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아마사이] M의 성배

뉴 단간론파 V3 2차 창작, 아마미 란타로X사이하라 슈이치

길잡이 by R

백업 :: 2020. 08 페이트au


#스포일러(V3 엔딩 직접 스포, 아마미 란타로 재능 간접 스포)

#페이트 성배전쟁 설정 + V3 세계관 + 날조 + 개변

그것을 발견한 곳은 무너진 건물 안이었다.

거대한 짐승이 집어삼킨 것처럼 천장은 뜯겨나가고 지탱해야 할 기둥은 삭아 무너져버린 건물이었다. 몸을 낮춘다면 잠시 숨을 수 있겠지만, 차디찬 밤공기를 막아주지도 새벽이슬을 걷어주지 못할 정도로 쓸모없는 장소. 어느 용도로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지 주변을 경계하는 이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타인의 눈을 피해 조용히 움직이던 아마미 또한, 환한 달빛 아래에 놓인 이곳을 진지 삼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이끄는 행운이 이곳을 안내했음만은 틀림이 없었다.

바닥에는 풍화되어 지워진 것 같은 어떠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아마미는 곧장 둥그렇게 그려진 무늬의 곁에 작은 단을 놓았다. 근처에 떨어져 있는 기둥 조각 중 그나마 평평한 것을 놓았을 뿐인 임시 제단이었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꺼낸 것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찢어진 검은 천 조각이 바람에 날아갈 듯 들썩였다. 바닥의 무늬가 더 이상 지워지지 않게끔 빙둘러 돌아간 아마미는 제단의 맞은편에 섰다. 벌어지는 입에서는 지긋하게도 익숙해진 구절이 흘러나왔다.

“고한다.”

선언이 떨어지자 한숨 같은 한때를 지나가면 모두 사라질 것 같던 흐릿한 무늬를 덧그리며 환한 빛이 솟아올랐다. 읊조리는 목소리에 화답하듯 무늬가 한 획씩 빛을 내며 선명해졌다. 이제는 완연한 마법진의 형태를 갖춘 무늬가 망막에 맺혔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대의 몸은 내 곁에, 내 운명은 그대의 검에.”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점에 새겨진 약속. 제게서 등 돌리지 않을 협력자를 부르는 과정이었다. 마력이 휘몰아치자 마법진 위에 내밀어진 손끝이 찌릿거렸다. 바람이 거세어졌다. 제단 위에 놓은 얇은 천 조각은 거센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날아가는 법 없이 제단 위에서 함께 빛을 뿜었다.

죽이거나, 살아남거나. 이것은 살인 게임이었고, 생존 게임이었다. 다만 규칙 속에 특별한 ‘키’가 숨겨져 있다는 것만이 이 게임이 특별한 이유였다. 생존자가 7명이 되는 순간부터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힘. 지금부터 그의 부름에 답할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소환절을 입에 올리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응축되었던 마력이 빛으로 터져나가며 폭풍과도 같은 거센 바람이 불었다. 마치 폭풍의 눈에 들어서듯, 순식간에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공기 중에 잔류하는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아무런 냄새도 싣지 않은 안개가 마법진에 남은 잔여 마력이 뱉어내는 은은한 빛에 반사되며 새벽 물안개처럼 번져나갔다. 한 번 거센 마력의 바람이 훑고 지나간 소환 마법진 위에는 어느샌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바람도 숨을 죽인 공간 속에서 검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저 홀로 흔들렸다. 목덜미를 덮는 하늘한 짧은 머리카락 아래에 가느다랗고 하얀 목이 도드라졌다.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그보다 더 창백한 얼굴이었다. 곱게 감은 눈에는 긴 속눈썹이 달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람이 가라앉고 달빛마저 집어삼키며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소리를 집어삼키며 강제로 고정된 적요가 몸을 차게 만들었다. 나타난 이의 손길은 새벽달만큼이나 고요하게 움직였다. 손을 허공에 휘젓는 동작에 어둠으로 빚어낸듯한 새카만 모자가 손에 잡혔다. 그것을 여유롭게 제 머리 위에 꾹 눌러 쓴 서번트는 새벽을 만끽하듯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서번트,”

눈도 뜨지 않은 채로 모자를 눌러쓴 탓에 아마미에게 보이는 것은 익숙한 코끝과 그 아래에 천천히 호선을 그리는 입매뿐이었다. 벅찬 감정이 밀려들었다. 새벽달을 등진 이의 그늘진 모습을 아마미는 눈에 담았다. 그가 줄곧 바라던 풍경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도 아쉽게 느껴질 만큼.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불안으로 가슴이 술렁였다. 자신이 눌러쓴 캡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던 이가 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며 눈을 마주 해왔다. 창백하게 빛을 삼키는 광기가 노란빛을 냈다.

“버서커. 나의 뜻은 너에게 진정한 승리를.”

 


 

“저는 추가 영창을 한 적이 없슴다.”

“그렇겠지? 아마미 군이 성유물을 쓰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나를 불렀는데, 대화에 방해가 될 광기 적성을 부여하려고 했을 것 같진 않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무너진 벽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있는 아마미의 맞은편에는 벽 위에 올라앉은 다리가 까딱까딱 흔들리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헤집어진 머리가 그의 불만을 내비치고 있었다. 못마땅함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아마미의 목소리에도 눌러 쓴 모자 아래에서는 노란 눈이 신이 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왜냐고 나한테 물어봐야… 캐스터 클래스가 이미 차버린 거 아닐까. 아마미 군도 알다시피 나, 적성이라고는 캐스터와 버서커뿐이고.”

아마미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기둥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바닥 위에 선을 긋거나 작은 돌을 그 위에 올려놓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들이 자아내는 것은 불규칙한 모양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마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선을 그리는 등, 저 홀로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버서커가 폴짝 뛰어내려 곁으로 다가왔다. 아마미가 고민하다 올려놓은 돌 하나를 발끝으로 툭 밀어내며 대신 그 앞에 서고는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자세를 낮췄다.

“걱정은 마. 이런 나 따위라도 아마미 군에 대한 거라면 전부 알고 있어. 도움이 될 거야.”

“버서커, 방해임다.”

“그나저나 이번은 몇 회차야? 소환의 기록은 기억으로 남지 않으니까, 불편하네. 54회? 55회 차? 아! 그래도 아마미 군이 아직 마스터로 남아있는 걸 보면 오래 지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생존하는 건 아마미 군이 잘 하는 거니까 더 오래 지났을 수도 있겠지만… 뭐어,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버서커.”

음영을 드리우며 가라앉는 아마미의 표정을 보면서도 버서커는 설렘으로 반짝이는 눈을 감추지 않았다. 도리어 도발이라도 하듯, 아마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 올 뿐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 사실이 아마미는 못내 못마땅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왜 성유물을 썼어? 쓰지 않았으면 그 영령이 다시 소환됐을 텐데. 있잖아, 아마미 군과 52회차 53회차 모두 함께한…….”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아 눈을 감아버렸다. 그럼에도 버서커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서번트를 무척 좋아했어. 아마미 군과 잘 맞았잖아. 역시 마더의 성배라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두 회차를 연달아 소환되었던 서번트라면 아마미 역시도 마음 들어 했다. 자신이 말하기 이전에 먼저 행동하고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판단력, 결코 그의 계획을 흐트러뜨리는 법 없이 모든 안배를 순차대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뛰어난 조력자. 언제나 자신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데려다주었던 믿음직한 힘. 그럼에도…

“한 번만 더 다시 소환했다면,”

마지막엔 령주를 통해 강제 퇴거 시켰던 자신의 서번트.

“이번에야말로 정말 우승할 수 있었을 텐데. 왜일까?”

아마미는 감았던 눈을 떴다. 고개를 들 필요도 없이 눈앞에서 의뭉스럽게 웃고 있는 서번트가 보였다. 비단실처럼 흘러내리던 가느랗고 힘없는 검은 머리카락이 모자 아래로 늘어지며 창백한 피부를 부각시켰다. 광화狂化의 랭크가 낮으니 이지를 보존하고 있는 것일 텐데도, 노랗게 빛나는 눈은 처음부터 줄곧 광기로 번들거렸다. 익숙한 눈매 안에 담긴 그 감정은 아마미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대답도 없이 무심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마미는 이어지는 버서커의 말에 자신의 서번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반짝이는 금색 빛가루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이내 허공에 녹아들었다. 퇴거하는 서번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던 아마미는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상대 마스터에게 겨눴다. 손에 감아둔 지저분한 천 너머로도 서늘한 금속이 선명히도 느껴졌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이 나쁜 탓에 이번 회차의 맵에서는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인 날씨는 둘째치고, 모든 것들이 황량하게도 부식된 듯한 전경이었다. 폐허를 테마로 하고 있는 회차를 고른다면 분명 누구나 이번 회차를 지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차에 따라 장검도 거뜬히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눈밭 같은 곳에 떨어져 목을 조르고 이로 물어뜯는 등 짐승 같은 공격밖에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걸 떠올린다면 적어도 무기로 쓸만한 보잘것없는 잡동사니라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회차는 최악까지는 아닐 터였다. 건물 외벽에 붙어있던 낡은 파이프를 뜯느냐고 아마미의 손이 온통 엉망이 되고, 뒤늦게 주변 정찰에서 돌아온 버서커가 그 손을 붙잡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것 정도는 사소한 일이었다.

자신의 손에 어디서 구해온 천을 둘둘 감아주던 버서커의 모습을 지우며 아마미는 재차 파이프로 상대 마스터를 위협했다.

“줄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 임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지난 회차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이번 회차에 처음 참전하는 마스터인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전략을 잘 짜고 들어온 것인지, 용케도 우승자 후보에 들어 서번트까지 옆에 끼고 있었다. 상대의 실책은 아마미를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상성이 좋지 않았던 건지 버서커를 상대로 몇 합 견뎌내지도 못하던 서번트는 그들에게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무력하게 퇴거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죽거나, 중앙교회에 가는 것.”

중앙에 생존을 구걸한다면 여러 패널티를 지게 되겠지만, 적어도 살아서 다음 회차를 바라볼 수 있을 터였다. 자신의 소원을 영원히 포기한 채 바깥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어느 쪽도 아마미에게는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중앙에 가지 않겠다면 죽일 수밖에 없슴다. 이번 회차에 방해가 되는 건 치워야 하지 않겠슴까.”

산뜻하게 선택지를 내미는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아있었다.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 강경한 태도에 남자는 비틀거리는 기운 없는 걸음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고 있던 버서커가 입을 열었다.

“이러는 게 아마미 군 답다는 건 알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도 그렇고, 매번 너무 무르다고 생각해. 그리고 있는 우승의 구체적인 형태라도 있는 걸까.”

제 곁에 선 버서커를 힐끔 쳐다본 아마미는 대답 없이 묵묵히 자신을 정비했다. 휘두르는 동안 마찰로 헤어진 손의 천을 풀러 다시 두르고 있자 버서커가 손을 뻗어 대신 천을 감아주었다. 자신의 눈보다 조금 아래, 고개를 숙인 목덜미에 미끄러지는 검푸른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흐르자, 아마미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회차를 건너오는 동안 계속 마음 안쪽에 쌓아둔 질문이 있었다.

“몇 번이나 참가했슴까.”

“응? ……그거 나한테 하는 질문이야, 아마미 군?”

마지막 매듭을 짓고 손을 떼며 버서커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은 말갛게, 그러나 단호하게. 여지를 남기지 않는 흔들림 없는 눈이 그의 망막을 채웠다. 아마미에게 남은 마지막 기억과 닮아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눈이었다.

“‘그날’부터…”

“…….”

“‘나’의 시간은 앞에서 뒤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아마미 군도 알잖아.”

버서커에게서는, 제가 바라는 답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이와 같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였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식이 부서져 혈관을 흐르는 얼음조각이 되어 흐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

자리를 옮기려 걸음을 떼는 등 뒤로 멀리 아득한 비명이 들렸다. 전투? 눈이 맞자 두 사람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양패구상을 바라도 좋았고, 그게 아니라도 살아남을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이득이었다. 소리의 근원에 인접해서는 천천히 기척을 거뒀다. 시야에,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어느 마스터가 보였다. 아까 그가 풀어준 이였다. 어디에도 저 사람을 공격했을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장을 벗어나려 발을 떼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물컹한 액체로 이루어진 바람이 그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쌔애애액.

거대한 낫이 휘둘러지는 것 같은 예기였다. 본능적으로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숙여 바닥을 짚었다.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이 거세게 흔들리고, 목덜미가 서늘했다. 가까운 엄폐물을 탐색하며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했다. 전신을 가리는 긴 로브후드를 걸친 두 개의 인형이 보였다. 달빛을 등진 탓에 스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깊게 눌러쓴 후드 안쪽에는 새카만 어둠만이 흐르는 듯했다. 아까부터 그를 둘러싸던 젤리 같은 바람이 더욱 그의 팔다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마력. 뒤늦게 인지하고서야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구축된 진지의 마력이 보였다. 바람이 이상한 흐름으로 움직였다. 두 명 중에 한 명의 손이 뻗어졌다. 손등에 그려진 붉은 령주가 보였다.

“캐스터!”

“…….”

마스터의 명령에도 검은 캐스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지만 그 안에서 뻗어 나온 시선이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캐스터! 다시금 날카로운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검은 로브가 움직였다. 허공을 걷는 듯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자신의 마스터에게서 고작 한 발짝 떨어져 나와 그들을 마주한 그림자는 잠시 미동이 없었다. 그렇다 해서 마력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를 둘러싼 마력으로 채워진 바람은 무겁고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다. 좀처럼 공격의 의지를 보이지 않자 캐스터의 마스터의 손등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 등을 돌려 재빨리 뻗어진 손이 자신의 마스터의 손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붉은빛이 사그라들었다. 천천히 내저어진 고개가 들리지 않는 짧은 말을 내뱉었다. 이내 뻣뻣하게 굳은 캐스터의 마스터는 관절조차 없는 인형처럼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캐스터는 미끄러지듯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마침내 걸음이 멎고, 손이 들어 올려졌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었다. 손은 천천히 올라가 자신이 덮어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검은 머리가 푸른빛으로 살랑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자세를 낮추고 다리에 힘을 주던 아마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안녕, 아마미 군.”

하얀 달빛 아래에서 그늘을 드리우는 것은 빛을 잃은 금색. 팔랑거리는 눈꺼풀의 움직임은 어린 짐승의 어설픈 날갯짓과 같은 가녀림이었다. 익숙한 우울감으로 물들어있는 조용한 눈동자가 기억에 남아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하라 군.”

그건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이름이었다. 그저 제 마음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울림이었다. 그립고, 슬프고, 화가 남에도 끝내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줄곧, 사이하라 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슴다.”

삭아가는 천 조각을 고이 간직하고, 이번엔 정말 승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기회마저도 내려놓은 채로 무리한 시도를 해야 했을 정도로 커다란 의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 쳤음에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그에게서 비롯된 이 작은 천 조각을 제단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만나야만 했다.

왜, 나를 홀로 두고 갔습니까?

왜,

왜, 떠나갔습니까?

내내토록 질문하기 위해 숨을 쉬어왔음에도 말을 소리로 뱉을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꺼낼 수 없었다. 대신 곁에서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거친 동작에 아마미는 속절없이 당겨졌다. 자신 앞에 서는 익숙하고도 낯선 등이 보였다.

“아마미 군은 내 마스터야, ‘나’.”

“…응, 그렇네.”

고요한 캐스터의 모습을 보며 버서커는 신경질적으로 모자의 캡을 내리눌렀다.

“성유물을 매개로 한 정당한 소환이었어. 네 쪽이 먼저 소환됐다고 해서 나를 규칙 위반으로 퇴거시킬 순 없어.”

“어쩔 수 없지. 마더는 늘…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하잖아.”

같은 얼굴이었다. 다른 표정이었다.

같은 존재였다.

……다른 존재다.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눈앞에 두고, 아마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마미를 이해한다는 듯, 캐스터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것이 담겨있음에도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아마미는 그저 알아듣지 못할 대답이 담긴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았다. 캐스터는 곧, 조용한 얼굴로 버서커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나’. 알고 있지?”

마력의 실이 뻗어나갔다. 눈에 보이는 색으로 뻗어나간 마력은 법칙을 뒤틀었다. 세계를 문장으로, 문장을 단어로, 단어를 파자로. 커다란 것은 조각내고, 조각난 것은 하나로 엮었다. 어긋난 곳은 바로 세우고, 올바른 곳은 뒤집었다. 그의 선언 아래에서 진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고 있었다. 비틀린 문장과 어긋난 규칙 위에서 금빛이 초승달을 그려냈다.

“……좌에 앉은 원본과 가장 가까운 건 나야.”

아슬하고 위태로운 선들이 그려내는 황홀하게 아름다운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미 란타로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 그 자체였다.

 

 

 


 잡담

참고로 53회차 전쟁은 사이하라가 이겼습니다. 

막판에 아마미 배신 때려서 강제로 회차 포기하게 만들고 혼자 영령 됨

날조 개변한 설정이 많아서 페이트가 저렇구나 하시면 안됨. 아래는 이 글의 설정/날조된 부분 정리한 거

모든 인류는 성배전쟁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혈통에는 마술사 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마술 회로도 전승되어 내려오지 않습니다.

소원이 있는 자는 마더의 부름에 응할 수 있습니다.

부름에 응한 자는 성배전쟁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차원에 소환됩니다. (정신체 아님) 바깥세계와는 분리된 전혀 다른 공간이지만, 해당 공간에서의 모든 일은 바깥세계에 상영됩니다. 전쟁터는 매우 넓으며, 설산과 사막이 맞붙어있는 등 매 회차마다 무작위로 설정됩니다.

부름에 응해 전쟁에 참가하는 인원에 제한은 없습니다. 지난 회차의 생존자 역시 재참전이 가능합니다. 해당 회차가 종료하기 전에는 다음 회차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싸우기를 포기한 참가자는 언제나 맵 중앙에 형성되는 교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해당 회차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며 각종 패널티를 감수하고 다음 회차에 재참전하거나, 참전권을 영원히 포기하는 것으로 바깥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생존자가 7명이 되는 순간부터 전체 맵에 숨겨진 소환 마법진이 활성화되고, 이를 찾아서 ‘서번트’를 소환해내는 것이 이 전쟁의 “키”.

회차의 우승자는 인간의 육신을 상실하는 대신 ‘영령’이 되어 ‘영령의 좌’에 기록됩니다. 전쟁의 유일한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영령이 되면 우승자가 되기까지의 업적을 마더가 판별하여 클래스 적성이 확인되고, 이후로는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능력의 형태는 업적의 내용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모든 후보자들을 태워죽였다면 불바다를 만드는 능력을 갖는 식)

영령들은 우승자 후보 7명들의 소환에 응해 ‘서번트’의 형태로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서번트로 소환되는 것은 ‘영령의 좌’에 기록된 ‘원본’이 아닌 사본입니다. 따라서 서번트로 참전한 회차의 기억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세이브 포인트는 영령이 되는 순간뿐입니다.

참가자는 죽으면 그대로 끝입니다. 서번트는 사본만이 사라질 뿐, 원본에는 지장이 없기에 자신과 맞는 마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재소환됩니다. 이는 '영령'으로 기록되는 시점보다 이전 회차일 지도 모릅니다.

서번트가 우승할 경우, ‘원본’이 바랐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전쟁 참가자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성배는 전능합니다.

서번트는 세이버, 랜서, 아처, 라이더, 캐스터, 어쌔신, 버서커의 정규 7클래스로만 소환됩니다. 클래스 적성은 업적에 따라 하나에서 많으면 7클래스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중 적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소환되는 서번트는 하나의 클래스에 고정됩니다. 한 회차에 동일 클래스는 소환되지 않습니다. 클래스에 따라 서번트의 성향은 ‘원본’과 일부 상이할 수 있습니다. 원본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 일부만이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성유물은 ‘영령’이 생전에 지녔던 물건 등, 강한 인연이 새겨진 물건입니다. 모든 소환은 소환자인 마스터와 어울리는 서번트를 성배가 지정하여 소환시키나, 소환식에 성유물을 사용하면 무조건 해당 ‘영령’이 서번트로 소환됩니다.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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