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상냥한 거짓말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 오마 코키치 연인 드림

들어가기에 앞서…

  • 소규모 지인제 앤솔로지 <막장인생구제법>에 수록된 소설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유료로 돌려놓습니다.

  • 종이책에 맞춘 편집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 게임의 0~1챕터 내용이 담겨 있으며, 6챕터에서 밝혀지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유의해주세요.

역시 좆됐다.

역설적이게도, 에이사카 미스즈는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위 ‘인생작’이라 부르는, 인생을 바쳐 좋아하던 작품 속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를 행운이 아닌 불행이라 여겨야 한다니. 미스즈로서도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스즈 개인의 안타까움은 차치하고, 이 상황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가히 좆된 게 맞았다. 어둡고 음습한데다 도대체 어디 위치해있는지 모를 불길한 학원. 그리고 그곳에 납치된 17명의 학생들과 그들에게 살인 게임을 종용하는 정신 나간 곰 로봇.

어딜 보나 에이사카 미스즈가 죽도록 사랑하던 게임,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 속이었다. 앞으로 이들은 미친 곰 로봇, 모노쿠마의 의도대로 서로 죽고 죽이며 이 학원의 절망적인 진실을 알아나가게 될 것이었다. 아직은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겠지만. 아니, 미래는 고사하고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학생들의 지친 목소리가 지하를 웅웅 울렸다. 퍼뜩 생각에서 빠져나온 미스즈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지하에는 맨홀 구멍을 통해 드는 은은한 빛만이 감돌고 있었다. 젖은 공기가 피부에 축축하게 와닿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통로와 그 앞에 붙어있는 출구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학생들은 전부 상처와 먼지로 엉망이었다. 출구로 나가기 위해 몇 번이고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앞을 가로막아 오는 장애물을 넘어서지 못하고 실패한 탓이다. 물론 미스즈의 꼴도 만만치 않았다.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얀 정장은 이미 이리저리 구르며 먼지에 절어 있었다. 그러나 미스즈는 크게 개의치 않으며, 머리 매무새만 몇 번 매만져 다듬었다.

에이사카 미스즈英坂 心凉. 허리까지 오는 긴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곱게 내려묶은 상냥한 분위기의 고등학생으로, 그 라벤더빛 눈동자는 회색의 삭막한 학원 조명 아래에서도 빛바래지 않고 생기로 아롱거렸다. 상의 뒷단에 프릴이 아낌없이 달린 웨딩 정장 같은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과즙이라도 밴 듯 발그레한 뺨으로 달콤하고도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내는 섬세하고 화사한 인상의 소녀이기도 했다.

기프티드 제도에 선정되어 초고교급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허락받은 한편, 그 탓에 이곳에 끌려오게 된 불운하고 가련한 천재들. 그중에서도 ‘초고교급 파티플래너’ 에이사카 미스즈는 특히나 눈에 띄었다. 껑충 큰 키며 하얀 옷, 암담한 상황에서도 예의어린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은 이 어두컴컴한 학원에서 이질적인 화사함을 품고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단간론파에서 대략 3, 4챕터쯤 죽을 법한 캐릭터성이지만. 냉정하고 염세적인 어조로 자신을 평가한 미스즈가 혀 위에서 ‘기프티드 제도’라는 단어를 굴렸다. 당연한 상식을 읊는 것마냥 아무런 어색함이 없었다. 미스즈는 그것이 소름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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