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더스

If I could beg, would you do it for me?

HQ by juj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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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보라 혹은 빨강, 메이지 호크 생각하며 썼으나 아무래도 좋음 날조로 승부함


커크월의 한겨울은 유독 다크타운에게 가혹해서 바닥과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곱아들게 했다. 만년설이 쌓인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의 시체가 오랜 시간 동안 썩지 않듯, 길에서 잠을 자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거리의 일부인 것처럼 방치되기도 했다. 주머니를 뒤져 보았자 입맛 씁쓸해질 세간살이가 전부일 것을 아는 강도들도 그들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개중 형편이 낫거나 운이 좋은 사람들은 앤더스의 치료소로 향했다. 

 병자의 기침 소리와 염증 곯는 냄새가 스러져가는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곳. 미로 같은 다크타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장 낮은 사람들을 양배추 절임처럼 쌓아두는 그 곳은 탑에서 도망쳐 나온 이단 마법사가 일군 곳이었다. 그는 눈가의 그늘과 핏자국을 성에처럼 매달고 다니며 간이 침대 사이를 바쁘게 누볐다. 그가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붙이고 환부를 향해 몇 마디를 중얼거리면 누군가는 그걸 기적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저주라고도 불렀다. 어쨌건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결과는 같았다. 어미의 등에 업혀 들어왔던 아이가 제 두 발로 걸어 나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그 댓가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전하는 감사 인사뿐이다. 그래서 호크는 그가 제 주제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 그의 알 수 없는 프라이드를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템플러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앤더스와 신세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못마땅할 따름이다. 어쩌면 커크월의 챔피언의 손바닥 위라는 것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지도. 그의 일생 전반과 마찬가지로 도망자의 신분이었던 신세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은, 당장 로우타운으로 위치를 옮기고, 합법적인 치료소보다는 낮되 적당히 고혈을 짜낼 만한 가격을 책정해서 금화를 쓸어모으라는 거다. 그렇게 모은 돈으론 용병을 몇 고용해서 세력을 넓히고 템플러 쪽엔 뇌물을 찔러 넣어 신변이 보장되는 안락한 삶을 '호크와' 꾸려야겠지. 

 하지만 들을 리가 없다. 정말 싫다. 호크는 옆 자리에서 죽은 듯이 잠든 앤더스를 바라본다.

 아주 깊게 잠든 앤더스는 숨소리마저 밭아서, 호크는 간간히 앤더스의 가슴께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그가 살아있음을 확인받았다. 그마저도 미세한 탓에 새벽의 많은 시간을 앤더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에 할애했다. 앤더스가 이걸 알면 아마 소름 끼쳐할 지도, 하면서 호크는 좀 사악하게 웃는다. 웃다가 고요하게 잠든 앤더스의 귓불을 매만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져 있는 흉터로나마 그의 과거를 추측할 뿐이다. 

 케일런헤드 호수 한가운데에 우뚝 선 탑에, 타고나기를 사람을 죽이게 될 사람들이 모여 있었겠지. 놋쇠로 만든 종이 울려서 아침을 알리면 짧은 머리를 모아 묶고 계단을 내려 가는 앤더스의 귀에 귀걸이가 달랑거렸을 테고. 낡은 양피지와 먼지 묵은 내가 날 책더미에 파묻혀서는 이번엔 어떻게 탈출할지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거야. 물론 상습 탈출범에게 가해질 템플러의 가혹한 학대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 솔직히 거기에 반응하는 앤더스는 상상하기 힘들어. 시간이 남으면 깃펜에 달린 깃털로 자그만 고양이와 실컷 놀아줬을 거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칼과 시간을 보냈을 거야. 잎이 숨을 쉬듯, 날갯짓에 지친 벌이 몸을 누이듯, 비참한 삶에 목적을 찾았다는 것처럼, 탑 밖의 삶을 약속하면서. 그리고 거기엔 내가 없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암만 커크월의 성자라도 질투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없겠으나, 이미 죽어버린 연적에게 가질 만한 감정은 연민이다. 커크월 이전과 이후의 앤더스를 모두 알았지만 그걸 전부 잊은 채로 죽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앤더스는 오로지 호크의 것이다. 떫은 맛의 승리는 애도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앤더스가 다크타운에서 호크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가져온 얼마 되지 않는 짐에는 반짝이는 이질감으로 존재를 과시하는 은촛대가 있었고, 호크는 직감으로 그게 칼의 것임을 알았다. 칼이 소유했었거나, 아니면 둘에게 의미가 깊은 물건이거나, 칼을 상징하거나, 뭐가 됐든 간에 캐묻고 싶은 호기심과 알아보았자 짜증만 날 거라는 방어 기제가 한동안 충돌한 끝에 호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앤더스는 잠들기 전마다 그 촛대에 불을 켰다. 잠들기 전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 몇십분 굴러떨어지는 촛농만 바라보는 앤더스를 기다리다 지친 호크가 이불 안으로 끌어들이면, 그제야 슬쩍 웃으며 하는 말이, "내 사랑." 클리닉의 일에 잔뜩 지쳐서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날에는 호크가 대신 불을 켰다. 캄캄한 방에 촛대의 불이 일렁이며 잠든 앤더스의 콧잔등을 비출 때 호크는 칼을 가엾어했다. 아니면 원망이든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더군다가 그게 연인의 품이라면 호상일 거라고 믿어 왔으므로 호크는 더욱이 칼의 자리에 자신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칼의 자리에 앤더스를 놓는다. 시작도 전에 죽음으로 마지막을 상정하는 사랑이라니. 그리고 금방 고개를 젓는다. 나는 네 손에 죽겠지만, 너는 아니야. 나는 네가 나를 평생 생각했으면 좋겠어. 네 손에 죽어간 연인들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네가 칼을 죽일 때 정말 슬퍼 보였고 또 지금도 그러니까. 그리고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지. 너는 나를 평생 사랑해야 해. 시체처럼 잠든 연인을 꽈악 끌어 안는다. 잠결의 앤더스는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또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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