 않았겠지. 결국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하여간 애인 고생시키는 건 도가 텄다.

 

“네가 이제와 새삼 사랑이니 뭐니 확인하려는 거 이해를 못 하겠다.”

 

얼굴을 가린 손을 쓰다듬는다. 은색 링은 약지가 처음부터 제 자리였다는 양 굳건히 자리했다. 왼손을 감싸 당기자 저항 없이 끌려온다. 전영중은 조용히 울고 있었다.

덜 사랑한다는 거, 그렇게 중요한가? 헤어질 생각도 없으면서 왜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전영중이었다. 알고도 같이 사는 내 업보려니 하고 말아야지.

 

“난 사랑의 형태나 크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널 예전처럼 널 사랑한다 아니다 말은 못 하는데, 여전히 널 제일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뺨에서부터 눈물을 닦아 올라가자 가만히 눈을 감는다. 여전히 감성적인 새끼. 내일모레 서른이면서도 곧잘 우는 새끼. 멀쩡하다가도 내 속을 뒤집어 놓는 내 개새끼.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 금지한다고 했어.”

“사랑해.”

“알아.”

“준수야…….”

 

제 손을 감싸 쥔 전영중이 입술을 내린다. 사랑해. 소리 없는 고백에 굳이 답하지 않는다. 안다니까, 등신같이. 칭얼거리는 애인의 눈을 손가락만으로 닦아준다. 그리고 손을 당겨 고인 물기를 탈탈 턴다. 준수야? 텅 비어버린 손만 든 모양새가 꼭 솜사탕이 물에 씻겨 사라진 어떤 동물마냥 맹하다.

 

“어, 영중아. 나도 존나 사랑하고 오늘 안 들어올 거니까 먼저 자라.”

“뭐?”

“외박한다고.”

 

목발을 짚고 일어난 성준수가 신발을 신기 시작해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후다닥 일어난다. 준수야, 오후 다 지났는데? 우리 방금 전까지 분위기 좋았잖아. 나 안 달래줘? 다리도 불편한데 어디 가려고? 어디서 잘 건데? 재워준다는 데는 있고? 성치 않은 다리로 본부 라꾸라꾸에서 자려는 건 아니지? 약은 챙겨가? 1초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말에 성준수는 안심한다. 평소의 열받는 전영중으로 돌아왔네.

 

“알러뷰 앤 굿나잇이다. 쫓아오면 죽어.”

 

쾅. 현관문이 닫힌다. 불규칙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린 성준수는 제가 사는 층을 올려보며 한 손으로 핸드폰을 눌렀다.

 

“교관님, 안녕하세요. ……네, 똑같죠. 전에 부탁드린 거 지금 가능할까요?”

 

 

 

성준수의 멘토였던 이현성은 뛰어난 가이드라기보다는 좋은 선생이었다. 이른 나이에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현장 파견 경험도 있었고, 제가 맡은 어린 멘티들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 써줄 줄 알았다. 의외로 발도 넓었고. 마당발까지는 아니지만 굵직한 인사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는 되었다—본인은 꽤나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서 성준수는 이현성에게 도움을 구했다. 최근 5년 사이 전담 가이드 사망 사유로 은퇴한 S급 센티넬로만 만든 리스트 중에서 만남을 주선해 주는 것. 리스트에 적힌 이름은 일반인도 알 만큼 유명인사였다. 너 이거 기밀 유출에 개인정보 유출이야. 알지? 본부 사람끼리는 기밀도 유출도 아니잖아요. 이현성의 제자는 뻔뻔함까지도 배워버렸다.

그 중 유일하게 만나겠다 답한 사람이 최세종이다. 하나같이 거물들이라지만 세상에, 최세종이라니. 살아있는 역사.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랄까? 호들갑을 떨던 녀석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덩달아 성준수도 긴장했다. 음료라도 사와야 했나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뭐 어쩌랴. 자신은 목발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는 환자인데.

벨을 누르자 대뜸 문이 열렸다. TV에서나 보던 풍채 좋은 사람이 홈웨어를 입고 나왔다.

 

“성준수 가이드?”

“늦은 시간에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괜찮아. 내가 오라고 한 건데.”

 

최세종은 곧장 악수를 권했다. 짧게 흔들고 손을 놔야 하는데 그는 여전히 꽉 쥐고 놔주질 않는다. 뭐지. 그를 보자 다시 손을 턴다. 설마, 가이딩해 보라고?

각인한 가이드가 타인을 가이딩해봤자 효율이 거의 없는 데다,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무례다. 거절해도 괜찮지만 성준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가이딩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었으니.

전영중과 달리 능력이 복잡하게 얽혀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원래 가이딩 하는 감각이 이랬나? 전담으로 오래 지낸 탓에 익숙지 않은 가이딩을 하느라 인상을 구기는데 손이 떨어져 나간다.

 

“진짜 가이드군. 어떻게 살아있지?”

“예?”

 

조롱이 아니었다. 키가 큰 편인 성준수보다도 머리 반개는 더 큰 남자를 올려다본다. 순수한 의문과 경의로 차 있던 시선에 이윽고 슬픔이 내려앉았다.

 

 

 

얼마 전 아들이 독립했다는 집은 혼자 사는 것 치고 살림살이가 꽉 채워져 있었다. 식탁에는 단란해 보이는 세 식구의 가족사진이 자리했다. 내 아들이 딱 준수 나이인데, 하며 자연스레 아들 자랑이 이어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S급 센티넬이니 자랑스러울 만하지. 아들이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잃어서 힘들어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캐모마일티가 놓였다.

 

“다른 센티넬들에겐 거절당했다며?”

“네. 선…… 아저씨께서 만나주신다고 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첫만남에 최세종은 대뜸 자길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란다.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이신 분한테 아저씨? 연예인이 친구 하자고 하면 이런 기분인가? 대한민국 최고의 센티넬을 선배님이 아닌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생각보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친구들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진 마. 다들 제 상처 숨기기에 급급해서 그러니까.”

“가이드였던 분들… 돌아가신 일 말씀인가요?”

“이현성, 그 친구한테 뽑아줬던 리스트. 전담 가이드를 잃은 S급 센티넬 외에 필터링 조건이 더 있었지?”

 

성준수는 정답에 근접한 걸 느꼈다. 최근 부자연스러운 정도의 S급 센티넬의 감소. 유사한 은퇴 사유. 그들은 대체로 출동도 거부하고 가이딩도 최소한으로만 받은 채 죽은 듯 살아갔다.

 

“전담 가이드와의 관계였습니다. 사실혼 이상의 관계인 분들로만 추린 리스트였어요.”

“잘 짚었어. 우린 다 배우자를 죽인 살인자거든.”

 

마치 내일 날씨를 얘기하듯 여상한 말투였다. 여차하면 살인자라는 말을 잘못 들었다 생각할 정도로. 차를 마시는 그의 시선이 똑바로 성준수에게 꽂혔다.

 

“그래서 궁금해. 죽었다 살아난 전영중 센티넬과, 여전히 살아있는 그의 가이드. 무슨 방법으로 둘 다 살아있는지.”

“제가 죽어야 했단 뜻입니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래. 그 일에 대해 얘기 나눈 적 없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테고.”

 

가이드를 잃은 S급 센티넬 모두—최세종의 표현대로라면 가이드를 죽인 S급 센티넬이 된다. 위협인가? 살인 예고? 그렇다기엔 최세종은 전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드러낼 필요가 없을지도. S급 센티넬이면 눈 하나 깜빡하는 사이에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구조신호를 보내야 하나.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굳은 모습에 최세종이 부드럽게 웃었다.

 

“답은 네가 아닌 영중이 친구가 알겠지. 센티넬과 악몽의 균형에 대해 알고 있지?”

“알고는 있지만…….”

 

괴물과 그것들을 제거하는 센티넬,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힘과 가이드만이 치유할 수 있는 부작용. 세계를 지탱하는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다는 추측. 이 타이밍에 그 이야기를 한다고?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그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센티넬과 악몽,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닭과 달걀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확신해.”

 

굵고 긴 손가락이 성준수를 가리킨다. 평범한 제스쳐에 왜인지 등골이 오싹했다.

 

“선명한 악의를 가진 자가 먼저 악몽을 만들어 냈다.”

 


 

새카만 어둠 한가운데에 굵고 긴 손가락이 떠 있었다. 온갖 부정한 것을 먹고 자란 듯 검은 뼈로 이루어진 손가락은 흥에 겨워 허공을 맴돌다 세 곳을 가리켰다. 검은 머리의 인형 두 개와 그사이에 놓인 새까만 칼.

 

죽여.

 

불길한 목소리가 말한다.

 

네 사랑을 죽이면 살려주마.

 

비슷하게 생긴 두 인형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나, 하나는 성준수다. 아니면 순리대로 네가 죽어도 좋고. 그것은 흡사 좋은 유희 거리를 찾은 듯 킬킬거렸다. 어느 쪽이든 그것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머뭇거리는 손에 칼이 쥐어진다. 허공을 가르자 모래시계가 생겨난다.

선택지가 많은 것도 아닌데 꼭 오래 고민하더구나. 시간이 다 되면 내 대신 정해주마. 그것이 흡사 자비를 베풀듯 속삭였다. 모래가 빠르게 떨어진다.

그제야 제게 주어진 상황을 이해한다. 성준수를 죽이면 살 수 있다. 내 모습을 한 인형을 찌르면 세상에서 사라진 그대로 죽겠지. 마지막으로 준수에게 뭐라고 했더라.

아, 너무 헤프게 사랑을 말했다. 성준수에 비하면 헤프게 내뱉는 사랑이긴 했다. 그렇지만 전부 진심이었는데. 내가 죽으면 준수는 울까. 좆같은 새끼라고 화내고 바로 다른 사람이랑 사귈 수도 있겠다. 준수는 잘생겨서 번호 많이 따였지. 그렇지만 준수 성격을 받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생각이 뻗어져 나가는 사이에도 모래는 빠르게 소진된다. 어차피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주어진 시간은 그의 사랑을 되짚어 볼 조금의 유예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늦지 않도록 자기 모습을 한 인형에 칼끝을 향했다.

 

‘그 시끄러운 머리 굴릴 거면 좀 쓸모 있게 굴리든가.’

 

연인의 모습을 한 인형과 눈이 마주친다. 새카맣고 동글한 무기질의 눈이 어쩐지 준수의 것처럼 치켜 올라간 듯 보였다. ‘영양가 대가리도 없는 생각 하느라 열량 쓰지 말고 목 위에 달린 그걸 좀 쓸모 있게 쓰라고.’ 제 머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신경질적으로 하던 말. ‘너 버티는 건 잘하잖아. 어떻게든 비벼서 존나 버텨.’ 그리고.

 

‘망설이지 마라, 멍청아.’

 

전영중이 칼을 치켜든다. 내 사랑을 죽이라고?

 

“쉽지.”

 

칼이 시커먼 독을 흘리며 심장을 파고든다. 씨발, 아픈데? 이미 죽은 마당에 또 아프면 반칙 아냐? 통증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피가 역류한다. 왈칵 솟구치는 피를 뱉어내며 전영중이 웃었다.

 

“준수는 또 사랑하면 되니까.”

 

원래 성준수보다 헤프게 사랑했고, 성준수이기에 헤프게 사랑했다. 감정을 배제한 기억을 되짚고, 눈앞의 그를 봐도 마찬가지였다. 제 다리뼈가 튀어나온 줄도 모르고 우는 성준수. 마취가 덜 깨 가물거리는 눈으로 저를 보고 웃는 성준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몸을 온전히 맡기고 걸음을 떼는 성준수. 죽음을 눈치채고 불같이 화내는 성준수. 오롯이 제 센티넬을 위해 감히 제일 높은 분과 말다툼하는 성준수.

왜 너는 한결같이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다시 사랑하려니 더럭 겁이 났다. 성준수가 주었던 애정은 이전의 사랑에 대한 호응이다. 그 감정은 이미 제물이 되어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때와 다른 마음으로 널 다시 사랑해도 될까.

전영중이 겁쟁이처럼 그를 떠본다. 아직도 날 사랑하느냐고.

그럼 성준수는 온몸으로 답해주는 것이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그렇게 악의를 제 몸에 가뒀다. 몇 번이고 죽고, 다시 악마를 마주한다. 분노했던 그것은 네 번째에 이르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좆된 거 같지?”

 

전영중은 악의가 모래시계를 꺼내기도 전에 심장을 찔렀다. 성준수가 자신을 사랑하는 한, 전영중은 관성처럼 그를 사랑할 수 있으니.

 


 

수송용 헬기가 태평양을 가로지른다. 온갖 데 불려 다니다 못해 이제는 공해상에 던져질 예정이란다. 이건 추가수당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제 몸에 하나씩 올려지는 묵직한 장비들을 입으며 생각한다.

점프수트. 무전기. 낙하산. 허리에 소형 산소통과 호흡기 두 개. 군용 나이프는 허벅지에 매며 군인이 십수 번은 반복한 브리핑을 또 한다.

낙하산은 수면이 가까워지면 벗으십시오. 머리 위로 덮일 경우에는 칼로 찢으시면 됩니다. 입수 전 미리 호흡기 끼시고, 여벌 호흡기는 파트너와 공유하면 됩니다. 안전지대에서 보트가 대기 중입니다. 악몽의 소멸이 확인되는 즉시 두 분을 데리러 갈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보트가 늦을 경우 산소통을 앞으로 돌려 안으십시오. 성준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해에 나타났던 쓰나미를 일으키는 악몽의 모체가 북상 중이었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국가 단위로 쓸려갈지도 모른다. 유체가 나타난 것만으로 얕은 서해가 뒤집히고 전영중이 죽었으니까.

파도를 움직이는 탓에 해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결국 하늘에서 낙하하며 접근하면 항공모함에서 대기 중인 물 능력 센티넬이 바다에서 괴물을 밀어내고 전영중이 지워버린다는 작전이다. 작전 자체는 심플했다. 괴물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제외하면.

원래도 상식을 벗어난 힘이었지만 최근 괴물들은 짐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본래 관측한 것보다 현장에서 겪는 괴물의 크기나 힘이 아득히 큰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참가한 임무에서 특히 더 그랬다. 전영중의 몸에 갇힌 악의 때문이라고 성준수는 추측했다. 본래라면 다른 센티넬의 몸에 옮겨 다니며 농락했을 놈이 한 사람에게 갇혔으니 어떻게든 묶인 몸을 죽이고 벗어나려 안달이 났을 것이다.

준비를 마친 성준수가 고글을 쓰고 헬기 후미로 이동하자 천천히 화물 램프가 내려간다. 풍압에 흔들리는 몸을 전영중이 단단히 안았다.

 

“그렇게 고집부리더니 결국 치유 센티넬 도움받았네?”

“너 살리려면 같이 뛰어야 한다잖냐.”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

“어. 또 지랄해 봐.”

 

심드렁하게 대답하는데 은색 반지가 내밀어진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비었다. 이 새끼가 진짜.

 

“뒤질래?”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사라지면 안 되니까 네가 갖고 있어. 혹시 모르는 거잖아.”

 

250만 원. 얄밉게 말하는 모양새에 성준수는 반지를 낚아채 제 가운뎃손가락에 끼웠다. 만약에라도 죽을 생각부터 하는 놈이 열받았다.

전영중의 약지에 맞는 반지는 성준수의 중지에 꼭 맞는 크기였다. 누구만큼이나 재수 없는 위치라고 평한 적 있었다. 딱 들어맞는 반지 두 개를 가만히 만지던 전영중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준수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턱에 주먹이 꽂혔다. 퍽! 센티넬이 아무리 튼튼해도 결국 인간이다. 두 명 분의 안전벨트를 풀고 뇌가 흔들려 정신 못 차리는 녀석의 명치를 걷어찼다. 전영중이 단번에 램프 끄트머리까지 굴렀다.

 

“그래. 나도 사랑한다, 씹새야.”

“성준수 가이드!?”

 

경악에 찬 사람들이 그를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준수는 그를 향해 걷는다. 좆같은 새끼. 또 같잖은 사랑 고백이나 하고 죽으려고. 내가 한두 번 당하냐?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는 녀석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전영중이 경사진 바닥을 미끄러져 허무하게 헬기 밖으로 떨어졌다.

 

“전영중 센티넬, 성준수 가이드. 13시 04분 31초, 임무 시작합니다.”

 

절차대로 고지한 성준수가 굳어있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산뜻하게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몸이 자유낙하한다. 전영중에게 접근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그의 양손을 마주 잡고 몸을 펼친다.

 

“준수야. 애인을 개 패듯이 패네?”

“개소리하면 처맞아야지 어쩌겠어.”

“죽을까 겁나지도 않아?”

“이 새끼가 작전대로 해도 지랄이야. 너나 제대로 해. 오늘 실수하면 목숨 두 명분 날아가니까.”

 

바람의 저항을 최대한 받는 자세로 두 사람이 몸을 나란히 붙였다. 두꺼운 구름층에 진입하자 목에 팔을 감아 매달리고 수트의 소매 틈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붙잡았다. 낙하 속도가 빨라진다.

 

“전영중. 나 꽉 잡아라.”

“당연한 소릴.”

“오버가이딩 할 거니까 능력 최대로 쓰고.”

“응.”

 

덤덤하게 말했지만 살갗에 닿은 손이 긴장으로 젖어있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결국엔 작은 실수로도 죽어버리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제게 안긴 몸을 꽉 끌어안는다. 맞닿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구름을 지나자 우울한 빛의 바다가 보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바다 밑에서부터 억지로 밀어 올려진다. 가이딩이 손목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번에도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악몽은 한눈에 담기도 어려운 크기였다.

전영중이 이를 악물고 괴물을 지워나간다. 시선을 따라 바다가, 악몽이, 구름이 길게 찢어진다. 조각난 악몽의 포효에 일으켜 세워진 물기둥이 두 사람을 덮친다. 낙하산을 펼쳐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고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운다. 낙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며 안긴 몸이 크게 흔들린다. 바투 안자 이번엔 손이 목덜미를 감싼다. 능력이 바닥나기 무섭게 차올랐다. 거대한 파도가 바로 앞에서 다른 공간으로 빨려 나가듯 사라진다. 찢어진 악몽의 잔해가 다시 바다에 충돌하기 전에 빠르게 지워낸다. 보이지 않는 힘에 잡아먹힌 그것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부릅떴던 눈을 감는다. 됐다.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멀리서 검은 점이 움직인다. 보트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거리가 제법 있어 낙하산을 움직여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준수야, 낙하산 만져야 하는데 혼자서 매달릴 수 있겠어? 대답이 없다.

 

“성준수?”

 

 

 

전영중의 능력이 빠르게 바닥나고 채워진다. 가이딩 하며 드러난 그의 싱크홀 곳곳을 꼼꼼하게 살핀다. 평소라면 능력이 차있어 살펴볼 수 없는 곳까지. 덩굴처럼 뿌리내린 각인이 한층 깊게 파고든다. 마침내 깊은 안쪽, 종양같은 덩어리에 닿기까지.

다른 걸 생각 할 여유는 없었다. 가이드의 본능이 이게 전영중을 좀먹는 악의라고 확신했다. 뜯어내기 위해 불길하게 맥동하는 것에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새카만 어둠이 부유하는 공간에 발을 디뎠다. 인형 두 개와 검은 칼이 눈앞에 놓였다. 인형을 한 손에 쥔 성준수가 이리저리 돌려본다. 나랑 전영중? 어설픈 모양새인데 제법 닮은 것도 같다. 귀엽네.

 

“어쩌냐? 지금 좆된 거 같지?”

 

대답은 없었지만 적의, 혹은 분노로 불릴만한 것이 피부를 찔렀다. 칼을 집어 든 성준수가 빤히 본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전영중은 저 악마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고 되살아나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었다. 기특한 또라이 새끼. 돌아버렸다고 생각해 본 적은 많았어도 악마까지 등쳐먹을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어떻게 한 거야?

최세종은 괴물과 센티넬의 애매한 선후관계에서 괴물이 먼저 생겨났다고 단언했다. 존재하지 않던 악몽이 생겨나고, 세상이 그것들을 막기 위해 인간에게 특별한 힘을 주었다. 최초 센티넬에겐 폭주라는 게 없었다. 스스로가 능력을 허투루 쓴다면 모를까. 그러나 어느 날부터 센티넬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가이드 능력이 발현됐다.

거기에 한가지 추측을 더했다. 악몽을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무언가는 직접 세상을 파괴해도 될 텐데 굳이 대행자를 만들고 센티넬에게 폭주라는 패널티를 부여했다. 악의가 세상에 간섭하는 방법에 어떤 제한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세종은 오류라는 표현을 썼다. 악의가 오류를 만들었고, 세상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정할 힘을 주었다는 가설. 그것이 이번에는 악몽을 비정상적으로 키워내 센티넬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센티넬과 마주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과연 전설적인 S급 센티넬이다. 최세종의 추측은 거의 들어맞았다. 전영중의 능력에 은밀히 똬리 튼 그것은 지금처럼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발견하기 어려웠겠지.

그렇다 해도 성준수가 그의 가이드인 이상 어떻게든 찾아냈을 것이다. 센티넬을 폭주로 몰아넣고, 목숨을 이용한 장난질로 살아나더라도 배우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그것이 전영중을 노렸으니까. 가이드로서의 의무를 차치하고서라도, 성준수는 감히 제 것을 건드린 이를 가만 둘 의향이 없었다. 그것이 설령 악마라 하더라도.

 

“우리 집 또라이 감당 안 되지? 나도 그래.”

 

걘 가끔 보면 진짜 개 또라이같이 굴거든. 한탄에는 애정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해볼 만하다고 귀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던지지. 성준수가 칼을 눈앞에 들어 올렸다. 공간이 떨린다.

 

“그래도 내가 간수해야지 어쩌겠냐.”

 

전영중은 오류를 제 몸에 가뒀고, 하필이면 자신이 오류에 대한 가설을 들은 채 이 공간에 들어와버렸다. 꼭 균형의 천칭이 이 오류 해결을 위해 우리를 안배한 것처럼.

칼에 가이딩을 쏟아 넣는다. 폭발적인 힘에 어둠이 달아난다. 불길한 액체를 흘리던 칼이 저항하는 듯싶더니 이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의지와 상관없이 폐에서 공기가 자꾸 밀려 나간다. 흑. 헉. 가해지는 압박에 주체할 수 없는 호흡이 괴롭다. 씨발, 그만 좀. 팔을 휘적이자 손이 멈춘다.

 

“준수야.”

 

몸이 무겁다. 체력적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전영중이 올라타 가슴에 손을 얹고 커다란 덩치로 짓누르고 있었다. 준수야아. 그가 무너지며 얼굴을 묻는다. 여기가 어디지. 여전히 짙게 구름 낀 하늘과 물살을 가르는 모터 소리. 배구나.

 

“너 심장 멈췄어.”

 

점프수트가 다 헤집어졌다. 맨살에 닿은 얼굴이 축축했다. 여전히 잘 우는 새끼. 땀에 전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너 죽었었다고.” 전영중이 거의 오열하듯 말했다.

그렇겠지. 그 공간에 들어가는 조건이 사망이라면 아마 성준수의 신체도 그에 맞게 활동을 멈췄을 테니. 머리를 누르자 울음이 가슴을 타고 전해진다. CPR 때문인지 명치가 제법 아픈데, 오열하는 애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라 참는다.

죽었다 살아난 여파인지 힘이 쭉 빠졌다. 얘는 어떻게 잘도 이런 짓을 몇 번씩이나 했지.

 

“야, 영중아.”

 

부름에 전영중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새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어있었다.

 

“강등 축하한다.”

 

언젠가부터 들려있던 있던 인형 두 개를 내민다. 못 알아볼 리 없는 인형을 떨리는 손으로 받는다. 한참 내려다보던 전영중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새카만 시선은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고 있었다. 거길 네가 어떻게 들어갔어? 무슨 깡으로? 그러다 진짜 죽었으면 어쩌려고?

얘는 진짜 생각이 이렇게 많아서 어쩌지. 잔소리가 쏟아지기 전, 가만히 검지를 입에 댄다.

쉿.

결국 아무것도 내뱉지 못한 전영중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너는 왜 죽었다 살아나도 멋있어?”

 

말도 안 되는 투정에 성준수는 헛웃음만 짓다 그를 끌어안았다. 하여간 손 많이 가는 새끼.

센티넬 본부에서 SS등급이 삭제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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