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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에 진전이 있을까요?

Type: Lemonade

- 캐릭터+키워드 3~6개 정도만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프리타입 Type: Lemonade 신청글입니다.

- 파이널판타지14 장르 에렌빌 드림 / 콜리에서 신청받아 작업한 글입니다:)!

- 신청자분 요청으로 드림주 이름은 전부 모험가로 대체되어있습니다.

- 주신 신청내용: #조금의질투 #아침식사 #관계의진전 #일상 / 관계의 진전이 성애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묘한 분위기

- 드림주는 종족적인 특징과 말투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부탁하셔서 묘사 뿐만 아니라 대화체의 대사도 거의 없다고 보시는 편이 맞습니다.

- 신청 글자수는 공미포 5천자. 총 공미포 5,491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관계에 진전이 있을까요?

copyright by. Mer 

 

모험가.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모험가는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얼굴이 아닌 개구리의 형상을 한 모습이 이쪽을 돌아봄에도 상대는 제법 익숙하다는 듯, 놀라 뒷걸음치거나 움찔거리는 일 없이 그저 태연하게 곁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냐는 의아함이 읽혔다. 탈 때문에 표정이 읽히지 않았지만, 같이 알고 지낸 시간이 있다 보니 대충 감이 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상대는 오늘도 저가 그를 처음 알았던 그 때처럼 낫과 곡괭이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채집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모양으로, 그 또한 저를 마주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적잖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다시금 거듭해서 말하지만, 상대가 저런 탈을 쓰고 있어도 대충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알고 지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저를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저는 그를 알고 있던 시간이 꽤 길었기에…….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모험가는 한 손으로 제 탈을 긁으며-아마도 뺨이나 머리를 긁으려고 한 행동인 듯 싶다고, 에렌빌은 추측했다- 낫과 곡괭이를 갈무리하고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미안. 당신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그래서 불러봤어.”

 

오늘도 채집? 모험가는 에렌빌의 물음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으로 납품해야할 품목이 생겨서 그 재료를 얻으러 왔다나……? 그러는 당신은 왜 여기에 있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을 받고 에렌빌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과 별반 다르지 않은 비슷한 이유라는 뜻을 담은 몸짓이었다. 단지 모험가가 들고 있는 것은 채집도구였을 뿐이고, 저는 마물을 생포하러 왔을 뿐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가만히 에렌빌을 들여다보던 모험가가 별안간 제 채집도구를 집어넣더니 촤악 옷이 바뀌며 채집 도구가 아닌 무기를 손에 고쳐 쥔다.

 

“……? 뭐야, 당신?”

 

채집하던 것 아니었어? 왜 갑자기 무기를 드는데? 아니 그보다 그 개구리 탈, 색은 바뀌어도 절대 벗지 않는구나, 당신……. 여전히 벗지 않는 탈에 감탄을 하면서도 도대체 모험가가 왜 무기를 드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하던 찰나, 에렌빌의 손에 들려있던 의뢰가 적힌 종이를 뺏어든 모험가가 의뢰지를 다시 돌려주는가 싶더니 무기를 들고 냅다 돌진해버리는 탓에 의문이 풀렸다.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도와준다는 말 정도는 해주면 안 되는 거야?! 당황과 놀람이 뒤섞인 얼굴로 의뢰지를 가방 안에 대충 구겨 넣고 모험가를 뒤쫓아 가는 에렌빌이었다.

 

“당신! 그거 생포야! 잡는 건 좋은데 죽이진 마!”

 

혹여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생포해야할 마물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큰소리로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것은 덤이었다.

 

*

 

생각보다 쉬운 의뢰라고 생각했던 마물 생포의뢰는 꽤나 어려웠다. 마물의 생포자체가 원래 까다로운 것도 한몫을 하기는 했지만 시기를 잘못 잡은 탓인지 하필 마물이 새끼를 보호하느라 굉장히 흉포해져있던 상태였던 탓도 컷다. 기절한 마물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 지급받은 포대에 담는 것까지 성공한 에렌빌이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친다. 이거 하나 생포하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고작 의뢰받은 마물 하나를 죽이지 않고 붙잡겠다는 의뢰. 흉포하고 위험한 마물도 아니라고 들어서 홀로 나섰던 것이었는데, 모험가가 아니었다면 죽을 뻔 했다. 별 것 아닌 놈들이라 혼자서도 충분할 거라더니, 망할 인간들……. 속으로 해당 의뢰를 줬던 샬레이안의 연구원들을 잔뜩 욕한 에렌빌은 기지개를 펴고 어깨를 두드리며 지독하게도 힘들었던 전투의 흔적, 흙먼지를 대강이나마 툭툭 털어냈다. 흘긋 옆에서 무기를 정돈하는 모험가의 상태를 확인하니, 생채기는 있을지언정 큰 상처 없이 멀쩡한 얼굴로 무심하게-탈을 쓰고 있어서 정말 무심한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흐트러진 복장을 정돈하는 모습이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로 실력도 실력인데 괴물 같은 체력이라고 생각하며 에렌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도와줘서 고마웠어.”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에렌빌의 곁으로 모험가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이내 뺨에 푹신한 감촉이 맞닿는다. 모험가 나름의 뽀뽀랍시고 쓰고 있는 인형탈의 입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비는 것인데…….

 

“그러니까, 당신……. 내가 그거 정말 싫으니까 하지 말랬잖아.”

 

에렌빌은 굉장히 그것을 질색하는 편이었다. 아니 물론 입을 부비는 것이니 이것도 뽀뽀가 맞다! 라고 주장하면 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할 말이 없지만,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이게 어딜 봐서 뽀뽀냐고. 나 참, 연인이 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탈속의 맨얼굴을 자주 보여주지 않으니 말 다했다면 다한 부분이지만. 분명 모험가는 수고했다는 뜻으로, 고생했다는 의미로 그에게 이렇게 뽀뽀랍시고 인형탈의 입을 저에게 부빈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에렌빌은 굉장히 이 부분에서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아니 사귀는 사이인데 맨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 심지어 제대로 된 입맞춤도 못 해봤어. 이게 어딜 봐서 사귀는 사이야?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풀 죽지 말라고.”

 

질색하는 모습에 풀이 죽어버린 모험가를 보며 에렌빌은 한숨과 함께 제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렇지만 평소라면 조금이라도 기분이 풀렸으면 한다고 해줬을 탈위의 입맞춤을 이번엔 해주지 않았다. 지친 것도 지친 것이고, 괜히 지금은 아무런 사이도 아닐 새벽의 붉은 머리 현자에게도 다른 새벽의 동료들에게도 쓸데없는 질투심이 조금 치밀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해주지 않는 것이 들키기 더 쉽지 않나 싶지만, 실제로 에렌빌이 그렇게 자주 해주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모험가는 풀이 죽었음에도 에렌빌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다. 모험가가 눈치 채지 못한 듯 그저 서성이며 에렌빌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것을 본 그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모험가에게 제안의 말을 꺼냈다. 꽤나 험한 전투였기에 모험가도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보다 당신도 사람인데 지치지 않았어? 좀 쉴래?”

“……?”

“근방에 괜찮은 여관이 있으니까 하룻밤만 묵자는 뜻이야. 당신은?”

 

모험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듯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그대로 여관으로 향했다. 길안내는 에렌빌이 맡았다. 당연하게도 그가 알고 있는 여관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둘 사이에는 말이 없었지만, 둘은 나름 발을 맞춰 나란히 곁에 서서 걸었다. 본래 모험가는 과묵한 편이고 에렌빌 또한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어색할 수도 있는 침묵의 시간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서로를 꽤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 * *

 

엉망이 된 꼴을 정돈해보겠다고 잡은 여관방. 운이 좋은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때마침 여관은 만원에 가까워서 방이 하나밖에 없었던 탓에 같은 방에 묵게 된 두 사람이다. 그래도 강가에서 대충 정돈을 했던 에렌빌과는 달리 개구리 탈을 쓰고 있었던 탓에 머리도 땀으로 잔뜩 젖어있었던 모험가가, 자신이 먼저 씻어도 되겠냐고 에렌빌에게 물어왔다. 딱히 누가 먼저 씻던지 상관없었던 에렌빌은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벌였던 전투 탓에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더 컸다. 일의 강도가 꽤 센 편인 조달꾼에게는 일상일 터인 노곤함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잡은 여관방은 생각보다 쾌적한 편이었는데, 1인용 침대가 2개,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티타임을 즐길 수 있도록 놓아둔 소파와 탁자, 그리고 넓고 깨끗한 욕실까지 무엇 하나 모자를 것이 없는 방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짐을 바닥 한켠에 내려놓고 그대로 소파로 다이빙한 에렌빌은, 생각보다 푹신함이 느껴지는 소파에 감탄했다. 꽤 질이 좋은 것을 쓴 것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농담안하고 정말로 곤했다. 수마가 몰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순식간이었다.

 

*

“……?”

 

씻는 것을 마치고 꿋꿋하게 탈까지 챙겨 쓴 채로 나온 모험가는 다 씻었으니 이만 네가 씻으러 가라고 에렌빌을 부르려는 순간, 그가 소파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았으나 꽤나 곤했던 모양인지 눈을 뜨지 않는 상대를 보며 모험가는 잠깐이지만 고민했다. 그러는가 싶더니 고민 끝에 그가 한 행동은 저가 쓰고 있던 탈을 한쪽에 잘 벗어두고 에렌빌의 곁으로 다시 돌아와 바짝 얼굴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분명 인기척을 느꼈을 터인데도 일어나지 않는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모험가는 잠깐이지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뒤, 촉 소리와 함께 에렌빌의 뺨에 모험가의 입술이 닿았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충동이었다. 어쩐지 입을 맞추고 싶었기에 맞췄을 뿐으로, 때마침 에렌빌이 졸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그런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모험가가 에렌빌의 뺨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눈을 뜬 그와 눈이 마주쳤다. 뺨에 닿은 입술의 감촉 탓에 선잠에서 깨어난 듯 했다.

 

“……!”

 

잠깐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던 모험가가 한발자국 물러났다가, 이내 다시금 용기를 내어 에렌빌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을 때, 에렌빌의 팔이 모험가의 허리에 감겼다. 깜짝 놀란 모험가가 물러나려는 찰나…….

 

“어디가.”

“……?!”

 

때는 이미 늦었다. 허리를 단단히 붙잡혀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을 보고 그는 몹시 당황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탈을 쓰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그 모습이 아주 훤히 보이고 있었는데, 세상을 구한 영웅님임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보면 맹한 면도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에렌빌은 생각했다. 저 맹한 사람을 누가 등쳐먹으면 어쩌나 싶은 탓이었다. 잔뜩 굳어있는 이를 바짝 끌어당긴 에렌빌은 모험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어서 해. 눈, 감고 있을 테니까.

 

“…….”

 

한참을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입술이 닿은 곳은 놀랍게도 뺨이 아니라 입술이었다. 말캉하게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감촉에 허리를 붙잡고 있던 팔로 그대로 도로 얼굴을 내려 잡아먹을 듯이 키스를 할까 고민한 에렌빌이었지만, 그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인내했다. 이 이후로 언제 기회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험가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말 용기를 낸 결과였다. 내심 새벽의 붉은 머리 현자에게 아직도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일말의 불안감마저도 날려버린 기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두 사람은 연인이고, 모험가는 그 현자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냈기에 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고작 그 가벼운 입맞춤임에도 상대방이 저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서 표현해줬다는 사실이 몹시도 기꺼워서, 에렌빌은 뾰족했던 신경이 둥글어지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정도면 중증이 따로 없는 수준이다. 가벼운 입맞춤 뒤, 놓아달라는 듯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리는 모험가의 몸짓에 에렌빌은 순순히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어 모험가를 놓아줬다. 놓아지기 무섭게 빠르게 도망가서 벗어둔 탈을 찾는 모습은 꽤나 괘씸했지만, 그럼에도 맨얼굴을 봤기도 하고 나름 그 과묵한 성격의 모험가가 용기를 내서 이쪽에게 입맞춤을 해줬다는 것에 이미 만족하기로 했으니 괘씸함을 느꼈다는 것 까지는 내보이지 않기로 했다.

 

“그럼 당신은 먼저 쉬고 있어. 나 씻고 나올 테니까.”

 

끄덕. 아직 탈을 쓰지 못한 채로 그저 말없이 끄덕이는 고개를 확인하고는 에렌빌은 그대로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뒤늦게 뺨을 붉힌 채 수줍음을 타고 있는 모험가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미 욕실로 들어 가버린 그가 그 사실을 알아챌 일은 없으리라. 분명 알았다면 씻는 것도 뒤로하고 성큼성큼 다가가 그대로 진하게 입술을 집어삼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 *

 

둘이 함께 묵었던 여관에도 아침은 찾아왔다. 아침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열린 창문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얼굴에 직방으로 내리 꽂히다보니 따사롭다 못해 따갑기까지 느껴지는 햇살 탓에 늦게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일찌감치 눈을 뜬 에렌빌은 아직도 제 옆에서 깊게 잠들어있는 제 연인, 모험가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쩜 저렇게 잠잘 때도 탈을 쓰고 자는 걸까. 신기함이 반,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움이 반. 복잡 미묘한 심정을 모험가는 알까 싶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사람이다. 그리고 에렌빌은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뱉어 모험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지. 저렇게 깊게 자고 있어도 기척을 느끼는 것에 예민한 탓에 움직이고 있으면 곧 눈을 뜰 사람이다. 일어나면 함께 먹을 아침이라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에렌빌은 잠시 방을 나섰다.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받아올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여차하면 주방을 빌려 직접 요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굳이 곁을 오래 비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도 하고, 아침으로 미리 준비해둔 요리들이 있을 터이니 번거롭게 주방을 빌릴 필요까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에 가져가서 먹을 만한 간단한 요깃거리? 빵과 잼, 그리고 스프라도 줄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 아, 혹시 차도 함께 준비해 줄 수 있는지…….”

“그 정도야 뭐. 기다려봐, 청년. 금방 준비해서 줄 테니까.”

 

바쁘게 식당 홀과 주방을 오가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말을 거니 흔쾌히 요깃거리와 아침잠을 깨울 차를 담은 쟁반을 들려준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서 고작 이정도로 되겠냐며 물어왔지만, 굳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써가며 1층에서 식사를 할 바에 방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 모험가에게도, 자신에게도 편할 듯 싶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답하고 그대로 방으로 올라온 에렌빌이었다.

 

*

 

“……뭐야, 당신 언제 깼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어느덧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있는 모험가를 보고 에렌빌은 놀라지 않은 척 침착하게 탁자 위에 아침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잠이 덜 깬 모양인지 한 박자 느린 반응으로 이쪽을 보는 모습이지만, 탈 탓에 잠이 덜 깨서 그런 것인지 그냥 멍 때리느라 반응이 느렸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렌빌은 성큼성큼 곁으로 다가갔다. 탈의 콧잔등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입술을 꾹 눌렀다가 떨어지니 누가 봐도 빳빳하게 굳어있는 모습이 딱 눈에 들어와서, 그는 푸핫 웃음을 터트리며 물러났다. 다급하게 저를 잡으며 방금 뭘 했냐고 묻는 모험가를 내버려두고, 궁금하면 그 탈을 벗던지 일어나서 아침을 먹던지 하라는 말만 내뱉고 등을 돌려버리는 그의 얼굴엔 모험가는 보지 못한, 옅은 홍조와 꽤나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여느 때와는 다른, 참으로 따사로운 아침의 풍경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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