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아마사이] 이름을 가진 마지막

뉴 단간론파 V3 2차 창작, 아마미 란타로X사이하라 슈이치

길잡이 by R

백업 :: 2021. 01


이 땅에 내린 절망은 차가운 잿빛이었다. 그것은 밤처럼 조용하게 찾아와 순식간에 세계를 덮었다. 평온을 말할 수 없는 질척한 마지막으로 다가와 만물을 움켜쥐었다. 존재하고 존재한 적 없는 모든 부정이 생을 갉아먹었다. 오롯한 적 없는 불완전한 숨이 잦아들었다. 쓸모없는 말단부터 재가 흘러내렸다. 메마른 잠이 입을 벌렸다. 아침이 찾아오기 전에 모든 의미가 덧없게도 바스러졌다. 이처럼 모든 것은 하룻밤의 적막을 깨지 않은 채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그것은 불꽃으로 타오르지도 않았고, 해일로 쓸어내리지도 않았다. 폭풍으로 부수지 않았으며 죽음으로 거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절망이었고 끝이었다. 잿빛 먼지가 흩날리는 세계에는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깥으로 드러난 모든 피부가 아렸다. 남자는 숨 쉬지 않는 잿빛 속을 거닐었다. 이 땅은 지나치게 넓었으나 고작 한 뼘의 손바닥에 지나지 않았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길이 끝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빚어진 이래로 적막한 적 없었던 세계는 시작을 흉내 내며 얼어붙어 있었다. 돌부리가 걸렸다. 끊임없이 걷고 있었을 뿐인 남자는 바닥을 짚었다. 팔과 무릎이 땅에 닿았다. 오열로 떨어지는 이마 끝을 머리카락이 간질였다. 무너진 남자는 일어서는 대신 물었다.

 

대체 왜 그런 검까?

 

허공에 태어난 검은 그림자가 남자를 짓누르며 길어졌다.

 

분명 그들을 보며 웃었지 않슴까.

 

그림자는 대답하는 대신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을 느끼며 남자는 계속 입을 열었다. 안타까움이 목소리 끝에 매달려 허우적였다. 누구를 향하는 안타까움인지 알 길이 없었다. 느끼는 것은 그런 종류였다. 죄책감, 연민, 눈을 내리깔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들.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슴까. 그래서 저는...!

 

응, 마음에 들었어.

 

그림자가 대답했다. 그림자는 웅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밤으로 착각할 만큼 깊었다. 밤을 담는 것은 고작 한 쌍의 눈이었다. 타르처럼 지독하게 깊은 우울에 스스로마저 녹아내려 잠겨 있었다. 눅눅하게 잠긴 것들에 어느 것 하나 타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하는 말에는 타오른 적 없는 재가 날렸다.

 

그들이 잘못을 했슴까?

 

잘못하지 않았어.

 

그럼, 왜?

 

그럼, 난?

 

가라앉은 목소리는 새벽이슬처럼 연녹색 잎 위에 매달렸다.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처럼 촘촘히 흘러내렸다. 그것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의 짧은 찰나로 매달렸다가 서러워하며 놓쳐버리고 굴러떨어졌다. 그럼에도 아침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깊은 어둠 위에서 죽어버린 별만이 자리 잡았다.

 

나 따위는 어떻게 대우받아도 어쩔 수 없는 거야?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줄곧 지키려 했던, 지키고 싶었던, 지키지 못한 가련한 종말. 이름을 가진 마지막이 그렇게 서글프게 묻고 있었다. 그것의 담담함에 목이 메는 것은 도리어 남자였다.

 

제가 걱정한 건...!

 

아니, 말하지 않아도 돼. 말하지 마.

 

남자의 입을 막으며 그림자가 눈을 감았다. 별은 울음조차 짓지 않았다. 메말라버린 채 바스러진 가루가 흩날렸다. 먼지조차 반짝이지 않았다. 반짝이지 않는 별은 곧 죽어버린 돌이었다. 차갑게 굳어버려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심장에 내린 것은 잿빛의 절망이었다. 더 이상 타오를 것도 없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달한 종결이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린다 해도 ……은 그러지 말았어야지. 모든 사람들이 내게 등 돌린다 해도 ……은 나를 붙잡아줬어야지.

 

모든 의미를 잃은 종말이 절망으로 내려앉았다.

 

…… 군. 나는 널 만난 걸 후회해.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는 잿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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