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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쟁] 매직카펫라이드

대충 술먹고 노래방에서 입술갈김

Macross Galaxy by 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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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로맨스>의 첫 챕터입니다.

<흔한 로맨스>가 성인물로 발행되어 열람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기존에 포스타입에 먼저 따로 발행했던 <매직카펫라이드>를 별도로 게시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아! 배부름!”

“근데 감독님 지갑 괜찮아요? 아까 보니 막 38만 6천원 이래 나오든디?”

“희차이. 내를 너무 우습게 보는데? 내가 그래도 니들 고기 멕일 돈도 없겠나.”

“아인데. 학교에서 대입이랑 대회 실적으로 추가 예산 편성한거 남았다카든데.”

“저도 들었는데요.”

“우우우~ 붐따 우우우~”

“마! 짜슥들이 맛있게 처묵었으면 고마 된 거 아이가?”

 

일곱 남자는 웃고 떠들며 삼겹살집을 나왔다.

 

“으, 추워.”

 

겨울이었다.

몸이 덜 풀린 상태로 운동하면 다치기도 십상에, 3학년들도 입시가 끝난 상황이라 지상고 농구부는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부산에 사는 1학년들은 훈련이 없는 당분간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고, 졸업을 앞둔 준수와 재유도 이번주에 숙소에서 짐을 완전히 빼야해서 조금씩 정리 중이었다. 당연히 팀내 불화를 막기 위한 현성의 숙소 생활 역시 쌍용기 우승 직후로 청산된 지 오래였다.

말하자면 이제 '올해의 지상고등학교 농구부'와 이별을 준비하는 기간인 것이다. 경상도 남자들과 그보다 더한 서울 남자 하나까지 더해놨으니 티를 내진 않아도 이 시간이 아쉬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헤아려주는 게 이 중에서 유일한 어른인(사회적 시선에선 그도 충분히 어린애였지만) 현성이 할 일이었고, 그는 제법 그 일을 잘 해냈다.

 

돼지고기 30인분(공기밥, 냉면 별도)을 긁는 방법으로.

 

“날도 추운데 언능 드가라.”

“넵!”

“쉬세요!”

“그래.”

“감독님 짱!”

“알았다.”

 

그리고 현성은 먼저 빠르게 사라져주는 것으로 눈치빠른 어른의 책무를 다하기로 했다. 희찬과 다은이 상호와 태성에게 노래방에 가자며 꼬드기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들 노는데 어른이 끼면 되긋나. 근데 쫌 걸리는게 있다면…’

 

3학년들이 대학에 붙었다고 술을 좀 먹었다는 점일까? 재유는 술이 센지 소주 한 병을 마시고도 평소랑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준수 금마가 성질이랑 다르게 술이 약하대.’

 

준수는 술이 약한지 재유보다 적거나 비슷한 양을 마시고도 희멀건한 얼굴이 새빨갛게 올라왔다. 물론 얼굴만 빨개지고 정신은 말짱한 경우도 있다지만, 인상을 구긴 채로 묘하게 평소보다 어긋난 자세로 선 꼴을 보니 이건 취한 게 분명했다.

 

‘짜슥이… 그만 마시라 캤는데도.’

 

첫 잔부터 목부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도 꼴에 자존심은 상했는지 기어코 재유가 마시는만큼 저도 마시겠다고 우겨대던게.

이제 갓 스물이 됐음에도 여전히 애였다.

결국 현성은 귀가하려던 발걸음을 다시 돌려 준수에게 다가왔다.

 

“준수 니 괘않나? 숙소까지 같이 가줘?”

“…저 괜찮거든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니 지금 얼굴이 벌건데. 아나?”

“아! 그냥 색만 빨간 거예요!”

“찔리니까 소리치는 거 아이고?”

“…….”

 

입을 꾹 다문 준수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개졌다. 맞네. 맞아… 모두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똑같이 생각했다.

 

“그래, 뭐…… 알긋다. 재유. 니가 있으니 머 괘않겠지.”

“예 뭐… 걱정 마세요.”

“근데 재유햄도 준수햄만큼 마시지 않았어요?”

“님! 그걸 큰소리로 말하면 어떡함!”

“…….”

 

시뻘건 얼굴을 한 준수가 악귀같은 눈으로 상호를 노려봤다. 살기가 느껴지는 시선에 현성은 빠르게 나머지 넷에게 눈짓했다. 척하면 척이라고, 현성과 눈빛 교환 직후 재유는 빠르게 준수의 팔을 붙들었고, 희찬은 상호의 등짝을 쳤으며, 태성은 상호를 쥐어박았다. 그리고 다은은 공손한 자세로 얻어맞는 상호를 스크린해 준수의 시야에서 차단했다.

 

“극히 바보가 실례했습니다. 두들겨 놓겠습니다.”

 

정작 상호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준수햄 시뻘건게 안경만 쓰면 수학귀신 같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일은 준수가 폭발하지 않은 채로 평화롭게 수습이 되었고, 그제야 현성은 평화롭게 귀가할 수 있었다.

 

“준수. 가자.”

“어.”

 

재유 역시 겨울 바람에 얼굴(과 머릿속)이 빠르게 식기 시작한 준수를 붙들고 숙소로 향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햄들.”

 

희찬과 상호가 덥석 어깨를 잡아오지만 않았다면.

덩달아 어깨를 잡힌 준수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목격한 상호의 컨셉 충실한 얼굴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뭐야 시발. 또 뭔 좃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이대로 그냥 가시면 섭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이제 뭉칠 일도 거의 없을 텐데.”

“허. 니네는 그래 지겹게 보고도 또 뭉친다 소리가 나오드나?”

 

적당히 준수에게 먹금을 맡기고 이목구비로 공감이나 하려던 재유는 생각보다 놀고 싶어하는 이유가 소박하고 간절해보여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서, 머할건데. “

“역시 재유햄!”

“저희와 함께 가시면 다은 the 국힙원탑과 오직 노래만을 위해 설계된 보컬로이드 GTS-23을 보여드리죠.”

“머라카노? 내 안갈란다.”

“아 노래방 가자고요 노래방~~~!”

 

***

 

정신을 차려보니 전포를 지나 서면까지 와 있었다. 삼겹살집 인근에는 코인노래방이 많았는데, 이런 곳은 죄다 좁아터져서 가뜩이나 덩치 큰 농구부 놈들이 여섯 명이나 들어가기엔 지나치게 비좁았다. 셋셋으로 나뉘어서 방을 써볼까 싶었지만 셋은 커녕 둘둘둘 들어가야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다.

 

“이럴거면 집에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여긴 안 되긋다.”

“맞아요! 노래방은 여럿인게 제맛이라고요?”

“코인노래방 말고 일반 노래방 찾아보죠?”

“여기 너무 좁아서 화장실에서 노래하는 것 같음.”

 

그리고 둘둘 찢어서 놀 바엔 걍 집에 가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노래방이란 곳 자체가 생소한 준수와 재유도 동의할 정도였고, 상호는 결국 그냥 걷기보단 검색해서 걷자며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그렇게 찾은 곳은 네이버 지도에서 서비스를 자꾸 줘서 5시간 동안 갇혀있었다는 리뷰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 시발. 기상호 이 새끼 막 씹덕 노래 처부르는거 아니야?’

 

앞장선 상호를 따라 재유와 나란히 걷던 준수는 문득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 장면에 몸을 살짝 떨었다. 가뜩이나 한겨울이라 추운데 술기운 때문에 얼굴은 터질 것 같았고 잠이 오는 와중에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말하자면 따뜻한 곳에 누워서 자고 싶은 상태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숨쉴 때마다 나오는 입김에서까지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아 영 속이 안 좋았다. 컨디션 탓에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낸 준수의 시야 언저리에 재유의 동그란 머리통이 걸렸다. 그는 옆에 서있는 재유를 힐끗 곁눈질했다. 재유는 너무나 멀쩡한 얼굴로 멀쩡하게 걷고 있었다.

 

‘얜 술까지 세네. 존나 부럽다.’

 

툭.

맹한 생각으로 걷다보니 옆에서 걷던 재유의 어깨가 가볍게 부딪히듯 닿았다. 술에 취해 거리감이 무뎌진 탓이다. 준수는 지금 상태로 슛을 쏘면 다 나가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키도 별로 안 크면서 어깨는 벌어져 있네. 좁은 길에선 부딪힐 정도면.’

 

그런 생각을 하며 패딩에 감싸인 재유의 둥그런 어깨를 쳐다보고 있으니 시선이 느껴졌다. 재유가 어느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고 있었다.

 

“…… 나 안 취했어.”

“내 아직 암말도 안 했는데.”

“…….”

“…….”

“햄들! 다 왔어요.”

 

적절한 시기에 도착한 노래방에 1학년들을 따라서 들어가자 오래된 상가 지하에서 나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거기다가 이미 와 있던 다른 방 손님들이 노래부르면서 웅웅 울리는 반주가 머리를 울렸다. 으, 준수가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자, 재유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준수를 살폈다.

 

“준수. 니 진짜 괘않나.”

 

사실은 그냥 숙소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노래방까지 들어왔는데 술에 취했다고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건 성준수의 쓰잘 데 없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재유는 저렇게 멀쩡한데 내가 뭐가 되냐고 그럼.

 

“뭐가. 나 멀쩡한데.”

“맞나…”

“어.”

“그래, 니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래… 나 진짜 괜찮거든?”

“햄들! 신발 벗으셔야 돼요!”

“머하노? 드가자.”

“어.”

 

준수의 상태를 고려한 재유의 요청으로 그들이 받은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방이었다. 신발 두는 곳에 금세 나룻배만한 농구화 여섯 켤레가 놓였다. 장판은 노란색이었지만 겨울이라 보일러를 때는지 따끈따끈했다. 준수는 가장 안쪽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누우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했다간 죽여버릴 줄 알아…….”

 

점마 취했네. 준수햄 취했다. 취했군. 취한 듯.

꼴에 코트에서 노룩패스 주고받던 사이라고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예에 전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저 좆같은 말투는 언제까지, 시발…”

 

중얼거리는 준수의 욕설을 신호탄 삼아 1학년들은 다들 신나서 리모컨이니 노래방 책이니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각자 벼르던 노래를 예약해대기 시작했다. 누가 부를지 말지 생각도 안하고 인기 차트에서 자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때마다 무지성으로 예약을 눌러댄 희찬이 드러누운 준수와 곁에 앉은 재유에게 다가와 기웃거렸다.

 

“햄들은 안 불러요? 같이 불러요!”

“됐어. 니들이나 실컷 불러.”

“내도… 노래 잘 못해가.”

“엥 의외네. 재유햄은 맨날 노래 듣지 않아요?”

“듣기 좋은 노래가 부를 수 있는 노래랑 같다카드나?”

“오……”

“니들이나 마이 불러라. 박수는 쳐주께.”

“힝ㅠ 햄들 노래 부르는 거 보고 싶었는디…….”

 

하지만 지상고 농구부 최고의 사회성을 자랑하는 희찬에게 낄끼빠빠 스킬이 없을 리 없었다. 적당히 권유가 실패하자 그는 얌전히 물러나 광란의 1학년 무리에 금세 합류했다.

상호를 제외하면 노래방에 자주 오는 멤버들이었기에 각자의 루틴이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면 응급실, 고해, 야생화, Don't Cry 등으로 가창력을 뽐내는 공태성(놀랍게도 그는 노래까지 잘하는 재수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이나, 최신 케이팝에 빠삭해 뉴진스의 디토에 이어 에스파의 스파이시를 부르는 정희찬, 인기차트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노래방용 노래들 중에 모르는 게 없는 김다은까지. (체리필터의 고음은 어떻게 하는 걸까? 상호는 소름돋은 팔을 어루만지며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상호는…

 

유메나라바 도레호도 와캇타 데쇼오…

 

“갑분싸 애졌다.”

큰맘 먹고 이 정도는 그래도 다들 알겠지? 하며 선곡한 노래를 취소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왹! 이 노래는 유명한 편 아님?”

“맞아, 이거 아이돌들이 커버도 여러번 했다이가. 햄 몰라요?”

“뭐라노, 관심 없다 그런데…”

 

이마다 니 아나타노 코토노 유메오 미루…

 

“갑자기 역겨움. 그만 말하셈. 왹!”

“씨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랄이고. 니는 그 왹인지 먼지 빙시같은 소리좀 그만 처할 수 없나?”

 

와스레타 모노오 토리니 카에루요니…

 

“왹! 안됨. 없으면 맛이 안 삼.”

 

다행히 태성과 희찬의 쉴드로 노래를 완곡한 상호는 괜히 민망함에 물만 들이켰다. 덕택에 어느새 디지몬 극장판 오프닝을 열창한 다은의 손에 잡힌 건 빈 물병 뿐이었다.

 

“엇, 물 다 떨어짐.”

“아 글게요. 누가 이래 다 마셔뿟노?”

“남일처럼 말하지 마셈!”

 

아는 노래든 모르는 노래든 신나서 달려들어 부르다보니 카운터에서 사온 생수병들이 금세 동나 있었다. 그냥 버틸까, 하며 상호가 남은 시간을 체크하는데 갑작스럽게 30분 서비스 시간이 추가되었다. 이건 이제 물 없이 부르면 목이 다 갈라질 판이었다. 재유가 구석에서 조용히 박수를 치다 말고 져지의 지퍼를 목끝까지 채웠다.

 

“내가 사오께. 부르고 있으래이.”

“앗 쪼매 죄송한디…”

 

여기 붙어라 모두 모우여롸 위고 파뤼랔 리리리 라라라

 

“앗, 하필이면 판타스틱 베이비… 이건 못 참는데.”

 

유교와 흥. 한국인의 두 가지 자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희찬은 뚝딱거렸다.

 

맘을 열어라 머릴 비워라 불을 지펴라 리리리 라라라

 

“님! 뭐함! 빨리 오삼!”

 

정답은 묻지말고 그대로 받아들여 느낌대로 가 alright~

 

다은이 태양 파트를 급히 태성에게 맡기며 희찬을 찾았다. 하는 수 없이 희찬은 희드래곤이 되기 위해 유교를 버리고 흥을 택했다.

 

“그그럼 부탁드려요 햄!”

“그래.”

 

나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

 

어차피 공기가 갑갑했던 참이라, 재유는 흔쾌히 지갑을 챙기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옆에 누워있던 준수는 반쯤 잠든 상태로 귀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얼굴이 완전히 죽상이었다. 구겨진 미간이 잘생긴 얼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임마는 우승도 하고 대학도 붙었으면 이제 좀 얼굴 펼 때 안 됐나. 이래 인상을 쓰고 있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그리로 향하려는데, 준수의 입가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 씨이발… 시끄러워…”

“깜짝이야, 그러게 가잘때 가지 만다꼬 따라와서는…”

 

놀라 손가락을 거둔 재유는 이내 쯧쯧대며 혀를 차고는 준수의 귀를 막아줄 게 없나 가방을 뒤졌다.

 

‘아. 이거면 되긋다.’

 

재유가 평소에 쓰고 다니던 커다란 헤드셋이 손끝에 잡혔다. 마침 노이즈 캔슬링 성능이 괜찮은 제품이었기에, 재유는 만족스럽게 헤드셋의 전원을 켰다. 그렇게 준수의 머리에 씌워주려는데 하필이면 또 이 녀석이 맨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면 준수는 잘 때 뭔갈 꼭 머리에 받쳐야만 잠이 잘 온다고 했는데, 취해서 그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재유는 입고 있던 져지를 벗어 갰다.

 

‘뭘 어떻게 해도 백퍼 깨겠지, 임마는.’

 

준수의 찌푸린 얼굴을 내려다본 재유는 ‘깨지 않게 조심조심’ 같은 허황된 목표를 일찌감치 버린 채로 준수의 머리를 쿨하게 들어 져지를 그 밑에 받쳐주었다. 예상대로 준수가 욕을 내뱉으며 눈을 번쩍 떴다.

 

“아씨발깜짝이야갑자기뭔…… 재유? 이거 뭐야?”

“그래도 낸거 보고는 욕 안하네. 니 머리 아파 보여가. 베개 없으면 잠도 못 자는 아가 맨바닥에 누워쌌노. 시끄러우면 이거 해라.”

 

졸지에 재유의 져지를 베고 누운 준수가 멍한 표정으로 헤드셋을 받아들고만 있자 재유가 그것을 빼앗아 준수의 머리에 씌웠다.

 

“이런다고 뭐 소리가 아예 안 들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내는 아들 물 쫌 사오께.”

 

노이즈 캔슬링 탓에 뒷말의 반절을 유추로 이해한 준수는 멍하니 티셔츠 위에 패딩을 걸치고 농구화를 신고 나가는 재유의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씨바거…”

 

머리통 양쪽을 뒤덮은 헤드셋 탓에 준수는 정면으로만 누워야 했다. 아무 노래도 나오지 않았지만 재유의 말대로 귀에 직빵으로 소리가 꽂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거기에 딱딱한 바닥에서 뒤척이다가 갑자기 두께감 있는 져지가 머리를 받쳐주고, 져지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 탓인지 거짓말처럼 잠이 왔다. 재유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든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준수는 시발 체대는 술 많이 먹인다는데 난 조졌구나… 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추위로 주근깨 가득한 볼이 붉어진 재유가 페트병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자. 물. 혹시 몰라가 한 병 더 샀으니까 알아서들 마셔라.”

“감삼다!”

 

노래방 카운터가 아니라 편의점에 다녀왔는지 로고가 찍힌 흰 비닐봉지에서 대형 페트병와 작은 병음료가 하나 나왔다. 물병을 1학년들 쪽으로 밀어주고 자신은 어두운 갈색에 녹색 라벨이 붙은 병을 쥔 채 재유는 다시 준수의 곁으로 돌아왔다. 준수는 그새 잠이 들어있었다. 찌푸렸던 얼굴이 약간 펴진 상태로 헤드폰 얌전히 낀 채 정자세로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래 시끄러운데 잠이 오나? 준수 니도 참 대단하다.”

 

킥킥 웃고 준수 옆에 다시 앉은 재유는 준수가 깰까 탬버린은 저만치 밀어놓고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무리 힙스터 취향의 락 음악을 주로 듣는다지만 유명한 노래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를 수 있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줏대는 굳건해서, 후배들이 아는 노래면 같이 부르자며 마이크를 건네올 때마다 언제 따라 불렀냐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는 쑥스럽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

 

상호는 그런 재유를 유심히 보다 문득 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할쨕, 삼류 악당 캐릭터처럼 입술을 핥은 그는 메모장에 뭔가 적고는 재유를 등졌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떠서 한층 더 야비해 보이는 표정을 완성한 뒤(중요) 히죽 웃으며 나머지 세 명에게만 보이도록 화면을 기울였다.

 

“괜찮은데?”

“재밌을 것 같음!”

“흠… 나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상호의 제안이 그렇게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동안,

 

“점마들은 노래 찾기를 머 저래 작당모의처럼 하노…”

 

재유는 제법 타당한 추론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지만.

 

 

***

 

 

아무튼 그들은 막차 시간을 대충 감안해서 이런저런 노래를 우다다 예약해댔다. 여전히 노래방 주인은 그들을 집에 보낼 생각이 없는지 서비스를 넣어주고 있었다. 5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는 후기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그들은 느꼈다.

 

난 너를 사랑해 (Oh I Love you girl)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화장실 좀.”

“왜요? 그 누나 생각나요?”

“입 안 닥치나?”

 

주옥같은 명곡을 남겨놓고 사회면을 쓰레기같이 장식한 그룹의 대표 리메이크곡 1절을 마무리한 태성이 화장실에 간다며 방을 나섰다.

바톤을 넘겨받은 나머지 셋은 파트를 분배해가며 노래를 불렀다. 너무 열창했는지 집에 갈 마음의 준비를 하던 그들에게 서비스 시간이 추가되었다.

 

“아이고. 이제 고마 달라고 해야겠다!”

 

그냥 남은 시간 쌩까고 나가면 될텐데도, 희찬은 굳이 서비스 그만 넣어달라고 말하고 오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 뒤로는 다은이 마운틴 듀의 부름이 있었다며 음료수를 사러 나갔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상호마저 마이크를 들고 재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햄!”

“와.”

“여기 마이크요! 올때까지 잠깐 부르고 계세요.”

“내는 노래 안 한다니깐?”

“아 잠깐 다녀올 동안만요. 다들 델고 들어올때까지만.”

“부르나 안부르나 머 다르나?”

“아 다르죠! 돈을 냈잖아요!”

“하… 알긋다. 소리 쫌 치지마라. 준수 깨면 또 한 소리 들을라꼬 이러나?”

“ㅋㅋㅎㅎ넹. 금방 다녀오께요.”

 

마이크를 놓고 상호와 실랑이를 하던 사이, 붉은 노을은 끝나버리고 어느새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로 노래가 넘어가 있었다.

 

“끙…”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던 재유는 준수 쪽을 힐끗 보고 자는지 확인한 다음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로

날으는 마법 융단을 타고

이렇게 멋진 푸른 세상 속을

날으는 우리 두 사람

 

 

***

 

지끈.

잘 자고 있었는데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에 준수의 의식이 점점 돌아왔다. 아직 눈은 뜨지 않은 그의 귀에 헤드폰을 뚫고 들어오는 노랫소리가 너무너무 익숙했다. 꼭 눈 뜰 때부터 자기 직전까지 들어왔던 것처럼…….

 

‘재유?’

 

눈을 뜨면 정말로 진재유가 노랠 부르고 있었다.

재유는 노랠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음정은 맞지만 창법이랄 게 없어서 그냥 멋없이 국어책 읽는것마냥 부르는 느낌으로, 지극히 평범했다. 원곡 비슷하게 느낌을 살릴 줄 아는 상호, 희찬이나 꼴에 노래 좀 하던 태성에 비하면 형편없다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진짜로 취하긴 한 건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노랜데도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뚫고 전달되는 것은 제법 듣기 나쁘지 않아서 준수는 그냥 멍하니 듣고 있었다.

 

기회는 한 번 뿐 실수하지 마요

진짜로 해내고 싶은걸 찾아요

 

‘뭔, 씨발, 가사가… 꼭 2점차로 뒤질때 클러치샷같고 지랄…’

 

또 농구 생각, 이걸로 대학까지 갔음에도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말로 징글징글한 건 이런데서도 농구밖에 못 떠올리는 본인이었지만, 준수는 취했고, 자신에 대한 객관성이 무척이나 떨어졌다.

 

용감하게 씩씩하게

오늘의 당신을 버려봐요

 

‘진재유는 자길 안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결승에서 장도고 최종수 상대로 아이솔레이션 하는 애가 뭐 더 얼마나 용감하고 씩씩해야 돼?’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로

날으는 마법융단을 타고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느라 재유가 작당모의에 걸려 남이 예약해놓은 노래를 시간 때우려고 부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 커다란 노래방에 둘만 남아있다는 사실도 눈치 못 챈 상태로, 준수는 노래 가사에 재유를 대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멋진 장미빛 인생을

당신과 나와

우리 둘이

함께

 

누군가의 손을 잡고 둘만의 장밋빛 인생을 사는 진재유의 모습이 뿌연 준수의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그려졌다.

 

‘진재유라면 그럴 법 하지. 쟨 열심히 살았다고.’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게 좆같은지…….

 

어두운 노래방에서 정신없는 화면이랑 싸구려 조명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재유의 얼굴을 계속해서 스쳤다. 원색이라서 그런지,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술기운이 다시 올라오는지 머리가 쿵쿵 울렸다. 심장이 귀에서, 목에서, 머리통에서 뛰는 것 같았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진재유는 여전히 신나기보단 성실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자니 어떤 충동이 밀려왔다…….

 

‘아.’

 

기타가 빠진 파트의 싸구려 노래방 반주가 클라이막스 브릿지 파트를 알리며 흘러나올 때, 비로소 술에 취한 성준수는 무언가를 자각했다.

 

인생은

한번뿐

 

“좆됐다…”

 

후회하지 마요

 

“그만 부추기라고, 씨발…”

 

진짜로

가지고

싶은 걸

 

준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짜로 가지고 싶은 걸…

 

가져요

 

알겠다고.

 

용감하게 씩씩하게

 

“응? 준수 니 인났네. 설마 이 노래 모르진 않제? 같이 부를래?”

“아니.”

“맞나……”

 

오늘의 당신을 버려봐요

 

몸을 일으킨 준수는 재유가 건넨 마이크를 사양하는 대신 재유의 어깨를 붙들었다.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너무 크게 들려서 노래가 잘 안 들릴 정도였다. 마지막 후렴구를 부르려던 재유는 동그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수를 마주봤다. 한층 더 신나는 반주가 보컬 없이 흩어졌다. 쿵쿵대는 머릿속에서 이미 흘러가버린 어떤 마법 주문 같은게 다시 성준수의 머리를 헤집었다.

 

인생은

한번뿐

후회하지마요

진짜로

가지고

싶은 걸 가져요

 

그것마저 자우림의 김윤아 씨가 아닌 진재유의 목소리로. 정작 재유는 또 니 괘않나? 같은 말이나 건넬 것처럼 입이 벌어지고, 성준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나 괜찮은데? 그러니까 괜찮냐고 물어볼거면 그냥 말을 하지 마…

그래서 그 벌어지는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갖다 박았다.

 

으응, 앞니가 살짝 부딪히는 통에 진재유가 낮게 신음했는데 미쳤나, 기분이 좋았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 것도 모르고 입술을 계속 붙여댔다.

 

“준, 준수…”

“어, 재유…”

 

기겁한 재유가 어찌저찌 준수를 밀어내며 정신 차리라는 듯 이름을 불러도, 준수는 대답만 하고는 다시 입술을 갖다박았다. 진재유의 입 안에선 함께 마신 술과 똑같은 맛이 났다.

 

‘시발 나 진짜 술 약한가? 취하는 것 같다.’

 

화면 너머로 흘러가는 주인 없는 가사도 어느새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멋진 장미빛 인생을

당신과 나와 우리 둘이 함께

 

숨이 딸려서인지, 이 정도면 됐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무식하게 들이박던 입술이 떨어지고, 그제야 재유는 황당한 얼굴로 준수를 봤다. 준수는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지 나오는대로 지껄였다.

 

“니, 니…… 니 미칫나!”

“네가 후회하지 말라며.”

“머…?”

“가지고 싶은 걸 가지라더니…”

 

그것도 효도용 구라였냐. 서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술기운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준수는 해명할 기회도 받지 못한 채 (사실 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대로 재유의 품 안에 쓰러졌고, 익숙한 냄새 탓에 곧장 잠들어버렸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제는 진재유도 술 취한 성준수마냥 귀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으므로.

 

‘뭔일이고 이게… 조졌다 아주.’

이후 내용을 지삼즈 온리전에서 회지로 발간했습니다.

유료발행은 아래 링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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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유연한 이무기

    포스타입에서 선생님의 준쟁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늘 댓글을 남겨야지, 남겨야지 하다가 기회를 놓친 지 n개월이었습니다...ㅠㅠ 정말 부끄러운 tmi입니다만, 글리프에서 우연히 이 글을 다시 본 순간 지금이라도 댓글을 남겨야겠다 싶어서 알차지 못한 댓글이나마 남기고 가요. 당시 기준, 이 글을 시작으로 선생님이 쓰셨던 갑탐 글을 하루만에 다 읽고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장이나 호흡 사이에 느껴지는 재치와 선생님 특유의 문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멋진 연성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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