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토가나에] 건네어지는 장미의 색은

단간론파 2차 창작, 토가미 뱌쿠야X나에기 마코토

길잡이 by R

백업 :: 2021. 05. 14 로즈데이


되먹지 못한 일처리에 한껏 짜증을 낸 직후였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토가미는 화내던 것도 잊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물에 녹아내리는 수용성 물질처럼 사르르 녹아내린 감정의 변화에도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자리는 그의 성격이 보이게끔 정리되어 있었다. 붙어있는 이름표 없이도 많은 이들이 자리의 주인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자리를 뜨기 전과 모든 것이 같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토가미의 기분을 풀어지게 만든 요인이었다. 책상 위로 잘 보이도록 중앙에 놓인 빨간 장미가 보였다. 아래에 깔린 카드 겉면에 손글씨로 적힌 ‘十神’은 그의 성이었다. 이 건물 안에 유일하게 딱 한 명 존재하는, 바로 자신의! 카드를 펼쳐 보낸 사람을 확인할 것도 없는 익숙한 글씨였다.

 

“이런 걸 주려면 직접 건네주란 말이다.”

 

들고 있던 가방을 의자에 툭 던져 내려놓았다. 카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기 전 손이라도 씻을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인사를 하거나 무시를 하며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문가 근처에 놓인 파티션 너머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소란스러웠다. 눈살을 찌푸리며 힐끗 바라보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큰소리를 내며 장미꽃을 흔들며 떠들고 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나에깃치가…”

 

헛웃음을 토해내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등 뒤로 쾅! 하며 문이 거친 소리를 냈다. 다시 걸음을 옮기다 보니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상대의 브레스트 포켓에 꽂힌 장미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 상대가 살포시 웃음소리를 냈다.

 

“아아. 나에기 군이 챙겨준 모양이야.”

 

안경 아래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의 모습에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어머’하는 소리가 그를 약올리는 것만 같았다. 대충 성질을 누르며 대화를 마치고 몇 걸음을 더 옮겼을 때였다. 꽃잎이 여러 장 떨어져 앙상해진 장미꽃을 들고 울상인 모습이 보였다.

 

“으앙, 모처럼 나에기가 준 건데~!”

 

그쯤 해서 토가미의 발이 거칠게 바닥을 쳤다. 당장 일이라도 칠 것 같은 걸음이었다. 이, 눈치 없는 녀석이…!

 

 


 

 

“…피곤해. 졸려. 잘래.”

 

혼자 중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어디든 머리를 대기만 하면 당장 기절하듯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내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었다. 가물거리는 눈을 거칠게 문지르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찾아들었다. 열쇠를 꽂아 돌리자 달칵하고 잠금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 손잡이를 당기자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으, 으아악…!”

 

그림자에 떠밀린 나에기는 바닥에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거대했던 그림자와 달리 몸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문을 열자 예기치 못한 눈사태처럼 와르르 쏟아져내린 것은 줄기를 제거한 노란 장미였다. 쏟아지고도 남은 장미 무더기가 문짝의 반도 넘는 높이로 쌓여있었다. 작고 가볍지만 와글와글한 병아리 떼에 습격이라도 당한 기분으로 질린 눈이 되어 주변을 확인했다.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 스페어 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몇 되지 않았다.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잠깐 사이에 현관 안쪽에서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가 팔짱을 끼고 나에기를 내려봤다. 노란 꽃들 사이에 파묻힌 나에기 앞에 빨간 장미 꽃다발이 툭 떨어졌다.

 

“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 나에기.”

“토가미 군, 꽃은 고마운데… 이걸 다 어떻게 치워야….”

“그게 끝이냐?”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내려보는 시선이 싸늘했다. 당장 그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은 시선에 나에기가 뺨을 긁적거렸다. 말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도로록 굴리자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졌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제 옆에도 가득 떨어진 노란 장미를 파헤쳤다. 근처 어림을 헤집다가 붙잡히는 것을 쏙 당기자 분홍 장미 꽃다발이 딸려 나왔다. 읏챠, 작은 기합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에 떨어져 있던 붉은 장미 다발을 챙겨들고 노란 장미 사이를 헤쳐 걸어갔다. 가라앉는 파란 눈을 바라보며 분홍색 꽃다발을 품에 안겨주었다. 배시시 태평하게 웃어 보이자 그를 보는 한쪽 눈꼬리가 다시 삐쭉 솟아올랐다.

 

“토가미 군한테만 주는 건데. 받아줄 거지?”

“…….”

 

꽃다발을 챙겨 들고서야 입꼬리를 아주 조금, 나에기가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끌어올린 토가미가 휙 돌아서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가득 쌓인 꽃무더기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여전했다.

 

“……받아주지. 정리는 됐으니 들어오기나 해라.”

“아하하…. 여긴 우리 집인데, 토가미 군.”

 

노란 장미들 사이에서 붉은 장미를 끌어안고, 나에기가 흐드러지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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