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메보즈

ISD by If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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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무너졌는지 이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고 원인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그것을 궁금해한들 해답을 찾는다 해도 지금 당장 상황은 변하지 않기에, 당장 이 몸이 3초 뒤에 존재하지 않을지 내일을 버텨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이제는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제는 믿을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릴파는 언제나 희망을 품었다. 지금처럼만 버티면 된다고, 예전의 사람을 되찾기를 바라진 않겠다며 가끔 털리지 않은 편의점을 발견하면 다 같이 행복해하고 배부르게 먹지는 못해도 같이 저녁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런 소소한 행복이라도 챙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간혹 정찰을 나갔다가 다쳐오는 언니 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져 왔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도 평소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 이미 다 털린 거 같지?”

“그러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쓸만한 무기라도 있으면 좋잖아? 릴파 너 그 야구방망이 곧 부러지겠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질질 끌려다니는 나무 방망이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검게 굳어버린 ‘사람이었던 것’들의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금이 가고 갈라져 이젠 두세 번 더 충격을 주면 부서질 듯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런 방망이를 들어 뱀눈으로 바라보니 정말 새 무기가 필요하겠단 걸 느낀 릴파는 버거의 조언을 새겨듣고 주변을 더 살피기로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세 명의 동생이 창고 같은 건물 앞을 지나던 중이었다. 아이네는 그런 동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만 같이 따라다녔고 동생들이 가는 길에 좀비가 있는지, 혹여나 근처에 다른 생존자가 없는지를 살폈다. 세상이 무너지고 이미 꽤 시간이 지난 시점이기에 지금 같을 때 만나는 생존자들은 아무래도 절대 호의적일 리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 근거지에서 잠을 자던 중 그동안 모아뒀던 걸 털릴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버거가 보초를 서 있지 않았다면 털리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네는 동생들의 안전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나던 창고는 다른 건물과 다르게 문이 열려있지 않았었다. 제법 큰 건물 같았는데 그 모습에 작은 호기심이 생긴 동생들은 멀리서 맏언니가 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먼저 주르르가 뒤돌아 물었다.


“아이네 언니! 이 건물 아직 아무도 건들지 않은 것 같은데?”

“응? 그러게. 왜 여기만 문이 닫혀있지?”


그으으러게-라며 말을 늘리며 의문을 가지게되는건 아이네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주변을 다 살피고온 버거와 릴파도 이들에게 합류했고 6명의 의견을 모아 녹슨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잠긴 거 같진 않은데 녹슬어서 안 열리는 것 같아. 그래서 아무도 안건든건가?”


먼저 창고 문을 건드려본 비챤이 괜히 문을 발끝으로 약하게 쳐보곤 말했다. 그래, 괜히 시간 뺏겨가며 힘을 뺄 일은 요즘 아무나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들에겐 조금 중요한 문제였다. 얼마 전 일로 근거지를 옮겼기 때문에 가진 것이 얼마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털리지 않은 건물은 혹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버거와 릴파가 안간힘을 쓰며 이 문을 열 때엔 그 누구도 이후의 일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겨우 열린 문 너머에는 암흑뿐이었다. 전기는 진작 끊겼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지만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으로도 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부터였을까, 아이네는 불안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우리가 굳이 도박적인 모험을 해도 될까? 하지만 이미 건물 안쪽으로 들어간 동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갤 흔들었다. 이 불안감이 제발 기우이길 바라며 동생들의 뒤를 쫓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어둠 속에 적응된 눈에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월마트같이 천장이 높고 수납공간이 많은 이 공간은 누가봐도 창고였다. 공간마다 큰 나무 상자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텅 비어있었다.


“뭐야, 그냥 빈 창고야? 괜히 들어왔네.”

“혹시 모르는 거잖아. 조금만 더 둘러보다 나가자.”


어둡고 넓은 창고에선 괜히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까지 들리는 기분이었다. 우리 6명이 아닌 그 이상의 발소리라던가 이젠 노이로제가 올 것 같은 좀비들의 피가 끓는 소리라던가. 물건을 찾는 건 동생들에게 맡긴 아이네가 주변을 살피면서 느낀 것들이었지만 애써 건물의 구조적인 형태 때문에 들리는 왜곡된 소리라고 생각했다.


“저거 또 문 아니야? 저기까지만 볼까?”


멀지 않은 곳에 문을 발견한 세구는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들 그런 세구를 놓치지않기 위해 뒤를 따랐고 마침내 닿은 문은 입구와는 다른 평범한 나무문이었다. 그럼 엽니다~하고 세구는 호기롭게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 돌렸다. 하지만 그때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문 너머의 소리를 들은 건 맏언니 둘 뿐이었다.


“세구야, 잠깐만!”


버거가 얼른 문이 열리는 걸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었다. 오히려 깜짝 놀란 세구는 뒤로 넘어지려 했고 그걸 아이네가 받아주며 문 너머를 보았을 땐 이미 한 마리의 좀비가 달려들고 있었다. 마치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가는 것 같았다. 눈앞에 좀비가 보기 힘든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 무언가 느리면서도 빠르게 지나갔다. 아니, 지나갔다가 아니라 날아갔다가 맞는 표현일 정도로 빨랐다. 세구를 뒤로 당긴 아이네가 오히려 앞으로 쏠려 가려 하자 릴파는 다른 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낡아빠진 방망이를 휘둘렀다. 피가 식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강하게 휘두룰 수 있었나 싶을 정도의 힘으로 좀비를 맞춘 방망이는 이제 제 역할이 끝났다는 듯이 부러졌고 다행히도 좀비의 머리는 박살이 나며 쓰러졌다. 손잡이만 남은 방망이였던 것을 멀리 던져버리고 릴파는 바닥에 넘어진 아이네와 세구에게 얼른 몸을 돌렸다.


“세구야, 언니, 괜찮아? 안 다쳤지?”

“어… 괜찮은데…. 안에 더 없어?”

“응, 없는 거 같아…. 다행이다.”


너무 놀라 하얗게 질린 세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굳었다. 바닥에서 그런 세구를 품에 안았던 아이네의 눈엔 세구의 뒤통수만 보였지만 이 난리 속에서도 아무말 없는 세구가 겁에 질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어, 세구야. 아이네는 괜히 그런 동생을 꼬옥 안으며 달래주었다.


그런데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방금의 소란이 주위를 끌어버렸다. 아까 아이네가 들었던 소리는 헛된 소리들이 아니었다. 갑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발자국과 그르륵거리는 소리들이 그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장 들어가!”


그리고 굳어버린 동생들의 정신을 깨워준 건 맏언니의 외침이었다. 안고 있던 세구를 르르에게 맡기고 동생들의 등을 떠밀었다. 아까 그 방 안엔 더이상 좀비가 없다는 사실을 버거가 확인했으니까 적어도 방 안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언니…?”

“언니 뭐해! 빨리 들어와!”


다섯번째로 들어간 릴파 뒤로 아이네가 들어왔어야 했는데 문이 점점 닫히고 있었다. 문은 안에서 밖으로 미는 문이었는데 아이네가 밖에서 문을 밀어 닫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행동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릴파는 힘을 주고 문을 다시 밖으로 밀어야 했다. 한순간 릴파의 힘에 아이네는 잠깐 자신이 밀려나는 것을 느꼈지만 점점 약해지는 릴파의 힘에 다시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언니!”

“내가 시선을 끌 동안에만 안에 있어. 주변이 조용해지면 나와야 해. 알았지?”

“그러니까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릴파는 다시 문을 강하게 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을 잡고 있는 아이네의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언니가 이런 힘이 있었던가? 평소 조금만 툭 쳐도 저 멀리까지 날아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문밖에 있는 사람은 마치 무거운 돌을 세워둔 느낌이었다.


창고가 워낙 컸기에 그 어둠 속에 숨어있던 좀비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들에 속이 타가는 건 문밖의 아이네도 문 안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좀비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았다는 걸 눈치챈 시점에서 소리를 죽이는 건 필요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문을 사이에 둔 언쟁은 커져만 갔지만 문이 열리기는커녕 아이네의 알 수 없는 힘으로 오히려 닫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둘 가까운 좀비들이 먼저 이 곳에 닿을 때마다 아이네는 반대손에 들고 있던 도끼로 그들의 머리를 날려버리며 부디 이 문이 빨리 닫히길 빌 수밖에 없었다.


“... 버거야….”

“언니….”

“동생들 좀… 부탁할게.”


언쟁 속에서 유일하게 입을 열지 않았던 징버거. 아이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선 누군가의 희생 없이 모두가 살 수 없을 거란 걸 버거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네는 버거를 불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너뿐이다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버거는 아이네의 눈빛을 봤다. 좁은 문틈으로 어둡지만 확연히 보였던 보랏빛 눈동자를. …릴파야. 버거는 릴파를 당겼다. 그리고 길지 않은 언쟁 끝에 릴파도 다른 동생들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단지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버거가 조금만 힘을 주자 릴파는 숨이 죽은 인형 마냥 끌어당겨 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눈은 문틈 사이에서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릴파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아이네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끌 수는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말들 사이에서 고르고 골라 무너져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릴파에게 말했다.


“릴파야, 살아남아.”


그 순간 문 저 넘어 들어올 때 닫히지 않았던 문밖에서 비춰오던 빛이 작지만 언니의 얼굴과 겹쳤다. 그 순간 반짝 빛나던 보랏빛 눈동자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니 마치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며 그 얼굴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다른 동생들의 외침 소리는 점점 먹먹해져 가는데 이상하리만큼 아이네 언니의 한마디가 또렷이 들리다 못해 귓가를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들리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저 말이 잘못들은 말이길 바랐는데 오히려 선명하게 다시 돌아오는 소리에 릴파는 믿고 싶지 않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닫힌 문 너머에서는 둔탁한 소리들과 셀 수 없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미 다른 동생들은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문이 닫히도록 둔 버거를 탓하기도 했다. 뭐하는 짓이냐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버거는 그런 동생들을 막아야 했다. 누구 하나 더 슬프고 덜 슬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상황을 견뎌야 하는 건 버거였다. 괜히 자신의 옷자락에 매달리듯 붙은 동생들의 등을 쓸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동생들의 원망을 받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릴파는 울지 않았다. 그저 닫혀버린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두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그리고 점점 문밖의 발소리가 멀어져갈 때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버거였다.


“얘들아, 나가자.”


버거는 이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더이상 동생들은 언니를 탓하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아까는 단지 누군가를 탓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잔뜩 잠긴 버거의 말에 다들 힘겹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릴파야, 가자. 일어나.”


하지만 릴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닫힌 이후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에 어지간히 큰 충격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슬퍼하는 일이 일어났고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맏언니의 희생이 헛된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버거는 릴파를 억지로 당기다시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동생들에게 릴파의 손을 쥐여주곤 문을 열었다. 다행히 문 앞엔 좀비가 없었다. 그리고 선명하게 한쪽에서 들리는 한 무리의 소리. 버거는 애써 들리지 않은 척 해야 했다. 괜히 동생들에게 더 동요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가자, 얼른. 앞장선 버거는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처지는 동생이 없는지, 쫓아오는 좀비들이 없는지. 다행히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들은 안전했다. 맏언니가 만들어준 안전이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안전이었다.


다섯명이 모두 나온 걸 확인하자 얼른 뻑뻑한 철문을 닫아야 했다. 안에는 시선이 끌리지 않았던 좀비들이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가 어느 정도인지 차마 알 수 없었고 차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버거는 더 굳세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모든 일이 끝난 후의 하늘은 짜증 나리만큼 맑았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 빛나는 하늘이 그 순간 동생들을 보며 웃어주던 언니의 눈동자와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차마 눈이 떠지지 않았다. 하늘을 볼 용기가 감히 나지 않았다. 들어지지 않은 고개는 바닥만을 향할 뿐이었고 주변을 밝혀주는 이 따뜻한 빛이 마치 언니가 안아주는 온기만같아서 릴파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한발자국 밖에서 보던 남아있던 사람들은 릴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릴파 언니.”

“언니….”

“릴파야.”

“....”


햇빛의 온기가 아닌 다른 온기가 느껴져왔다. 바닥을 쳐다보고 있는 릴파의 주위로 감싸져오는 다른 언니 동생들의 품이 느껴졌다. 그 순간 릴파는 깨달았다. 아,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닐텐데. 모두가 같이 힘들텐데.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마치 수도꼭지가 열리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입 밖으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으니 다들 괜찮다며 위로해주었다. 개중에 다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대고 믿을 수 있는건 서로 뿐이었기에 마음을 굳게 먹어야했다. 그렇기에 릴파는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 번 하늘을 보기로 했다. 소중한 사람이 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위해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다들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로 길을 걸었다. 더이상 채워지지 않을 한자리는 허전했지만 힘내보기로 했다. 그런 세상이니까 우리들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언니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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