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토가나에] 다시 한번 스쿨모드

단간론파 2차 창작, 토가미 뱌쿠야X나에기 마코토

길잡이 by R

백업 :: 2020. 09 선생x선생au


“아, 나에기 선생님. 인사하세요. 경제 교과에 새로 부임하신……”

 


 

“나에기 쌔앰…….”

“어어, 응.”

정신없이 수업자료를 정리하던 나에기는 자신을 부르는 학생의 목소리에 습관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책상 모서리에 손가락을 걸고 곁에 쭈그려 앉아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목덜미를 덮고도 내려오는 노란 머리는 꼬랑지를 묶었고, 피어싱을 착용하지는 않았지만 귀에는 빼곡하게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그래도 교무실에 들어온다고 채웠을 셔츠 단추는 여전히 목에서부터 세 개쯤 끌러진 상태였다. 셔츠 안에 입은 반팔 티의 목깃 안쪽으로 깜빡하고도 아직 들키지 않은 은색 체인이 보였다. 나에기는 기꺼이 학생의 장신구 착용을 눈감아주었다. 쭈그려앉은 다리의 바지 주머니에서 삐쭉 흘러내린 구겨진 넥타이는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용케도 교문을 통과했다 싶은 차림새를 지적하는 대신, 제법 애교스러운 학생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에 나에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상담?”

“…네에-.”

“먼저 상담실에 가 있을래? 선생님도 금방 갈게.”

웃으며 책상 위에 쌓여있는 종이들을 가리켰다. 그쪽을 힐끔 보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학생이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모습까지 지켜본 나에기는 다시 정리를 이어나갔다. 이건 끝났으니까 3반에게 가져가라고 하면 되고, 이건… 아, 복사 잘못됐다. 다녀와서 다시 복사실에 넘겨야겠네. 적당히 분류를 끝내고는 포스트잇 위에 해당 유인물을 가져가야 하는 반들을 적어 맨 위쪽 장에 붙여놓았다. 이러면 반장이나 과목 부장들이 가져갈 테니까. 그리고는 자신의 수업 시간표와 현재 시간을 확인하고는 쫑쫑대는 걸음으로 교무실을 나섰다.

교무실 문을 열고 곧장 걸음을 내딛으려던 나에기는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사람과 마주쳤다. 얼굴을 가슴팍에 부댈 뻔 하는 것에 놀라 몸을 급히 뒤로 빼자 균형을 잃고 기우뚱 몸이 넘어갔다. 버둥대며 허공으로 손을 휘젓는 것보다 먼저 단단한 손이 팔을 붙잡아 세웠다.

“나에기.”

“고, 고마워… 깜짝 놀랐네.”

팔을 풀어주었음에도 아직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것인지 굳어버린 모양새로 눈을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혀를 차자 화들짝 놀란 나에기가 시계를 다시 확인하고는 허겁지겁 문밖으로 나갔다.

“그런 꼴로 어딜 가는 거냐.”

“아, 토가미 군. 혹시 나한테 온 거였어? 으, 으응… 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얘기해도 될까? 상담이 있어서.”

그런 꼴? 제 차림새를 둘러보았다.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건 보이지 않았지만 넥타이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타이를 고쳐매고는 토가미를 바라봤다. 토가미의 표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좀 더 찌푸려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고 있던 나에기는 생각했다. 으응, 평소처럼 그냥 하는 말이었나 보네. 토가미가 알았더라면 뾰족하게 바라봤을 생각을 하는 것에 찔려 나에기는 이내 평소처럼 눈을 누그러뜨린 채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교무실에 있을 거지?”

“…그래.”

“점심시간 전에는 올게.”

그러고는 잰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뒤에 남겨진 토가미는 닫히지 않은 교무실 문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담임도 아닌 놈이 상담?”

건방진 나에기.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에기는 교무실에서 상담실로 향하는 짧은 복도를 지나가면서도 저를 붙잡는 수많은 아이들을 힘겹게 떼어놓으며 웃어주고, 제 이름을 부르며 팔을 휘두르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기 바빴다. 피리를 부는 것도 아닌데 줄줄이 따라붙는 아이들에 묻혀있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한심한 나에기. 마음 같아선 교무실 앞에서 소란 부리지 말라며 다가가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은 심경이었다. 열려있는 문을 닫으러 다가왔던 선생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나에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참 많죠? 학교도 나오지 않고 싸움이나 하고 다녀서 골치였던 애들도 나에기 선생님 앞에서는 애교 많은 강아지가 따로 없다니까요. 덕분에 올해도 한숨 돌린 선생님들이 많으실걸요. 선생님이 봐주신 아이들은 정말 눈에 띄게 태도가 좋아지거든요. 자기네들끼리 소문이라도 난 건지, 요즘도 저렇게 종종 상담을 받아주곤 하시네요. 아, 들어오실 때 문 좀 닫아주세요.”

사람이 좋은 건지, 말이 많은 건지. 어떻게 보아도 살가울 리 없는 토가미의 얼굴을 보면서도 넉살 좋게 할 말을 마친 선생은 부탁까지 남겨두고는 자리를 떴다. 설명이나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기에 순순히 듣고 있던 토가미는 헛웃음을 흘렸다. 말하자면, 폭탄전담반인거군. 스스로 작게 중얼거리고 나니 더욱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표정이 가라앉았다. 필요 이상으로 책임감으로 뭉쳐있는 녀석이니 충분히 이해는 갔다.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지나치게 못마땅한 일 투성이였다. 눈앞에 없는 이를 향한 잔소리를 제 안에 눌러담으며, 토가미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같은 복도를 쓰는 교실들에서 일제히 문 열리는 소리가 거칠게 울리고, 우르르 복도 앞으로 뛰어 내려가는 학생들의 발소리와 고함 소리가 이어졌다. 중간중간 선생의 것으로 생각되는 목소리가 섞여들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열리지 않은 교무실의 문이 들썩거리고 바닥 전체가 울렸다. 창밖으로는 벌써 빠져나온 학생들의 와글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날 기미도 없이 제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책상 위에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고 있던 토가미는 몇몇 선생들이 무리 지어 빠져나가고 교무실마저도 조용해지고서야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반댓쪽 복도 끝 교실이었다. 문 앞에는 ‘사용 중’의 팻말이 붙어있었다. 못본 척 문을 열려 문고리에 손을 걸었다. 열어젖히려는 순간 문 틈새로 낮게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토가미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겼다가, 손을 놓았다. 문 옆으로 비켜나 벽에 등을 기대었다. 팔짱 낀 손목 위에서 초침 흘러가는 모양새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내용이 들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울음소리를 조용히 다독였다.

분침마저 몇 번 움직이고서야 닫혀있던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작게 코를 훌쩍이며 학생 하나가 빠져나갔다. 벽에 기대어 있는 토가미를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학생이 교실 두 개만큼 멀어지고 나서야 토가미는 열린 문 안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할 말이 있다면 해봐라, 나에기.”

“아, 아하하. ……왔어?”

그의 모습에 놀란 것인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으로 때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놈의 점심시간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정말 미안해. 토가미 군의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당연하다. 또 웃는 얼굴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마라.”

문가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서 바라보자, 썼던 종이컵이며 사용했던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그를 힐끔 바라보고 어색하게 웃기를 반복했다. 정리를 끝낸 나에기가 문을 잠그고 나와 제 옆에 설 때까지 내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토가미는 더 이상의 군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나란히 서서 식당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복도와 교실에는 줄을 서기 싫어 노닥노닥 시간을 때우고 있는 아이들이 일부 보였다. 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교실 뒷문을 지나치기만 하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반응에 나에기는 그저 민망하게 웃을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시작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식당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학생 줄 사이에 끼어들며 -미안 미안, 선생님이 먼저 좀 먹을게. 거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여라, 나에기.- 식판을 집어 들었다.

“아이고, 선생님. 팍팍 드시고 크셔야겠어요.”

볼 때마다 매번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자기 앞에 있는 반찬을 한웅큼 무더기로 올려주곤 하는 조리원에게, 나에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잘 먹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옆 칸으로 한 걸음 옮기고서야 방금 전에 받은 반찬의 종류를 확인한 나에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한심한 놈.”

제 식판을 보고는 옆에서 핀잔을 놓는 토가미에게 나에기는 다시금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둘은 창가 쪽에 위치한 교사 전용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칸막이 하나 놓이지 않은 같은 식당 내부였지만, 어쩐지 교사용 테이블에 앉을 때면 식당의 소란스러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곤 했다. 잘 먹겠습니다. 버릇과도 같은 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수저를 들었다. 반찬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며 고개를 들자, 맞은편 자리에서 젓가락을 움직이는 토가미의 모습이 보였다. 똑같은 젓가락을 사용해 똑같은 급식을 먹고 있을 뿐인데도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태도였다. 홀로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토가미의 등 뒤로 보이는 교복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고 이상하면서,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현실감이 넘쳐서. 나에기는 그만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토가미는 잠시 표정을 달리했다. 그리고는 이유를 묻는 대신, 조용한 얼굴로 태연하게 나에기의 식판 위에 쌓인 반찬 중 한 종류를 제 입으로 가져갔다. 웃고 있던 얼굴 위로 옅은 민망함으로 번져나갔다.

 

“아…….”

식당을 나와 본관 연결통로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나에기는 갑자기 작은 탄식을 뱉으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옷에 달린 작은 주머니들을 더듬더니 비어있는 제 손을 보며 잠시 고민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나서 그 모습을 알아차린 토가미도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보는 것으로 질문을 대신했다.

“상담실 열쇠를 자리에 그냥 두고 왔나 봐. 미안 토가미 군. 금방 다녀올 테니까, 바쁘면…….”

“하아. 그런 말을 할 시간에 다리를 움직여라.”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나에기는 미안! 큰 소리로 외치고는 다시 식당을 향해 허둥지둥 뛰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토가미는 통로 가장자리로 비켜났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틀자, 식당 건물 입구와 주변에 조성된 풍경이 시야 안에 담겼다. 눈을 감고 바람을 쐬며 쉬는 대신, 토가미는 팔짱을 낀 채로 제 팔뚝 위에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며 노려보듯 전경을 응시했다. 자기네 무리끼리 짝지어 지나가는 학생들 다수가 토가미를 보고 구부러진 허리로 단정치 못한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이를 지적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무리의 목소리 큰 학생들이 우르르 그의 곁을 지나갔다.

“아~ 맞다. 선생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들 중 일부가 토가미 앞에 멈춰 섰다. 팔짱도 푸르지 않은 채로 고개를 까딱였다.

“헛소리를 할 거라면 가서 예습이라도 해라. 너랑 너, 다음 시간이 내 수업일 텐데.”

“치사하다. ……그게 아니라! 선생님은 토가미면서 뺏어 먹을 게 없어서 어떻게 쪼끄만 나에기 쌤 거를 뺏어 먹어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지.”

아이들은 등을 기댄 그를 둘러싸며 번갈아가며 입을 열었다. 월등히 낮은 시야에서 고개를 들고 삐약 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이 토가미 뱌쿠야가, 누구의 것을? 황당한 이야기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기에 어디 한 번 들어보자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에 신난 것인지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봤다니까요. 식당 선생님이 잔뜩 준 거 선생님이 다 뺏어드셨잖아요!”

“맞아맞아.”

“정말 나빴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며 말하고는 그의 대답은 들은 듣지도 않은 채로 저들끼리 소란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모양새에 토가미는 그저 헛웃음을 조용히 흘렸다. 조용히 찌푸려졌던 미간을 헛웃음이 곱게 펼쳐놓고 갔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그런 토가미가 입을 닫고 무시하는 것이 찔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이들은 기세등등하기 짝이 없었다.

“미안, 토가…… 경제 선생님. 기다리셨죠.”

헤프게 웃으며 다가오던 나에기는 토가미를 구석에 몰아넣듯 모여 서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며 못마땅한 듯 눈을 꿈질하면서도, 토가미는 별다른 말없이 있었다.

“쌤, 저희는 쌤 편이에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복 주머니에 꼬깃하게 박아놨던 사탕이며 껌 따위를 꺼내서 나에기의 손에 꼬옥 쥐여주었다. 반짝이는 눈들은 안쓰러움으로 그득했다. 그러더니 양팔을 들어 힘내라며 파이팅 자세를 취하고는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다시금 우르르 몰려 지나갔다. 순식간에 지나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군것질거리를 손에 들고 서 있는 나에기에게 토가미가 손짓을 했다. 나에기가 곁에 나란히 서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심한 놈. 못 먹는 건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라.”

“아하하, 그 얘기 중이었구나. 그렇지만… 호의로 주신 거잖아.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다고 그걸 미련하게 꾸역꾸역 먹으며 지냈나?”

“아,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나에기 쌤! 제가 들어드릴게요!”

“이건 제가요!”

“아, 아니…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 한 무리가 쪼르르 달려와 곁에 달라붙었다. 나에기의 품에 가득 들려있던 유인물과 각종 자료들, 노트북 가방 따위를 강탈하다시피해서 대신 나눠들고는 당황하는 나에기의 등을 쭉쭉 앞으로 밀었다. 괜찮다며 돌려받으려 고개를 돌리자 아이들은 짐짓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쌜쭉한 표정을 지었다.

“쌤 손목을 보세요. 그렇게 가녀린 손목에게 이런 무거운 걸 들게 하느니 쟤처럼 튼실한 손목한테 맡기는 게 낫죠.”

“너어! 다시 말해 봐!”

“양심이 있으면 네 눈으로 쌤 손목을 봐라. 얼마나 가느냐?”

“아- 근데 솔직히 나에기 쌤은 못 이기겠다.”

“아하하… 그건 칭찬은 아닌 것 같네…….”

나에기에게는 능청을 부리면서 저들끼리는 투닥거리기 바빴다. 화를 내는 아이마저도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으레 있는 장난처럼 과장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얄밉게 구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스며있었다. 보고 있기 무섭게도 장난을 치고, 자신들만 이해하는 이상한 타이밍에서 나란히 웃음을 터트렸다. 혹여 문제 되는 관계일까 걱정하는 교사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기는 그저 저를 사이에 끼우고 노는 친한 관계의 아이들을 보며 웃음으로 호응할 뿐이었다.

교실을 찾아 걷다 보니 수업 시작종이 울었다. 복도에 나와 떠들고 있던 아이들도 하나씩 교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곁에 있는 네 아이들을 바라보자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웃음을 삼키며 “너희 몇 반이었지?” 묻자, “6반이요.” 순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에기의 수업이 있는 교실과 그리 멀지 않은 교실이었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이제 교무실에서 나오셨을 테니 괜찮으려나. 도통 먼저 교실로 갈 생각을 않는 아이들을 보며 나에기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 근데 쌤, 손목시계 쓰시네요.”

시간을 확인하려 슬쩍 손목을 들여다본 것을 곁에 있던 한 아이가 알아차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아 이건… 그냥,”

“어 잠깐. 야야야, 이거 봐. 이거 그거 아냐? 아까 사가구치가 보고 있던 잡지에서…….”

“……그 미친 시계?”

“색깔만 다른 것 같지 않냐? 그거 상표 기억하는 사람?”

대답은 들은 체도 않고 저들끼리 쑥덕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에 나에기는 눈을 도로록 굴렸다. 요즘 애들은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구나. 대화에 낄 수가 없으니 어색한 표정으로 걸음만을 옮겼다.

계속되는 아이들의 소란에 몇 해 전부터 제 손목을 차지하고 있는 손목시계를 봤다. 매끄러운 광택의 은색 시계는 조금 섬세하게 생겼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는 듯 보였다. 딱히 보석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것처럼 기술력 넘치고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시계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형태에 테두리는 연한 금빛이었고, 마찬가지로 금색인 시침과 분침, 그 위에 놓인 초침은 푸른색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식 같은 원형 몇 개가 판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적힌 브랜드 네임마저도 나에기로서는 이전에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다시 살펴봐도 잘 만들어진 평범한 직장인의 시계,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허…… 쌤, 금수저예요?! 그렇게 안보였는데!!”

뜬금없이 목소리가 커진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던 걸음마저 멈추는 터라 덩달아 복도에 멈춰 선 나에기가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들이 서 있는 복도 옆 교실로 들어가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쳐 머쓱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아이들을 챙겨 이동했다.

“……학교 다닐 때 졸업선물로 받은 거야.”

“누구한테요? 이거 가격이요…!”

“이토, 다카하시, 사사키, 시미즈.”

“……힉!”

제 이름들을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에 아이들은 대번 어깨를 움츠렸다. 저희와 같거나 조금 작은 나에기를 붙잡고 그 뒤에 숨으려는 시늉을 해 보이던 아이들은 이내 찔끔 놀란 기색으로 눈만 데구르르 굴리고 있었다.

“종 치는 소리를 못 들었나?”

“이, 이것만 나에기 쌤네 반에 가져다드리려고…….”

“내게 두 번 말하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여지를 두지 않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에 아이들은 시무룩해졌다. 귀가 있었다면 축 쳐졌을 얼굴로 나에기에게 초롱초롱 도움의 눈빛을 보내다가 계단을 마저 오르며 혀를 차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시 나에기의 품에 유인물이며 노트북 가방 따위를 안겨주었다. 타다닥. 서둘러 자기네 반으로 뛰어가는 발소리 여럿이 멀어졌다. 서둘러 뛰어가는 와중에도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나에기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갑작스레 돌려받은 터라 어색하게 쌓인 짐들이 곤란해 잠시 서있자, 제게로 돌아왔던 짐이 단번에 다시금 무게를 덜어냈다. 고개를 들자, 들고 있던 경제 교과서 한 권 위에 윤리 과목과 관련된 짐을 가득 쌓아 올리고 있는 토가미가 눈을 마주 해왔다.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눈에 나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다고 말하려던 나에기의 눈에 토가미의 손목에서 반짝이고 있는 시계가 들어왔다. 시계의 테는 선명한 금색에 안쪽 판은 광택 없이 묵직한 검은색이었다. 그 안쪽을 장식하고 있는 금색 선들이 보였다. 힐끔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토가미와 무척이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문득, 그 시계와 제 손목의 시계를 번갈아보던 나에기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토가미 군….”

“뭐냐.”

“내 시계 말이야.”

그렇게 조심스레 운을 떼자, 나에기의 손목에 매달린 시계로 시선이 뚝 떨어진다. 시계를 묵묵히 바라보던 시선이 시곗줄 모양으로 지난여름을 지나며 조금 탄 피부 위에 닿았다. 무뚝뚝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평소의 얼굴임에도 어딘가 누그러진 분위기가 났다. 때문에 나에기는 평소라면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꺼내지 않았을 질문을 입 밖으로 내었다.

“혹시, 비싼 거야?”

슬몃 찌푸려진 눈이 안경 너머로 사라졌다. 정면 복도 어딘가를 노려보는 듯했던 토가미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진즉 수업종이 울린 복도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교실을 찾아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뒤쪽 멀리에서 들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학생들이 입을 모아 인사하는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다. 아직 교사가 들어가지 않아 우당탕 소리를 내는 교실들을 지나가며, 저를 두고 먼저 움직이는 토가미의 곁으로 나에기가 종종 걸어 다가왔다.

“서민에게는 서민에게 어울리는 게 있는 거다.”

“…그래도 혹시, 토가미 군이니까 엄청 비싸다거나…….”

스스로도 멋쩍어하며 입을 열었다. 빈손으로 뺨까지 긁적이는 얼굴은 난감해 보이기도, 시무룩해 보이기도 했다. 제 눈치를 보며 걷는 나에기를 알아차리고도 한참을 침묵하던 토가미는 작은 한숨과 함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툭 제자리에 멈춰 서며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예전에 끝나지 않았나? 사용하지도 못할 걸 산 적 없다. 적당히 쓰다 망가지면 수리할 생각 말고 버려라.”

말을 끝내고는 들어가라며 교실 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2학년 4반. 나에기가 들어가야 할 교실이었다. 아직 얼떨떨해하는 나에기에게 토가미는 오는 길 동안 자신이 대신 들고 있던 것들을 차곡차곡 하나씩 품에 돌려주었다. 나머지를 다 돌려주고 마지막에 남은 제 경제 교과서를 손에 쥔 토가미는 팔짱을 끼고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나에기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토가미의 태도에도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버리라는 걸 보면 비싼 건… 아니겠지? 확실히 아니다, 라는 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사고를 연결해낸 나에기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아왔다.

“그렇지?”

“그러니 모셔둘 생각 말고 제대로 차고 다니라는 뜻이다.”

잠시 갸웃하고는 문을 붙잡은 나에기는 어서 교실로 가보라며 손을 흔들며 교실로 들어갔다. 닫히는 문을 보고 있던 토가미는 옆 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심한 짓을.”

나에기의 것과 꼭 닮아있는 시계가 조용히 째깍거렸다.

 

 


 

 

“선생님. 1반이요.”

“아, 으응. 거기 내려놓고 갈래? 고마워.”

2교시 종료 종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교시 수업을 마치며 시킨 대로 과제를 걷어온 학생 하나가 책상 옆에 종이 한 뭉치를 툭 올려놓았다. 펜을 잠시 내려놓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통에서 막대사탕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뒤에 친구를 같이 따라왔을 뿐인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쥐어주자 환호성들이 터져 나왔다. 사탕을 받기 전, 허공을 보며 잠시 코를 꿈질거리던 학생 하나가 대수롭지 않게 툭 말했다.

“토가미 쌤도 2교시 수업이 없으셨나 봐요.”

“어?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아이의 시선이 힐끔, 책상 위에 놓인 빈 머그잔 위를 향했다. 덩달아 나에기도 시선을 옮겼지만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은 자신의 책상뿐이었다. 아이가 씩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죠.”

“물어봐도 다들 그렇게만 대답하더라.”

정말 모르겠다며 나에기가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듯 말하자,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 아이는 코끝을 다시 찡긋했다. 진하고, 무거우면서 톡 쏘는 듯한 독특한 커피향이 났다. 카페들은 물론이고 교무실에 구비된 저렴한 커피들에서는 전혀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이 커피 냄새를 풍기는 것은 학교에서 단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학교에서 딱 한 사람뿐이었다.

 

 


 

“에… 나는 버스 타고 다니면 된다니까…….”

이제는 제법 제 지정석처럼 느껴지는 조수석에 앉아 나에기는 작게 웅얼거렸다. 토가미 군 차에 익숙해지니까 다른 선생님들 차는 얻어타지도 못하겠어. 익숙해진 풍경이 차창 너머로 빠르게 지나갔다. 흔들림도 하나 없이 미끄러지듯이 차선이 달라졌다. 핸들을 돌리며 조수석을 힐금 바라본 토가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번거롭지 않아? 토가미 군 여기서 멀리 살았잖아.”

“……이 토가미 뱌쿠야가 운전하는 차에 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나 해라.”

러시아워의 도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량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도로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지만 주변을 달리는 차량들마저도 달라붙지 않고 멀찍이 떨어지는 까닭에 버스를 타는 것보다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 차를 얻어탔을 무렵, ‘오늘은 차들이 끼어들지도 않고 운이 좋네.’ 하고 태평하게 생각했던 일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이제는 그 까닭을 이해하는 나에기는 눈을 굴려 운전석을 힐끔 훔쳐볼 뿐이었다.

짧지 않은 출근길은 교내 주차창에 들어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까지도 매끄럽게 빈자리를 찾아 들어간 차에서 내리면 그제야 제대로 오늘도 하루가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별다른 대화 없이 나란히 학교 건물을 향해 걸었다. 본관의 현관을 통과하려던 중 교통지도용 깃발을 끌어안고 나가는 학생들이 그들 곁을 지나갔다.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나에기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사실에 고개를 들어 토가미를 바라보았다. 시선 탓인지 곧장 조용한 시선이 마주 해왔다.

“오늘, 토가미 군이 교문지도 아니야?”

“……시간은 괜찮다.”

“교무실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기 번거롭지? 가방 줘. 내가 가져다 놓을게.”

손을 내밀자 토가미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듣기 싫다는 듯 눈까지 찌푸린 채로 조용히 그를 바라보던 토가미는, 이내 코웃음같은 한숨과 함께 제 가방을 넘겼다. 핀잔과 함께였다.

“둔한 놈.”

“뭐? 왜 또…….”

“모르면 됐다.”

짧게 대화를 끊어버리곤 토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휙 소리가 나게 돌아서 교문으로 돌아나갔다. 투덜거릴 새도 없이 남겨진 나에기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잊은 것 같기에 말해주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 의아했다. 별것 들지 않은 가방이라도 두 개를 들고 있는 것은 제법 무게가 나갔다. 읏차. 가방을 추스리고 교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본관 현관문을 통과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위층으로 나있는 계단 옆 복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자기들끼리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다. 눈을 빛내던 아이들이 쪼르르 옆으로 다가왔다.

“나에기 쌤, 토가미 쌤이랑 같이 차타고 오세요?”

“역시 동거하시는 거죠?”

“그 차 비싼 거죠? 타면 어때요?”

와글와글, 정신없을 정도로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더라면 추궁이라도 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좀처럼 비켜줄 생각을 않는 아이들에 나에기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하나씩 대답했다.

“아니야. 동거라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웃으며 하는 소리에 “에에-!”, 아쉬워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황이 아직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단지 그 모습이 귀여워 나에기가 작게 웃었다. 진짜냐며 뚱하게 되물어오는 아이는 입술을 삐쭉 내민 상태였다. 답에 만족하지 못한 눈길들이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어쩐지 익숙한 눈들이었다.

“같이 차 타고 오는 건… 으응, 괜찮다는데 경제 쌤이 아침마다 자꾸 데리러 오네.”

바라보던 눈들이 동그랗게 변했다.

“혼자 오기 지루해서 그렇겠지. 경제 쌤도.”

아이들의 표정이, 눈이 가늘게 변했다. 잠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가 싶더니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나에기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살가운 학생들이라면 종종 하는 장난이라 나에기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러자 반대쪽 팔에도 팔짱을 끼는 아이가 있었다. 어라? 평범하게 팔짱을 꼈다기보다는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고서야 나에기는 눈을 도로록 굴렸다.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웃음을 꾹 눌러 참는 모양새 같기도, 심상찮은 장난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선생님 자리에 잘 가져다 놓을게요.”

기어코 그의 손에서 가방 두 개마저도 빼앗아갔다.

“얘들아…?”

먼저 팔짱을 꼈던 아이가 반대 팔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행동대장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챙겨 든 몇 명은 웃음을 숨길 마음도 없는지 함성을 지르며 계단을 두 세 칸씩 밟아 뛰어올라가고, 남은 아이들은 팔을 쭉 뻗으며 구호 같은 것을 외쳤다.

“가자!”

나에기의 양쪽에서 팔을 붙든 아이들이 그를 끌고 갔다. 등 뒤에서도 그를 밀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힘을 주어도 여럿의 합동을 버틸 재간이 없는 터라 다치는 대신 순순히 따라가면서도 나에기는 계속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선생님 수업 준비…….”

“에이, 오늘 오전 수업 없으신 날이잖아요.”

“……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요! 그러니까 나에기 쌤은 오늘 잔소리하지 말기예요.”

아이들은 좀처럼 나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의뭉스러운 얼굴로 개구지게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씩씩하게 복도를 지나가던 걸음은 어느 문 앞에서 멈췄다. 나에기가 찾아본 적 없는 위치의 교실이었다. 고개를 들어 팻말을 확인하자 ‘탈의실’이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이리 오너라! 문을 걷어차듯 열며 외치는 장난치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문 안쪽에 있는 것은 책상 등이 놓인 것이 아닌 벽을 따라 죽 늘어진 커다란 사물함들이었다. 지워지지 않은 옅은 땀 냄새가 공간에 배어있었다. 교실 중간에 나란히 놓인 긴 벤치형 의자 위에 학생 몇 명이 앉아있었다.

“납치해왔어?”

“그것도 토가미 쌤은 전혀 모르게!”

안쪽에 있던 아이가 화색이 되어 묻자 왼쪽 팔에 팔짱을 끼고 있던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짧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얘들아, 곧 조회시간인데.”

그때까지도 나에기는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쌤, 치마 입으실 생각은 없으세요?”

“야. 하지 마 하지 마. 분명 치마 뒤집는 애 있을 거라고. 그랬다간 경제 난리 날걸.”

“구해왔는데… 아깝다.”

나에기를 단단히 붙잡고 서있는 세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이 벤치 옆에 다가가 쑥덕거렸다. 나에기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고는 자기네들끼리 떠들며 결론을 내렸다. 예비 종이라도 쳤다면 그걸 핑계로 털어나와 볼 텐데 시간이 이른 탓에 기대할 수도 없었다. 다양한 표정들에 담긴 것은 명백한 기대였기에 일방적으로 혼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얘들아… 선생님 좀 놔주면 안 될까…….”

“네.”

“이거 입어주세요!”

아이들이 내미는 것은 자기네들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교복이었다.

“…….”

“오늘 만우절이란 말이에요!”

“나가 있을 테니까요, 갈아입기 전에는 안 열어드려요!”

우르르 몰려나갔다. 얼결에 탈의실에 교복과 함께 남겨진 나에기는 닫히는 문을 떨떠름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로 문 앞을 지키는 것인지 문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커다란 잡담들이 들렸다. 1층 탈의실인 까닭에 창문마저도 단단히 막혀있었다. 꼼짝없이 갇힌 꼴이었다. 조금 강하게 나갔어야 하나 싶어 뺨을 긁적였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두고 나간 교복을 집어 들었다. 언뜻 보기에도 대충 사이즈가 맞을 것 같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입었던 교복을 보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복잡한 감정이었다. 한숨을 쉬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에기는 목을 조여매고 있던 넥타이부터 끌러내렸다.

똑똑. 닫힌 문을 두드리자, 바깥쪽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다 갈아입었으니까 열어줄래?”

“거짓말이면 다시 닫을 거예요!”

문이 아주 약간 열리고 문틈새로 눈 여러 개가 그를 바라봤다.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들은 그대로 나에기를 끌고 나갔다. 작년에도 그랬듯, 교실 복도에는 만우절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가득 보였다. 자기네들끼리 남녀 교복을 바꿔 입은 아이들이 보이고, 각각의 교실들 안쪽에서도 책상 미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기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낄낄거리며 웃는 아이들도, 놀라서 쫓아오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이라는 부름 대신 장난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기세등등한 아이들에게 휘말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덩달아 나에기마저 들뜨는 기분이었다. 이런 장난은, 그가 졸업한 키보가미네에서는 하지 않았으니까.

얼떨결에 밀려 들어간 교실에는 벌써 책상의 숫자가 하나 늘어있는 상태였다. 아이들은 그중에서 복도 창가 쪽에 위치한 자리에 그를 앉혔다. 나에기에게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주입시키는 중에도 아이들은 부지런히 장난에 디테일을 더하고 있었다. 출석부 위에 가짜 페이지를 끼우고, 몇 번이고 리허설 비슷한 일을 했다. 눈을 굴려 칠판 근처를 바라보자 이 반의 시간표가 보였다.

1교시, 경제.

그제야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얼추 이해한 나에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오전 수업이 없으니까… 딱히 수업 방해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괜찮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

아이들과 상의가 된 것인지, 조회시간에는 담임 교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1교시 시작 종이 울리자 교실 안이 바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종소리와 동시에 앞문이 열렸다. 못마땅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얼굴의 토가미가 반듯한 자세로 걸어 들어왔다. 긴장과 기대가 가득한 탓에 아무도 소리 내고 있지 않음에도 교실 전체가 웅성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래전 그의 수업을 교실 뒤편에서 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신선한 기분이었다. 토가미의 입이 벌어졌다. 출석부를 펼치고 위에 적힌 이름대로 하나씩 또렷하게 부른다.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나에기 마코ㅌ……. 누가 출석부에 손을 댔지?”

낮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네.”

출석부에 손을 댄 것이 아이들이 준비한 만우절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찌푸리는 토가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기는 아이들이 시킨 대로 조용히 손을 들어 대답했다. 출석부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늘 봐왔던 시선임에도 어쩐지 부끄러워, 나에기는 작게 미소 지었다. 토가미의 입새로 작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교실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나에기와 들떠있는 교실 전체를 특유의 눈으로 무심하게 훑은 토가미는 다시 입을 열였다.

“나기사 유리에.”

“……네!”

별다른 말없이 출석체크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아이들이 잠시 웅성웅성 대며 소란이 더해졌다. 토가미가 잠시 한 텀을 두고 말하기를 멈추자 금세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정말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수업을 시작했다. 나에기는 안도했다. 그리고,

“그래, 나에기. 너라면 알고 있겠지.”

“저기…….”

“대답해라 나에기.”

후회했다.

어차피 들어온 김에 도중에 나가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대신 얌전히 앉아 참관하려 했을 뿐이었다. 확실히 토가미의 수업은 훌륭한 구석이 있었다. 다만, 질문이 필요한 시점마다 모든 질문은 나에기를 향했다. 가끔 질문을 던져놓고 나에기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면, 어쩌면 평소보다 더 지독한 질문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고 나에기는 생각했다. 물론, 수업에 있어 질문이 필요한 시점임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것을 이해했기에 나에기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엉성한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답하고 나면 토가미는 정답의 여부와 설명을 덧붙여주고는 수업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주의를 환기하는 건 좋지만…… 나일 필요는 없잖아…!’

조금 억울해질 지경이었다. 덕분에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을 즈음에는 나에기는 긴장으로 흐물흐물 늘어졌다. 책상 위로 물먹은 천처럼 늘어지는 나에기에게로 그림자가 졌다.

“학생들 앞에서 한심한 꼴을 하고 있지 말고, 일어나라 나에기.”

책상에 뺨을 부빈 채로 팔을 들어 올리자, 작은 한숨과 함께 듬직한 힘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힌 채로 흐늘거리며 뒤따라나갔다. 직접 수업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다. 둘을 보며 장난을 치는 복도의 아이들을 지나쳐갔다. 조금 주변의 밀집이 줄어들자 토가미가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꼴이냐.”

“이런 차림이면… 역시 토가미 군한테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설명 대신 하핫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토가미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토가미는 안경을 끌어올리고는 성큼, 나에기에 앞서 걸어 나갔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기가 뒤를 쫓아갔다.

“어? ……토가미 군 화났어?”

 

 


 

 

“야야아, 우리 윤리 괴롭힘당하는 거 아니야?”

“하? 누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냐?”

친구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경제 교사의 날선 핀잔에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이는 창백한 낯의 윤리 교사가 보였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관계로만 보였다. 표현하자면 사고를 치고 교무실로 끌려가고 있는 학생의 모양새였다. 두 사람이 지닌 보통 이상의 체격 차도 이런 감상에 손을 더하는 요소였다. 언제나 그랬듯 경제의 얼굴은 짜증으로 잔뜩 찌푸려진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봐봐. 경제 온 뒤로 매일 윤리랑 둘이서 다니잖아. 성향도 전혀 다른데다가 친해 보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구박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불우한 사건을 조우한 시민처럼 적당한 사명감과 상대에 대한 걱정 따위를 내비치는 친구의 모습에 건성으로 상대해 주던 아이는 혀를 찼다. 둔하기로서니 이렇게 둔할 수가 없었다.

“너는 저기 토가미 선생님이 안보이냐?”

“그러니까 그 토가미가 주도해서……!”

“에휴. ……너는 저기를 좀 보고나 말해.”

대충 말해주었음에도 전혀 눈치챌 기미가 없이 정의감에 불타는 친구의 모습에 아이는 미간을 짚었다. 저런 녀석인 건 알았지만, 급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끔 말을 걸어오니 제 속만 답답해졌다. 숟가락으로 식판을 탕탕 쳐서 주의를 한기하고는 그 숟가락을 그대로 들어 교사 테이블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고 친 학생처럼 끌려오던 윤리 교사와 매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경제 교사가 교사 전용 테이블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는 들려있어야 할 식판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보다도 훨씬 창백하고 초췌한 낯의 윤리 교사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흔들자 경제 교사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식판도 챙기지 않은 채로 강제로 식당 테이블에 윤리를 앉혔다. 그리고는 자신도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덕분에 학생 테이블 쪽에서도 두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훤히 볼 수 있었다.

경제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연이어 꺼내었다. 급식실에서 흔히 볼 것은 아니었으나, 평소보다 매서운 태도 탓에 대부분 눈치채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꺼내든 것은 손바닥만 한 납작한 플라스틱 통이었다. 꺼내어 손쉽게 뚜껑을 여는 와중에도 경제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봉투 위에 찍힌 가게 상표는 학생들에게 퍽 익숙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 상표를 앞둔 사람과 지나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기에 제 눈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경제는 험악한 얼굴로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윤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경제는 들고 있던 용기를 윤리 앞에 내려놓았다. 포장 비닐까지 벗긴 숟가락을 손에 쥐어주는 듯하자 윤리가 우울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코웃음을 친 경제는 봉투 안에서 작은 사이즈의 생수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플라스틱 병의 뚜껑을 돌려 뜯은 그는, 다시 가볍게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그대로 윤리 가까이에 내려놓았다. 나머지 반찬들까지 뚜껑을 열어 늘어놓은 뒤였다. 이어지는 경제의 타박 어린 목소리에 결국 윤리는 숟가락을 움직여 제 입으로 떠 넣었다.

“……야. 저거 뭐냐.”

봉투 안에 있던 것을 모두 윤리 앞에 늘어놓은 경제는 식당 의자가 회장실 의자라도 되는 듯 여유롭게 기대어 앉은 채였다. 테이블을 이용하기에 불편해 보일 정도로 뒤로 물린 의자는 정면인 테이블이 아닌 옆자리를 향해 기울게 놓여있었다. 믿지 못할 것을 본 듯한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제 친구를 비웃으며 아이는 급식을 마저 먹었다.

“경제 온 뒤로 윤리 걱정하는 게 제일 쓸모없어.”

 

 

“건강관리를 얼마나 한심하게 하길래,”

“토가미 군…….”

“어린애들을 가르치니 네놈도 10대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거냐?”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는 이에게서는 끊임없는 잔소리가 흘러나왔다. 슬그머니 몸을 뒤로 물릴라 치면 귀신같이 알아차려 멈춰 서서는 무서운 얼굴로 조용히 바라보거나, 아프지 않게 손을 잡아채 끌어당기는 터라 도망조차 치지 못한 상태였다. 고개를 흔들면 골이 울려 말로만 힘없이 반항을 표현할 뿐이었다.

“…나,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헛소리 말고 전부 먹어라. 일부러 네 녀석이 말하던 서민의 가게에서 사 왔으니까.”

“……안 먹으면 안 돼?”

뚜껑이 열린 플라스틱 통에서는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필 메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맞았다. 맛깔스럽게 윤기 흐르는 모양새도 보기 좋았다. 그럼에도 식욕이 전혀 들지 않아 곤욕스러웠다. 멋대로 앉혀진 자리에서 억지로 손에 쥐어지는 숟가락에 나에기는 우울한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먹여주기를 바라는 거라면, 이번만은 친히 들어주마.”

한술 뜬 숟가락을 입에 물며 나에기는 입을 비죽거렸다.

“토가미 군은… 인기가 많은 것도 이해가 가.”

식사하는 나에기의 모습을 대각선 옆에서 구경하며 등을 기대어 앉아있던 토가미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이내 금세 그런 적 없다는 얼굴로 돌아와 침묵하던 토가미는 턱을 치켜들며 오만하게 대꾸했다.

“……내가 네 녀석에게 뭘 할지 궁금하다면 어디 한 번, 한 마디만 더 해봐라.”

 

 


 

 

 

 

 

SIDE STORY. 그들이 임용되기 전

 

“나에기 선생님, 나에기 선생님.”

일지를 미뤄두고 교과서를 뒤적거리며 수업 지도안을 작성하던 나에기는 책상 맞은편에서 책상을 통통 두드리며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힐끔 살피자 지난 며칠간 제법 익숙해진 단발머리가 보였다. 제대로 허리를 세워 눈을 맞추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 우메다 선생님.”

“선생님, 다음 교시에 수업 없으시죠?”

“…네에. 진도가 느린 반이라서 담당 선생님께서 하신다고……”

“그럼, 그럼 같이 참관 안 가실래요? 6반에 토가미 선생님 수업하신대요.”

전달받은 내용을 느릿하게 말하자, 그를 바라보는 우메다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우메다가 말을 하며 책상을 통통 두드리는 터에 펼쳐놨던 참고 교재 하나가 풀썩 덮였다. 놓친 페이지를 다시 찾아내는 대신, 나에기는 제가 들은 이야기를 되물었다.

“토가미 군… 아니, 토가미 선생님이요? 오늘은 안 들어간다고 하던데.”

“실은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수업 중이신 걸 봤거든요. 나에기 선생님도 모르는 걸 보면 갑자기 들어가신 건가?”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잔뜩 들뜬듯한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토가미 선생님은 중간부터 참관하는 걸 안 좋아해서…….”

“그러니까! 나에기 선생님께 같이 가자고 부탁드리는 거죠! 네에? 같이 가요. 다른 선생님들이 그러는데 토가미 선생님 수업이 엄청나다고 했단 말이에요. 저 여태 수업이 계속 겹쳐서 아직 한 번도 참관 못 들어갔거든요.”

말끝을 길게 빼며 애원하는 목소리에 버릇처럼 뺨을 긁적이던 나에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한 긍정의 표현에 우메다는 만세를 외치며 양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신이 난 듯 일지와 펜을 먼저 챙겨들고는, 나에기가 일어나기 무섭게 여태 들고 있던 비어있는 평가표가 꽂힌 클립보드를 건넸다. 일찌감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은 태도에 나에기는 작게 웃었다.

“혼자라도 가실 생각이셨어요?”

“…설마요. 저 무사히 실습 마치고 싶거든요.”

나에기의 목소리에 우메다는 짧게 정색하고는 다시 씩 웃었다. 이미 수업이 시작한 터라 둘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떠들며 실습대기실을 나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봤다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경제 수업을 듣는 2학년 6반은 대기실과 같은 층에 위치해있었다. 혹여 다른반 수업에 방해라도 될 새라, 다른 반들 앞을 지날 때는 창문에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고 지나가면서 괜히 함께 키득거렸다. 6반 앞문을 지나가자 또렷한 발음의 힘이 실린 목소리가 틈새로 흘러나왔다. 조금 더 이동해 도착한 뒷문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밀어 열었다. 문 가까이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시선들이 잠시 저를 향했다가 다시 칠판으로 향했다. 놀라울 정도로, 잠든 학생 하나도 보이지 않는 열의에 찬 교실이었다. 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주 잠깐 그쳤다가 다시 이어졌다. 고작해야 한 숨 정도 내쉴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기에 그다지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기는 우메다와 함께 살금살금 걸어 교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뒤쪽 사물함 중앙쯤까지 걸어와서는 사물함에 기댄 채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칠판을 바라봤다. 수업은 한창이었다.

[──♪♬─.]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드르륵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정신을 찾은 두 사람은 대기실로 돌아가 작성할 수 있게끔 급하게 텅 비어있는 평가표와 일지 위에 짧은 메모를 휘갈겼다. 수업은 정말이지, 완벽, 그 자체였다. 상호 평가하는 관계라는 것을 잊고 두 사람 모두 수업에 몰입해버렸을 정도였다.

“……와, 정말……”

“엄청나죠?”

“그 정도로 표현할 게 아니라니까요. 정말… 할 말을 잊게 하는 수업이었어요. 이러니까 다른 선생님들도 꼭 들어가 보라고 하는 거구나.”

인사하며 지나가는 아이들 인사를 받아주면서 나에기는 작게 웃었다. 그래도 일찍 정신을 차린 그와 달리 우메다는 아직도 혼이 나간 모양새였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필기하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나에기에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웃으며 문을 나서서 복도로 나가자, 아직 앞문에 서있던 토가미가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찔끔한 우메다가 슬그머니 나에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나에기.”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우메다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듯 큰 숨을 내쉬고는, 나에기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제 어깨로 툭 치며 한 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봐요. 덕분에 살았어요, 있다가 봐요 나에기 선생님.”

그리고는 토가미에게는 살짝 인사만 하고 잰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토가미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복도의 앞문과 뒷문에 서있는 두 사람에게 힐금거리는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것을 눈치챈 나에기는 토가미에게로 다가가며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토가미는 순순히 뒤따라 걸었다.

“배움의 자세가 덜 되먹었다.”

“아하하, 미안. 토가미 군이 수업한다는 걸 우메다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토가미 군이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거든.”

흥,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면을 보고 걸으며 종전의 수업을 떠올렸다. 시원시원한 발성, 단호하고 힘 있는 목소리. 교실 밖에서 듣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자신감에서 비롯된 정리된 수업은 이해하기 편했고, 아이들의 반응마저도 하나의 톱니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사하며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나에기는 고개를 들어 토가미를 바라봤다.

“역시… 토가미 군, 실은 교직이 천직인 거 아닐까?”

“…다른 할 말은?”

“엄청 멋있더라.”

그의 수업을 보고 오면 누구나 감탄부터 내뱉곤 했다. 그것은 나에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만한 수업이었다. 수업이 겹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참관하고 있음에도 늘 감탄이 나왔다. 저런 수업을 할 수 있는 선생이 되어야지. 그게 실습을 시작한 이후로 나에기가 계속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토가미를 완벽하게 따라 하는 건 절대로 무리일 테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아서 흉내 낼 수라도 있게 된다면, 그렇다면 내 수업이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 그것이 교사를 꿈꾸는 나에기가 새로 가진 목표였다. 그런 마음으로 뱉은 대답에 어째서인지 토가미는 입가를 씰룩였다. 제법 기분 좋아진 얼굴로 말하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당연한 소리를. 나는 완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익숙한 자기애였지만 나에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가미 군의 수업, 계속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나에기의 목소리에 토가미의 시선이 닿았다 떨어져 나갔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곁을 뛰어가는 아이들의 높은 목소리와 웃음, 멀리 울리는 종소리. 평화로운 학교의 전경이었다.

이것이, 아직 학교로 돌아올 결정을 내리기 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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