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떡볶이의 꿈을 꾸는가
가비지타임 최종수 드림
억 단위 연봉의 최종수가 만든 규리로이드는 상당히 최첨단이라 비행 능력 옵션까지 달려있어. 농구 코트에서 날고 기는 최종수도 3미터 골대 찍는 게 겨우인데 걔는 종수가 그렇게 뛰어도 닿지 않는 곳까지 날 수 있어. 이제 덩크하고 싶을 때 종수가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 우습게도 아쉬운 건 최종수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을 감지한 기체가 눈썹을 늘어트리며 피식 웃어.
이제는 너무 무거워져서 네가 들 수 없을걸?
알루미늄 날개와 엔진과 모터와... 그런데 최종수는 단념하는 대신 조금 욱하는 말투로 쏘아붙이는 거야. 너 그 말 살아있을 때도 했었어. 확실히 강규리는 찌르면 오일 대신 피 흘리는 인간일 때도 그런 말을 했었어. 그리고 그건 강규리를 본따 만든, 강규리의 뇌를 살려 넣은 안드로이드의 기억에도 분명히 있어. 손사래 치는 강규리를 최종수가 번쩍 들어올렸던 것도... 하지만 종수야, '나'는 다이어트를 할 수 없는 몸인걸.
그날 밤, 꿈을 꿨어. 안드로이드는 꿈을 꿀 수 없으니 기억의 일부겠거니 했지. 놀랍게도 꿈에는 떡볶이가 나왔어. 맙소사, 하필이면 이런 날 떠오른 게 고작 떡볶이라니. 당연히 레시피는 데이터에 실려 있었지. 고추장 소스에 떡과 어묵을 넣고 끓인 요리. 떡볶이라면서 볶아먹지 않는 이상한 요리. 그래봐야 자신은 섭취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생각이 난 걸까. 다수의 사람들이 기분이 싱숭생숭하면 이 음식을 찾는다고 했으니 어쩌면 올바른 알고리즘의 작동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작 제 모티브가 된 강규리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게 의문이었어.
캡사이신을 선호하는 만큼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반면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았던 최종수만 군말 없이 먹었었지.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지만,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그보다도 최종수의 입맛까지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지. 두 사람이 함께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야. 유사한 기록이 많지 않은 데이터라 금방 기억이 났어. 그날은 줄곧 책상에 앉아만 있었더니 살이 쪘다며 호기롭게 다이어트를 선언한 강규리가 1주일 만에 1일 권장 칼로리를 채워서 먹은 날이었어. 아, 조금은 오버했나.
이상하게 안 먹던 게 땡겼는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역시나 슬그머니 어묵만 골라먹어서 최종수가 그냥 눈치보지 말고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고 했었지. 문득 낮에 했던 대화가 이 무렵이었던 게 떠올랐어. 이제는 너무 무거워져서 네가 들 수 없을걸? 그렇게 말하며 강규리가 체중 감량을 시작하자 최종수는 탐탁치 않아 하면서도 운동에 어울려주었어.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강규리는 여전히 또래 평균보다 부피도 질량도 많이 나갔지만 폴짝 뛰어올랐고 최종수는 기꺼이 안아줬던 거야.
흘러가는 기억을 마치 잘 만든 영화처럼 멍하니 바라보며 안드로이드는 생각했어. 이건 정말 나의 기억인가? 마치 통 속의 뇌처럼 말이야. 엄밀히 말하면 이 깡통을 구성하는 모든 건 내 것이 맞지만 뇌만큼은 남의 것이지. 그래, 최종수가 '강규리'를 원하니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강규리가 아니야. 종수야, 나는 한 번 죽은 강규리가 아니라 강규리를 닮은 안드로이드라고. 기름만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 걸 보면 모르겠어?
하지만 말이야… 전혀 기쁘지 않아. 찌지 않는 몸은 빠지지도 않으니까. 이런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골대 위로 날지 않아도 돼. 덩크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네게 안길 수 있을 정도로만 뛰고 싶어. 등에 넣어둔 날개를 버리고, 무거운 엔진을 떼어내고, 모터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가볍게...
이윽고 손끝에서부터 바스러져가는 게 보였어. 마지막에 남는 건 핑크빛의, 그 사람의 뇌. 내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아… 그렇게 산산히 부서지는 꿈 속에서 안드로이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어. 엄밀히 말하면 수면이 아니라 절전 모드고, 땀이 아니라 냉각수지만 이제는 이런 표현에 익숙해졌지. 오일에 불이라도 지른 것처럼 뜨겁게 돌아가던 회로가 천천히 식는 게 느껴졌어. 안드로이드가 꿈을 꾸다니 어딘가 고장난 걸지도 모르지만, 이런 게 현실일 바에는 차라리 수리를 받는 게 낫겠어.
그런데 여전히 헷갈리는 게 있었지. 분명 거실에서 충전해두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종수 침대야. 인간들은 뺨을 꼬집어보고 통증으로 구분한다는데 깡통으로는 택도 없지. 그래서 가만히 몸을 일으키는데 딱 손목을 붙잡힌 거야. 그때 비로소 꿈을 꾸는 안드로이드는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껴. 종수 너는 여전히 잠귀가 밝구나. 잠이 깊지 못하면 꿈을 꾼다는데―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어?
팔을 당기는 힘에 이끌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며 물었어. 종수, 네가 옮긴 거야? 최종수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딱히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야. 말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전신 파츠의 무게 계산이 이루어졌어. 소수점 아래 그램 수까지 도출되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러다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했어. 너 운동선수잖아. 말을 하면서도 최신형 안드로이드는 예측을 끝냈어. 아마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쓸 확률 75% 인상을 찌푸릴 확률 68% 손을 놔버릴 확률 23%... 그러나 종수는 그중 무엇도 하지 않았고, 까만 눈으로……
내가 들 수 있다고 했잖아.
이건, 이미 들은 기억이 있는 말이다. 무거워서 못 들 거라며 도망가던 강규리를 안아들고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왔어. 거짓말. 사실은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기는 게 고작이면서. 그치만 불평하는 대신 종수 품에 굴러가 안겼어. 그 말이 너무 기뻤거든. 내 허리가 그렇게 걱정되면 앞으로 여기서 자. 응. 단단한 팔을 베고 다시 잠에 들며 이번에는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 하늘을 나는 그런 꿈. 그건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상이었지.
그럼에도 역시나 자신은 강규리가 될 수 없었지만... 괜찮았어. 날개를 떼어 달아준 종수의 품에 안겨서 본 하늘은, 오직 안드로이드만의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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