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쿠즈페코] 나를 함께 물들이는

슈퍼 단간론파2 2차 창작, 쿠즈류 후유히코X페코야마 페코

길잡이 by R

백업 :: 2021. 05. 14 로즈데이


#스포일러(캐릭터 비밀설정)

바람에 휘도는 꽃잎이 시야를 가렸다.

페코는 저도 모르게 찡그려지는 눈가에 손을 들어 올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가 온통 장미로 가득했다. 꽃집 앞 가판에는 평소와 달리 장미꽃만이 가득했다. 흔한 빛깔부터 여러 가지 색깔이 특이한 무늬를 그리며 어우러지는 것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미가 이곳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앞에는 장미나무 화분이 서 있고, 매장에서는 장미로 장식된 상품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의 손에는 장미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연인들의 품에는 크고 붉은 장미가, 부모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아이의 품에는 한 송이의 작고 노란 장미가. 웃음이 꽃처럼 흐드러지고 바람이 흘리고 간 장미 꽃잎들이 바닥을 장식했다. 짙은 장미 향기가 계속 새롭게 코끝을 스쳐갔다. 제자리에 서서 구경만 하던 페코가 걸음을 옮겼다.

나가는 손님을 마중하며 꽃을 정리하던 직원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연인에게 주시려고요?”

 

열이 오르는 듯한 뺨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페코는 다시 진열된 꽃들을 응시했다. 다마스크, 슈와르츠 마돈나, 그라프 레너트, …. 꽃들 사이로 보이는 둥그런 태그에 장미라고 덧붙여 적힌 것이 아니었다면 장미인 줄도 몰랐을 이름이었다. 색깔과 꽃말을 적은 종이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대부분 물이 담긴 통 안에 꽂혀 있었지만 일부는 이미 꽃다발로 포장되어 있었다. 꽃이 돋보이도록 종이처럼 보이는 연한 색지에 싸여 리본 묶인 것이었다. 다양한 품종을 사용하여 보기 좋게 포장된 풍성한 꽃다발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에 시선이 닿은 것은 장미 한 송이를 가운데 두고 작은 꽃들로 장식한 한 뼘 크기의 작은 꽃다발이었다. 꽃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고민하던 페코는 시계를 확인하고서야 직원을 불렀다.

 

“붉은색으로 줄까요?”

 

끄덕이려던 페코는 그대로 굳어 입을 다물었다. 심장을 두드리며 잔상이 서리는 붉은색에서 눈을 돌렸다. 아쉬움이 남는 눈으로 입술을 깨물고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색을 가리켰다.

 

“…흰색으로.”

 

페코는 어색하게 꽃다발을 든 채로 걸음을 옮겼다. 걷고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고서야 다시 걸음이 멈췄다.

사각으로 길게 꾸며진 분수대에서는 장난스러운 물길이 솟아올랐다. 노니는 아이들이 분수대 안쪽으로 들어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비산하는 물방울이 허공에 반짝이는 그림을 그렸다. 코에 진하게 눌어붙었던 꽃향기도 시원한 물내음을 따라 날아갔다. 주변을 둘러본 페코는 분수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학교와 거리가 있는 탓인지 익숙한 얼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풍경을 보다 밑으로 떨군 시야에 꽃다발이 들어왔다. 하얀 장미 한 송이를 중심으로 직원이 만들어준 작은 꽃다발은 전체적으로 옅은 분홍빛을 띠며 사랑스러웠다.

멍하니 시간이 흐르고, 페코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뭐냐, 페코. 왜… 벌써.”

 

고개를 들자 역광을 드리우며 익숙한 얼굴이 바라보고 있었다. 호선을 그리려는 입꼬리를 누르며 페코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도련님.”

“네가 또 이렇게 먼저 올 것 같아서 일부러 늦은 시간으로 말했는데.”

 

쿠즈류가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페코를 바라봤다. 찌푸려진 눈이 손목시계와 앉은 페코를 오갔다. 심통이 난 것 같기도, 실망한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시간을 확인할 것도 없이 페코는 태연히 사과의 말을 입에 올렸다.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기다리실까 봐.”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얼굴이 그런 페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잔잔하던 눈이 크게 뜨였다. 저도 모르게 쿠즈류를 부르려던 입이 다시 조용히 다물렸다. 페코의 시선이 향하는 것을 알아차린 쿠즈류가 황급히 손을 뒤로했다.

 

“그, 그러니까! 이건…!”

 

등 뒤로 감춰지지 않는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쿠즈류는 더듬거리며 횡설수설 말을 꺼냈다. 정확히는 제대로 된 문장보다 떠오르는 것을 전부 내뱉는 형상이었다. 큰소리를 냈다가도 손사래를 치는 쿠즈류의 모습을 페코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 쿠즈류가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긴 그가 들고 있던 것을 옆으로 휙 내밀었다. 거친 듯 조심스럽게 뻗어지는 손 밑으로 꽃잎 몇 장이 떨어져 내렸다.

 

“그냥, 받아둬.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거니까.”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향기가 감싸 안았다. 흰색마저도 물들일 것 같은 솔직한 붉은색. 그 색이 다시 심장을 간지럽게 했다.

페코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예,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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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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